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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624 : 방산재..방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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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자형 방산재는 담장이 없기 때문에 사방으로 열려 있다. 방산재 배면과 우측은 텃밭이 있고, 정면과 좌측은 넓은 마당과 최근 신축한 살림집이 있다. ‘-’자형 재실과 ‘ㄷ'자형 주사의 연결부분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하도록 두 짝 널판문을 달아 놓았다. ’ㄷ'자형 주사는 2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온돌방이 있으며, 이들 실 전면으로 아궁이가 있는데, 우측은 부엌간에 아궁이를 꾸몄지만, 좌측 온돌방의 아궁이는 박공면 아래 대문간에 있다. 우측 부엌간 아래에는 빈지널문을 달은 곡식창고가 있다. 대청은 후면에 두 짝 널판문을 달았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 쪽과 좌우측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주사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기단 위 주초는 자연석주초이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보아지와 장혀, 보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삼량이며, 지붕은 한식기와을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인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지붕은 모서리부분에 추녀를 걸지 않고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면 지붕은 일부분 무너지고 있어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자형 재실은 정면 2칸, 측면 2칸 건물로,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후면에 온돌방과 마루를 꾸며 놓았다. 전면과 측면의 마루는 기둥 바깥으로 마루 끝을 확장하고 평난간을 둘렀 다. 온돌방은 툇마루에 두 짝 여닫이문을, 마루간 쪽에 외여닫이창과 두 짝 여닫이 들문을, 대문 쪽에 외여닫이문 2개를 달았다. 마루간은 후면과 전면, 측면에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았다. 아궁이는 전면 마루 밑에 있다. 방산재 재실의 기단은 자연석과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기단 위 주초는 자연석주초이다. 툇마루 밑의 기둥은 원형이며, 누마루의 기둥도 원기둥이다. 전면의 원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으며, 주간은 화반과 소로를 끼워 장식했다. 좌우측면과 후면 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벽면은 개보수를 하면서 시멘트모르탈로 미장했고, 앙토는 원래 모습대로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방산재는 변형된 모습이 거의 없지만 문중에서 제대로 유지관리를 하지 않아 붕괴가 진행 중이다. 따라서 방산재는 그에 적합한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보존 및 활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적 가치가 지속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331-333쪽)
방산정사(芳山精舍) [祠堂] : 감천면 돈산리 산골의 강당(講堂) 남쪽에 있는 정사로, 1743년에 한양 조씨(趙氏) 문중에서 한양인 회계 조관(檜溪趙貫, 1623-1649, 進士), 죽림 조명한(竹林趙鳴漢, 1615-1675, 進士), 조봉징(趙鳳徵, 進士), 유계 조봉징(幽溪趙鳳徵, 1657-1716, 文科, 都事)의 3대 4위를 추모하여 모셨다. 얼마 후에 산곡 조원익(山谷趙元益, 1688-1778)을 추향(追享)하였다. 다산 권상규(茶山權相圭)의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1954년에 중수하였고, 뒤에 있는 고방산(高芳山)의 이름을 땄다.
