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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54-1:김극일(1548 이후 부임)
작성자장병창 @ 2011.12.03 06:36:45

   예천고을원(54-1) : 김극일(金克一, 1548이후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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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극일(金克一, 1522년 ~ 1585년)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순(伯純), 출생지는 안동(安東) 천전(川前), 분묘지는 안동(安東) 비리곡(飛鯉谷)이다. 1546년(명종 1)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여 홍원 현감(洪原縣監), 청홍도 도사(淸洪道都事),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를 거쳐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신동으로 불리다] :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기상이 남달랐으며, 글을 배운 뒤로는 성현들의 경구를 줄줄 외워 사람들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명리를 탐하지 않고 부모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청하다] : 뛰어난 재주와 탁월한 식견이 있었지만 명리에는 욕심이 없었다.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했던 관계로 벼슬을 하더라도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주로 희망했는데, 이는 그 임지가 주로 안동과 가까운 예천, 평해, 밀양, 성주 등이었던 사실로부터도 충분히 유추된다.

  [지방관 재직 시 유학의 기풍을 진작시키다] : 평생 동안 모두 다섯 고을의 수령을 지냈는데, 부임하는 곳마다 유학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또한 직무를 처리할 때에도 백성들을 성실하게 대하고 공명․청렴하여 당대의 수령의 으뜸으로 꼽혔다.

  이런 까닭에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ꡒ중국 송나라에 염계(濂溪: 周惇?) 선생이라는 분이 있어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것을 편히 받아들이면서 도를 실천하기를 즐겨했는데, 지금 선생이 그와 비슷하다.ꡓ는 칭송을 들었다.

  한번은 성주 목사로 있을 때 도산으로 가 스승인 이황을 만난 일이 있는데, 이때 이황이 『계몽익전서(啓蒙翼傳書)』라는 책을 문인들에게 정서(正書)하게 하여 역동서원에 갖다 두게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이를 보고 김극일은 그런 귀중한 책은 한 곳에 두기보다는 널리 유포하여 학문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받고는 곧 성주에서 판각을 하였는데, 이황이 특별히 서문을 써 보내주기도 하였다.

