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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69:변양우(1592부임-1592.5.3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2.04.21 07:04:28

   예천고을원(69) : 변양우(1592 부임-1592.5.3 이임) : 임란 때 근왕을 위해 예천을 떠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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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양우(邊良佑)는 1592년(선조 25)에 부임하여 같은 해 5월 3일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5월 3일에 왕을 모시겠다며 예천을 떠나 죽령으로 넘어갔다.

  1597년(선조 30) 7월 6일에 순천 군수를 이임하였고, 1599년(선조 32) 1월 20일에 구성 부사를 이임하였고, 그 후 파주 목사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변양우가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592년 4월 14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4월 16일 용궁현감 우복룡은 병영 후원장으로서 용궁현과 예천군에서 징발한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경주 병영으로 달려가기 위해 출발하였다.

  4월 21일 우복룡의 군사들이 하양에 이르러 도적 60명을 잡아 두목 3명만 목베고 나머지는 용서하여 함께 진군케 하였다. 영천에 이르러 하양 군사 5백여 명을 만나 반란군임을 확인하고 모두 죽였다.

  우복룡의 군사 중 예천의 관병으로 구성된 선발대가 경주 30리 밖까지 이르러 도적의 공격을 받아 선발대의 장수가 전사하는 혼란한 틈을 타서 하양에서 잡았던 도적들을 탈취 당하였다. 우복룡은 경주에 도착하여 인솔해 온 예천, 용궁의 군사 3천 명을 병마절도사에 복속시켜 유일한 후원병이 되게 하였다.

  4월 27일 가등청정이 거느린 왜 제2군이 경주를 거쳐 비안에 이르러 그 중 일부만 예천의 다인현으로 옮겨 주둔하고, 주력 부대는 비안에서 풍양면의 하풍진 쪽으로 진군하였고, 5월 2일 왜적이 풍양면 우망리에 이르렀을 때, 이곳 정영후의 아내 한씨와 시누이 정씨가 함께 자결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520號, 2002-08-06 16:07:02)

 

  변양우(邊良佑) : 1592년(선조 25) 부임하여 같은 해 5월 3일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5월 3일에 근왕(勤王)하겠다며 예천을 떠나 죽령(竹嶺)으로 넘어갔다. 1597년(선조 30) 7월 6일 순천 군수를 이임하였고, 1599년(선조 32) 1월 20일에 구성 부사(龜城府使)를 이임하였고, 그 후 파주 목사(坡州牧使)를 지냈다.

 

