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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787 : 별곡교회...별동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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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곡교회 : 2010년 2월 신규지원 및 종료교회 명단/ 경북 상주시 공성면 용실1리 584, 경북/별곡교회 목)서준호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 725-1, 경기/일죽제일교회.../ church-love.fgtv.com/notice/view.asp?nu.. (daum 2017)
별곡교회 : 샘플 요망합니다./ 서준호 정기구독을 하고 싶습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 725-1 별곡교회 서준호 목사입니다./ mokhoi.co.kr/board_intra/uboard.asp?id=.. 목회닷컴(daum 2017)
별곡교회 : 경상북도 검색 백송교회 이재곤 목사 757-880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135, 밝은빛교회 신응진 목사 757-800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 107-1, 백합교회 순병기 목사 757-800 경상... 정용권 목사 757-800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서본2리 295, 별곡교회 김성택 목사 757-860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청곡1동 725, 보문교회 [미확정] 통 합 목사 757-810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www.kcm.kr/search_address.php?page=54&k.. 한국컴퓨터선..(daum 2017)
별곡교회 : 별곡교회/ 김성택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곡1동 702/ amen.kr/bbs/board.php?bo_table=church&w.. (daum 2017)
별곡교회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곡길 97-2 /757-863 주소: [경안] 교회명: 별곡교회(자음:ㅂ) 서준호 담임목사 나달식 전남 보성군 벌교읍 조정래길 54-1 / 546-... 경남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524 / www.kpmcal.org/sub/sub03_01.php?mNum=3&.. (daum 2017)
별곡동 동제(別谷洞洞祭) [祭祀] : 풍양면 청곡1리(靑谷一里)에서 행한 제사로, 각종 질병이 없고, 농사가 잘 되고 복된 마을이 되기를 기원한다. 1690년경부터 매년 음력 정월 15일 자정에 별곡(別谷) 앞골매기석(작은 自然石)과 뒤골매기석(좀 큰 自然石)에서 일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동제를 지낸다. 약 600평의 동소유(洞所有) 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포(脯), 대추, 밤, 곶감, 배, 국, 밥, 백편, 청무 등을 제수(祭需)로 준비한다. 동장 내외가 제관(祭官)과 축관(祝官), 집사(執事)가 되어 모든 준비를 하고, 제관은 12일부터 3일 간 문전에 금색을 하고 출입을 삼가고, 매일 야간에 낙동강에 가서 목욕을 한다. 동제를 전후에는 동민들은 고성을 내지 않고, 평온을 유지해야 하고, 제사 후 아침에는 전 동민이 모여서 음복하고 대동회(大洞會)로써 동리의 일들을 결정한다.
별곡리(別谷里) [터] : 임진왜란(1592) 직후에 용궁현 남하면(龍宮縣南下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1857년에 용궁현 남하면(龍宮縣南下面) 별곡리(別谷里), 청감리(靑甘里), 우곡리(牛谷里)로 나뉘어졌다. 1895년(고종 32) 용궁군 남하면 별곡리(龍宮郡南下面別谷里)가 되었고, 1914 년에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醴泉郡豊壤面靑谷里) 별곡(別谷, 별실)이 되었다.(龍宮縣邑誌 1780, 竺山勝覽 1934)
별곡지(別谷池) [못] : 풍양면 청곡리 별곡(別谷)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30,000ton이다.
