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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48:박곤(1524.8.29 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1.10.22 06:32:54

   예천고을원(48) : 박곤(1524.8.29 이임) : 경상감사의 장계로 이임한 예천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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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곤(朴鯤)은 1524년(중종 19) 8월 29일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1524(중종 19), 광주(光州) 사람, 호는 무민(无悶), 본관은 음성(陰城), 광정(光鼎)ㆍ광종(光鍾)ㆍ광옥(光玉)의 아버지이다.

  1501년(연산군 7) 식년 문과에 병과 6위로 급제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4월 17일 박곤 등이 왕과 정성근(鄭誠謹), 조지서(趙之瑞)의 죄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1513년(중종 8) 6월 11일 지평(持平)에 재임 중이었고, 1517년(중종 6) 9월 19일 대간(臺諫)이 왕에게 박곤 등의 관직 개정을 아뢰니, 왕이 윤허치 않았고, 1521년(중종 16) 4월 19일에는 경력(經歷)에 재임 중이었고, 1524년(중종 19) 8월 29일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에 의하여 예천 군수를 이임하였다.

  그 후 성균관 사예(司藝) 등의 벼슬을 하였다.

  맏아들 광정(字重器)은 유학(幼學)으로서 1540년(중종 35) 식년 생원시 3등 38위로 합격하였고, 셋째 아들 광옥(字重粹)은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으로서 1546년(명종 1) 식년 생원시에 3등 48위로 합격, 동년 식년 진사시에 2등 26위로 합격, 1574년(선조 7) 별시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하여 지평을 역임하였다.(司馬榜目, 中宗實錄, 韓國故事大典 1965)

 

  [저서] : <무민선생문집(无悶先生文集)>이 있는데, 563쪽, 23cm이다. 한국문집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여 서울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에서 1994년에 출판하였고, 동아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박곤(朴鯤) : 1524년(중종 19)에 예천 군수(醴泉郡守)를 이임, 1524년 8월 29일에 경상도 관찰사 성세창(成世昌)이 왕에게 보고하기를, "예천 군수 박곤은 불법을 많이 하여 백성에게 원망을 삽니다." 라고 하였는데, 박곤을 파면하라고 왕이 명령하였다.

 

  박곤 [記事] : 중종실록 51권/ 중종 19년( 1524 갑신 / 명 가정(嘉靖) 3년) 8월 29일 신유 5번째 기사/ 성세창이 치계하니 박곤․정광익을 파직하고 윤탕에게 표리를 내리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성세창(成世昌)이 치계(馳啓)하기를, ꡒ상주 목사(尙州牧使) 윤탕(尹宕)은 청리(聽理)12422) 가 밝고 과단(果斷)하며 백성을 사역하는 것이 고릅니다. 예천 군수(醴泉郡守) 박곤(朴鯤)은 불법을 많이 행하여 백성에게 원망을 삽니다. 고령 현감(高靈縣監) 정광익(鄭光翼)은 가혹하게 거두어 사사를 영위하므로 원망이 두루 일어납니다.ꡓ 하였는데, 박곤․정광익을 파직하고 윤탕에게 표리(表裏)12423) 1습(襲)을 내리라고 명하였다./ 【영인본】 16 책 33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사급(賜給)/ [註 12422]청리(聽理) : 송사를 듣고 다스림. ☞ / [註 12423]표리(表裏) : 옷의 겉감과 안찝. ☞ (www.history.go.kr 2007)

 

