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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81-9:이형욱(1603-1603.7.13)
작성자장병창 @ 2013.01.30 20:53:34

   예천고을원(81-9) : 이형욱(1603-1603.7.13) : 좌의정 정탁 대접 소홀로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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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221권/ 선조 41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1일 무오 23번째 기사/ 이형욱이 위차를 정해 곡을 하는 절목을 보고하다/ 이형욱이 아뢰었다. ꡒ위차(位次)를 정해 곡(哭)하는 한 절목을 예조가 잘못해서 곧바로 들여 보냈습니다.ꡓ/ 【영인본】 25 책 394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221권/ 선조 41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1일 무오 24번째 기사/ 동궁이 염습 의주․목욕 의주를 올리라 하다/ 이형욱에게 전교하기를, ꡒ염습하는 의주(儀註)를 속히 마련하여 입계하라.ꡓ하자, 회계하기를, ꡒ빈전 도감(殯殿都監)의 제조와 낭청을 지금 차출하여 마련하고 있습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ꡒ알았다. 목욕시키는 의주를 속히 마련하여 입계하라.ꡓ하였다./ 【영인본】 25 책 394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221권/ 선조 41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1일 무오 25번째 기사/ 동궁이 목욕 의주와 염습을 재촉하다/ 이형욱에게 전교하기를, ꡒ목욕시키는 의주는 때가 이미 늦었는데 어찌하여 속히 상고하여 아뢰지 않는가?ꡓ하고, 또 전교하기를, ꡒ염습(斂襲)하는 일은 시기를 넘기면 안 되니 속히 마련하라.ꡓ하였다./ 【영인본】 25 책 394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선조실록 221권/ 선조 41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1일 무오 27번째 기사/ 동궁이 빈전의 위쪽을 보고하라 전교하다/ 이형욱에게 전교하기를, ꡒ빈전의 위쪽 방향을 어디로 해야 하는지를 상고하여 아뢰라.ꡓ하니, 회계하기를, ꡒ관상감에 문의한 결과 날마다 빈궁(殯宮)의 곁에 나가셔야 하니, 동향(東向)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ꡓ하자,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인본】 25 책 394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1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1일 무오 7번째 기사/ 승지들이 도착하다/ 좌승지 최렴(崔濂), 우승지 이형욱(李馨郁), 좌부승지 이경함(李慶涵), 우부승지 이덕온(李德溫), 동부승지 유희분(柳希奮), 주서 김시언(金時言), 가주서 조국빈(趙國賓), 검열 박해(朴海)가 차비문 안으로 들어 왔다. 도승지 유몽인(柳夢寅)은 추후 도착하였다./ 【영인본】 31 책 259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1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2월 2일 기미 10번째 기사/ 광해군이 선왕의 유교를 받고 어좌에 오르다/ 경시(庚時)에 왕이 면복을 갖추고 대정(大庭)의 배위(拜位)로 나아가니, 도승지 유몽인(柳夢寅), 좌승지 최렴(崔濂), 우승지 이형욱(李馨郁), 좌부승지 이경함(李慶涵), 우부승지 이덕온(李德溫), 동부승지 유희분(柳希奮), 기사관 김시언(金時言)․이정(李瀞), 가주서 조국빈(趙國賓), 기사관 박해(朴海)가 입시하였다. 왕이 대정에서 네 번 절한 뒤에 동계(東階)로 올라가서 유교(遺敎)를 받았는데, 유교의 내용에, ꡒ내가 부덕한 몸으로 오랫동안 큰 기업(基業)을 맡아 오면서 온갖 험난한 일을 두루 겪었으므로 항상 환란을 걱정하는 조심스런 마음을 지녀 왔다. 이제 말명(末命)으로 부탁하는 것은 대점(大漸)의 조짐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너는 인효(仁孝)한 자품을 타고 났기 때문에 나의 신민(臣民)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으니 이는 실로 국가의 경사인 것으로 내가 다시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본조(本朝)를 섬김에 있어서는 네가 정성을 다하여 주야로 게을리하지 않기 바라며, 동기(同氣)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하여 시종 혹시라도 간격이 없게 하라. 외적의 침입에 대처할 방도를 더욱 공고하게 하고 사대(事大)하는 예절을 다시 극진히 하라. 이는 종묘 사직을 위한 원대한 계책이니 어찌 부자(父子) 사이의 깊은 정 때문에만 하는 말이겠는가. 하늘은 환히 드러내기 마련이니 반드시 경명(景命)을 내리는 보답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백성들 또한 노고가 극심했으니 이럴 때에 조금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의 지극한 마음을 깊이 유념하여 네가 덕을 배양하도록 힘쓸 것을 면려한다.ꡓ하였다. 