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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3-6:하윤(1372부임)
작성자장병창 @ 2010.02.27 06:20:04
  예천고을원(13-6) : 하윤(1372 부임, 영의정까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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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9일 신유 2번째 기사/ 하윤이 지어 올린 악장 2편. 교서를 내려 칭찬하다/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이 악장(樂章) 두 편(篇)을 올리니, 교서(敎書)를 내려 주어 칭찬하였다. ꡒ거룩한 왕자여! 덕이 매우 빛나시니, 그 학문은 밝으옵고, 그 문장은 경서(經書)로다. 천자께서 교지를 내리시니, 나라 사람들이 조심하오. 군부(君父)의 사신(使臣)이라, 받들기에 겨를없소. 천자를 벌써 뵙고 자세하게 아뢰니, 얽은 죄가 사라짐은 국가의 창성이라. 부지런한 왕자시여! 옳은 도릴 따르시어, 전대(專對)141) 하고 돌아오니, 종사(宗社)의 빛이옵네. 굳세이신 우리 임금 오래 살고 건강하오. 왕자께서 돌아오니 즐거움이 한이 없소.“ 위의 시(詩)는 근천정(覲天庭) 5장(章)이다.ꡒ부지런한 임금이여! 밝은 덕에 머무시고, 효우(孝友)로 정사(政事)하니, 높은 이름 그침없소. 그 마음을 조심하여, 한결같이 사대(事大)하니, 가르침을 받들음에, 해 돋는 곳 미쳐 갔네. 황제께서 명명(明命)하니, 금인(金印)이 빛나옵고, 또 무엇을 주었는가? 구장(九章)의 곤의(袞衣)일네. 절하고 수명(受命)하니, 천자께서 성명(聖名)하며, 절하고 수명하니, 종사(宗社)도 영광이라. 아! 우리 임금 천도(天道)를 받으시어, 인(仁)을 본받고 백성을 보호하니, 천년토록 오래 살리. 즐거울손 님이시여! 해 오르듯 밝으시어, 바른 법을 남기시니, 만세(萬世)에 받들겠소.” 위의 시(詩)는 수명명(受明命) 6장(章)이다. 임금이 이것을 보고, 김첨(金瞻)을 불러 이를 주면서 말하기를, ꡒ관현(管絃)에 올려서 연향악(宴享樂)으로 하라.ꡓ하고,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권근(權近)에게 명해 교서(敎書)를 짓게 하고, 좌대언(左代言) 이승상(李升商)을 보내어 이를 가지고 가서 하윤에게 내려 주게 하였다. ꡒ왕은 이르노라. 대체로 들으니, 임금과 신하의 사이에는 경계를 말[進戒]하는 것이 귀(貴)하고, 성악(聲樂)의 도(道)는 상(象)을 이루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서(九敍)의 노래를 우(禹)가 벌써 지었고, 갱재(?載)142) 의 노래를 고요(皐陶)143) 도 또한 불렀다. 이것은 순(舜)의 조정에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경계(警戒)함으로써 지치(至治)를 일으킨 이유이다. 주(周)나라에 이르러서는 그 도(道)가 점점 갖추어져 아(雅)와 송(頌)을 짓게 되어 지금까지 양양(洋洋)하다. 경은 타고난 자질이 명민한데다 학술(學術)이 정밀하니, 보는 바가 발라[正] 뛰어남[卓爾]이 매우 높고, 지키는 바가 굳어 확호(確乎)함을 뽑을 수 없소. 들어와서 모책(謨策)을 개진(開陳)함에 반드시 바르게 하고 이익됨을 다 말하며, 나가서 정사(政事)를 시행함에 반드시 정밀하고 자상하게 하였다. 일찍이 힘을 다하여 사직(社稷)을 정하고 또 정성을 다하여 천명(天命)을 도왔다. 그대의 크나큰 업적을 가상하게 여기어 다시 동맹(同盟)을 하고, 여러 관료(官僚)의 장(長)이 되게 하여 나의 다스림을 돕게 하였다. 이제 올린 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 두 편(篇)의 악장(樂章)을 보니, 바로 노래 부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계(警戒)를 말함에 절실하오. 오직 내가 천정(天庭)에 들어가 뵌 것은 신하의 직분(職分)으로 당연한 것이며, 그 명명(明命)을 받은 것은 천자(天子)의 은수(恩數)가 다행하게도 부덕(否德)한 이 사람에 이른 것이니, 모두 아름다울 것이 없었다. 경이 이에 시가(詩歌)를 지어 권면하고 경계하는 뜻을 붙였으니, 아마도 영원히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무궁토록 보전하게 하려 함이다. 충의(忠義)의 정성이 지극하여 가상할 만하며 더욱이 사의(辭義)의 우아함과 성기(聲氣)의 화(和)함은 옛날의 작자(作者)에게 짝[追配]하여 또한 후세(後世)에 전할 만하오. 이를 볼 때에 진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바이다. 이미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관현(管絃)에 올려 연향악(宴享樂)으로 삼아 경계한 말을 잊지 않기로 하였다. 아! 칠덕(七德)144) 으로 춤추며 노래함에 사공(事功)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오언(五言)145) 을 출납함에 이익[益]이 다스림에 있으니, 소홀히 하여 어김이 없음이 옳겠다.ꡓ/ 【영인본】 1 책 237 면/ 【분류】 *예술-음악(音樂) / *어문학-문학(文學)/ [註 141]전대(專對) : 독단으로 자유로이 응답(應答)함. ☞ / [註 142]갱재(?載) : 임금의 시(詩)에 화답하여 시(詩)를 지음. ☞ / [註 143]고요(皐陶) : 순(舜)의 신하. 법리(法理)에 통달(通達)하여 법을 세워 형벌을 제정하고 또 옥(獄)을 만들었음. ☞ / [註 144]칠덕(七德) : 정치상의 일곱 가지 덕(德). 곧 존귀(尊貴)․명현(明賢)․용훈(庸勳)․장로(長老)․애친(愛親)․예신(禮新)․친구(親舊)임. ☞ / [註 145]오언(五言) :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다섯 가지 덕(德).