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게시판
이곳에 올려진 내용은 예천군청과는 무관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본 게시판을 이용해 게시자가 허위 과장광고나 사기성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으니 사용자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 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고을원(79-8) : 이춘영(1600-1601.10.17) : '채소재집' 3권을 저술한 고을 원
---
4. 現實에 대한 諦念과 葛藤의 克服 : 현실에서 느꼈던 울분과 갈등은 그를 끝없이 방황하게 하였고, 그 대안으로 찾은 것이 선계를 향한 탐닉임을 알 수 있었다. 현실의 체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타관을 떠돌며 겪은 온갖 풍상은 체소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하였다. 이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와 현실에 비분강개한 어조로 슬픔을 표현하였던 그의 내면세계가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한층 성숙한 단계로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성찰시를 통하여 발견되는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실에서 겪는 갈등을 선계를 향한 동경으로 해소하려 했던 그가, 말년에는 불가의 서적을 읽으며 번잡한 마음의 때를 씻으려 했다는 것이다. 예천군수를 마지막으로 관직생활을 그만두었던 1601년부터 생을 마감하던 1606년 사이에 지어진 시들에서는 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농후하게 나타난다. 본 장에서는 그러한 그의 자아에 대한 성찰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단정히 앉아서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니, 端居觀物化/ 밤낮없이 조물주가 정한대로 움직이네. 日夜入於機/ 세상을 얻고 이름 날리는 것은 허깨비 같으니, 得鹿功名幻/ 용잡는 재주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네. 屠龍學業非/ 빈 마음으로 아득히 넓은 곳을 유영하며, 虛心游汗漫/ 근심을 끊어버리고 희미한 곳으로 나아간다네. 絶慮造希微/ 권 선생께 말을 부치노니, 寄語權夫子/ 우리의 삶도 진실로 돌아갈 곳이 있으리. 吾生信有歸/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示權汝明’, <韓國文集叢刊> 66冊 350쪽. 이 시는 權?의 형님인 權?(1562~1631)에게 보내는 것이다. 체소는 권필을 비롯한 권씨 형제들과 깊은 교유를 나누었는데, 그의 문집에 이들 형제들과의 교유시가 다수 보인다. ‘示權汝明二首’, ‘贈權汝章’, ‘贈權汝章’, ‘次權汝章觀燈行’, ‘次權汝章’, ‘次權汝章’, ‘示權汝章’, ‘送權韜北歸’, ‘送權韜北歸’ 등/ 권겹은 권필의 넷째 형님으로, 형제 가운데 권필과 가장 의기가 잘 통했으며, 기절을 숭상하고 화를 겁내지 않는 것이 권필과 비슷하였다. 許捲洙, <權? 漢詩 硏究>,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문학전공 석사학위논문, 1982, 7쪽. 첫째구와 둘째 구에서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作爲함 없이 단정한 자세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작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신 및 물질의 만상은 그저 ‘있다’, ‘없다’는 靜的 존재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찰나에서 영겁에 이르도록 一瞬一刻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조물주가 정해준 일정한 법칙이 있어 외부의 어떠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변화해야 할 때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에서 겪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은 작자로 하여금 깊은 성찰에 이르도록 하였고,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은 작자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으로 이어지게 한 것 같다. 3·4구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성취를 향한 강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모든 것들이 다 허무하고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자조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세상에 대한 걱정과 인연을 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열고 본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허무한 인생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얻는 깨달음은 다음 시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또 다른 의지로 표현된다.
