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01. 인터넷 친정엄마 경북 예천 쌀아지매
인터넷 친정엄마
참기름,들기름,고춧가루,깨소금,무청씨래기,된장…..
담겨있기 제각각, 깨질까봐 야물게, 다시 그 사이사이 신문지뭉치로 꾹꾹 누르고…
화물로 날아온 겉포장 박스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얻은 거… 그리고 메모 한 장 “미안해… 뒷바라지 못해줘서 미안해..”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하던 1979년 봄인가 여름인가?
내 자취방으로 날아온 화물(택배), 엄마가 보내준 자취생 밑반찬이었다. 박스를 여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고
메모를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몇 달 안 살아 본 인생은 울먹울먹 울고 말았다.
이렇게 아들과 엄마와의 사이에도 격한 흐느낌이 있고 울림이 있는데 엄마와 딸은 더하지 싶다.
여동생이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가 있던 시절, 엄마의 걱정거리는 늘 딸의 반찬꺼리였고 몸 걱정이었다.
처갓집 장모님을 봐도 딸넷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이것저것 들어내가고, 80을 넘어 허리가 굽은 노인인데 여전히 종종종,
바리바리 챙겨서 딸사위 챙겨 보낸다.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딸에게는 끌고 다니시는 딸딸이 모터로 우체국까지 싣고 가서
택배로 부치고 만다. 한 보따리 들고 가는 딸년 뒤에다 대고 “뭐! 더 줄 거 없나?””더 필요한 거 없니?” 전전긍긍이다.
아무리 퍼주고 퍼줘도 성이 차지 않는다. 그게 엄마다. 친정 엄마…
쌀아지매 쌀아저씨

▲경북 예천 쌀아지매 정옥례, 남기호부부
경북 예천군 개포면 가곡1리에 ‘우리 친정엄마(고객들이 붙여준 컨셉)’가 있다.
올해 40대 중반을 갓 넘어선 정옥례씨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영농 26년차, 인천에서 만나 결혼하고 시어머님이 편찮으셔서 5년만 병구완 해드리고 올라오자며 내려간
시댁 경북 예천이다. 그 예천에서 지금은 70여 마을농가와 인근농가가 연합하여 친환경농사를 짓고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전국 4,000여명 고객들의 친정엄마로 살아간다.
쌀아지매란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선입견을 갖는다. 나이도 많고, 억척스럽고 약간은 뚱뚱하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대한민국의 농업적 현실, 그것도 특별한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풍부한 마을도 아닌 곳에서
한 농가가 전자상거래를 통하여 자신이 생산한 것뿐 아니라 인근지역의 농산물까지 판매를 감당하기에 이른다.
체험학교를 비롯하여 ‘찾아오는 농촌의 전형’을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여
호기심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몇 년 전 ‘도시와 통하는 농촌쇼핑몰’이란 책을 쓰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컨셉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쌀아지매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일은 아주 큰 즐거움 이었다.
또 농촌쇼핑몰이 갖는 유의미한 가치를 실재로 느끼게 해 주는 요소가 많아 쌀아지매를 공부하면 할수록,
현장에 내려가 살펴보면 볼수록 배울 것이 많았고, 비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IMF이전까지 팥, 땅콩, 콩, 고추, 고구마등을 밭에 심고 가꾸어 1년 동안 재배해서 받는 농산물 값은 돌아서서
눈물이 나올 만큼 턱없이 작았다.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지자 지니고 있던 패물을 모두 팔고 농업경영인 자금을 대출받아
비육 소를 키우다가 소파동을 만나 파산하고 말았다. 빚에 짓눌려 사는 스트레스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예천 가곡리는 풋고추 이외에 특별한 소득작물이 없다 보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낙후된 모습으로 살아왔다. 고단하기 그지 없었던 우리농촌의 암담함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교육을 받게 되어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통해 판매한다면 이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도 가능할 것이고
다양하게 우리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홈페이지를 직접 만드는 과정까지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홈페이지를 자력으로 만들어 오픈 했다.
