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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벌보말(417재임)
예천고을원(1) : 벌보말(417년 신라 눌지왕 때 재임)
벌보말(伐寶靺)은 417년(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간(水酒村干, 醴泉郡守)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은 <신라 직관지> 외관조에 의하면, 중앙 관리의 ’사지‘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중앙의 ’사지‘ 벼슬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눌지왕이 즉위(417)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 일찍이 고구려와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두 아우인 미사흔과 복호를 데려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바 수주촌간 벌보말이 어질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묻기를, “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살아서 돌아오게 하기를 바라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였다.
벌보말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삽량주간 박제상이 용감하고 지혜와 모략이 있다 하니, 전하의 근심을 풀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을 불러 벌보말의 말을 하며 고구려와 일본에 다녀오기를 청하였다.
이상의 <삼국사기> 얘기를 원담 김광섭이 ‘충절’이라는 제목으로 희곡화하였다. 즉, ‘제2희곡집 장막 희곡 1전 5막 17장 충절’에 나온다.
벌보말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예천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신라의 영토로서 안정되어갈 무렵이었다. 이 무렵에 행정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수주촌이다.
(張炳昌 論說委員 醴泉新聞 20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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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수주촌(水酒村, 醴泉邑) 출신, 417년(신라 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간(水酒村干, 현 예천고을 원)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干)은 <신라 직관지(新羅職官志)> 외관조(外官條)에 의하면, 경관(京官)의 사지(舍知)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경관 사지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신라 제19대 눌지왕이 왕위에 오르자, 변사(辯士)를 보내어 왕의 동생들로서 외국에 인질로 잡혀간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를 맞아오려고 했는데, 수주촌(水酒村)의 간 벌보말(干伐寶靺) 등 3명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불러 묻기를, "내 아우 두 사람이 왜국과 고구려의 두 나라에 볼모로 가서 여러 해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형제의 정으로 생각하여 그칠 수 없으니, 제발 그들을 살아 돌아오도록 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면 되겠소?" 라고 하자. 3명은 같이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건대, 삽량주(揷良州)의 간(干) 박제상(朴堤上)은 강직하고 용감하며 지모(智謀)가 있다 하오니 전하의 근심을 풀어드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朴堤上)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고 3명의 말을 알리고, 왜국과 고구려로 가기를 청하니 박제상은 대답하기를, "신(臣)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不肖)하오나 감히 명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校正 三國史記 卷 45 列傳 第5 朴堤上條, 韓國의 思想大全集 3卷 金富軾條 118쪽, 韓國史話 李相玉著 東西出版社 61쪽, 慶北道義誌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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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수주촌 촌주이다. 