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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38-6:박한주(1497.3.6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1.07.16 09:27:42

   예천고을원(38-6) : 박한주(1497.3.6 이임) : 조선 연산군 때의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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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28일 무자 3번째 기사/ 곽종번․이철균․최숙생의 죄를 논하다/ 전교하기를, ꡒ곽종번(郭宗蕃)․이철균(李鐵鈞)․신징(申澄)․박한주(朴漢注)․이윤번(李允蕃)이 궁중 일을 지레 짐작한 일은 그 죄가 율문에 있으니, 거기에 의하여 죄주어서, 다른 사람들로 경계할 줄을 알게 함이 어떤가? 또 최숙생(崔淑生)이 아뢴, 전곶전(箭串田)은, 위에 바치는 일인데 감히 논계하였으니, 매우 그르다.ꡓ하니, 유순․허침․박숭질․강귀손(姜龜孫)․김수동(金壽童) 등이 아뢰기를, ꡒ종번 등이 아뢴 것은 그릅니다. 그러나 나이 젊은 선비가 언관(言官)이 되면 사체를 모르고 말합니다만 지금 와서는 저도 반드시 징계되어 스스로 새로워졌을 것입니다. 근일 설원(雪?)하는 일로 하여 죄를 얻은 자가 매우 많은데, 종번 등의 죄는 생각하면 그것과는 다름이 있을까 합니다.ꡓ하였다. 전교하기를, ꡒ무릇 신하로서, 위에서 하는 일을 의심하여 지레 짐작하고 말을 한다면 차라리 궁중에 들어와서 그 하는 일을 보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무리들은 의당 중한 죄에 처하여, 뒷사람들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또 사냥은 봄․가을로 행하는 것이 준례이나, 내가 혹 수시로 행한다 하여 대간(臺諫)된 자가 또한 이것을 논계하는데, 나는 매우 그르게 여긴다. 지금 언관을 죄주는 것은 말하는 길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말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성종은 명철한 임금이지만, 김봉(金?)이 일찍이 헌납(獻納)이 되어 일을 말하는 데에 그릇됨이 있으니 곧 당직청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봉은 그때, 문학으로서 바야흐로 서연(書筵)에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형벌을 당하였다. 이것은 내가 친히 본 일이니, 죄가 있으면 어찌 대간이라 하여 용서해 줄 것이랴. 종번 등을 당초 그렇게 논죄한 것은, 그때 정승들이 꼭 덮어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찌 재상의 일이랴. 지금 정승들 역시 설원(雪?)에 대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며, 도리어 종번을 덮고 위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ꡓ하니, 정승들이 아뢰기를, ꡒ신들이, 종번이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상의 분부를 들으매 아주 지당하옵니다.ꡓ하였다. 전교하기를, ꡒ철균(鐵鈞) 등을 당직청으로 잡아다가 국문하고 율에 비추어 아뢰라. 또 조지서(趙之瑞) 등의 머리를 팔도에 조리돌린 후 구렁에 버려두라. 만일 평소에 알던 수령(守令)이 혹시라도 거두어 장사지내는 자가 있어, 일이 발각되면 크게 죄줄 것이니, 이것을 효유하라.ꡓ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ꡒ제왕(帝王)으로서 사람을 쓰면서,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그런데 재상의 관직을 제수하면 대간이 곧 말하기를 ꡐ이는 척리(戚里)4355) 이다.ꡑ, ꡐ이가 특은(特恩)이다.ꡑ고 하며, 이로써 의심하니, 이것도 불가한 일인데, 더구나 궁중에서 하는 일을 지레 짐작하고 부연하여 논계함이랴. 죄가 본디 중하다. 변형량(卞亨良)․이유녕(李幼寧)같은 무리는 남의 숨은 사사로운 일을 말했다 하여 형벌을 주었는데, 하물며 종번(宗蕃) 등은 궁중의 일을 지레 짐작함이랴. 옛사람이 비록 ꡐ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끊은 것은 다시 잇지 못한다.