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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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13일 을축 1번째 기사/ 삼관의 천전법과 중앙 관서 서리의 인사규정을 새로 정하다/ 삼관(三館)에 통경(通經)의 다소(多少)로써 천전(遷轉)시키는 법을 세우고, 또 경중(京中)의 대소 아문(大小衙門)의 이전(吏典)은 그 많고 적음에 따라서 둘을 병합하기도 하고, 혹은 셋을 병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도목(都目)에서도 역시 세 도감(都監)의 계제(階除)를 제외하고 거관(去官)하는 자는 외임(外任)에 서용(敍用)하게 하였으니, 모두 하윤(河崙)이 정한 것이다./ 【영인본】 1 책 238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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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15일 정묘 1번째 기사/ 청화정에 나아가 하윤과 임정에게 잔치를 베풀다/ 청화정(淸和亭)에 나아가서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과 삼도 도체찰사(三道道體察使) 임정(林整)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으니, 하윤은 악장(樂章)을 지어 올렸고 임정은 조선(漕船)을 거느리고 서울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영인본】 1 책 238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예술-음악(音樂) / *교통-수운(水運)(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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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26일 무인 1번째 기사/ 조회를 마치고 대신들을 불러 농사의 풍흉과 전함의 허실을 의논하다/ 조회가 끝나자 특별히 영의정부사 이거이(李居易)․영사평부사 하윤(河崙)․좌정승 김사형(金士衡)․우정승 이무(李茂)․판승추부사 조영무(趙英茂) 등을 불러 대전(大殿)에 오르게 하고 김사형에게 눈을 돌려 위문(慰問)하였으니, 김사형이 병(病)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조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농사의 풍흉(?凶)과 전함(戰艦)의 허실(虛實)을 의논하였다./ 【영인본】 1 책 239 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기(軍器)(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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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7월 2일 계미 2번째 기사/ 가뭄이 심하자 죄수를 석방하고 무녀․소경․중들이 비를 빌게 하다/ 문무 신료(文武臣僚)에게 명하여 각각 시정(時政)의 폐단을 말하게 하고, 서울과 외방의 이죄(二罪) 이하의 죄수들을 석방하고, 저자[市]를 옮기고, 무녀(巫女)들을 사평부(司平府)에, 소경[?者]들을 명통사(明通寺)에, 승도(僧徒)를 연복사(演福寺)에 모아 비를 빌었다... 임금이 하윤(河崙)에게 이르기를, ꡒ요즈음 백성에게 불편한 것이 무슨 일인가? 저화(楮貨)를 행하여서 그러한 것이 아닌가?.ꡓ하니, 대언(代言) 이응(李膺)이 말하기를, ꡒ저화는 백성들이 이미 편하게 여깁니다.ꡓ하였다. 윤(崙)이 말하기를, ꡒ전하께서 조심[恐懼]하여 수성(修省)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다시 수성(修省)을 더하자면 무슨 방법이 있는가?ꡓ하였다. 윤이 말하기를, ꡒ우리 나라 사람들이 노비를 아끼기를 수족과 같이 하는데, 지금 말하기를, ꡐ신사년 8월 이전에 이미 관청의 판결을 거친 것은 비록 오결(誤決)이 있더라도 다시 정소(呈訴)하지 말라.ꡑ고 하니, 이것이 원통하고 억울함이 큰 것입니다. 청컨대 다시 주장관(主掌官)에게 명하여 전법(前法)에 의하여 판결하게 하면 인심이 조금 안정될 것입니다.ꡓ하였다. 대언(大言) 박신(朴信)이 말하기를, ꡒ송사(訟事)의 결단(決斷)이 기한이 없으면 마침내 끝날 날이 없습니다.ꡓ하니, 윤이 말하기를, ꡒ이것이 백성들이 원망하는 말입니다.ꡓ하였다. 임금이 윤에게 묻기를, ꡒ지금 유성(流星)의 변괴(變怪)란 무엇인가?ꡓ하니, 윤이 대답하기를, ꡒ그 유성은 천사성(天駟星)인데, 천사(天駟)는 천자(天子)의 말[馬]입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전일에 내구마(內廐馬) 3필이 죽은 것이 아마 이 응험(應驗)이 아닌가 생각된다ꡓ하였다. 임금이 가뭄을 근심하여 초하룻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수라를 들고 눈물을 흘렸으며, 공상(供上)을 위한 사냥[田獵]을 파하도록 명하였다.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이 말하기를, ꡒ한 나라의 수백 사람으로서 전하를 봉양하니, 폐가 될 것이 없습니다.ꡓ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영인본】 1 책 240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상업(商業) / *정론(政論) / *재정-상공(上供)(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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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7월 11일 임진 3번째 기사/ 사평부 영사 하윤 등에게 신도로 돌아가는 문제를 의논하게 하다/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정승(政丞) 김사형(金士衡)․ 이무(李茂)를 불러 신도(新都)로 돌아갈 것의 가부(可否)를 의논하였다... 