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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81-2:이형욱(1603-1603.7.13)
작성자장병창 @ 2012.12.22 06:33:48

   예천고을원(81-2) : 이형욱(1603-1603.7.13) : 좌의정 정탁 대접 소홀로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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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이 이르기를, ꡒ정승의 생각은 어떠한가?ꡓ하니, 정탁이 아뢰기를, ꡒ경솔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판서의 생각은 어떠한가?ꡓ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이미 왜적을 접했다 하더라도 어찌 꼭 그 때문에 도원수를 삼을 수 없겠습니까.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재기(才氣)는 있는 사람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이덕형을 도원수를 삼으면 적이 반드시 물러가겠는가?ꡓ하니, 정구가 아뢰기를, ꡒ비록 이덕형을 보낸다 하더라도 어찌 왜적으로 하여금 꼭 물러가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스스로 처치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어찌 권율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ꡓ하고, 김우옹은 아뢰기를, ꡒ이덕형이 반드시 권율보다 나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일이 어찌 그와 같겠는가. 방관자와 당국자는 다른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모두 ꡐ모인이 가면 가하다.ꡑ 하는데 그 사람이 가도 전의 사람과 다른 바가 없다. 속담에, 쥐를 고양이로 바꾸었다는 것도 역시 이런 유이다.ꡓ하고, 이어 유영경에게 이르기를, ꡒ특진관도 비변사 당상이니, 소회를 말해 보라.ꡓ하니,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신은 권율의 한 일을 모릅니다. 요즘 원수의 장계를 보니, 모두가 군량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고 그가 거느린 군관을 각관에 나누어 보내어 먹이게 하였는데 각관에서도 능히 먹이지 못한다 합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판서는 사마(司馬)의 장(長)으로서 왜 말을 하지 않는가?ꡓ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이덕형의 일은 이미 진계하였습니다. 권율은 소신의 처부(妻父)입니다. 비록 감히 이것을 혐의로 삼는 것은 아니나 자연 조정의 논의가 있으니, 신이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ꡓ하자, 정구가 아뢰기를, ꡒ부필(富弼)도 안수(晏殊)의 허물을 말하였는데2834) , 어찌 피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이조 판서로 도원수를 삼는 것이 가당한지의 여부를 말하라.ꡓ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권율은 재주가 없고 이덕형은 재주가 있으니, 시행 조처하는 일에 반드시 나은 점이 있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이조 판서가 대신하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ꡓ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장수는 반드시 형세에 따라서 시기를 탄 연후에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이때에 운세를 전환시킨다는 것은 본디 기필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적으로 하여금 감화하여 이마를 조아려 절하게 만들고 탕패한 고을이 안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반드시 기대할 수 없겠으나 앞의 사람과 논할 때 조금 나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판서의 생각에는 교체해야 된다고 여기는가?ꡓ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인심이 그러하니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ꡓ하였다. 김우옹이 아뢰기를, ꡒ한신(韓信)과 백기(白起) 같은 장수는 얻을 수 없으나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나으면 대신하는 것이 좋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사람의 소견이 각각 다르니 긴밀히 비변사에 의논하라.ꡓ하였다.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관서 지방도 중요하지만 남쪽 지방이 더욱 긴급하니 이원익(李元翼)을 남쪽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내가 영상에게 ꡐ이원익을 원수로 삼고 이덕형을 평안 감사로 삼으면 어떻겠는가?