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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78-3:노경임(1599-1600)
작성자장병창 @ 2012.09.01 06:34:01

  예천고을원(78-3) : 노경임(1599-1600) : 고평제를 쌓을 때의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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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75권/ 선조 29년( 1596 병신 / 명 만력(萬曆) 24년) 5월 17일 계미 5번째 기사/ 접반사 행 호군 황신이 배신의 차출과 신사에 관한 내용으로 서장을 올리다/ 접반사 행 호군(行護軍) 황신(黃愼)의 서장에, ꡒ도체찰사 종사관(都體察使從事官) 노경임(盧景任)의 통서(通書)에 ꡐ비변사(備邊司)가 신의 전일 장계(狀啓)로 인한 회계(回啓)에 「저들이 배신(陪臣)을 간절히 요구하면서 마음이 초조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는 것도 반드시 이러한 정상을 눈으로 보았으므로 여러 번 치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출하여 보내는 일은 여기서 가벼이 의논할 수 없고, 부사(副使)3305) 가 만약 문안사(問安使)가 감에 따라 임시하여 스스로 처치하여 신사(信使)라고 칭한다면 그만이겠으나, 우리 나라가 지휘할 것은 아니다.」 하였다.ꡑ 하였습니다. 당초에 조신(調信)이 한 관원을 왜영(倭營)에 들어오게 하여 신사라 가칭하기를 바란 것은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사체(事禮)를 생각하면 결코 들어줄 수 없으므로, 그가 전에 신이 있는 곳에 와서 이언서(李彦瑞)에게 이야기하였으나 신이 또한 대답하지 않았고, 그가 이튿날에 또 부사에게 간청하여 부사가 신을 불러서 이 일을 이야기하였으나 신이 또한 결코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는데, 전에 이렇게 연유를 갖추어 치계하였었습니다. 부사가 번번이 박의검(朴義儉)에게 말하기를, ꡐ바다를 건너갈 배신이 반드시 여기에 빨리 와서 따라가야 한다.ꡑ 하고, 또 ꡐ배신은 반드시 장관(將官)을 차출하여 보내어 적의 형세를 보아 적의 정세를 익히 알게 하면 매우 좋을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또 부사가 때때로 배신의 일을 자주 물어 ꡐ그대의 국왕이 허락하였는가?ꡑ 하기에 번번이 아직 듣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습니다.ꡓ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영인본】 22 책 709 면/ 【분류】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註 3305]부사(副使) : 양방형(楊方亨). ☞(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89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6월 15일 갑술 6번째 기사/ 윤자신․강신․박홍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자신(尹自新)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강신(姜紳)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박홍로(朴弘老)를 전라도 관찰사로,【잉임(仍任)이다.】 김홍미(金弘微)를 비문사(備問使)로, 김의원(金義元)을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으로, 김신국(金藎國)을 이조 좌랑으로, 최동립(崔東立)을 병조 좌랑으로, 남이공(南以恭)을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김신국과 남이공은 모두 경박하고 그릇이 적은데, 일찍부터 청망(淸望)을 차지하였다. 이해 득실에 마음이 기울어 반복 무상하였으며, 선류(善類)를 못살게 굴고, 조정을 탁란(濁亂)케 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어 국맥(國脈)을 병들게 하고 사풍(士風)을 더욱 심하게 무너뜨렸다.】 노경임(盧景任)을 성균관 전적으로, 김광엽(金光燁)을 성균관 전적으로 삼았다./ 【영인본】 23 책 249 면/【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95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12월 29일 을유 2번째 기사/ 정언 유공량이 유자신의 한성 판윤 임명을 철회할 것을 청하다/ 정언 유공량(柳公亮)이 아뢰기를,【대사간 허성(許筬), 사간 남이신(南以信), 헌납 노경임(盧景任)은 외방에 나가 있었다. 