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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473 : 미산국민학교...미산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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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국민학교 : →보성초등학교
미산역(眉山驛) [鐵道] : 보문면 미호리(眉湖里)에 있는 경북선 기차 간이역(慶北線汽車簡易驛)으로, 1982년에 민간인 매표원이 있다.(醴泉大觀 1982)
미산재('한결'의 醴泉文化財 散策) [記事] : 우리나라는 기록문화가 부족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소중한 역사와 문화의 기록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6대 140년을 내려오면서 일기를 쓴 집이 용문면 대제리 속칭 큰맛질에 있다.
소백산 백두대간에서 발원된 맑게 흐르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큰맛질과 작은맛질로 나누어졌다. 넓은 들을 지나 큰맛질에 이르니 마을길 옆에는 담장 위에 보름달 같은 박덩이가 익어가고 있었고, 마을에는 아름드리 나무들과 운치 있는 옛날집들이 보여서 인심이 후하고 전통 있는 마을임이 느껴졌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기품 있어 보이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맛질마을은 여느 마을과 달라 보였다. 새날골의 넓지 않은 들에는 알밴 나락들이 저녁바람에 일렁이며 풍년을 부르고 있었다. 작은 개울을 따라 난 오솔길 같은 농로를 조금 올라가니 외딴집처럼 쓸쓸한 미산재가 있었다. 지금은 주인도 없고 아무도 살지 않은 빈집이었다. 미산재는 용문면 대제리 259번지에 있는 집이다. 속칭 큰맛질 새날골 들머리에 서남향으로 자리잡은 옛날집이다. 몇 해 전에 왔을 때는 바깥마당 가에 늙은 대추나무가 서 있었다. 가을이면 오롱조롱 오방진 대추알을 달고 수백 년 동안 선비집의 봉제사에 쓰였을 대추를 아낌없이 주던 나무. 선비는 대추 한 알로도 한 끼 요기를 때운다던가. 그 대추를 생산하던 오래 묵은 대추나무는 그만 베어져 툇마루 밑 봉당에서 굵은 몸뚱이를 뒹굴며 양공을 기다리고 있다. 인재로 가공되어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다시 태어날 것이다. 더러는 낙관으로 만들어져 예술작품으로 변신할 것이다. 사랑채는 대문을 사이에 두고 방 두 칸과 쪽마루와 툇마루를 두고 툇마루에는 난간을 둘렀다. 툇마루 위에 있는 미산재(미산재)라는 현판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이곳을 다녀갈 때, 박득영 님의 호를 따서 써준 글씨라고 한다.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대원군의 필치가 그대로 보인다. 숙달된 필치로써 해서체로 쓰다가 마지막 획에서는 난 잎을 치듯 시원스럽게 흘려 썼다. 사랑채의 사랑방 사이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나무 대문이 있다. 수리를 했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인 대문을 밀쳐보니 나무 돌쩌귀가 아픈 듯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집의 모양과 배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옆이 조금 트인 ᄆ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주거공간을 틔워놓은 시원스런 배치를 한 소박한 고가이다. 자연석으로 놓은 덤벙주초 위에 기둥을 세우고 두 칸 크기의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안방부엌, 상방과 상방부엌의 단출하기 그지없는 집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權相憲 論說委員. 文化院 理事>(醴泉新聞 2007년 01월 18일)
미산재 :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연원/ 2012.11.30./ 그가 죽자 세종은 2일간의 철시를 명하고 치제(致祭)하였다. 시호는 정효(靖孝).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 미산재(未山齋)에 소장된 함양 박씨 5대의 한문초서일기인 ‘저상일월(渚上日月ㆍ보물 제1008호)’은 1834년 박득령.../ blog.naver.com/blutomy/ 베이비 베이피(daum 2017)
미산재 : 회룡포-1박2일팀, 강호동, 이승기, MC몽, 삼강주막/ 2009.09.07./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천 다른 볼거리는 용문면 용문사 윤장대(한국 최고의 불교 목조각품, 한국 하나뿐... 소나무) 그리고 형제분이 의병장을 지낸 용문 큰맛질의 미산재(박주대-박주학) ... 예천 온천, 예천양궁장.../ blog.naver.com/gaetuel/ 개털기사,서울15인승..(daum 2017)
미산재 : 아! 그리운 맛질의 저상일월(渚上日月)이여../ 2015.04.23./ 소개하고자 한 민간기록문화의 정수인 『저상일월(渚上日月)』은 예천 용문면 대제리 속칭 맛질의 미산재(味山齋) 고택에서 쓰여 졌다. 미산재는 문화재자료 제137호.../ cafe.daum.net/moonhawje... 옛님의 숨결. .. | 댓글 3(daum 2017)
미산재 : (예비독후감) 『저상일월(渚上日月)』-한태욱/ 2013.05.05./ 34)~1950년 1.책 소개 및 저자 소개 저상일월(渚上日月)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의 미산재(味山齋)에 소장되어온 함양박씨(咸陽朴氏) 5대의 한문초서일기이다.../ cafe.daum.net/historycl... 역사고전의이.. | 댓글 9(daum 2017)
