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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3-3:하윤(1372부임)
작성자장병창 @ 2010.02.06 06:16:59
  예천고을원(13-3) : 하윤(1372부임, 영의정까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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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월 10일 을해 5번째 기사/ 경연에서 한나라 때의 삼로, 오경과 불교의 길흉화복, 사뢰 등에 대해 배중륜․하윤과 논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한(漢)나라의 삼로(三老)․오경(五更)117) 의 일을 물으니, 시강관(侍講官) 배중륜(裵仲倫)이 대답하기를, ꡒ옛적에 명제(明帝)가 삼로․오경을 높였는데, 마치 우리 국조에서 국사(國師)․왕사(王師)를 높이는 것과 같았습니다.ꡓ하였다. 지경연사(知經筵事) 하윤(河崙)이 말하기를, ꡒ전하가 점점 부처에게 혹하는 폐단이 있습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과인이 부처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혹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불씨(佛氏)가 화복(禍福)으로 사람에게 보인 것은 잘못이다.ꡓ하였다. 하윤(河崙)이 대답하기를, ꡒ불씨(佛氏)가 모두 미견(未見)과 미래(未來)를 가지고 인심을 현혹(眩惑)시키기 때문에, 감히 평탄한 사응(事應)을 가지고 말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성인이 그 옳은 것 같으면서도 그른 것을 미워한 것입니다. 만일 화복을 가지고 말한다면, 옛적에 석씨가 세상에 있을 때에, 도적이 그 일족(一族)을 심히 많이 죽이었는데, 석씨(釋氏)가 어찌하여 미리 말해서 그 화를 면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화복의 말이 그른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사리(舍利)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ꡓ하니, 하윤이 대답하기를, ꡒ이것은 정기(精氣)가 뭉친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수련(修鍊)하면, 모두 사리(舍利)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 큰 조개가 보주(寶珠)가 있고, 뱀이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니, 뱀과 조개가 어찌 물건의 착한 것이어서 홀로 이것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정기가 뭉친 것뿐입니다.ꡓ하니, 임금이 웃었다./ 【영인본】 1 책 161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註 117]삼로(三老)․오경(五更) : 주(周)나라 때부터 설치한 천자의 스승. 천자가 부형(父兄)의 예로 대접하였는데, 삼로(三老)는 삼덕(三德: 正直․剛․柔)을 아는 자, 오경(五更)은 오사(五事:貌․音․視․聽․思)를 아는 자를 말함.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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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월 24일 기축 3번째 기사/ 서운관 등에서 재이를 불교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음을 아뢰다/ 서운관(書雲觀)에서 상언(上言)하였다. ꡒ재이(災異)의 견고(譴告)는 불신(佛神)에게 빌어서 그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천변에 대답하소서.ꡓ 지경연사(知經筵事) 하윤(河崙)이 말하였다. ꡒ부처라는 것은 서역(西域)의 오랑캐 신[胡神]인데, 옛날에 서토(西土) 사람이 횡역(橫逆) 무도(無道)하므로, 석가(釋迦)가 주(周)나라 강왕(康王) 때에 나와 널리 화복(禍福)의 설을 떠벌려서 인민을 속이고 달래었습니다.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에 미쳐 그 법이 중국에 흘러 들어왔는데, 그 뒤부터 사람들이 대개 숭상하고 믿었습니다. 대개 불법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도(道)가 아니고, 온전히 인과(因果) 화복(禍福)으로 말을 합니다. 사람의 생사(生死) 수요(壽夭)가 모두 명수(命數)에 관계되니, 불씨(佛氏)가 어찌 능히 목숨을 길게 하고 짧게 하겠습니까? 하물며, 불법이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는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이 나이 거의 1백 세이었는데, 그 법이 중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사람이 일찍 죽은 사람이 많았으니, 불법이 소용이 없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석씨(釋氏)가 말하기를, ꡐ낳고 낳아서 멸하지 않는다.ꡑ 하였으니, 진실로 그 말과 같다면, 석가가 어찌하여 79세만 살고 죽었겠습니까? 석가의 종형제로서 도적에게 해(害)를 당한 자가 있었는데, 석가가 말하기를, ꡐ전인(前因)은 피하기 어렵다.ꡑ 하였으니, 만일 실지로 전인(前因)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미리 말해서 그 화를 면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전인(前因)을 피하기 어렵다면, 비록 부처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인이라고 말하면서 골육(骨肉)의 환란을 앉아서 보고, 오히려 구원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지금 천년 뒤에 군신(君臣)의 화복을 능히 할 수 있겠습니까? 