  박곤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17일 정축 4번째 기사/ 유순․허침․박숭질 등의 정성근․조지서의 죄에 대한 논의/ 유순(柳洵)․허침(許琛)․박숭질(朴崇質)․박건(朴楗)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鄭誠謹)은 간사한 마음을 품고 거짓 충성한 체하여 감히 세속을 놀라게 하는 행동을 하였으며, 조지서(趙之瑞)는 거만하고 제가 높은 체하며, 패만(悖慢)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구성(具誠)․최숙근(崔叔謹)은 은밀히 당여(黨與)를 만들어, 사람을 죽을 죄로 모함하였으니 모두 드러내어 베어서 마땅합니다. 성근과 지서는 성품과 행동이 같지 않지만, 남의 사삿일을 공격 고발하기를 좋아하며 사람을 상하고 물건을 해치는 마음이 있는 것은 한가지입니다.ꡓ하고, 강귀손(姜龜孫)․신준(申浚)․조득림(趙得琳)․이계동(李季仝)․여자신(呂自新)․이집(李?)․정미수(鄭眉壽)․김수동(金壽童)․김감(金勘)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은 밖은 곧으나 안은 거짓이요, 감정을 죽여 이름을 얻으려 하였으며, 조지서는 부망(浮妄)하고 궤이(詭異)하여 남에게 오만하고 제가 높은 체하였으며, 구성․최숙근은 음흉 간사한 일을 날조(捏造)하여, 가까운 친족을 무함하였으니, 드러내어 베임 받음이 마땅합니다.ꡓ하고, 정유지(鄭有智)․최응현(崔應賢)․안처량(安處良)․이계남(李季南)․김무(金?)․오순(吳純)․김경조(金敬祖)․윤탄(尹坦)․이병정(李秉正)․성세명(成世明)․임사홍(任士洪)․이창신(李昌臣)․장순손(張順孫)․이점(李?)․이양(李良)․한형윤(韓亨允)․김의동(金義童)․노공유(盧公裕)․최관(崔灌)․김종(金悰)․변수(邊脩)․유호(兪顥)․유기창(兪起昌)․최진(崔璡)․유계장(柳季?)․강삼(姜參)․성희안(成希顔)․정광필(鄭光弼)․신계종(申繼宗)․이성달(李成達)은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의 죄와 구성․최숙근 등의 죄는 그 범행이 사실 크니, 중죄에 처하여야 마땅합니다. 그 중에도 조지서는 궤이(詭異)한 행동하기를 좋아하며, 망령되이 자기를 높여 남의 위에 서려 하고, 큰 말이 합당한 것이 없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 정성근은 심지가 괴벽하여, 꾸며 대어 거짓을 행하고 우직하여 사삿일을 하여 남의 칭찬을 받고, 위에 잘 뵈이려 하였으니, 이 무리들은 모두가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하며, 요사한 말과 요사한 행동으로 여러 사람을 미혹하는 자입니다. 어찌 성명(聖明)한 세상에 용납될 것이겠습니까?ꡓ하고, 허집(許輯)․민휘(閔暉)․반우형(潘佑亨)․홍자하(洪自河)․홍임(洪任)․육한(陸閑)․유사(劉?)․심형(沈亨)․하맹윤(河孟潤)․이열(李洌)․이과(李顆)․김전(金銓)․이중현(李仲賢)은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구성․최숙근 등은 이미 중한 죄를 범했으니 죄주는 것이 원래 당연합니다. 그 중에도, 지서는 큰 말과 거짓행동으로 거만하고 제가 잘난 척했으며, 성근은 남을 업신여기고, 저를 높이려 하며 발끈 성내고 또 우직하였으니, 모두 세상을 속이고 제 이름을 내려는 무리들로서 사람들이 많이 미워하였습니다.ꡓ하고, 노효신(盧效愼)․홍정로(洪貞老)는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구성․최숙근 등은 죄를 주는 것이 지당합니다. 지서는 궤이(詭異)하기가 그 이상 없으며, 제 스스로 높은 체하고 선비들을 경멸하였으며, 성근은 강퍅스럽기 이를 데 없고, 소행이 모두 거짓으로서 세속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ꡓ하고, 이복선(李復善)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조지서․구성․최숙근 등의 죄상은 지극히 중하여 형용하기가 어려운데, 지금 중형을 당하니, 공론이 매우 통쾌해 합니다. 성근․지서의 심술은 측량할 수 없으나, 안에 쌓인 것이 밖에 나타나서, 그 행적의 궤이하고 사특함이 이렇게까지 심하니, 그 심술의 흉악하고 부정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ꡓ하고, 손주(孫澍)․윤석보(尹碩輔)․윤은보(尹殷輔)․심정(沈貞)․정붕(鄭鵬)․이희보(李希輔)는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趙之瑞)․정성근(鄭誠謹)․구성(具誠)․최숙근(崔叔謹) 등의 죄주는 일은 매우 마땅합니다. 지서는 음휼하고 거만하며, 궤이(詭異)한 일 하기를 좋아하고, 거짓을 꾸며 이름을 낚으며 남보다 앞서려 했으며, 성근은 거짓을 품고 고자질하기를 좋아하며 강퍅스럽고 제가 높은 체하며, 거짓을 꾸며 세상을 속이기에 힘썼으니, 성명(聖明)께 용납되지 못하여야 합니다.