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1,798 : 병백당...병암정...
=---
병백당 : 17世 고찰/ 2007.03.03./ 는 병백당(病栢堂)이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학행(學行)이 높았으나 유고(遺稿)는 동학혁명(東學革命) 때 모두 병화로 소실되었다. 오직 하나 휘 사희.../ cafe.daum.net/baklim/GI... 함양박림(daum 2017)
병백당 : 2009년 시제일 공지/ 2009.11.03./ 번째 일요일(양력 11월 22일) 6)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 허릿골, 시제 정랑공(종린), 통례공(기), 주부공(지), 병백당공(운), 좌랑공(순) 음력 10월 初丁日(양력 11월 18.../ cafe.daum.net/baklim/GI... 함양박림 | 댓글 3(daum 2017)
병백당 : 예천의 자랑 3747 : 박수서(3)-박수선-박수영-박수우-박수의-박수진-박승국-박승로(1)(祝 김종락, 윤희정, 임정달, 홍승하/예천방문 1,156)/ 작성 장병창/ 호(號)는 문천(汶川)이다. 정랑(正郞) 종린(從鱗)의 손자이시며 병백당(病栢堂) 운(蕓)의 2자(子)이시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선조 34(1601)년에 태어나시어 생원시(生員試)에.../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 예천군청(daum 2017)
병백당 : 예천의 자랑 3203 : 권별(2)/ 작성 장병창/ 한다. 병백당 父子가.../ cafe.daum.net/mooninyc/Nvc0... 사)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daum 2012) 권별 : 조선시대 산중 생활의 열 가지 즐거움/ 작년, 2011년 8월 4일/ 일곱은 맑은 물에.../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 예천군청(daum 2017)
병백당 : 영남의 향오린/ 지(芝, 군자감주부), 3자는 운(蕓, 증 이조참판, 병백당), 4자는 순(荀, 증 병조좌랑)이시다. 사위는 진주인 강제(姜霽)와 신응창(申應昌)이시다. 묘(墓)는 용문면 원류리 희이곡(希夷谷,허릿골) 형제봉.../ www.gdhoney.com/board/board.html?code=c (daum 2017)
병백당유계소(病栢堂儒契所) [講堂] : 용문면 상금곡리 334번지에 있는 강당으로, 함양인 병백당 박운(朴蕓)을 기리기 위해 1800년에 세웠다. 동학농민운동(1894)으로 소실된 것을 1923년에 유림에서 새로 지었다.(醴泉鄕校誌 2004)
병사놀이(兵使놀이) [集團遊戱] : 이 놀이는 원님놀이와 비슷하고, 다만 6방 관속(六房官屬) 대신에 팔비장(八裨將)이 참여한다. 놀이의 줄거리도 도임 행열(到任行列)에 그치고 관원 점고(官員點考)와 현황 파악 등은 없었다.
병산(甁山) [山] : 757년부터 1018년까지 예천군 영안현(現 安東市 豊山邑)에 있던 산으로,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과 더불어 이 산에서 싸워 견훤이 패주(敗走)하기에 시랑 김악(侍郞金渥)을 포로하였으며, 죽은 자가 천 명이 넘었다.(新增東國輿地勝覽 第24卷 安東大都護府 1530)
병성 : →어림성
병신 창의일기(丙申倡義日記) [두루마리] : 호명면 내신리(內新里) 못뒤 권영하 가(權寧河家)에 소장된 두루마리로, 을미사변(1895) 후인 1896년(丙申) 정월 16일에 향사당(鄕射堂)에서 향회(鄕會)를 열고 집강소(執綱所)를 차리고 의병을 모은 자료이다. 권영하는 당시의 대표이던 권상옥(權尙玉, 1851-1914)의 후손이다.(醴泉文化 6輯 1993)
병암 남성 신수기(屛岩南城新修記) [金石文] : 이 비문은 1779년(종조 3) 6월 18일부터 약 50여 일 간에 걸쳐 수어사(守禦使) 서명응(徐命膺, 1716-1787, 醴泉 出身) 지휘 아래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사실을 전해주고 있는 금석문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 비문을 통해서 산성을 증개축하는데 돈 1만 냥과 쌀 900석의 재정을 투입하였음을 알 수 있고, 당시 감독관인 광주부윤(廣州府尹) 이명중(李明中, 1712-1789, 前 醴泉郡守)의 지휘 아래 벽돌, 석회 등으로 구어 운반하는 관리와 보수할 곳 18구역을 나누어 담당한 18패장(牌將)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으로 보아 선조들이 건축 실명제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이다. 정조는 즉위 후 영릉(英陵)을 참배하는 길에 자주 남한산성에 행차하여 산성의 관리 실태와 주민들의 생활상 등 민의를 살핀 개혁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동문 밖에 있는 ‘기해주(己亥駐)’가 그 사실을 잘 반증해 주고 있다. 이 비문은 당시 수어사이던 서명응이 짓고, 광주부윤 이명중이 쓴 것이다.(박원재 홈페이지)
