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1,354 : 무형 유형별...묵은재...
---
무형 유형별 슬관절의 등속성 운동 비교(無形 有形別 膝關節의 等速性 運動 比較 =The Comparison of Isokinetic Strength on Knee Extensors and Flexors in Dance Type)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양점홍(楊点紅, 釜山大 敎授) 등(신희수 김태왕 황영성)의 논문으로, 부산대학교 부설 체육과학연구소(釜山大學校 附設 體育科學硏究所 =The Research Institute of Physical Education & Sports Science Pusan National University)에서 1999년에 발행한 <체육과학연구소 논문집(體育科學硏究所 論文集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 Sports Science) Vol.15 179-189쪽(1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초록] :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isokinetic strengh in dance type of university students. For the purpose, the subjects were 18 female dancer(ballet 6, modern dance 6, Korean dance 6) in Sin Ra university and isokinetic strength test of 18 subjects were proceed at speed of the 60deg/sec, 120deg/sec, 250deg/sec by the Cybex 770+TMC system./ 1. The peak torque of hamstring/ 1) In 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120deg/sec, 250deg/sec./ 2) In non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120deg/sec, 250deg/sec./ 2. The peak torque of quardriceps/ 1) In dominant limb, there is no significant at speed difference of 60deg/sec, 120deg/sec, 250deg/sec./ 2) In nondominant limb, there was no significant at speed difference of 60deg/sec, 120deg/sec, and ballet, modern dance is significantly higher than Korean dance at speed of 250deg/sec./ 3. The peak torque %BW of hamstring and quadriceps./ In hamstring:/ 1) In 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250deg/sec, and there was no significant at speed of 120deg/sec./
2) In non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and there was no significant at speed of 120deg/sec, 250deg/sec./ In quadriceps:/ 1) In 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ballet and modern dance are significantly higher than Korean dance at speed 120deg/sec, 250deg/sec./ 2) In nondominant limb, ballet was significantly higher than modern dance and Korean dance at speed 60deg/sec, 120deg/sec, and there was no significant at speed of 250deg/sec. [목차] :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2. 연구의 제한점/ Ⅱ. 연구방법/ 1. 연구대상/ 2. 측정도구 및 방법/ 3. 측정항목/ 4. 결과처리/ Ⅲ. 연구결과 및 논의/ Ⅳ. 결론/ 참고 문헌/ Abstract(keris 2006)
무흘탄 : →삼강진
묵가의 평등의식과 정치사상(墨家의 平等意識과 政治思想 : 墨子의 義․兼愛.尙同思想)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임수무(林秀茂, 1943- , 啓明大 敎授)의 논문으로, 고양 불함문화사에서 1996년에 발행한 <중국사상논문선집(中國思想論文選集)> 23권 제자백가(諸子百家(2), 527쪽, 27cm) 중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희대, 고려대, 원광대, 한남대, 한양대(백남)이다.(keris 2006)
묵노골, 무녹골 [골] : 예천읍 갈구1리(葛九一里)에 있는 골짜기이다.
묵로골 [들] : 예천읍 청복2리 남읍내(南邑內)에 있는 들로, 농사가 잘 되는 옥토로 이루어졌다.
묵리와선생문집(黙리窩先生文集) [冊] : 용궁현 출신 묵리와 안도징(安道徵)의 문집으로, 3권 1책, 목판본, 32x21.7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엽광곽(半葉匡郭)은 18.2x15.5cm, 유계(有界), 10행(行) 10자(字), 판심(版心)은 상하 내향 화문 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이다. 서문은 1908년(융희 2)에 유도헌(柳道獻), 발문은 1908년에 안영일(安永一)이 지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묵밭고개 [고개] : 용문면 상금곡리(上金谷里) 동막골에서 선리(仙里)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로, 마을 입구의 방소나무(1980년에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묵은 밭이 있었다.
묵새(진사) : 약 300여 년 전에 개척된 마을이다. 처음 마을을 개척한 朴氏ㆍ權氏ㆍ金氏 가운데 朴氏만 남아서 묵는다 하여 묵새로 부르다가 한자로 陣沙라 적게 되었다고 한다.(上里面홈페이지 2013)
묵새 : →묵샛
묵샛, 묵새, 진사(陳沙) [마을] : 상리면 명봉리(鳴鳳里)에 속한 마을로, 밀양 朴, 안동 權, 순천 金씨가 임진왜란(1592)을 피해 왔다. 뒷산 지형이 뱀처럼 생겨서 묵은 뱀골(陳蛇)로 불렀는데, 사(蛇) 자를 동명(洞名)으로 쓸 수 없어서 진사(陳沙)로 바꾸었다. 그 후 權, 金씨는 모두 떠나가고, 朴씨만 남아 묵샛이라고 하였다. 6.25전쟁(1950) 때도 피난지였다. 20가구 112명(1980)이 거의 담배 농사에 의해 살고 있다.