별급문기(別給文記) [古文書] : 아버지가 자식 중구(重邱)에게 토지와 기타 재산을 허여한 문서로, 1919년에 발행되었다. 촬영한 마이크로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별급문기 : 한국사료총서/ 46집 日本所在韓國古文書(한국사료총서 제46집) > 京都大學所藏韓國古文書 - 一般古文書類 > 別給文記 > (別給文記 二) 연대 : 己卯, 번호 : 一三四一/ 奉常寺 貢案付 嶺南 咸陽 元脯五條七寸 復脯一條九寸七分 醴泉 元脯一貼二條六寸四分 復脯四條三寸六分 安東 元脯一條一寸七分 加脯八寸三分 咸昌 元脯一條七寸三分四里 加脯五寸九分八里七戶 梁山 元脯一條三寸二分 加脯四寸五分八里四戶 彦陽 元脯七寸四分三里 加脯二寸五分七里 金海 元脯九條 咸陽 淸蜜一斗二升三合三勺三里 湖南 益山 元脯六條一寸九分三里三戶 復脯二條一寸四分 井邑 元脯五條 求禮 黃蜜二斤八兩 湖西 溫陽 復脯三 條癸酉加定二十六石七斗五升丁酉加定二十五石七斗九升都合價役米合九十六石十一斗七升五合五勺/ 濟用監 貢案付 嶺南 三嘉 正布十疋十七尺五寸 醴泉 七細二疋 湖南 昌平 正布十六疋三尺 金溝 正布三疋十七尺五寸 綾州 正布一疋七尺二寸五分 茂朱 正布二疋四尺 九苧十七尺五寸 湖西 報恩 正布八疋 公州 正布二疋三十尺九寸 文義 正布五疋二十三尺一寸五分 大興 正布一疋二十一尺二寸五分 舒川 白紬十三尺 九苧十七尺五寸 天安 九苧一疋 唐津 九苧十七尺五寸 都合價役米七十六石十三斗九升四合七勺(http://db.history.go.kr/ 2014)
별꽃 [植物] : 예천군의 들, 길가에서 월동하는 질이 연한 풀로, 학명은 Stellaria media Cyrillus이고, 석죽과에 속한다. 꽃이 번갈아 핀다.
별노래 : →별요
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 [冊] : 보문면 미호리 60번지 별동선생문집발간위원회에서 편집한 별동 윤상(別洞尹祥)의 문집으로, 1987년 12월 20일에 서울 아세아문화사에서 펴내었다. 가로 106cm, 세로 23cm, 283쪽이다.
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 1) [冊] : 예천읍 서본리 향사당골(鄕射堂洞) 출신인 별동 윤상(尹祥, 1373-1455, 成均館 大司成)의 문집으로, 455쪽, 23cm, 서울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에서 1993년에 발행한 <한국역대문집총서> 36권에 <송은선생문집 1)>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국학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다.
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 續附錄) [冊] : 예천읍 서본1리 향사당골(鄕射堂洞) 출신인 별동 윤상(尹祥, 1661-1731, 成均館 大司成)의 문집으로, 2책, 목판본(後刷), 29.4x19.7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17x13.8cm, 10행(行) 18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은 1478년 김종직(金宗直), 후서(後敍)는 1745년 이광정(李光庭), 속집 발문(續集跋文)은 경자년(庚子年)에 유도헌(柳道獻)이 썼다. 아들 윤계은(尹季殷, 태종 때)과 윤우진(尹友進, 1849-1902, 보문 미호인) 등이 편집하여 1890년(고종 27)에 발행하였다. 목차는, 책건(冊乾)에 서문, 목록, 권1, 권2, 권3, 후서(後敍, 149쪽), 책곤(冊坤)에 목록, 권1, 권2, 발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별동선생문집(國譯 別洞先生文集) [冊] : 조선 세종 때의 문신 별동(別洞) 윤상(尹祥)의 시문집으로, 218 (65)쪽, 23cm, 1987년 12월 20일에 별동선생문집발간위원회에서 편집 간행, 서울 아세아문화사에서 출판하였다. [解題] : 현재 별동집은 전 5권 2책으로 되어있는 바, 그 편찬 간행에 관한 경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별동집은 원래 저자 별동 선생의 아들인 전 군위현감(前軍威縣監) 계은(季殷)이 선생의 유문(遺文)을 수습하여 편집하고, 그의 동년 진사인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하여 이루어졌다. 이는 1487년(성종 18)의 일로서 이 때는 저자의 유문 2권만으로 이루어졌고, 또한 아직은 이를 간행하기까지는 못하였던 듯하다. 