불신(佛神)에게 기도하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분명합니다.ꡓ 임금이 말하기를, ꡒ그렇다. 나도 또한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지 않는다.ꡓ하고, 또 말하기를, ꡒ석씨(釋氏)의 도를 천하 사람이 모두 믿는 것은 반드시 참[眞]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ꡓ 하니, 지경연사(知經筵事) 권근(權近)이 말하였다. ꡒ사람이 형상을 받아서 태어나는 것은 오행(五行)118) 의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행(五行)의 이치가 마음에 있어서 오상(五常)119) 이 되고, 오행의 성쇠(盛衰)로 명(命)을 알고 오행의 실상(失常)으로 병(病)을 아니, 이것은 현연(現然)한 밝은 징험입니다. 석가(釋家)에서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형상을 받아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무식한 것입니다.ꡓ 임금이 옳게 여겼다./ 【영인본】 1 책 161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註 118]오행(五行) : 만물을 생성하는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5 원소(元素). 오행상생(五行相生)과 오행상극(五行相克)의 이치로 만물을 지배한다고 함. ☞ / [註 119]오상(五常) : 사람이 항상 행(行)하여야 하는 5가지 바른 행실. 곧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또는 아버지의 의(義), 어머니의 자(慈), 형의 우(友), 동생의 공(恭), 아들의 효(孝)를 말함.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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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월 28일 갑오 3번째 기사/ 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을 토산에 추방하다/ 회안공(懷安公) 이방간(李芳幹)을 토산(兎山)에 추방하였다. 방의(芳毅)․이방간(李芳幹)과 정안공(靖安公)은 모두 임금의 동복 아우였다. 임금이 적사(嫡嗣)가 없으니, 동복 아우가 마땅히 후사(後嗣)가 될 터인데, ...우현보가 그 아들 우홍부(禹洪富)를 시켜 정안공에게 고하였다. 이날 밤에 정안공이 하윤(河崙)․이무(李茂) 등과 더불어 응변(應變)할 계책을 비밀히 의논하였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하윤(河崙)이 아뢰기를, ꡒ교서(敎書)를 내려 달래면 풀 수 있을 것입니다.ꡓ하니, 곧 하윤에게 명하여 교서를 짓게 하였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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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2월 1일 병신 1번째 기사/ 하윤 등이 정안공을 세자로 세우기를 청하니, 세자로 삼는다는 전지를 내리다/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하윤(河崙) 등이 청하였다. ꡒ정몽주(鄭夢周)의 난에 만일 정안공(靖安公)이 없었다면, 큰 일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고, 정도전(鄭道傳)의 난에 만일 정안공이 없었다면, 또한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또 어제 일로 보더라도 천의(天意)와 인심(人心)을 또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청하건대, 정안공을 세워 세자(世子)를 삼으소서.ꡓ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卿) 등의 말이 심히 옳다.ꡓ하고, 드디어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에게 명하여 도당(都堂)에 전지(傳旨)하였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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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2월 1일 병신 2번째 기사/ 삼성(三省)에서 방간을 복주하기를 청하다. 박포를 국문하고, 연루자를 모두 처벌하다/ 삼성(三省)이 교장(交章)하여 방간을 복주(伏誅)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명하여 대간(臺諫)과 형조(刑曹)와 더불어 교좌(交坐)하여 박포(朴苞)를 국문하게 하니,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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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3월 8일 계유 5번째 기사/ 경연에서 하윤이 군자와 소신을 잘 분별하여 인재를 채용할 것을 말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지사(知事) 하윤(河崙)이 말하기를, ꡒ군자(君子)가 지위를 얻으면, 소인이 물러가고 나라가 흥하며, 소인이 세력을 얻으면, 군자가 물러가고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쓰고 버리는 사이에 인군의 살핌이 있어야 합니다.ꡓ하니, 임금이 깊이 받아들였다. 하윤이 또 말하였다. ꡒ봄이 따스하면 점차 여름의 열기(熱氣)가 이르고, 가을이 서늘하면 점차 겨울의 한기(寒氣)가 이르는 것입니다. 소인이 일을 하게 되면, 그 틈을 타서 점차 군자를 해쳐 환란이 장차 이르게 되니, 귀한 것은 일찍 변별하는 데에 있습니다.ꡓ 임금이 말하였다. ꡒ누가 시비의 분변을 알지 못할까마는, 다만 행하는 것이 미치지 못한다.ꡓ/ 【영인본】 1 책 167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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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3월 18일 계미 1번째 기사/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번개도 치니 변괴의 징조인가를 왕이 하윤에게 묻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번개도 쳤다. 