드디어 오늘날의 쌀아지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첫 주문의 기억
홈페이지 열고나서의 첫 주문은 쌀아지매의 향후의 인생행로를 결정짓는데 큰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다.
쌀을 새로 방아 찧고 맛보기로 ‘보리쌀 한 줌’과 밭둑에 달려 있는 ‘애호박’도 따서 함께 넣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고객님과의 인연 소중하게 여기고 고객님 가족께서 우리농산물을 안심하고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농사지어
보내 드린다고~~ .보내 드린 우리농산물을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까지 함께 담아 보낸다고 ~~
택배박스도 없어서 슈퍼에서 나오는 재활용박스에 포장을 하여 정성 담은 편지까지 동봉해서 보냈다.
그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가 보내준 것처럼 정이 묻어나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 분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지인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었다.
친정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고향보따리
보통의 여자들, 엄마들에게 친정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20대 30대 새댁의 친정엄마 다르고, 40대 엄마의 친정엄마 다를 것이다. 쌀아지매보다 나이 많은 50대 60대 엄마들은
이미 그 자신이 친정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쌀아지매를 보고 친정엄마의 정감을 느낀다. 참신기한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엄마는 영원한 엄마고 엄마의 그 마음 앞에서는 마냥 작아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엄마는 참 ‘감성적인 홀로그램’이기도 하다.
살아계시든 아니든,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세대가 한 바퀴 흘러 내가 죽을 때까지 엄마의 뜻은 남는다.
엄마가 이뻐서일까? 아니다 예쁜거로 치면 영화배우 탤런트 따라 갈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그 엄마가 그리 좋은 이유는
마음일께다. 자식에게 무엇이든지 주고픈, 일방적인 마음 때문에 딸자식들은 감동 먹고, 시큰하고 잊은 듯
부지불식간에 뜨거워지는 것이다. 엄마로 인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내 삶은 영원한 공명을 울리는 것이다.
친정엄마의 주파수에 맞춰서…..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고향보따리에 담긴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정옥례씨는
홈페이지에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올렸고 상품박스에는 요렇게 쓰시면 효과적이라 했고 애호박, 무씨래기,
뻥튀기, 고갱이배추, 인절미등등 시골에서 철마다 돋아나는 먹거리들을 맛보기 덤으로 같이 넣어드리면서
개인편지를 넣어 보냈다. 또 포장도 규격화되고 번쩍거리는 것에 촛점을 맞춘게 아니고
작은 양이라도 정성스럽고 야물게 포장을 했다. 그러니 받아보는 고객들은 자신의 친정엄마가 보내준 것과
같은 마음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규격적이고 획일화 되지 않는다.
자식의 상태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되는 유연함 그 자체다.
포장을 할 때 정성껏 손질은 기본이고 썩은 뉘 하나라도 보이면 다시 끌러서 재포장했다.
또 고객들의 형편도 잘 이해했다
시어머니 모시는 집이면 쑥인절미를 맛보기로 보내고
갓난애기 있는 집이면 쌀뻥튀기 한 봉지 보내며 애기의 행복을 기원했고
남편이 아프신 고객이면 거기에 합당한 먹을거리와 마음을 담아 보냈다.
고객이 1,000여분 일 때 까지는 다 외우고 기억했는데 지금은 어렵다. 하지만 일일히 손 편지는 못하더라도
프린트물이더라도 마음은 계속 나누어 드린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정성스럽기 그지없다.
지극히 일상적인 상업적 멘트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쌀아지매의 컨셉은 촌스럽고 자연스럽다.
‘덤 보내드리는 것’
‘편지 쓰는 것’
‘손맛’
‘마음 들어가는 것’ 이 4가지로 요약이 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들은
제주도로 여행간 고객은 친정엄마 쌀아지매 생각난다며 귤 한 상자 보내주고
바닷가 계시는 고객은 해산물을 보내주고
일할 때 먹으라고 커피 보내오는 고객,
얼굴 수건을 일일히 손으로 떠서 일할 때 햇빛 가려서 얼굴 태우지 말라는 고객도 있다. 이 뭉클함을 받아 든
쌀아지매 또 그냥 있을 수 없는 성격이니 급한 마음으로 정성껏 요모조모 챙겨서 보내드린다. 이거 돈 준다고 되는 일 아니다.
