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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79-2) : 이춘영(1600-1601.10.17) : '채소재집' 3권을 저술한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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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29권/ 선조 25년( 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8월 28일 을묘 2번째 기사/ 최철견․백유함․유공진․허성․이춘영․황극중 등에게 가자하거나 관직을 제수하다/ 전라 도사(全羅都事) 최철견(崔鐵堅)을 올려서 통정(通政)에, 백유함(白惟咸)을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에, 유공진(柳拱辰)을 예조 정랑(禮曹正郞)에, 허성(許筬)을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이춘영(李春英)을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황극중(黃克中)을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에, 기자헌(奇自獻)을 병조 좌랑(兵曹佐郞)에 제수하였다./ 【영인본】 21 책 53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9월 1일 무오 8번째 기사/ 황극중․유대경․이항복․이산보․이춘영․구사맹․이덕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극중(黃克中)을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에, 유대경(兪大儆)을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에, 이항복(李恒福)을 동지경연(同知經筵)에, 이산보(李山甫)를 동지춘추관(同知春秋館)에, 이춘영(李春英)을 승정원 주서에, 구사맹(具思孟)․이덕형(李德馨)을 동지경연에 제수하였다./ 【영인본】 21 책 53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9월 4일 신유 12번째 기사/ 이춘영․이요원․강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춘영(李春英)을 예문관 대교에, 이효원(李效元)을 병조 좌랑에, 강욱(康昱)을 승정원 주서에 제수하였다./ 【영인본】 21 책 54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9월 5일 임술 2번째 기사/ 최흥원 등을 인견하여 왕자가 포로로 잡힌 사실 여부와 함경도의 적세를 묻다/ 상이 영의정 최흥원, 좌의정 윤두수, 예조 판서 윤근수, 해풍군 이기(海豊君李耆), 순의수 이경온(順義守李景溫)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유근(柳根), 주서(注書) 강욱(康昱), 기사관(記事官) 박동량(朴東亮)․이춘영(李春英)이 함께 입시하였다. 상이 흥원에게 이르기를, ꡒ경은 동궁을 수행하느라 매우 고생하였다. 왕자 등이 사로잡혔다는 소문을 동궁이 먼저 알았는가?ꡓ하니, 흥원이 아뢰기를, ꡒ유복(有福)이란 자가 와서 말한 것으로 신빙할 수 없습니다. 동궁도 자세한 내막을 몰라 사람을 시켜 탐문케 하였는데 아직 그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ꡓ하였다. 이춘영이 아뢰기를, ꡒ신이 삼수(三水)와 함흥(咸興) 지경에 있으면서 듣기로는 갑산(甲山)의 토민(土民)이 혜산 첨사(惠山僉使)와 우후(虞候)를 살해하였다고 하였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그렇다면 갑산은 왜적들에게 함락된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에게 함락된 것이다. 그리고 북병사(北兵使)가 야인들에게 왜적의 토벌을 청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ꡓ하였다. 춘영이 아뢰기를, ꡒ전혀 근사한 말이 아닙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성천(成川)의 민정(民情)이 어떠하던가?