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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655 : 백담집,,,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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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栢潭集) [冊] : 1670년에 간행된 백담 구봉령(具鳳齡)의 저서로,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편집 발행한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 1) ‘죽령 강령대. 별주수 배여우 예천수 이준수(竹嶺剛苓臺別主守裵汝友醴泉守李俊秀)’ 2) ‘예천 성남 계변 유유정. 여승체명자서환, 주수유중정래송(醴泉城南溪邊有柳亭. 余承遞命自西還, 主守柳仲精來送)’, 3) ’차집승정 십영정 재예천노포. 안상사증송지소축 상사내외조모지계이량오(次集勝亭十詠亭 在醴泉蘆浦. 安上舍承宗之所築. 上舍乃外祖母之季姨良奧)‘, 4) ’제선몽대. 경차퇴계선생운. 선생질자굉소축. 재예천사천상(題仙夢臺. 敬次退溪先生韻. 先生姪子宏所築, 在醴泉沙川上)‘이 있다.
백담집 : 過龍宮縣。次軒韻。寄姜仲潤。 [한국문집총간-백담집(栢潭集)]/ 구봉령 저 | 한국고전번역원/ 용궁현(龍宮縣)에 대한 KRPia 한국의 지식콘텐츠역사자료이다.//
백담집(栢潭集) : 過龍宮縣。次軒韻。寄姜仲潤。/ 상위서지: 栢潭集 > 栢潭先生文集卷之四 > 七言律詩/ 저자: 구봉령(具鳳齡)/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栢潭先生文集卷之四/ 七言律詩/ 過龍宮縣。次軒韻。寄姜仲潤。/ 客路黃塵兩載間。狂馳那得一生閑。今朝曉霧龍溪水。昨夜春雲鳥嶺山。倦倚小欄愁日暮。醉臨疏?愛禽還。催裝不敢要君話。病?前途苦險艱。//
백담집(栢潭集) : 龍宮宰金天民農詩卷。次首韻。/ 상위서지: 栢潭集 > 栢潭先生續集卷之三 > 七言律詩/ 저자: 구봉령(具鳳齡)/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栢潭先生續集卷之三/ 七言律詩/ 龍宮宰金天民農詩卷。次首韻。/ 俱是迂?一境間。東西分占兩靑山。栽松徑裏雲霞古。種藥溪邊日月閒。快眼脫塵吟晃朗。靜心臨水聽潺湲。何時可復尋前樂。林下從容共解顔//
백동재 : →백동지산
백동연죽장(白銅煙竹匠) [工藝技術] : 예천 등지에서 만들어지는 담뱃대로, 중요무형문화재 65호(1980.11.17 指定)이다.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하며, 백동연죽은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말한다.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백동연죽장이라고 한다.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후 일본을 통해 담배가 전래되면서라고 전해지며, 그래서인지 대일무역의 중심지였던 동래가 전통적인 명산지이다. 담뱃대의 구조는 입에 물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물부리와 담배를 담아 태우는 대꼬바리 그리고 그것을 잇는 가는 대나무 설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꼬바리는 열을 받는데다가 구조상 파손되기 쉬워서 구리, 놋쇠, 백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다. 간혹 사기제품도 볼 수 있으나 극히 드문 예이다. 물부리는 쇠붙이에 한하지 않고 옥(玉), 상아, 쇠뿔 등 비교적 여러 가지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이다. 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무늬가 없는 백동연죽은 민죽, 무늬가 예쁜 것은 별죽․꽃대라 부른다. 별죽은 재료에 따라 은물죽, 오동죽이라 한다. 백동연죽을 만드는 과정은 제일 먼저 백동을 만드는데 동 58%, 니켈 37%, 아연 5%의 비율로 합금한다. 니켈의 함류량이 많으면 백색이 나타난다. 합금한 금속들을 두드려 매우 얇게 만들고, 무늬를 넣어 모든 부분을 땜질하여 만드는데 금․은세공과 같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연죽을 제작하는 장인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연죽은 동래의 파란장식 연죽과 금․은으로 새긴 담뱃대, 그리고 경주․김천․영해․울산․예천 등에서 만들어진 것이 유명하며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전북 남원과 경기도 안성지방이다. 황영보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백동지산, 백동재, 백운산(白雲山) [山] : 용궁면 가야리(佳野里) 개이 뒤에 있는 산으로, 산꼭대기의 흙이 흰 눈과 같다. 옛날 이 산에 참나무가 많았다.
