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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578:박샘...박서보미술관...
작성자장병창 @ 2021.10.19 06:09:46

  도청신도시 예천 1,578 : 박샘...박서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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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샘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西本里, Seobon-ri]/ 2016.07.21./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에 있는 리(里)이다... 서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박샘, 당곡, 호혹골이 있다. 박샘은 우물이.../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7)
박샘 : 예천읍 지명유래/ 2011.12.22./ 도왔다. ▪ 박샘(酒泉) 우물 : 지고개 동쪽 기슭에 있는 우물 ▫ ① 바가지로 떠서 먹게 되었음. ▫ ② 전에 술이 나왔다 하는데, 한 바가지만 떠먹어야 되는데, 욕심 많은.../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7)

 

  박샘 : 예천읍 지명유래 - 경북 예천군 예천읍/ 2017.02.17./ 도왔다. 박샘(酒泉) 우물 : 지고개 동쪽 기슭에 있는 우물 ① 바가지로 떠서 먹게 되었음. ② 전에 술이 나왔다 하는데, 한 바가지만 떠먹어야 되는데, 욕심 많은 사람이.../ blog.naver.com/kcs022/ 잠실아파트 / 잠실에..(daum 2017)

 

  박샘 : [마을 이장님]26년째 이장 맡아.. 예천읍 최장수, 최고령 서본2.../ 三益隧道를 확장하면서 늪지대가 대지로 변했다... 년에는 예천읍 서본동이 되고... 년 일 서본 동으로 분동되었고... 년 洞이 里로 개칭됐다. 자연마을로는 박샘(지고개), 당곡, 호혹골, 상시당골이 있었다. 박샘.... m.ycinews.co.kr/view.as... 예천인터넷뉴스(daum 2017)

 

  박샘 : 예천의 자랑 3698 : 예천대사전 제160권, 오늘 나와, 총 32,000쪽 돌파(附 예천방문 1,130)/ 장병창 편저/ 대사전 제160권(醴泉大事典 第160卷) [冊] : 예천읍 74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 지명 : 민트리고개, 바깥들, 바느물, 박샘 우물, 성씨 : 밀양박씨, 예천인 : 민삼산(경.../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예천군청(daum 2017)

 

  박샘 : 지고개 박샘(예천)/ 예천읍 서본리 지고개에 위치한 박샘은 술이 나는 샘으로 옛날에는 술(酒)고개라 하였으며 그 전설을 살펴보면 정성을 들이면 모든 일이 풀리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교훈 이야기이다. 옛날에.../ artkimartkim.cafe24.com/xe/ (daum 2017)

 

  박샘 : 예천의 전설 2 - 지고개 박샘/ 2004.10.09./ 예천읍 서본리 선산봉으로 난 길, 지고개에는 옛날에 박샘이라는 샘이 있었다. 이곳은 옛날 술이 나는 샘이 있다 하여 주고개(酒峴)라 하였으며 그 샘을 주천이라고도.../ cafe.daum.net/yc54/Ej6u/ 예천초등학교54회 | 댓글 3(daum 2017)

 

  박샘 : Re:權奇模의 풍수칼럼(9)-“예천” 지명의 정체성에 관한.../ 2010.06.14./ 보호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쪼록 예천읍엔 주고개(酒峴-주현,지고개,쥐고개)가 있다. 아울러 그 고개 마루턱엔 “주천(酒泉-박샘, 술샘)”이란 샘이 있었다. 필자가 20.../ cafe.daum.net/woruddPcjsrns/KC3T/ 재경예천군민회(daum 2017)

 

  박샘 우물(酒泉 우물) : 예천읍 서본2리 지고개 동쪽 기슭에 있는 우물로, ① 바가지로 떠서 먹게 되었고, ② 전에 술이 나왔다 하는데, 한 바가지만 떠먹어야 되는데, 욕심 많은 사람이 두 바가지를 떠먹은 뒤로부터 술이 변하여 물이 되었다고 한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박서보미술관(예천군, '박서보미술관 건립 위한 업무협약 체결') [기사] : 김학동 예천군수는 2020년 8월 28일 오후 군청 중회의실에서 서보미술문화재단과 박서보미술관 건립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한국 근대 추상미술의 대부라고 불리는 박서보화백과 서보미술문화재단 박승조이사장, 임휘삼, 임환재, 김상진 등 전․현직 미협지부장, 이성은 신풍미술관 관장 등 예술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는 박서보화백이 고향인 예천에서 미술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의지와 예천군민들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 그리고 통합신공항 이전과 함께 세계적 명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예천군의 의지가 합쳐 추진하게 됐다. 이날 협약에서 예천군은 미술관 건축의 기획과 시공을 주관하고 서보미술문화재단은 미술관 구성을 위한 작품기증 및 전시기획을 주관하며, 앞으로 미술관 건립을 위하여 상호 협의하여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박 화백은 “고향인 예천의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리고, 미술관 건립을 위하여 예천군과 적극 협조하여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미술관을 만들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예천에 은풍면출신의 세계적 거장 박서보화백과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이 만나면 스페인의 구겐하임미술관이나 일본의 나오시마섬처럼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보 화백은 1931년 예천군 하리면에서 태어났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큼 그가 미술계에 이뤄놓은 업적들은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한국 단색화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한 박화백은 1950년대 우리 미술계에 낯선 추상미술을 선보이며 등장하여 묘법 시리즈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인 작업을 이어오면서 전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화백은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시작으로 옥관문화훈장, 2011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역사'이며 2019년에는 자랑스러운 예천군민상도 받은 바 있다.(예천신문 2020.08.28.)