이튿날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하윤(河崙)에게 묻기를, ꡒ어제 비 오고 천둥 치고 번개가 친 것은 어떠한가?ꡓ하니, 하윤(河崙)이 말하였다. ꡒ봄의 우레는 요괴(妖怪)가 아닙니다. 만물이 진동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때입니다.ꡓ하였다./ 【영인본】 1 책 167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思想)(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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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4월 6일 신축 10번째 기사/ 문하 시랑찬성사 하윤에게 명하여 관제를 다시 정하다/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하윤(河崙)에게 명하여 관제(官制)를 다시 정하게 하였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고쳐 의정부(議政府)로 하고, 중추원(中樞院)을 고쳐 삼군부(三軍府)로 하여, 직임이 삼군(三軍)을 맡은 자(者)는 삼군에만 전적으로 나가게 하고, 의정부에는 참예하지 못하게 하고, 좌복야(左僕射)․우복야(右僕射)를 고쳐 좌사(左使)․우사(右使)로 하고, 다시 예문관(藝文官)의 태학사(太學士) 1원(員)․학사(學士) 2원(員)을 두고, 중추원 승지(中樞院承旨)를 고쳐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로 하고, 도평의사사 녹사(都評議使司錄事)를 고쳐 의정부 녹사(議政府錄事)로 하고, 중추원 당후(中樞院堂後)를 승정원 당후(承政院堂後)로 하였다. 조준(趙浚)으로 평양백(平壤伯)을 삼고, 이화(李和)로 영삼사사(領三司事)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를 삼고, 이거이(李居易)로 판문하부(判門下府) 의정부사(議政府事)를 삼고, 성식린(成石璘)으로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를 삼고, 민제(閔霽)로 판의정부사를 삼고, 성석린의 공신호를 고쳐 동덕 찬화(同德贊化)라 하고, 민제를 동덕 좌명(同德佐命)이라 하고, 아울러 녹군국중사(錄軍國重事)를 가(加)하고, 정탁(鄭擢)으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태학사(太學士)를 삼고, 도총제(都摠制) 이하는 의정부사(議政府事)를 겸하지 못하게 하고, 정구(鄭矩)를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로 삼았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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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5월 8일 임신 5번째 기사/ 경연에서 지경연사 하윤이 경연의 중요성을 말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지경연사(知經筵事) 하윤(河崙)이 말하였다. ꡒ고려 신씨(辛氏)가 처음 즉위하여서는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고, 또 서연(書筵)을 설치하여 유사(儒士)를 뽑아 두고 날마다 배움에 나가니, 당시의 경상(卿相) 등이 모두 말하기를, ꡐ명군(明君)이 나왔다.ꡑ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간사한 소인의 무리가 꼬이기를, ꡐ말을 달리고 칼을 쓰는 일은 젊었을 때부터 배우는 것이 제일입니다.ꡑ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학문을 폐하고 사냥하기를 좋아하며 성색(聲色)에 빠져 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ꡓ 임금이 말하였다. ꡒ그렇다. 내가 그때에 서연 시독관(書筵侍讀官)이 되었는데, 왕이 싫어하여 나에게 장군(將軍)의 직임(職任)을 주고, 날마다 시중(侍中) 임견미(林堅味)의 아들 임치(林緻) 등 두세 사람과 더불어 사냥하는 것을 익혔었다. 나는 늙었으니 배울 수 없지마는, 인주(人主)는 나이 젊었을 때를 당하여 날마다 유신(儒臣)과 더불어 치도(治道)를 강론하면 어찌 도움이 없겠는가?ꡓ/ 【영인본】 1 책 173 면/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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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5월 8일 임신 7번째 기사/ 이천우를 완산후로 봉하고, 이지란․우인렬․하윤․조온․이거이․이저․이무 등의 관직을 명하다/ 이천우(李天祐)를 봉하여 완산후(完山侯)를 삼고, 이지란(李之蘭)으로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를, 우인렬(禹仁烈)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하윤(河崙)으로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를 삼고, 다시 조온(趙溫)으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삼고, 이거이(李居易)를 영계림부윤(領?林府尹)으로, 이저(李佇)를 영완산부윤(領完山府尹)으로 폄척(貶斥)시키고, 이무(李茂)로 동북면(東北面)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 겸 영흥 부윤(永興府尹)을 삼았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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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2일 을미 5번째 기사/ 경연에서 임금이 탄일에 각도 방물전을 없애고자 하다. 