  또 밀양 부사로 재직할 때는 그 고을의 유명한 유학자였던 송계(松溪) 신계함(申季?)이 살던 곳을 찾아가 몸소 비명을 지어 유허비를 세웠고, 용암(龍巖) 박운(朴雲)이라는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글을 지어 선양하기도 하였다. 이 글들은 문집에 수록되어 전한다.(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金克一) [記事] : 원문자료/ 통훈대부내자시정약봉선생묘갈명(通訓大夫內資寺正藥峯先生墓碣銘) : 약봉(藥封) 김 선생의 이름은 극일(克一), 자는 백순(伯純), 관향은 문소(聞韶)이다.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김예범(金禮範)의 손자이고, 증 자헌대부 이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 청계(淸溪) 선생 김진(金璡)의 아들이다. 청계 선생은 큰 덕망과 무거운 명성이 있었는데 성균생원으로서 은거하고 벼슬하지 않았다. 여흥(驪興) 민상국(閔相國) 5대손 민세경(民世卿)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모두 덕행 문학이 있으니, 세상에서 ꡐ김씨오룡(金氏五龍)ꡑ이라고 한다. 선생은 차례에 있어서 장남인데, 어려서 영명 준수하여 말을 토하면 문득 사람을 놀라게 하니,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조금 자라서는 도산(陶山)의 이 선생(李先生)에게 배웠는데 우뚝하게 성취함이 있자 이 선생께서 매우 아끼고 무겁게 여기셨다. 25세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교서관 정자에 제수되었다. 이 해에 모친의 상을 당했는데, 상을 마치고 괴원(槐院)에 선발되어 들어가고, 정자․저작․박사를 거쳐서 천거로 기거랑이 되었다. 이윽고 형조 원외랑으로 옮기고, 사헌부 감찰로 갔다. 외직으로 나가서 홍원 현감, 청홍 도사(淸洪都事:충청도사)가 되고, 내직으로 돌아와 직강, 형조 정랑, 예조 정랑이 되었다. 또 경상 도사(慶尙都事)가 되고, 또 예조 정랑을 거쳐서 군기시 첨정이 되었다. 또 평해 군수로 나갔다가 들어와 사재감 첨정이 되었다. 또 예천 군수로 나갔다가 들어와 성균관 사성이 되고 사도시 정으로 옮겼다. 또 외직으로 나가서 성주 목사, 밀양 부사가 되었는데, 청계 선생이 생존해 계셔서 그 녹을 누리셨다. 청계 선생이 돌아가시고 3년이 되어 내자시 정에 제수되었다. 4년이 지나 64세 때인 만력(萬曆) 13년(1584) 1월 7일에 집에서 세상을 마쳤는데, 그 해 모월 모일에 임하현(臨河縣) 북쪽 비리곡(飛鯉谷) 묘향(卯向) 등성에 안장했다. 선생은 높은 재능과 탁월한 식견으로 이미 가정의 가르침에 젖고 또 일찍 대현의 문하에서 배워 학문은 자기에게 넉넉하고 도는 실용에 적합했으나 명리를 구하기에 무심하고 나아가 취하기에 등한하였다. 오직 집안 살림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하기 때문에 군을 빌어서 봉양을 다하는 것으로 영광으로 삼았으니, 세상에서 이른 바 청반(淸班)의 벼슬과 같은 것은 선생이 이미 남에게 밀쳐서 주었다. 선생은 모두 다섯 고을의 수령을 지냈는데, 이르는 곳에는 반드시 유학을 일으키고 후학을 장려하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았으며, 거관(居官)과 치민(治民)에 있어 충직하고 후하며 공정하고 청렴하니, 치적이 당세에 순량(循良)의 으뜸으로 꼽혔다. 군자가 말하기를 ꡒ송 나라에 염계(?溪) 선생이 주현(州縣)에서 본분을 지키면서 그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했더니, 지금 선생이 거의 여기에 가깝다!ꡓ고 했다. 선생이 지은 문장은 고고(高古) 준결(峻潔)하여 세속의 기미가 없고, 특히 시에 능하여 풍아(風雅)의 유향(遺響)을 얻었다. 유고(遺稿)가 있었는데 불행히 화재를 당하고 남은 약간 권이 세상에 행한다. 