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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601:반학정...(축,예천소방서)
작성자장병창 @ 2021.11.10 06:04:56

  도청신도시 예천 1,601 : 반학정...(축, 예천소방서, 9일 예천문화회관에서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을 개최함. 이날 행안부장관 표창(안상대, 박성훈), 소방청장 표창(남종섭. 김성권, 김명자. 권석화, 신정식), 경북도지사 표창(강호성 등 17명) 등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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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반학정기(伴鶴亭記)'를 지었는데, 그 글에서 이르기를, "나는 예천에 도착하는 날로 관(館), 해, 정(亭), 누(樓)의 제도를 살펴보고, 정각(政閣, 郡廳)의 동쪽에 폐허가 되어 버린 정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자 아래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어 사방으로 넓이가 수 십 보나 되었는데, 모두 섬돌로 되어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향기로운 온갖 화초가 많이 심어져 있고, 둥그런 울타리로 둘려 있었는데, 조그만 문이 하나 있어 정각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자 뒤에는 키 큰 대나무와 높이 솟은 나무들이 많았다. 모든 창마다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칠해졌으며, 버려진 지가 오래되었다. 주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정자에는 귀신이 살아서 혹 병을 얻든지 그렇지 않으면 놀래고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허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귀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니, 내 마음에 귀신이 없으면 귀신이 어찌 스스로 올 것인가.'하고, 그 다음날 나는 아버지(醴泉郡守)를 뵙고 말씀드리기를, '반학정은 그윽하고 조용하여 독서를 하고 시를 지을만한 곳입니다. 정각과의 거리도 좀 떨어져 있고, 빙둘러 담으로 막혀 있어서 송옥(訟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아들이 처할만한 곳입니다. 오늘 닦아내고 쓸어낸 뒤에 침상과 이불을 옮기려고 합니다.'하니, 아버지께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하셨다. 내가 이 정자에 살게 되면서 글을 짓다가 여가가 많으면 책을 보는 데에만 뜻을 두었더니,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이 대들보에서 읊조리고 계단을 걸어 다닌다.'는 것은 고요할 정도로 다시는 소리나 흔적이 없었다. 늘 밝은 달이 물에 비쳐 그윽한 달빛이 문안으로 들어오고 나무 그림자가 너울너울 움직이며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남는 시간은 이리 저리 마음 내키는 대로 거닐고 경적(經籍)을 애써 읽는다. 저포(樗蒲 : 놀이의 一種)나 장기, 그리고 노래하는 아이와 춤추는 계집과 같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은 소문(小門) 안을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부모님께 근심을 끼쳐드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내 마음 속에 즐거운 것을 써서 반학정기로 삼는다."라고 하였다.(안승욱 醴泉新聞 2001.10.5)

 