문관에게 중시를 보이게 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예조에서 탄일(誕日)에 각도에서 진헌(進獻)한 방물장(方物狀)을 올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탄일의 각도 방물전(方物箋)은 정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없다. 하물며, 한참 바쁜 농사 때에 그 폐단이 심히 많으니, 이를 없애고자 한다.ꡓ하였다. 지경연사(知經筵事) 하윤(河崙)이 말하기를, ꡒ탄일의 방물전은 옛날부터 있은 것이니, 폐할 수 없습니다.ꡓ하였다. 도승지(都承旨) 정구(鄭矩)가 또한 하윤의 뜻으로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하윤․이첨(李詹) 등이 《통감강목(通鑑綱目)》을 진강(進講)하여 끝마치고, 하윤이 인하여 임금에게 말하였다. ꡒ대저 유자(儒者)가 과거에 오르면 책을 버리고 강론하지 않습니다. 문관(文官)을 시험하여 보면, 직책에 마땅치 않은 이가 많습니다. 이제부터 각 해에 급제한 사람을 모두 중시(重試)를 보게 하여, 탁용(擢用)에 대비하소서.ꡓ 임금이 옳게 여겼다./ 【영인본】 1 책 175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재정-진상(進上) /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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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2일 을미 7번째 기사/ 경연에서 지경연사 하윤이 《위기》를 진강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지경연사(知經筵事) 하윤(河崙)이 《위기(魏紀)》를 진강(進講)하다가 순명 책실(循名責實)170) 이라는 말에 이르러서 말하였다./ ꡒ공명(孔明)171) 의 이 말은 대개 사람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을 말한 것입니다. 대저 대신이 되면 그 도리를 다하고, 사관(史官)이 되면 그 직책을 다하여서, 일용(日用)의 사이에 이르기까지 범사(凡事)에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공명(孔明)이 죽을 때에 임하여 사람을 천거한 것이 공염(公琰)172) ․문위(文偉)173) 에 불과한 것을 보면, 당시의 순명 책실(循名責實)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ꡓ/ 【영인본】 1 책 176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註 170]순명 책실(循名責實) : 이름에 따라 실상을 책임지우는 것. 곧 그 자리에 있으면 책임을 진다는 뜻. ☞ / [註 171]공명(孔明) : 제갈양(諸葛亮). ☞ / [註 172]공염(公琰) : 삼국(三國) 시대 촉(蜀)나라의 정치가 장완(蔣琬)의 자(字). 제갈양(諸葛亮)이 천거하여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고, 뒤에 양정후(陽亭侯)에 봉해졌음. ☞ / [註 173]문위(文偉) : 삼국 시대 촉(蜀)나라의 정치가 비위(費褘)의 자(字). 태자 사인(太子舍人)․시중(侍中)․상서령(尙書令)을 지내고 뒤에 성향후(成鄕侯)에 봉해졌음.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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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2일 을미 14번째 기사/ 내상 하윤․조온․이직․정남진․조진․이숙번에게 양죽립과 사피화를 하사하다/ 내상(內相) 하윤(河崙)․조온(趙溫)․이직(李稷)․정남진(鄭南晉)․조진(趙珍)․이숙번(李叔蕃)에게 양죽립(?竹笠)과 사피화(斜皮靴)를 각각 하나씩 하사하였다./ 【영인본】 1 책 176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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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16일 기유 3번째 기사/ 태상왕의 존호를 올리기 위해 봉숭 도감을 설치하다/ 봉숭 도감(封崇都監)을 설치하였으니, 장차 태상왕의 존호(尊號)를 올리려 함이었다. 정승(政丞) 성석린(成石璘)․민제(閔霽)․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하윤(河崙)으로 제조(提調)를 삼았다./ 【영인본】 1 책 176 면/ 【분류】 *왕실(王室)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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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20일 계축 4번째 기사/ 하윤의 제의로 종묘 제사에 쓸 향을 받아 갈 때 행하는 예를 고치다/ 종묘(宗廟) 제사에 향을 받는 예[受香禮]를 고쳤다.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하윤(河崙)이 아뢰었다./ ꡒ재신(宰臣)이 장차 종묘에 나가려 하여 향(香)을 받을 때에, 전하가 비록 예를 갖추어 친히 전(傳)하지는 못하더라도, 청하건대,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분향(焚香)하여 공경을 다해 전수(傳授)하소서.ꡓ/ 이 뒤부터 임금이 의관을 정제하고 침문(寢門) 밖에 나가서 분향(焚香)하고 꿇어앉아주고, 두 손을 맞잡고 서서 재신이 문으로 나가는 것을 기다려서 도로 입내(入內)하였다./ 【영인본】 1 책 177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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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5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7월 2일 을축 5번째 기사/ ...태상왕이 좌정승 성석린(成石璘)․우정승 민제(閔霽)․판삼군부사 하윤(河崙)에게 각각 구마(廐馬) 1필, 단초(段?) 