ꡑ고 말하였지만 이것과는 다르다. 지금 풍속을 바로할 때이니, 이런 사람들은 원래 진실로 처형하여야 한다. 정부․육조(六曹)․한성부․대간(臺諫)을 불러 의논하라.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18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법-행형(行刑) / *농업-전제(田制) / *정론-정론(政論)/ [註 4355]척리(戚里) : 임금의 내외 친척. ☞(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1일 경인 7번째 기사/ 박한주을 심문하고 신징을 능지케 하다/ 전교하기를, ꡒ신징의 말이 ꡐ박한주(朴漢柱)가 먼저 주창하고 또 차자(箚子)를 지었다.ꡑ고 하니, 한주가 오면 그 정상을 심문하고, 징은 형벌 한 등급을 더하여 능지(凌遲)하라.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19 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1일 경인 10번째 기사/ 신징과 유빈 등의 죄를 논하고 처벌하다/ 승지 권균(權鈞)이 아뢰기를, ꡒ유빈(柳濱)이 공술(供述)하기를 ꡐ지평(持平) 곽종원(郭宗元)이 후원에서 말타는 사람을 바라보고 신 등에게 말하였는데, 대사헌 김제신(金悌臣)이 신 등과 의논하기를 「후원에는 보행하는 자라도 언제나 왕래하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말을 타는 자이겠는가. 지금 들어가 아뢴다면 그 연유를 알 것이다.」고 하여, 함께 의논하고 들어가 아뢴 것이다.ꡑ 하였습니다.ꡓ하고, 이어 정승 및 의금부 당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ꡒ빈(濱)이 말하기는 하였지만, 빈이 직접 본 것이 아닙니다. 일은 종원(宗元)에게서 나왔고 의논을 주장한 것은 제신(悌臣)이니, 그 죄가 짐작으로 억측한 유는 아닙니다.ꡓ 하니, 전교하기를, ꡒ종원이 보고서 말했더라도, 빈으로서는 금지시켜 말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가하다. 그런데 제신과 함께 의논하여 아뢰었으니, 그 죄가 무엇이 다르겠느냐. 만일 빈을 사(赦)하여 준다면 신징(申澄)의 죄 받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같은 한가지 죄인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죽지 않는다면 매우 불가한 일이다. 어떻게 빈을 처리해야 하겠는가?ꡓ하였다. 승지들이 아뢰기를, ꡒ신징․유빈이 감히 궁중 일을 말하였으니, 죄가 원래 중합니다. 그러나 징이 아뢰기를 ꡐ대궐 안 장막 친 속에 반드시 놀이하고 희롱하는 일이 있은 것이라.ꡑ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궁중 일을 짐작으로 억측하고 한 말이요, 빈은 종원(宗元)의 말로 인하여 아뢰었으니, 그 죄가 징과는 차이가 있겠습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빨리 정승을 불러 물으라.ꡓ하였다. 영의정 유순(柳洵)과 의금부 당상 정미수(鄭眉壽)․김감(金勘)․이계남(李季男) 등이 승지들과 함께 아뢰기를, ꡒ이자건(李自健)과 유빈의 죄는 신징에 비하면 경중이 판이합니다. 징은 궁중에 없는 일을 짐작으로 억측하여 말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경히 여긴 것입니다. 또 종원이 혹 엿보고 말하더라도 빈으로서는 의당 금하고 말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가한 일인데 함께 의논하여 아뢰었으니, 이는 잘못입니다. 그러나 짐작으로 억측하여 말한 자와는 같이 할 수 없으니, 차등 있게 죄를 줌이 마땅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김제신(金悌臣)은 부관 참시(剖棺斬屍)하고, 아들은 장 80대를 때려 먼 지방에 충군(充軍)하며, 이자건(李自健)의 아들도 충군하고, 유빈(柳濱) 이상은 각각 장 1백을 때려 먼 지방이 부처(付處)하고 아들은 충군하며, 곽종원(郭宗元)은 능지(凌遲)하고, 아들은 장 1백 대를 때려, 아주 먼 변방의 종이 되게 하며, 신징(申澄)의 아들은 장 80대를 때려 먼 지방에 종이 되게 하고, 박한주(朴漢柱)는 능지하고, 아들은 장 1백 대를 때려 아주 먼 변방에 종이 되게 하며, 이윤번(李允蕃)의 아들은 장 80대를 때려 먼 지방에 종이 되게 하고, 곽종번(郭宗蕃)의 아들은 장 60대를 때려 먼 지방에 충군하라.