젊은 날엔 술을 좇아 꾸지람을 들었으나, 少年縱酒貽譏罵/ 장년이 되어선 글에 빠져 성령을 헤쳤네. 中歲耽文損性靈/ 세상만사 모두 미혹된 것뿐이니, 萬事世間皆幻耳/ 지금부턴 구름과 산에서 내 눈 길이 푸르리라. 雲山從此眼長靑/ 李春英, <體素集> 上 7言絶句 ‘有感’, <韓國文集叢刊> 66冊 358쪽. ‘少年’과 ‘中年’에 ‘縱酒’와 ‘耽文’으로 일생을 보냈던 작자의 인생행로가 보여진다. 그는 젊은 날 술을 마시며 호방한 기상을 떨치고, 시를 지으며 작자로서, 시인으로서 자부하며 살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어떠한 고통도 술과 시로 대변되는 ‘벗’이 있어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詩酒’는 체소가 평생을 함께 하고자 한 동반자이자, 추구하고자 했던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제3구에 이르면 ‘세상만사 모두 미혹된 것뿐이니’라 읊으며 자신이 평생 가치롭게 여겼던 위의 두 가지 일마저 부정하고 나선다. 평생을 두고 추구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후회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자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회의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반성을 통하여 작자가 귀의하고자 한 곳은 ‘雲山’으로 대변되는 자연이라 하겠다. ‘雲山’은 현실세계를 초월하는 영원의 공간으로, 작자의 초월의지가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시에는 이러한 작자의 초월의지가 한층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한가을 날씨가 초겨울 같으니, 中秋天氣似初冬/ 잎이 진 온갖 나무 삭풍에 흔들리네. 萬木歸根動朔風/ 밤늦도록 창가에서 슬픔을 중얼거리고, 夜久窓扉悲自語/ 옷과 이불에서 추위 일어나 꿈도 꾸기 어렵네. 寒生衣被夢難通/ 번성과 쇠함, 느림과 빠름 모두 셈안에 있는데, 升??數乘除裏/ 내 신세 돌아보니 幻影 중에 있다네. 身世回看幻影中/ 아직도 불가의 서적을 읽고 있으니, 尙有讀書淸淨業/ 일생의 근심과 기쁨 본래 헛것이라네 百年憂喜本來空/ 李春英, <體素集> 上 7言律詩 ‘天氣’, <韓國文集叢刊> 66冊 377쪽. 1·2구에서는 자연현상의 묘사를 통하여 작자의 심경이 심히 고독하고 쓸쓸함을 나타내고 있다. 초겨울처럼 추워진 가을 날씨와 잎이 진 온갖 나무가 삭풍에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도 작자가 세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근심과 걱정은 다름이 아니라 3·4·5구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궁색함, ‘升’?‘?’?‘?’?‘數’로 대변되는 온갖 인생사 때문이다. 말년에 작자가 처한 궁색한 생활상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뇌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작자는 이 모든 것이 幻影일뿐 다 쓸데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늙어만 가는 자신의 신세가 허무하고 쓸쓸하지만, 번성과 쇠함 느림과 빠름, 근심과 기쁨인 세상사가 모두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속세를 벗어나 달관의 경지를 추구하는 한층 성숙된 작자의 의식세계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시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궁색하고 쓸쓸하지만, 이전의 시에서 나타나던 깊은 哀傷感은 많이 절제되고 超克의 자세가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다음 시에서는 한층 발전하여 나타난다.
