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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40) : 문흠(1501이전 이임) : 무오사화 무렵의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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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흠(文欽)은 신경립 군수 후임으로 부임, 1501년(연산군 7) 이전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문흠이 예천고을 원으로 있을 무렵인 1498년(연산군 4) 7월에 용문면 출신 권오복이 사형을 당하였다.
권오복(1467~1498)의 자는 향지, 호는 소유 또는 수헌, 본관은 예천, 별좌 선의 3자, 오기의 동생,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1486년(성종 17) 식년 생원시에 2위로 합격, 같은해 식년 문과에 병과 21위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과 홍문관에 등용되었다가 사가독서했고, 문장과 필법이 탁월하여 20세의 나이로 옥당에 들어갔다. 이극돈, 유자광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다가 김종직의 전기를 보고 연산군에게 무고하여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1498년(연산군 4) 7월 17일에 김일손이 김종직 제자들의 명단을 말하기를, ꡒ권오복은 김종직의 동지성균 시절에 서로 만났습니다ꡓ라고 하였지만, 같은해 7월 26일에 윤필상이 아뢰기를, ꡒ사초 사건의 관련자 권오복 등은 대역의 죄에 해당됩니다ꡓ라고 하니, 연산군이, ꡒ아뢴대로 처치하라ꡓ하였다.
중종반정 때 도승지에 추증되고, 예천군 다인현의 봉산서원에 제향되고, 유집이 있다. 문장이 「동문선」, 「대동시림」에 실려 있고, 당시 선비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1494년(성종 25) 4월 2일에 임금이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중국 의학서인 「안기집」의 수우경을 번역하는 일을 이미 권오복 등으로 하여금 하도록 하였다. 산골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 (醴泉新聞 495號 2002-01-31 13: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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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