ꡓ하였다. 흥원이 아뢰기를, ꡒ근래 조금 안정되었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적세가 급해지면 세자는 어느 곳으로 피하려 하던가?ꡓ하였다. 흥원이 아뢰기를, ꡒ육로를 통하여 강화로 가자면 적들이 많이 널려 있고 수로를 통하여 가자면 장산곶(長山串)이 매우 험난합니다.ꡓ하였는데,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내시가 유영립(柳永立)이 도착하였음을 전했다. 상이 부르니, 영립이 들어왔다. 상이 이르기를, ꡒ경이 멀리서 고생하며 왔는데 도중의 적세는 어떠하던가? 또 북병사가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던데 사실인가?ꡓ하니, 영립이 아뢰기를, ꡒ길에 떠도는 말입니다. 신은 7월에 북청(北靑)을 지나다가 적에게 포로가 되었는데 첫새벽에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적들이 추격해 와서 하마터면 잡힐 뻔하였습니다. 또 함흥(咸興)의 생원(生員) 진대유(陳大猷)는 왜놈에게 딸을 시집보냈으며, 한인록(韓仁祿)과 문덕교(文德敎)의【모두 함흥의 문관(文官)이다.】 아비가 의병을 일으키려 하자 대유가 적에게 고발하여 모두 살해당하게 하였습니다.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적이 육진(六鎭)에도 들이닥쳤다 하던데 사실인가?ꡓ하니, 영립이 아뢰기를, ꡒ경성(鏡城)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사로잡혀 있으면서 별로 그들의 뜻을 거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죽이려는 뜻은 없었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적의 숫자는 얼마나 되던가?ꡓ하니, 영립은 아뢰기를, ꡒ하루아침의 식량으로 80석을 분급(分給)한다고들 하니, 수만 명을 밑돌지 않을 것입니다.ꡓ하고, 유근은 아뢰기를, ꡒ이 말은 크게 틀린 것입니다. 절대 이 숫자에는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춘영에게 이르기를, ꡒ그대의 의견은 어떤가?ꡓ하니, 춘영이 아뢰기를, ꡒ여러 곳에 주둔하여 있는 군사들이 1만 명을 밑돌지 않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영인본】 21 책 540 면/ 【분류】 *외교-왜(倭) / *외교-야(野) / *왕실-종친(宗親) / *변란(變亂)(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 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1월 7일 계해 5번째 기사/ 유몽인․이춘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몽인(柳夢寅)을 호조 정랑(戶曹正郞)으로, 이춘영(李春英)을 호조 좌랑(戶曹佐郞)으로 삼았다./ 【영인본】 21 책 56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35권/ 선조 26년( 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2월 23일 무신 3번째 기사/ 비변사가 공무를 칭탁하여 폐를 일으킨 소모관 이덕해 등의 죄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ꡒ전쟁이 일어난 뒤로 군사를 모집하고 양곡을 모으는 관원들이 공무를 칭탁하여 사삿일을 행하기를 못하는 짓이 없이 행합니다. 소모관(召募官) 이덕해(李德海)와 이춘영(李春英)은 양호(兩湖)에 내려가서 공무를 빙자하여 폐단을 일으켜 수령과 이민(吏民)들을 침해하였습니다. 덕해는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으로 조정에서 기복(起復)의 명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무단히 들어와 관직에 제수되기를 바라다가 차임되어 간 뒤에는 방자히 술과 고기를 먹었으니, 그 풍속을 해치고 윤리를 무너뜨림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을 잡아 가두고 죄를 다스리도록 충청도와 전라도의 감사에게 하유하심이 어떻겠습니까?