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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33:이훈정(1472부임)
예천고을원(33) : 이훈정(1472 부임) : 예천군 동면에 살았던 예천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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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정(李焄靖, 1417-1482)은 1472년(성종 3)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예천군 동면 출신으로, 처음 이름은 승군(承君), 호는 담헌(湛軒), 본관은 경주, 계림부원군 흥상의 손자, 부사 의의 둘째 아들이다.
충훈부 도사를 거쳐, 예천 군수로 부임했다. 묘는 동면 수산에 있다. 양주에서 예천으로 옮겨 살았으나, 그의 맏아들 이원이 청도 신천으로 옮겨갔다.
이훈정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472년 5월 21일에 예천 관노 자고미가 유서가 난을 도모했다고 무고하다가 사형 당하고 재산이 몰수되었고, 예천의 백정 조막동이 강도질을 하다가 사형 당하고, 처자는 변방 고을의 노비로 되었고(1473.7.19), 예천의 백정 노대산이 형을 따라 문경으로 이사해 살다가 형이 죽은 후에 예천으로 돌아왔는데, 이는 도망이라고 하여 사형에 처하려 하니, 왕이, “그는 도망자가 아니다”라고 하였고(1473.8.9), 예천의 백정 이금이 도망 중인 어리금, 이문계와 더불어 지자수 집에 들어가 강도질을 하다가 세 명 모두 사형 당하고, 그 처자는 예천의 노비가 되었다(1473.9.16).
또 예천의 서중민이 자기 여동생의 남편인 이복의 죄를 면케 하려고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해쳐서 이복의 시체라고 속인 죄로 사형 당하고, 처자는 예천의 노비로 삼았고(1475.12.2), 동지사 이승소가 아뢰기를, “왕비의 태실을 지키는 군인은 법에도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궁(성종 부인)의 태실이 예천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다시 살펴서 그 산이 불길하거든 길한 곳으로 옮겨 모시고 수호군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는데, 왕이, “아직 그대로 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1477.1.5).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10.18)
이훈정(李焄靖) : 1472년(성종 3)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417(태종 17)-1482(성종 13), 예천 동면 출신, 초명은 승군(承君), 호는 담헌(湛軒), 본관은 경주, 계림부원군 흥상(興商)의 손자, 부사 의의 2자이다. 충훈부 도사(忠勳府都事)를 거쳐,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부임했다. 묘는 예천 동면 수산(東面壽山)에 있다. 양주(楊州)에서 예천으로 이거하였으나 그의 장자 원이 청도 신천(淸道新川)으로 옮겨 갔다.(慶州李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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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정(李焄靖, 1417-1482)은 1472년(성종 3)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예천군 동면 출신으로, 처음 이름은 승군(承君), 호는 담헌(湛軒), 본관은 경주, 계림부원군 흥상의 손자, 부사 의의 둘째 아들이다.
충훈부 도사를 거쳐, 예천 군수로 부임했다. 묘는 동면 수산에 있다. 양주에서 예천으로 옮겨 살았으나, 그의 맏아들 이원이 청도 신천으로 옮겨갔다.
이훈정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472년 5월 21일에 예천 관노 자고미가 유서가 난을 도모했다고 무고하다가 사형 당하고 재산이 몰수되었고, 예천의 백정 조막동이 강도질을 하다가 사형 당하고, 처자는 변방 고을의 노비로 되었고(1473.7.19), 예천의 백정 노대산이 형을 따라 문경으로 이사해 살다가 형이 죽은 후에 예천으로 돌아왔는데, 이는 도망이라고 하여 사형에 처하려 하니, 왕이, “그는 도망자가 아니다”라고 하였고(1473.8.9), 예천의 백정 이금이 도망 중인 어리금, 이문계와 더불어 지자수 집에 들어가 강도질을 하다가 세 명 모두 사형 당하고, 그 처자는 예천의 노비가 되었다(1473.9.16).
또 예천의 서중민이 자기 여동생의 남편인 이복의 죄를 면케 하려고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해쳐서 이복의 시체라고 속인 죄로 사형 당하고, 처자는 예천의 노비로 삼았고(1475.12.2), 동지사 이승소가 아뢰기를, “왕비의 태실을 지키는 군인은 법에도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궁(성종 부인)의 태실이 예천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다시 살펴서 그 산이 불길하거든 길한 곳으로 옮겨 모시고 수호군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는데, 왕이, “아직 그대로 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1477.1.5).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1.10.18)
이훈정(李焄靖) : 1472년(성종 3)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417(태종 17)-1482(성종 13), 예천 동면 출신, 초명은 승군(承君), 호는 담헌(湛軒), 본관은 경주, 계림부원군 흥상(興商)의 손자, 부사 의의 2자이다. 충훈부 도사(忠勳府都事)를 거쳐,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부임했다. 묘는 예천 동면 수산(東面壽山)에 있다. 양주(楊州)에서 예천으로 이거하였으나 그의 장자 원이 청도 신천(淸道新川)으로 옮겨 갔다.(慶州李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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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