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게시판
이곳에 올려진 내용은 예천군청과는 무관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본 게시판을 이용해 게시자가 허위 과장광고나 사기성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으니 사용자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 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고을원34-2:정종소(성종때부임)
예천고을원(34-2) : 정종소(성종 때 부임) : 삼포무역을 금지시킨 예천고을 원
---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義城 / 名宦 / 本朝金續 性廉直常貢之物皆立寶不賦於民 鄭從韶 有政績 新增兪好仁 號?溪 成廟朝被 隆眷以校理乞養除本縣及登道 成廟命內官往搜詩稿內官追及烏嶺得北望君臣隔南來母子同之詩以進 成廟賞詠日好仁身雖在外心不忘君 李? 號陰岸 大司諫 禮堅子燕山政亂禮堅?旨出牧星州爲便養?本縣 中廟反正召還歷官至右參贊己卯名賢謚文懿 張顯光 號旅軒?官五月棄歸謚文康享本縣氷溪院祠 李益著 居官廉潔秋毫不犯値丙子大?盡心救活以政最陞拜淸州牧將行民攀軒/ <하권0417-2>/ 涕泣後以尙州牧過縣男女老少塡街迎拜達宵露立於所館門外曰苦過是夜不復見賢使君矣 鄭澔 號丈巖官至領議政(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咸陽 / 名宦 / 新羅 令忠 憲德王十四年態川都督 憲昌反脅武珍 完山等州爲己屬完山長吏 崔雄與令忠遁走至京告之王卽拜令忠 速含郡太守位級食 崔致遠 致遠寄海印曾希朗詩下題防虜太監天嶺郡太守?崔致遠新增 顯廟朝庚戌享于栢淵書院 本朝宋希璟 李次若 崇仁之子 蔡倫 崔德之 曹尙治 鄭從韶 俱知郡 舊增金宗直 邑人追慕爲立生祠新增 顯廟朝庚戌享于栢淵書院 曹偉新增崔漢侯 勸農興學治化大行邑人進慕立碑官至大司諫 趙宗道 丁酉倭亂收義兵入黃石山城死之 肅廟朝享于安陰黃巖忠烈祠(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 (慶尙道) / 永川郡誌 / 科擧 / 鄭夢周 高麗文科官至侍中謚文忠見人物 曺信忠 高麗文科官至禮曹參判見人物 鄭光厚 高麗文科官至工曹判書 李敢 高麗文科官至府使見人物 曹尙保 本朝 文宗朝文科官至司諫 曺尙貞 太宗朝文科官到縣監 李安柔 犬宗朝文科官至●●見人物 曺尙直 太宗朝文科 曺尙治 世宗朝文科官至副提學謚忠貞見人物 李承孫 世宗朝文科官至右贊成謚成靖見人物 李膺 世宗朝文科官到兵曹判書謚貞景見人物 李甫欽 世宗朝文科官至府使謚忠莊見人物 曺尙明 世宗朝文科官至承旨 曹變興 世宗朝文科官至縣監 曺變隆 世宗朝文科丁卯重試官至禮曹參議 曺變安 世宗朝文科官至/ <하권0935-3>/ 禮曹參議 鄭從韶 世宗朝文科重誠官至司成 尹兢 世宗朝文科官至吏曹參議見人物 鄭至韶 端宗朝文科官至學諭 朴英孫 世祖朝文科官至掌樂院正見人物 鄭致韶 世祖朝文科官至佐郞 曺碩輔 睿宗朝文科官至舍人 曺始孫 睿宗朝文科官至吏曹正郞 曺末孫 睿宗朝文科官至庶尹 金自養 成宗朝文科官至郡守 孫敍倫 文宗朝文科官至博士 鄭以僑 成宗朝客科重試官至校理 曺繼商 成宗朝文科官至右贊成 曺致虞 成宗朝文科官至府使 曺致夏 成宗朝文科官至府使 曺繼殷 中宗朝文科官至宗簿寺正 金伯敦 中宗朝文科官至縣監 金季敦 中宗朝文科官至郡守 曺孝淵 中宗朝文科官至郡守 郭珣 中宗朝文科官至司諫見人物 李雄 中宗朝文科官至習饋 李豪 中宗朝文科官至正郞 郭遂寧 登文科官至郡守年條未詳 安增 明/ <하권0935-4>/ 宗朝文科官至司書 鄭三變 宣祖朝文科官至正郞 曺光益 宣祖朝文科重試官至都事 鄭好仁 仁祖朝文科官至牧使 鄭承明 仁祖朝文科魁官至持平 崔友稷 仁祖朝文科官至縣監 李世益 顯宗朝文科官至監察 朴聖世 肅宗朝文科官至學正 安后靜 肅宗朝文科官至學正 鄭? 初名權 英宗朝文科官至府尹見人物 成憲祖 英宗朝文科官至郡守 鄭重器 英宗朝文科魁官至刑曹參議見人物 尹天覺 英宗朝文科官至別檢 成海龍 英宗朝文科官至正郞 安景悅 英廟朝大科官至監察 權應奎 英宗朝文科官至縣監 新增全熙龍 當?朝文科官至監察 尹效覺 當?文科官至佐郞 徐洛淳 當?