하윤․김사형․이무․조영무 등이 도읍을 정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는데, 해가 반나절이 되어도 결정하지 못하고 파하였다./ 【영인본】 1 책 242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 [註 167]삼부(三府) : 의정부․사평부․승추부.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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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8월 26일 정축 2번째 기사/ 진산 부원군 하윤이 이씨 왕조를 예찬한 《조선성덕가》 12장을 올리다/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이 조선성덕가(朝鮮盛德歌) 12장(章)을 올리었다./ 【영인본】 1 책 244 면/ 【분류】 *예술-음악(音樂)(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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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9월 17일 정유 3번째 기사/ 우정승 이무가 다시 사직하는 전을 올리다/ 이무(李茂)가 다시 전(箋)을 올려 그 직(職)을 사양하니, 임금이 전을 보고 말하였다. ꡒ정승이 늙고 병든 것이 아닌데 굳이 사직을 청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평양군(平壤君) 조준(趙浚)은 병으로 인하여 사면하였고, 진산군(晉山君) 하윤(河崙)은 비방으로 인하여 사직하였으니, 장차 어떤 사람으로 대신하는가?ꡓ/ 【영인본】 1 책 24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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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10월 4일 갑인 2번째 기사/ 하등극사를 자임한 하윤의 좌정승 임명과 기타 주요 관직의 인사개편/ 김사형(金士衡)으로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를, 하윤(河崙)으로 좌정승을, 성석린(成石璘)으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를, 이직(李稷)으로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권근(權近)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삼았다. 처음에 임금이 우정승 이무(李茂)를 보내어 등극(登極)을 하례(賀禮)하고자 하여, 하윤․김사형․이무를 불러 말하기를, ꡒ우정승은 본래 병이 있어 원행(遠行)하기가 어려운데, 어떠한가?ꡓ하였다. 사형이 말하기를, ꡒ신도 또한 병이 있사온데, 다만 상감(上鑑)을 두려워하여 감히 사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ꡓ하였다. 윤(崙)이 말하기를, ꡒ정승들이 모두 병이 있으니, 신이 가겠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기뻐서 울고, 윤도 또한 울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윤으로 좌정승을 삼았으니, 등극을 하례하기 위함이었다./ 【영인본】 1 책 24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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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10월 6일 병진 1번째 기사/ 하등극사 하윤 등에게 양정에서 위로연을 베풀다/ 좌정승 하윤(河崙)․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조박(趙璞)에게 양정(?亭)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매우 즐거워서 연귀(聯句)를 짓고 밤이 깊어서 파하였으니, 윤 등이 장차 명나라 서울에 가게 되므로 위로한 것이었다./ 【영인본】 1 책 247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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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10월 15일 을축 2번째 기사/ 하윤과 이첨은 하등극사로서, 조박은 하정사로서 경사에 가다/ 좌정승 하윤(河崙)․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조박(趙璞)을 보내어 명나라 서울에 가게 하였다. 윤과 첨은 등극(登極)을 하례(賀禮)하기 위함이요, 박은 정삭(正朔)을 하례하기 위함이었다.