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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756:볌 바우...범박골
작성자장병창 @ 2022.03.30 06:07:04

  도청신도시 예천 1,756 : 범바우...범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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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바우, 호암(虎岩), 안마, 부용(芙蓉), 부용암(芙蓉岩) [마을] : 감천면 유2리(酉2里)에 있는 마을로, 1720년경에 김해 김씨와 경주 최씨가 들어와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는데,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가 마치 범이 앉아 있는 것 같이 마을을 내려다 보는 형상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범바우 또는 호암(虎岩)이라 하였고, 또 마을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고 하여 안마라고도 불렀다. 또한 이 마을은 야산으로 막혀있는데, 옛날에 호랑이와 바위가 많다고 하여 범바위 동네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또, 마을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고 하여 안마라고도 불렀다 한다. 20가구 111명(1980)이 살고 있다.

 

  범바우(虎岩) : 酉里 소속으로, 1720년경에 김해 김씨와 경주 최씨가 들어와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다 하는데 마을 뒷산에 있는 마치 범 같이 생긴 큰 바위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범바우 또는 호암이라 하였고, 또 마을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고 하여 안마라고도 불렀다 한다.(甘泉面홈페이지 2013)

 

  범바우 : 거북바위와 동신목(洞神木) -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2012.01.13./ 김해(金海) 김씨(金氏)와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범바우 마을 뒷산에는 범같이 생긴 큰 바위가 마을을 바라본다 하여 범바우(虎岩), 또는.../ blog.naver.com/kcs022/ 잠실아파트 / 잠실에..(daum 2017)

 

  범바우 : 감천면의 전설과 설화/ 2011.06.27./ 최씨(崔氏)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범바우 마을 뒷산에는 범같이 생긴 큰 바위가... 寒天寺(한천사) ㅇ 위치 : 감천면 증거리 184번지(주마산) ㅇ 내용 한천사(寒天.../ cafe.daum.net/backmaya/4Bp9/ 감천중28회 | 댓글 3(daum 2017)

 

  범바우(虎岩) [바위] : 1) 감천면 천향2리 호암산(虎岩山)에 있는 큰 바위로, 1780년 경 이 바위 밑에 있는 굴에서 범이 살았다. 그 동굴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2) 상리면 고항리(古項里) 충복골 중턱에 있는 바위이다. 3) 예천군 노상리(路上里)에 있는 비탈진 바위로, 이 바위에 호랑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젠 거의 보이지 않게 지워져 있다. 이 호랑이의 업적이 너무나 커서 그 공을 기리기 위해서 새겼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예천 지방의 고을 사또가 나라에 올릴 문서가 있었는데, 그 이튿날까지 전하지 못하면 사또의 목은 어명을 어긴 죄로 달아나야만 되었다. 말을 타고 아무리 빨리 가도 이틀은 훨씬 넘게 걸린다. 고을 사또는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형 당할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사또"하며 뛰어 들어와서, "제가 문서를 가지고 내일 아침 출발해서 저녁때까지 상감께 올리겠습니다." 하는 이가 있었다. 사또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서 보니, 그 마을 양반댁에 사는 머슴으로 약간 모자라는 인간으로 소문난 동네의 재롱감인 보잘 것 없는 머슴이었다. "네 이놈! 너가 감히 누굴 놀리느냐? 여봐라! 저 놈의 목을 당장 쳐라"고 사또가 호통을 쳤을 때, 그 모자라는 인간으로 소문난 바보머슴이 "틀림없이 전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만약 전하지 못하면, 그때 목을 쳐도 소원이 없다"라고 하면서 또렷이 말하자, 사또는 믿지 못하면서도 "이왕 죽을 것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하며 승낙 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떠나라"고 하자, 바보머슴은, "지금 출발하면 너무 빠릅니다. 내일 아침 출발해도 저녁때면 다시 여기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장담했다.

 

