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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7:김희준(1405이후부임)
작성자장병창 @ 2010.08.24 10:09:01
  예천고을원(17) : 김희준(1405이후 부임) : 큰 나무가 뽑힌 태풍을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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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준(金熙俊)은 1405년(태종 5) 이후에 부임한 지보주사(현 예천군수)이다. 본관은 김제, 가헌(可軒) 정걸(正傑)의 아들이다. 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천고을 원을 거쳐 경연 참찬관, 예문관 직제학에 올랐다.

  그의 손자인 순의(順義)는 구례 현감을 지냈다. 김제 김씨는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 조사에서 남한에 총 1,090가구, 5,294명이 살고 있다.

  김희준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405년(태종 5) 7월 23일에 예천에 태풍이 불어 큰 나무가 뽑히었고, 홍수가 범람하여 벼 등의 곡식이 상하였다. 1407년에는 유천면 성평리 뒷들 사람 권중화가 영의정이 되었으나 그 이듬해 작고하였다.

  1408년(태종 8) 4월 10일에는 세자를 수행하던 호군 이지성이 왕의 부름을 받고 물음에 대답할 때 불충한 말을 하여 용궁현으로 귀양을 왔고, 1409년 1월 2일에는 김맹성이 풍헌관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탄핵하다가 벌을 받아 예천에 귀양을 왔고, 같은 해 5월 4일에는 권수기가 명 나라 사신으로 가던 이백강의 소지품 조사를 하면서 금으로 만든 혁대를 빼앗다가 예천으로 귀양왔다.

  1409년(태종 9) 4월 17일에는 예천에 지진이 있었다. 1412년(태종 12)에는 지영천사(現 榮州市長)였던 예천 임씨 임즐이 효행으로 예천읍 서본리에 정려되었다가 1856년(철종 7)에 예천읍 백전리 현 위치로 옮겨졌다.

   <장병창 논설위원>(醴泉新聞 490호 2001-12-29 13:24:48)

  김희준(金熙俊) : 1405년(태종 5) 이후에 부임한 지보주사(現 醴泉郡守)이다. 본관은 김제, 가헌(可軒) 정걸(正傑)의 아들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예천 군수, 경연 참찬관을 거쳐 예문관 직제학에 올랐고, 그의 손자 순의(順義)가 구례 현감을 지냈다. 김제 김씨의 시조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12세손으로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내고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김천서가 김제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7세손 김정걸이 이조 판서를 지내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3등공신에 책록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김제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김정걸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은 김제로 하였다. 김제 김씨는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 조사에서 남한에 총 1,090가구, 5,294명이 살고 있다.(인터넷 genealogy 2001, unfocommunity.co.kr 2002)

  김희준(金熙俊) : 예천 군수이다. 본관은 김제, 가헌(可軒) 정걸(正傑, 吏曹判書)의 아들, 구례현감 순의(順義)의 조부,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예천 군수, 경연 참찬관, 예문관 직제학을 지냈다.(infocommunity.co,k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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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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