文科官至司諫 鄭裕榮 當?文科(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 (慶尙道) / 永川郡誌 / 人物 / 高麗 皇甫能長 太祖朝人爲金剛城將軍有功合所起地骨火 道洞等縣爲/ <하권0936-1>/ 永州地 鄭夢周 號圃隱生於郡北愚巷里事蹟載麗史列傳又見迎日縣誌 本朝李承孫 世宗朝登第官至議政府右贊成謚成靖 李膺 登第官至兵曹判書謚貞景 李順蒙 膺之子也 世宗朝討南北賊大有功官至領中樞府事謚威襄鄕人立祀祭之 李宗儉 李宗謙 詳見龍仁寓居下 曺信忠 高麗 左政承 益淸之子官至贊翊大夫我 太祖五年河浩亭崙以首相薦爲江界道左翼兵馬使 曺尙治 信忠之子 世宗元年魁文科直拜正言 端宗朝官至副提學及 光廟受褘托以三子俱顯乞致仕 光廟會其意許之擢授禮曹參判仍 命朝臣送餞靑門外朴彭年送行書曰瞻望行塵卓乎難及成三問與人書曰永川淸風使作東方箕灝有和魯 陵社鵑詞行于世謚忠貞 崔元道 太宗朝中司馬官至南臺司諫 柳方善以偉材稱之詩以贈之其詩有許無故道有傳之句 柳方善 文僖公 淑之曾孫 太宗朝乙酉中司馬遊權近 卞季良之門得道學淵源之正 肅廟朝壬年多/ <하권0936-2>/ 士就其舊居建祠享之號泰齋 李甫欽 永陽君大榮七世孫號大田宣德己酉登第景泰丙子 端宗遜于寧越安置錦城大君于順興府時甫欽爲順興府使與錦城相對輒慷慨流涕潛結南中士人謀復 上王事洩被誅仍沒其家 肅宗朝戊寅特復 端宗位號 英宗朝戊午倂 賜?雪 命贈吏曹判書 正宗朝辛亥 賜謚忠莊 命? 莊陵忠臣壇 李安柔 少而能文登第後歷臺省 銓郞名著一世號西坡 曺變安 副提學 尙治之子性本廉?少而能文俱捷大少科參原從切臣歷仕五朝以書狀正官朝天者入赴遼者一官至參議 鄭從韶 高麗名臣襲明十世孫文科重試歷臺省 銓郞官至司成師母舅大田 李甫欽文章節行重一世與成三問 朴彭年友善丙子獄起稱疾不案仕?畢 金宗直敬重之常稱烏川鄭先且 尹兢 贈參判 憲子學博行篤年十六俱中司馬兩試後又登第 成宗朝以銓郞入侍 上閑曰吾家有鼠乎左右不能對●獨對曰書●之家鼠不咨行 上嘉之特 命陞資除吏曹參議薦一?鄭汝昌...(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10월 24일 정축 1번째 기사/ 삼관의 천전법에 대해 의논하다/ 삼관(三館)에서 상서(上書)하기를, ꡒ태조와 태종께서 창업(創業)하시고 수통(垂統)하시와 만세(萬世)의 큰 터전[丕基]을 세우시고, 과거(科擧)를 베풀고 선비를 뽑아서 일대(一代)의 좋은 법을 만드셨으니, 자손을 편안하게 할 계책을 끼치시고 국가를 위하여 무궁한 아름다운 복(福)을 이루신 바가 지극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태종 전하께서 처음으로 중시(重試)의 과거를 세우시매, 이 과거에 합격하는 자는 자급(資級)을 더하여 탁용(擢用)하시어, 비록 삼관(三館)의 천전(遷轉)하는 예(例)에 있는 자일지라도 상자(常資)에 구애하지 아니하고 모두 거관(去官)하게 하였습니다. 박서생(朴瑞生)은 성균관 학생으로서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김구경(金久?)은 권지학유(權知學諭)로서 봉상 주부(奉常主簿)에 임명되었으며, 정초(鄭招)는 예문 검열(藝文檢閱)로서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김조(金?)는 검열로서 인녕부 승(仁寧府丞)에 임명되었으며, 정광원(鄭廣元)은 학유(學諭)로서 경승부 승(敬承府丞)에 임명되었으니, 이는 전고(前古)의 제왕(帝王)에 없었던 거룩한 일이옵니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이 법을 준용(遵用)하시와 친히 임(臨)하여 재주를 시험하시고, 또한 모두 탁용하셨으니, 뜻을 이어 일을 좇으심이 전열(前烈)4280) 보다 빛나옵니다. 정묘년에 성균 학록(成均學錄) 신(臣) 정종소(鄭從韶)와 겸승문원 저작랑(兼承文院著作郞) 조변륭(曹變隆)이 또한 이 과거에 참여하여 장차 자급을 더하려고 하오나, 천전(遷轉)하는 예(例)에 구애되어 그 벼슬에 그대로 머물고 옮기지 못하오니, 중시(重試)로 탁용하는 뜻에 어찌 어긋남이 없사오리까. 