ꡑ 하고 물었더니, 영상이 불가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그만두었던 것이다.ꡓ하였다.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이원익이 낫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이원익으로 원수를 삼는다 하더라도 적을 물리치는 일은 내가 기필하지 못하겠다.ꡓ하였다. 이항복이 아뢰기를, ꡒ그 일은 이원익이라 하더라도 능히 하지 못합니다.ꡓ하고, 유영경은 아뢰기를, ꡒ이원익이 본디 이덕형보다 낫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평안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ꡓ하니,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남쪽 지방에 우려가 없는 연후에 서쪽 지방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평안도도 근본 구실을 하는 지방이니 이원익을 체직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내가 한 말과 여러 재상들이 답한 말을 상세히 다 적어서 비변사와 상의해 처리하라.ꡓ하였다.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둔전(屯田)․연병(鍊兵) 등에 관한 일을 권율은 잘 하지 못하나 이덕형은 반드시 잘 해 낼 것입니다.ꡓ하고, 정구는 아뢰기를, ꡒ권율은 김응서로 하여금 적과 서로 만나게 내버려 두고 중지시키지 않았으니 이 같은 일은 극히 잘못된 것입니다.ꡓ하고, 유영경은 아뢰기를, ꡒ장수는 밖에 있는데 조정이 이처럼 의논하니 그가 들으면 필시 미안해 할 것 같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중원의 인사 처리를 가지고 말하면, 송응창(宋應昌)이 체직되자 고양겸(顧讓謙)이 왔고 고양겸이 체직되자 손광(孫鑛)이 왔는데 손광이 온 뒤에 벌써 이 적을 쓸어 버렸는가. 대개 장수란 자주 교체할 수 없는 것이다. 경연관이 말한 조괄 같은 경우는 부득이 체직시켜야 할 것이다.ꡓ하자, 정구가 아뢰기를, ꡒ중원에서는 송응창을 갈아내고 교대자에 있어서 그 적임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ꡓ하였다./ 【영인본】 22 책 445 면/ 【분류】 *외교-왜(倭) / *군사-부방(赴防)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인사-임면(任免) / *풍속-예속(禮俗)/ [註 2832]장무(掌務) : 사무를 주관하는 서리(書吏). ☞ / [註 2833]육지(陸贄)의 주의(奏議)를 보면 지금 사람으로서는 능히 상달할 수 없는 말이 있으니 : 육지(陸贄)는 당 덕종(唐德宗) 때 한림 학사(翰林學士)로서 수많은 조서(詔書)를 지었는데, 그 사정을 곡진하게 다루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케 하였다. 《육선공한원집(陸宣公翰苑集)》 중 주의(奏議)가 가장 명저로 알려졌다. ☞ / [註 2834]부필(富弼)도 안수(晏殊)의 허물을 말하였는데 : 안수는 송 인종(宋仁宗) 때 재상으로 있으면서 사위인 부필을 등용하였는데, 부필은 강직한 성품으로 장인 안수의 비행을 말하였다. 《송사(宋史)》 권311․313, 《삼조명신언행록(三朝名臣言行錄)》. ☞(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64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6월 15일 병진 1번째 기사/ 별전에 나아가 강관을 인견하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강관(講官)을 인견하였다. 영사 김응남(金應南), 지사 최황(崔滉), 특진관 이헌국(李憲國)․이충원(李忠元), 참찬관 이덕열(李德悅), 집의 신식(申湜), 시강관 김시헌(金時獻), 정언 이형욱(李馨郁), 검토관 정경세(鄭經世)가 입시하였다. 김시헌이 《주역(周易)》을 진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상이 이르기를, ꡒ적의 꾀는 간교하다. 소서행장이 들어간 지 이미 오래이고 소식이 연락 부절인데 풍신수길이 과연 철병하게 했다면 어찌 지금까지 소식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중국 사신은 적이 반드시 돌아간다고 하지만 중국 사람의 말도 믿을 수 없다. 만일 적이 조선을 구실로 삼는다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근래 소식이 없으니 반드시 지연하려는 계책이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동병하여 남방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문호를 지키지 못하고서 안을 편안히 하고자 하는 것이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임금은 자강(自强)을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의 말에 동요하여 변개(變改)하는 바가 있다면 유시 무종(有始無終)을 면치 못할 것이니, 누가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성종 대왕은 영기(英氣)가 탁월하여 일을 다 쾌히 결단하였으니, 비록 이적을 만났더라도 반드시 선처함이 있어 지금까지 질질 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상께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더라도 우유 부단하게 하신다면 끝내는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세월은 빨리 흘러가는데 매양 기회를 잃으니 어찌 우려할 바가 아니겠습니까.