방산정사(芳山精舍) [亭子] : 감천면 돈산리 52-1번지(林)에 있는 건물로, 한양인 회계(檜溪) 조관(趙貫)을 비롯한 4세 5위를 제향하기 위하여 1954년에 건립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우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시멘트로 마감한 얕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전면에만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방산정사(芳山精舍) [精舍] : 감천면 돈산리 산동(山洞) 마을에 있는 정사로, 한양인 회계(檜溪) 조관(趙貫), 죽림(竹林) 조명한(趙鳴漢), 진사 조봉휘(趙鳳徽), 유계(幽溪) 조봉징(趙鳳徵), 산곡(山谷) 조원익(趙元益) 등 4세의 세덕사(世德祠)이다. 1743년에 세웠는데, 정면 4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 채산(蔡山) 권상규(權相圭)의 중건기가 있다.(醴泉鄕校誌 2004)
방산정사(醴泉敦山里 芳山精舍) : *위치 :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24(산동길 80-12), *연대 : 1956년 중건, *규모 : ‘-’자형 정자 1채, 사주문 1채/ 방산정사는 산곡(山谷) 마을 입구 근처의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있다. 방산은 마을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주마산(走馬山, 고방산이라고도 함)의 다른 이름이다. 주마산 옆에 반월(半月)인 소월(小月)이 있어 조(趙) 씨가 살기에 적합한 땅이라 여겨 유동(酉洞)에서 이곳으로 한양 조씨들이 이주하였다고 한다. 달릴 ‘주(走)’와 소월인 ‘초(肖)’를 합치면 ‘조(趙)’ 자가 되기 때문에 한양 조씨들의 터전이라고 본 것이다. 방산정사는 한양조씨 추원재(追遠齋)이며, 정사의 좌측편에 사세오위(四世五位)를 모신 별묘가 있기도 하였다. 1743년(영조 19) 후손들이 13세 조관(趙貫, 1623-1649), 14세 조명한(趙鳴漢, 1609-1666), 15세 조봉휘(趙鳳徽), 조봉징(趙鳳徵, 1657-17160, 16세 조원익(趙元益, 1688-1778) 등 4대에 걸친 다섯 분의 조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방산정사의 처마도리에는 ‘芳山精舍’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 문 위에는 ‘芳山精舍記’가 걸려 있다. 정사의 마루에는 ‘追遠齋’라는 현판이 있으며, 상량문은 다음과 같다. ‘龍 檀紀四二八九丙申四月十七日卯時開基五月二十日寅時列礎同日午時立柱同月二十二日子時上樑艮坐太歲成造 龜’라는 상량문이 나아있다. 이로 볼 때 1956년 중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세오위(四世五位)들은 2009년에 새로 건립한 명덕사(明德祠)로 옮겨 모시고 있다. 제일은 예전에 음력 3월 5일었으나 현재는 양력 4월 첫째 주 일요일이며. 관리는 문중에서 한다. 방산정사가 있는 돈산리는 예처읍과 감천면, 영주 장수면을 연결하는 충효로에서 서측으로 난 유리의 유동길과 돈산리의 산동길을 따라 접근한다. 산동길은 마을 앞에서 마을 중심과 좌우 외곽의 세 길로 갈라져 가옥들 앞을 지난다.
병산정사는 접근은 세 길 중 북측 외곽 길을 따라 접근하며, 이 외곽 길을 따라 하천이 흐르고 있다. 병산정사는 이 외곽 길보다 낮은 곳에 터를 마려하고, ‘-’자형 정자 1채, 사주문 1채가 서남향을 하고 있다. 방산정사는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다. 출입으 좌측 담장의 앞부분에 있는 사주문을 이용하고 있다. 사주문 바로 앞에는 이웃집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콘크리트 포장의 넓은 마당이 있다. 정면 담장 너머에는 콘크리트 포장을 한 외곽길이 지나고 있으며, 길 너머에는 하천과 논이 있다. 배면과 우측은 산을 바로 면하고 있다. 사주문은 기계 가공한 사각형의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와 지붕을 받고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방산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자형의 누정 건축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중앙의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중장의 마루칸은 정면 툇마루 쪽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후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 쪽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좌우측 벽에도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 또한 좌우 온돌방은 툇마루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을 달아 전면을 내다보도록 했다. 좌우 온동방의 아궁이는 전면 툇마루 아래 기단에 있었는데, 현재는 막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좌측 온돌방은 후면에 벽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산정사의 마당 바닥과 기단 및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기단 위 주초는 자연석이다. 지궁은 전면 툇기둥만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다. 전면 툇기둥 싱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으며, 나머지 좌우측과 후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좌우 온돌방의 천정은 고미반자로 마감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방산정사는 변경 또는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지만 주변 누정건축물과 연계한 효율적 활용 및 유지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방산정사는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활용을 한다면 인문적 건축적 가치가 놓아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48-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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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