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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799 : 병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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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정(醴泉 병암정 : 黃眞伊도 伴한 병암정秀麗한 亭子에 가을이 지네…) [記事] : KBS 수․목 드라마 황진이 중 황진이(黃眞伊)가 그의 첫사랑 김은호(장근석분)와 데이트하던 아름다운 다리와 황진이의 거문고 타는 모습을 찍은 배경지 정자는 어딜까 하고 한번쯤 생각했으리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정자들 동쪽에 있는 병암정 및 별묘가 바로 드라마 황진이 이의 촬영 배경지이다. 병암정은 병풍(屛風)처럼 생긴 큰 바위 위에 있는데 뒤에는 푸른 산이 솟아 있고 밑에는 연못이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병암정은 19세기 후반의 구조양식과 평면형식 등을 잘 지니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으로 정자 건축의 기능에 적합한 입지조건과 전통 조경요소를 제대로 갖춰 조경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병암정은 일제강점기 예천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인 중산 권원하(1898~1936)는 어려선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고 영리하더니 자라면서 나라를 되찾고자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4기생으로 1920년 2월에 졸업하고 3․1운동 후의 실의에 빠진 국내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그 해 2월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군 모집을 위해 활약하다가 어느 여관에 투숙 중 왜경에 잡혀 이것이 무관학교 생도 모집 사건이다. 2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감해서는 엄시일, 권세형, 권봉 등의 가명을 쓰면서 경향 각지를 돌며 활약하고 안재홍 선생이 용문면 성현동 병암정까지 의사를 찾아와 함께 기거하면서 권봉이란 별명을 지어 줄 만큼 안 선생과 여운형 선생 등과 친했다. 고향에서는 용문사 명봉사가 집회 장소였고 신간회, 교직원 사건, 소작인 사건, 민중소요 사건, 대동국권회복단 사건 등 수많은 항일사건에 늘 선봉을 선 의사는 옥살이, 예비검속, 출감 투옥으로 항일의 일생이 점철되었다.
1930년대 초 예천읍에서 신문지국장을 가장해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또 체포돼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 보석되었다가 1936년 39세의 나이로 광복의 영광도 누리지 못한 체 일생을 마친 분이다. 예천군 용문면 하금곡리에서 출생하니 자는 도장(道壯), 호는 중산(重山)이며 본관은 예천이요 해진의 아들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 졸재(拙齋)의 14대손으로 충절과 문한의 가정에서 태어나 광복 일념으로 민지(民志)를 모았었다. 광복 후 1946년 사회장으로 용문면 덕신동에 안장하였고 1977년 12월 독립유공자로 표창되었고 1979년 용문면 하금곡동 공의 고향마을 앞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중산 권원하 선생기념 비건립 취지문>황진이(黃眞伊)의 촬영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세인들의 관심 속에 요즘 부쩍 이곳을 찾는이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예천읍에서 문경 동로로 이어지는 928번 도로는 아직까지 옛 그대로의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만추 드라이브길로 추천할 만한 길이다. 예천읍 공설운동장 옆으로 접어드는 이 길은 수년을 묵은 듯한 벚나무 가로수가 빨갛게 물들어 길옆 만추 들녘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드라이브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먼저 황진이 촬영지 병암정을 둘러보고 동로 방향으로 금당실 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 초간정이 보인다. 예천군 보문면 죽림리 350에 위치한 문화재자료 143호인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세운 정자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초간정에서 다시 928번 도로 동로 방향으로 조금 가면 원류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용문사 주차장이다. 소백산 용문사는 신라천년 고찰로 역사가 길고, 보물 제145호 대장전(大藏殿), 제684호 윤장대(輪藏臺, 제989호 목불좌상 및 목각탱(木佛坐像.木刻幀) 등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경관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만추 용문사 풍경은 환상적이다. ▲ 찾아가는 길 : 서울․대구-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예천IC에서 예천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직진 -용문로- 928번 지방도로- 용문면 소재지 금당실 직전 좌회전 -병암정-(동로방향)-초간정- 원류 삼거리(우회전)-용문사(곽성일 記者 慶北日報 2006/11/10)
병암정(龍門에는 진짜 龍이 存在한다는 걸 아시나요 : 龍門面 省峴里 병암정자 山부터 뒤로 省峴里 천내뒷산 따라 외고개 뒷산으로 해서 죽마 뒷산까지) [記事] : 정자산이 용머리, 그 뒤로 왼쪽으로 쭉 보면 용꼬리같이 느낌이 드는데, 맞는지? 지난번 "금당실마을" 게시판 8689번 "KBS드라마 황진이로 뜨게 될 배나무정자"에서 댓글로 재경면민회장님 권만하 님께서 가르쳐주신 정자산이 용머리라고... 나는 용문에 살면서도 용두라는 말만 들었지. 왜 용두인지 몰랐는데, 님의 설명으로 감을 잡았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하늘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을 텐데, 어찌 이토록 닮은 용머리를 이름을 지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번 오른쪽 병암정자 산부터 왼쪽으로 산줄기를 따라 셋 동내 뒷산을 더듬어 보세요. 흡사 용같이 생겼는가? ▼ 덕신리 댁골 뒷산부터 금당실 쪽과 구계 사이 산에 나무만 우거지면 영락없는 용입니다. ▼ 용문 병암정!!! 바위에 병암정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 KBS 2TV 수목드라마 10시 방영 황진이 촬영지역입니다.(권동수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11-19 출처: 금당실마을 홈페이지)