  그 날 저녁 사또는, 물론 잠도 이루지 못하는데, 바보머슴은 저녁을 평소와 같이 먹고 멍석에 누워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다른 머슴들과 고을 사람들은, "내일이면 죽을 놈이 왠 팔자도 좋다"면서 뺨을 때려도 일어나지도 않고 자고 있었다. 고을 사람들은 불쌍하다면서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 일찍 머슴들이 마당으로 나왔을 때 멍석에 자던 바보머슴이 뻘써 없었다. 깜짝 놀라 사또와 고을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모두들 도망쳤다고 말했다. 이윽고 하루의 해가 저버렸을 때, "사또"하며 뛰어 들어오는 소리에 밖을 보니, 바보머슴이 문서를 전했다며 뛰어 들어오지 않는가! 사또가 믿지 못하여, "어떻게 갔다 왔느냐?"고 물었을 때, 바보머슴은, "예!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인물 좋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 호랑이를 타고 갔다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고을 사람들은, "감히 저놈이 어디라고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죽이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바보머슴은, "그럼 제가 그 호랑이를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숨어서 보아야만 합니다."라고 하면서, 이튿날 지금의 경진 냇가에서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 날 밤 고을 사람들과 사또는, 모두 경진 뒷산에 숨어 있었다. 이윽고 그 이튿날 아침 바보머슴이 경진 냇가 모래사장에 나가서, "범아! 범아!"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어디선가 호랑이 한 마리가 벌떡 뛰어 나오더니, 바보머슴을 보고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도 맞추고 씨름도 하고 장난도 쳤다. 뒷산에서 보고 있던 고을 사람들과 사또는 놀라서 꿈인 것만 같았다. 고을로 돌아온 사또는 생명의 은인인 바보머슴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고, 그 호랑이의 업적을 길이 빛내기 위해서 바위에 그 호랑이를 새겨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보머슴을 놀리던 고을 사람들도 바보머슴을 달리 대우해 주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바위의 호랑이가 거의 다 지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고려 후기 임지한 장군의 호랑이 얘기가 와전된 것이다. 4) 하리면 은산리(殷山里) 장고개의 하룻쉬쉴바우 근처에 있는 바위로, 범이 살았다. 또한 매우 크고 범처럼 생겼다. 이 바위 밑에는 두 개의 굴이 있다. [傳說] : 이 굴에 오솔이가 살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잡으려고 굴에 불을 피웠는데, 그 연기가 산 너머에 있는 보곡의 앞산으로 나왔다고 한다. 5) 하리면 율곡리(栗谷里) 큰밤실 뒷산에 있는 바위로, 옛날 이곳에 호랑이가 살았다.

 

  범 바우, 부엉방우, 벙바우, 부용암(芙蓉岩) [바위] : 감천면 유리(酉里) 범바우 마을 옆에 있는 바위로, 부엉이가 새끼를 치므로 벙바우, 변하여 범바우, 부용암(芙蓉岩), 또는 부엉방우라고 한다. 높이 5m, 너비 4m이다.

 

  범바우골 [골] : 하리면 오류리(五柳里) 샛터 뒷산에 있는 큰 골짜기로, 산짐승들이 많이 모여 그 중 호랑이는 큰 바위 밑에 굴을 파고 항상 떠나지 않고 있어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한다. 그 주변을 범바위골이라고 한다.

 

  범바우골, 범팃골 [골] : 상리면 사곡리(沙谷里) 배바위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범바위가 있다.

  범바우산(虎岩山) [山] : 감천면 천향리(泉香里) 오향 뒤에 있는 산으로, 높이 200m이다. 범바우가 있다.

  범바우와 부용(芙蓉) [傳說] : 감천면 유2리(酉二里) 범바우마을을 부용(芙蓉)마을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옛날 겨우 초가집이 띠엄띠엄 있을 뿐이었다. 이때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뒷산 바위에 올라가서 달이 뜨는 구경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보름날 마을사람들은 달을 구경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 중에는 부용이라는 처녀만이 혼자 달바위에 남아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부용이..."라고 하면서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청년이 있었다. 부용이는 너무나 놀라 뒤로 넘어지려 하였다. 이 때 그 청년은 부용이를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 날 밤 둘은 헤어질 줄 모르고 놀다가 새벽녘에 헤어졌다. 부용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용이는 이미 그 청년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뒤 부용이는 그 청년을 밤이 되면 찾았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청년은 뒷산에 살고 있는 호랑이였던 것이다. 호랑이는 밤이면 부용이네 집 뒤안에서 부용이의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부용이를 만났다. 그 날 부용이는 호랑이 청년에게 끌어 안기어 한없이 울었다. 그러나 호랑이 총각은 부용이에게 다음부터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부용이는 매일 밤 그 자리에 와서 울면서 그 청년을 찾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호랑이 청년은 부용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슬퍼하다가 그만 몸이 굳어 버렸다. 그것이 바위로 변해서 사람들이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부용이는 그 후 출가하지도 않고 계속 호랑이 청년과 마음속으로나마 사랑을 속삭이면서 한 평생을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 부용이의 사랑을 기특히 여겨 이 마을 이름을 '부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요사이는 범바위만 남고, 마을 이름도, 부용이네 집도, 찾아볼 수 없으며, 현재 이 동네는 옛날 부용이네 밭이었다고 전하여질 뿐이다.

 

  범박골 [山] : 보문면 우래1리(友來一里) 물래실에 있는 산이다. [傳說] : 옛날 이 산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는데,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사람이고 가축이고 닥치는 대로 해치고는 그 산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동네 청년들이 견디다 못해 마을 어귀에서 호랑이를 기다렸다가 횃불을 밝히고, 징 그리고 북을 치면서 호랑이를 산으로 매일 쫓았다. 청년들은 이제는 그 호랑이가 혼이 나서 마을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마을 어귀에 지키지 않게 되자, 그 호랑이는 다시 마을로 내려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청년들은 화가 나서 손에 농기구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호랑이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범박골 산에 불을 질렀다. 그 호랑이가 타 죽었는지 도망을 갔는지 그 후론 아무 소식이 없어 평화스러운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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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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