ꡓ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ꡒ하관이 말할 수 없는 일을 의논하여 아뢰는데, 제신(悌臣)이 막지 못하였으니, 이 사연으로 찌를 쓰게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19 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 / *가족-친족(親族) / *군사-군역(軍役)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8일 정유 12번째 기사/ 박한주를 속히 잡아오게 하다/ 전교하기를, ꡒ박한주(朴漢柱)는 어디 있기에 지금까지 잡아오지 않느냐? 물어서 아뢰라.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23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12일 신축 4번째 기사/ 박한주를 국문케 하다/ 전교하기를, ꡒ박한주(朴漢柱)를 지금 잡아왔으니, 이덕숭은 우선 서서히 국문하고, 먼저 박한주 등을 국문하여 죄를 결정하라.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25 면/ 【분류】 *사법-재판(裁判)(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12일 신축 6번째 기사/ 박한주를 능지시키다/ 승지 박열(朴說) 등이 아뢰기를, ꡒ박한주(朴漢柱)가 공초하기를 ꡐ신이 전에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정언(正言) 신징(申澄)과 함께 궁중의 일을 의계하였으니, 신이 실로 죄가 있다.ꡑ 하였습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한주가 말한 이윤번(李允蕃)의 재고(在告) 월일이 옳은가?ꡓ하였다. 열(說) 등이 아뢰기를, ꡒ한주의 말한 것이 《일기》와 틀리지 않습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승지 박열․이계맹(李繼孟)과 내관이 가서 형벌을 감독하되 ꡐ억측으로 궁중 일을 전파한 죄ꡑ라고 찌를 써 달라.ꡓ하였다. 드디어 한주를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능지(凌遲)하였는데, 밤이 벌써 3경이었다. 전교하기를, ꡒ죽은 시체를 보여도 넉넉히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니, 명일 백관들이 차례로 서서 보게 하라.ꡓ하였다. 한주는 탁월하고 고고(孤苦)하여 지조가 있었다./ 【영인본】 13 책 625 면/ 【분류】 *인물(人物) / *사법-행형(行刑) / *왕실(王室)(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13일 임인 2번째 기사/ 이수원과 이수형 형제 등을 베다/ 전교하기를, ꡒ이수원(李守元)과 이수형(李守亨)․이수의(李守義)․이수정(李守貞)은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예로 죄준다면 그 죄가 교수형에 처해야 하나, 이 사람들은 아비의 세력을 믿고 교만 방종하였으니, 모두 참형(斬刑)에 처하고 3일 간 효수(梟首)한 뒤에 시체를 돌리도록 하라. 또 형벌할 때에 백관을 차례로 서서 보게 한 뒤에 다시 박한주(朴漢柱)를 효수한 곳으로 가서 보게 하라.ꡓ하였다. 이리하여 수원 등을 군기시 앞에서 베었는데, 왕이 찌를 써서 달기를 ꡐ자리잡은 세력을 믿고 위를 업신여기며 조정을 능멸한 죄이니, 이런 사람은 그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ꡑ고 하게 하였다. 승지 박열 등이 형벌을 감독하고 복명하니, 전교하기를, ꡒ수원 등이 형벌을 당할 때, 자못 기를 부렸느냐?ꡓ하니, 열(說) 등이 아뢰기를, ꡒ없었습니다.ꡓ하였다. 수형․수의․수정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세상에 이름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죄 아닌 일로 함께 저자에서 참형당하니, 통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영인본】 13 책 625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가족-친족(親族)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7)