정언은 유인길(柳寅吉)이다.】 ꡒ판윤 유자신(柳自新)은 문음(門蔭) 출신으로 벼슬하여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니 은총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정2품의 품계에 올랐습니다. 더구나 판윤은 옛날의 경조(京兆)로서 온 도성 백성들이 우러르므로 누구에게나 함부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급(資級)을 뛰어넘는 명이 한번 내려지자 물정이 모두 온편치 못하게 여깁니다. 망설이지 말고 속히 개정하소서.ꡓ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영인본】 23 책 356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95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12월 29일 을유 4번째 기사/ 황섬․홍이상․윤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섬(黃暹)을 형조 참의로, 홍이상(洪履祥)을 형조 참판으로, 윤탁(尹晫)을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로, 노경임(盧景任)을 사간원 헌납으로, 신흠(申欽)을 종부시 정(宗簿寺正)으로, 정홍익(鄭弘翼)을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로, 임수정(任守正)을 대교(待敎)로 삼았다./ 【영인본】 23 책 35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96권/ 선조 31년( 1598 무술 / 명 만력(萬曆) 26년) 1월 19일 을사 3번째 기사/ 사간 남이신이 박동량의 가자를 반대하고 이이첨을 서경하도록 청하다/ 사간 남이신(南以信)이【대사간 허성, 정언 조즙(趙?).】 와서 아뢰기를, ꡒ상호군 박동량은 은대(銀臺)3970) 의 장으로 들어온 시일이 오래 되지 않았고 이를 만한 공로도 없는데, 상소를 올려 해직되고 난 뒤 도리어 2품의 높은 품계를 가자했습니다. 덕에 따라 임명하는 관작이 이 어떤 작상(爵賞)이기에 까닭없이 공도 없는 사람에게 외람되이 주는 것입니까. 그가 호종(扈從)한 공에 대해서는 일찍이 낭관(郞官)에서 당상(堂上)으로 뛰어 승진시켰으니 그만하면 보답이 이미 넉넉한 것인데 다시 무슨 상을 더 준단 말입니까. 제목(除目)이 한번 내리자 물정이 모두 해괴하게 여기니, 박동량의 가선 대부 가자를 개정하소서. 지평 이이첨(李爾瞻)은 4품이 아니니 당연히 서경(署經)을 해야 하는데, 헌납 노경임(盧景任)과 정언 윤탁(尹晫)은 외방에 있어서 아직 올라오지 않았고 정언 조즙은 정사(呈辭)하여 말미를 받았습니다. 비록 인원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신이 대사간 허성과 함께 할수없이 서경을 하기 위해서 제좌(齊坐)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ꡓ하니 답하기를, ꡒ알았다. 윤허하지 않는다.ꡓ하였다./ 【영인본】 23 책 36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정론-간쟁(諫諍)/ [註 3970]은대(銀臺) : 승정원의 별칭. ☞(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156권/ 선조 35년( 1602 임인 / 명 만력(萬曆) 30년) 11월 7일 갑자 3번째 기사/ 장령 조정견이 공주의 신임 판관 노경임을 체차할 것을 건의하다/ 장령 조정견(趙庭堅)이 와서 아뢰기를, ꡒ공주(公州)는 호서 지방의 중요한 곳으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모두 내려가 있을 때도 오히려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던 곳입니다. 신임 판관 노경임(盧景任)은 우활하고 졸렬하며 솜씨가 서툴러 번극(煩劇)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을 결코 감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성실하고 치적이 있는 사람을 각별히 선택하여 보내소서.