왕이 막차에서 조금 쉬고 나아와 전상(殿上)에 있는 어좌의 동쪽에 서니, 통례 김권(金權)이 나아와서 아뢰기를, ꡒ어좌로 오르소서.ꡓ하였으나, 왕이 응하지 않았다. 유몽인이 아뢰기를, ꡒ어좌로 오르소서.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심정이 매우 망극하여 차마 어좌에 오를 수가 없다.ꡓ하였다. 유몽인이 다시 아뢰기를, ꡒ어좌에 오르소서.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이미 이 전상(殿上)에 올라왔으니 어좌에 오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어좌에 오르지 않고 있는 것은 망극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서인 것이다.ꡓ하였다. 예조 판서 권협(權?)이 들어와서 아뢰기를, ꡒ대신들이 모두 문 밖에 있는데 어좌에 오른 뒤에 입시하려고 합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해가 저물려 하니 속히 행례(行禮)하라.ꡓ하였다. 이형욱이 아뢰기를, ꡒ뭇 신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돌보아 생각하여 주소서.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이미 이 전상에 올라왔으니 어좌에 오른 것과 다름이 없다. 해가 저물어가니 속히 행례하라.ꡓ하였다. 권협이 대신의 뜻으로 아뢰기를, ꡒ신료들이 행례를 제대로 이루지 못할까 염려되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대신들이 모두 문밖에 있으면서 어좌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조종조의 열성(列聖) 가운데는 어좌에 오르지 않은 분도 계셨었다. 해가 이미 저물어 가고 있으니, 속히 행례하도록 하라.ꡓ하였다. 이형욱이 아뢰기를, ꡒ뜰에 가득한 신료들이 모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ꡓ하고, 최렴이 아뢰기를, ꡒ뜰에 있는 신료들이 모두 행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데도 위에서 이렇게 굳게 고집하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아뢸 바를 몰라 달(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ꡓ하고, 유몽인은 아뢰기를, ꡒ위에서는 심정이 망극하실 것입니다만, 여러 사람들의 심정을 돌아보아 생각하시어 어좌에 오르심으로써 행례를 제대로 이루게 하소서.ꡓ하고, 홍문관 부제학 송응순(宋應洵) 등은 아뢰기를, ꡒ예로부터 제왕(帝王)이 어좌에 오르지 않고서 행례를 제대로 한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군정이 그지없이 안타까워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열성들께서도 어좌에 오르지 않았었는데 쟁집할 필요가 뭐 있는가. 속히 행례하라.ꡓ 하였다. 이형욱이 아뢰기를, ꡒ군하들의 마음을 돌보아 생각하여 주소서.ꡓ하고, 유영경이 들어와서 아뢰기를, ꡒ달(達)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해가 저물어가고 있으니 속히 행례하라.ꡓ하였다. 송응순 등이 또 아뢰기를, ꡒ예로부터 제왕은 어좌에 오르지 않은 분이 없었습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내가 이 전상으로 올라왔으니 어좌에 오른 것과 다름이 없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속히 행례하기 바란다.ꡓ하였다.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정시(正始)하는 처음에 대례(大禮)가 제대로 모양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군정(群情)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선왕(先王)께서 어좌에 오르지 않았던 것을 내가 분명히 알고 있다. 차마 어좌에 오르지 못하겠다.ꡓ하였다. 대사헌 박승종(朴承宗), 대사간 이효원(李效元) 등이 아뢰기를, ꡒ속히 어좌에 오르시기 바랍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힘써 억지로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이미 대신에게 하유하였다.ꡓ하였다.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군정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삼가 힘써 따르시기 바랍니다.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조종조 때에도 어좌에 오르지 않은 분이 있었던 것을 뜰에 있는 원로 재신들은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다. 해가 이미 저물고 있으니 속히 행례하라.ꡓ하였다. 허욱이 아뢰기를, ꡒ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대신이 어떻게 감히 이렇게 아뢸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군정을 힘써 따르소서.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어좌 앞에 서 있으면 대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ꡓ하였다. 