 

  박한주 : 甲子十年,/ 상위서지: 동사략(東史約) > 紀年東史約卷之十三 朝鮮茅亭李源益 編 > 本朝紀/ 저자: 李源益/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별사류(別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紀年東史約卷之十三 朝鮮茅亭李源益 編/ 本朝紀/ 十七年/... ○朴漢柱字天支號?拙子, 言事直截, 出爲醴泉守, ?流至是被禍,...//

  박한주 : 送醴泉郡守朴侯天支漢柱 赴任。 朴侯。弘治十年丁巳。自司諫院獻納。遷刑曹正郞。由刑曹出爲平海郡守。未之任。移授本郡。/ 상위서지: 虛白亭集 > 虛白先生續集卷之一 > 詩/ 저자: 홍귀달(洪貴達)/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虛白先生續集卷之一/ 詩/ 送醴泉郡守朴侯天支漢柱 赴任。 朴侯。弘治十年丁巳。自司諫院獻納。遷刑曹正郞。由刑曹出爲平海郡守。未之任。移授本郡。 014_134b/ 氣?風流作丈夫。文名經術更鴻儒。郞官出守如君少。獻納輸忠似此無。平海山川應?望。醴泉民物正?呼。專城滿目皆朝選。課績恩私竟孰殊。//

 

  박한주 : 送朴天支 漢柱 赴任醴泉/ 상위서지: 大峯集 > 大峯先生文集卷之一 > 詩/ 저자: 양희지(楊熙止)/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大峯先生文集卷之一/ 詩/ 送朴天支 漢柱 赴任醴泉 015_018d/ 祖席高開漢水流。鄕音學士出南州。襄陽耆舊今猶在。講道應除簿領愁。 權嚮之兄弟。居醴泉。//

 

  박한주(1497.3.6 예천군수 이임) : 갑자화적(甲子禍籍)/ 서명: 燃藜室記述/ 저자: 이긍익(李肯翊)/ 분류: 고전국역서 > 역사 > 사서류(史書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연려실기술 제6권/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故事本末)/ 갑자화적(甲子禍籍)/ 박한주(朴漢柱)ㆍ이수공(李守恭)ㆍ강백진(康伯珍)ㆍ무풍정총(茂豊正摠)ㆍ최부(崔溥)ㆍ이원(李?)ㆍ김굉필(金宏弼)ㆍ이주(李?)ㆍ강겸(姜謙) 이상 9명은 모두 점필재(?畢齋)의 제자로서, 무오년에 곤장을 맞고 귀양갔다가 갑자년에 사형당하였다.//

 

  박한주(자 천지, 醴泉郡守 1497.3.6 이임) : 送朴天支 赴任醴泉 [한국문집총간-대봉집(大峯集)]/ 양희지 저 | 한국고전번역원/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ꡐ역사자료ꡑ이다.// 送醴泉郡守朴侯天支 赴任。 [한국문집총간-허백정집(虛白亭集)]/ 홍귀달 저 | 한국고전번역원/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ꡐ역사자료ꡑ이다.//

 

  박한주(朴漢柱) : 자료수정내역 [문과] 성종(成宗) 16년 (1485) 을사(乙巳) 별시(別試) 일등(一等) 3위/ [인적사항] 자 천지(天支), 호 우졸(迂拙), 본관 밀양(密陽), 거주지 미상(未詳),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헌납(獻納), 타과 성종(成宗) 14년(1483) 계묘(癸卯)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가족사항]  [부] 성명 : 박돈인(朴敦仁)/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박한주(朴漢柱) : 자 천지(天支), 호 우졸재(迂拙齋), 생졸년 1459 (세조 5) - 1504 (연산군 10), 시대 조선 전기, 본관 밀양(密陽),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거 및 취재 [문과] 성종(成宗) 16년 (1485) 을사(乙巳) 별시(別試) 일등(一等) 3위, [생원진사시] 성종(成宗) 14년 (1483)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17위, [생원진사시] 성종(成宗) 14년 (1483)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13위, [상세내용] 박한주(朴漢柱)에 대하여 : 1459년(세조 5)∼1504년(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 돈인(敦仁)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별시(文科別試)에 급제하였다.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에 제수된 뒤 한성부참군·사헌부감찰·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 등을 지내고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자진해서 창녕현감으로 나왔다. 이때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켜 임금이 비단과 교서(敎書)로서 포상, 가자(加資)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들어가 종부시주부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덕(失德)을 직간(直諫)하였고 또 임사홍(任士洪) 등의 간악함을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렸다. 연산군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자 외직을 청하여 평해군수·예천군수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門徒)로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방한다는 죄명으로 장(杖) 80대에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 1500년 평안도로 이배되었는데, 이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17년 김정(金淨)·조광조(趙光祖) 등의 계(啓)에 의하여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이 추증되었다. 밀양 예림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서원(德巖書院), 대구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우졸재집》이 있다.(daum 2010)

