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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734 : 백화사...백화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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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사(白華寺와 광대골) [傳說] : ㅇ 위치 : 개포면 신음리 앞산, ㅇ 내용 : 개포면 신음리 앞산 천덕산(天德山-주민들은 白華山이라 부름)의 남록(南麓)에 폐사(廢寺)된 백화사(白華寺)의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전해 내려오는 유래와 전설에 의하면, 백화사 바로 뒷산이 명산(名山)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서 조선 말엽(末葉) 한 세도가(勢道家)가 이곳에 묘터를 잡기 위하여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1km 떨어진 산골(일명 : 광대골)에 빈 상여를 꾸며 놓고 광대놀이를 시켜서 스님들을 이곳으로 유인했다. 광대놀이에 정신을 잃고 세도가의 꾐에 빠져 스님들이 광대골에 이르게 되자, 이 세도가는 절에 스님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백화사 바로 뒷산에 몰래 묘를 썼다. 그 이튿날 난데없는 고목(枯木)나무 한 그루가 절 한복판에 우뚝 섰기에 주지 스님이 지팡이로 건드리자 고목나무가 전부 빈대로 변해 절로 침입하니 스님들은 얼씬도 못하였으며, 그 날 밤 주지스님의 꿈에 석가여래(釋迦如來)께서 나타나 이 곳은 지세(地勢)가 다하여 이제 쇠(衰)하니 새로운 터전을 잡아 줄 테니 백화사를 버리고 지금의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에 자리잡고 있는 장안사(長安寺-주민들은 남산절이라고도 함)로 옮겨가라고 하여 옮겨갔다고 전해진다. ※ 광대골 - 광대놀이를 했던 곳이라 하여 지명이 붙여진 듯 하다. <백화사(白華寺)> : 고려 초에 창건, 19세기 말쯤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정되며 용궁군에서 가장 큰 사찰로 전해온다. 사지(寺址)에는 농지(農地)로 사용된 흔적이 보이나 지금은 잡목(雜木)에 묻힌 오래된 석축지(石築址)가 2~3m 높이로 3개소 있으며, 식생활에 긴요하게 이용했던 방아고(돌호박-디딜방아)가 버려져 있고 무수한 기와 조각과 잡석(雜石) 더미가 산재하고 깨어진 돌학 하나가 샘가에 뒹굴고 있어 폐사(廢寺)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나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군지(郡誌)에는 산상(山上)에 기우단(祈雨壇)이 있었고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는 샘이 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고려(高麗) 때 익재(益齋) 이제현(李濟賢)의 ‘백화선원정당루기(白華禪院政堂樓記)’가 전해 오는데 그에 의하면 동쪽에 정당루(政堂樓), 서쪽에 관공루(觀空樓)라는 큰 누각(樓閣)이 있는 용궁현(龍宮縣)에서 제일가는 대찰(大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開浦面홈페이지 2013)
백화사지(白華寺址) [터] : 개포면 신음리 산61번지(林)에 있는 고려 절터로, 천덕산(天德山) 중록에 있다. 고려시대 창건으로 전해온다. 동서쪽에 두 누각이 있었는데, 동쪽은 정당루(政堂樓), 서쪽은 관공루(觀空樓)라 하였다. 묵암(黙菴) 탄연(坦然) 선사(1069-1158)가 창건하였고, 고려 말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관공루기(觀空樓記)가 있다. 1940년 경 훼철되었고, 절터에는 와편이 산재하고 있으며, 축대 등이 남아있다. 천덕산에 있다 하여 일명 천덕사라고도 한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백화산(白華山), 천덕산(天德山) [山] : 개포면 신음리(新陰里)와 가곡리(佳谷里)에 걸쳐 있는 산(232m)으로, 이 산에는 고려 때 탄연(坦然)이 창건한 천덕사(天德寺, 白華寺)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 또한 이 산의 약수도 유명하다. →천덕산
백화산 : 백화산/ 산, 주소 경북 예천군 개포면 신음리(daum 2017)
백화산 : 재경개포면민회 최승대 회장 및 회원들 고향 발전현장 견학.../ 국비로 개발계획을 용역 중인 가오실공원을 관람했다. 이어 내성천이 내려다보이는 개포면 신음리 소재 백화산을 등반하며 고향 산천의 싱그러움과 대지의 따스함을 함께 했으며 오후에는 용궁.../ 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 예천인터넷뉴..(daum 2017)
백화산 : 백화산/ 백화산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신음리에 위치한 관광,명소.../ www.store114.co.kr/store/detail.asp?seq.. (daum 2017)
백화산 : 인사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 예천군 개포면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황혼기 인생입니다. 들녘에 깔려있는... 내내 건강하시길 빌면서 인사 올립니다. 백화산 작성일 : 2009-05-03 오전 6:03:50/ flowervill.net/etc/greeting.asp?menu_id.. 들꽃마을(daum 2017)
백화산 : 예천의 자랑 4065 : 신미량(2)-신번-신보중-신봉수-신분-신상(1)/ 작성 장병창/ 墓) 백화산(白華山) 선영(先塋) 하(下) 경좌(庚坐)/ 부(父) 신찬선(辛纘先) : 자(字) 계술(季述) 관(官) 가선대부(嘉善大夫) 행(行) 용양위 부사직(副司直)/ 모(母) 정부인 전의이씨(貞夫人 全義.../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 예천군청(daum 2017)