ꡓ하고, 경세가 아뢰기를, ꡒ신도 강건(强健)의 덕을 매양 아뢰었습니다. 상께서 호령을 발하심에 있어서 극진히 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일이 끝내는 유야무야한 데로 돌아가니 헌국이 아뢴 말이 가장 옳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그렇다면 나더러 우유 부단하다고 하는 것인가. 좋은 명령이 나에게서 나온다 하더라도 끝내 그것을 맡아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신은 본디 어리석고 미련하여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아룁니다. 상께서 좋은 명을 내려도 아래에서 봉행하는 자가 없어 방치해 둔다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ꡓ하고, 응남이 아뢰기를, ꡒ헌국이 노신으로서 지성껏 진달하였으니, 상께서도 지성으로 흉금을 터놓음으로써 군신 사이에 정의가 서로 통하게 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신이 거의 30년이나 경연에 출입하였으니 어찌 상세히 알지 못하겠습니까. 모든 일을 하나하나 힘쓰도록 책하고 행하지 않으면 책하여 벌을 주더라도 안 될 것이 없는데, 매양 ꡐ어찌할 수 없다. 아래서 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다.ꡑ고만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좌상의 말은 그렇지 않다. 판서의【이헌국.】 말은 호령을 내긴 하나 끝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내 뜻이 아니다. 만약 시의(時議)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임금이 십분 스스로 옳다고 하더라도 어찌 억지로 우기겠는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옳다 그르다 하는 사이에 모름지기 스스로 독단하셔야 합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그르다 하는데 독단하면 안 되는 것이고 옳다 하더라도 독단한다면 해가 없지 않을 것이다.ꡓ하니, 경세가 아뢰기를, ꡒ소인이 군자를 모함할 때 간혹 독단하시라고 주장하여 임금을 미혹시키기도 하니, 이 점은 삼가지 않아선 안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결단성을 가져 모름지기 성심(聖心)을 굳게 정하고 남의 말에 동요하지 않아야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헌국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ꡓ하였다. 헌국이 아뢰기를, ꡒ비변사가 비록 날마다 모여 회의하나 말만 하지 실시한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지고 나라의 기강이 해이되어 거의 다 망한 시대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상께서 자강하시면 큰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감히 아뢴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내가 좌상에게 노상 말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주역(周易)》을 읽는 것은 시사(視事)를 하고자 해서가 아니고,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이니 다만 역의 이치를 깨닫고 싶을 뿐이다. 적이 만약 바다를 건너간다면 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한다.ꡓ하였다. 신식과 이형욱이 아뢰기를, ꡒ이것은 소극적인 말씀입니다. 이렇게 어렵고 근심스런 때에 어찌 이러한 말씀으로 하교하십니까.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ꡓ하고, 응남이 아뢰기를, ꡒ중종조(中宗朝)에 정광필(鄭光弼)이 노병으로 집에 있으면서 기거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때 중종이 마침 인종에게 전위(傳位)하려고 했습니다. 홍언필(洪彦弼)이 그때 정승이었는데 광필에게 서신을 보내 ꡐ이런 큰 일을 만나 어찌할 줄 모르겠다.ꡑ 하니, 광필이 그 말을 듣고 즉시 일어나 궐하에 달려 나아가 아뢰어서 소청을 이루었습니다. 태평한 시절에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지금 위급한 시절에 감히 이러한 하교를 하십니까.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역(易)》에 시의(時義)가 있으니, 때에 따라 처하여 변통하는 도를 터득함을 말하는 것이다.ꡓ하였다. 