 

  박한주(朴漢柱) : 2009.03.13/ [문과] 성종(成宗) 16년 (1485) 을사(乙巳) 별시(別試) 일등(一等) 3위/ [인적사항] 자 천지(天支)  .../ http://blog.daum.net/pjh2071/ 密城朴氏 全國靑年會(daum 2010)

 

  박한주 : 오졸제 박한주 여표비 및 비각 - 박한주(朴漢柱)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여표비(閭表碑)/ 2007.08.07/ 경북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178-1/ 이 비석<碑石>은 박한주<朴漢柱>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여표비<閭表碑>이다. 선생은 본이 밀양<密陽>이고, 호는 오졸재<오拙齋>이며,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고제이다. 성종<成宗>.../ http://nexruby.tistory.com/ Ruby Tour 여행(daum 2010)

 

  박한주 : 무오사화 [戊午士禍] (음력 7월 12일)/ 2010.01.09/ ...을 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귀양을 보냈으며, 이종준(李宗準)·최부(崔溥)·이원·이주(李胄)·김굉필(金宏弼)·박한주(朴漢柱)·임희재(任熙載)·강백진(姜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 등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조의제문』 .../ http://blog.daum.net/hs9021/ 아쉬리움은 여울져가고...(daum 2010)

 

  박한주 : 조선왕조실록-박한주/ 2009.04.06/ ...등이 아첨을 일삼는다 하여 이세좌를 국문할 것을 건의하다. 장령(掌令) 민사건(閔師騫)과 정언(正言) 박한주(朴漢柱)가 아뢰기를, “이세좌(李世佐)가 경연(經筵)에서 아뢰기를, ‘천하와 국가는 그 형세가 같지 않으니 제왕(帝王)은 외인.../ http://blog.daum.net/pjh2071/ 密城朴氏 全國靑年會(daum 2010)

 

  박한주(朴漢柱) [專門資料] : 저자 권별(權鼈)/ 발행처 한국고전번역원/ 발행일2007-02-12(daum 2010)

 

  박한주 : 훈구파, 사화파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 2008.03.24/ ...·홍한(洪澣)·정희랑(鄭希良) 등은 난을 고하지 않은 죄로, 김굉필(金宏弼)·이종준(李宗準)·이주(李胄)·박한주(朴漢柱)·임희재(林熙載)·강백진(姜伯珍) 등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한 죄로...(daum 2010)

 

  박한주 : 밀양 출신 유명한 문인?/ 2005.11.03/ 문인 박시예 (朴時乂) 조선시대 문인 박익 (朴翊) 1332년(고려 충숙왕 1)~1398년(조선태조 7) 문인 박한주 (朴漢柱) 1449년(연산 31)~1504년(연산군 17) 문인 변계량 (卞季良) 1369년 ~ 1430년(여말선초) 문인 손영제 (孫永濟) 조선 선조...(daum 2010)

 

  박한주(朴漢柱) : 2009.04.16/ 박한주(朴漢柱) 1459(세조 5)∼1504(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 돈인(敦仁)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 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 http://cafe.daum.net/eunsan.co.kr/ 밀성박씨 성손 만남의 장소(daum 2010)