 

  박서보미술관(경북일보 삼촌설(三寸舌)퍼 옮김...은풍면 출신 세계적 단색화가 박서보 화백!) [기사] : 박서보(朴栖甫·1931년~)는 우리나라 1세대 단색화가다. '단색화'라는 용어에 대해 박 화백은 이렇게 정의했다. 한국 사람들조차 단색화를 서구 미니멀리즘의 변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생태부터가 다르다. 우리는 무(無)에서 출발한 거야. 서양의 모노크롬이 다색주의의 상대적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완전히 희거나 검지. 그런데 우리는 희끄무레하거나 거무스름한 거야. 박 화백은 한국의 단색화가 서구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삶 속에 베어있는 '희끄무레하고 거무스름한 색'이라는 것이다. 박 화백은 좀 더 비유적으로 한국의 단색화를 설명한다. "희끄무레하다는 것은 도공들이 흙을 밟아 도자기를 만들 때 일부러 유약을 발라 순도 100% 흰색이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을 만든 것과 비슷한 것이지. 온돌방에 장작불을 지피면 천장과 서까래가 거무스름해지잖아. 수 십 년 시간이 흘러 그을음이 쌓이며 나타나는 거무스름한 색. 내 작품이 블랙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색이 나는 게 바로 그거야. 무한대로 들어가는 정신의 깊이가 있는 거지" 이렇게 박 화백의 단색화는 반복적 색채의 조합을 통해 정신적이며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궁극적 지향점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세계다. 우리나라 1세대 단색화가 박서보는 경북 예천군 하리면(현재 은풍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고향은 충북 음성이었고, 어머니 고향이 하리면이다. 박 화백의 어머니는 하리면에서 유명했던 남고약집 딸이었다. 박 화백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수와 미술대학 학장을 지냈다. 한국미협 이사장도 지내는 등 미술행정가로도 유명했다. 세계적 명성의 박 화백이 나서 자란 예천에 '박서보미술관'이 건립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달 28일 서보미술재단과 예천군이 미술관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예천군에 세계적 명소가 생기게 됐다. [경북일보 삼촌고 퍼옮김](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0-09-02)

 

  박서보미술관(기획특집// 박서보 화백의 미술세계) [기사] : "그림은 수신의 도구이자 나를 비우기 위한 행위…"/ 묘법을 통해 독보적 예술세계 구축 … 추락하지 않는 예술 평생 추구/ 예천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 박서보 화백을 논한다고 하니 떨림과 걱정이 앞선다. 지극히 높고 깊은 분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범인의 지식으로 어떻게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다행히 지난(2020년) 8월 28일 박서보재단과 예천군이 박서보미술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였고 필자는 자랑스런 예천군민의 한 사람이기에 박 화백께서 모든 걸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박서보 화백의 미술세계는 크게 다섯 과정으로 설명하곤 한다. 초창기, 원형질시기, 유전질시기, 초기묘법시기, 그리고 후기 묘법시기이다. 먼저 1950년 중반부터 시작되는 초창기이다. 1954년과 1955년 국전에 입선하였으나 기존 국전의 한계를 인식한 박 화백은 1956년 반국전을 선언하며 뜻을 함께하는 미술가들과 함께 한국판 엥포르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작품으로는 '양지' '여인좌상' '닭' 등이 있다. 원형질 시기는 1962년∼1966년까지가 해당된다. 1961년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에 참석한 후 원형질이라고 부른 연작에서 일상에서 나온 오브제를 태워 화폭위에 쌓아올린 후 다시 팔레트나 나이프로 깎아 내거나 쓸어내리는 방식이다. 작품으로는 원형질 시리즈가 있다. 유전질시기는 1966년∼1970년 사이다. 원형질 시기와는 상반된 기하학적 추상을 보이며 전통적인 오방색을 활용하다가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인체라는 구상성을 확연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에어스프레이 기법을 활용하여 매끈한 질감의 팝아트적인 색채를 구상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작품으로는 유전질 시리즈가 있다. 초기묘법시기는 1967∼1986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아들의 공책 낙서에서 착안한 반복적인 연필 긋기이다. 초기 작품들은 일본 토쿄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이 시기에 묘법이란 제명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후기묘법시기는 1982년부터이다. 초기 묘법처럼 선을 긋는 방식이지만 한지가 갖는 침투성과 흡수성으로 인해 작가의 행위와 종이의 물성이 일체화되어 화면 위 마티에르로 드러난다. 2015년부터는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단색화 열풍이 시작된 시기이다.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미술세계를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나의 수신의 도구이다. 나를 비우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스님이 목탁을 치며 하루 종일 염불하는 것과 같이 내가 무심하게 수없이 반복해서 선을 긋는 것도 그 선과 선 사이의 골을 다스리는 것이다." 손의여행으로 불리는 묘법을 통해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박 화백은 누구와도 닮지 말고 자신만의 공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좌우명 삼아 변화하면서도 추락하지 않는 예술을 평생에 걸쳐 추구해 왔다. 또한 디지털시대에는 그림이 관객의 스트레스를 빨아들여 편안하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예천신문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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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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