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군신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 밖에서 표문(表文)에 절하였다./ 【영인본】 1 책 248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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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4권/ 태종 2년( 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11월 11일 경인 4번째 기사/ 하윤․이무․조영무 등을 겸 판승추부사 등에 임명하다/ 좌정승 하윤(河崙)으로 겸 판승추부사(兼判承樞府事)를, 우정승 이무(李茂)로 겸 판승추부사를, 조영무(趙英茂)로 겸 의정부 찬성사(兼議政府贊成事)를, 이문화(李文和)로 사평 우사(司平右使)를, 이화영(李和英)으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김옥겸(金玉謙)으로 전의감 정(典醫監正)을 삼았다./ 【영인본】 1 책 25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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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3월 17일 갑오 1번째 기사/ 하등극사 하윤 등이 중국 사신과 함께 고명․인장을 받들고 온다 하니 환궁하다/ 환궁(還宮)하였으니, 임금이 하등극사(賀登極使) 하윤(河崙)․부사(副使) 이첨(李詹)과 하정사(賀正使) 조박(趙璞) 등이 중국 사신 여섯 명과 더불어 고명(誥命)․인장(印章)을 싸 가지고 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인본】 1 책 259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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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3월 27일 갑진 1번째 기사/ 사관을 다시 입시하게 하다/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임금이 사사로 김과(金科)에게 이르기를, ꡒ지난번에 두세 종친(宗親)과 더불어 청화정(淸和亭)에서 과녁을 쏘았는데, 간원(諫院)에서 상소하여 말하기를, ꡐ날마다 무신(武臣)과 더불어 과녁을 쏜다.ꡑ 하였으니, 종친이 들으면 어찌 마음에 불쾌함이 없겠는가? 그렇게 되면 문무(文武) 사이에 혐의와 틈이 생길 것이다. 내가 이러한 뜻으로 인하여 사관의 입시를 금한 것이다. 이것은 유생(儒生)을 무마하고 혐의와 틈을 방지하자는 것이지, 사관을 꺼려서가 아니다.ꡓ하고, 또 우대언(右代言) 이응(李膺)에게 말하였다. ꡒ이색(李穡)은 동방(東方)의 대유(大儒)이나, 대장경(大藏經)을 보기를 좋아하여 여러 선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불사(佛事)를 행하지 않는 자는 오직 하윤(河崙)일 뿐이요, 그 나머지 유자(儒者)는 몰래 불사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불씨(佛氏)의 보응(報應)의 설(說)이 모두 명명(冥冥)한 가운데에 있어서 명백한 증험이 없으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ꡓ/ 【영인본】 1 책 259 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상-불교(佛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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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4월 2일 무신 1번째 기사/ 서장관 조말생이 황제의 고명과 인장이 의주에 도착한 소식을 전하다/ 하등극사(賀登極使) 서장관(書狀官) 조 말생(趙末生)이 돌아와 아뢰기를, ꡒ황제가 명하여 좌통정(左通政) 조거임(趙居任)에게 고명(誥命)을, 도지휘(都指揮) 고득(高得)에게 명하여 인장(印章)을 가지고 가게 하여, 이미 의주(義州)에 이르렀습니다.ꡓ하였다. 처음에 하윤(河崙)․이첨(李詹)․조박(趙璞) 등이 경사(京師)에 이르니, 황제가 윤(崙) 등을 불러 말하기를, ꡒ너희들이 짐(朕)이 즉위한 까닭을 아느냐? 건문(建文)이 고황제(高皇帝)의 뜻을 돌보지 않고 숙부 주왕(周王)을 쫓아내고 골육을 잔해(殘害)하였으며, 또 짐을 해(害)하고자 하여 군사를 일으키므로, 짐도 역시 죽기를 두려워하여 부득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짐이 두 번이나 화친(和親)하려고 하였는데, 건문(建文)이 듣지 않았다. 이에 군사를 들어 그 모사하는 신하를 치려고 하니, 건문이 서로 만나기를 부끄러워하여 궁문(宮門)을 닫고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주왕(周王)과 대신(大臣)이 짐(朕)에게 ꡐ고황제(高皇帝)의 적장자(嫡長子)이니 마땅히 제위(帝位)에 올라야 된다.ꡑ고 하므로, 부득이하여 즉위하였다. 처음에 어찌 위(位)를 얻는 데에 뜻이 있었겠는가?ꡓ하였다. 윤(崙)이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예부 시랑(禮部侍郞) 조예(趙禮)에게 청하니, 예(禮)가 말하기를, ꡒ정보(呈報)하는 것이 좋다.ꡓ하였다. 곧 정보하니, 예부에서 이를 주문(奏聞)하매, 이를 주라고 명한 것이었다./ 【영인본】 1 책 260 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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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4월 3일 기유 1번째 기사/ 성석린을 사은사로 삼자 집정 대신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사헌부의 상소문/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성석린(成石璘)으로 사은사(謝恩使)를 삼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하였다. ꡒ전하께서 천자가 즉위하였다는 말을 듣고 좌정승 하윤(河崙)을 보내어 등극(登極)을 하례하매, 천자가 아름답게 여기어 고명과 인장을 주어 총애를 베풀었으므로, 지금 영의정부사 성석린으로 경사(京師)에 가서 사은(謝恩)하게 하시니, 영의정(領議政)은 비록 상부(相府)의 우두머리에 있기는 하나, 실로 나라의 정치를 잡은 신하[執政之臣]는 아닙니다. 