오월 숲 속에 내리는 비, 五月叢林雨/ 연이어 열흘이나 괴롭게 내리는구나. 連旬苦滯淫/ 堂의 종이 젖을까 걱정해야겠지만, 堂鍾應畏濕/ 계단의 이끼 생기는 것 막지 않네. 階蘚不禁侵/ 애오라지 궤석에 의지할 뜻 보내니, 意遣聊憑?/ 근심이 와서 가슴 가득 숨어버리네. 愁來遁滿襟/ 그대에게 청정한 불심을 물으니, 憑渠問淸淨/ 하나하나 번잡한 마음이 씻겨지네. 一一洗煩心/ 李春英, <體素集> 上 5言律詩 ‘題僧軸’, <韓國文集叢刊> 66冊 351쪽. 1·2구에서는 역시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5월 숲 속에 비가 열흘이나 계속 내린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장마가 다가온 것인가 보다. 그런데 이 비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괴롭게’ 내린다고 하였다. 이는 작자의 심경이 아직도 세상과 현실에서 받는 괴로움을 온전히 이기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句로 넘어가면 자잘한 세상일에 무덤덤해 지는 작자의 태도가 나타난다. 장마로 인하여 堂의 종이 젖는 것과 계단에 이끼가 생겨 미끄러워 지는 것들이 마음 한 켠에서는 괜히 걱정스럽지만, 그것 때문에 애써 신경 쓰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궤석에 의지하여 무심한 눈으로 비 오는 숲만 바라보자니 이러저러한 근심들이 사라지는 듯하다. 세상과 현실에서 느꼈던 갈등과 울분은 이제 많이 줄어들고, 차분한 정서를 가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고 있는 작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러한 마음의 평정은 다름 아닌 인생에 대한 반성과 내면의 성찰을 통하여 세상 찌꺼기를 걸러냄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슬프고 힘든 현실에 의한 괴로움이 아직 다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자의 마음이 엿보인다. 현실에 대한 체념과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은 그로 하여금 바깥 현실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게 하고 있다. 세상의 때와 근심으로 인한 번잡함은 마음의 수양을 통하여 걸러내고, 깨끗하게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청량하고 맑은 느낌을 준다. 이상 체소의 성찰시를 살펴보았다. 체소는 생의 말년에 현실에서 겪는 갈등을 극복하고자 내면의 성찰에 경도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고, 그동안 자신이 가치롭다고 여기며 전전긍긍하였던 모든 것이 뜬구름처럼 허무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다. 평생을 그림자처럼 함께 하며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던 시와 술조차도 부정하며, 괴로움의 근원인 온갖 세상사를 그저 담담한 눈으로 관조하고, 반성과 내면의 성찰을 통하여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체소가 이제 바깥현실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적인 성숙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자아를 새롭게 탐색하며 내적 충실을 기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金蓮洙, <金時習의 詩文學 硏究>, 충북대 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1994, 139쪽.
Ⅳ. 諸家의 評과 文學史的 位置 : 선조연간은 목릉성세로 일컬어질 정도로 문예적 역량이 극성 했던 시기였다. 삶의 진실과 정감 어린 서정을 중시하는 ‘詩必盛唐, 文必秦漢’의 복고적 문학 주장이 전면에 부상하여 이전 聲律과 격식을 중시하던 江西詩風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출중한 在才多士들에 의해 창작과 비평 양면에서 새로운 시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실험되고 또 실천되었다. 鄭珉, <목릉문단과 석주권필>, 태학사, 576쪽. 이러한 시대를 살았던 체소는 생존 당시부터 시와 문장에 있어서 크게 인정받아 여러 비평가들의 비평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석주 권필과는 인생행적이 비슷하고 똑같이 44세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시에 있어서 앞뒤를 다투었던 만큼, 줄곧 같이 언급되곤 하였다. 또한 그는 多讀으로 학문과 사상의 시야를 넓혀갔을 뿐만 아니라 시와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형상화하였던 진정한 문학인이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그의 시에 대한 제가의 비평을 살펴보고, 그의 시의 문학적 가치와 문학사적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허균은 체소의 ?