영락없는 친정언니, 동생, 친정엄마와 딸이다.
지나온 과정 돌이켜보면 특별히 홍보한게 하나 없다. 하지만 명절이 지나고 나면 고객이 부쩍 늘어나곤 했다.
고객들이 집안식구들에게 입소문으로 뜻소문으로 쌀아지매 이야기를 마구 해댄 결과다.
연세 지긋하신 고객이 울먹거리면서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며 전화해 오던 날, 정옥례씨도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돈만 생각하고 농사짓다가 쌀아지매 체험학교에서 고객들과 밤새 토론하면서 얻은 ‘안전한 먹거리와
따뜻한 마음을 지닌 농사’에 대한 원칙을 끝까지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종합쇼핑몰 & 마을의 연대
쌀아지매의 노력으로 가곡리 농가 44농가와 인근지역농가까지 합쳐서 77농가가 친환경농사를 짓고
쌀아지매 쇼핑몰을 통하여 판매가 된다. 인근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쌀아지매 체험학교’도 오픈하여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마을사람들도 볼 것 없는 마을에 도시민들이 찾아오고, 판매되는
농산물의 규모와 종류에 놀라며 하나 둘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을전체가 친환경지구로 탈바꿈하였다.
보통의 경우 관이나 행정에서 주도하지만 이 마을은 정옥례 남기호 부부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 어려운 농업현실에서 구체적인 희망을 품고 자력으로 살아가는 지역으로 진화한 것이다.
대한민국 ‘농업도 살길이 있다’는 전제하에 ‘농업의 순기능’과 ‘농업적 자기정당성’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여주는 농업, 찾아오는 농촌, 색깔농사

가곡리 인근에 회룡포가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강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지형으로 그 동안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절경을 지닌 곳이다. 저 마을에 올해 5마지기 정도의 칼라 쌀을 심었다. 향후에는 마을전체와 협의해서 회룡포전체를 친환경농사를 하고 색깔농사를 지어 ‘찾아오는 농촌의 전형’을 만들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필자도 회룡포 전망대에 올라서 보니 저 마을이 철마다 뿜어낼 풍광이 연상이 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
빨간 쌀, 검은 쌀, 녹색 쌀 그리고 다양한 칼라풀한 먹을거리들이 시야에 가득할 것이다. 지역이 함께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이로운 결과물이라 하겠다.

회룡포전망대 약수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방문객들이 물바가지가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당장 내려가 바가지를 사서 꼭지마다 올려놓았다. 우측사진은 회룡포 여름풍경
친환경쌀농사

왕우렁이 농법으로 유기재배를 하고 우렁이알의 신비함에 매료된다. 메뚜기가 살고 미꾸라지가 살고 물방개가 산다.
녹미,적미,흑미 칼라로 짓는 쌀농사 먹는 것, 보는 것, 만드는 것 어느 경우로 보더라도 흥미진진하다.
온 마을이 친환경지구다 보니 마을 길 논길 밭길 뚝방길, 모든 곳이 온갖 풀로 색감을 나타낸다. 제초제를 치지 않기 때문에
풀들의 생명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잡곡과 절기별 채소를 주로 짓지만 지역 전체로 보면 안 나오는 농산물이 거의 없을 정도이므로 쇼핑몰의 상품별 풍성함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자연냇가와 논두렁의 모습
이 잡초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살아야 해충이 발생할 때 덩달아
천적이 생겨난다. 땅속의 미생물이 온전하게 활동하게 되므로 논밭의 생태계가 보존된다.
다만 무슨 상품을 기획하고 복잡하게 가공해서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오고 지녀왔던
전통을 그대로 살리는 범위내에서의 일들을 이어가고 싶어한다.
그냥 단순가공하고 정성과 마음을 담아 나누어 먹는 시스템인 것이다.
탈곡하고 난 볏짚도 썰어서 그냥 그 자리에 논으로 돌려준다. 논에게 자기가 생산해낸 볏짚만큼 좋은 거름은 없다.
