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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6:유씨(1219이후-1249이전)
예천고을원(6) : 유씨(1219이후부임-1249이전이임, 문헌상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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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고려 최우 정권 때(1219-1249) 부임한 지보주사(知甫州事, 醴泉郡守)이다.
고려 때 예천에 고을 원이 처음 파견된 것은 1172년(고려 명종 2)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옛 <예천군읍지>들의 기록에는,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때의 예천고을 원 조운흘 한 사람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문헌들에서 발견한 고려 시대의 예천고을 원 중에 제일 시대가 오래된 사람이 바로 과거에 급제한 공기 유자원의 아버지이다.
유자원이 다섯 살 때 이미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한 구절씩 모아 하나의 시(聯句)를 만들 줄 알았다.
당시 집권자 최우가 불러서 화로 노(爐) 자로 시를 지으라고 하니, 즉석에서 읊기를, “화로에는 봉황같은 숯불이 쌓여 진양공(晋陽公 崔瑀)의 집안이 따뜻하도다”라고 하였다.
최우가 가상히 여겨 비단을 상으로 내리고 소원을 물으니, 말하기를, “저의 아버지를 벼슬에 바로 내려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최우가 그의 아버지를 보주(醴泉)의 고을 원(知甫州事)으로 임명하였다.
유자원은 후에 불교의 선종에 투신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여수(汝髓)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상의 사실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기록되어 있다.
1172년부터 기양현(基陽縣)이라고 고쳐 불려진 예천의 행정 이름은 1204년(신종 7)부터는 다시 보주로 승격되어 불리어져 1413년까지 내려간다.
1204년에 예천에서 경주 등지의 민란을 평정한 계기로 최씨 정권의 강력한 주장에 의하여 보주로 승격하여 지사를 두게 되었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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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柳)ᄋᄋ : 고려 최우(崔瑀) 집권 때(1219-1249)의 지보주사(知甫州事, 醴泉郡守)이다. 고려 때 예천에 수령이 처음 파견된 것은 1172년(명종 2)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옛 <예천군읍지>들의 기록에는,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때의 예천 수령 조운흘 한 사람만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문헌들에서 발견한 고려 시대의 예천 수령 중에 제일 시대가 오래된 분이 바로 급제한 공기(公器) 유자원(柳子源)의 아버지이다. 유자원이 5세에 이미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한 구절씩을 모아 하나의 시를 만들(聯句) 줄 알았다. 진양공 최우(晋陽公崔瑀)가 불러서 화로 노 자(爐字)를 부으니, 즉석에서 읊기를, "화로에는 봉황 같은 숯불이 쌓여 공후(公侯)의 집안이 따뜻하도다(爐堆鳳炭侯家暖)."라고 하였다. 최우가 가상히 여겨 비단을 상으로 내리고 소원을 물으니, 말하기를, "아버지에게 벼슬을 바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즉시 보주(甫州)의 원님으로 임명하였다. 유자원은 후에 선종(禪宗)에 투신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法名)은 여수(汝髓)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崔滋의 補閑集 卷下 54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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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고려 최우 정권 때(1219-1249) 부임한 지보주사(知甫州事, 醴泉郡守)이다.
고려 때 예천에 고을 원이 처음 파견된 것은 1172년(고려 명종 2)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옛 <예천군읍지>들의 기록에는,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때의 예천고을 원 조운흘 한 사람만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문헌들에서 발견한 고려 시대의 예천고을 원 중에 제일 시대가 오래된 사람이 바로 과거에 급제한 공기 유자원의 아버지이다.
유자원이 다섯 살 때 이미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한 구절씩 모아 하나의 시(聯句)를 만들 줄 알았다.
당시 집권자 최우가 불러서 화로 노(爐) 자로 시를 지으라고 하니, 즉석에서 읊기를, “화로에는 봉황같은 숯불이 쌓여 진양공(晋陽公 崔瑀)의 집안이 따뜻하도다”라고 하였다.
최우가 가상히 여겨 비단을 상으로 내리고 소원을 물으니, 말하기를, “저의 아버지를 벼슬에 바로 내려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최우가 그의 아버지를 보주(醴泉)의 고을 원(知甫州事)으로 임명하였다.
유자원은 후에 불교의 선종에 투신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여수(汝髓)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상의 사실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기록되어 있다.
1172년부터 기양현(基陽縣)이라고 고쳐 불려진 예천의 행정 이름은 1204년(신종 7)부터는 다시 보주로 승격되어 불리어져 1413년까지 내려간다.
1204년에 예천에서 경주 등지의 민란을 평정한 계기로 최씨 정권의 강력한 주장에 의하여 보주로 승격하여 지사를 두게 되었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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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柳)ᄋᄋ : 고려 최우(崔瑀) 집권 때(1219-1249)의 지보주사(知甫州事, 醴泉郡守)이다. 고려 때 예천에 수령이 처음 파견된 것은 1172년(명종 2)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옛 <예천군읍지>들의 기록에는,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 때의 예천 수령 조운흘 한 사람만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문헌들에서 발견한 고려 시대의 예천 수령 중에 제일 시대가 오래된 분이 바로 급제한 공기(公器) 유자원(柳子源)의 아버지이다. 유자원이 5세에 이미 여러 사람이 지은 시의 한 구절씩을 모아 하나의 시를 만들(聯句) 줄 알았다. 진양공 최우(晋陽公崔瑀)가 불러서 화로 노 자(爐字)를 부으니, 즉석에서 읊기를, "화로에는 봉황 같은 숯불이 쌓여 공후(公侯)의 집안이 따뜻하도다(爐堆鳳炭侯家暖)."라고 하였다. 최우가 가상히 여겨 비단을 상으로 내리고 소원을 물으니, 말하기를, "아버지에게 벼슬을 바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즉시 보주(甫州)의 원님으로 임명하였다. 유자원은 후에 선종(禪宗)에 투신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法名)은 여수(汝髓)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崔滋의 補閑集 卷下 54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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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