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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6-3:안성(1400.8.4부임)
예천고을원(16-3) : 안성(1400.8.4 부임) : 600년 전의 예천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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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 [요약정보] : 자 일삼(日三), 호 설천(雪泉)/천곡(泉谷), 시호 사간(思簡), 생졸년 1344 (충혜왕 5) - 1421 (세종 3), 시대 조선 전기, 본관 광주(廣州),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거 및 취재 [고려문과]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상세내용] : 안성(安省)에 대하여, 1344년(충혜왕 5)∼1421년(세종 3).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소목(少目). 자는 일삼(日三), 호는 설천(雪泉)·천곡(泉谷). 고려 우왕 초 진사에 합격하고,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를 거쳐 상주판관이 되어 청렴한 이름을 떨쳤다.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 청백리에 뽑혀 송경유후(松京留後)에 임명되었을 때, ‘자신이 대대로 고려에 벼슬한 가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송경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대하랴’ 하고 궁전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통곡하니, 태조가 ‘이 사람을 죽이면 후세에 충성하는 선비가 없어진다’ 하고 죽이려는 좌우를 제지하고 그를 급히 붙들어 내보냈다 한다. 1396년 개국공신 정희계(鄭熙啓)의 시호를 야박하게 지었다고 태조가 노엽게 여겨 축산(丑山)에 유배되고, 1400년(정종 2) 중승(中丞)을 거쳐 지보주사(知甫州事)가 되었다. 1411년(태종 11)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강원도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벼슬이 참찬에 이르고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다. 뒤에 장수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참고문헌] :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daum 2010)
안성(安省) : [고려문과] :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인적사항] : 시호 혜간(惠簡), 본관 광주(廣州)/ [이력사항] : 전력 생원(生員), 관직 개류(開留), 기타 청백(淸白)/ [가족사항] :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 [출전] :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daum 2010)
안성 : 안씨 족사 탐구/ botw.egloos.com/ 2009년 02월 20일/ 고려 문과 방목 : 안길상(安吉常, 1344년), 안성(安省, 1380년)/ 고려시대의 문과방목은 남아 있는 자료가 상당히 부실하며, 중기 이전 자료의 경우는 전체 문과 합격자의 극히 일부에 대한 것만 남아 있다.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 등록에는 광주안씨가 두 명 나오는데, ... 1380년에 급제한 사간공(휘 省)의 경우 가족 관계에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까지 나와 있으므로 고려시대 기록으로 광주안씨 선대가 확인되는 드문 예가 된다. 고려시대 기록에 광주안씨 선대가 나오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 이 역시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아래는 역통(한국학중앙연구원)에 올라 있는 고려문과방목에서 확인되는 기록이다.../ 안성(安省) : [고려문과]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인적사항] : 본관 광주(廣州)/ [이력사항] : 전력 : 생원(生員), 관직 : 개류(開留), 기타 : 청백(淸白)/ [가족사항] :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 [출전]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daum 2010)
안성 : 바른 삶의 청백리 선비들/ 한춘섭 광주문화권협의회장 겸 성남문화원장/ 2009년 12월 07일 (월) 16:35:03/ 기호일보/ 남한산성 주변으로는 우리가 삶의 표상으로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선비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여러 인물들 가운데 고려 말에 지조를 굽히지 아니한 송산 조견, 둔촌 이집, 조선의 청백리인 이지직, 이병태, 이경석, 한계희 등은 이미 소개했고, 광주와 하남 일대에 전해오는 상촌 김자수, 음촌 김약시 설천 안성 등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와 묘소 등의 문화유산에 대해 소개한다./ 청백리로 기상 지킨 안성 : 안성(安省, 1344~1421)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 설천(雪泉)·천곡(泉谷), 시호 사간(思簡)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청백리로 조선 건국 후 태조·정종·태종 등을 섬기며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했다. 