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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0:이회(1281부임)
예천고을원(10) : 이회(1281.8.14부임, 고려 충렬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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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는 1281년(충렬왕 7) 8월 14일에 부임한 보주 부사(甫州副使, 現 醴泉郡守)이다.
원래 안동 판관으로 있었는데, 충렬왕이 공주와 함께 예천을 거쳐 안동에 이르자, 백성들의 재물과 노력을 아끼어 쓸 데 없는 비용을 절약하기로 노력하였고, 또 거행을 잘못하였으므로 내료(內僚)들이 모두 다 그를 비난하였다.
그래서 왕이 이회를 예천고을 원으로 좌천시키고, 예천고을 원 박린과 교체하였다.
이회가 예천고을 원을 하던 충렬왕 때 유천면 성평리 덕달 뒷들(後坪)에서 살던 권한공(權漢功)이 문과에 급제하고 직사관 벼슬에 있다가 왕명으로 원 나라에 가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그 후 충렬왕과 세자(충선왕)가 함께 원 나라에 머물렀는데, 왕유소 등이 임금의 부자를 이간질하였다.
이 때 권한공은 세자 편을 들었고, 세자가 충선왕이 되자, 그는 왕을 시종하면서 충선왕 저택에서 머물면서 인사권을 주관했다.
그는 왕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가죽띠를 상으로 받았고, 언제나 궁궐 안에 출입할 수 있었고, 시도때도 없이 왕의 부름을 받았다.
심지어 왕이 궁궐 문에 방을 붙여 이르기를, “권한공, 최유(崔濡, 龍宮 사람) 등 21명 외에는 특별히 부르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벼슬은 계속 뛰어올라 첨의부 평리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원 나라에 가서 서울 만권당에서 고려 사람 이제현과 함께 책을 읽으며 문명을 떨쳤다. 그 후 권한공의 벼슬이 정승에까지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이 되었고, 그의 아들 중화(仲和)도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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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 : 1281년(충렬왕 7) 8월 14일에 부임한 보주 부사(甫州副使, 醴泉郡守)이다. 안동 판관에서 보주 부사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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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 : 고려 충렬왕 때의 보주 부사(甫州副使, 醴泉郡守, 1281-?)이다.(朴璘條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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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는 1281년(충렬왕 7) 8월 14일에 부임한 보주 부사(甫州副使, 現 醴泉郡守)이다.
원래 안동 판관으로 있었는데, 충렬왕이 공주와 함께 예천을 거쳐 안동에 이르자, 백성들의 재물과 노력을 아끼어 쓸 데 없는 비용을 절약하기로 노력하였고, 또 거행을 잘못하였으므로 내료(內僚)들이 모두 다 그를 비난하였다.
그래서 왕이 이회를 예천고을 원으로 좌천시키고, 예천고을 원 박린과 교체하였다.
이회가 예천고을 원을 하던 충렬왕 때 유천면 성평리 덕달 뒷들(後坪)에서 살던 권한공(權漢功)이 문과에 급제하고 직사관 벼슬에 있다가 왕명으로 원 나라에 가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그 후 충렬왕과 세자(충선왕)가 함께 원 나라에 머물렀는데, 왕유소 등이 임금의 부자를 이간질하였다.
이 때 권한공은 세자 편을 들었고, 세자가 충선왕이 되자, 그는 왕을 시종하면서 충선왕 저택에서 머물면서 인사권을 주관했다.
그는 왕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가죽띠를 상으로 받았고, 언제나 궁궐 안에 출입할 수 있었고, 시도때도 없이 왕의 부름을 받았다.
심지어 왕이 궁궐 문에 방을 붙여 이르기를, “권한공, 최유(崔濡, 龍宮 사람) 등 21명 외에는 특별히 부르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벼슬은 계속 뛰어올라 첨의부 평리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원 나라에 가서 서울 만권당에서 고려 사람 이제현과 함께 책을 읽으며 문명을 떨쳤다. 그 후 권한공의 벼슬이 정승에까지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이 되었고, 그의 아들 중화(仲和)도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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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 : 1281년(충렬왕 7) 8월 14일에 부임한 보주 부사(甫州副使, 醴泉郡守)이다. 안동 판관에서 보주 부사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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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檜) : 고려 충렬왕 때의 보주 부사(甫州副使, 醴泉郡守, 1281-?)이다.(朴璘條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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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