ꡓ하니, 상이 따랐다.【변란이 발생한 뒤에 많은 사람들이 소모관이 칭탁하고 여러 고을을 횡행하며 촌민들을 침해하였다. 심지어는 평소에 스스로 식견 있는 사대부라는 자들도 친상을 당한 뒤 한 달도 안 되어 평상인처럼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도 스스로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 자신이 국가 중흥의 책임을 진 사람들도 오히려 상을 끝마치기를 원하는데 조정에서 기복하라는 명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봉명 사신(奉命使臣)이 되는도다. 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문에서 구해야 하는데 상례가 무너짐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충의로운 신하가 하나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요행이라 하겠다.】/ 【영인본】 21 책 644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44권/ 선조 26년( 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11월 2일 임자 7번째 기사/ 승문원이 글 잘하는 사람이 함께 의논하여 사명을 중하게 하라고 청하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ꡒ요사이는 사명(辭命)의 중함이 평상시 보다 배나 되어 자문(咨文)․게첩(揭帖)이 날마다 쌓입니다. 주본(奏本)은 위로 천청(天聽)에 주달하여 분쟁을 해소하고 실정을 상달되게 하는 것이 오로지 이에 달렸으니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글 잘하는 사람들이 함께 의논해서 초계(抄啓), 술작(述作)을 전담케 함으로써 사명을 중하게 하소서.ꡓ하니, 상이 따랐다. 초계한 제술 문관(製述文官)은 신광필(申光弼)․이노(李魯)․정경세(鄭經世)․신흠(申欽)․황신(黃愼)․이정귀(李廷龜)․이준(李埈)․안대진(安大進)․이춘영(李春英)․유몽인(柳夢寅)이다./ 【영인본】 22 책 11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어문학-문학(文學)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63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5월 11일 계미 2번째 기사/ 사헌부가 김응서는 의법 조치하고 권율은 압송할 것을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ꡒ김응서는 법에 따라 처단하고 권율은 압송해 오소서. 동궁이 영변(寧邊)에서 희천(熙川)으로 향한 것은 갑작스런 일이라서 행색이 매우 급했으니 마관(馬官)2898) 이 된 자는 마땅히 직접 따라가며 호위하고 인마(人馬)를 단속해야 했는데, 부호군(副護軍) 변이중(邊以中)은 당시 어천 찰방(魚川察訪)으로 있으면서 군왕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피난할 계책을 꾸며 뒤로 처지려고 도모하여 온갖 핑계를 대었으며, 병관(兵官)이 가기를 재촉하자 말(馬)이 없다고 핑계하고 끝내 가려 하지 않았다가 동궁의 수레가 이미 출발한 후에는 숲속에 숨겨놓았던 준마를 타고 채찍질하여 가버렸습니다. 이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은 오래 될수록 더욱 통분하게 여깁니다. 그가 교묘히 피한 불충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파직시키고 서용하지 마소서. 의주부(義州府)에 있는 중강(中江)의 여러 섬을 예전부터 개간하지 않는 것은 뜻이 있어서인데 전 정랑 이춘영(李春英), 역관 표헌(表憲), 전 직장(直長) 조의도(趙誼道) 등이 그 토지의 비옥함을 탐하고 수확의 이익을 도모하여, 중국 관원에게 사사로이 편지를 통해서 소마와(小麻窩)2899) 를 얻고자 청했습니다. 