안성은 어릴 때 한쪽 눈이 작아서 소목(少目)이라 불렸는데, 고려 우왕 초에 진사시에 합격했을 때 우왕이 이름이 괴이하다 해 少와 目을 합쳐 성(省)으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조선 건국 후 청백리로 뽑혀 개성유후에 임명되니 그는 통곡하며 “대대로 고려에 벼슬한 가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송경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대하랴”하며 궁궐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몸부림치니 시위(侍衛)들이 달려들어 죽이려 했다. 그러나 태조가 “이 사람을 죽이면 후세에 충성하는 선비가 없어질 것이다”고 했다. 결국 그는 조선의 벼슬을 지냈으나 청백리로서의 기상을 잃지 않았다. 그가 벼슬길에 나서면서 가진 재물이라고는 오직 책과 이불을 담는 대그릇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 말년에 벼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대그릇에 바른 종이가 찢어져 물건을 담지 못할 지경이므로 부인이 “대그릇이 찢어졌는데 왜 다시 바르지 않소”하니, 안성이 대답하기를 “내게 종이 한 장도 없는데 어찌 다시 바른단 말이오”라고 했다. 묘소는 광주시 중대동 텃골에 있으니 그의 후손이 순암 안정복이다. 기호일보(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발행일2007-02-12(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일2009-10-30(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일삼(日三), 설천(雪泉)/천곡(泉谷), 사간(思簡), 소목(少目)), 발행일2009-04-06/ 관직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상주판관|송경유후(松京留後)|중승(中丞)|지보주사(知甫州事)|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정조사(正朝使)|강원도도관찰사|참찬(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廣陵世稿/ 廣州 安氏 家門에 내려오는 先祖의 遺稿를 한데 엮어 刊行한 廣陵安氏世稿/ 安省(朝鮮) 等著 .../ | 徽文館 | 2007.02.13(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廣陵世稿/ 安省 등 저/ 安鍾和 편 | 2007.01.06(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안성의 부임/ 발행일2007-11-05/ 자료소개 ...2월, 전 지보주사 안성(安省)이 경상도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 ; 도지사)로 부임(daum 2010)
안성 : 지역유래 - 광주 광남동 유래/ 2004.11.12/ ...지정되어 있고, 중대동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의 世居地로서, 조선시대(朝鮮時代) 최초의 청백리(淸白吏)인 사간(思簡) 안성(安省)의 墓를 비롯하여 조선 中宗代의 文臣으로 의정부 좌참찬을 역임한 익혜공(益惠公) 안윤덕(安潤德)의 묘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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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 [요약정보] : 자 일삼(日三), 호 설천(雪泉)/천곡(泉谷), 시호 사간(思簡), 생졸년 1344 (충혜왕 5) - 1421 (세종 3), 시대 조선 전기, 본관 광주(廣州),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거 및 취재 [고려문과]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상세내용] : 안성(安省)에 대하여, 1344년(충혜왕 5)∼1421년(세종 3).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소목(少目). 자는 일삼(日三), 호는 설천(雪泉)·천곡(泉谷). 고려 우왕 초 진사에 합격하고,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를 거쳐 상주판관이 되어 청렴한 이름을 떨쳤다.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 청백리에 뽑혀 송경유후(松京留後)에 임명되었을 때, ‘자신이 대대로 고려에 벼슬한 가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송경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대하랴’ 하고 궁전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통곡하니, 태조가 ‘이 사람을 죽이면 후세에 충성하는 선비가 없어진다’ 하고 죽이려는 좌우를 제지하고 그를 급히 붙들어 내보냈다 한다. 1396년 개국공신 정희계(鄭熙啓)의 시호를 야박하게 지었다고 태조가 노엽게 여겨 축산(丑山)에 유배되고, 1400년(정종 2) 중승(中丞)을 거쳐 지보주사(知甫州事)가 되었다. 1411년(태종 11)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강원도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벼슬이 참찬에 이르고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다. 뒤에 장수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참고문헌] :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人物考(daum 2010)
안성(安省) : [고려문과] :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인적사항] : 시호 혜간(惠簡), 본관 광주(廣州)/ [이력사항] : 전력 생원(生員), 관직 개류(開留), 기타 청백(淸白)/ [가족사항] :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 [출전] :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daum 2010)