숙인(淑人) 수안 이씨(遂安李氏)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이위의 딸인데, 부도가 매우 잘 닦여서 남편을 짝함에 어긋난 덕이 없었다. 선생보다 10년 후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65세였다. 선생의 묘에 부장(附葬)했다. 선생은 아들이 없어서 아우 귀봉(龜峯) 선생 김수일(金守一)의 아들 진사 김철(金澈)로 하여금 대를 잇게 했다. 딸은 네 사람인데 군수 조정(趙靖), 현감 유기(柳綺), 생원 이윤려(李胤呂), 진사 장여화(張汝華)에게 출가했다. 김철은 찰방 김종무(金宗武)의 딸에게 장가들어 김시온(金是?)을 낳았는데 호는 표은(瓢隱)이고 또한 높은 절의와 아름다운 덕으로 한자들의 숭앙을 받았다. 여덟 아들이 있는데 생원 김방렬(金邦烈)․김방형(金邦衡)․김기(金?)․대사성 김방걸(金邦杰)․김방찬(金邦贊)․김방조(金邦照)․김방현(金邦顯)․김방겸(金邦謙)이고, 일곱 사위는 권극중(權克中), 좌랑 김휘세(金輝世). 생원 권극정(權克正), 정자고(鄭自固), 김종급(金宗汲), 이유오(李兪吾), 현감 권두경(權斗經)이다. 내외 현손 남녀가 모두 수백 명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91년인 지금 숙종 임금 즉위 11년 을축년(1685)에 고장 사람들이 동택(?澤)의 고사를 따라 경산(景山)에 경덕사(景德祠)를 건립하여 청계 선생에게 향사를 드리는데, 선생 5형제를 배향했다. 다음에 명(銘)을 붙인다./ 청계의 가정에서/ 능히 훌륭하게 잘 계승함은/ 선생의 덕일세/ 도산 문하에서/ 강론하고 탁마함은/ 선생의 학문일세/ 상체화가 아름답게 빛남에/ 날로 달로 서로 힘쓰니/ 또한 형제간의 즐거움일세/ 규운이 밝게 빛나/ 문장으로 크게 울리니/ 그 명성이 성대했네/ 저 세상 사람들은/ 나아가 취하기를 힘써서/ 날로 급급했으나/ 우리 선생께서는/ 물러나 한가로이 지내며/ 자신의 직분에 힘쓸 뿐이었네/ 팔순 고령(高齡)의 부친이 계시매/ 다섯 고을 수령이 되어 봉양하니/ 효도함에 옛 법도 따랐네/ 그 벼슬은 약하고/ 그 작위는 낮으나/ 그 덕만은 높았네/ 우뚝한 저 경산에/ 제기를 갖추어 제사 드림은/ 많은 선비들의 숭앙하는 바일세/ 현고께서 임하시고/ 여러 아우들 따르니/ 그 광채 빛나지 않는가/ 곡성의 북쪽/ 비리연 위 언덕은/ 만대에 잠드신 곳일세/ 비석에 명시(銘詩)를 새겨/ 그 아름다움을 기리고/ 아득한 후세에 보이네/ 종5대손 구관(具官) 김세호(金世鎬) 삼가 찬술하다./ - 김세호(金世鎬)(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義城 金氏】/ 김극일(金克一):1522(중종 17, 임오)~1585(선조 18, 을유). 본관 義城. 자는 伯純. 호는 藥峯. 璡의 長子. 1548년(명종 1) 문과 급제. 司憲府 監察ㆍ醴泉郡守ㆍ星州牧使 역임. 詩文 약간 편이 『聯芳世稿』에 전함. ▣참고:「墓碣銘」(金世鎬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 [記事] : 호고와집(好古窩集) 21권 11책 중 卷5에 실린 내용이다. 書/ 答申景學 20/ 申景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邑誌』의 수정과 條項의 조정이 결정되었는지를 묻고 ‘古蹟條’에 관해 질의한 것에 대해 자신이 고증한 내용을 설명했다./ 北面 溪山에 藥峰 金克一, 鶴峰 金誠一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은 鄭堯性의 『睡窩集』에도 실려 있는데, 그것은 지금 鄭天則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 거기에는 紫屛․招仙․九苞 등의 名勝뿐만 아니라 興邱․栢湖 등 諸賢의 유적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2) 인물(人物)/ .../ 김극일(金克一) 태자첨사(太子詹事) 용비(龍庇)의 후예이다. 