하물며, 지금 종소는 이미 선무(宣務)의 자급에 올랐는데 9품의 벼슬을 행하니, 만약 예(例)에 따라 천전(遷轉)하면 반드시 5년 뒤에야 거관(去官)할 것이오니, 태종의 중시(重試)로 탁용하는 뜻에 어떠하옵니까. 엎드려 성상의 재결을 바라옵니다.ꡓ 하였다.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ꡒ종소가 이미 중시에 올랐고, 또 선무(宣務)로써 거관하게 함이 마땅합니다.ꡓ하고, 우의정 황보인․좌찬성 박종우는 홀로 불가하다고 하매, 이조에 내려 다시 의논하게 하니, 이조에서 아뢰기를, ꡒ삼관(三館)은 자급(資級)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일체 직사(職事)에 따라 거관(去官)하게 함은 이미 성법(成法)이 있사온데, 만약 한때의 특별한 은혜로 뛰어올려 제수(除授)한 예(例)를 끌어들여 거관(去官)하게 하면, 삼관(三館)의 천전(遷轉)하는 법이 무너질 것이오니, 타례(他例)에 의하여 거관하게 하소서.ꡓ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영인본】 5 책 103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정론-정론(政論)/ [註 4280]전열(前烈) : 전대의 공업(功業). ☞(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17권/ 세조 5년( 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7월 18일 정유 1번째 기사/ 심회․이인손․이승손․권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회(沈澮)를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이인손(李仁孫)을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이승손(李承孫)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권지(權摯)를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이윤손(李允孫)을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정종소(鄭從韶)를 사간원 좌헌납(司諫院左獻納)으로 삼았다./ 【영인본】 7 책 33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20권/ 세조 6년( 1460 경진 / 명 천순(天順) 4년) 6월 27일 임신 1번째 기사/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다/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는데,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서강(徐岡), 사예(司藝) 공기(孔?)․이계손(李繼孫)․정종소(鄭從韶), 인순부 소윤(仁順府少尹) 진유경(秦有經), 직강(直講) 권이경(權以經) 등이 윤대(輪對)하니, 술자리를 베풀었다.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이조 판서(吏曹判書) 구치관(具致寬)․병조 참판(兵曹參判) 김질(金?)과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공기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 임금이 그 소매를 잡으면서 말하기를, ꡒ공기는 내가 본래 서로 알던 자이다.ꡓ하였다. 서강 등이 명경과(明經科)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겨 즉시 명일부터 과장(科場)을 열어 조사(朝士)와 원점(圓點)4396) 이 70이상 찬자에게 시험에 나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계몽(啓蒙)》에 약통(略通)하고, 사서(四書)중에 추첨(抽籤)한 1서(書)에 통(通)하고, 오경(五經) 중에 자원(自願)한 2경(經)에 통(通)하고, 《좌전(左傳)》․《강목(綱目)》․《자치속편(資治續編)》․《송원절요(宋元節要)》 중에서 자원한 1서(書)에 약통(略通) 이상인 자는 전시(殿試)에 나오도록 허락하고, 초시(初試)에서는 정원(定員)의 숫자에 구애하지 말게 하였다. 