ꡓ하고, 신숙근(申叔根)․장충보(張忠輔)․이충걸(李忠傑)․김준손(金俊孫)․유속(柳續)․김숭조(金崇祖)․박호겸(朴好謙)․양계벽(梁季璧)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조지서․구성․최숙근 등을 죄준 일은 참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에 흡족합니다. 성근은 심술이 간사하여 감히 궤이(詭異)한 행동을 하고, 거짓을 꾸며 이름을 냈으며, 지서는 마음 씀이 흉악하고 음험(陰險)하며 발끈 성을 잘 내고 높은 체 하며 남을 업신여기고 세상을 속였으니, 천지간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ꡓ하고, 박삼길(朴三吉)․권인손(權仁孫)․심광보(沈光輔)․권구(權俱)․송걸(宋傑)․심담(沈淡)은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최숙근․구성 등을 죄준 일은 마땅합니다. 지서는 망령되이 문학으로 잘난 체하고 심술이 궤이하여 남을 깔보며 세상을 업신여겼으며, 성근은 성을 잘내고 제가 잘난 척하며, 모든 소행이 사실은 거짓으로써, 모두가 세속과 같지 않았습니다.ꡓ하였다. 유자한(柳自漢)․이의무(李宜茂)․이승녕(李承寧)․박숭문(朴崇文)․김영우(金靈雨)․홍경창(洪慶昌)․김수말(金守末)․한사개(韓士介)․조중휘(趙仲輝)․유추(柳湫)는 의논드리기를, ꡒ성근․지서․구성․최숙근 등은 죄를 범한 것이 경하지 않으니, 형벌함이 매우 마땅합니다. 하물며 성근은 성을 잘내고 잘난 체하며, 겉으로는 정직한 체하지만 속은 실지 간사하였으며, 지서는 망령되이 제 스스로 문학이 아무도 자기만 못하다하여 선비들을 업신여기며 크게 궤이(詭異)한 행동을 하였으니, 모두가 세상을 놀래고 윤리를 어지럽히는 사람들로, 그들의 심술이 바르지 못함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ꡓ하고, 유효산(柳孝山)․하형산(河荊山)․한충의(韓忠義)․손집경(孫執經)․신경(申經)․김종한(金從漢)․김윤온(金允溫)․이순명(李順命)․이순량(李純良)․구수종(具壽宗)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조지서․구성․최숙근 등은 죄를 다스림이 마땅합니다. 그들의 심술을 말하면, 성근은 속이 좁고 제가 잘난 척하여, 간사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며, 지서는 재주를 가졌고 남을 경하게 여기고 궤휼(詭譎)하며 부정합니다.ꡓ하고, 심순문(沈順門)․한세환(韓世桓)․강혼(姜渾)․방유녕(方有寧)․권민수(權敏手)․이조(李?)․황맹헌(黃孟獻)․문근(文瑾)․김당(金?)․김윤문(金胤文)․이빈(李?)․김석필(金錫弼)은 의논드리기를, ꡒ지서가 속으로 궤휼한 마음을 가지고, 겉으로 간하는 상소를 칭탁하여 함부로 불경한 말을 하여 감히 군상(君上)을 업신여겼으며, 성근은 거짓 충성하며 제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며 은혜를 노렸으며, 구성․최숙근은 없는 말을 지어 남을 중한 죄로 무함하였으니 다 함께 중한 형벌을 시행하는 것이 실지 법에 마땅합니다. 또 지서와 성근의 사람됨은 그 평생 심술이 궤격(詭激)하고 사위(詐僞)스러워서, 세속과 달리 하여 명예를 낚으려는 것이 모두 다 이렇습니다.ꡓ 하고, 변상(邊祥)․임유겸(任由謙)․남경(南憬)․신징(申澄)․최순(崔珣)․홍숙(洪淑)․윤세림(尹世霖)․이철균(李鐵鈞)․김지(金祉)․진담(秦澹)․김말문(金末文)․조계형(曺繼衡)․윤은필(尹殷弼)․이세응(李世應)․이기(李?)․김안국(金安國)․김세우(金世瑀)는 의논드리기를, ꡒ지서․성근․구성․최숙근 등의 죄는 중형으로 다스림이 매우 마땅합니다. 지서는 음흉하고 궤이하며, 성근은 거짓을 꾸며 이름을 구하니 두 사람의 심술이 이러합니다.ꡓ하고, 이운거(李云?)․우윤공(禹允功)․한순(韓珣)․최해(崔瀣)․조원기(趙元紀)․유응룡(柳應龍)․신복순(申復淳)․김수경(金壽卿)․이창윤(李昌胤)․윤순(尹珣)․유방(柳房)․최중홍(崔重洪)․신영철(申永澈)․손관(孫灌)․박겸무(朴兼武)․김곤(金琨)․이창년(李昌年)․최세준(崔世?)․신세호(辛世瑚)․유의신(柳義臣)․노종(盧種)․송징(宋?)․이철명(李哲明)은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구성․최숙근 등의 죄범이 지극히 중하니, 극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또 성근은 간흉하고 사특하며, 지서는 궤휼하고 오만하니, 그들의 심술이 대개 이러합니다.ꡓ하고, 이익희(李益禧)․허광(許?)․박승수(朴承燧)․권주(權輳)․조계상(曺繼商)․황종신(黃從愼)․이소원(李紹元)․신극성(愼克成)․김원필(金元弼)․이은(李誾)은 의논드리기를, ꡒ정성근․조지서․구성․최숙근의 죄는 다 함께 중한 형벌에 두어 마땅합니다. 