ꡓ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영인본】 24 책 424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179권/ 선조 37년( 1604 갑진 / 명 만력(萬曆) 32년) 윤9월 8일 을유 1번째 기사/ 최천건․박홍로․오억령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최천건(崔天健)을 이조 참판으로, 박홍로(朴弘老)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오억령(吳億齡)을 첨지중추부사로, 권대임(權大任)을 길성위(吉城尉)로, 민중남(閔中男)을 공조 참의로, 윤홍국(尹弘國)을 병조 좌랑으로, 노정선(盧廷善)을 사헌부 감찰로, 채겸진(蔡謙進)을 도총부 도사로, 이득가(李得可)를 훈련원 첨정으로, 강연(姜?)을 인천 부사(仁川府使)로, 노경임(盧景任)을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삼았다./ 【영인본】 24 책 667 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실록 212권/ 선조 40년( 1607 정미 / 명 만력(萬曆) 35년) 6월 12일 계묘 2번째 기사/ 유몽인․송석경․이필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몽인(柳夢寅)을 승정원 좌승지로, 송석경(宋錫慶)을 상의원 정으로, 이필영(李必榮)을 보덕으로, 이지완(李志完)을 사인으로, 이경기(李慶?)를 사헌부 장령으로, 목장흠(睦長欽)을 성균관 직강으로, 이구징(李久澄)을 세자 시강원 필선으로, 홍방(洪?)을 병조 좌랑으로, 노경임(盧景任)을 영해 부사(寧海府使)로 삼았다./ 【영인본】 25 책 34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선조수정실록 31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1월 23일 갑인 4번째 기사/ 체찰사 종사관 노경임이 영남에서 올라오니 불러 접견하다/ 체찰사 종사관 노경임(盧景任)이 영남에서 올라오니, 상이 불러 접견하였다. 경임이 아뢰기를, ꡒ체찰사와 원수(元帥)가 서로 뜻이 맞지 않습니다. 원수는 양호(兩湖)의 군사로 언양(彦陽)과 양산(陽山) 지역을 차단하고자 하는데, 체찰사는 ꡐ본도(本道)는 군량이 부족하니 양호 지방에서 조달하여 운반해야 하는데, 백성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3도(三道)로 하여금 각자 성(城)을 지키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ꡑ 하였습니다. 체찰사가 또 김해 부사(金海府使) 백사림(白士霖)으로 하여금 황석 산성(黃石山城)을【안음(安陰)에 있다.】 지키도록 하였는데, 원수는 사림으로 하여금 의령(宜寧)으로 이동하여 지키도록 했으니, 이처럼 맞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호령(號令)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이원익이 걱정하여 신을 보내어 비국에 품의하도록 한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급한 일에 임해서는 미처 품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항상 체찰사의 호령에 따라야 한다.ꡓ하였다. 이때에 왜적은 변경에 있고 군사와 백성들은 흩어져서 나랏일은 하나도 믿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군사의 지휘를 맡은 신하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어긋나 결국 적의 재침(再侵)을 당하였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영인본】 25 책 661 면/【분류】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記事] : 광해군일기 131권/ 광해군 10년( 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8월 3일 기미 2번째 기사/ 비변사에서 유장으로 남궁경․안경심․이홍망 등을 천거하다/ 비변사가 유장(儒將)으로 남궁경(南宮?)․안경심(安景深)․이홍망(李弘望)․박자응(朴自凝)․이민환(李民?)․남이웅(南以雄)․변응원(邊應垣)․윤지양(尹知養)․노경임(盧景任)․조성립(趙誠立)․유진증(兪晉曾)․송방조(宋邦祖)․정문회(鄭文晦)․유효립(柳孝立)․〈김덕성(金德誠)을〉 천거하여 아뢰었다./ 【영인본】 33 책 139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노경임 : 秋日登鶴駕山有感 庚子八月。自醴泉棄郡歸河上。因携書上山。/ 상위서지: 敬菴集 > 敬菴先生文集卷之一 > 詩/ 저자: 노경임(盧景任)/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敬菴先生文集卷之一/ 詩/ 秋日登鶴駕山有感 庚子八月。自醴泉棄郡歸河上。因携書上山。 074_010d// 俯視人?六十州。山河形勝入閑愁。古今無限奇男子。幾誤紅塵空白頭。//