文에서 ‘그의 문장은 兩漢 이하를 추종했고, 시는 杜甫·韓愈·蘇軾 세 사람을 본받아서 浩瀚하고 뛰어나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文追兩漢以下, 詩法杜韓蘇三家, 浩瀚琸?, 以自成一家言.…”(許筠, <惺所覆?稿> 卷15 ‘李實之’ 幷引‘, <韓國文集叢刊> 74冊 263쪽.)라 평하였다. 이는 체소의 시가 盛唐을 본받아서 연원이 깊고, 意境이 뛰어나며, 정감을 중시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대의 鄭珉 역시 그가 허균·임제·권필·조찬한·권극중·정두경 등과 함께 성당풍의 성취면에서 당대 문단에서 성예가 높았던 시인이라 평하고 있다. 鄭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韓國 道敎思想의 理解‘, 아세아문화사, 1990, 118쪽. 또 任璟 <玄湖?談>에서는 ‘體素齋 李春英의 시는 숲의 나무 끝에 서리 내린 달이 걸린 듯 하고, 험한 골짜기 입구에 맑은 가을 하늘의 구름이 떠가는 듯 하다’ “息菴金相公錫?, 嘗取東方詩人, 自羅麗至我朝, 各有品題. 其評曰 ?…體素齋李春英, 林梢霜月, 峽口秋雲. …?”(任璟, <玄湖?談>, <韓國歷代詩話類編>, 아세아문화사, 1988, 361쪽.) 라고 평하고 있다. 이는 체소시의 엄정하고 씩씩한 품격을 말하는 것으로, ‘霜月’과 ‘秋雲’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시가 고상하고 엄격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또 <壺谷詩話>와 <霽湖詩話>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의 시의 호방한 면을 말하고 있다. ‘…李體素 春英의 거만하고 호탕함…’ “余以臆見 妄論勝國與本朝之詩 曰 ?麗代之雋者 如朴小華寅亮之?亮 … 李體素春英之?蕩,…?”(南龍翼, <壺谷詩話>, <韓國歷代詩話類編>, 아세아문화사, 1988, 360쪽.) ‘李斯文 春英은 文翰으로 스스로 自豪하였다. 그 문장과 그 시가 넉넉하고 화려한 것을 오로지 숭상하여 滔滔하여 마르지 아니하였다.’ “李斯文春英號體素, 以文翰自豪. 其文其詩, 專尙富麗, 滔滔不竭.…”(梁慶遇, <霽湖集> 卷9 ‘霽湖詩話’, <韓國文集叢刊> 73冊, 501쪽.) 이렇듯 대부분의 비평가들에 의해 일컬어지는 체소 시의 품격은 엄격함과 豪放과 昌大한 기상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文如其人’이라 하여 그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대개 시에는 그 사람의 기상이 절로 스며들게 되어 한 구절의 시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품격을 대략 알 수 있게 된다 鄭珉, <한시미학산책>, 솔, 1996, 256쪽. 하였으니, 위의 이러한 평가는 체소의 사람됨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그러나 시는 비록 뛰어나지만 그의 이러한 호방한 기상은 때로는 도가 지나쳐 경망스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실제로 허균은 그가 영락한 것이 ‘나이 젊고 앎이 없어 망령되고 거칠고 어리석음 때문’이라 하였고, “…是雖實之年少無識狂妄鹿戾之致, 護執政者又從而歸罪於實之, 不亦寃乎.…”(許筠, <惺所覆?稿> 卷15 ‘李實之’ 幷引‘, <韓國文集叢刊> 74冊, 263쪽.) 신흠은 그의 성격이 ‘침착하지 못하고 솔직했으며, 예법 따위에 절제를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였다’ 각주 16)번 참고. 고 하였다. 또 <壺谷詩話>에서는 그가 ‘책을 많이 읽고 넓게 펴기는 하지만, 완전히 精製되고 鍛鍊되지는 않았다’ “李體素多讀博發, 而未盡精鍊,…”(南龍翼, <壺谷詩話>, <韓國歷代詩話類編>,아세아문화사, 1988, 297쪽.) 고 평하였고, 이수광은 ‘체소가 詩文에 힘을 기울였으나 그 숭상하는 바가 높지 못하여 전할 만한 것이 적다’ “李僉正春英力於詩文, 而所尙不高, 可傳者少.…”(李?光, <芝峰類說>, <韓國歷代詩話類編>, 아세아문화사, 1988, ) 고 평하고 있다. 이러한 제가의 평들은 그의 문장과 시에 대한 가치를 격하시키고, 순수하게 시만을 가지고 평가하는데 방해 작용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는 이른바 학문적인 성세를 맞이하여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空前絶後로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연유로 다른 시대에서는 중요 문인으로 언급될 만한 문학사상의 위대한 작가이면서도 많은 문인들이 문학사의 정면에서 간과되어 묻혀져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朴東烈, <玄洲 趙纘韓의 文學硏究-近體詩를 中心으로>,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학위논문, 1993, 72쪽. 