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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2) : 원길(941재임)
작성자장병창 @ 2009.11.08 06:31:18
   예천고을원(2) : 원길(941 재임, 명봉사에 비를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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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길(元吉)은 941년(고려 태조 24)에 재임 중인 보주 호장(甫州 戶長)이었다.


  보주는 두 차례(940-1172, 1204-1443) 예천의 옛 행정 이름이다.

  호장은 당시 왕권이 약하여 중앙에서 고을 원(郡守)을 파견하지 못해 지방 세력가로서 고을 원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원길은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경내에 있는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세워진 때(941) 보주의 관반(官班)이기도 하였다.

  이 비를 세우는데, 예천 호장 원길은 물론 예천군청 직원인 순보(純保), 영희(英希) 등과 절이 있는 마을의 촌주(村主, 現 面長)인 길훤(吉萱), 이웃한 면장, 쇠 기술자, 돌 기술자 등이 참여했다.

  이 무렵인 936년(태조 19)에는 태조 왕건이 왕명으로 두운(杜雲) 선사를 위하여 창기사(昌期寺)를 중건해 ‘용문산 용문사(龍門山 龍門寺)’라는 현판을 내리고, 매년 공양미 150석을 베풀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최고 일선 지방의 승려로서 두운이 예천 지방의 호족들을 이끌어들여 힘껏 협조하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태조 왕건은 940년(태조 23) 3월에 예천군을 승격해 보주라고 고쳐 부르게 하고, 예천 소속 땅인 은정현(殷正縣)을 은풍현(殷豊縣), 영안현(永安縣)을 풍산현(豊山縣)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은픙현은 경내 명봉사에 그 이듬해 능운탑비를 세웠고, 두 차례(575-1018, 1923-현재)나 예천 소속이 되었는데, 현재 상리면과 하리면을 말한다.

  산양과 풍산은 1018년(현종 9)에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張炳昌 論說委員 醴泉新聞 20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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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길(元吉) : 941년(고려 태조 24)에 재임 중인 보주 호장(甫州戶長, 醴泉 郡守)이다. 보주는 고려 때 예천의 행정 이름이다. 당시 왕권이 약하여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하지 못해서 지방 호족(豪族)인 호장이 수령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원길은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경내에 있는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鳴鳳寺鏡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가 세워질 때(941)의 보주(甫州, 現 醴泉)의 관반(官班)이었다. 이 비문은 최언위(崔彦僞)가 지었고, 특히 이 비를 세우는데, 태조 왕건은 물론이고, 당시 국통(國統)을 비롯한 도당(道堂), 함혜(含惠), 혜윤(惠允) 등의 승려와 재가 제자(在家弟子)인 수문(秀文), 영회(英會) 등 13명의 신자, 보주 관반(甫州官班)인 원길(元吉), 순보(純保), 영희(英希), 절이 있는 마을(寺鄕)의 촌주(村主, 現 面長)인 길훤(吉萱), 그 외에도 촌주(村主), 쇠 기술자(鐵匠), 돌 기술자(石匠) 등이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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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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