 

  노경임 : 答天朝指揮王來徵 己亥知醴泉郡時/ 상위서지: 敬菴集 > 敬菴先生文集卷之二 > 書/ 저자: 노경임(盧景任)/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敬菴先生文集卷之二/ 書/ 答天朝指揮王來徵 己亥知醴泉郡時 074_027b// 歸省母病。浹旬始返。伏蒙老爺寄書。?讀再三。感涕先零。況四段吳布。一雙越椒。俱是老爺心?。尤極隕越。非老爺至誠待人。何望至此。老爺來臨小邦。累經風霜。勞,費多少精力。活我嶺外生靈。欲報恩德。粉骨難旣。下敎席子紙地。敢不竭力以副。第弊郡屢歷兵火。人民散亡。什無一二。辦出無路。伏地惶悶。俯惠布椒。固當伏受。但念老爺是天朝大官。郡守乃小邦微官。安敢偃然自尊。仰受老爺大人之賜。玆敢伏還臺下。伏乞寬恕。千萬幸甚。久闕?候。心極??。玆發一介。敬問起居。兼貢鵝毛之?。伏願老爺勿享其物。惟享賤?。//

 

  노경임 : 역사적 인물/ 번호 9 글쓴이 이택용 등록일 2002-12-11 조회 3362/ 제목 노경임(盧景任) : 본관은 안강.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庵)으로 선조 2년(1569) 선산 독동리에서 송암(松菴) 노수함(盧守咸)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재질이 영특하여 아버지 송암 선생이 병환으로 돌아가시며 "이 아기가 장차 커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니 지금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으리요" 하고 임종했다 한다. 아버지를 여윈 때 겨우 5세였다. 여헌 장현광, 서애 유성룡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과 덕행을 닦아 22세(1591)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충청도와 상주에서 적병을 막아 많은 공을 세웠다. 상감의 어명을 받고 강원도 순무어사(巡撫御使)가 되어 떠날 때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일편단심으로 당면한 문제 열까지를 들어 올리면서 "민심은 날로 이탈되어 가고 국가 근본이 이미 흔들리고 있으니 쇠하는 것을 일으키고 어지러운 것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바른 정사에 있으니 전하의 한마음 결정하는데 있다."고 했다. 당시에 수백 명의 백성이 왜적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다가 배를 빌려 도주하여 삼척(三陟) 항구에 정박하였다. 삼척부사 홍인걸이 공명에 눈이 어두워 왜적이라고 빙자하고 배 세 척을 침몰시키고 수백 명의 백성을 몰살하였다. 조정에서는 왜적을 섬멸한 공을 세운 줄 알고 상을 주기로 한 것을 선생이 진상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고 홍인걸을 처벌한 후 백성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민심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 후,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고 영상 이원익이 하사도(下四道) 체찰사(體察使)로 있을 때 선생을 불러 종사관으로 삼아 매사의 처결을 위임하니 신중을 기하여 합당하게 처리하였다. 공은 선생을 크게 신임하고 크고 작은 일을 물어서 처리하였다고 한다. 부교리(副校理)를 거쳐 사간원 헌납 예천, 공주, 풍기, 영해 등 여러 고을에 수령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명관이라는 칭송이 있었다. 성주목사로 있을 때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니 정치가 어지러워 벼슬에 뜻이 없었다. 정인홍이 세도를 잡으니 양심있는 선비는 설 곳이 없다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낙동강 변에 영귀정(永歸亭)이란 정자를 지어 그곳에서 더욱 학문에 열중하다가 52세(1620)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호성원종공으로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를 추증하였다. 송산서원에 향사하여 그 유덕을 추모하고 있으며 문집(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학사 김응조가 지은 비문, 선산군지, 경암문집 연보, 경상순영록(daum 2010)

 