백화산 : 천덕산 백화사(예천)/ 개포면 신음리 앞산인 천덕산(天德山 :주민들은 백화산(白華山)이라고 부른다)의 남쪽 기슭에 폐사된 백화사의 옛 터가 남아있다. 고려 초에 창건되어 번창해온, 용궁현에서 가장 큰 사찰로 추정.../ artkimartkim.cafe24.com/xe/ (daum 2017)
백화산 : 고향이야기---개포면---<각 리(里)의 지명유래>/ 2002.12.02./ 개포장터(開浦場)[장] 섬마에 있는 개포면의 시장. * 느티나무[나무] 새마장등에 있는... 백화사터[白華寺] (터) 백화산에 있는 백화산의 터. 두 누가 있어서 서쪽을.../ cafe.daum.net/yuchon/KI... 유천중학교총..(daum 2017)
백화산 : 고향 조상님 산소 벌초/ 2016.08.31./ 나무를 베는 것으로 벌초를 마무리했다. 일요일은 사촌들 5명 출동하여 개포면 백화산에 있는 고조부 산소에 가서 벌초를 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손과 괭이로 잡초.../ cafe.daum.net/6K5BSG/IX... 병찬 카페(daum 2017)
백화산 : 재경개포면민회 고향 방문/ 2014.07.01./ 용역 중인 가오실공원의 운치를 체험했다. 이어 내성천이 내려다보이는 개포면 신음리 소재 백화산을 등반하며 고향 산천의 싱그러움과 대지의 따스함을 함께 했으며.../ cafe.daum.net/woruddPcj... 재경예천군민..(daum 2017)
백화산 : 재경개포면민회 고향 방문/ 2014.07.01 | 예천뉴스신문사/ 용역 중인 가오실공원의 운치를 체험했다. 이어 내성천이 내려다보이는 개포면 신음리 소재 백화산을 등반하며 고향 산천의 싱그러움과 대지의 따스함을 함께 했으며 오후...(daum 2017)
백화선원 : 백화선원 정당루 기(白華禪院政堂樓記)/ 서명: 東文選/ 저자: 이제현(李齊賢)/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동문선 제69권/ 기(記)/ 백화선원 정당루 기(白華禪院政堂樓記)/ 이제현(李齊賢)/ 연암탄사(然菴坦師)가 정사(精舍)를 용궁군(龍宮郡)의 천덕산(天德山)에 지었다. 두 다락이 있었는데, 서쪽의 것은 관공(觀空)이라 하여 그 무리의 늙은이 중 운수(雲?)라 하는 이가 기문을 지었고, 동쪽의 것은 정당(政堂)이라 하는데, 정당(政堂) 한재상(韓宰相)이 일찍이 남쪽으로 유람하다가 그 위에 올라갔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정당이 돌아간 다음 대사가 부탁하여 나에게 글을 청하여 다락의 영광을 삼으려 하더니, 얼마 후에 대사가 뒤따라 이르렀다./
내가 서로 인사하고 묻기를, “보리(菩提)ㆍ달마(達磨)가 탑을 쌓고 절을 짓는 것을 인공으로 만드는 복이라 하고, 혼자 깨달아 항상 아는 것으로 참 공덕을 삼고, 천자의 지극히 높은 지위로도 여기에 용납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소. 대사는 달마를 스승으로 하면서도 토목의 일에 마음을 써서 집을 웅장하게 짓고 유명한 관원에게 이름을 빌어 구경거리를 사치스럽게 하니, 여기에 또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오.” 하였다./ 대사가 말하기를, “사람이 장차 천리 길을 가려 한다면 게을러서도 이끌 수가 없으니 반쯤 가서 중지하게 되며, 몰라서도 인도할 수가 없으니 지름길로 가게 하여 도달하지 못할 것이오. 내가 보기에 지금 온 세상의 우리 무리들이 도를 배운다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를 얻어 가지면서도 부지중 스스로 방자하여 명예와 이익에 취해버리고 마니, 이것이 반 쯤 가서 그만 두는 게으른 자가 아니겠소. 혹 산림 간에서 떨고 주리면서 마음을 누르고 수련하고 깨닫는 것에 뜻을 돈독히 하나, 관계(款啓)에 희미하고 의혹하여[款啓聽瑩]도 바른 것을 얻지 못하니, 지름길로 가다가 어두운 것이 아니겠소./ 나는 이 때문에 발분하여 모임을 가지고 우리 무리를 규합하여 명예와 이익에 취한 것을 버리고, 산림에서 얼고 굶주림을 면하게 하여 그 게으른 사람을 이끌고, 그 어두운 사람을 인도한다면 우리 스승이 말한 혼자 깨달아 항상 안다는 이치에 반드시 말 없는 중에 통하여 괴로움을 풀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은 장차 우리 스승의 도를 크게 하는 것이지, 짐짓 인공으로 하는 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오./ 저 휘로(暉老)가 배상국(裴相國)에게와 만공(滿公)이 백소부(白少傅)와 서로 주고받으며 문답한 일 같은 것은 산림 간에서 전하여 훌륭한 일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높은 관원에게 혐의를 피하려 하였겠소. 나의 다락 이름이 한공(韓公)으로 하여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예나 이제나 그 이치가 같은 것이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사과하여 그 말을 써서 기문으로 한다. 그 산천의 좋은 경치와 형세의 좋은 것, 처음 경영하고 낙성한 연월(年月)에 대해서는 운수(雲?)가 말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다시 말하지 않는다./ [주D-001]관계(款啓)에 희미하고 의혹하여[款啓聽瑩] :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관계(款啓)는 문견이 적다는 말이고, 청영(聽瑩)은 듣고서 의혹한다는 말이다.//
백화암산(白華岩山) [山] : 상리면 백석리(白石里) 흰돌마을 뒷산으로, 1379년(고려 우왕 5) 어느 도승(道僧)이 이 산 아래에서 암자를 짓고 살면서 주위의 산세가 흰 돌로 되어있으면서도 아름답기가 소금강산(小金剛山)처럼 생겼다고 하였다. 또 산에 흰 돌이 많아 백화암산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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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