백두대간 [山] : 제16구간(벌재-문봉재-저수재-뱀재-묘적봉-죽령)이 예천을 지난다. 즉 97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벌재와 5번 국도가 지나가는 죽령 사이의 백두대간은 문봉재(1,074m)와 1,108m봉, 1,025m봉, 묘적봉(1,148m)과 1170m봉, 그리고 도솔봉(1,314m) 등 해발 1,000m 대의 고개와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어 당일 산행으로는 결코 만만찮은 구간이다. 저수재는 교통이 편리하고, 식수와 음식은 고갯마루 부근의 휴게소를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 묘적령에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있고, 도솔봉 직전 1,170m봉에는 영주시 풍기읍 사동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둘 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단 산행을 시작하면 죽령까지 주파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간에 1박을 할 때는 저수재에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제31소구간] : 제16구간 중에서 벌재-문봉재-저수재를 제31소구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서 예천군과 문경시 경계를 거쳐 문경시관내로 뻗어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큰 산을 하나 두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봉산이다.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사람들은 이 운봉산을 '문봉재'라고 부르고 있다. 1 : 50,000 지형도에도 '문봉재'라 표기되어 있다. 저수재와 벌재 사이에 있는 문봉재에서 산줄기 한 가닥은 북쪽으로 뻗어 수리봉과 신성봉, 그리고 단양팔경 중 상·중·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을 솟구치고 있고, 산 아래 배나무골, 호박골, 세작골, 성골을 두고 있다. 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다. 석항은 '돌목'이라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예쁜 순 우리 말 이름이다. 벌재든 저수재이든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문봉재 산행을 할 수 있다. 975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동로면을 거쳐 고갯길을 오르면 벌재에 다다른다. 식수는 고갯마루 부근의 샘에서 구해야 한다. 여기서 왼쪽(서쪽)으로 가면 황장산(1,077m)를 거쳐 이화령으로 이어지고, 오른쪽(동쪽)으로 가면 죽령을 향하게 된다. 벌재고개마루에서 남쪽 동로면 소재지 방향으로 100m쯤 내려가면 농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0m 쯤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안내표지판을 따르면 대간 주릉에 선다. 방화선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길을 타고 남동쪽으로 30분쯤 오른 다음 다시 15분쯤 내려서면 옛날 고갯길이 확실한데 이 곳을 돌목재라 부른다. 여기서 참나무 숲길과 화강암 바윗길을 따라 1시간쯤 오르면 1,000m봉 위에 닿는다. 오른쪽 석항리 쪽으로 방향을 틀면 호박골, 투구봉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 해발 1,000m가 넘은 능선을 따라 30분쯤 가면 전망이 탁 트인 곳을 만난 다음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이 곳이 이 구간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다. 여기서부터 충북쪽으로 보이는 단양목장을 왼쪽에 두고 계속 가야하는데 고개를 하나 지나면 다시 옛날고개를 만난다. 돌목 사람들이 저수재라 부르는 곳이다. 여기서 다시 15분쯤 오르면 묘가 하나 있다. 이 지점이 문경시와 예천군의 경계로 15분쯤 내려서면 포장도로가 허리를 가로지른 저수재이다. 저수재에 저수휴게소와 숙식할 수 있는 휴게소가 있다.(디지틀朝鮮, 인터넷 Lyco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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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