판서(判書)로 추증된 진(璡)의 맏아들로 임하현(臨河縣) 천전리(川前里)에 살았다. 자는 백순(伯純)이다. 가정 병오(丙午)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내자시 정(內資寺正)에 이르렀다. 치적이 예천 군수 등 다섯 고을에 나타났다. 기국(器局)56) 이 높고 컸으며, 기위척당(奇偉倜?)하였다. 시로써 세상에 이름이 났었다. 호는 약봉(藥峯)으로 퇴도(退陶)의 문인이다.(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 [記事] : 안동의 서원/ 간행년 : 1994/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1. 泗濱書院 : 소재지: 안동군 임하면 임하면 임하리/ 원래 安東府 臨河縣 景出山에 있던 靑溪 先生의 墳庵을 1675년(숙종 元)에 확장하여 선생의 遺像(현재 종택에 봉안)을 봉안하고 '泗濱影堂'이라 하였다. 이를 1685년(숙종 11) 士林과 內外孫들이 합의하여 선생은 主享으로, 그리고 다섯 子弟인 藥峯 金克一ㆍ龜峯 金守一ㆍ雲巖 金明一ㆍ鶴峯 金誠一ㆍ南嶽 金復一 선생을 配享하고 廟號를 '景賢祠'라 했다. 1709년(숙종 35)에 동구 밖 泗水 가로 이건하여 '泗濱書院'이라 하였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882년(고종 19) 사림과 본손들에 의해 복설되었으나, 1989년 임하댐 공사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에서 현위치인 임하리로 이건했다. 현재 향사하지 않는다. 경상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사빈서원 봉안문은 『泗濱志』(金時雨氏 藏)에 수록되어 있다.../ ○ 金克一(1522, 중종17~1585, 선조 18) : 義城人. 자는 伯純, 호는 藥峯. 글을 배운 뒤로 驚人句를 지어 ꡐ神童ꡑ이란 칭이 있었다. 성장해서는 퇴계 선생에게 네 아우와 함께 올라 師門의 獎許를 받았고 士林의 중진이 되어 세상에서는 ꡐ金氏五龍ꡑ이라는 칭이 있었다. 1548년(명종 元)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다. 예천 군수 등 목민관으로도 많은 치적을 남겼다.(www.koreastudy.or.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盈德 / 題詠  /  ?案邀靑? 洪汝方淸心樓詩云云軒楹蔭碧流 長流繞南陌 李原詩天南爲遠客海上上孤城雲斂暮山碧雨餘秋日淸云云佳樹得中庭卽今邊警息處處誦絃聲 / <하권0424-4>/ 新增天共滄溟闊 李彦?詩云歲暮衝峽雪春早抵邊城云云風和晩雨淸寒雲凝遠峀飢鵲?空庭夜久軒窓靜惟聞鯨浪聲 春光回絶? 又云云烟景慰愁人紅入朝霞爛靑歸野柳新塵?厭未謝蓬島望難臻役役驚衰晩南遊遠紫宸 心與境俱淸 沈守慶詩云特地江山好登臨覺眼明興隨天共遠云云宛似壺中景難禁物外情樓臺幾題品是處不須評 江靜似君淸 金克一詩云大野秋容淡千山夕照明草衰如我老云云京洛他年會關河此日情留連不惜醉恐覩達人評 仙居有此樓 李植詩云蓬島無多路云云澄江循檻曲碧峀對?浮絶城還淸景佳辰故倦遊登臨數杯酒一散望鄕愁 江與長官淸 又云天畔傷心目殘花過雨明山從古城峻云云寓世皆爲客懷歸各自情驪江樓亦好形勝共誰評 綠漲搖虛閣 又云云紅??遠洲披襟平野大極眺衆岑稠節序行將晩江湖退亦憂豈知桑海畔重作竹林遊...(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密陽 / 寺?  / ...靈井寺 在載嶽山新增畢齋 金宗直贈僧玉明詩天台雁蕩具蒼茫見說仙開日月長三弄海螺歸去好白雲何處更深藏○金克一詩靈井知名寺曾遊弱冠年峯巒元??水石尙淸姸書榻明?盡?窓歲月明推餘老太守雙?亦?