  [茶山詩文集] : 예천읍 예천 정당(醴泉政堂 : 醴泉郡廳)의 동쪽에 인접해 있던 정자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와 기문이 있다. [詩] : 여름날 못가 정자에서 지은 절구(絶句)// 동산 수목 우거지고 물가 난간 서늘한데/ 꾀꼬리의 울음 뒤에 여름 햇살 더디구나/ 천문지(星經)를 읽고 난 뒤 남은 일이 또 없어/ 황정경(黃庭經)의 첫째 장을 한가로이 옮겨 쓰네// 더운 날씨 빈 뜨락 푸른 이끼 자랐는데/ 한바탕 잠을 깬 뒤 주렴(簾)이 반쯤 열렸네/ 수면에 나온 고기새끼 한 번 보소/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기 때문인가 봐// 어린 기생 차(茶)를 들고 대사립에 이르르자/ 패옥(環패)소리 글 읽는 방 들어오지 않게 하네/ 이화원(梨花院) 그 안에는 봄술(春酒)이 많이 있어(映梨堂은 政堂 北쪽에 있다)/ 이따금 홍안(紅顔)으로 취기(醉氣) 띠어 돌아오네// 한 더미 안개 날아와 작은 못을 감싸는데/ 고을 누각 나팔소리 성문 닫을 시간이네/ 담장 머리 나무 위에 저녁달이 금방 올라/ 칭칭 감긴 담쟁이덩굴 역력하게 보이누나// 새로 심은 연뿌리 겨우 진흙 벗어나와/ 요즘에는 점차로 마름 속에 어울리네/ 여인의 볼과 같은 붉은 꽃은 더디지만/ 물 위에 뜬 배꼽 모양 연잎 또한 사랑겹네// 석양 무렵 오얏 오이 차가운 물에 담그고/ 산중 손님 맞아들여 즐거운 자리 마련했네/ 등사할 붓 벼루못에 찬찬히 빨아놓고/ 주렴 앞에 한참 동안 서늘한 바람 쏘인다오//(茶山詩文集 第1卷 詩部 1982년 번역 간행, 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템 2002). [記文] : 아버지의 고을살이에 따라가 자제(子弟)들은 술ㆍ고기ㆍ음악ㆍ여자 등 유흥에 빠져들지 않으면, 부서(簿書 : 官廳의 帳簿와 文書)와 약속(約束 : 法令에 依하여 團束하는 일) 등에 반드시 간여하며, 심한 경우에는 차꼬를 채우고 채찍과 몽둥이질하는 것으로 이목(耳目)을 즐기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지방관이 된 사람은 세 가지를 버린다고 하는데, 첫째는 집을 버리고, 둘째는 동복(동僕)을 버리고, 자제(子弟)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하니, 매우 탄식할 일이다.

 

  나는 예천에 도착하는 날로 관(官)ㆍ해(廨)ㆍ정(亭)ㆍ누(樓)의 제도를 살펴보고, 정각(政閣 : 郡廳)의 동쪽에 폐허가 되어 버린 정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자 아래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어 사방으로 넓이가 수 십 보나 되었는데, 모두 섬돌로 되어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향기로운 온갖 화초가 많이 심어져 있고, 둥그런 울타리로 둘려 있었는데, 조그만 문이 하나 있어 정각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자 뒤에는 키 큰 대나무와 높이 솟은 나무들이 많았다. 모든 창마다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칠해졌으며, 버려진 지가 오래 되었다. 주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정자에는 귀신이 살아서 혹 병을 얻든지 그렇지 않으면 놀라고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허가 되었습니다."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귀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니, 내 마음에 귀신이 없으면 귀신이 어찌 스스로 올 것인가" 하고, 그 다음날 나는 아버지(當時 醴泉郡守 丁載遠)를 뵙고 말씀드리기를, "반학정은 그윽하고 조용하여 독서를 하고 시를 지을 만한 곳입니다. 정각과의 거리도 좀 떨어져 있고 빙 둘러 담으로 막혀 있어서 송옥(訟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제가 거처할 만한 곳입니다. 오늘 닦아내고 쓸어낸 뒤에 침상과 이불을 옮기려고 합니다.' 하니, 아버지께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하셨다. 내가 이 정자에 살게 되면서 글을 짓다가 여가가 많으면, 책을 보는 데에만 뜻을 두었더니,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이 대들보에서 읊조리고 계단으로 걸어 다닌다.'는 것은 고요할 정도로 다시는 소리나 흔적이 없었다. 늘 밝은 달이 물에 비쳐 그윽한 달빛이 문안으로 들어오고, 나무 그림자가 너울너울 움직이며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남는 시간은 이리저리 마음 내키는 대로 거닐고 경적(經籍)을 애써 읽는다. 저포(樗蒲 : 놀이의 일종)나 장기, 그리고 노래하는 아이와 춤추는 계집과 같이 사랑의 마음과 눈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은 소문(小門)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부모님께 근심을 끼쳐 드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내 마음 속에 즐거운 것을 써서 반학정기(伴鶴亭記)로 삼는다.(茶山詩文集 第13卷 記)

 

