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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695 : 백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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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적 명형국지(名形局地) 상징 미학 : 백송리는 선비 배출의 염원을 담은 문필봉의 건지산, 자손 다산의 소망을 담은 알봉의 난산, 그리고 ‘유선즉명’의 꿈을 현실적으로 구현한 우암 선조의 상징인 우암산 등,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이름 하나하나마다 유교 관념적 상징 미학을 담고 있다. 어디 산명(山名) 미학뿐인가. 그들 산의 품 안에 자리한 마을 터와 묘터, 그리고 정자 터는 주변 자연 지세의 생김새를 유효적절하게 반영한 제각각의 다양하면서도 빼어난 명형국지 이름으로 또 다른 풍수 관념적 상징 미학을 드러내 주고 있다.
풍수 물형론[형국론]은 정기 가득한 산천의 생김새를 사람이나 동식물, 생활도구 등에 비유해 이해하는 술법이다. 땅의 정기를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산천의 겉모습과 땅속 정기가 서로 상응한다는 전제하에 그 같은 유비법(類比法)을 사용하는 것이다. 형국론은 하나의 산천지세를 놓고도 보는 사람마다 물형을 다르게 말할 수 있다는 흠이 있다. 그러나 난해한 풍수 이론을 넘어 누구나 거시적 안목으로 어떤 지형의 전체적 윤곽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도 있다. 백송리의 물형론은 세 가지의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는 하나의 큰 명구(名區) 안에서 마을 터는 마을 터대로, 묘 터는 묘 터대로, 정자 터는 정자 터대로 제각각 독특한 명형국지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들 명형국지를 품은 산과 산 간에 성립하는 상생(相生) 또는 상극(相剋) 관계에 대한 음양오행론적 상징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들 세 입지 공간이 지닌 인문 미학의 세계를 한 인간의 생애주기(life cycle) 관점에서 통찰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나라 안에서 백송리 만큼 풍수적으로 다양하면서도 훌륭한 ‘기호의 바다’를 갖춘 마을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산수자연이 빼어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명승 제19호인 ‘선몽대’를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진 마을과 논밭은 거의 선경에 가까운 풍광을 연출한다. ‘기(氣)의 바다’ 또한 이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것이다. 백송리 마을 터는 ‘연소형(燕巢形)’의 길지로 알려져 있다. 연소형국은 지붕 처마 밑에 들어서 있는 제비집 같은 지세다. 산 정상 바로 밑의 두 줄기 지맥 사이 비좁은 골짝에 돌 축대를 쌓아 지어 놓은 자그마한 암자가 그 좋은 예다. 백송리의 경우는 마을 터가 산기슭의 다소 낮은 저지대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四合周顧] 둥지 속 같은 안온한 느낌을 준다. 제비나 제비 둥지는 왕성한 가운을 상징한다. 마을 앞 난산에 있는 입향조 부부와 우암 선생의 묘 터는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 지세의 사두혈(蛇頭穴)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형국은 뱀이 먹이인 개구리를 뒤쫓는 형세를 일컫는다. 뱀 지형의 머리 부분이 혈처(穴處)가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 세 분묘가 역장(逆葬:후손 묘가 더 높은 곳에 위치)으로 조성돼 있다. 뱀의 입 부위에 해당하는 난산 어귀에 속칭 ‘개구리 바위’라는 것이 있어서 비교적 생사축와형 터의 구비 조건을 잘 갖춘 곳으로 평가된다. 내성천변의 선몽대 터는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 터로 알려져 있다. ‘평사낙안’은 기러기가 모래톱에 내려 앉아 있는 형상으로서, 중국 산수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나오는 소상 땅의 여덟 가지 승경(勝景) 중의 하나이다. 흰 모래와 비단물결이 아름다운 선몽대 앞 내성천 풍광이 마치 기러기가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듯한 소상 땅의 ‘평사낙안’을 쏙 빼닮아서 그런 형국명이 붙여졌을 법하다.
행소리의 주된 인문경관 요소인 마을 터, 입향조 묘 터, 정자 터의 풍수 물형론적 입지 특성이 제각기 그러하다면 그것을 품고 있는 자연경관 요소들 간의 물형론적 상관관계의 미학은 과연 어떠할까. 제비[燕]형 주산[主山:건지산]과 뱀[蛇]형 안산[案山:난산]의 관계부터 한 번 알아보자. 제비와 뱀은 상극 관계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한 마을이 하나의 형국으로만 되어 있는 것을 그리 좋게 여기지 않는다. 응봉(鷹峰:매봉) 아래의 복치혈(伏雉穴:꿩이 엎드려 있는 형상)처럼 서로 상극이 되는 물형이 함께 있으면 잡아먹으려 하든 숨으려 하든 서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왕성한 땅기운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백송리의 경우는 마을 뒷산 형상을 제비로 보든 아니면 독수리로 보든 그것이 안산을 이루는 뱀 형상의 난산과 상극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를테면 뱀 형상의 난산이 눈앞의 개구리바위를 넘어 마을 쪽을 엿보면 제비둥지 터가 긴장하는 것이고, 아니면 독수리 형상의 마을 뒷산[건지산]이 뱀을 잡아먹으려고 마을 앞산[남산등] 너머를 엿보면 입향조 묘가 있는 난산이 긴장을 하는 것이다. 상극의 관계를 역으로 명당 상징화할 수 있는 이 같은 불멸의 명지(明地)를 풍수에서는 복후지지(福厚之地)라고 한다. 그런데 마을 북쪽으로 보이는 삼봉산과 건지산 문필봉의 관계는 이와는 정반대로 상호보완적인 상생 관계를 이룬다. 삼봉산은 양반들이 머리에 쓴 정자관을 상징하는데, 일명 감투봉 또는 삼태봉이라고도 한다. 문필봉은 학문적인 노력과 선비 배출을 상징한다. 감투를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니까 문필봉은 삼태봉[삼봉산]의 필요조건이 된다. 이 두 명산에 대한 주민들의 환경심리학적인 믿음이 백송리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는 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난산에 올라보면 입향조 분묘 세 기(基)가 나란히 자신들이 거주했던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남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간 한 작은 지맥이 자신의 뿌리가 되는 건지산을 돌아다보고 있는 형상인데, 이것을 풍수에서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터라고 한다. 