그들이 소원을 이루어 크게 이익을 얻자,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시샘이 생겨 빼앗아 경작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춘영 등이 비굴한 말로 애걸해서 끝내 자신들이 점유하고자 하니 중국 벼슬아치들은 마침내 만자도(蠻子島)로 의향을 돌려 처리하기 곤란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하로서 사사로이 접촉하여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는 거기에 맞는 죄가 있는 것이니 이들을 모두 나국하도록 명하소서. 지방을 지키는 신하는 마땅히 그 사유를 자세히 아뢰고 실상에 따라 처리하여야 하는데도 감히 덮어 두고 조정에 알리지 않았으니 지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본주(本州)의 부윤(府尹)을 추고하여 죄를 다스리소서.ꡓ하니, 상이 답하기를, ꡒ사간원에 답한 것과 같다. 새로 아뢴 것은 아뢴 대로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22 책 496 면/ 【분류】 *농업-개간(開墾) /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왕실-종친(宗親)/ [註 2898]마관(馬官) : 말을 담당한 관리. ☞ / [註 2899]소마와(小麻窩) : 지명. ☞(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64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6월 13일 갑인 5번째 기사/ 중국 사람과 사귀며 흔단을 일으킨 이춘영 등에게 벌을 주다/ 이춘영(李春英)․표헌(表憲)․조의도(趙誼道) 등에게 장 구십(杖九十)을 때리고 도 이년반(徒二年半)에 처하며 고신(告身)을 다 빼앗는 것으로 조율한 의금부의 공사(公事)를【이에 앞서 대간이 이 사람들이 의주의 야마와(也麻窩)에서 불법으로 농사지으며 중국 사람과 사사로이 사귀어 흔단을 일으켰다는 것으로 논계하였는데, 잡아다 가두자 다 자복하였다.】 가지고, 상이 정원에 전교하였다. ꡒ이 율명(律名)은 죄명(罪名)과 다르다. 그 죄명은 사사로이 외국인과 사귀어 흔단을 일으킨 것이라 했는데, 그런 율명은 없는가?ꡓ/ 【영인본】 22 책 511 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농업-개간(開墾)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64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6월 13일 갑인 6번째 기사/ 의금부가 이춘영 등에게 준 벌의 타당성을 논하다/ 의금부가 아뢰었다. ꡒ이춘영【경솔하고 추잡하여 본디 행검(行檢)이 없었다. 성품도 음험하여 남의 잘못을 말하기 좋아해서 공경(公卿)들을 두루 비난하며 방약 무인하였다. 역옥(逆獄)의 변에 정철의 심복이 되어 유언 비어를 조작함으로써 사류(士類)를 몰래 중상 모략하였는데, 일시의 논박이 그의 입에서 대부분 발설되자, 사람들이 다 곁눈질하며 두려워하였다.】 등이 사사로이 외국인과 사귀어 흔단을 일으킨 죄는 율에 명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반복해서 참고해도 근사한 율이 없었습니다. 장 구십(杖九十)에 도 이년반(徒二年半)이면 외국인과 사사로이 사귀어 흔단을 일으킨 죄에 상당할 것 같아서 망령되이 그 경중을 참작하고자 하여 의율(擬律)해 올렸던 것입니다.ꡓ/ 【영인본】 22 책 511 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농업-개간(開墾)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64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6월 16일 정사 1번째 기사/ 사간원이 근무 태만의 관리를 벌할 것을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ꡒ지난번 금부가 이춘영(李春榮) 등을 조율한 것을 보건대, 죄명과 크게 다른 바가 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 만약 실정을 따져 죄를 정했다면 어찌 비의(比擬)할 율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임의대로 높이고 낮추었으니, 물정이 매우 온당치 않게 여깁니다. 