예조(禮曹)․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기를, ꡒ명경과(明經科)와 무거(武擧)를 시험보이고자 하니,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라.ꡓ하였다./ 【영인본】 7 책 405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28권/ 세조 8년( 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4월 16일 신사 2번째 기사/ 감사․수령의 위법․작폐를 감찰하고자 예문 직제학 안관후 등을 분대로 임명하다/ 임금이 감사(監司)․수령(守令)의 법(法)을 어겨 작폐(作弊)할 것을 염려하여, 팔도(八道)에 분대(分臺)5743) 를 보내려고 하여 승지(承旨) 등에게 물으니, 승지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ꡒ보내는 것이 편하겠습니다.ꡓ하였으므로, 즉시 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 안관후(安寬厚)․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이우(李?)․행 성균 사예(行城均司藝) 김서진(金瑞陳)․우익위(右翊衛) 이질(李?)을 겸 사헌 집의(兼司憲執義)로 삼고, 한성 소윤(漢城少尹) 정종소(鄭從韶)․사재 부정(司宰副正) 민규(閔奎)․제용 부정(濟用副正) 송춘림(宋春琳)을 겸 사헌 장령(兼司憲掌令)으로 삼았다./ 【영인본】 7 책 529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註 5743]분대(分臺) : 각 지방의 민정(民情)을 살피고 수령(守令)의 잘잘못을 핵문(?問)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 ☞(www.history.go.kr 2007)
---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義城 / 名宦 / 本朝金續 性廉直常貢之物皆立寶不賦於民 鄭從韶 有政績 新增兪好仁 號?溪 成廟朝被 隆眷以校理乞養除本縣及登道 成廟命內官往搜詩稿內官追及烏嶺得北望君臣隔南來母子同之詩以進 成廟賞詠日好仁身雖在外心不忘君 李? 號陰岸 大司諫 禮堅子燕山政亂禮堅?旨出牧星州爲便養?本縣 中廟反正召還歷官至右參贊己卯名賢謚文懿 張顯光 號旅軒?官五月棄歸謚文康享本縣氷溪院祠 李益著 居官廉潔秋毫不犯値丙子大?盡心救活以政最陞拜淸州牧將行民攀軒/ <하권0417-2>/ 涕泣後以尙州牧過縣男女老少塡街迎拜達宵露立於所館門外曰苦過是夜不復見賢使君矣 鄭澔 號丈巖官至領議政(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咸陽 / 名宦 / 新羅 令忠 憲德王十四年態川都督 憲昌反脅武珍 完山等州爲己屬完山長吏 崔雄與令忠遁走至京告之王卽拜令忠 速含郡太守位級食 崔致遠 致遠寄海印曾希朗詩下題防虜太監天嶺郡太守?崔致遠新增 顯廟朝庚戌享于栢淵書院 本朝宋希璟 李次若 崇仁之子 蔡倫 崔德之 曹尙治 鄭從韶 俱知郡 舊增金宗直 邑人追慕爲立生祠新增 顯廟朝庚戌享于栢淵書院 曹偉新增崔漢侯 勸農興學治化大行邑人進慕立碑官至大司諫 趙宗道 丁酉倭亂收義兵入黃石山城死之 肅廟朝享于安陰黃巖忠烈祠(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 (慶尙道) / 永川郡誌 / 科擧 / 鄭夢周 高麗文科官至侍中謚文忠見人物 曺信忠 高麗文科官至禮曹參判見人物 鄭光厚 高麗文科官至工曹判書 李敢 高麗文科官至府使見人物 曹尙保 本朝 文宗朝文科官至司諫 曺尙貞 太宗朝文科官到縣監 李安柔 