지난번에 중국 사신으로 왕래한 자가 한 사람이 아니니, 어찌 우리 조정의 집정(執政) 신하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지금 갑자기 다른 신하를 보내면, 신 등은 두렵건대, 사은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을까 합니다. 전에 이미 좌정승을 보내어 성은(聖恩)을 입은 바가 이와 같사오니, 지금도 또한 마땅히 집정 대신을 보내어 막대한 은혜를 사례하고, 사대(事大)의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ꡓ/ 【영인본】 1 책 26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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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4월 8일 갑인 4번째 기사/ 하등극사 하윤 등이 복명하고, 병부 주사 육옹이 보낸 《부자도》 등을 올리다/ 하윤(河崙)․이첨(李詹)․조박(趙璞) 등이 명나라 서울[京師]로부터 돌아와서 임금에게 복명하기를, ꡒ황제가 윤(崙) 등을 보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ꡐ사신이 도착한 이튿날에 곧 왔구나.ꡑ 하고 표리(表裏) 6벌과 초(?) 3백 5정(錠)을 주고, 후하게 위로하여 보냈습니다.ꡓ하고 병부 주사(兵部主事) 육옹(陸?)이 부쳐 보낸 부자도(夫子圖)․삼원연수도(三元延壽圖)․조정 묘휘(朝廷廟諱)를 드리었다. 인묘(仁廟)의 휘(諱)는 세진(世珍)이고, 고황제(高皇帝)의 휘는 원장(元璋), 자(字)는 국서(國瑞)이며, 황제(皇帝)의 휘는 체(?)이고, 제왕(諸王)의 휘는 상(?)․강(?)․숙(?)․정(楨)․재(梓)․기(杞)․단(檀)이었다./ 【영인본】 1 책 262 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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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4월 27일 계유 2번째 기사/ 좌정승 하윤 등이 사신을 초청해 잔치를 열다/ 좌정승 하윤(河崙)이 황엄(黃儼) 등을 자기 집에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엄(儼) 등이 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의 집을 보고 싶어 하므로, 첨(詹)이 또한 청하여 잔치하였다./ 【영인본】 1 책 264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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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5월 3일 기묘 2번째 기사/ 영빈관에서 사신 조거임․고득․황엄․조천보를 전송하다/ 조거임(趙居任)․고득(高得)․황엄(黃儼)․조천보(曹天寶) 등이 돌아가니, 임금이 영빈관(迎賓館)에서 전송하고, 엄․천보․득에게 가는 백저포․흑마포 각각 10필씩을 주고, 태상왕이 백저포․흑마포 각각 5필씩을 주고, 상왕이 각각 2필씩을 주었다. 임금이 처음에 각각 안마(鞍馬)를 주었는데, 작별에 임하여 또 1필(匹)을 주고, 반인(伴人) 열 사람에게 또 각각 말 1필씩을 주었다. 조거임은 받지 않고, 다만 종이 두어 장을 청하며 말하기를, ꡒ시축(詩軸)을 만들려고 합니다.ꡓ하였다. 좌정승 하윤이 인삼을 주니, 거임만은 받지 않고 말하였다. ꡒ전하께서 주신 것도 받지 않았는데, 그대가 주는 것을 받을 수 있겠소.ꡓ/ 【영인본】 1 책 264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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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5월 11일 정해 1번째 기사/ 중국에서 돌아온 하윤․조박․이첨에게 교서를 내리고 전지와 노비를 하사하다/ 좌정승 하윤(河崙)과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첨(李詹)․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조박(趙璞)에게 교서(敎書)를 내려 주었다. 하윤에게 준 글에 이르기를, ꡒ생각건대, 경은 도(道)가 크고 덕(德)이 넓으며, 본 것이 높고 아는 것이 밝다. 지난번에 위란(危亂)한 때를 당하여 몸을 잊고 의(義)를 들어, 사직(社稷)을 정하고 천명(天命)을 도와 공(功)이 맹부(盟府)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 천자(天子)가 새로 보위(寶位)에 오르매, 사신을 보내어 알리었다. 돌아보건대, 도적떼가 종식되지 않고, 도로(道路)가 많이 막히어, 일국(一國)의 신료(臣僚)가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표문(表文)을 받들고 가서 칭하(稱賀)할 사람이 실로 적임자가 없었는데, 경이 자진하여 몸을 던져 나라에 허락하고 두세 번 굳이 청하여, 만리길을 달려 가서 친히 천일(天日)을 우러러보고 용지(龍?)218) 에 진하(陳賀)하였고, 드디어 하정사(賀正使) 참찬의정부사 조박(趙璞)․부사(副使) 지의정부사 이첨(李詹)과 더불어 의논하기를, ꡐ천자(天子)가 이미 천하(天下)와 더불어 경시(更始)하였으니, 우리 임금의 작명(爵命)과 인장(印章)만 예전 것을 인습할 수 없다.ꡑ 하고, 이에 예부(禮部)에 신정(申呈)하여 신청(宸聽)에 전달(轉達)하니, 천자께서 때를 알고 변(變)에 통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어,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넉넉하고 후하여, 이에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정신(廷臣)219) 도지휘사(都指揮使) 고득(高得)과 좌통정(左通政) 조거임(趙居任)에게 주어, 이들이 와서 명령을 내렸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유공(有功)한 바가 진실로 영원히 잊기 어렵도다. 