신라 눌지마립간 때의 지방 촌주(村主), 눌지마립간은 즉위한 뒤 고구려와 왜국에 각각 볼모로 가있는 동생 복호(卜好)와 미사흔(未斯欣)을 데려오고자 하여 이 일을 맡을 적임자를 물색하였다. 이 때 수주촌(水酒村 : 지금의 예천군)의 촌주 벌보말이 일리촌주(一利村主) 구리내(仇里내) 및 이이촌주(利伊村主) 파로(波老)와 함께 삽량주간(揷良州干) 박제상(朴堤上)을 추천하였다. 신라 상대는 아직 중앙관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지방 촌주들의 영향력이 강하였는 바, 벌보말 또한 지방 촌주로서 눌지마립간 때에 유력자로서 활약한 듯하다.(三國史記, 三國遺事 南東信(韓國學中央硏究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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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417년(신라 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 간(水酒村干, 現 醴泉고을 員)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干)은 <신라 직관지(新羅職官志)> 외관조(外官條)에 의하면, 경관(京官)의 사지(舍知)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경관 사지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눌지왕이 즉위(417)하자 말 잘 하는 사람을 구해 가서 일찌기 고구려와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두 아우인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를 맞이해 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바 수주촌간 벌보말이 어질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묻기를, “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2국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살아서 돌아오게 하기를 바라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벌보말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삽량수 간(揷良州干) 박제상(朴堤上)이 용감하고 지모(智謀)가 있다 하니. 전하의 근심을 풀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여 벌보말의 말을 하며, 원행(遠行)을 청하였다. 원담(圓潭) 김광섭(金光燮)은 이상의 내용을 희곡화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內容] : 5세기 신라의 수주촌 간(水酒村干, 現 醴泉郡守), 제1막 제1장 신라 왕궁에서 흘리는 눌지마립간의 눈물/ [눌지] : ...바로 그 원수같은 실성왕만 아니었다면 오늘 날 내가 아리도 혈육과 흩어져 사는 단장의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요(옛 생각이 떠올라) ...선왕 실성은 즉위하자마자 왜국이 요구한다 하여 겨우 열 살 밖에 안된 막내 미사흔을 왜국으로 볼모로 보내고 어느 듯 17년이 세월이요, 무정한 세월 17년이 흘렀단 말이요! 아! 이 기막힌 짐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소이까?(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단장의 아픔을 토해낸다)... 어디 미사흔 아우 뿐이요? 고구려에 잡혀간 큰 아우 복호는 또 어찌 하오?... 그 아우도 선왕 실성이 즉위 11년 되는 해에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소. 그리고 어느 듯 7년의 세월이 흘렀소이다... [서불한] : 이 나라의 중신 중에 수주촌간 벌보말 등 촌주(村主) 세 사람이 지혜가 많고 현명하옵니다. 한 번 불러서 하문해 보심이 어떠하올지요? [눌지] : 좋소, 당장 궁으로 부르시요(暗電). 제1막 제2장 : (촌주 세 사람, 왕제 구출 대임을 맡을 적임자로 박제상을 천거, 전장과 동일한 왕궁 후원, 무대 위에 회의용 탁자가 준비되고, 중앙에 눌지마립간의 자리, 양쪽에 촌주 세 사람과 서불한 등 중신 여럿이서 주위에 신경을 쓰면서 숙의하고 있다. 이 때는 아직 눌지마립간이 등장하기 전이다. 지금은 사람의 이목을 패해 야외 중궁 모임이 조촐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 무대가 밝기 전, 어둠 속에 나타난 해설자에게 조명이 떨어진다). [解說者] : 이렇게 해서 눌지마립간은 촌주 세 사람을 왕궁으로 부릅니다. 걸핏하면 바다 건너에서 아귀같이 쳐들어오는 왜군과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신라의 땅에까지 군사를 보내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고구려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도 장소는 은밀한 곳이어야 했습니다. 