체소 역시 이러한 문인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다채로운 지적 편력을 거쳐 당대에 성행했던 도교와 선가 사상에도 밝았고, 불교에도 깊은 조예를 지녔다. 위로는 제자백가에서 아래로 명나라 당대 대가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과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었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활달한 자유주의자였다. 그의 시에는 제가의 비평가들이 언급했던 이러한 자유스럽고 호방한 기상이 넘쳐날 뿐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살았던 만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겪는 부조리와 모순을 지식인다운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고, 시대의 아픔을 몸소 느껴 공감하면서 이를 문학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그의 방외인적 성향은 김시습이나 권필·허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체제 밖의 삶을 살며, 이단적인 도·불가류로 이탈하거나 방랑과 모색의 단계를 거쳐 저항과 비판의식을 키워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과 비판의식은 권력의 밖으로 밀려나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이들은 중세적인 도덕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이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새로운 문학세계를 추구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로 볼 때 體素齋 李春英은 조선 전기와 후기를 잇는 역사적 시대상황에서, 석주 권필·동악 이안눌·상촌 신흠·교산 허균 등 당대의 걸출한 문인들과 깊이 교유하며 그의 문학에도 뚜렷한 작가의식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같이 언급된 기타의 다른 문인들이 현재 한국 한문학사상에서 나름대로 뚜렷한 위치를 점하고 있듯이 그도 이러한 문인들과 동급의 문학사적 위치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당대 문단의 비중있는 비평가들의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역시 穆陵文壇의 주목받았던 시인이자 문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시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던 석주와 비등하게 여겨질 만큼 높은 재주를 가진 시인이었다. 800수가 넘는 시에는 그의 사상과 작가 의식 고스란히 묻어날 뿐 아니라, 특히 유선시에 있어서는 당대에 어느 시인들보다 우위에 점해진다 할 수 있다.
Ⅴ. 結論 : 이상으로 體素齋 李春英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는 왕실의 한 일가로 태어나 어릴 적에 부모님을 잃고, 외가에게 맡겨져 자란다. 외조부 휴암 백인걸은 당시 사림계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당대의 사림계 인물들과 널리 교유하였는데, 특히 율곡이나 우계와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학문을 익히고 토론하였다. 우계 성혼은 휴암의 문인이었는데, 이러한 학맥에 의하여 체소도 우계에게 나아가 배우게 되었다. 우계와 송강에 학문적인 바탕을 두고 서인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던 체소는 비교적 순탄한 출발해 비해 험난한 정치생활을 하였다. 송강 정철과 함께 건저문제에 연루되고, 반대파인 동인에 의해 끝없는 탄핵과 비방을 받으며 두 번의 귀양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시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당대의 걸출한 문인들과 교유하며 시적 재능에 있어서도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다. 특히 상촌 신흠, 석주 권필과 동악 이안눌, 그리고 교산 허균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들이 당대에서 문장으로 이름이 높고,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던 깨어있는 지식인들임을 볼 때 체소의 사귐과 문학적 경향이 어떠하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불우한 일생은 800여수가 넘는 그의 시세계에 그대로 묻어나서, 전체적인 그의 작품은 비분강개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호방한 기상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는 현실과 사회에서 겪는 