금부의 당상과 색낭청(色郞廳)을 아울러 추고하라 명하시고, 그 공사는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소서. 강령 현감(康翎縣監) 윤정(尹靜)은 왜적이 경성(京城)을 점거한 날에 의병이라 칭하고 삼강(三江)의 배를 다 영솔하였는데 한 명도 참획하지 못하고 남의 재물을 약탈하는 것만 일삼았으며 그 자취를 없애고자 하여 심지어는 인명까지 살해했으므로, 듣는 자들이 통분하고 참혹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사판(仕版)에서 삭제하라 명하소서.ꡓ 하니, 상이 따랐다./ 【영인본】 22 책 51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농업-개간(開墾)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123권/ 선조 33년( 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3월 14일 정사 1번째 기사/ 사간원에서 청도 군수 권진경과 정의 현감 이춘영 등의 파직을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ꡒ청도 군수(淸道郡守) 권진경(權晉慶)은 위인이 패려스러운데다가 성격마저 범람한 자인데, 본군(本郡)에 제수된 후로는 더욱 탐학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으니 파직시키소서. 정의 현감(旌義縣監) 이춘영(李春榮)은 본디 패망스러운 사람으로 행실이 무례하기 그지없습니다. 절도(絶島)의 잔폐된 백성들이 거듭 해를 받고 있으니 파직시키소서. 창녕 현감(昌寧縣監) 정유상(鄭惟祥)은 위인이 용렬하고 나이마저 늙어 정사를 하리(下吏)들에게 맡기므로 백성들이 피해를 받고 있으니, 파직시키소서.ꡓ하니, 모두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영인본】 24 책 47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142권/ 선조 34년( 1601 신축 / 명 만력(萬曆) 29년) 10월 17일 신사 1번째 기사/ 경상 등 도 도체찰사 이덕형이 예천 군수 이춘영 등 6인의 파직을 청하다/ 경상 등 도의 도체찰사 이덕형이 치계하기를, ꡒ지금 민생의 괴로움과 편안함이 모두 수령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령(政令)이 어긋나고 거리낌없이 멋대로 하여 백성들에게 깊이 원망을 산 사람은 처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천 군수(醴泉郡守) 이춘영(李春永)은 자봉(自奉)이 간소하지 않고 호령이 거칠며, 옥천 군수(沃川郡守) 한전(韓詮)은 백성을 무마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고 가렴(苛?)만 일삼으며, 순창 군수(淳昌郡守) 권황(權愰)은 하리에게 정사를 맡겨 민폐가 날로 심하며, 옥과 현감(玉果縣監) 송정기(宋廷琦)는 탐학스럽고 방자하여 금령(禁令)을 무시하였으며, 영암 군수(靈巖郡守) 구덕령(具德齡)은 성품이 본디 패려한 데다가 처사가 방자하며, 보성 군수(寶城郡守) 손경지(孫景祉)는 시설(施設)이 번거로와 민폐가 많으니 모두 파출시키소서. 그 대임은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가려서 차송하여 자주 체직시키는 폐단이 없게 하소서.ꡓ하였는데, 이조에 계하하였다./ 【영인본】 24 책 303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실록 176권/ 선조 37년( 1604 갑진 / 명 만력(萬曆) 32년) 7월 20일 기사 2번째 기사/ 간원이 실록 편찬관의 선발, 충군 공신에 대한 포상을 줄일 것을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ꡒ선왕조(先王朝)의 실록(實錄)을 감교(監校)하는 일은 직임이 매우 중하므로 전에 시종(侍從)을 지냈고 명망이 드러난 자가 아니면 사람마다 함부로 겸직(兼職)하여 비사(秘史)를 참여하여 볼 수는 없는 것이니, 겸춘추(兼春秋) 가운데 전에 시종을 지내지 않은 자는 해조(該曹)로 하여금 일일이 태거(汰去)시키고 극진히 선택하여 차출하게 함으로써 그 선발을 중하게 하소서. 