성근은 성을 잘 내고 스스로 높은 체하며 거짓을 꾸며 이름을 내고, 지서는 궤휼(詭譎) 부정하고, 재주를 부려 남을 깔보니 두 사람의 심술이 이러합니다.ꡓ하고, 문윤명(文允明)․이윤형(李允亨)․양자해(梁自海)․복희달(卜禧達)․윤탁(尹卓)․유호례(兪好禮)․장익(張翼)․유공석(柳公奭)은 의논드리기를, ꡒ조지서․정성근․구성․최숙근 등의 죄는 극형에 처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지서는 궤휼한 마음을 가지고, 제가 어진 척하여 남을 깔보았으며, 성근은 거짓을 꾸며 이름을 낚으려고 남과 다르게 하기를 애썼습니다.ꡓ하고, 유첨정(柳添汀)․허수(許邃)․조계우(曺繼虞)․김윤관(金允灌)은 의논드기를, ꡒ정성근․조지서․구성․최숙근 등의 죄는 중한 형벌에 처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성근은 겉으로는 충성스러우나 속은 거짓이며, 지서는 음험하고 궤이하니, 두 사람의 심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ꡓ하고, 이잠(李箴)․손세옹(孫世雍)․박상(朴祥)․박곤(朴鯤)은 의논드기리를, ꡒ조지서․정성근은 괴이한 것을 좋아하고, 위를 업신여기며, 구성․최숙근은 혐의를 품고서 친한 이를 모함하였으며, 죄가 크고 악이 극하여 중형에 처하는 것이 사실 중심(衆心)에 통쾌합니다. 지서는 재주를 믿고 제가 잘난 척하며, 궤휼한 일 하기를 좋아하고, 성근은 거짓으로 곧은 양하며, 감정을 억눌러 이름을 내려 합니다.ꡓ하였다./ 【영인본】 13 책 613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박곤 [記事] : 중종실록 14권/ 중종 6년( 1511 신미 / 명 정덕(正德) 6년) 9월 19일 병인 4번째 기사/ 대간이 박조․박곤․한홍윤의 관직 개정을 아뢰니 불허하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ꡒ박조(朴?)는 남원 판관(南原判官)에 합당치 아니하며, 박곤(朴鯤)은 전처를 버리고 다시 장가들었으니, 박행(薄行)한 사람으로 사표(師表)의 자리인 직강(直講)에 있게 함이 마땅치 못합니다. 형조 정랑 한홍윤(韓弘潤)은 재가(再嫁)한 여자의 자식인데, 일이 입법(立法)하기 전에 있었으므로 비록 벼슬길을 허락한다 해도 어찌 육조의 정선(精選)할 자리에 서임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개정하소서.ꡓ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영인본】 14 책 532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박곤 [記事] :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1513 계유 / 명 정덕(正德) 8년) 6월 11일 무신 2번째 기사/ 헌부가 윤순의 직임을 개정토록 청하다/ 대간이 우윤공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아뢰기를, ꡒ육경(六卿)은 책임이 중대하므로 범용(凡庸)한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습니다. 형조 판서 윤순은 본래 명망이 없는 사람이라 그 직임에 합당치 못하니, 속히 개차(改差)하소서. 함양 군수 이충걸은 전에 절도사가 되었을 때 군인(軍人)을 사역하여 사택을 지었다가 이미 탄핵을 입었으니, 전일의 소행으로 본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치민(治民)에 매우 불합합니다. 하물며 전에 수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또한 ꡐ번폐(煩弊)하다.ꡑ고 칭하였음에리까! 속히 개정하소서. 또 박곤(朴鯤)을 지평(持平)으로 겸대하여 부경(赴京)하게 하는데 겸임이 비록 실관(實官)의 예는 아니나, 그것은 대헌(臺憲)의 직을 갖는 것이니 실관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대관(臺官)에 합당치 못하니 개정하소서.ꡓ하였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윤순은 단아하여 속되지는 않으나 뛰어나게 현능(賢能)하지는 못하다. 그의 아내 구씨(具氏)가 자색에 있어 연산조(燕山朝) 때 여러 번 내연(內宴)에 들어가 추문이 있었다. 반정(反正) 후에도 구씨를 여전히 대우하여 조금도 처변(處變)하는 뜻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매우 비열하게 여겼는데, 이에 이르러 이와 같은 아룀이 있었다./ 【영인본】 14 책 665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www.history.go.kr 2007)