병암재 : →뱀재
병암정(屛岩亭), 배암정, 옥서정(玉墅亭), 옥소정 [亭子] : 용문면 성현리 정자들 동쪽에 있는 정자로, 복전 서현(福田西峴) 병풍바위(屛風岩, 屛岩) 위에 있다. 용문면 하금곡리(下金谷里) 앞이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인 양주대감 이유인(楊州大監李裕寅)이 1900년경에 창건하여 옥서정(玉墅亭)이라고 불렀으나, 1920년경에 하금곡리의 예천 권씨들이 그들의 선조 졸재 권오복(拙齋權五福)을 위하여 매입하여 병암정(屛岩亭, 배암정)이라고 개칭하였다. 1960년 후손 우진(禹鎭)이 중심이 되어 뜯고, 다시 중건하였다. 1946년 정자 곁에 별묘(別廟)를 건립하여 송당 권맹손(松堂權孟孫), 졸재 권오기(拙齋權五紀), 수헌 권오복(睡軒權五福), 선계 권용(仙溪權墉) 등 4위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있으며 정자에는 1960년 중수 때에 권상규(權相圭)가 찬(撰)한 병암정기(屛巖亭記)가 있다. 뒤에는 푸른 산이 솟아있고, 앞에는 큰 들과 용문천(龍門川)이 흐르고, 정자 밑에는 큰 연못이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못 가운데 인암이라는 섬이 있었으나, 현재 못은 메워서 논으로 사용하고 섬만 남아 있다. [傳說] : 옛날에는 정자 밑에는 큰 강이 흘렸는데, 그 정자가 물 위에 떠 있는 집과 같았다. 이에 어떤 풍채좋은 웬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정자가 이름이 없는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바위에 별명도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자, 그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제각기 이름을 내놓으면서 이름을 결정하자고 했다. 그 때에도 선거가 있었는지 거수로 하는 방법이 있는지는 몰라도 곧 이름이 병암정(屛巖亭)으로 결정되었다. 그 다음에는 누가 어떻게 이 바위 절벽에다 이름을 새겨놓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름을 새겨 드리죠." 하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 할아버지는 기구를 갖고 밧줄을 타고 바위벽으로 내려갔다. 곧 글씨를 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물론한자로 쓰는 것이었다. 신중히 정확하게 바르게 작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일이냐 마른하늘에서 벼락치 듯이 그 할아버지를 감고 있던 밧줄이 끊어져 버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비운에 돌아가셨다. 욕심 같아서는 그 바위의 이름은 병암(屛岩)이라고 새겨 놓았는데, 좀더 한 자만 더 새겼더라면 하고 바랄 따름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병암정(屛岩亭), 병암정사(屛岩精舍) [亭子] : 용문면 제곡리(渚谷里)에 있는 정자로, 이조 효종 때 안동인 생원 병암 권기(屛岩權기, 1650-1704)가 세우고 여생을 보내면서 강학하던 곳이다. 또한 야옹 권의(野翁權의)의 손자 병암(屛岩) 권기가 승지(承旨) 벼슬을 하였으므로 그 후손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고저 세웠다고도 한다. 현재 건물은 1926년에 세웠다. 1929년에 문중의 후손 권상익(權相翊)의 기문(記文)이 있다. 정자 앞에 노송(老松) 두 그루가 청청하다. 1926년에 중수했고, 구조는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며, 정면 측면 각 2칸이다.(朝鮮寰輿勝覽 1929, 醴泉郡誌 1939)
병암정(屛岩亭) [亭子] : 용문면 성현리 버들밭 건너편에 있는 정자로, 원래 법부대신 이유인(李裕寅)이 1898년에 옥소정(玉簫亭)으로 세운 것을 예천권씨문중에서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매입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