헌국이 아뢰기를, ꡒ이런 소극적인 하교를 발하시니, 장차 종묘 사직은 어디에 놔두고 자신만 편하려고 하십니까. 이러고도 신하들에게 직분을 다하라고 책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바로 상하가 힘쓸 때인데 매양 이러한 하교를 하시니 매우 민망하고 염려됩니다.ꡓ하고, 경세가 아뢰기를, ꡒ상께서 늘 이러한 뜻을 잊지 않으시고 전교하시는 사이마다 늘 그런 뜻을 함축하고 계십니다. 곧 권율의 일로 하교하실 때에 ꡐ상하가 어찌 다르겠는가. 구차히 억지로 처해서는 그 임무를 잘 살필 수 없을 것이다.ꡑ는 말씀이 있었는데, 신의 생각에는 그런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옳다. 내가 과연 뜻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 권율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나의 이 마음은 일거수 일투족의 사이에도 잊은 적이 없다. 벗어날 수 있다면 그만이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나의 기력은 올해와 지난해가 다르다. 정원에서 출입하는 호번한 일과 팔도의 다사 다난한 응접의 일을 나의 병든 몸으로는 담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것은 나의 진정에서 나온 말이다.ꡓ하였다. 경세가 아뢰기를, ꡒ신이 사서(司書)였을 때 서연(書筵)에 입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동궁이 ꡐ주상의 인명(仁明)함과 신무(神武)함으로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나의 미약한 자질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ꡑ 하였는데, 그 민망해 하고 절박하게 여기는 심정이 언표(言表)에 넘쳤습니다. 동궁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더라도 춘추가 강성치 못하고 학문이 지극한 경지에 나아가지 못했으니, 마땅히 춘궁(春宮)에서 두터이 덕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뒷날 일을 조처함에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께서 그 정상을 만분의 일이라도 알고 계시면서 이렇게 하신다면 더욱 온당치 않습니다. 한 무제(漢武帝)도 안정된 시대를 자손에게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상께서도 회복(恢復)을 이루어 자손에게 물려줄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나의 민망하고 절박함은 더욱 그지없다. 동궁의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을 염려할 만하나 나의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도 염려하지 않아선 안 된다. 나는 원래 심장병이 있는데 지금은 병뿌리가 이미 굳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아프며 귀가 멍하다. 나이도 노쇠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자에게 만기(萬機)를 책한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나의 소회(所懷)를 이루고 싶어 밤낮으로 바란다.ꡓ하였다. 김시헌이 나아가 아뢰기를, ꡒ지금 전교를 받들고 보니 좌우의 신료들로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대개 신료에게 환심이 있은 뒤에야 온갖 일을 거행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 환심이 없다면 어느 일인들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역》을 읽는 데는 모름지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아야 하니 마음이 화평하다면 역의 이치를 구명할 수 있습니다. 신이 젊어서부터 질병이 많았고 심장병이 더욱 심했는데 일찍이 스스로 시험해 보니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었습니다. 신이 얕은 소견으로 대략 진술하겠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역(易)으로 추산하면 바로 건(蹇)에 해당합니다. 그 상(象)은 안이 어렵고 밖은 험한 것인데 오효(五爻)에는 크게 건(蹇)2921) 하나 벗이 온다고 하였고, 이효(二爻)에는 왕신(王臣)의 건건(蹇蹇)함이 자신의 연고 때문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군신이 서로 권면하여 난세를 담당하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건에서 함(咸)이 되고 중부(中孚)가 되면 성공할 수 있고, 건에서 해(解)가 되고 환(渙)이 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기왕에 이 건을 만났으니 군신이 스스로 격려하여 성공을 이루어야지 어찌 퇴영하여 끝내 실패해서야 되겠습니까. 상께서 모름지기 이것을 명심하여 안심하고 수양하신다면 서무(庶務)의 재결은 여사(餘事)일 뿐입니다. 근자에 매양 이러한 하교가 있으니 좌우 전후가 다 당황하여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가집니다. 