犬宗朝文科官至●●見人物 曺尙直 太宗朝文科 曺尙治 世宗朝文科官至副提學謚忠貞見人物 李承孫 世宗朝文科官至右贊成謚成靖見人物 李膺 世宗朝文科官到兵曹判書謚貞景見人物 李甫欽 世宗朝文科官至府使謚忠莊見人物 曺尙明 世宗朝文科官至承旨 曹變興 世宗朝文科官至縣監 曺變隆 世宗朝文科丁卯重試官至禮曹參議 曺變安 世宗朝文科官至/ <하권0935-3>/ 禮曹參議 鄭從韶 世宗朝文科重誠官至司成 尹兢 世宗朝文科官至吏曹參議見人物 鄭至韶 端宗朝文科官至學諭 朴英孫 世祖朝文科官至掌樂院正見人物 鄭致韶 世祖朝文科官至佐郞 曺碩輔 睿宗朝文科官至舍人 曺始孫 睿宗朝文科官至吏曹正郞 曺末孫 睿宗朝文科官至庶尹 金自養 成宗朝文科官至郡守 孫敍倫 文宗朝文科官至博士 鄭以僑 成宗朝客科重試官至校理 曺繼商 成宗朝文科官至右贊成 曺致虞 成宗朝文科官至府使 曺致夏 成宗朝文科官至府使 曺繼殷 中宗朝文科官至宗簿寺正 金伯敦 中宗朝文科官至縣監 金季敦 中宗朝文科官至郡守 曺孝淵 中宗朝文科官至郡守 郭珣 中宗朝文科官至司諫見人物 李雄 中宗朝文科官至習饋 李豪 中宗朝文科官至正郞 郭遂寧 登文科官至郡守年條未詳 安增 明/ <하권0935-4>/ 宗朝文科官至司書 鄭三變 宣祖朝文科官至正郞 曺光益 宣祖朝文科重試官至都事 鄭好仁 仁祖朝文科官至牧使 鄭承明 仁祖朝文科魁官至持平 崔友稷 仁祖朝文科官至縣監 李世益 顯宗朝文科官至監察 朴聖世 肅宗朝文科官至學正 安后靜 肅宗朝文科官至學正 鄭? 初名權 英宗朝文科官至府尹見人物 成憲祖 英宗朝文科官至郡守 鄭重器 英宗朝文科魁官至刑曹參議見人物 尹天覺 英宗朝文科官至別檢 成海龍 英宗朝文科官至正郞 安景悅 英廟朝大科官至監察 權應奎 英宗朝文科官至縣監 新增全熙龍 當?朝文科官至監察 尹效覺 當?文科官至佐郞 徐洛淳 當?文科官至司諫 鄭裕榮 當?文科(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 (慶尙道) / 永川郡誌 / 人物 / 高麗 皇甫能長 太祖朝人爲金剛城將軍有功合所起地骨火 道洞等縣爲/ <하권0936-1>/ 永州地 鄭夢周 號圃隱生於郡北愚巷里事蹟載麗史列傳又見迎日縣誌 本朝李承孫 世宗朝登第官至議政府右贊成謚成靖 李膺 登第官至兵曹判書謚貞景 李順蒙 膺之子也 世宗朝討南北賊大有功官至領中樞府事謚威襄鄕人立祀祭之 李宗儉 李宗謙 詳見龍仁寓居下 曺信忠 高麗 左政承 益淸之子官至贊翊大夫我 太祖五年河浩亭崙以首相薦爲江界道左翼兵馬使 曺尙治 信忠之子 世宗元年魁文科直拜正言 端宗朝官至副提學及 光廟受褘托以三子俱顯乞致仕 光廟會其意許之擢授禮曹參判仍 命朝臣送餞靑門外朴彭年送行書曰瞻望行塵卓乎難及成三問與人書曰永川淸風使作東方箕灝有和魯 陵社鵑詞行于世謚忠貞 崔元道 太宗朝中司馬官至南臺司諫 柳方善以偉材稱之詩以贈之其詩有許無故道有傳之句 柳方善 文僖公 淑之曾孫 太宗朝乙酉中司馬遊權近 卞季良之門得道學淵源之正 肅廟朝壬年多/ <하권0936-2>/ 士就其舊居建祠享之號泰齋 李甫欽 永陽君大榮七世孫號大田宣德己酉登第景泰丙子 端宗遜于寧越安置錦城大君于順興府時甫欽爲順興府使與錦城相對輒慷慨流涕潛結南中士人謀復 上王事洩被誅仍沒其家 肅宗朝戊寅特復 端宗位號 英宗朝戊午倂 賜?雪 命贈吏曹判書 正宗朝辛亥 賜謚忠莊 命? 莊陵忠臣壇 李安柔 少而能文登第後歷臺省 銓郞名著一世號西坡 曺變安 副提學 尙治之子性本廉?少而能文俱捷大少科參原從切臣歷仕五朝以書狀正官朝天者入赴遼者一官至參議 鄭從韶 高麗名臣襲明十世孫文科重試歷臺省 銓郞官至司成師母舅大田 李甫欽文章節行重一世與成三問 朴彭年友善丙子獄起稱疾不案仕?畢 金宗直敬重之常稱烏川鄭先且 尹兢 贈參判 憲子學博行篤年十六俱中司馬兩試後又登第 成宗朝以銓郞入侍 上閑曰吾家有鼠乎左右不能對●獨對曰書●之家鼠不咨行 上嘉之特 命陞資除吏曹參議薦一?鄭汝昌...(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종실록 122권/ 세종 30년( 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10월 24일 정축 1번째 기사/ 삼관의 천전법에 대해 의논하다/ 삼관(三館)에서 상서(上書)하기를, ꡒ태조와 태종께서 창업(創業)하시고 수통(垂統)하시와 만세(萬世)의 큰 터전[丕基]을 세우시고, 과거(科擧)를 베풀고 선비를 뽑아서 일대(一代)의 좋은 법을 만드셨으니, 자손을 편안하게 할 계책을 끼치시고 국가를 위하여 무궁한 아름다운 복(福)을 이루신 바가 지극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태종 전하께서 처음으로 중시(重試)의 과거를 세우시매, 이 과거에 합격하는 자는 자급(資級)을 더하여 탁용(擢用)하시어, 비록 삼관(三館)의 천전(遷轉)하는 예(例)에 있는 자일지라도 상자(常資)에 구애하지 아니하고 모두 거관(去官)하게 하였습니다. 