  반학정(다산 정약용이 19세에 공부한 예천 반학정은 어디?) [인터넷] : 2001년 7월 9일 오후 수도권에서 사시는 출향인 안승욱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정약용이 19세에 예천 반학정에서 공부를 하였고, 나중에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기록하기를, '예천은 자신의 추로지향'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반학정이 어디입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조선환여승람(1929)>에 의하면, "반학정(伴鶴亭)은 용문면 선리 선동(仙洞)에 있는데, 선조 때 이만겸(李萬兼)이 서식하던 곳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반학정에 대한 예천군 관계의 기록에는 이것 밖에 없었으나, 정약용이 강진 유배지에서 기록한 <여유당전서>의 '반학정기(伴鶴亭記)'에서 이르기를, "반학정은 정각(군청)의 동쪽에 있었고, 조그만 문이 하나 있어 정각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예천군수 정재원)에게 문안드렸다."라고 하였고, <다산산문선집(茶山散文選集)>에서는 "쓰러져가는 관청집(반학정)에서 공부하였다."라고 하였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 본관은 나주, 1780년(정조 4)에 부임한 예천군수 정재원(丁載遠)의 넷째 아들이며, 약현(若鉉), 약전(若銓, 흑산도 유배, <자산어보>의 저자), 약종(若鍾, 서울 서문 밖에서 순교)의 동생, 이승훈(李承薰, 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의 처남, 정하상(丁夏祥, 1839년 순교, 聖人)의 작은 아버지이다./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신유박해(1801) 때 천주교 신자로서 강진에 유배되어 19년 간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 많은 저서를 내었던 분이다./ 당시 나주 정씨의 집단 마을은 용문면 성현리 복천(福泉) 마을에 나주인 정윤우(丁胤祐, 1539-1605, 승지, 병조참의)가 정착하여 현손 달도(達燾, <疑禮通解>의 저자), 7세손 지복(志復, 都事), 지유(志有, 生員) 등 대대로 살고 있다./ 호명면 백송리 선몽대에 다산 정약용의 선조(先祖)인 정사우(丁士優)의 차운시(次韻詩)가 있는데, "경건히 벽 위에 있는 운으로 차운하여 선몽대 주인에게 드리고 겸하여 자리 위에 있는 여러 분에게 보이다// 물속에 있는 신선의 집과 같아 거울처럼 허명한데..."라고 하였고, 상기 <여유당전서>에 정약용이 쓴 '선몽대기'가 있다.(醴泉郡廳 홈페이지 2001-7-10)

 

  반학정(여름날 못가 정자에서 지은 절구[夏日池亭絶句] 반학정(伴鶴亭)은 예천(醴泉) 정당(政堂)의 동쪽에 있다) [古文獻] : 제작자 : 정약용/ 날짜 : 2005년 02월 07일/ 원문형태 : DOC/ 출처 : 민족문화추진회(國家知識情報統合檢索시스템 2005)

 

  ◆ 예천소방서, 9일 예천문화회관에서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을 개최함. 이날 행안부장관 표창(안상대, 박성훈), 소방청장 표창(남종섭. 김성권, 김명자. 권석화, 신정식), 경북도지사 표창(강호성 등 17명) 등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소방서(예천소방서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 개최! : 안상대, 박성훈씨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기사] : 함께 만든 119, 함께 누릴 안전 한국!!!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행사를 통해 119소방의 자긍심과 위상을 드높이고 군민 안전문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해 예천소방서가 주최한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이 2021년 11월 9일 오전 10시 예천문화회관에서 김학동 군수를 비롯한 내빈과 소방서 임직원 및 의용소방대원, 유공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 개최됐다. 이날 예천소방서 안상대, 용궁의소대 박성훈 대원이 행안부장관 표창, 예천소방서 남종섭.김성권씨와 호명여성대 김명자씨, 소방안전협의회 권석화, 소방안전관리자 신정식씨가 소방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강호성씨를 비롯한 17명이 경북도지사 표창, 예천남성대 안두엽씨 등 3명이 국회의원 표창, 엄윤배씨 등 31명이 예천소방서장 표창, 예천소방서 김유정 대원 등 18명이 군수 표창, 보문남성대 김종극씨 등 6명이 군의장 표창 등을 수상했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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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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