 

  박곤 [記事] : 중종실록 41권/ 중종 16년( 1521 신사 / 명 정덕(正德) 16년) 4월 19일 경자 1번째 기사/ 간원이 권수익의 일을 아뢰고 박곤․김흠조․공의달의 체직을 청하다/ 간원이 권수익(權受益)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ꡒ경력(經歷) 박곤(朴鯤)은 한집에다 두 아내를 함께 데리고 있으니 이는 정가(正家)의 도를 무시한 것입니다. 체직하소서. 김흠조(金欽祖)는 전에 충주에 부임했을 때 탐오스럽고 불법한 짓을 했으니 상주로 부임시킬 수 없습니다. 파출하소서. 흥덕 현감(興德縣監) 공의달(孔義達)은 인물이 수령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체직하소서.ꡓ하였다. 헌부가 승지 및 이장길 등의 일을 아뢰니, 권수익․박곤․공의달은 체직하라 명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았다./ 【영인본】 16 책 27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박곤 [記事] : 중종실록 51권/ 중종 19년( 1524 갑신 / 명 가정(嘉靖) 3년) 8월 29일 신유 5번째 기사/ 성세창이 치계하니 박곤․정광익을 파직하고 윤탕에게 표리를 내리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성세창(成世昌)이 치계(馳啓)하기를, ꡒ상주 목사(尙州牧使) 윤탕(尹宕)은 청리(聽理)12422) 가 밝고 과단(果斷)하며 백성을 사역하는 것이 고릅니다. 예천 군수(醴泉郡守)박곤(朴鯤)은 불법을 많이 행하여 백성에게 원망을 삽니다. 고령 현감(高靈縣監) 정광익(鄭光翼)은 가혹하게 거두어 사사를 영위하므로 원망이 두루 일어납니다.ꡓ 하였는데, 박곤․정광익을 파직하고 윤탕에게 표리(表裏)12423) 1습(襲)을 내리라고 명하였다./ 【영인본】 16 책 33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사급(賜給)/ [註 12422]청리(聽理) : 송사를 듣고 다스림. ☞ / [註 12423]표리(表裏) : 옷의 겉감과 안찝. ☞(www.history.go.kr 2007)