자! 그럼, 무슨 중대한 이야기가 오가는지 함께 가볼실까요.(조명이 꺼지면서 해설자가 사라지면 무대가 밝아온다). [소리] : 마립간 전하! 납시요!(탁자를 둘러싸고 숙의 중이던 중신들 모두 일어나 눌지마립간을 영접한다. 눌지마립간 시종 없이 홀로 등장하여 읍을 하며 예를 표하는 중신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한다). [눌지] : 자, 자, 모두 앉읍시다.(자리에 앉는다). [서불한] : (선 채로) 상대등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으십시요(사이). (상대등이라고 지목된 중신들만 자리에 앉는다). [서불한] : (선 채로) 전하! 소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사이, 호명한다), 수주촌 간 벌모말 촌주! 전하께 인사 여쭈시오. [벌보말] : (읍하며) 예, 전하, 수주촌 간 벌보말, 인사 여쭙니다. [눌지] : 만나서 반갑소! [서불한] : 모두 앉으시요(서불한과 촌주 세 사람 자리에 앉는다), [눌지] : (마음 조리며), 그래, 무슨 묘책이라도 나왔소? [서불한] : 예, 전하께옵서 일구월심,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가 있는 형제분들을 그리워하시는 심정을 설명하고 두 분 왕제님들이 살아서 돌아올 방법이 없겠는지 세 분 촌주와 더불어 의논을 거듭했사옵니다. (촌주들에게) 촌주 어르신들, 여러분의 생각을 전하께 여쭈시지요? [벌보말] : (벌떡 일어나) 수주촌 간 벌보말, 전하께 여쭙겠습니다. [눌지] : 말씀해 보시요! [벌보말] : 신라에서 말로나 글로나 무예로나 적국에 들어가 왕제를 구출해 낼 수 있는 언변이 능한 인물로는 삽량주 간 박제상 태수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눌지] : 상량주의 간 박제상 태수가 적임자이라? [벌보말] : 예, 전하(벌보말이 앉고 구리내가 일어난다.)... [눌지] : 쉬흔 여섯이라면 상늙은이가 아니요? 중대한 임무를 띄고 적국으로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소!, [벌보말] (벌떡 일어나) 아닙니다. 전하! 관설당 박 태수는 문무에 뛰어나 중원 땅의 역사에도 밝을 뿐 아니라 마술이며 활솜씨는 가히 달인의 경지인 줄로 아옵니다. [눌지] : 정녕 적임자다. 이 말이요?(좌중을 둘러본다). [일동] : (모두 일어난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눌지] : 그럽시다. 여러 중신들이 나를 구하시었소. 한시가 급합니다. 당장 삽량주로 왕명을 전하시오. 이제야 십여 년 전 동안 묵은 한을 풀려나 보오! 하하하, 하하하, [일동] : 금상 천하, 천천세! 천천세!(일동이 두 손을 들어 천천세를 외치며 환호한다. 서서히 막이 내린다).(三國史記 卷第45 列傳 第5 朴堤上條, 圓潭 金光燮 第2 戱曲集 帳幕 戱曲 1전 5막 17장, 忠節, 인터넷 야후 2001)
벌보말(伐寶靺)은 417년(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간(水酒村干, 醴泉郡守)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은 <신라 직관지> 외관조에 의하면, 중앙 관리의 ’사지‘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중앙의 ’사지‘ 벼슬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눌지왕이 즉위(417)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 일찍이 고구려와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두 아우인 미사흔과 복호를 데려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바 수주촌간 벌보말이 어질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묻기를, “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살아서 돌아오게 하기를 바라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였다.
벌보말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삽량주간 박제상이 용감하고 지혜와 모략이 있다 하니, 전하의 근심을 풀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을 불러 벌보말의 말을 하며 고구려와 일본에 다녀오기를 청하였다.
이상의 <삼국사기> 얘기를 원담 김광섭이 ‘충절’이라는 제목으로 희곡화하였다. 즉, ‘제2희곡집 장막 희곡 1전 5막 17장 충절’에 나온다.
벌보말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예천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신라의 영토로서 안정되어갈 무렵이었다. 이 무렵에 행정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수주촌이다.