각각 1필을 하사하고, 삼사 좌사(三司左使) 이직(李稷)․참판삼군부사(參判三軍府事) 최유경(崔有慶)․첨서(簽書) 이문화(李文和)․전서(典書) 한상경(韓尙敬) 등에게 단초 각각 1필을 하사하였으니, 모두 봉숭(封崇)하는 예(禮)에 집사(執事)한 사람들이었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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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5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8월 1일 계사 2번째 기사/ 평양백 조준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가 석방. 무고한 조박과 권진을 귀양보내다/ ...우정승 민제(閔霽)가 비밀히 윤저에게 말하기를, ꡒ조준 등이 나와 하윤(河崙)을 해치고, 인연을 맺어 세자에게 미치려고 한다. 지금 잡혀 갇혔으니, 끝까지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ꡓ하였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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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5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9월 8일 기사 2번째 기사/ 성석린이 어머니가 늙었다고 사직하기를 비니 창녕백으로 봉하다/ 성석린(成石璘)이 어머니가 늙었다고 하여 걸사(乞辭)하기를 심히 간절하게 하니, 성석린으로 창녕백(昌寧伯)을 봉하고, 이거이(李居易)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민제(閔霽)로 좌정승(左政丞)을, 하윤(河崙)으로 우정승(右政丞)을, 우인렬(禹仁烈)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이무(李茂)로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를, 이서(李舒)로 판승녕부사(判承寧府事)를, 조영무(趙英茂)로 문하 시랑찬성사(門中侍郞贊成事)를, 조온(趙溫)으로 삼사 좌사(三司左使)를, 정구(鄭矩)로 대사헌(大司憲)을, 박석명(朴錫命)으로 도승지(都承旨)를 삼았다./ 【영인본】 1 책 18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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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0월 11일 임인 4번째 기사/ 전부에 관한 법을 고치는 데 대한 불만으로 좌정승 민제가 병을 칭탁하여 사진하지 않다/ 좌정승 민제(閔霽)가 병을 칭탁하고 사진(仕進)하지 않았다. 이 앞서 우정승 하윤(河崙)이 말하였었다. ꡒ우리나라 전부(田賦)의 법은 고르지 못합니다. 무릇 민호(民戶)로 된 자가, 혹 전지를 경작하는 것은 많은데 복역(服役)하는 것이 적고, 혹 전지를 경작하는 것은 적은데 복역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제부터 경작하는 것의 많고 적은 것으로 그 부역(賦役)의 수를 정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ꡓ민제가 다투어 말하였다. ꡒ법이 이처럼 까다로우면 민심이 떠납니다. 어떻게 오늘날에 행할 수 있겠습니까?ꡓ 이때에 이르러 병을 칭탁하고 사진하지 아니하였다. 하윤이 경력(經歷) 이관(李灌)을 시켜 이 법을 행할 것을 청하여 아뢰었으나, 일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는데, 민제가 이관에게 허물을 돌리어 말하였다. ꡒ반드시 이 사람이 죄를 받은 뒤에야 출사(出仕)하겠다.ꡓ/ 【영인본】 1 책 184 면/ 【분류】 *재정-역(役) /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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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0월 15일 병오 7번째 기사/ 유구 국왕 찰도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고 또 왕세자에게 예물을 바치다/ 유구 국왕(琉球國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어 전(箋)을 받들고 방물을 바치고, 또 왕세자(王世子)에게 예물을 바쳤다. 그 나라 세자(世子) 무령(武寧)이 또한 왕세자에게 예물을 바쳤다. 사자가 따로 방물을 좌․우 정승 민제(閔霽)․하윤(河崙)에게 보내니, 민제와 하윤이 모두 받지 않았다. 전교(傳敎)하기를, ꡒ유구국이 만일 불의(不義)로써 와서 바쳤다면, 나와 세자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저 사람들이 멀리 바다를 건너와서 성의로 빙례(聘禮)하는데, 지금 경들이 물리친다면, 저들이 반드시 ꡐ어떤 마음이 있어서 받지 않는다.ꡑ고 할 것이니, 받고서 후히 갚는 것이 가할 것이다.ꡓ하니, 좌․우 정승이 대답하기를, ꡒ사사 집에서 받을 수 없으므로, 도당(都堂)에 앉아서 받아 좌우(左右)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 것뿐입니다. 지금 신에게 받으라고 명령하시니 받겠습니다.ꡓ하고, 드디어 받았다./ 【영인본】 1 책 185 면/ 【분류】 *외교-유구(琉球)(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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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2월 1일 신묘 1번째 기사/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전에 나아가 옥책과 금보를 올리고 헌수하다/ ...상왕(上王)이 정전(正殿)에 앉아 하례를 받고, 책봉(冊封) 집사관(執事官) 정승 이거이(李居易)․하윤(河崙)에게 각각 말 1필, 단(段)․견(絹) 각각 1필을 하사하고, 찬성사 조영무(趙英茂)․판삼군부사 이무(李茂)․삼사 우복야 이직(李稷)과 조박(趙璞)․조진(趙珍)․윤저(尹抵)․김약채(金若采)․윤자당(尹子當)에게 모두 단․견 각각 1필씩을 하사하였다. 