그래서 밭 1백 결(結), 종[奴] 10구(口)를 준다. 오직 성의를 표하는 것이니, 어찌 물건이 귀한 것인가? 나의 지극한 뜻을 생각하여 영세(永世)에 전하라.ꡓ하였다. 또 박(璞)과 첨(詹)에게 교서(敎書)와 밭 각각 60결․ 종 각각 6구를 주고, 서장관(書狀官) 조말생(趙末生)․이적(李迹)과 압물(押物) 방사량(房士良)․통사(通事) 조사덕(曹士德)․매원저(梅原渚)․강방우(康邦祐)․선존의(宣存義) 등에게 각각 밭 15결을 주고, 박석명(朴錫命)을 시켜 명하기를, ꡒ경들의 공(功)은 종시(終始) 갚기가 어려워서 밭과 노비 약간으로 주는 것이고, 이것으로 공(功)을 갚기에 족하다는 것은 아니다.ꡓ하였다.

  윤(崙) 등이 사양하기를, ꡒ이번의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은 모두 주상(主上)의 덕(德)이십니다. 신 등이 어찌 참여하였겠습니까? 또 신 등의 오늘의 일은 신하의 직책입니다. 어찌 감히 주시는 것을 받겠습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들이 들어가 천자께 아뢰어 내 자손 만대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남겨 주었으므로, 경들에게 밭과 종을 주어서 자손에게 전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천자의 비상(非常)한 명령을 받았으니 감사한 마음 무엇으로 나타내겠는가? 경들이 굳이 사양하면 내가 부끄럽다.ꡓ하니, 윤(崙) 등이 그제서야 받았다. 또 윤(崙) 등에게 안마(鞍馬)를 주고, 청화정(淸和亭)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안평 부원군(安平府院君) 이서(李舒)․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 이직(李稷)․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권근(權近) 등이 시연(侍宴)하여 연귀(聯句)를 지어 창화(唱和)하고, 극진히 즐기고 밤에 파하였다. 이튿날 윤(崙) 등이 대궐에 나와 사은(謝恩)하였다./ 【영인본】 1 책 264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 *농업-전제(田制)/ [註 218]용지(龍?) : 대궐의 섬돌. ☞ / [註 219]정신(廷臣) : 조정의 신하. 곧 명나라 신하. ☞(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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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 5권,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5월 30일 병오 1번째 기사/ 좌정승 하윤에게 비밀의 일로 입대(入對)하게 하다/ 좌정승 하윤(河崙)에게 명하여 밀사(密事)로 입대(入對)하게 하였다./ 【영인본】 1 책 265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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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5일 신해 2번째 기사/ 삼부와 기로들․각사의 관리들이 경상도의 조세 운반 방법을 의논하다/ 의정부․사평부(司平府)․승추부(承樞府)가 기로 재추(耆老宰樞) 및 각사(各司)와 더불어 의정부에 모여 경상도 조세(租稅)를 육로로 운반할 것인지, 수로(水路)로 운반할 것인지의 가부(可否)를 의논하였다. ꡒ1. 경상도 하도(下道)의 조운 수(漕運數)가 4만여 석에 지나지 못하는데, 가끔 바람과 물이 순조롭지 못하여 배가 깨어지고, 사람이 빠져 죽고, 또 매년 선군(船軍)이 한 번(番)은 조전(漕轉)으로 인하여 서울로 올라오고, 한 번(番)은 방어(防禦)로 인하여 모두 농시(農時)를 잃는다. 지금 그 도(道)의 밭 19만 5천여 결(結)로 따져 보면, 충주(忠州) 김천(金遷)까지 3,4일 정도(程途) 되는 것이 2분의 1이고, 5,6일 정도 되는 것이 3분의 1이고, 7,8일 정도 되는 것이 4분의 1이고, 9,10일 정도 되는 것이 5분의 1이니, 백성들로 하여금 그 경작(耕作)하는 것의 다소(多少)에 따라서, 10월부터 2월까지 각자가 김천(金遷)에 수납(輸納)하게 하고, 그런 뒤에 조운선(漕運船)과 사선(私船)으로 서울에 수운(輸運)하면, 조운(漕運)하는 수보다 조금 많을 것이오니, 금후로는 여기에 의하여 수운하는 것이 어떠한가? 1. 백성들로 하여금 김천(金遷)에 수납하게 하면 연호(烟戶)가 모두 다 동원하게 되니, 예전대로 조운(漕運)하는 것이 어떠한가?ꡓ하여, 삼부(三府)와 각사(各司)의 의논이 분운(紛?)하였다. 경진년에 하윤(河崙)이 좌정승이 되었을 때는 육로로 운송하는 것을 편하다 하였고, 신사년 가을에 이무(李茂)가 우정승이 되어서는 수로로 운송하는 것이 이롭다 하여, 임오년에 임정(林整)으로 삼도 체찰사(三道體察使)를 삼아 조운(漕運)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번에 배가 깨어지고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하윤(河崙)이 육운(陸運)의 정책을 단행코자 하여 각사(各司)를 모아 가부(可否)를 취(取)한 것이다. 사헌부의 장무(掌務) 지평(持平)이 대궐에 나와 아뢰기를, ꡒ헌부(憲府)는 백료(百僚)를 규찰(糾察)하는데, 지금 의정부에서 각사(各司)를 모았으니, 본부(本府)에도 아울러 이르는 것이 어떠합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ꡒ의정부는 백관을 통솔하니, 크게 의논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각사(各司)를 모아야 한다. 