(張炳昌 論說委員 醴泉新聞 20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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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수주촌(水酒村, 醴泉邑) 출신, 417년(신라 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간(水酒村干, 현 예천고을 원)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干)은 <신라 직관지(新羅職官志)> 외관조(外官條)에 의하면, 경관(京官)의 사지(舍知)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경관 사지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신라 제19대 눌지왕이 왕위에 오르자, 변사(辯士)를 보내어 왕의 동생들로서 외국에 인질로 잡혀간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를 맞아오려고 했는데, 수주촌(水酒村)의 간 벌보말(干伐寶靺) 등 3명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불러 묻기를, "내 아우 두 사람이 왜국과 고구려의 두 나라에 볼모로 가서 여러 해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형제의 정으로 생각하여 그칠 수 없으니, 제발 그들을 살아 돌아오도록 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면 되겠소?" 라고 하자. 3명은 같이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건대, 삽량주(揷良州)의 간(干) 박제상(朴堤上)은 강직하고 용감하며 지모(智謀)가 있다 하오니 전하의 근심을 풀어드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朴堤上)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고 3명의 말을 알리고, 왜국과 고구려로 가기를 청하니 박제상은 대답하기를, "신(臣)이 비록 어리석고 불초(不肖)하오나 감히 명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校正 三國史記 卷 45 列傳 第5 朴堤上條, 韓國의 思想大全集 3卷 金富軾條 118쪽, 韓國史話 李相玉著 東西出版社 61쪽, 慶北道義誌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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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수주촌 촌주이다. 신라 눌지마립간 때의 지방 촌주(村主), 눌지마립간은 즉위한 뒤 고구려와 왜국에 각각 볼모로 가있는 동생 복호(卜好)와 미사흔(未斯欣)을 데려오고자 하여 이 일을 맡을 적임자를 물색하였다. 이 때 수주촌(水酒村 : 지금의 예천군)의 촌주 벌보말이 일리촌주(一利村主) 구리내(仇里내) 및 이이촌주(利伊村主) 파로(波老)와 함께 삽량주간(揷良州干) 박제상(朴堤上)을 추천하였다. 신라 상대는 아직 중앙관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지방 촌주들의 영향력이 강하였는 바, 벌보말 또한 지방 촌주로서 눌지마립간 때에 유력자로서 활약한 듯하다.(三國史記, 三國遺事 南東信(韓國學中央硏究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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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보말(伐寶靺) : 417년(신라 눌지왕 1)에 재임한 수주촌 간(水酒村干, 現 醴泉고을 員)이다. 수주촌은 예천군을 말하고, 간(干)은 <신라 직관지(新羅職官志)> 외관조(外官條)에 의하면, 경관(京官)의 사지(舍知)에 준한다고 하였다. 그런즉 벌보말은 ‘수주촌의 간’이라고 하였으므로 경관 사지에 해당되는 예천고을 원이었다. 눌지왕이 즉위(417)하자 말 잘 하는 사람을 구해 가서 일찌기 고구려와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두 아우인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를 맞이해 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바 수주촌간 벌보말이 어질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묻기를, “나의 아우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2국에 볼모가 되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형제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살아서 돌아오게 하기를 바라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벌보말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삽량수 간(揷良州干) 박제상(朴堤上)이 용감하고 지모(智謀)가 있다 하니. 전하의 근심을 풀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박제상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여 벌보말의 말을 하며, 원행(遠行)을 청하였다. 