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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807:보곡리...보권염불문(축,윤창호)
작성자장병창 @ 2022.05.15 06:07:11

  도청신도시 예천 1,807 : 보곡리...보권염불문(부, 한화손해보험 윤창호 대표, 7년 연속 한화손해보험 연도대상을 수상함. 한화 30만 설계사들의 우상임...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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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곡리 : →보곡리 마을의 구성, →보곡리 연혁

  보곡리(甫谷里) 마을의 구성, 보곡리 [里] : 보곡리는 상리면(上里面) 행정 이동 중의 하나로, 고항행(古項行) 도로 은산(殷山)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동가재봉(東佳哉峰) 기슭으로 향하면 넓은 골이 있는데, 크게 두 골을 따라 무장, 아랫보실, 웃보실 등의 마을이 있다. 경지 면적 81.5ha 중 밭이 41.5ha, 논이 40ha로, 논밭 비율이 비슷하다. 특히 이 곳에는 담배, 고추, 사과, 인삼을 재배한다. 특히 사과과수원은 상리면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였고, 인삼도 어느 이(里)보다도 넓어서 논밭 대부분이 인삼을 재배하고 있다. 비농가(非農家)는 한 가구도 없다. 1976년 여름에 전기가 처음 들어 왔고, 1978년에는 가구 당 소득 220만원으로 상리면에서 최고 소득 마을이 되었다. 67가구(1980) 중 성주 都 13가구, 창원 黃 4가구, 경주 李 4가구, 기타 46가구가 살고 있다가, 53가구 211명(1992, 남105, 여105) 중 성주 都 10가구, 예천 林 4가구 등이 살고 있다.

 

  보곡리(甫谷里) 연혁, 보곡리, 보곡동 [里] : 보곡리은 상리면(上里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원래 658년(신라 무열왕 5) 적아현(赤牙縣) 소속이다가,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 은정현(醴泉郡殷正縣) 소속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예천군 은풍현(醴泉郡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018년(현종 9)에 안동부 은풍현(安東府殷豊縣) 소속으로 넘어갔다. 1390년(공양왕 2)에 기주 은풍현(基州殷豊縣) 소속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에 풍기군 은풍현(豊基郡殷豊縣) 소속이 되었다가, 임진왜란(1592) 직후에 풍기군 상리면(豊基郡上里面) 소속이 되었다. 1914년에 영주군 상리면(榮州郡上里面) 소속이 되면서 보곡(甫谷)과 무장(茂庄)을 합하여 보곡동(甫谷洞)이라 하였다. 1923년에 예천군 상리면 보곡동(醴泉郡上里面甫谷洞)이 되었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보곡 소류지(甫谷小溜池), 보곡지(甫谷池), 보실못 [못] : 상리면 보곡리 상보곡(上甫谷) 앞 300m 거리인 동구(洞口)에 있는 못으로, 보실골 양편으로 펼쳐진 논의 수리 안정을 위해 1940년에 착공하여 1945년에 완공하였다. 면적은 약 6,000㎡(36,500ton)이다. [傳說] : 상리면 도촌리의 쌍학(雙鶴)이 날아와서 이 곳에 오줌을 싸서 못이 되었다고 한다.

 

  보곡 소류지 : 예천의 자랑 4372 : 은산9곡과 은산8목(2)/ 里面甫谷洞)이 되었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보곡 소류지(甫谷小溜池), 보곡지(甫谷池), 보실못 [못] : 상리면 보곡리 상보곡(上甫谷) 앞 300m 거리인 동구(洞口)에 있는 못.../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 예천군청(daum 2017)

 

  보곡지 : →보곡소류지

  보광전(普光殿) [절] : 용궁면 향석1리 190-2번지에 있는 전각으로, 향석리석불좌상(鄕石里石佛坐像)과 삼층석탑(三層石塔)을 보호하기 위하여 1914년 동리 사람들의 성금으로 건립하였다. 1960년 4월에 보수했으나, 허물어진 담장에는 손을 대지 못하다가 1971년에 권혁필(權赫弼) 용궁면장의 특별한 배려와, 또한 혜덕화 보살(惠德華菩薩)의 성의 있는 시주로 중수하였다.

 

  보광전(普光殿) [佛敎建築] : 용궁면 향석1리 192번지(畓)에 있는 전각으로, 예천향석리 석불좌상과 예천향석리 삼층석탑을 보호하기 위하여 1914년 동리 사람들의 성금으로 건립하였다. 1960년 4월에 보수했으나, 허물어진 담장에는 손을 대지 못하다가 1971년에 권혁필(權赫弼) 용궁면장의 특별한 배려와 혜덕화(惠德華) 보살의 성의 있는 시주로 중수하였다. 예천향석리석조여래좌상과 정면에 예천향석리 삼층석탑이 있다. 좌측에 건축 부재 및 탑재들이 쌓여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보국사(甫國寺) [터] : 상리면 보곡리 상보곡(上甫谷) 뒤 큰골에 있던 사찰로, 그 터가 아직 남아 있다. →예천보곡리 사지