然○有巖曰金剛左右懸瀑巖絶勝金敬仲詩落葉鳴山夜雨懸佛燈明滅容無眠名山一步嗟遲暮烏?欺人二十年 萬魚寺 在萬魚山 安水寺 在終南山西 鳳泉寺 在華嶽山 湧泉寺 新增今屬大丘 靈...(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密陽 / 名宦  / 高麗 鄭云敬 忠惠時密人有貸宰相趙永暉布者永暉托御香使安祐移牒徵之云敬曰密人貸布者趙自徵之非公所宜問祐怒令左右辱之云敬正色曰今已郊迎天子之命將何以罪我公不布德音惠遠民敢爲是耶祐屈而止 劉曦 毅宗時應御試中壯元嘗作詩壯元及第尋常有天子門生有幾人後爲州? 尹松筠 爲?以淸苦嚴毅聞 本朝柳斗明 李皎然 成順祖 俱爲府使 林壽昌 許誡 竝?政淸? 舊增李世銓 李世應 ?政嚴明人不敢欺 新增權? 興學愛民大有治績 李彦迪 享文廟 魚得江 金克一 竝有儒化 朴晉 壬亂招諭鄕兵防守鵲院倭寇得土人爲鄕導逾神佛嶺繞後掩之晉且戰且走單騎馳還焚本府倉庫軍器不使籍寇後以鵲院力戰功陞拜左兵使累有軍功 鄭起龍 有淸德邑人頌曰淸風吹六月之炎儉德蘇一境之覆毋忽去兮飢欲死民安得以無後思 金應祖 有儒化  / <하권0507-2>/  李之? 爲政淸簡衙馬生駒以其産於密故留其駒邑之有雇馬廳始此 柳以井 邑民有去後思...(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淸道 / 壇廟  / 社稷壇 在郡西三里 文廟 在鄕校 城隍壇 在郡南三里 ?壇 在郡北四里 新增紫溪書院 在郡北十里金克一 金馹孫 金大有竝享 顯廟朝辛丑賜額 南溪祠 英憲公金之岱獨享之所康熙甲申邑人以累百年公議立祠 仙巖祠 贈應敎 金大有生員朴河淡竝享之所隆慶戊辰邑民以創設外倉有功於一鄕立祠於倉底其後萬曆五年郡守 黃應奎移建于仙巖(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淸道 / 人物  / ...以之岱廉謹少過莫能害之位至中書侍郞平章事謚英憲 金善莊 金漢貴 爲監察大夫恭愍王從其請陞本縣爲知郡事 孝子本朝金克一 金海人性至孝爲母?疽爲父嘗痢前後盧墓六年有虎乳於墓傍取祭餘飼之如養家畜父有賤妾二人事之如父生時及死竝服期年天順甲申事 聞旌閭 李官明 其母夜爲虎所?而去時方大雨天地昏黑隣人皆驚怖不出官明有妹延加年十三姪女白飛年九獨與二兒逐虎右執斧左執炬五六里許火滅取松枝作炬更逐一二里叱虎奪母屍而歸隣里哀之爲棺以葬至今有碑表其墟 朴潤孫 水軍朴同子也年十七隨母?砧虎?母而去潤孫左手持母右手投石追之五里許隣人來救虎遂捨去其母至夜半而死事 聞旌閭 舊增從非 郡吏金君山妻也事舅姑至孝及歿終喪設影堂祭朝夕如事生事 聞旌閭 新增金哲誠 文科兵曹判書 崔淵 文科直提學 李思勻 文科觀察使 金駿孫 克一之孫文科直提學...(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安東 / 壇廟  / ...勿溪書院 在甘泉縣立祠祀上洛公金方慶 判典校 金九容 參判 金楊震古尹金應祖 鏡/ <하권0529-4>/ 光書院 在府西二十里立祠祀前朝判司僕寺事裴尙志 校理 李宗準 參奉 張與孝 王子師傅 權宇 黙溪精舍 在府東六十里立祠祀掌令 玉沽 大司諫 金係行 贈參判 金涌 泗?影堂 在臨河縣東三里立祠祀 贈判書 金璡配享司成 金克一 察訪 金守一生員金明一 文忠公金誠一 司成 金復一 栢麓里社 在奈城縣南立祠祀校理 李宗準 進士 李弘準 大司諫 鄭惟一 參奉 洪浚亨 觀察使 金聲久 正郞 權斗寅(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安東 / 樓亭  / ...仙遊亭 在河東十五里生員金璡所構○金璡詩臺隱亭頭倚杖立秋風吹我到仙庵洪河北?龍吟壯巨石西??視閃閃波紅楓倒錦盈盈沙白月鋪?平生未盡江湖趣爲寫衰眞寄舍南○金克一詩藥山仙洞多官府曾卜淸奇結小庵水躍群魚尾潑潑庭馴雙虎眼眈眈詩書敎子藏黃卷金玉傳神掛素?日祝靈春長秀茂兒孫成隊禮弧南 白雲亭 在臨河縣北二里察訪 金守一所構○金璡詩鑿壁開亭翠?頭江山明媚拂人眸日臨鏡面魚紋動雲掃天心雁字稠百里游歌曾物色一區花草亦光木樽前知有無窮樂只恐兒孫醉似劉○金誠一詩喜看堂/ <하권0535-3>/ 構傅巖頭景物依然集遠眸兩岸秋山霜後爭一江春樹雨來稠星垂南極應難老?八周詩可匹休勝事欲歌無好語淸詞誰借建安劉○李安訥詩永嘉東面襄西頭地僻亭高爽客眸玉鏡涵天春浪細石屛圍野晩蜂稠江山父子能相保麴孼功名早自休聞說龍蛇兵火遠桃源元不屬?