원담(圓潭) 김광섭(金光燮)은 이상의 내용을 희곡화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內容] : 5세기 신라의 수주촌 간(水酒村干, 現 醴泉郡守), 제1막 제1장 신라 왕궁에서 흘리는 눌지마립간의 눈물/ [눌지] : ...바로 그 원수같은 실성왕만 아니었다면 오늘 날 내가 아리도 혈육과 흩어져 사는 단장의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요(옛 생각이 떠올라) ...선왕 실성은 즉위하자마자 왜국이 요구한다 하여 겨우 열 살 밖에 안된 막내 미사흔을 왜국으로 볼모로 보내고 어느 듯 17년이 세월이요, 무정한 세월 17년이 흘렀단 말이요! 아! 이 기막힌 짐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소이까?(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단장의 아픔을 토해낸다)... 어디 미사흔 아우 뿐이요? 고구려에 잡혀간 큰 아우 복호는 또 어찌 하오?... 그 아우도 선왕 실성이 즉위 11년 되는 해에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소. 그리고 어느 듯 7년의 세월이 흘렀소이다... [서불한] : 이 나라의 중신 중에 수주촌간 벌보말 등 촌주(村主) 세 사람이 지혜가 많고 현명하옵니다. 한 번 불러서 하문해 보심이 어떠하올지요? [눌지] : 좋소, 당장 궁으로 부르시요(暗電). 제1막 제2장 : (촌주 세 사람, 왕제 구출 대임을 맡을 적임자로 박제상을 천거, 전장과 동일한 왕궁 후원, 무대 위에 회의용 탁자가 준비되고, 중앙에 눌지마립간의 자리, 양쪽에 촌주 세 사람과 서불한 등 중신 여럿이서 주위에 신경을 쓰면서 숙의하고 있다. 이 때는 아직 눌지마립간이 등장하기 전이다. 지금은 사람의 이목을 패해 야외 중궁 모임이 조촐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 무대가 밝기 전, 어둠 속에 나타난 해설자에게 조명이 떨어진다). [解說者] : 이렇게 해서 눌지마립간은 촌주 세 사람을 왕궁으로 부릅니다. 걸핏하면 바다 건너에서 아귀같이 쳐들어오는 왜군과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신라의 땅에까지 군사를 보내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고구려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도 장소는 은밀한 곳이어야 했습니다. 자! 그럼, 무슨 중대한 이야기가 오가는지 함께 가볼실까요.(조명이 꺼지면서 해설자가 사라지면 무대가 밝아온다). [소리] : 마립간 전하! 납시요!(탁자를 둘러싸고 숙의 중이던 중신들 모두 일어나 눌지마립간을 영접한다. 눌지마립간 시종 없이 홀로 등장하여 읍을 하며 예를 표하는 중신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한다). [눌지] : 자, 자, 모두 앉읍시다.(자리에 앉는다). [서불한] : (선 채로) 상대등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으십시요(사이). (상대등이라고 지목된 중신들만 자리에 앉는다). [서불한] : (선 채로) 전하! 소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사이, 호명한다), 수주촌 간 벌모말 촌주! 전하께 인사 여쭈시오. [벌보말] : (읍하며) 예, 전하, 수주촌 간 벌보말, 인사 여쭙니다. [눌지] : 만나서 반갑소! [서불한] : 모두 앉으시요(서불한과 촌주 세 사람 자리에 앉는다), [눌지] : (마음 조리며), 그래, 무슨 묘책이라도 나왔소? [서불한] : 예, 전하께옵서 일구월심,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가 있는 형제분들을 그리워하시는 심정을 설명하고 두 분 왕제님들이 살아서 돌아올 방법이 없겠는지 세 분 촌주와 더불어 의논을 거듭했사옵니다. (촌주들에게) 촌주 어르신들, 여러분의 생각을 전하께 여쭈시지요? [벌보말] : (벌떡 일어나) 수주촌 간 벌보말, 전하께 여쭙겠습니다. [눌지] : 말씀해 보시요! [벌보말] : 신라에서 말로나 글로나 무예로나 적국에 들어가 왕제를 구출해 낼 수 있는 언변이 능한 인물로는 삽량주 간 박제상 태수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눌지] : 상량주의 간 박제상 태수가 적임자이라? [벌보말] : 예, 전하(벌보말이 앉고 구리내가 일어난다.)... [눌지] : 쉬흔 여섯이라면 상늙은이가 아니요? 중대한 임무를 띄고 적국으로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소!, [벌보말] (벌떡 일어나) 아닙니다. 전하! 관설당 박 태수는 문무에 뛰어나 중원 땅의 역사에도 밝을 뿐 아니라 마술이며 활솜씨는 가히 달인의 경지인 줄로 아옵니다. [눌지] : 정녕 적임자다. 이 말이요?(좌중을 둘러본다). [일동] : (모두 일어난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눌지] : 그럽시다. 여러 중신들이 나를 구하시었소. 한시가 급합니다. 당장 삽량주로 왕명을 전하시오. 이제야 십여 년 전 동안 묵은 한을 풀려나 보오! 하하하, 하하하, [일동] : 금상 천하, 천천세! 천천세!(일동이 두 손을 들어 천천세를 외치며 환호한다. 서서히 막이 내린다).(三國史記 卷第45 列傳 第5 朴堤上條, 圓潭 金光燮 第2 戱曲集 帳幕 戱曲 1전 5막 17장, 忠節, 인터넷 야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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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