 

  박곤(朴鯤) : (변갑(變甲)|문과 연산군(燕山君)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발행일2009-04-06/ 자료소개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자료수정내역 [문과] 연산군(燕山君) 7년 (150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9위/ [인적사항] 자 변갑(變甲), 본관 음성(陰城), 거주지 미상(未詳)/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사예(司藝), 타과 연산군(燕山君) 1년(1495) 을묘(乙卯) 생원시(生員試)/ [가족사항]  [부] 성명 : 박자회(朴子回), [처부] 성명 : 윤인손(尹仁孫), [제] 박붕(朴鵬), [자] 성명 : 박광옥(朴光玉)/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연산군(燕山君) 7년, 과거시험연도 : 1501 신유,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19(丙科19)(daum 2010)

 

  박곤 : 박광옥(朴光玉)/ 본관(本貫) 음성(陰城), 시대(時代) 1526(중종21)~1593(선조26), 자(字) 경원(景瑗), 호(號) 회재(懷齋), 이력(履歷) 박광옥(朴光玉) 1526(중종21)~1593(선조26) : 조선의 문신.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 곤(鯤)의 아들. 이이(李珥)의 문인. 1568년(선조 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를 지냈다. 1574년(선조 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고, 전라도·충청도의 도사(都事)를 거쳐 1579년 지평(持平)·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한 후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서 신병으로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고향에서 의병을 모아 훈련시키는 한편, 군량을 수집하고 병기를 수선하여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을 도왔다. 이듬해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임명받아 병을 무릅쓰고 민심을 수습하고 흩어진 병사를 규합하던 중 죽었다. 광주(光州)의 의열사(義烈祠),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祭享).

 

  박곤 : 박광옥 < 朴光玉 (1526~1592) >/ ...陰城人(음성인), 조선조 明宗(명종) 宣祖(선조)때의 功臣(공신), 號(호)는 懷齊(회제) 司藝(사계) 朴鯤(박곤)의 아들로 西倉面(서창면) 梅月洞(매월동) 회산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0세 때부터 遊軒(유헌) 丁愰(정황)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21세때 生員進士(생월진사)가 되어 內職(내직)으로 內侍敎官(내시교관), 吏曹正郞(이조전랑), 承議部主簿(승의부주부)를 지냈으며 雲峰縣監(운봉현감)으로 在任中(재임중) 49세 때 文科(문과)에 壯元及第(장원급제)하고 全羅都事(전라도사), 忠淸都事(충청도사), 영광군수, 羅州牧使(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나주목사로 있을 때 壬辰倭亂(임진왜란)이 일어나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적병과 싸우고 있을 때 수천의 의병과 수백석의 군량미를 보내어 大勝(대승)케 하였고 湖南(호남), 湖西(호서)에 있어서는 金千鎰(김천일), 高敬命(고경명), 倡義隊(창의대)에 子第(자제)들을 가담시키고 군량을 많이 보내니, 宣祖王(선조왕)은 그에게 湖南(호남)의 忠義臣(충의신)이라 극찬하였다. 그는 文學(문학)에도 才質(재질)이 뛰어나 大東風土(대동풍토)에 曰(왈) 湖南(호남)즉 朴懷薺(박회제), 寄高峰(기고봉) 朴訥齋(박눌재), 朴思菴(박사암), 以道學(이도학) 이於世(이어세)라 하였다./ 광주광역시 서구 * 충의열사(daum 2010)