불행을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바라보면서도 오히려 安分과 守分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첫 번째 귀양지인 삼수로 가는 도중에 지은 시나 정평에서 지은 시들을 살펴보면, 유배를 당한 참담한 심정보다는 현실에서 포부를 펴지 못하는데 대한 아쉬움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노래하고, 그렇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서 양당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 계속되는 생의 불행은 그의 문학에 방외인적 성향으로 나타나는데, 기타 방외인 문인보다 저항과 비판의식은 조금 결여되어 있으므로 적극적인 방외인 문인이라 지칭하기는 어렵고, 방외인적 성향을 띠었다고는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겪는 갈등과 아픔은 특히 그의 시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유선시의 창작을 통하여 해소하자 하였는데, 그는 신선설화와 도가사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讀神仙傳’ 53수를 비롯한 여러 편의 遊仙詩를 남기고 있다. 특히 ‘독신선전’ 53수는 비슷한 시기에 유선시를 남기고 있는 기타 문인들 보다 분량 면에서도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신선고사를 끌어와 시를 창작하고 있다. 그가 유선시를 지은 이유는 현실과의 갈등을 무한하고 아름다운 선계를 향한 강한 동경으로 해소하자 함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 편의 시에서 현실과 사회에 관심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결국 救世와 壯志를 펼치고자 하는 현실인식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렇듯 높은 재주와 큰 뜻을 가지고도 쓰이지 못하는 현실에 체념하고, 관심을 외부에서 안으로 돌려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를 창작하게 된다. 그는 반성과 성찰의 결과 아웅다웅 살아가는 온갖 세상사는 뜬구름처럼 헛된 것이라는 결론이 이르게 되고, 그가 평생 가치롭게 여기고 추구하였던 詩와 술조차도 부정하는 자세를 보이게 된다. 결국 그는 성찰을 통하여 번잡한 마음의 때를 씻고, 외부의 변화보다 내부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층 성숙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體素齋 李春英은 조선 전기와 후기를 잇는 역사적 시대상황에서, 석주 권필·동악 이안눌·상촌 신흠·교산 허균등 당대의 걸출한 문인들과 깊이 교유하며 그의 문학에도 뚜렷한 작가의식을 나타내었던 시인이자 문학가이다. 그는 평생 시 짓는 일을 자부하며,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다. 역대의 비평가들의 평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그는 시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고, 시의 품격 또한 엄격하고 고상하고, 정감이 넘쳤다. 시적 재능에 있어서는 당대의 최고라 일컬어지던 석주 권필과 앞뒤를 다투었을 만큼 천부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당대에 깊은 교유를 나누었던 이러한 많은 문인들이 현재 한국 한문학사상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반해 그는 아직도 목릉문단의 희미한 인물쯤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시 穆陵文壇의 주목받았던 시인이자 문인이었으며, 당대의 아픔을 시와 문학으로 형상화 하고자 한 진정한 시인이었으므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문헌을 바탕으로 한 내용 중심의 고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많은 시세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한 점이 있다. 이는 본고가 체소에 대한 최초의 논문으로 그를 소개하고 그의 문학과 시세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시세계의 구체적인 면을 보다 더 면밀히 고찰해 보고, 미학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 그의 시의 문학성을 밝혀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이러한 연구는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혀내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參考文獻》1. 原本資料 : 朴 淳, <思菴集> 韓國文集叢刊 38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成 渾, <牛溪集> 韓國文集叢刊 43冊. 