묵샛 : 진사가 오덴가 하믄........./ 2009.01.30./ 진사가 어딘가 하면 ........ 상리면 명봉리에 올라가면서 좌측 두 번째 골짜기입니다. 묵샛이라고도 하지요. 거지가 없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유인즉슨 하도 골짜기라.../ cafe.daum.net/sangrischooldoogmun/ 상리초등학교 총동창회(daum 2017)
묵은세배 [歲時風俗] : 예천군에 양력 12월 30일 밤 제야(除夜)에 전승되어온 민속으로, 각 가정에서 가묘(家廟)에 절하고 집안의 어른께 묵은세배(歲拜)를 하고, 또 친척의 어른과 친지의 존자(尊者)들에도 찾아가서 묵은세배를 한다. 이들 묵은 세배꾼이 밤늦게까지 오고 간다.
묵은여을 : →무근열, →진탄
묵은여흘 : →무근열
묵은열고구마농장(고구마 캐기 體驗 行事 열려) [記事] : 웰빙 열풍 속에 예천에서도 다양한 농촌 체험 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구마 캐기 체험 행사가 열렸다. 2004년 7월 29일 오후 4시 보문면 신월리 묵은열고구마농장(이우직 농가)에서 서울 대안학교 학생 30명 및 학부모 20명 등 50명이 고구마 캐기에 나섰다. 이 날 행사는 서울에 소재한 대안학교가 추진하는 여름캠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참여자들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청정 자연과 고향의 향수를 마음껏 느끼며 동심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04-08-12)
묵은열고구마농장 : 예천 농촌체험농장 본격 운영/ 저울리참외농장과 묵은열고구마농장, 회룡포주말농장, 행복사과농장, 금당꿀체험농장, 소리바다농장 등 6개...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 보문면에 위치한 묵은열고구마농장(이우직 농가)에 체험을 신청한.../ www.ycnews.co.kr/news (daum 2017)
묵은열고구마농장 : 고구마 캐기 체험행사 열려/ 농촌체험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구마 캐기 체험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보문면 신월리 묵은열고구마농장(이우직 농가)에서 서울 대안학교 학생 30명 및 학부모 20명 등 50명이 고구마 캐기.../ www.ycnews.co.kr/news (daum 2017)
묵은재 [고개] : 감천면 포리(浦里)에 있는 작은 고개로, 감천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묵은재골에 있다. 지금은 길이 넓으나 옛날에는 좁은 오솔길이라고 한다. 본래 이 재는 산이었는데, 이 동네의 동민들이 농토를 재 너머에 갖게 되어 산길을 닦아 만들었다. 무척 경사가 급한 길이다. 이 곳에는 재와 함께 큰 못이 있다. 이 못의 이름도 재의 이름을 따서 '묵은재못'이라고 한다. [傳說] : 1) 어느 날, 이곳 이웃 마을에 사는 처녀가 시집을 가기 위하여 가마를 타고 이 재를 넘었다. 재를 넘으려니까, 가마가 땅에 쩍 들어붙어 가지를 못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한 노인을 만나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이 재를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이 하는 말이, "이 재를 넘으려면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말 대로 그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 재를 넘는데, 힘이 안 들게 거뜬히 넘었다. 이 소문이 온 동네로 퍼지자, 그 마을 사람들은 이 재를 '묵은재'라고 부르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요사이는 길을 넓혀서 차도 다니지만,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밤중에 이 재를 넘기를 싫어한다고 한다(반규식). 2) 옛날 다른 동네의 가마가 이 재를 넘게 되었을 때, 마침 그 때는 산길이 생기고 처음이라고 한다. 재를 거의 다 올라갔을 때 갑자기 교군(轎軍)의 발이 땅에 들어붙어 더 이상 넘지 못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와 산 아래 샛터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후 다시 이 재를 넘으니 쉽게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당시의 사람들은 이 재를 넘을 때는 하루를 묵고 넘어가야 한다고 퍽 두렵게 생각하였다. 그래서인지 오늘날도 이 재를 넘기를 꺼려하고 가마는 으례히 먼 거리로 돌아가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리하여 이 재를 묵은재라고 부르게 되었다.(嶺南의 傳說)
묵은재 [傳說] : 감천면 포1리와 현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약 200년 전 동민들이 이 고개 너머 들로 나가기 위해 산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다른 동네의 가마가 무척 급한 일로 이 재를 넘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마침 그 때는 해가 질 무렵이어서 서둘러 이 재를 넘으려 할 때 갑자기 교꾼의 발이 땅에 붙어 더 이상 가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와 산 아래의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이튿날 밝을 때 이 재를 쉽게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당시의 사람들은 이 재를 넘을 때는 하루를 묵고 넘어야 한다고 하여 묵은재라 부르고 있다.(조동일 慶北홈페이지 2000)
묵은재(묵은재 - 甘泉面 浦1里) [傳說] : 감천면 포1리 할미성을 지나 현내로 넘어 가는 고개를 묵은재라 한다. 약 2백 년 전에는 산이 가로막혀 있었으나 동민들이 들로 나가기 위해 산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다른 동네의 가마가 무척 급한 일로 이 재를 넘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때는 해가 질 무렵이어서 서둘러 이 재를 넘어 가는데, 갑자기 교꾼의 발이 땅에 붙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와 산 아래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고 날이 밝은 후 그 다음 날 아침 다시 이 재를 넘어가니 쉽게 넘을 수 있었다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동네 사람들은 해가 지고 난 뒤에는 이 재를 넘을 경우 하루를 묵고 난 뒤에 넘어야 한다고 하여 `묵은재'라 부르게 되었다.(醴泉新聞 2005-10-07)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