 

  박곤 : 박광옥(朴光玉)/ 호남인물지(湖南人物志) 광주(光州)/ 자(字)는 경원(景瑗), 호(號)는 회재(懷齋), 본관은 음성(陰城)이니 사예(司藝) 곤(鯤)의 아들이다. 선세(先世)는 음성(陰城) 사람으로 광주(光州)에 옮아 살았다. 나이 21에 진사(進士)하여 교관(敎官) 주부(主簿)를 역임하고 문과(文科)하여 운봉(雲峰)현감(縣監)을 거쳐 태상(太常)에 이르로 병(病)으로 귀향(歸鄕)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 김천일(金千鎰)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창의(倡義)하려다가 경명(敬命)은 담양(潭陽)에서 창의(倡義)하고 광옥(光玉)은 병(病)으로 인(因)하여 군량(軍糧)과 기계(器械)로써 병세(兵勢)를 도왔다. 광옥(光玉)은 또 수천명을 모집하여 권율(權慄)에게 보내고 판교(判校)를 거쳐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었으나 병(病)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선조(宣祖) 26년에 졸(卒)했다. 승지(承旨)를 증(贈)하고 서창면(西倉面)) 벽진리(碧津里)에 있는 의열사(義烈祠)에 향사(享祀)했다. (조선명신록, 방목. 흥지도서)(daum 2010)

 

  박곤 : 한국한시의 이해/ e-Book/ 김은수 지음 |  국학자료원 |  2007.07.05/ 책본문 : ...은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인데, 성균관(成均館) 사예 (司藝)를 지낸 박곤(朴鯤)의 아들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회재가 유헌(遊軒) 정황(丁.,1512-1560)의 문하에 들어간.../ 73페이지(daum 2010)

 

  박곤 : 박붕(朴鵬) 연산군(燕山君)10년(1504년), 식년시(式年試) 을과6(乙科6)/ 2008.11.21/ 부(父) 박자회(朴子回) 생부(生父) 조부(祖父) 증조부(曾祖父) 외조부(外祖父) 처부(妻父) 형(兄) 박곤(朴鯤)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495(을묘) 생원시/진사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진사(進士) 품계(品階) 관직(官職.../ http://cafe.daum.net/eumsungpark/ 음성박씨뿌리를찾아서(daum 2010)

 

  박곤 : 임진왜란 때 고경명, 김천일 등과 의병을 일으켰던 박광옥(朴光玉)/ 2008.04.09/ ...陰城)이고, 자는 경원(景瑗)이며, 회재는 그의 호이다. 1526년(중종 21) 광주에서 성균관 사예를 지낸 박곤(朴鯤)의 아들로 태어나, 1546년(명종 1) 생원과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74년(선조 7)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운봉 .../ http://cafe.daum.net/eumsungpark/ 음성박씨뿌리를찾아서(daum 2010)

 

  박곤 : 음성박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2008.11.14/ ...세조8년(1462) 식년시 정과(丁科) 박숙창(朴叔暢) : 문과(文科) 세조11년(1465) 춘당대시 정과(丁科) 박곤(朴鯤) : 문과(文科) 연산군7년(1501) 식년시 병과(丙科) 박광옥(朴光玉, 1526 丙戌生) : 문과(文科) 선조7년(1574) .../ http://cafe.daum.net/eumsungpark/ 음성박씨뿌리를찾아서(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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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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