民族文化推進會刊./ 鄭 澈, <松江集> 韓國文集叢刊 46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李?光, <芝峰集> 韓國文集叢刊 66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李春英, <體素集> 韓國文集叢刊 66冊. 民族文化推進會刊./ 申 欽, <象村集> 韓國文集叢刊 71·72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梁慶遇, ,<霽湖集> 韓國文集叢刊 73冊. 民族文化推進會刊./ 許 筠, <惺所覆?稿> 韓國文集叢刊 74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權 ?, <石洲集> 韓國文集叢刊 75冊. 民族文化推進會刊./ 金尙憲, <淸陰集> 韓國文集叢刊 77冊. 民族文化推進會刊./ 李安訥, <東岳集> 韓國文集叢刊 78冊. 民族文化推進會刊./ 金 堉, <潛谷遺稿> 韓國文集叢刊 86冊. 民族文化推進會刊./ 鄭弘溟, <畸菴集> 韓國文集叢刊 87冊. 民族文化推進會刊/ 司馬遷, <史記>, 漢文大系 6冊, 富山房./ 成守琛·成渾, < 松牛溪集> 아세아문화사, 1979./ 陸 昕 <郭力弓> 任德山 主編, <白話 太平廣記>, 北京燕山出版社, 1993./ 鄭 珉·李鍾殷 共編, <韓國歷代詩話類編>, 아세아문화사, 1988./ 2. 單行本 : 干寶 撰·林東錫 譯註, <搜神記> 上·下, 동문선, 1997./ 葛洪 著·李民樹 譯註, <神仙傳>, 명문당, 1994./ 杜黎均, <二十四品譯註評釋>, 北京出版社, 1988./ 閔丙秀, <韓國漢詩史>, 태학사, 1996./ 박영주, <정철 평전>, 중앙 M&B, 1999./ 박영호, <許筠 文學과 道敎思想>, 태학사, 1999./ 司空圖 著·郭紹虞 集解, <詩品集解>, 人民文學出版社, 1998./ 孫燦植, <朝鮮朝 道家의 詩文學 硏究>, 국학자료원, 1995./ 沈慶昊, <韓國 漢詩의 理解>, 태학사, 1999./ 劉向 著·김장환 옮김, <열선전>, 예문서원, 1996./ 尹浩鎭, <漢詩의 意味 構造>, 법인문화사, 1996./ 李家源, <朝鮮文學史>, 태학사, 1997/. 이종묵,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莊周 著·金學主 옮김, <莊子> 상·하, 을유문화사, 2000./ 鄭 珉, <목릉문단과 석주권필>, 태학사, 1999./ ───, <한시 미학 산책>, 솔, 1996./ 鄭在書, <동양적인 것의 슬픔>, 살림, 1996./ ───, <不死의 神話와 思想>, 민음사, 1994./ 車溶柱, <許筠 硏究>, 경인문화사, 1998./ 車柱環, <韓國道敎思想史硏究>,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3./ 許捲洙, <朝鮮後期 南人과 西人의 學問的 對立>, 법인문화사, 1993./ 洪順隆, <六朝詩論>, 文津出版社, 1978./
3. 論文 : 姜信碩, <郭璞의 <遊仙詩>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1989./ 郭正植, <許筠의 文學思想>, <경성대학교 논문집> 제19집 2권, 1998./ 金蓮洙, <金時習의 詩文學 硏究>,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1994./ 김은희, <石洲 權? 文學의 一性格 - 방외인적 경향을 중심으로>, 덕성여대 논문집 제29집, 1998./ 金周坤, <松江 歌詞에 나타난 道·佛思想 硏究>, <대구어문논총> 제8집, 1990./ 朴均燮, <牛溪 成渾의 敎育思想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敎育史?敎育哲學전공 박사학위 논문, 1998./ 朴東烈, <玄洲 趙纘韓의 文學 硏究 - 近體詩를 中心으로>,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학위 논문, 1993./ 朴元在, <道家의 理想的 人間象에 대한 硏究 - ‘自我’의 ‘完成’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학위 논문, 1996./ 裵晟熹, <思庵 朴淳의 詩文學>,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학위논문, 1992./ 吳錫源, <休庵의 敎育思想>, <休庵 白仁傑의 生涯와 思想>, 휴암사상연구논총, 1997./ 尹柱弼, <朝鮮前期 方外人 文學에 관한 當代人의 認識 硏究>,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논문, 1990./ 李鍾殷, <道家의 漢詩硏究 - <靑鶴集>을 中心으로>, <한국학논집> 제11집, 1987./ <韓國 漢詩上의 神僊思想>, <한양대학교 논문집> 제13집, 1979./ 鄭 珉, <16,7세기 遊仙詩의 자료개관과 출현동인>, <韓國道敎思想의 理解>,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 Ⅳ, 韓國道敎思想硏究會, 아세아문화사, 1990./ 蔡連植, <鄭澈의 漢詩 硏究 - 戀君詩를 中心으로>,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석사학위 논문, 1991./ 許捲洙, <權? 漢詩 硏究>, 한국정시문화연구원 한문학전공 석사학위 논문, 1982.(daum 2010)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