왕언(王言)을 대술(代述)하는 자는 그 선임(選任)이 매우 중하므로 예로부터 반드시 사장(詞章)과 명망이 아울러 갖추어진 자에게 제수하였으니, 이른바 삼수화함(三守華銜)이라고 한 것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공조 정랑 이춘영(李春英)은 글을 잘 한다는 이름이 있기는 하나 청론(淸論)에 버림받은 지 오래인데 이제 지제교(知製敎)에 선임되었으므로 물론이 모두 놀라와하니, 태거하도록 명하소서. 궐군(闕軍)을 충정(充定)시키는 것은 오늘날 군정(軍政)의 급선무입니다. 전에 경연관(經筵官)이 아뢴 바에 따라 아직 충정하지 못한 각 고을은 해당 수령을 파직시키도록 하는 사목(事目)이 이미 마련되었으니 번신(藩臣)5354) 으로서는 삼가 봉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전라 감사 장만(張晩)의 장계(狀啓)를 보니 감히 경연관이 아뢴 것에 대해 조종(祖宗)의 법전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고, 또 수사(水使)의 장계에 대해서도 수말(首末)을 모르고 많은 사설을 늘어 놓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 가운데 가장 심한 한 고을만 파직시키고 그 나머지 두 고을은 우선 다른 벌을 주자고 청하였습니다. 신들이 수사의 장계를 가져다 살펴보니, 고부(古阜) 등 세 고을은 1명도 충정하지 않았으므로 그 죄가 같아서 어느 사람은 파직시키고 어느 사람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만의 말이 행해진다면 군정이 해이해질 것은 물론 인심이 법을 우습게 아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대로 조정을 지휘한 죄를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추고 하도록 명하소서. 포도 대장(捕盜大將)․훈련 겸도정(訓鍊兼都正)은 모두 무재(武宰) 가운데 극진히 선발하는 직임이니, 숙장(宿將)이 아니면 구차하게 그 자리를 채워서 명기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첨지(僉知) 김응서(金應瑞)는 출신이 미천하고 전의 경력에 대해서도 외람된 짓이 많았다는 비평이 있습니다. 이제 두 직임에 제수되었으므로 물정이 모두 놀라와 하니, 김응서가 겸대(兼帶)한 두 직임을 모두 체차시키소서. 이번 세 공신(功臣)의 상사(賞賜)를 줄여서 시행할 것을 도감(都監)이 일찍이 계사(啓辭)로 아뢰었다면, 승전(承傳)을 받들 적에 정원에서 등급을 나누어 수를 줄인 사유를 신품하고 해사(該司)에 분부(分付)했어야 할 것인데 흐리멍덩하게 방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승전을 받든 뒤에도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었고 회맹(會盟)할 때가 이미 다가왔어도 신칙(申飭)하지 않은 탓으로 각 해사들이 시일을 지연시키면서 이제까지 줄인 일이 없으니, 매우 온편하지 못합니다. 그때의 색승지(色承旨)를 추고하고 각 해사로 하여금 빨리 거행하게 하소서. 지금 병화(兵火)를 겪은 끝에 황폐된 대로 버려진 전야(田野)가 태반이고 백성이 거의 다 죽었으므로, 공신에게 주어야 할 수량을 십분 줄이지 않으면 이렇게 탕패한 물력(物力)으로 충급(充給)할 수 없는 형세입니다. 공신에게 상주는 것을 각별히 간략하게 다시 마련하여 시행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윤허한다. 김응서는 체차할 것 없다. 상주는 것은 간략하게 해야 하겠으나 매몰하게 할 수는 없다.ꡓ하였다./ 【영인본】 24 책 627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역사-편사(編史)/ [註 5354]번신(藩臣) : 관찰사의 별칭. ☞(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宣祖修正實錄 25卷/ 宣祖 24年( 1591 辛卯 / 명 만력(萬曆) 19年) 閏3月 1日 丙寅 2번째 기사/ 사헌부가 이조 정랑 유공신과 검열 이춘영의 파직을 청하다/ ○司憲府啓曰: ꡒ吏曹正郞柳拱辰人物?庸, 檢閱李春英爲人浮薄, 出入宰相之門, 請竝罷職。ꡓ 從之。