  노경임 : 2007/12/30(일)/ 충직(忠直-盧景任의 곧은 人品)/ 나무가 뛰어 나니 바람이 이를 꺾으려 하고, 사람이 뛰어 나니 무리가 이를 비난한다. 곧 높은 위치나 명예로운 지위에 있는 사람은 질투나 시기를 받기 쉽다는 뜻이다. 노경임(盧景任-1569~1620-자,弘仲-호,敬菴)은 진사를 지낸 노수성의 아들로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사헌부지평, 예조정랑을 지냈다. 그가 강원도 어사로 갔을 때 삼척부사 홍인걸(洪仁傑)이 마음대로 포로를 죽이는 등의 비행을 적발하고 이를  바로잡았다. 한 번은 그의 스승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지시로 정인홍(鄭仁弘-1535~1623)의 인품을 관찰하고 돌아와 '대단히 간사한 인물'라고 말했다. 후에 그 말이 정인홍에게 알려져 그가 성주 목사(星州牧使)로 있을 때 무고한 탄핵을 받고 파직, 낙동강 변에서 은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숨이 비록 붙어 있더라도 악한 행실을 많이 하여 남들이 다 천대하고 미워하면 개돼지만 같지 못하니 어찌 살아 있다고 하며, 숨이 비록 끊어졌더라도 착한 행실을 많이 하여 남들이 다 존경하고 믿으면 영원히 그 빛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죽었다고 하겠는가." 이때 서애 유성룡(西厓柳成龍-1524~1607)은 아들 진에게 노경임에 대하여 "내 평생 많은 사람을 보았으나 충직하고 순후하고 신중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은 처음이니 너는 그를 스승으로 삼아라."고 하였다. 그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말을 남겼다. "남이 거만하더라도 내가 너그럽게 대하면 거만한 사람도 공손해 지고, 남이 박대하더라도 내가 잘 대접하면 박한 사람도 후해지고, 남이 노엽게 하더라도 내가 너그럽게 참고 삼가 말하면 반드시 감복할 것이다." 옛말에 지혜는 모 없이 둥글어야 하며, 행실은 반듯하여야 하며, 담(뜻)은 커야 하며, 마음은 작아야 한다(작은 일이 모여 큰 일이 되니, 작은 일을 소홀히 말라)고 하였다.(daum 2010)

 

  노경임(盧景任)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선조(宣祖) 24년, 과거시험연도 : 1591 신묘, 시험명 : 별시(別試), 등위 : 병과12(丙科12)/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노경임(盧景任), 자 : 홍중(弘仲), 호 : 경암(敬菴), 본관(本貫) : 안강(安康)/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유학(幼學), 관직(官職) : 교리(校理)/ [가족사항] 부(父) : 노수함(盧守?), 조부(祖父) : 노희식(盧希軾), 증조부(曾祖父) : 노관(盧?), 외조부(外祖父) : 장열(張烈), 처부(妻父) : 유운용(柳雲龍)(daum 2010)

 

  노경임 : [경주] 노경임(盧景任)| carly님의 盧氏 이야기방/ carly | 2009.04.29 14:27/ http://cafe.daum.net/Rohsfamily/5ByU/59/ 조선 중기의 문신. 지평(持平), 순안어사(巡按御史), 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지냈다. 성주목사(星州牧使) 때 무고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daum 2010)

 

  노경임(盧景任) : 타 문중 자료실/ 류현우 | 2006.01.12 00:09/ http://cafe.daum.net/poongryuwoocheon/6Twm/142/ 노경임(盧景任) 1569(선조 2, 기사) ~ 1620(광해군 12, 경신),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안강(安康).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선산(善山) 출생. 진사 수함(守?)의 자. 처부(妻父)는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순안어사(巡按御史)로 강원도(江原道)에 내려가 삼척부사(三陟府使) 홍인걸(洪仁傑)의 비행을 적발·처결하였다. 그 후 다시 지평(持平)을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이 되고,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 밑에서 신임을 얻었다. 이에 앞서 정인홍(鄭仁弘)의 인품에 관하여 간사한 인물이라고 장현광(張顯光)에게 보고한 사실이 뒤에 알려져,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을 때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 뒤로는 향리 선산의 낙동강 변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참고문헌 : 宣祖實錄·光海君日記·國朝人物考(daum 2010)

 