이 뒤 200여 년이 지나 1745년(영조 21)에 저자의 10세손 삼징(三徵)이 연보, 묘갈명, 문견록 등을 묶어 부록을 만들고, 다시 편찬한 다음 여기에 이광정(李光庭)의 후서(後敍)를 붙혀 전 3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또 1900년(광무 4)에는 저자의 후손 우진(友進)과 창동(昌東) 등이 다시 다른 문헌에 보이는 저자의 시문 약간 편을 더 모으고, 별도로 부록도 더 보충하여 속집 2권 1책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전하고 있는 별동 5권 2책의 전부이다. 별동집의 본집은 권1에 부(賦), 시(詩), 표전(表箋), 권2에 소(疏), 진언(陳言),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책(策), 습유(拾遺), 가요(歌謠)를 각각 실고 있으며, 권3에 연보(年譜), 묘갈문(墓碣文), 문견록(聞見錄) 및 봉안문(奉安文), 상향축문(常享祝文)을 모아 엮은 부록으로 실었다. 속집(續集)은 권1에 시와 전표를 담고, 권2에 부록으로 행장(行狀), 행록(行錄), 신도비(神道碑), 문견록, 상언(上言)을 수록하고 있다... 별동 윤상은 조선 초기의 큰 학자요 교육자이면서 문장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비중에서 볼 때 그의 시문집은 너무나 초략 간단하고 초라한 느낌이 없지 않다. 아마도 이는 저자 자신이 저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거나, 또는 초고의 보존에 소홀했던 데 원인하지 않는가 생각되며, 동시에 별동이 시골의 한미한 출신으로 자손도 번창하지 못하여 산일(散佚)한 유문(遺文)을 수습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가 아니었나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 초기 학자나 문인의 문집으로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못한 상황에 비추어 매우 소중한 문헌이다. 별도의 학자적 문장가적 업적으로 만분의 일이라도 짐작하여 어림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조선 시대의 유학 내지는 한문학을 연구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역자적 자료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이 번 이 책의 국역 작업은 허호구(許鎬九), 김재열(金在烈), 김신호(金信浩), 박천규(朴天圭)가 나누어 담당하였고, 그 총 검열과 윤문은 박천규가 맡아 하였음을 밝혀둔다. 1987년 여름 박천규 삼가 씀.
[跋文] : ...우리 집은 삼한(三韓 : 後三國)을 통일함으로부터 내려오면서 대대로 향인(鄕人)이 되어 땅에 구부러 엎디어 지내왔었는데, 우리 선고(先考)이신 실부공(實夫 : 尹祥의 字)께서 비록 공신은 아니지만, 경학(經學)을 떨쳐 일으켜서 우리 후손들로 하여금 향인을 면하게 하셨으니, 우리 집에 공덕이 높으시기가 하늘과 땅에 짝이 되어 무궁하게 내려갈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감히 그 공덕을 잊을 수 있는가! 우리들이 민첩하지 못하여 한 사람도 이를 이어짓는 이가 없으니, 그 가이없는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어서 위로는 희역(羲易 : 伏羲의 易經)의 가르침에 의거하고 아래로는 주(周) 나라 왕실의 옮기지 않는 뜻을 본받아서 또한 대대로 제사하여 옮기지 않고자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하건대, 큰 종가의 후손들이라고 반드시 모두 어진 것이 아니며, 작은 종가의 후예라 하여 반드시 모두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후손들이 덕을 입기는 진실로 크고 작거나 멀고 가까운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그 분의 자손이라면, 큰 집 작은 집이 없고, 멀고 가까운 일가가 없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이 진실로 사당을 세워 제사를 주관하는 이가 모두 그 분으로써 시조를 삼아서 대대로 제사를 지낸다면, 아마도 가업을 일으켜 후손에게 물려주는 지극한 덕의 만분지일이라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되리라. 성화(成化) 23년 정미(1487) 8월 15일에 아들 조봉대부 전 군위현감(朝奉大夫前軍威縣監) 계은(季殷)은 삼가 기록하여 대를 잇는 자손에게 이르노라.(國譯別洞先生文集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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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