박서생(朴瑞生)은 성균관 학생으로서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김구경(金久?)은 권지학유(權知學諭)로서 봉상 주부(奉常主簿)에 임명되었으며, 정초(鄭招)는 예문 검열(藝文檢閱)로서 정언(正言)에 임명되었고, 김조(金?)는 검열로서 인녕부 승(仁寧府丞)에 임명되었으며, 정광원(鄭廣元)은 학유(學諭)로서 경승부 승(敬承府丞)에 임명되었으니, 이는 전고(前古)의 제왕(帝王)에 없었던 거룩한 일이옵니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이 법을 준용(遵用)하시와 친히 임(臨)하여 재주를 시험하시고, 또한 모두 탁용하셨으니, 뜻을 이어 일을 좇으심이 전열(前烈)4280) 보다 빛나옵니다. 정묘년에 성균 학록(成均學錄) 신(臣) 정종소(鄭從韶)와 겸승문원 저작랑(兼承文院著作郞) 조변륭(曹變隆)이 또한 이 과거에 참여하여 장차 자급을 더하려고 하오나, 천전(遷轉)하는 예(例)에 구애되어 그 벼슬에 그대로 머물고 옮기지 못하오니, 중시(重試)로 탁용하는 뜻에 어찌 어긋남이 없사오리까. 하물며, 지금 종소는 이미 선무(宣務)의 자급에 올랐는데 9품의 벼슬을 행하니, 만약 예(例)에 따라 천전(遷轉)하면 반드시 5년 뒤에야 거관(去官)할 것이오니, 태종의 중시(重試)로 탁용하는 뜻에 어떠하옵니까. 엎드려 성상의 재결을 바라옵니다.ꡓ 하였다.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ꡒ종소가 이미 중시에 올랐고, 또 선무(宣務)로써 거관하게 함이 마땅합니다.ꡓ하고, 우의정 황보인․좌찬성 박종우는 홀로 불가하다고 하매, 이조에 내려 다시 의논하게 하니, 이조에서 아뢰기를, ꡒ삼관(三館)은 자급(資級)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일체 직사(職事)에 따라 거관(去官)하게 함은 이미 성법(成法)이 있사온데, 만약 한때의 특별한 은혜로 뛰어올려 제수(除授)한 예(例)를 끌어들여 거관(去官)하게 하면, 삼관(三館)의 천전(遷轉)하는 법이 무너질 것이오니, 타례(他例)에 의하여 거관하게 하소서.ꡓ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영인본】 5 책 103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정론-정론(政論)/ [註 4280]전열(前烈) : 전대의 공업(功業). ☞(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17권/ 세조 5년( 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7월 18일 정유 1번째 기사/ 심회․이인손․이승손․권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회(沈澮)를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이인손(李仁孫)을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이승손(李承孫)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권지(權摯)를 호조 참판(戶曹參判)으로, 이윤손(李允孫)을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정종소(鄭從韶)를 사간원 좌헌납(司諫院左獻納)으로 삼았다./ 【영인본】 7 책 33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20권/ 세조 6년( 1460 경진 / 명 천순(天順) 4년) 6월 27일 임신 1번째 기사/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다/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를 보았는데,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서강(徐岡), 사예(司藝) 공기(孔?)