  노경임 : 노경임(盧景任 ) 묘갈문| 하회 자료/ 류세원 | 2007.10.19 13:43/ http://cafe.daum.net/ryukh/IFlo/198/ 昔旅軒張先生有賢宅相安康盧氏。諱景任。字弘仲。號敬庵。高麗大匡諱光漢之後。曾祖諱?。忠佐衛中部將。祖諱希軾。東萊敎授。考諱守?。成均進士。以學行名。號松庵。前配報恩李氏。後配玉山張氏。贈吏曹判書諱烈之女。以隆慶五年己巳生公。幼有異質。松庵喜曰。此兒必大我門戶。稍長。受業旅軒先生。得聞爲學大方。勵志刻苦。萬曆辛卯。中別試文丙科。始分芸閣。改分槐院。歷正字著作博士。陞禮曹佐郞司諫院正言司憲府持平。出爲江原道巡按/ 御史。按治三陟府使洪仁傑擅殺被虜人罔上希功之罪。物論快之。拜持平。移禮曹正郞。佐體察使李相元翼幕。剖決如流。李相甚敬重之。入玉堂爲校理。未幾南下。戊戌。拜獻納典簿。皆不就。自是十餘年間。棲遲外府。歷醴泉,?基,寧海,星州。先是。旅軒先生嘗以仁弘名重。令公往見之。旣還。極言其心術之邪。至是。仁弘嗾群小誣劾罷之。由是而家居者七八年。築室洛東江上。??物表。爲終老計。庚申。偶感疾。十月。終于善山府南慕魯村之別墅。明年。葬于桃李山。始終護喪五百餘人。嗚呼。公天資篤厚。風神儼若。岸韻凝重。薰陶西厓,旅軒兩先生之門。潛心爲己之學。闢一/ 室左右書史。每晨起。整衣冠危坐。先誦夙興夜寐箴,庸,學等書。後及他書。酷好心經,近思錄,自警編。雖在體幕??中。未嘗釋卷。爲學主於敬。嘗著主敬說以自警。平生未嘗色於嬉笑。人之見之者。自不覺悚然起敬。內夫人亦不敢近前。嘗曰。吾平生未嘗見有?言慢色。西厓先生謂其胤修巖公袗曰。吾平生閱人多矣。忠厚重信。未有如此人。汝宜師事之。性篤孝。嘗痛松庵公早世。語及必流涕。事母夫人。誠孝備至。而未克終孝。幽明之痛也。愛君憂國。血誠慷慨。或至嗚咽。當巡按關東也。疏陳時弊。終以人主一心爲出治之要。而尤眷眷於敬畏之說。其在寧海。遭宣廟喪。 / 不御內不食肉。以終三年。逮至大往小來之日。沈冥於吏職。又不肯以卑?自懈。以右文興學爲先務。去後常有去思碑。於星則爲仁弘所沮。嗚呼。夫以公之學之正德之厚才之偉。未得飽?於中晩而大備。豈非天哉。公之言行。鄭重而未敢盡。至於內行之一於正。方喪之盡其制。實千百世一人而已。後世公論。豈待百年而定哉。配?山柳氏。贈吏曹參判行原州牧使謙庵先生雲龍之女。性淑而行貞。?範備至。後公三十年卒。初葬尙州士勿山。後葬詠歸亭東麓。移公墓合?焉。生二子四女。男長世謙。有一子以益。一女。李東柱。次世讓。有一子以興。五女。李仝吾。餘未歸。 / 女適金?,金烋,金光遂,康。內外曾孫男女若干人。庚寅。以扈聖原從功。贈承政院都承旨。夫人贈淑夫人。銘曰。 / 安康之盧。蟬聯胄胤。玉山宅相。河廻玉潤。趾美襲芬。英資美質。制行之懿。表裏如一。抹?于時。生不展布。知德者稀。沒不俎豆。烏山??。洛水??。名與齊高。道與俱長。 / 출처 : 豊柳마을/ 글쓴이 : 류현우(연천)(daum 2010)

 