어찌 조금 환심이 없을 뿐이겠습니까.ꡓ하고, 인하여 절하고 아뢰는 사이에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상이 위로하고 이르기를, ꡒ《주역》을 정밀하고 숙달되게 읽지 않았다면 어찌 논리가 이같을 수 있겠는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시헌은 바로 김제갑(金悌甲)의 아들입니다. 지난 선왕조 때에 문신을 뽑아 《주역》을 학습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갑도 신급제(新及第)로서 그 가운데 들었었으나 임진 왜란 초기에 원주 목사로서 순절하였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제갑의 죽음은 나도 안다.ꡓ하니, 시헌이 아뢰기를, ꡒ신의 부모가 신에게 서찰을 보내 죽음을 결심했음을 말하였는데 과연 적의 손에 죽었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이 자가 윤정승(尹政丞)의 외손인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그렇습니다. 윤개(尹漑)는 지성으로 사대(事大)한 사람인데 바로 김안국(金安國)의 제자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김안국은 김정국(金正國)의 동생인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정국의 형입니다. 그 형제는 모재(慕齋)2922) ․사재(思齋)2923) 라고 호(號)를 삼았는데 대개 그 어버이를 사모하기 때문이었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옛날 경연에서 홍정승을【섬(暹).】 통해 들으니, 중종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당시의 사람들이 김안국이 있었다면 반드시 곡을 잘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하는데, 대개 안국의 충성스러움을 가리킨 것이다.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갑오년에 중종이 여주(驪州)에 행행할 때 김안국은 파직되어 향리에 있었습니다. 길가에 나가 배알하고자 하였지만 물의가 있을까 싶어 드디어는 의관을 갖추고 밭사이에 몰래 엎드려 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으니 대개 그의 충성스러움이 이와 같았습니다. 또 안국은 오랫동안 예조 판서로 있으면서 외국인을 잘 대우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담으로 여깁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김안국이 죽은 뒤 일본 사람이 와서 제사지냈다고 하는데 그러한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외국인이 감격하였기 때문에 죽은 뒤에 와서 제사지냈다고 합니다. 옛날 정몽주가 일본에 사신갔을 때 왜신이 모두 가마에 태우고 다녔다고 하니, 충신(忠信)하고 독경(篤敬)스러우면 오랑캐 땅에서도 행할 수 있다는 말이 어찌 미덥지 않겠습니까. 또 선왕조에서는 현인의 후손을 녹용(錄用)했는데 근일은 혼란한 와중이라 겨를이 없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선왕조에서 방문하며 벼슬을 주어 권장하던 규정대로 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난리 뒤로 기율은 밝히지 않고 한갓 형장(刑杖)만을 엄혹하게 숭상하니, 삼가지 않아선 안 됩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옛날 역적의 옥사와 종묘의 옥사에 형벌이 과중하고 주륙이 너무 혹독했습니다. 윤씨(尹氏)의 옥사에 이르러서는 무고한 사람들도 많이 장살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역변으로 말한다면, 비망기로 추국청(推鞫廳)에 전교하신 것이 모두 옥석 구분(玉石俱焚)을 염려하신 것이었는데 그때의 대신들이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판단했기 때문에 범람한 결과를 빚어냄으로써 지금까지 죄적(罪籍)에 적혀 금고(禁錮)된 자가 부지기수이니 어찌 통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근자에 금옥(禁獄)에 갇힌 자들도 어찌 다 죄가 있는 자이겠습니까. 간혹 풍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자가 여러 번 형신(刑訊)을 받기도 했으니 보고 듣기에 참혹스럽습니다.ꡓ하였다.【이때 수령(守令)으로서 장죄(贓罪)로 의금부에 갇히어 형신을 무려 60, 70차례나 받은 자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상이 이르기를, ꡒ위에서 어떻게 알겠는가.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기율이 땅에 떨어진 것은 모두 대신이 법을 잘 쓰지 못하고 말을 다하지 못한 데서 연유된 것입니다.ꡓ 하고, 김응남이 아뢰기를, ꡒ지난번 호남의 유생들이 정개청(鄭介淸)을 위해 신원(伸?)하는 상소를 하였을 때 헌국이 비변사에 있었는데, 이 상소를 보고는 ꡐ다 추국청이 그르친 데에서 연유한다.