사헌부가 정부(政府)에 회동(會同)하는 것이 또한 무엇이 해로울 게 있겠는가? 짐작하여 스스로 구처(區處)하라.ꡓ/ 【영인본】 1 책 266 면/ 【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 *정론(政論) / *재정(財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농업-전제(田制)(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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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9일 을묘 1번째 기사/ 각사의 업무 보고 절차[啓事儀]를 정하다/ 각사(各司)에서 일을 아뢰는 의식[啓事儀]을 정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하윤(河崙)에게 말하기를, ꡒ계사(啓事)의 이름이 온당치 않은 곳이 있으니, 이제부터 이후로는 계사(啓事)의 이름을 없애고, 일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참외관(參外官)이라도 또한 전(殿)에 올라와서 말하고,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은 비록 정승(政丞)․제군(諸君)이라도 반드시 전에 오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또 일을 아뢰[啓事]는 예(禮)도 미편(未便)한 점이 있으니, 다시 의정(議定)하여 아뢰라.ꡓ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정(詳定)한 것이었다./ 【영인본】 1 책 267 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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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11일 정사 2번째 기사/ 하윤의 의견을 따라 경상도의 조세를 육로로 운반하게 하다/ 경상도의 조세(租稅)를 육로로 수운(輸運)하라고 명하였으니, 하윤(河崙)의 의논을 따른 것이다./ 【영인본】 1 책 267 면/ 【분류】 *교통-수운(水運) / *재정-전세(田稅)(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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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27일 계유 2번째 기사/ 복야의 신분으로 의정부에 출입한 이조 전서 김첨을 사헌부에서 탄핵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이조 전서(吏曹典書) 김첨(金瞻)을 탄핵하였다. 첨(瞻)이 예조 상정(禮曹詳定)을 겸하여 법령(法令)을 변경해 고쳤는데, 조사(朝士)가 이를 비난하였다. 첨(瞻)이 상정(詳定)한 문서를 가지고 의정부에 나가 좌정승 하윤(河崙)에게 고하였으므로, 사헌부에서 복야(僕射)의 관원으로 정부에 진퇴(進退)하였다 하여 탄핵한 것이었다./ 【영인본】 1 책 270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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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7월 16일 신묘 1번째 기사/ 조준을 영의정으로 삼는 등 고위직 인사기편. 전 대간을 모두 좌천시키다/ ...좌정승 하윤(河崙)이 아뢰기를, ꡒ지금의 내서 사인(內書舍人)은 옛날의 문하 사인(門下舍人)인데, 지금 이미 문하부(門下府)를 의정부(議政府)로 고치고 따로 사간원(司諫院)을 두었는데, 사인(舍人)은 오히려 간관(諫官)의 칭호를 인습(因襲)하고 있으니, 이름과 실상이 같지 않습니다. 청컨대 의정부(議政府)의 경력(經歷)․도사(都事)를 파하고, 내서 사인을 고치어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으로 하소서.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그렇기는 하나, 다만 세속(世俗)이 예전 것을 고치기를 싫어하니, 어찌 당연한 것을 알겠는가?ꡓ하였다. 윤(崙)이 말하기를, ꡒ행하여 시일이 오래 되면 시의(時議)가 저절로 종식됩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그렇다. 사인(舍人)이라는 것은 인군(人君)과 대신(大臣)의 말을 전하므로, 대언(代言)에 다음 가는 것이니,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ꡓ하고, 검상관(檢詳官) 이회(李?)와 도사(都事) 서선(徐選)으로 사인을 삼았다...(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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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8월 21일 병인 5번째 기사/ 이회를 하윤에게 보내 진하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게 하다/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을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의 집에 보내어 예물을 진헌(進獻)할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사인 이회(李?)에게 분부하기를, ꡒ지금 진하사(進賀使)를 보내는 길에 예물(禮物)까지 아울러 바치려고 하는데, 이것은 절일(節日)․정조(正朝)의 비교는 아니니, 예물을 바치는 것이 예(禮)에 어떠할는지? 