/ 【영인본】 25 책 605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記事] :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1591 신묘 / 명 만력(萬曆) 19년) 5월 1일 을축 12번째 기사/ 홍여순․조인득 등이 합계하여 정철․백유함 등의 유배를 청하다/ 대사헌 홍여순(洪汝諄), 장령 조인득(趙仁得)․윤담무(尹覃茂), 지평 이상의(李尙毅)․정광적(鄭光績), 대사간 이원익(李元翼), 사간 권문해(權文海), 헌납 김민선(金敏善), 정언 이정신(李廷臣)․윤엽(尹曄) 등이 합계하기를, ꡒ정철․백유함․유공신․이춘영(李春英) 등이 서로 붕당을 지어 조정을 어지럽히면서 자기들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유생들에게 상소하도록 꾀어 이름있는 재상과 사류들을 역당(逆黨)으로 몰아 모두 죽이려 하였으니 아울러 먼 곳으로 찬축시키소서.ꡓ하니, 상이 따랐다. 정철은 진주(晉州)에 유배되고 백유함․유공신․이춘영은 서쪽 변방에 유배되었는데, 상이 극변으로 이배(移配)하도록 하여 정철은 강계로, 백유함은 경흥으로, 유공신은 경원으로, 이춘영은 삼수로 이배되었다./ 【영인본】 25 책 608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춘영 : 寄贈李實之。李時爲醴泉宰。/ 상위서지: 滄浪集 > 滄浪先生詩集卷之一 > 詩/ 저자: 성문준(成文濬)/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滄浪先生詩集卷之一/ 詩/ 寄贈李實之。李時爲醴泉宰。 064_021a// 寥落終南歲晏時。酒泉老守苦相思。?年交道違麗澤。淸世周行失羽儀。洛浦松雲怡醉眼。白岑梅雪爽詩脾。文章剩得江山助。珪組何心換一麾。//
이춘영 : 送體素赴醴泉郡三首/ 상위서지: 象村稿 > 象村稿卷之十三 > 七言律詩 一百一十首/ 저자: 신흠(申欽)/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상촌선생집 제13권/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10수/ 예천 군수로 부임하는 체소재주C-001를 전송하다[送體素赴醴泉郡] 3수// 그대 문장 읊으면 신명이 절로 나니(誦子文章覺有神)/ 호건한 말 언제나 사람들을 놀래었네(向來豪語動驚人)/ 천년 계획 남아는 본디 설계하나니(男兒本作千年調)/ 온갖 변화 세상사 한탄할 것 없다네(世事休嗟百態新)/ 하늘 가 꿈속의 넋 앞길이 아련하고(天外夢魂迷至路)/ 산골짝의 가을빛에 가는 수레 머무른다(峽中秋色逗征輪)/ 알괘라 장차 지희당 이뤄지는 그날주D-001에는(遙知至喜堂成日)/ 그야 물론 명성이 해변에 자자하리(遮莫聲名滿海濱)// 이(二)/ 풍진 속에 어인 일로 오랫동안 서성대나(風塵何事久低徊)/ 낮은 가지 깃든 봉황 날개가 부러졌네(鸞鳳卑棲羽??)/ 탁한 세상 사실 응당 호방하기 십상이니(濁世固應輕放達)/ 높은 재주 어찌 다시 남의 질투 면할건가 (高才那復免嫌猜)/ 고요한 낮 금당주D-002에 잡다한 문서 끊기고(琴堂晝靜文書絶)/ 풍년든 가을 농가에 볏단이 쌓이리라(?戶秋登??堆)/ 이제 가면 그대는 필력이 불어나서(此去知君饒筆力)/ 청산이라 사공대주D-003에 한가로이 노닐거네(靑山閑傍謝公臺)/ 삼(三)/ 생각하면 동액주D-004에서 함께 나란히 벼슬해(憶曾東掖?同聯)/ 붓대 잡고 오랫동안 임금 자리 받들었지(珥筆多時捧御筵)/ 갈대로 옥나무 의지주D-005 다행으로 여겼는데(自幸??還倚玉)/ 쭉정이가 앞에 설 줄 그 어찌 알았으리주D-006(那知糖秕復居前)/ 눈에 가득 풍진 속에 하얀머리 서글프고(風塵滿眼悲繁?)/ 마음 상한 이별 속에 늘그막을 살아가네(離合傷心送暮年)/ 애달퍼라 옛 친구들 이제 모두 사라지니(??舊遊今歷落)/ 문을 닫고 어느 뉘와 깊은 시름 달래볼꼬(閉門誰與慰幽?)// 送體素赴醴泉郡三首 071_422b/ 誦子文章覺有神。向來豪語動驚人。男兒本作千年調。世事休嗟百態新。天外夢魂迷去路。峽中秋色逗征輪。遙知至喜堂成日。遮莫聲名滿海濱。/ 二/ 風塵何事久低徊。鸞鳳卑棲羽??。濁世固應輕放達。高才那復免嫌猜。琴堂晝靜桁楊臥。?戶秋登??堆。此去知君饒筆力。靑山閑傍謝公臺。/ 三/ 憶曾東掖?同聯。珥筆多時捧御筵。自幸??還倚玉。那知糠秕復居前。風塵滿眼悲繁?。離合傷心送暮年。??舊遊今歷落。閉門誰與慰幽?。//