ꡑ고 하고, 그때 추국에 참여하였기에 스스로 대죄(待罪)하려 했다고 합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개청은 그렇지 않다. 그자는 역적(逆賊)2924) 을 도(道)가 고명하다고 여겨 형으로 추존하기까지 했으니, 설령 그 역모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역적을 추앙한 것은 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때 언관의 논계로 추국한 것이다.ꡓ하니, 헌국이 아뢰기를, ꡒ그 때에 역적의 학도들을 일체 죄준 것은 아래에서 한 것이고 실제로 상께서 아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사이에는 각사(各司)가 다 긴요치 않은 일을 가지고 다투어 혹형을 숭상하고, 심지어 여러 도감들까지도 모두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오직 전쟁에 임해 도망간 장수에 대해서는 즉시 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써야 할 데는 쓰지 않고 형을 써서는 안될 데에는 형을 쓰니 또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아래에 있는 자의 처사 때문에 원망이 모두 상에게 돌아가게 되었으니 ꡐ우리를 어루만지면 임금이요,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이다.ꡑ라는 말이 오늘날 증험되고 있습니다. 변란 때 선비는 성을 지키기도 했으나 무인은 다 소문만 듣고도 성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지금 도리어 공이 없는 사람에겐 벼슬을 주면서 성을 지킨 사람은 쓰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해신(該臣)이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ꡓ하였다. 사시(巳時)에 파하여 나갔다./ 【영인본】 22 책 512 면/ 【분류】 *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인사-선발(選拔)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註 2921]건(蹇) : 험난한 것. ☞ / [註 2922]모재(慕齋) : 김안국의 호. ☞ / [註 2923]사재(思齋) : 김정국의 호. ☞ / [註 2924]역적(逆賊) : 정여립을 말함. ☞(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70권/ 선조 28년( 1595 을미 / 명 만력(萬曆) 23년) 12월 11일 기유 5번째 기사/ 윤유기․이형욱․우준민․정기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유기(尹惟幾)를 사헌부 장령으로, 이형욱(李馨郁)을 사헌부 지평으로, 우준민(禹俊民)을 성균관 사성으로, 정기원(鄭期遠)을 사간원 헌납으로, 윤돈(尹暾)을 홍문관 부교리로, 강연(姜?)을 겸 시강원 문학(兼侍講院文學)으로, 이심(李?)을 시강원 문학으로, 남이신(南以信)․송준(宋駿)을 예조 정랑으로, 김택룡(金澤龍)을 성균관 직강으로, 권경우(權慶祐)를 사간원 정언으로, 오백령(吳百齡)을 병조 좌랑으로 삼았다./ 【영인본】 22 책 61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71권/ 선조 29년( 1596 병신 / 명 만력(萬曆) 24년) 1월 17일 갑신 2번째 기사/ 조강 후, 제주 방어 조치와 주문의 내용, 충청 목사의 적임자 등을 논의하다/ 묘시(卯時)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 이괘(履卦)의 ꡐ육삼은 애꾸눈이 능히 보는 것[六三?能視]ꡑ이라는 대문에서부터 ꡐ순함으로 자처한 자다.[以順白處者也]ꡑ라는 구절까지 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묘(?)자가 맹(盲)을 이르는 것인가? 맹과 묘는 다른 것 같다.ꡓ하니, 동지사(同知事) 이정형(李廷馨)이 아뢰기를, ꡒ양 원제(梁元帝)의 한쪽 눈이 애꾸였기 때문에 그 당시 척(隻)자 등의 말로 범휘(犯諱)3163) 를 삼아 쓰지 않았습니다. 비록 맹(盲)자와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물건을 볼 수 없는 것은 일반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여기에 ꡐ호랑이의 꼬리를 밟았다.[履虎尾]ꡑ라고 이른 것은 위태함을 말한 것인가?ꡓ하니, 영사(領事)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ꡒ처음은 비록 몹시 위태한 것 같으나 끝내 피해를 보는 데는 이르지 않는 것이라 마치 한 고조(漢高祖)의 홍문연(鴻門宴)3164) 같은 것이 곧 그것입니다.ꡓ하고, 시독관(侍讀官) 정경세(鄭經世)는 아뢰기를, ꡒ만약 이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상(象)을 만났을 경우 공구수성(恐懼修省)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능히 화(禍)를 바꾸어 복(福)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물며 오늘날의 형세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것보다 더한 데이겠습니까.