안성 : 안씨 족사 탐구/ botw.egloos.com/ 2009년 02월 20일/ 고려 문과 방목 : 안길상(安吉常, 1344년), 안성(安省, 1380년)/ 고려시대의 문과방목은 남아 있는 자료가 상당히 부실하며, 중기 이전 자료의 경우는 전체 문과 합격자의 극히 일부에 대한 것만 남아 있다.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 등록에는 광주안씨가 두 명 나오는데, ... 1380년에 급제한 사간공(휘 省)의 경우 가족 관계에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까지 나와 있으므로 고려시대 기록으로 광주안씨 선대가 확인되는 드문 예가 된다. 고려시대 기록에 광주안씨 선대가 나오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으므로 이 역시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아래는 역통(한국학중앙연구원)에 올라 있는 고려문과방목에서 확인되는 기록이다.../ 안성(安省) : [고려문과] 우왕(禑王) 6년 (1380) 경신(庚申) 우왕 6년 경신방(禑王 六年 庚申榜)/ [인적사항] : 본관 광주(廣州)/ [이력사항] : 전력 : 생원(生員), 관직 : 개류(開留), 기타 : 청백(淸白)/ [가족사항] : [부] 성명 : 안기(安器), [조부] 성명 : 안해(安海), [증조부] 성명 : 안수(安壽), [처부] 성명 : 송제대(宋齊岱)/ [출전]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daum 2010)
안성 : 바른 삶의 청백리 선비들/ 한춘섭 광주문화권협의회장 겸 성남문화원장/ 2009년 12월 07일 (월) 16:35:03/ 기호일보/ 남한산성 주변으로는 우리가 삶의 표상으로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선비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여러 인물들 가운데 고려 말에 지조를 굽히지 아니한 송산 조견, 둔촌 이집, 조선의 청백리인 이지직, 이병태, 이경석, 한계희 등은 이미 소개했고, 광주와 하남 일대에 전해오는 상촌 김자수, 음촌 김약시 설천 안성 등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와 묘소 등의 문화유산에 대해 소개한다./ 청백리로 기상 지킨 안성 : 안성(安省, 1344~1421)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 설천(雪泉)·천곡(泉谷), 시호 사간(思簡)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청백리로 조선 건국 후 태조·정종·태종 등을 섬기며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했다. 안성은 어릴 때 한쪽 눈이 작아서 소목(少目)이라 불렸는데, 고려 우왕 초에 진사시에 합격했을 때 우왕이 이름이 괴이하다 해 少와 目을 합쳐 성(省)으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조선 건국 후 청백리로 뽑혀 개성유후에 임명되니 그는 통곡하며 “대대로 고려에 벼슬한 가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 송경에 가서 조상의 영혼을 대하랴”하며 궁궐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몸부림치니 시위(侍衛)들이 달려들어 죽이려 했다. 그러나 태조가 “이 사람을 죽이면 후세에 충성하는 선비가 없어질 것이다”고 했다. 결국 그는 조선의 벼슬을 지냈으나 청백리로서의 기상을 잃지 않았다. 그가 벼슬길에 나서면서 가진 재물이라고는 오직 책과 이불을 담는 대그릇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 말년에 벼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대그릇에 바른 종이가 찢어져 물건을 담지 못할 지경이므로 부인이 “대그릇이 찢어졌는데 왜 다시 바르지 않소”하니, 안성이 대답하기를 “내게 종이 한 장도 없는데 어찌 다시 바른단 말이오”라고 했다. 묘소는 광주시 중대동 텃골에 있으니 그의 후손이 순암 안정복이다. 기호일보(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발행일2007-02-12(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일2009-10-30(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일삼(日三), 설천(雪泉)/천곡(泉谷), 사간(思簡), 소목(少目)), 발행일2009-04-06/ 관직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상주판관|송경유후(松京留後)|중승(中丞)|지보주사(知甫州事)|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정조사(正朝使)|강원도도관찰사|참찬(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廣陵世稿/ 廣州 安氏 家門에 내려오는 先祖의 遺稿를 한데 엮어 刊行한 廣陵安氏世稿/ 安省(朝鮮) 等著 .../ | 徽文館 | 2007.02.13(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廣陵世稿/ 安省 등 저/ 安鍾和 편 | 2007.01.06(daum 2010)
안성(安省) : [專門資料] : 안성의 부임/ 발행일2007-11-05/ 자료소개 ...2월, 전 지보주사 안성(安省)이 경상도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 ; 도지사)로 부임(daum 2010)
안성 : 지역유래 - 광주 광남동 유래/ 2004.11.12/ ...지정되어 있고, 중대동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의 世居地로서, 조선시대(朝鮮時代) 최초의 청백리(淸白吏)인 사간(思簡) 안성(安省)의 墓를 비롯하여 조선 中宗代의 文臣으로 의정부 좌참찬을 역임한 익혜공(益惠公) 안윤덕(安潤德)의 묘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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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