미산재 : 나암 박주대(羅巖 朴周大)가 편찬한 <문음진신보.../ 2013.12.25./ 태어나 1912년에 서거한 분이다. 본관은 함양이다. 그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 큰맛질의 미산재에서 태어났으니 그곳이 삶의 터전이다. 박주대는 나암수록을.../ cafe.daum.net/ChungJeon... 양천허씨 충정..(daum 2017)
미산재 : {저상일월(渚上日月)}/ 2001.12.15./ 예천의 미산재(味山齋)에 소장되어온 함양 박씨(咸陽朴氏) 5대의 한문초서 일기. 박득녕(朴得寧, 1808∼1886)이 이 일기를 1834년(순조 34)에 처음 쓰기 시작하였다. 그.../ cafe.daum.net/pchundang... 함양박씨 종사..(daum 2017)
미산재 : 자연재해와 인간생활 콘텐츠 역사문헌/ 보여주므로 조선시대 구황정책의 단면을 알 수 있게 한다. 08.저상일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의 미산재에 소장되어온 함양 박씨 5대의 한문초서일기를 말한다. ‘저상’은 마을이름을 딴 것이고, ‘일월.../ 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 (daum 2017)
미산재 : 아! 그리운 맛질의 저상일월(渚上日月)이여../ 돌아와서 필자가 소개하고자 한 민간기록문화의 정수인 『저상일월(渚上日月)』은 예천 용문면 대제리 속칭 맛질의 미산재(味山齋) 고택에서 쓰여졌다. 미산재는 문화재자료 제137호 지정되었고 함양박씨 정랑.../ www.cultureline.kr/coding/sub1/sub1.asp?mod.. (daum 2017)
미산재 : 체험여행 * 체험여행+야영 할려는데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천 다른 볼거리는 용문면 용문사 윤장대(한국 최고의 불교 목조각품, 한국... 형제분이 의병장을 지낸 용문 큰맛질의 미산재(박주대-박주학)... 예천온천, 예천양궁장.../ lab.bicdata.com/developer_zone/bbs/view.php.. (daum 2017)
미산재 : →미산고택
미산정 : →미산고택
미산학사(眉山學舍), 삼경당(三慶堂) [敎育] : 보문면 미호1리(眉湖一里) 123번지 미울 마을에 있는 조선 현종 때에 세운 건물로, 경북 문화재자료 제141호(1985.8.5 指定)이다. 김해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곳에 김해김씨들의 마을이이루어지고 민가가 많아지니 배움의 길이 없더 차에, '학사(學舍)가 없으면, 뜻을 펼 수 없다(不有舍則 知不事業)"라는 교육 이념에 따라 1676년(현종 11)에 이 마을 사람인 김해인 미산 김이도(眉山 金以道, 1604-1677)가 그의 만년에 후손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사(學舍)이다. 동네 친족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750년에 대폭 중수한 후 수시로 보수를 하여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안채(正寢)] :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로,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의 평범한 민가 구조이다.
[學舍] : 잡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이는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3칸(7.45m), 측면 2칸(4.85m)의 규모로써 맞배식 지붕이다. 건평은 11평이다. 보호구역 386평 안에는 보호물로서 삼경당과 정침(正寢)이 각각 1동씩 있다. 전면 대청마루에 난간을 돌린 2층 누각식인데, 정면 벽면 위에는 '삼경당(三慶堂)'이라는 현판이 게액(揭額)되어 있다. 삼경(三慶)은 김이도(金以道)의 아들인 매죽헌 김영진(梅竹軒金英震, 1629-1724)이 세 차례의 경사(慶事)를 맞이했다고 붙여진 당호(堂號)인데, 즉 1648년(인조 2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것이 첫 번째 경사이고, 1708년(숙종 24) 생원시에 합격한 지 60주년(回榜)에 회혼(回婚)을 맞은 것이 두 번째이고, 세 번째 경사는 회혼일(回婚日)에 수직(壽職)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된 것이 그 것이다. 김이도(金以道)는 장흥효(張興孝)의 제자로 학문이 고매하고, 음사로 장사랑(將仕郞)이 되었는데, 아들 김영진의 귀(貴)로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에 증직되고, 광호사(光湖祠)에 제향(祭享)된 분이다. 현감(縣監)을 역임한 용강 김정구(蓉岡金正龜, 1678-1702)를 비롯하여 만취헌 김성구(晩醉軒金聖龜, 1686-1767, 兵 刑曹佐郞), 미주 김택로(眉洲 金宅魯, 1697-1752, 弘文館 校理), 용와 김택려(龍窩金宅礪, 1700-1779, 承政院 判校), 사옹 김약구(思翁金若龜, 1702-1776, 司憲府 監察) 등 많은 문인들이 이 학사(學舍)에서 배출되었다. 이 학사에서는 많은 문인을 배출시켰고, 많은 문인을 과거에 급제시켰던 곳이다. [三慶堂 詩] : 동남의 좋은 손이 함께 모이나니/ 좋은 모임 강 마을에 해 저문 하늘일세/ 200 진사(進士)가 얼마나 남았느냐/ 80 회혼(回婚)이 곧 오늘이라네/ 어찌 흰 머리로 거듭 즐거운 날을 자랑할까/ 따라 청춘에 구경(具慶)한 잔치 자리를 느낀다./ 다행히 군수(郡守) 오심을 얻어서/ 억지로 쇠한 몸을 붙들어 두루미 앞에 취하노라(原韻)/ 일가(一家)집 성한 잔치에 손님 많이 모였는데/ 같이 참여 못함을 한하니 어찌 할꼬/ 완전한 복(福) 사마방(司馬榜)이 두 번 돌아왔고/ 거듭 잔치는 또 장가가던 해를 맞았노라/ 8순 먼 해에 수직(壽職)이 내렸는데/ 6남 모든 손자 춤추는 자리에 이르렀다/ 좋은 일이 한 때에 여러 입에 전하노니/ 뒤에도 이음이 없고, 또한 앞에도 없으리(右相 甲峰 金宇杭)/(金海金氏族譜, 醴泉郡 文化財臺帳, 慶尙北道廳 홈페이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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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