이춘영(李春英) : 예천 군수로 부임하는 체소재(채소재는 이춘영(李春英)의 호. 자는 실지(實之),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를 전송하다[送體素赴醴泉郡] 3수/ 서명: 象村集/ 저자: 신흠(申欽)/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상촌선생집 제13권/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10수/ 예천 군수로 부임하는 체소재를 전송하다[送體素赴醴泉郡] 3수// 그대 문장 읊으면 신명이 절로 나니 / 誦子文章覺有神/ 호건한 말 언제나 사람들을 놀래었네 / 向來豪語動驚人/ 천년 계획 남아는 본디 설계하나니 / 男兒本作千年調/ 온갖 변화 세상사 한탄할 것 없다네 / 世事休嗟百態新/ 하늘 가 꿈속의 넋 앞길이 아련하고 / 天外夢魂迷至路/ 산골짝의 가을빛에 가는 수레 머무른다 / 峽中秋色逗征輪/ 알괘라 장차 지희당 이뤄지는 그날에는 / 遙知至喜堂成日/ 그야 물론 명성이 해변에 자자하리 / 遮莫聲名滿海濱// 이(二)// 풍진 속에 어인 일로 오랫동안 서성대나 / 風塵何事久低徊/ 낮은 가지 깃든 봉황 날개가 부러졌네 / 鸞鳳卑棲羽??/ 탁한 세상 사실 응당 호방하기 십상이니 / 濁世固應輕放達/ 높은 재주 어찌 다시 남의 질투 면할건가 / 高才那復免嫌猜/ 고요한 낮 금당에 잡다한 문서 끊기고 / 琴堂晝靜文書絶/ 풍년든 가을 농가에 볏단이 쌓이리라 / ?戶秋登??堆/ 이제 가면 그대는 필력이 불어나서 / 此去知君饒筆力/ 청산이라 사공대에 한가로이 노닐거네 / 靑山閑傍謝公臺// 삼(三)// 생각하면 동액에서 함께 나란히 벼슬해 / 憶曾東掖?同聯/ 붓대 잡고 오랫동안 임금 자리 받들었지 / 珥筆多時捧御筵/ 갈대로 옥나무 의지 다행으로 여겼는데 / 自幸??還倚玉/ 쭉정이가 앞에 설 줄 그 어찌 알았으리 / 那知糖秕復居前/ 눈에 가득 풍진 속에 하얀머리 서글프고 / 風塵滿眼悲繁?/ 마음 상한 이별 속에 늘그막을 살아가네 / 離合傷心送暮年/ 애달퍼라 옛 친구들 이제 모두 사라지니 / ??舊遊今歷落/ 문을 닫고 어느 뉘와 깊은 시름 달래볼꼬 / 閉門誰與慰幽?// [주C-001]채소재 : 이춘영(李春英)의 호. 자는 실지(實之),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주D-001]지희당 …… 그날 : 지희당은 송 인종(宋仁宗) 때 상서(尙書) 우부낭중(虞部郞中) 주공(周公)이란 사람이 이릉현(夷陵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세운 정자로, 오늘날의 호북성(湖北省) 의창현(宜昌縣) 남쪽 형강(荊江)의 강가에 있었다 한다. 이릉현은 서촉(西蜀)의 험난하기로 이름난 삼협(三峽)을 따라 흘러오던 강물이 비로소 잔잔해지는 곳으로서 서촉에서 뱃길로 그곳에 당도하는 뱃사공들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을 서로 축하하였다 하는데, 주공이 강가에 정자를 지어 지극히 기쁘다는 뜻인 지희(至喜)로 이름을 붙이고 뱃사람들이 쉬었다가 가는 장소로 삼았다 한다. 곧 지방 수령으로서 치적(治績)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歐陽文忠公集 卷39 峽州至喜亭記》/ [주D-002]금당 : 《呂氏春秋 察賢》의 “복자천(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때 거문고만 타고 있고 몸이 마루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다스려졌다.” 에서 나온 말로, 수령을 칭송할 때 그의 관아를 가리킨다./ [주D-003]사공대 : 진(晉) 나라 때의 시인 사안(謝安)이 젊었을 때 살던 곳으로, 강소(江蘇) 강녕현(江寧縣) 북쪽에 있는 사공돈(謝公墩)이란 산 이름을 말한 듯하다. 곧 시인 묵객이 살고 있는 산을 말한다./ [주D-004]동액 : 당 나라 때 왕명의 출납과 국가의 문서를 관장하던 문하성(門下省)의 별칭으로, 우리 나라의 승정원을 뜻한다./ [주D-005]갈대로 옥나무 의지 : 《世說新語 容止》의 “위 명제(魏明帝)가 왕후의 동생 모증(毛曾)에게 하후현(夏侯玄)과 함께 앉게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갈대가 옥나무에 기대어 있다고 말하였다.”에서 나온 것으로 못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6]쭉정이가 …… 알았으리 : 쭉정이는 상촌 자신에게 비유한 것으로, 형편없는 자기가 뛰어난 동료 이춘영보다 벼슬이 한발 더 앞서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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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