劉○金涌詩白雲亭子翠微頭雲去雲來幾入眸潭影悠悠飄練闊山容皓皓變衣稠萬千氣象還多感十二詩思??休坐臥於斯歌又哭吾知免矣慕天劉...(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安東 / 人物  / ...鄭琢 師事李滉登第官至左議政封西原府院君謚貞簡號藥圃今 上癸酉親製畵像贊 權好文 號松巖師事李滉隱居尙志屢徵不起鄕人立祠祀之有詩集 柳成龍 仲?之子登第官至領議政封?原府院君謚文忠天資甚高穎悟絶人師事李滉爲學以精思力踐爲主嘗以書狀赴京太學生數百人來觀公問本朝儒宗太學生相顧良久以陽明 白沙爲答公曰白沙見道未精陽明禪學之換面者不如?文淸之正有新安人吳京喜而前曰近來學術訛舛士失趨向公能發正論以斥之吾道之幸也後値壬辰之亂贊再造功爲中興名相鄕人配祀虎溪書院所著西崖集 懲毖錄等書行于世 鄭惟一 登第 賜暇湖堂官至大司諫祀于栢麓里社 裵三益 帥事李滉號臨淵登第官至觀察使萬曆丙戌以陳謝使朝京奉/ <하권0541-1>/ 褒獎 皇勅及欽賜?龍衣以還 金克一 璡之子登第官至司成號藥峯配祀泗?影堂 金守一 克一之弟中司馬薦補察訪號龜峯配祀泗?影堂 金明一 守一之弟中司馬以儒雅見稱號雲巖配祀泗?影堂 金誠一 明一之弟師事李滉聞心學之要堅苦刻勵造詣精深登第官至觀察使嘗奉使 日本動以禮法倭人敬?壬辰之亂受本道招諭之 命忠義感動義旅爭集江右一帶賴以得完未幾卒於軍中士民涕泣相吊後 贈判書謚文忠配享虎溪書院有鶴峯集 梅?錄等書行于世 金復一 誠一之弟淸介有志行登第官至府使號南嶽配祀泗?影堂 南致利 受業於李滉之門專心爲己之學號賁趾早卒鄕人立祠祀之 權宇 號松巢弱冠登李滉之門專精問學薦授 王子師傳 宣祖聞其?洽拈出經書中疑義令 王子問難宇應口對無疑 上手書嘉之後 贈左承旨鄕人立祠祀之 權春蘭 登第官至司諫號晦谷淸苦有學行嘗著言仁錄配享周溪書院見名臣錄 金涌 守一之子/ <하권0541-2>/ 號雲川登第歷敭淸顯正直持論風彩動朝官至兵曺參議以原從功 贈吏曺參判後人祀于黙溪精舍 鄭士信 登第又中重試歷修撰至判決事 ...(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총서/ 용호한록/  龍湖閒錄二 / 第六冊/  三一七, 東國文獻院宇篇 / ...安東甫溪院 萬曆丙子建丙辰額 , 退溪 李滉․西崖 柳成龍․鶴峰 金誠一。/ ○三溪院 萬曆戊子建順治庚子額 , ?齋 權撥。/ ○周溪院 萬曆壬子癸酉建額 , 松潭 具鳳齡․晦谷 權春蘭。/ ○屛山院 萬曆辛丑建 , 西崖 柳成龍, 贈?議 柳袗。/ ○道東院 丙子建 , 祭酒 禹倬。/ ○?城院 萬曆壬辰建 , 松岩 權好文。/ ○勿溪院 順治辛丑建 , 上洛 金方慶․鶴沙 金應祖。/ ○鏡光院 隆慶戊辰建 , 栢竹 裵尙志․?齋 李宗準․松巢 權宇․敬堂 張興孝。/ ○魯林院 癸巳建 , 賁趾 南致利。/ ○道淵院․寒崗 鄭逑。/ ○泗濱院 乙丑建 , ?溪 金璡, 藥峰 金克一 龜峰 金守一, 雲岩 金明一, 鶴峰 金誠一, 南岳 金復一, ○德峰院, 甲申建 雲川 金涌。/ ○?溪精舍 丙子建 , 凝溪 玉沽, 宗白 金係行。/ ○伊溪精舍 甲申建 , 松巢 權宇。/ ○栢麓里祠 乙丑建 , ?齋 李宗準․文峰 鄭惟一․梅軒 洪俊亨。/ ○古昌廟, 權太師幸․金太師宣平․張太師貞弼。(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묵재일기 하 / 8冊 / 嘉靖三十八年 己未歲 / 季春 三月 小 戊辰  /  ?五日丁酉  / 陰, ?雨. ○○○外祖?忌日, 齋素. ○宿堂護孫, 孫苦口病, 不能食食. ○/ <하 378>/ 干軍 / 畓幷作者求種租 / 全應乾□□醴酒及菜. ○權禮孫來, 請借干軍, 欲築決防云云, 略白二道前. ○鄭适․宋□吳先達病候, 議用治濕湯. ○妻昏曉連服益胃升陽湯. ○吉兒口唇瘡破□□食食, 合凉材煎與之. ○白可化疾痛, 不書簡, 侍兒簡□?, 妻氏移宿南房, 房窄, 淑禧上來, 宿我傍. ○都事 金克一入州. ...(www.history.go.kr 2007)

 