“ 하고, 성룡은 아뢰기를, ꡒ한갓 일신만 수성(修省)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일을 시행할 때 공구(恐懼)의 마음을 다하여 군신상하가 함께 협력하며 감히 조금도 게을리 아니하여 백폐(百廢)를 소생케 하는 것이 모두 수성(修省)의 도리인 것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ꡐ지금 국가가 한가하니 이 때에 그 정형(政刑)을 밝혀야 한다.ꡑ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위급한 때이겠습니까. 지금 중외의 인심이 모두 해이해져서 죽음 속에서 삶을 구하여 보수(保守)할 계책을 생각하지 않으니, 적이 만약 재침하게 되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 형편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영상의 말이 지당하다. 지난날 대간(臺諫)의 계사(啓辭)를 보니 적의 무리가 거의 물러가 변경의 경계가 조금 완화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왜적이 다 철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ꡓ하자, 정형이 아뢰기를, ꡒ대간이 논계할 때에 초계(初啓)한 후에는 성상소(城上所)3165) 에서 그 초계의 어의(語意)를 가지고 약간 문장을 변조하여 아뢰기 때문에 신이 어제 그 계초(啓草)를 보고 몹시 미안하게 생각하였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언어간의 일을 어찌 관계하랴. 미안하게 여기지 말라.ꡓ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ꡒ이 적이 끝내는 천하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간교한 정상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그 화가 어찌 우리 나라에만 그치고 말겠습니까. 지난 해는 약간 풍년이 들어 백성들에게 먹을 것이 조금 있는 듯합니다. 이때를 계기로 급급히 조치할 계책을 세우면 전일 어지러울 때와는 같지 않을 것인데 인심은 태만해지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어떻게 이끌어 계도하겠습니까. 신은 여러해 동안 병치레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대신으로서 제갈 무후(諸葛武侯)와 육 선공(陸宣公)같은 이는 모두 몸소 부서(簿書)를 잡고 밤낮 게을리 아니하였는데, 신은 3년 동안 병을 앓으면서 재상의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신의 일신은 진실로 돌볼 여가도 없는데 항상 국사가 이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걱정을 삼고 있었지만, 결국 나라의 기강이 탕진되어 손을 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원익(李元翼)이 평안 감사로 있을 때 겨우 연병(鍊兵)했었는데 그가 갈려 온 후에는 수령들이 전연 마음에 두지 않아 점점 해이해집니다. 수령의 책임을 받은 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저 무지한 백성에게 어찌 심력을 다할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적이 만일 제주를 빼앗아 점거한다면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지난번에 비록 신급제(新及第) 1백 인을 보냈으나 또한 무엇이 방어에 보탬이 되겠는가. 제주가 비록 육지처럼 쉽게 장구(長驅)할 수는 없으나 적이 전함(戰艦) 1천 척으로 곧장 항구에 침입 상륙하여 영책(營柵)을 설치하고 지구전을 획책한다면 우리 나라 병력이 어떻게 당해내겠는가. 비변사는 필시 규획하여 조치해 놓았을 것이다.ꡓ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ꡒ비변사는 조치한 일이 없습니다. 들으니, 제주는 군량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전라도는 한산도(閑山島)에만 치중하고 제주는 아예 제쳐놓습니다. 적이 만약 이곳에 웅거하게 된다면 비단 우리 나라가 당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원(中原)에도 또한 순식간에 배를 타고 이를 수 있습니다. 적이 이러한 형세를 모두 알고 있으니 더욱 염려됩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비변사는 수령을 선택하여 군사를 늘리고 군량을 운반할 뿐이다. 이밖에야 무슨 조치할 일이 있겠는가.ꡓ하고, 또 이르기를, ꡒ심무시(沈懋時)의 말이 몹시 좋지 않으나 서로 따질 수 없으니 접대할 때에 말을 잘하여 지연시키는 계책으로 대함이 가하다.ꡓ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ꡒ심 유격이 먼저 바다를 건너가는 일을 보니 우리 나라의 신사(信使)는 급박한 일이 아닙니다. 관백(關白)은 진실로 포학한 놈으로 전에 말한 일곱 가지의 일을 기필코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행장(行長)이 봉사(封事)만을 말할 수 없어 심유경(沈惟敬)을 보내 유세하게 하는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이번 주문(奏聞)에는 적의 정세를 모두 갖추어 진술하는 것인가.