․이계손(李繼孫)․정종소(鄭從韶), 인순부 소윤(仁順府少尹) 진유경(秦有經), 직강(直講) 권이경(權以經) 등이 윤대(輪對)하니, 술자리를 베풀었다.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이조 판서(吏曹判書) 구치관(具致寬)․병조 참판(兵曹參判) 김질(金?)과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공기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 임금이 그 소매를 잡으면서 말하기를, ꡒ공기는 내가 본래 서로 알던 자이다.ꡓ하였다. 서강 등이 명경과(明經科)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겨 즉시 명일부터 과장(科場)을 열어 조사(朝士)와 원점(圓點)4396) 이 70이상 찬자에게 시험에 나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계몽(啓蒙)》에 약통(略通)하고, 사서(四書)중에 추첨(抽籤)한 1서(書)에 통(通)하고, 오경(五經) 중에 자원(自願)한 2경(經)에 통(通)하고, 《좌전(左傳)》․《강목(綱目)》․《자치속편(資治續編)》․《송원절요(宋元節要)》 중에서 자원한 1서(書)에 약통(略通) 이상인 자는 전시(殿試)에 나오도록 허락하고, 초시(初試)에서는 정원(定員)의 숫자에 구애하지 말게 하였다. 예조(禮曹)․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기를, ꡒ명경과(明經科)와 무거(武擧)를 시험보이고자 하니,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라.ꡓ하였다./ 【영인본】 7 책 405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정종소 [記事] : 세조실록 28권/ 세조 8년( 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4월 16일 신사 2번째 기사/ 감사․수령의 위법․작폐를 감찰하고자 예문 직제학 안관후 등을 분대로 임명하다/ 임금이 감사(監司)․수령(守令)의 법(法)을 어겨 작폐(作弊)할 것을 염려하여, 팔도(八道)에 분대(分臺)5743) 를 보내려고 하여 승지(承旨) 등에게 물으니, 승지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ꡒ보내는 것이 편하겠습니다.ꡓ하였으므로, 즉시 예문 직제학(藝文直提學) 안관후(安寬厚)․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이우(李?)․행 성균 사예(行城均司藝) 김서진(金瑞陳)․우익위(右翊衛) 이질(李?)을 겸 사헌 집의(兼司憲執義)로 삼고, 한성 소윤(漢城少尹) 정종소(鄭從韶)․사재 부정(司宰副正) 민규(閔奎)․제용 부정(濟用副正) 송춘림(宋春琳)을 겸 사헌 장령(兼司憲掌令)으로 삼았다./ 【영인본】 7 책 529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註 5743]분대(分臺) : 각 지방의 민정(民情)을 살피고 수령(守令)의 잘잘못을 핵문(?問)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 ☞(www.history.go.kr 2007)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