임금이 안에서 헌수하였는데, 공후(公侯)와 정승 이거이(李居易) 등이 시연(侍宴)하고, 임금과 신하가 모두 일어나 춤추면서 지극히 즐거워하다가 파하였다./ 【영인본】 1 책 187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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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2월 1일 신묘 8번째 기사/ 하윤이 인재를 천거하는 데 전단하는 것을 이거이가 미워하다/ 좌정승 이거이(李居易)․우정승 하윤(河崙) 등이 모두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로서 정방(政房)218) 에 있었는데, 하윤이 현량(賢良)을 천거하니, 이거이가 하윤의 전단하는 것을 미워하여 물러나와 아들 이저(李佇)에게 말하기를, ꡒ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큰 일인데, 하윤이 나와 의논하지 않으니, 어찌할꼬?ꡓ하니, 이저가 말하기를, ꡒ임금께 아뢰어야 합니다.ꡓ하였다. 이거이가 말하기를, ꡒ다툴 것이 있겠느냐!ꡓ하였다./ 【영인본】 1 책 188 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註 218]정방(政房) : 여말 선초(麗末鮮初) 때에 정무(政務)를 행하던 곳. 고려 고종(高宗) 12년에 최이(崔怡)가 사저(私邸)에 처음 설치하였음. 정승 등이 모여서 전주(銓注) 등의 일을 보았음.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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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2월 22일 임자 2번째 기사/ 수창궁이 화재를 당하다. 사관 노이가 사책을 건지다/ 수창궁(壽昌宮)226) 이 화재를 당하였다. 사약(司?)이 실화(失火)하여 침실(寢室)에서 시작해서 대전(大殿)에까지 불길이 미치었는데, 여흥백(驪興伯) 민제(閔霽)․판문하(判門下) 김사형(金士衡)․좌정승 이거이(李居易)․우정승 하윤(河崙)이 모두 모여 불을 구제하였다. 임금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ꡒ궁궐은 이미 불타서 구제할 수가 없으니, 사람이나 상하지 말게 하라.ꡓ하였다. 이때에 사고(史庫)가 수창궁 안에 있었는데, 입직하던 사관(史官) 노이(盧異)가 사고(史庫)를 열고 손수 사책(史冊)을 꺼내었다./ 【영인본】 1 책 189 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군사-금화(禁火) / *역사(歷史)/ [註 226]수창궁(壽昌宮) : 여말 선초(麗末鮮初)에 정전(正殿)으로 사용하던 궁궐. 공민왕 때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연경궁(延慶宮)이 불타자, 처음으로 정전으로 사용하여, 그후 우왕․창왕․공양왕은 물론 조선조 태조 이성계(李成桂)도 여기에서 즉위하였음. 태종 4년에 실화(失火)로 완전히 불타, 한양으로 환도(還都)하였음.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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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정종실록 6권/ 정종 2년( 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12월 22일 임자 3번째 기사/ 천도 문제를 의논하다. 서운관에 명하여 술수에 관한 그림이나 서적을 금하도록 명하다/ 술수(術數)에 관한 그림이나 서적을 금하도록 명하였다. 한양에 환도하기를 의논하는데,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 이하 문신(文臣) 10여 인에게 이르기를, ꡒ불행히 화재가 있었으니, 경 등은 서운관(書雲觀)의 비밀 도적(?密圖籍)을 상고하여 천도(遷都)의 이해를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ꡓ하니, 이때에 의논이 분운(紛?)하여 정해지지 못하였는데, 우정승 하윤(河崙)이 건의하기를, ꡒ마땅히 무악(毋岳)에 도읍하여야 합니다.ꡓ하였다. 임금이 여러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ꡒ지금 참위(讖緯) 술수(術數)의 말이 이러쿵저러쿵 그치지 않아 인심을 현혹(眩惑)하게 하니, 어떻게 처리할까?ꡓ하니, 여러 재상이 모두 말하기를, ꡒ따를 수 없습니다.ꡓ하였으나, 대사헌(大司憲) 김약채(金若采)는 홀로 그대로 따라야 된다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신도(新都)는 부왕께서 창건하신 것이니, 어찌 반드시 따로 도읍을 세워서 백성을 수고롭게 하겠는가?ꡓ하고, 드디어 서운관에 명하여 술수(術數)․지리(地利)에 관한 서적을 감추도록 하였다./ 【영인본】 1 책 189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출판(出版)(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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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조선왕조실록/ 총서/ ...하윤(河崙)이 여흥 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와 동지(同志)의 친구이었는데, 윤(崙)이 본래 사람의 상보기를 좋아하여, 제에게 말하기를, ꡒ내가 사람을 상 본 것이 많지마는, 공(公)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없었소. 내가 뵙고자 하니 공은 그 뜻을 말하여 주시오.ꡓ하였다. 제(霽)가 태종에게 말하기를, ꡒ하윤이 군(君)을 보고자 한다.ꡓ하였다. 