 

  박한주 : 우졸재실기/ 2009.04.16/ 문집명 우졸재실기 (迂拙齋實記)(15-16c) 간략서지 一蓑 古 923.251-b184u迂拙齋 朴漢柱의 문집. 2권 1책. 간략해제 규장각에는 모두 3종이 소장되어 있다. <奎 15474>는 ≪迂拙齋實記≫? <古 4655-84>는 ≪迂拙齋先生年譜≫? <.../ http://cafe.daum.net/eunsan.co.kr/ 밀성박씨 성손 만남의 장소(daum 2010)

 

  박한주 : 해동잡록 1 본조(本朝) 박한주(朴漢柱)/ 2009.04.17/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자는 천지(天支)요, 스스로 호를 오졸자(?拙子)라 호(號)했다. 일찍이 점필재(?畢齋) 문하에서 배웠으며, 우리 성종조에 급제하여 정언(正言)과 헌납(獻納)을 역임하였고, 연산(燕山) 무오년에 벽동.../ http://cafe.daum.net/eunsan.co.kr/ 밀성박씨 성손 만남의 장소(daum 2010)

 

  박한주 : 조선왕조실록-박한주/ 2009.04.17/ ...10년 갑자(1504, 홍치 17) 5월 12일(신축) 박한주를 능지시키다. 승지 박열(朴說) 등이 아뢰기를, “박한주(朴漢柱)가 공초하기를 ‘신이 전에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정언(正言) 신징(申澄)과 함께 궁중의 일을 의계하였으니, .../ http://cafe.daum.net/eunsan.co.kr/ 밀성박씨 성손 만남의 장소(daum 2010)

 

  박한주 : 대동기문(상)/ e-Book/ 김성언 역주 지음 |  국학자료원 |  2006.04.28/ 책본문 : ...[108] 박한주가 용봉 장막도 모두 백성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다/ 원문 : 朴漢柱曰, 龍鳳帳幕皆出民力朴漢柱는 密陽人이니 字는 天支요 號는 迂拙子라. 六七歲에 能屬文賦詩하여.../ 234 페이지(daum 2010)

 

  박한주 : 한국사 인물 열전 1/ e-Book/ 한영우 지음 |  돌베개 |  2007.01.20/ 책본문 : 李惟淸)은 삭주로, 민수복(閔壽福)은 귀성으로, 이종준(李宗準)은 부령으로, 박한주(朴漢柱)는 벽동으로, 신복의는 위원으로, 성중엄(成重淹)은 인산으로, 박권은 길성으로, 손원로는.../ 455 페이지(daum 2010)

 

  박한주 : 대동기문(하)/ e-Book/ 김성언 역주 지음 |  국학자료원 |  2006.04.28/ 책본문 : ...(朴枝華) 277박충원(朴忠元) 160박태보(朴泰輔) 601박팽년(朴彭年) 41박한주(朴漢柱) 108박호(朴) 328배극렴(裴克廉) 1배상지(裴尙志) 804백광현(白光炫) 561백광훈(白光勳) 274.../ 772 페이지(daum 2010)

 

  박한주 : 선비 1(인생의 참스승)/ e-Book/ 이용범 지음 |  바움 |  2006.03.23/ 책본문 : ...박한주(朴漢柱) 1459년(세조 5)∼1504년(연산군 10).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천지(天支),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시 및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별시.../ 383 페이지(daum 2010)

 

  박한주 : 안동의 인물 - 화산(花山) 권주(權柱)/ 2008.08.12 (화) 오후 3:59/  ⓒ 문화재청 제공/ ...세상에서 배우기를 즐겨하지 않는 자들이 시끄럽게 하여도 동요되지 않았으며 또 錦南(금남) 崔溥(최부) 迂拙(우졸) 朴漢柱(박한주)와 서로 교분이 좋았으며 일찍이 同房錄(동방록) 서문을 지었는데 교제를 잘하고 신의가.../ 안동넷 > 사설칼럼(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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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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