ꡓ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ꡒ석 상서(石尙書)의 제본(題本)에 또한 적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유격이 적의 정세를 병부(兵部)에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지난날 승문원(承文院)에서 석 상서가 천사(天使)에게 보낸 사서(私書)를 보니 그 글에 ꡐ조선은 어찌하여 주문하지 않는가. 설사 주문한다 하더라도 말에 착오가 있을까 염려된다.ꡑ고 하였습니다. 만약 석 상서가 낭패를 보게 되면 우리 나라의 일은 다시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의 주문은 마땅히 심 유격의 자문을 두사(頭辭)로 삼고 우리 나라의 사정과 황신(黃愼)으로 유격을 수행시킨다는 등의 사항을 갖추어 진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애초 천조(天朝)가 소서비(小西飛)와 약속할 때 조선과 더불어 교통(交通)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이 말로 끝을 맺으면 언사가 바르고 조리가 있을 것이다. 또 ꡐ우리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훗날 난처한 일이 있을 것이니, 천조는 저 적에게 칙지로 하유하여 다시 전일의 더불어 교통하지 않겠다는 말을 신명해주기 바란다.ꡑ는 내용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ꡓ하자, 참찬관(參贊官) 이호민(李好閔)이 아뢰기를, ꡒ그 때에는 다만 각각 봉강(封疆)을 지키고 서로 침범하지 말자는 말만 있었지 서로 교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비록 더불어 교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으나, 이것으로 말을 만드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만약 천조로부터 교통하지 말라는 명령을 얻게 되면 이 어찌 범연한 일이겠는가.ꡓ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ꡒ상의 하교대로 하는 것이 지당하겠습니다.ꡓ하였다. 특진관(特進官) 심희수(沈喜壽)가 아뢰기를, ꡒ적이 우리의 통사(通使)를 요구하는 것을 보니, 이는 곧 문을 빌리고 다시 방을 빌리려는 것입니다.ꡓ하고, 호민은 아뢰기를, ꡒ적이 요구하는 바는 반드시 신사(信使)보다 더한 것이 있는데, 심유경은 신사로 타협하려 하기 때문에 지금 친히 관백(關白)을 보고 그 달변을 구사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ꡓ 하고, 정형(廷馨)은 아뢰기를, ꡒ저 적의 반복스런 정상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우리 측의 방법은 마땅히 사졸을 훈련시켜 자강(自强)의 계책을 세우는 것 뿐입니다. 근래에 들으니, 남쪽 변방의 장사(將士)들이 탐욕을 부리거나 혹은 나약하여 방비하는 일에는 전연 힘을 다하지 않고 군사를 놓아주고 그 댓가 받는 일을 멋대로 하고서는, 순찰사(巡察使)가 그 영(營)에 이르면 근처의 한잡인(閑雜人)이나 군관 노자(軍官奴子)들을 많이 모아 점검을 속인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특별히 신급제(新及第)를 보내 방어에 임하게 하는 것은 위급할 때 쓰고자 해서인데, 또한 채물(債物)을 바치고 놓여 돌아오며, 비록 여러해 동안 오래 임무를 맡은 사람도 방수(防守)의 계책에는 뜻이 없고,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변장(邊將)의 소행이 이와 같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마땅히 듣는 대로 탄핵해야 하겠으나, 풍문의 말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도체찰사(都體察使)는 반드시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니, 그에게 하서(下書)하여 그로 하여금 탐욕하고 나약하여 맡기기에 불가한 자를 적발하여 중죄로 다스려서 하나를 징계하여 백을 격려하게 하소서.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하서하여도 되겠는가.ꡓ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ꡒ진실로 정형이 아뢴 바와 같으니, 신이 일찍이 개탄하였습니다. 고언백(高彦伯)․권응수(權應銖)․김응서(金應瑞) 같은 무리는 여러해 동안 변방에 있으면서도 조치하여 획책한 바가 없습니다. 조정에서 그들로 하여금 험지에 의거해 영(營)을 설치하여 틀림없이 수비할 계책을 하도록 당부한 적이 진실로 한두 번이 아닌데, 한갓 산기슭에 가막(假幕)을 설치하고 마른 나무가지를 꺾어 성책(城柵)을 만들고 있으니, 위급한 일이 있을 경우 어디에 의지해 방어하겠습니까. 이원익이 이미 내려 갔으니 필시 사세에 따라 단속하며 형세를 보아 조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서하심이 마땅하겠습니다.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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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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