태종이 만나보니, 윤이 드디어 마음을 기울여 섬기였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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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15일 을해 2번째 기사/ 이저․이거이 등에게 좌명공신의 훈호를 내리는 교서/ 좌명(佐命)한 공(功)을 기록하여 4등(等)으로 하고, 하교(下敎)하였다. ꡒ지난날에 역신(逆臣) 박포(朴苞)가 해할 마음을 품고, 몰래 회안(懷安) 부자(父子)를 끼고 우리 골육을 해하기를 꾀하여, 마침내 군사를 들어 대궐로 향함에 이르러, 흉역(凶逆)을 자행하여 종사(宗社)의 안위(安危)가 순간(瞬間)에 있었는데,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조영무(趙英茂)․좌군 총제(左軍摠制) 이숙번(李叔蕃)․중군 총제(中軍摠制) 민무구(閔無咎)․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신극례(辛克禮)․여성군(驪城君) 민무질(閔無疾) 등 아홉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의(義)에 따르고 사기(事機)에 응하여 계책을 정해서, 화란(禍亂)을 평정하고 종사(宗社)를 편안히 하여, 충성을 다해 좌명(佐命)하였으니, 1등(等)으로 칭하(稱下)하고, 부(父)․모(母)․처(妻)는 3등(等)을 뛰어 봉증(封贈)하고, 직계 아들은 3등을 뛰어 음직(蔭職)을 주고, 직계 아들이 없으면, 조카와 사위를 2등을 뛰어 밭 1백 50결(結), 노비 13구(口), 백은(白銀) 50냥(兩), 표리(表裏)19) 1단(段), 구마(廐馬) 1필, 구사(丘史) 7명, 진배파령(眞拜把領) 10명을 주고, 처음 입사(入仕)하는 것을 허락한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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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25일 을유 4번째 기사/ 공․후․백의 작호를 부원 대군․부원군․군으로 고치다/ 공(公)․후(侯)․백(伯)의 호(號)를 고치었으니, 참람되게 중국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익안공(益安公) 이방의(李芳毅)․회안공(懷安公) 이방간(李芳幹)은 모두 고쳐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봉하고, 봉녕후(奉寧侯) 복근(福根)․영안후(寧安侯) 양우(良祐)․완산후(完山侯) 천우(天祐)와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청원후(靑原侯) 심종(沈淙)은 모두 고쳐 군(君)으로 봉하고,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예천백(醴川伯) 권중화(權中和)․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여흥백(驪興伯) 민제(閔霽)․서원백(西原伯) 이거이(李居易)․진산백(晉山伯) 하윤(河崙)은 모두 고쳐 부원군(府院君)으로 봉하고, 단산백(丹山伯) 이무(李茂)는 고쳐 단산군(丹山君)으로 삼았다./ 【영인본】 1 책 195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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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2월 9일 무술 2번째 기사/ 영안군이 모반을 꾀한다고 무고한 변남룡 부자를 기시(棄市)하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변남룡(卞南龍)과 그의 아들 변혼(卞渾)을 저자에서 베[棄市]고, 그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였다. 남룡은 하윤(河崙)의 외친(外親)이고, 봉유지(奉由智)는 남룡의 사위이며, 완천군(完川君) 이숙(李淑)의 처형(妻兄)이다. 숙이 영안군(寧安君) 이양우(李良祐)와 완산군(完山君) 이천우(李天祐)와 더불어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술이 취하매, 양우가 말하기를, ꡒ천변(天變)이 여러 번 나타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직의 역년(歷年)이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은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와 서로 좋아하고, 또 무는 아들이 많은데, 한 아들이 비상(非常)한 운명이 있다.ꡓ하였었다. 유지(由智)와 그 아우 봉유도(奉由道)가 이를 듣고, 유지(由智)가 남룡(南龍)에게 이야기 하였다. 남룡이 아들 혼(渾)을 데리고 윤에게 가서 고(告)하기를, ꡒ양우․천우가 숙의 집에 이르러서 얘기하기를, ꡐ공(公)과 이무(李茂)가 마음을 같이하니, 불측(不測)한 변(變)이 있을까 두렵다. 그러나 우리들이 태상왕을 끼고 나오면 누가 감히 당하겠는가.ꡑ 하였다 합니다.ꡓ하였다. 윤이 임금께 아뢰니, 임금이 남룡 부자를 불러서 자세히 물어보고 말하기를, ꡒ양우와 천우가 비록 태상왕을 끼고자 하나, 태상왕께서 어찌 좇으시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남룡이 거짓말[飛語]을 꾸미어 공(功)을 세워서 부귀(富貴)를 얻고자 함이리라.ꡓ하였다. 순군(巡軍)에 내려서 삼성(三省)으로 하여금 잡치(雜治)하게 하였더니, 과연 임금의 말과 같았다. 이에 남룡 부자를 베고, 유지는 남포진(藍浦鎭)에, 유도는 이산진(伊山鎭)에 귀양보내고, 각각 장(仗) 1백 대를 때렸다./ 【영인본】 1 책 196 면/ 【분류】 *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왕실-국왕(國王) / *군사-중앙군(中央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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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2월 12일 신축 1번째 기사/ 태종이 마암의 단 아래서 좌명 공신들과 삽혈 동맹하면서 읽은 맹서/ 임금이 마암(馬巖)의 단(壇) 아래에 가서 좌명 공신(佐命功臣)과 더불어 삽혈 동맹(?血同盟)31) 하였는데, 제복(祭服)을 입었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ꡒ유(維) 건문 3년(建文三年) 세차(歲次) 신사 2월 삭(朔) 경인 12일 신축에 조선 국왕 이(李)【휘(諱).】