  보국사지(甫國寺址) [절터] : 상리면 보곡리 384번지(田)에 있는 터로, 보곡리 산21번지 일대에도 해당한다. 보곡리 ‘보실’ 마을 ‘동가재봉(東佳哉峰)’ 중턱 ‘절골’에 있는 절터로 보국사가 있었다고 한다. 1653년에 세워져 1780년 경 폐쇄되어 그 유지와 1500평 정도의 묵은 밭이 남아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보국사지(甫國寺址) [터] : 상리면 보곡리 384번지 일대에 있던 절로, 보국사가 있었다고 한다. 1653년에 세워져 1780년 경 폐쇄되어 그 유지와 1500평 정도의 묵은 밭이 남아 있다.(醴泉東本洞三層石塔ㆍ石造如來立像 精密實測調査 및 修理報告書 2005)

 

  보국사지(甫國寺址) [절터] : 상리면 보곡리 384번지(田)에 있는 터로, 보곡리 산21번지 일대에도 해당한다. 보곡리 ‘보실’ 마을 ‘동가재봉(東佳哉峰)’ 중턱 ‘절골’에 있는 절터로 보국사가 있었다고 한다. 1653년에 세워져 1780년 경 폐쇄되어 그 유지와 1500평 정도의 묵은 밭이 남아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보권염불문(普卷念佛文) [冊]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龍門寺)에서 조선 후기에 장판(藏板)한 도서로, 표지의 원명은, '대미타참략초요람 보권염불문(大彌陀懺略抄要覽 普勸念佛文)'이다. 가로 26.3cm, 세로 25.8cm, 66쪽이다. 이 책에 고려 말의 명승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惠勤, 1320-1376)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라는 가사가 있다. 그 내용은, <국문학전사(國文學全史)> 108-109쪽에 있다.(韓國古印刷文化史 金斗鍾 箸 三星文化文庫 148卷 226쪽)

 

  보권염불문 : 大彌陀懺略抄要覽普勸念佛文 / 古 1730-21/ 저편자 [釋] 明衍(朝鮮) 編/ 발행자 修道寺/ 날짜 英祖17年(1741)/ 분류 목록·해제 > 목록 > 규장각소장목록/ 초록 1704년(肅宗 30) 경상북도 醴泉 龍門寺에서 淸虛의 法統을 잇는 明衍이 여러 經典의 염불에 관한 설과 염불문들을 略抄하여 염불을 권하는 글을 엮고 이를 諺解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책

 

  내용 阿彌陀佛因行, 諸不不如阿彌陀佛, 念諸佛不如念阿彌陀佛, 諸國世界不如西方極樂世界, 烏長國王見佛往生, 世子童女勸母往生, 隋文皇后異香往生, 念佛作法次序, 臨終正念訣, 父母孝養文, 維摩經, 玄氏行跡/ 자료제공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www.history.go.kr/2014)

 

  보권염불문 : 나옹화샹셔왕가(懶翁和尙西往歌)라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임기중 저 | 임기중/ ...논총』 17, 고려대, 1972) ▷ 「불교가사의 유통연구」(김종진, 동국대 박사논문, 1999) ▣ 해제17세기 말엽에 지어진 작품이다. 숙종 30년(1704) 예천(醴泉) 용문사(龍門寺)에서 개간된 목판본 『보권염불문』에 「인과문」과 함께 순한글 .../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제목순 > 나 > 나옹화샹셔왕가(懶翁和尙西往歌)라/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 고전ㆍ문학자료이다.//

 

  ◆ 한화손해보험 윤창호 대표, 7년 연속 한화손해보험 연도대상을 수상함. 한화 30만 설계사들의 우상임...축하합니다.

 

  윤창호(윤창호 대표 7년 연속 한화손해보험 연도 대상 수상! : 한화 30만 설계사들의 우상...) [기사] : 꾸준한 고객 관리를 생명으로 여기는 진정한 보험맨 한화손해보험 예천점 윤창호 대표가 최근 열린 '한화손해보험 연도대상 시상식(수안보 한화리조트)'에서 2015년~2021년까지 7년 연속 수상(자동차보험 부문)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전국 30만 설계사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 1988년 한화손해보험에 입사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 성상 예천을 비롯한 안동.영주.점촌.상주시의 운전자들과 끈끈한 교감을 통해 보험왕에 오를 수 있었으며, 특히 '나의 고객은 계약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신념으로 꾸준히 관리해 온 것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창호 대표는 수상 소감에서 "저의 자존심과 긍지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언행과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을 내 가족처럼 대할 때 저를 인정해 주었다"며 감사를 전하고 "앞으로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육상 대표로 일본까지 시합을 다닌 등 명성을 떨쳤던 윤창호 대표(국립 안동대학교 졸업)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기상, 흑응산 등반을 한 뒤 사무실로 출근한다. 부인 김명화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영민:매일신문 기자)과 딸(빛나)을 두고 있으며, 취미는 등산.운동, 본관은 파평.(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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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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