   노경임 [專門資料] :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의 학문(學問)과 사상(思想)/ 저자 장세호 ( Se Ho Chang )/ 자료유형 학술지논문/ 발행처 한국사상문화학회/ 발행일 2008/ 페이지 수 25Pages/ 발행정보 한국사상과 문화, 44권, 단일호, 시작쪽수 307쪽/ 한국사상(韓國思想)(철학(哲學)) :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의 학문(學問)과 사상(思想) =Philosophy : Scholarship and Thought of Gyungham No gyung-im/ - 발행기관  한국사상문화학회/ - 발행정보 한국사상과 문화 , 44 권 , 단일호 , 시작쪽수 307쪽 , 전체쪽수 25쪽/  - 저자 장세호 ( Se Ho Chang )/ - 가격 4,000 원/ - 발행년도 2008/  - 주제키워드 경암 노경임, 소이연, 경, 인의예지, 대학, Gyungham, Neo-confucianism, gyung, 敬, soiyeon, 所以然, Daehak, 大學(daum 2010)

 

  노경임 : 구미를 빛낸 훌륭한 인물/ 2005.11.14/ ...金澍) 이택용 02-12-11 966 21 김취문(金就文) 이택용 02-12-11 621 20 김취성(金就成) 이택용 02-12-11 542 19 노경임(盧景任) 이택용 02-12-11 984 18 문영(文英) 이택용 02-12-11 857 17 박영(朴英) 이택용 02-12-11 929 16 박운(朴雲)...(daum 2010)

 

  노경임 :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2006.06.08/ ...현재 만송정에는 한 기의 비석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자가 있었는지 아니면 소나무를 심고 그 곳을 정자로 삼았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최근 겸암 선생의 둘째 사위인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 선조 2년, 1569∼광해군 12년...(daum 2010)

 

  노경임 : 조선의 암행어사/ e-Book/ 임병준 지음 |  가람기획 |  2006.07.13/ 책본문 : ...姜籤·南以恭·李尙臣·黃克中·金義元·徐·金權1595 金尙寯·李時發·金權曾·申湜·金尙容·盧景任·金大來·南以信1596 禹俊民·李思孝·朴東說·洪致祥1597 崔天健·任蒙正·柳夢寅·尹晫·南晫.../ 224페이지(daum 2010)

 

  노경임 :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e-Book/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8.10.17/ 책본문 : ...저서로는『경와집』『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이 있다. 김휴는 안강노씨 노경임(盧景任)의 딸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42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하나뿐인 아들.../ 109페이지(daum 2010)

 

  노경임 : 임고서원소장전적심원록(皐書院所藏典籍尋院錄)/ 2009.12.25/ ...서원을 내방한 인사들의 개인적인 신상과 신분, 거주지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임고서원에 관련된 인물들의 면면(面面)을 알 수 있고 서원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선산출신방문자 : 金寧, 金宗武, 盧景任 등/ http://blog.naver.com/zxcvbnm7997/ 전통문화 사랑방(daum 2010)

 

  노경임 :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NO;71 ~ 80/ 민족문화추진회 刊/ 2008.05.27/ ...자 이경전(李慶全) 집수 073 집 제호집(霽湖集) 저 자 양경우(梁慶遇) 집수 073 집 경암집(敬菴集) 저 자 노경임(盧景任) 집수 074 집 성소부부고(惺所覆?稿) 저 자 허균(許筠) 집수 074 집 벽오유고(碧梧遺稿) 저 자 이시발(李時發) 집수.../ http://blog.naver.com/minist9/ 상현서림(daum 2010)

 

  노경임 : 안동의 인물 - 수암(修巖) 류진(柳袗)/ 2008.08.27 (수) 오전 9:23/  ...그는 16세 때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의 문인이 됐다. 노경임은 그의 백부 류운룡(柳雲龍)의 사위였다. 노경임의 문하에서 특히 사서(四書)를 철저히 깨져 학문의 기틀을 잡은 그는 2년 뒤에는 아버지인 류성룡을.../ 안동넷 > 문화생활(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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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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