는 삼가 훈신(勳臣)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상당군(上黨君) 이저(李佇)․완산군(完山君) 천우(天祐)․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이거이(李居易)․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를 거느리고 황천 상제(皇天上帝)․종묘․사직․산천 백신(百神)의 영(靈)에 감히 밝게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주(周)나라 제도에는 맹재(盟載)의 법이 있고, 한(漢)나라가 일어나매 대려(帶礪)의 맹세가 있었으니, 신명(神明) 앞에 충신(忠信)을 굳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태상왕(太上王)께서 신무(神武)하신 덕으로 운수에 응하여 나라를 열어서 무강(無彊)한 업(業)을 창건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권간(權奸)이 영총(榮寵)을 탐하여 어린아이를 끼고서 우리 형제를 해하려 하여, 변(變)이 불측(不測)한 지경에 있었습니다. 상천(上天)이 마음을 달래고 종친과 훈신(勳臣)의 협력에 힘입어서 능히 난을 평정하고, 적자(嫡子)이고 장자임으로 인하여 우리 상왕(上王)을 껴서 명을 받아 대통을 잇게 하니, 천륜(天倫)이 펴지고 종사(宗社)가 정하여졌습니다. 뜻밖에 또 교활한 자가 간흉한 계획를 품고 반역을 꾸미어, 우리 골육(骨肉)을 도모하여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향해서, 화(禍)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었는데, 또 종친과 훈신이 충성과 힘을 다함으로 인하여 이내 곧 쳐서 평정하였습니다. 상왕께서 국본(國本)이 정하여지지 아니하여 인심이 흔들리기 쉬운 것을 염려하시어, 어질지 못한 내가 동모제(同母弟)이고, 또 개국 정사(開國定社) 때에 조그마한 공이 있다 하시어, 명하여 저부(儲副)를 삼아서 감무(監撫)의 권한을 위임하셨으므로, 숙야(夙夜)로 경계하고 두려워하여도 오히려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더니, 갑자기 상왕께서 신기(神器)를 전하여 주시매, 사양하여도 명령을 얻지 못하여 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생각건대, 어질지 못한 내가 오늘에 이른 것은 실로 종친과 훈신의 충의(忠義)한 신하들이 힘을 합하여 난을 평정하고, 익대 좌명(翊戴佐命)한 힘에 힘입은 바이니, 그 큰 공[丕績]을 아름답게 여기어 영원토록 잊기 어렵습니다. 이에 유사(有司)에 명하여 상전(賞典)을 거행하고 길한 날[吉辰]을 가려서 밝은 신령께 제사하여 맹호(盟好)를 맺습니다. 이미 맹세한 뒤에는 길이 한마음으로 지성(至誠)으로 서로 도와 환난(患難)을 구제하고, 과실(過失)을 바로잡아, 시종(始終) 일의(一義)로써 함께 왕업[丕基]을 보존하여 자손 만대에 오늘을 잊지 말지니, 만일 혹시라도 이익를 꾀하여 해(害)를 피하고, 사(私)를 껴서 공(公)을 배반하고, 맹호(盟好)를 범(犯)하고 기망 변사(欺罔變詐)하고, 음모하고 참소[陰謀讒害]하면, 신명(神明)께서 반드시 죽이어 앙화(殃禍)가 자손만대에 미칠 것이며, 범한 것이 사직(社稷)에 관계되는 자는 마땅히 법으로 논할 것이니, 내가 감히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취(自取)인 것입니다. 각각 맹세한 말[誓言]을 공경하여 영원히 이 정성을 지킬지니라.ꡓ임금이 드디어 성균관(成均館)에 이르러 문묘(文廟)에 참알(參謁)하였다./ 【영인본】 1 책 197 면/ 【분류】 *교육(敎育) / *인사-관리(管理) / *왕실-행행(行幸) / *풍속-풍속(風俗) / *역사-고사(故事)/ [註 31]삽혈 동맹(?血同盟) : 맹세할 때에 희생(犧牲)을 잡아 서로 그 피를 들여마셔 입술을 벌겋게 하고, 서약(誓約)을 꼭 지킨다는 단심(丹心)을 신(神)에 맹세하는 일. 일설에는 피를 입술에 바른다고 함.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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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3월 18일 정축 2번째 기사/ 판문하부사 조준과 이거이․하윤 등이 악차(幄次)에서 연향을 베풀다/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조준(趙浚)․좌정승 이거이(李居易)․우정승 하윤(河崙) 등이 들에 설치한 악차(幄次)에서 연향을 베풀었다. 임금이 무신(武臣) 10여 인을 거느리고 강 연안에서 매를 놓고, 날이 저물어서 환궁하였다. 사관(史官) 민인생(閔麟生)이 뒤 따라 이르니, 임금이 보고 내수(內竪)에게 눈짓으로 무엇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ꡒ신(臣)이 사관으로서 감히 직사(職事)를 폐할 수 없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ꡓ하였다. 총제(摠制) 이숙번(李叔蕃)이 아뢰기를, ꡒ사관의 직책이 매우 중하오니, 원컨대 묻지 마옵소서.ꡓ하였다./ 【영인본】 1 책 198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역사-사학(史學)(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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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3월 21일 경진 1번째 기사/ 영흥부의 내가 마른다고 우정승 하윤을 불러 서운관의 고서를 보게 하다/ 우정승(右政丞) 하윤(河崙)을 불러 서운관(書雲觀)의 고서(古書)를 보았다. 임금이 영흥부(永興府)의 내[川]가 마르는 것을 근심하고 염려하기를 마지아니하여, 서운관의 고문(古文)을 가져다가 윤을 시켜 보게 하였다. 윤이 책을 받들어 친히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큰 변(變)은 피할 수 없다.ꡓ하고, 홀로 윤과 더불어 한참 동안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파하였다./ 【영인본】 1 책 198 면/ 【분류】 *사상(思想)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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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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