유교적 인문학으로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보본반시(報本反始)’가 ‘회룡고조’에 상응하는 말인데, ‘인간의 근본인 천지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하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같이 백송리의 풍수 물형론적 인문 미학의 상징 세계는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진성이씨 백송파 입향조 부부가 낳은 ‘대쪽 같은 선비’ 우암 이열도는 건지산 밑 백송리에서 태어나 내성천 변의 선몽대에서 인격을 도야하며 살다가 난산에 묻혔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연소형 명당이고, 수양한 곳은 평사낙안형 명당이며, 영면해 있는 곳은 생사축와형의 사두혈 명당이다. 필자가 ‘생애주기 풍수의 명당 삼박자’라고 일컫는 생·활·사(生活死) 또는 거·휴·사(居休死) 풍수 공간이 모두 명당으로 일관돼 있다. 더욱이 그 세 명소는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며 가까운 거리에 균형 있게 입지해 있다. 풍수에 관심 있는 이들은 백송리 종택과 선몽대, 그리고 난산의 우암 선생 묘역을 찾아 ‘인생 풍수의 삼박자 미학’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그 나름 의미가 있을 듯싶다.
◆마을 상징 브랜드의 변용(變容) 미학 : 백송리[행소리]는 진성이씨 백송파의 5백여 년 세거지이다. 한때는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60여 가구로 줄어들었다. 이 땅 안 여느 농촌처럼 이 마을도 20세기 후반부터 쭉 이촌향도 현상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백송리는 온 마을이 숲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여느 농촌처럼 기와집과 현대식 양옥이 섞여 있다. 예전에는 마을 안에서도 전망이 가장 좋은 혈(穴) 자리에 터 잡은 종택이 중심공간이었겠지만, 지금은 저지대의 동네 어귀에 있는 마을회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이 정녕 최상의 미학이라 한다면 백송리의 그런 미학은 마을 상징 브랜드의 변용(變容) 과정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백송리의 최고 상징 브랜드는 단연 ‘선몽대’였다.
진성이씨 백송파 선비촌[양반촌]을 상징하는 ‘행소리’나 ‘건지산’ 등도 물론 브랜드 역할을 했겠지만, 특히 ‘선몽대’는 전국의 유학자들도 알아준 굴지의 브랜드였다. 당시에는 많은 유자(儒者)들이 ‘선비 정신’을 기리는 일종의 유교적 순례 대상지로서 선몽대를 찾았다. 지금은 명승 제19호라는 브랜드명(名)으로서 주로 관광 명소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백송리의 마을 브랜드는 ‘박사마을’과 ‘건강장수마을’이다. ‘선몽대마을’이라는 이름만큼 강한 이미지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태를 잘 반영한 브랜드명이라고 생각된다. 그 두 브랜드는 백송리의 자연 환경 조건 및 역사 인문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송리는 너른 들을 끼고 있지 않다. 농경문화 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찍[조선조]부터 건지산 문필봉과 삼봉산을 ‘인물 배출’의 상징물로 삼아 면학에 몰두하는 마을 풍속[里風]이 조성되었다. 그런 ‘선비촌’ 면학 환경은 20세기를 지나면서도 계속 이어졌고,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동족촌]이어서 특히 이집 저집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도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대부분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해 입신양명했다고 하는데, 그 작은 마을에서 60여 명에 달하는 박사가 쏟아져 나와, 5백년의 유풍(儒風) 역사를 지닌 마을의 위력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케 한다. 백송리 마을 버스 정류장에 ‘백송리 건강장수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것이 바로 ‘건강하면서도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건강장수마을’ 브랜드 역시 그 근본 바탕이 된 것은 백송리의 자연환경이지만 그곳의 인문환경 또한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송리는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거기에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건강한 먹거리가 보장되어 건강 장수를 위한 자연적 기본 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그러나 장수는 그런 자연적 호조건 하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십여 년 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에 학자들을 파견해 밝혀낸 장수의 ‘인문적 조건’은, ‘각자 방식으로 정서적 안정감과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적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가족과 친구, 이웃 간의 집단적 소속감과 깊고도 끈끈한 우애가 자연스럽게 장수 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백송리는 진성이씨 집성촌이다. 다른 성씨도 몇 집 있지만 온 이웃이 내 일처럼 서로서로 힘을 모아 상부상조하는 삶을 살고 있다. ‘건강장수마을’이라는 브랜드 표지석이 만들어진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백송리는 이 도시문화의 시대에 우리의 뇌리에서 자꾸만 희석돼 가는 옛 고향의 ‘공간 미학’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공간은 ‘의미 진공의 세계’가 아니라 맑은 바람과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기(氣)의 바다’요, 수많은 장소 추억들이 새겨져 있는 ‘기호의 바다’이다. 단풍잎에 변역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는 이 만추에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잠시 벗어나 백송리로 추억여행을 한 번 떠나보자. 그곳에는 우리 한민족 공간 정서의 원형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상징 미학의 세계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 이몽일](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8-10-30)
백송리 : →백송리 마을의 구성, →백송리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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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