오늘날 처음 바치면 조정(朝廷)에서는 으레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새 황제가 즉위하여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하고 사신을 보내어 알리는 것이 어찌 연례(年例)인가? 윤(崙)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ꡓ하였다. 회(?)가 윤(崙)에게 분부를 전하니, 윤이 대답하기를, ꡒ이번 하례(賀禮)는 비록 상례(常例)는 아니나, 마땅히 예물(禮物)을 바쳐야 합니다. 비록 예(禮)에 합하지는 못하더라도 후한 것이 좋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옳게 여기었다./ 【영인본】 1 책 274 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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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8월 28일 계유 2번째 기사/ 고향에 돌아간 사신에게 궁온을 주다/ 내관(內官)을 보내어 고향에 돌아간 사신에게 궁온(宮?)을 주었으니, 좌정승 하윤(河崙)의 아룀을 따른 것이었다./ 【영인본】 1 책 275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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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8월 30일 을해 1번째 기사/ 하윤․권근․이첨이 새로 편수한 《동국사략》을 바치다/ 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 등이 새로 편수(編修)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바치었는데, 윤(崙)이 참찬(參贊) 권근(權近)․지의정(知議政) 이첨(李詹)과 더불어 편수하였다./ 【영인본】 1 책 275 면/ 【분류】 *역사-편사(編史)(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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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9월 10일 을유 2번째 기사/ 저화를 사용치 않기로 해서 사섬서를 혁파하다/  사섬서(司贍署)를 파하였다. 처음에 대사헌(大司憲) 이첨(李詹) 등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초법(?法)의 회복을 청하였는데,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임금이 박석명(朴錫命)에게 이르기를, ꡒ ...내가 사섬서를 혁파하여 백성에게 신(信)을 보이고자 한다. 너도 또한 이것으로 하윤(河崙)에게 고하라.ꡓ하였다. 윤(崙)이 말하기를, ꡒ초법(?法)을 행한 것은 신충(宸衷)253) 에서 나와서 백관에게 의논하여 모두 가하다고 한 연후에 정하였으니, 경솔히 고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여, 국가의 용도가 매양 넉넉지 못한 것을 근심하니, 비록 공(功)과 상(賞)이 있더라도 무엇으로 대접하겠습니까? 하물며 이권(利權)이 백성에게 있는 것은 불가합니다. 초법(?法)이 공사(公私)에 유리한 것은 전해들은 일이 아니고, 중국에서 이미 행하고 있어 신 등이 눈으로 본 것입니다. 어찌 한두 신하의 말로 가볍게 국가의 성법(成法)을 변할 수 있습니까?ꡓ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영인본】 1 책 277 면(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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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9월 12일 정해 1번째 기사/ 사신 마인․전휴․배정 등을 영빈관에서 전송하다/ ...이튿날 하윤(河崙) 권근(權近)에게 명하여 사신을 금교(金郊)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영인본】 1 책 277 면/ 【분류】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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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9월 13일 무자 2번째 기사/ 청화정에 나아가 성석린․이원․이정견에게 잔치를 베풀다/ 청화정(淸和亭)에 나아가서 성석린과 이원․이정견에게 잔치를 베풀고, 특별히 하윤(河崙)․이무(李茂)․이저(李佇)․민무질(閔無疾)과 종친(宗親)을 불러 시연(侍宴)하게 하였다./ 【영인본】 1 책 277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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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 [記事] :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10월 9일 계축 1번째 기사/ 휴가 중에 진양에서 돌아온 하윤에게 청화정에서 잔치를 베풀다/ 하윤(河崙)에게 청화정(淸和亭)에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윤(崙)이 휴가 중에 있다가 진양(晉陽)에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영인본】 1 책 280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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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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