  김극일 : 교지․교첩(敎旨․敎牒)(7)/ 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작성자: 이조  날짜: 1574(1574년/ 분류: 고문서 > 교지․교첩(敎旨․敎牒) | 고문서 > 문중문서(門中文書) > 의성김씨 운천종택 고문서/ 제공: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서지내용/ 문서명 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義城金氏 雲川宗宅 敎牒4(務功郞)/ 발급자 이조 吏曹/ 수급자 김수일 金守一/ 간행세기 1574/ 문서크기(cm) 48.6×81.5/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원소장처 의성김씨 운천종택/ 고문서주제분류 교령류(敎令類) > 교지(敎旨) > 교첩(敎牒)/ 이 문건은 교첩(敎牒)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5품 이하의 관리는 대간의 서경을 거친 후에,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했다. 선조 7년(1574)에 4월 4일에 이조에서 봉교통사랑(奉敎通仕郞) 김수일(金守一)을 무공랑(務功郞)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사령장이다. 그리고 그의 형 김극일(金克一)이 예천군수(醴泉郡守) 및 성주목사(星州牧使) 재임시에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특진시켜 정랑(正郞)으로 임명한 사령장이다./ 吏曺。萬曆二年四月初四日奉敎。通仕?金守一?務?郞者。萬曆二年四月。同生兄金克一醴泉郡守時。戊二?代加。星州牧使時。庚七別代加?超。正?。判書。?判。?議。臣李(手決)。佐郞。臣李(手決)。//

 

  김극일(金克一) :.진주강씨 기헌고택 기해년 9월에 김봉규가 강경희에게 보낸 간찰(簡札)[00159]/ 작성자: 사제 김봉규 날짜: 0(己亥 9月/ 분류: 고문서 > 간찰․서간(簡札․書簡) | 고문서 > 문중문서(門中文書) > 진주강씨 기헌고택 고문서/ 제공: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서지내용/ 문서명 의성김씨 운천종택 1574년에 이조에서 김수일에게 내린 교패(敎牒)(務功郞)[01460] 義城金氏 雲川宗宅 敎牒4(務功郞)/ 발급자 이조 吏曹/ 수급자 김수일 金守一/ 간행세기 1574/ 문서크기(cm) 48.6×81.5/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원소장처 의성김씨 운천종택/ 고문서주제분류 교령류(敎令類) > 교지(敎旨) > 교첩(敎牒)/ 이 문건은 교첩(敎牒)이다. 교첩은 왕이 5품 이하의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하는 사령장이다. 5품 이하의 관리는 대간의 서경을 거친 후에,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임명했다. 선조 7년(1574)에 4월 4일에 이조에서 봉교통사랑(奉敎通仕郞) 김수일(金守一)을 무공랑(務功郞)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사령장이다. 그리고 그의 형 김극일(金克一)이 예천군수(醴泉郡守) 및 성주목사(星州牧使) 재임시에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특진시켜 정랑(正郞)으로 임명한 사령장이다./ 吏曺。萬曆二年四月初四日奉敎。通仕?金守一?務?郞者。萬曆二年四月。同生兄金克一醴泉郡守時。戊二?代加。星州牧使時。庚七別代加?超。正?。判書。?判。?議。臣李(手決)。佐郞。臣李(手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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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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