  변양우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一 / 乙未萬曆二十三年 / 十二月  / 十三日 辛亥  / 余差武二所試官曉頭往慕華館則刑判 申? 知敦寧 尹自新 同知 郭嶸 尙衣正 孫胤先 軍器僉正 邊良佑 執義 黃是 獻納 鄭期遠等進參擧子爲一千五十人矣○文一所論題則蕭何治未央壯麗賦題則射蛟江中儒生入門數爲四百九十人文二所論題則召公不卞流言賦題則按?徐行儒生八門數五百十人云○柳祖?陳疏到院還出給 ...(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二月初一日 壬戌  / 上幸南別宮見沈天使○府啓校書著作 鄭浹爲接伴都監郞廳支供之物公然俵給於親舊部將 李禎慶爲分膳宮多行?鄙之事請竝罷/ <4권0280>/ ○沈友勝 尹承勳來話 / 初二日 癸亥  /  大雪府啓張春悅濫率家眷多出刷馬依留守狀啓請拿鞫定罪 / 初三日 甲子  /  大雪雪厚已過尺許近古所無 余差風雲雷雨祭壇上執禮受香而去獻官則崔遠 尹景祺 邊良佑 大祝則辛廷懿壇下執禮則金長生也(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二十八日 己丑  / 陰別試開?文一所試官李增 趙仁得 / <4권0290>/ 閔濬 李民覺 崔禧 李軫賓 尹滉二所試官李忠元 黃佑謹 閔善 鄭賜湖 李繼祿 南晫武一所試官申? 崔遠 趙儆 邊良佑 李希良 尹暘二所試官尹自新 李鎰 李薦 李慶龍 金弘宇 朴蘭英也○南以恭拜持平 尹東老拜工佐 林忠?拜典籍○尙州儒生權旭等四人上疏請 親征○一所試官趙仁得眩暈氣絶不得已出送事入啓(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七月  / 初三日 壬辰  /  黃海御史書狀白川郡守金罷黜 / 初四日 癸巳  /  吳摠兵先鋒出去忠州  / 初五日 甲午  /  院啓龜城府使 楊鶴瑞貪?已著請罷○麻都督貴率七千軍馬入京 上迎慰於慕華館○奇孝福拜龜城 邊良佑拜順川 金大來拜溫陽 崔希亮拜興陽 沈彦明拜大同○去 缺 月十九日京畿漕船十隻逢風致敗於富平地云卽命拿問其押領官/ <4권0330> / 李大年等又罷海運判官  / 初六日 乙未  / 院啓順川郡守 邊良佑殘劣文川郡守 方德龍濫猾請遞 ...(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記事] : 선조실록 90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7월 6일 을미 1번째 기사/ 피폐해진 문천과 순천 두 고을의 수령 임명에 대한 사간원의 건의를 재가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ꡒ북도(北道)가 병란을 겪은 뒤에 문천(文川)은 누차 무부(武夫) 수령을 거쳤기 때문에 잔파가 극도에 이르러 장차 기읍(棄邑)이 될 실정이니, 자상하고 근간한 사람이 아니면 수습할 수 없습니다. 신 군수 방덕룡(方德龍)은 전일 수령으로 있을 때 특별한 치적이 없었으니 체차하고 다시 명망 있는 문관을 신중히 선발하여 보내소서. 순천 군수 변양우(邊良佑)는 인물이 용렬할 뿐 아니라 나이도 고령이어서 목민관에 적합하지 않으니 체차하소서. 본군은 탕패된 이후에 이제서야 겨우 수습되었는데, 영문(營門)에서 가까와 출참(出站) 지대(支待)의 일이 전일보다 배나 더하니 만약 적임자가 아니면 조금 완전해진 땅이 도로 기읍이 될 것입니다. 일찍이 대간이나 시종을 지낸 사람 중에서 각별히 선별하여 보내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모두 아뢴 대로 하라. 순천 군수는 다시 선발하여 보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ꡓ하였다./ 【영인본】 23 책 262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記事] : 선조실록 108권/ 선조 32년( 1599 기해 / 명 만력(萬曆) 27년) 1월 20일 신축 2번째 기사/ 지평 이덕형이 황혁에 대한 명을 거두고 윤국형을 파직토록 건의하다/ 지평 이덕형(李德泂)이【좌목은 위와 같다.】 와서 아뢰기를, ꡒ죄인 황혁에 대한 성명(成命)을 빨리 거두소서. 행 호군 윤국형(尹國馨)은 지난 임진년에 호서(湖西)의 방백이 된 몸으로 군대를 잃고 머뭇거리다가 군부(君父)가 위급한데도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니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진 것입니다. 함께 죄를 진 이광(李洸)은 이미 벌을 받아 폐기되었는데 국형만은 청현(淸顯)의 벼슬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자가 하나도 없으니, 그 권세와 교결한 정상에 대해 통분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자신의 동류(同類)가 권세를 잡자 손뼉을 치며 일어나서 죽은 친구의 숙원(宿怨)을 갚기 위하여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자들을 배척하고 기세를 떨쳤습니다. 심지어는 심유경(沈惟敬)의 공을 칭송하여 중국 관원의 뜻에 영합하였고 화의(和議)를 극력 찬동하여 끝내는 나라를 그르치는 계책을 이루었으니, 그 죄의 경중이 어떠하다 하겠습니까. 조관(朝官)이 입을 다물고 있던 동안에는 비록 다행히 보전될 수 있었으나, 공론이 일어난 뒤에는 어찌 다시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파직하여 다시는 임용하지 말도록 명하소서. 구성 부사(龜城府使) 변양우(邊良佑)는 사람됨이 용렬하고 또 일을 맡아 처리할 능력도 없습니다. 일찍이 수령이 되어 여러 번 탄핵을 받았으니 서관(西關)의 큰 고을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체임을 명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황혁에 대하여는 이미 유시했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윤국형도 굳이 파직시킬 것 없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변양우는 아뢴 대로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23 책 561 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인사-임면(任免)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변양우 : 원천부원군묘표음기/ ...(成世寧)·윤선철(尹先哲)·윤건(尹健)·남병(南幷)·신계원(辛繼元)·이원성(李元成)·박문수(朴文秀)·변양 우(邊良佑), 사인(舍人) 권징(權徵), 응교(應敎) 김우굉(金宇宏), 장령(掌令) 정이주(鄭以周), 경력(經歷) 안이손(安以孫), .../ http://portraittoe.textcube.com(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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