쌀도 수십수백억 들어간 RPC에서 도정 하는게 아니고 마을정미소에서 빻는다. 형편에 따라 물량에 따라 즉시즉시
도정을 하고 각종 가공품의 경우에도 단순가공을 하는 것이다. 다른 쌀들이 100% ‘완전미’를 강조할 때 쌀아지매는
‘신뢰’를 강조했고, ‘마음’을 강조했다.
이야기의 힘, 느낌의 힘
보통의 시골아낙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쌀아지매를 ‘시스템’이자 ‘하나의 문화(친정엄마)’로 일궈내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농장에서 차 한잔 나누고 현장을 같이 돌아보면서 아주 정확하게 정옥례씨 내외와 필자는 일치하는 부분에 서로 공감했다.
바로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가치’다.
평범한 시골주부가 살아가는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작물들의 특성과 효능에 대한 것
마을사람들의 애환
도시민들과의 정겨운 교류…
그리고 서로서로 보태려는 마음들이 이야기로 표현되고 기록되고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상품 주고받고 돈 주고받는 것 이외로 맛보기, 덤, 보태기, 신작로 따라 나온 친정 엄마,색깔 있는 농촌, 고향, 향수, 풍성한 관계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을
도시민들은 도시민들대로
마을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느끼고 향유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우니까 판로가 생기고 자신이 생겼다. 고객들이 믿어주니까 내 마음에 희생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마음 그대로 마을 일에 헌신하고 같이 살자 마음먹으니까 더 큰 복들이 다가서고 마을사람들이 다가서는 것이다.
남기호씨의 마을일 처리방식과 원칙
투명하게 일체의 금전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돈을 보태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혼신의 힘을 쏟았다. 다 주니까 그만큼 더 큰 일들이 이루어진다. 이제 가곡리 마을은 화끈하게 단합하고 서로 신뢰하고 밀어준다. 전자상거래 7년이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다.
쌀아지매 농촌체험학교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해서 쌀아지매 체험학교로 개편했다. 농촌체험 하러 오시는 고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숙박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해서였다. 모두들 유년시절의 추억에도 빠져들기도 하고, 가족단위 모임들도 많이 이루어진다. KBS아침드라마 ‘큰 언니’의 셋트장이 지어지기도 했다. 오래된 것에 대한 진득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농업과 추억과 그리움이 세대간 차이를 넘어서며 버무려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게 엄마야
내 새끼 눈에 눈물이 나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나고
내 새끼 속이 아프면 내 속은 썩어 문드러진다.
네가 기쁘면 엄마는 마냥 좋고
네가 행복하면 엄마는 안 먹어도 배불러
그게 엄마야.
이쁘기로 말하면
영화배우,탤런트에 어림없지
세련되기로 말하면
촌스럽기 그지 없고
몸빼바지 헐렁해 남사스러워
그게 엄마야.
마구마구 퍼줘도 자꾸 갈증이나
맨날 미안하고 안됐어
제대로 못 챙겨줘서 어이 하누!
그게 엄마야.
시집 보내놓고도
나누고 싶고
먹이고 싶고
입히고 싶어….
내 새끼도 엄연히 엄마가 되었건만
필요한 거 없수? 물으면
맨날 없대….
죽어서야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게 엄마야
친정 엄마야.
필자는 쌀아지매와 고객들이 소통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친정엄마와 친정식구들을 보았다.
매일 밤 늦은 새벽시간까지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우리 예천 토종농산물을 드시고
온 가족이 밥상 앞에서 행복하다 하시는데 어찌 하루가 피곤하다 하겠는가?
맑고 청아한 산새들 웃음소리에 청개구리들의 합창하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아름다운 대 자연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농사일을 하면서 기쁨이 가득한 하루를 보낼 때 하루 해가 짧아, 지는 해가 안타깝다면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쌀아지매의 고백)
농업은 이야기로, 이야기는 농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밑재료가 되어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이 모든 게 다 농업이 하는 일이다.
[후원] 경상북도
[제작] 이야기농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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