병암정 [記事] : 세상사는 이야기 카페/ 예천 병암정의 풍경(kbs 황진이 촬영장)/ 글쓴이: 영웅일기/ 2008.09.06 12:49/ 예천권씨 병암정 및 별묘(문화재자료 제453호 2003.12.15 지정) / ※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93/ ※ 소유자 : 예천권씨병암문중/ 자세한 설명 : 일제강점기에 예천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이 있는 건물이다. 특히 병암정은 19세기 후반의 구조 양식과 평면 형식 등을 잘 지니고 있으며, 정자 건축의 기능에 적합한 입지 조건은 물론 바위, 연못, 석가산 등의 전통 조경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 조경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영화 "영어완전정복과 나의결혼원정기"를 촬영했던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에서 "그해여름"의 배경이 된 용문면 선2리 선리마을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을 든든히 이어가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kbs 수목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였던 병암정도 용문면 성현리에 위치해 있다.(daum 2008)
병암정(奇巖絶壁 위 황진이가 노닐던 屛巖亭) [記事] : 예천 용문면 성현리 정자뜰 한편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보인다. 그 위에 멋들어진 모습으로 자리를 잡은 병암정. 이 정자 앞 절벽 밑으로는 연못이 있고, 그 앞에 너른 들이 펼쳐진다. 이 들을 정자뜰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병암정 때문으로 보인다. KBS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로 이름이 난 병암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인 기와집이다. 병암정은 널직한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는 바위의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예천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권원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원하(1898-1936)는 용문면 하금곡리 471번지 출신으로, 자는 도장(道壯), 호는 중산(重山), 본관은 예천, 영진(永鎭)의 셋째 아들이다. 왜관국민학교, 부산제2상업고등학교(1919)를 졸업하고, 3.1운동 때 선봉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제4기생으로 졸업(1920)한 후 독립운동 자금 및 독립군 모집의 임무를 띄고 귀국하여 암약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 (1921)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출감 후에는 왜적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애국심은 더욱 불타올라 서울 등지로 피신해 가며 독립 운동을 계속하면서 안재홍, 여운형 등과 친하여 서로 만나 국권을 찾으려고 애썼다. 안재홍은 용문면 성현리 병암정(屛岩亭)에서 숙식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권원하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여 용문사, 명봉사 등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가 예천군내 청년대회를 개최(1927.6)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는 등 구국 운동을 하였다. 그 외 교직원 사건, 소작인 사건, 민중소요 사건, 대동국권회복단 사방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의 선봉에 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권원하가 독립 운동에만 전념하는 동안 많은 가산은 모두 탕진되고, 부인 김재수(金在洙) 등 가족들은 일본 경찰의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강원도 오지로 도피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였다.권원하의 무덤은 용문면 덕신리 큰골 앞산에 있고, 건국 공로로 대통령 표창(1977)이 추서되었고, 하금곡리 동구(洞口)에 기념비(1979)가 세워졌다.<예천신문/장병창 논설위원>
현재 경북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병암정은 양편에 문을 두고 있다. 정자뜰을 내여다보고 있는 정면 5칸의 구조는 앙편에 방을 두고 가운데는 마루를 놓았다. 방과 마루 앞면에도 길게 덧마루를 놓아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뜰 앞에는 정원수를 심어 멋을 더했으며, 정자 주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이 되었다. 예천 출장 길에 들린 병암정. 최근에 새로 보수를 한 듯 마당에는 흙더미가 놓여있다. 문도 새로 만들어 놓았고, 아직 담장은 보수가 되지 않았다. 병암정에 올라 멀리 정자뜰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 곳에 오르면, 막혔던 속이 뻥 뚫릴 것만 같다. 절벽 밑에 조성한 연못에는 작은 수련들이 피어있다. 저 작은 수련 한 송이마다 깊은 사연이 있음직도 하다. 시원한 바람에 더위가 가신다. 이리 좋은 곳에 정자를 세우고, 선인들은 어떤 풍류를 즐겼을까? 황진이도 이곳에서 벽계수와 시 한수를 적어 사랑놀음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서는 발길을 붙드는 것은 황진아가 아닌, 채 보수를 끝내지 못한 정자 옆 별묘의 무성한 잡풀이었다.(두런두런 세상사 카페/우리문화 공부하기 200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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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