유영경이 네 번째 아뢰기를, ꡒ군정을 힘써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ꡓ 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나아가 속히 행례하라.ꡓ하니, 유영경이 아뢰기를, ꡒ군정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힘써 따르소서.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여러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기 때문에 〈 죽기를 한하고 거절하려 했으나〉 힘써 따르는 것이다.ꡓ하였다. 왕이 어좌에 오르니, 대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부른 다음 머리 조아려 절하고 하례(賀禮)를 끝마쳤다. 왕이 정로(正路)에서 내려와 상차(喪次)로 돌아갔다. 초혼(初昏)이 되어서야 차례대로 파하고 나아갔다. 중외의 대소 신료, 기노(耆老)․군민인(軍民人) 등에게 반사문(頒赦文)을 내렸다. 그 내용에, ꡒ하늘이 큰 재앙을 내려 나라에 큰 슬픔이 있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백성들이 복록이 없는 것임은 물론, 내가 장차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는가. 통곡하면서 정신없이 찾아 헤매니 마치 곡진하게 마주 대해 타이르는 것만 같다. 생각건대 우리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는 학문에 힘쓰는 것은 항상 민첩하게 하였고 성품은 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의 자질을 타고 났다. 정성을 다하여 명나라를 섬겼으므로 명나라의 총애가 이미 넉넉하였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열복하였다. 종묘 사직의 도움을 받아 42년 동안 전수하여 왔고 중외의 신민(臣民)들 마음은 천년 만년 장수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혹독한 병을 만났는데 그래도 약(藥)을 쓰지 않고 치유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백성을 버리게 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바야흐로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으면서 망극한 슬픔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무슨 마음으로 즉위할 수 있겠는가마는, 돌아보건대 유교(遺敎)가 이처럼 분명하고 왕위는 잠시도 비울 수 없는 것이어서 2월 초2일에 정릉동 행궁의 서청에서 즉위하였다. 대행 왕비(大行王妃)는 왕대비(王大妃)로 높였고 빈(嬪) 유씨(柳氏)를 왕비(王妃)로 삼았다. 이렇게 서업(緖業)을 계승하는 날을 당하여 크게 풀어주는 은혜를 베푸는 바이다. 아, 중대하고도 어렵게 이룩한 서업을 물려받았으니 참으로 모든 것이 시작을 올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고, 허물을 용서하고 죄를 사면하였으니 모두 참여하여 스스로 새로운 자세를 지니기 바란다. 〈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敎示)하니 이런 내용을 상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259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4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5월 8일 계사 5번째 기사/ 이형욱․이이첨․윤효선․정홍익․홍방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형욱(李馨郁)을 도승지로, 이이첨(李爾瞻)을 응교로, 윤효선(尹孝先)을 부응교로, 정홍익(鄭弘翼)을 교리로, 홍방(洪?)을 정언으로 삼았다./ 【영인본】 31 책 31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6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7월 6일 경인 2번째 기사/ 장령 윤길이 김진의 일로 체직을 청했으나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다/ 장령 윤길이 아뢰기를, ꡒ김진(金鎭)이라는 사람은 바로 임해군(林海君) 유부(乳父)의 사위입니다. 이전부터 폐단을 일으켜 백성들의 원망이 이미 극에 달하였는데, 그가 관리로 차임되어 성 안으로 들어올 때에 은(銀)을 많이 지녔으나 흔적이 주밀하여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신이 풍문을 인하여 동료들과 의논, 체포하여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좌승지 이형욱(李馨郁)이 신에게 편지를 보내 김진의 일을 위해 구제하면서, 임해군을 하나의 큰 함정으로 삼아 증오하는 사람을 해치고 싶으면 반드시 이 함정 속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따위의 말까지 있었습니다. 김진은 바로 하찮은 내노(內奴)이니 형욱의 이 말이 어찌 유독 김진 한 사람만을 위하여 한 것이겠습니까. 대개 언관(言官)으로 하여금 여러 궁가의 폐단을 일으키는 사람에 대해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고자 해서인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신으로 인하여 이런 욕을 불러 일으켰으니, 체직하도록 명하소서.ꡓ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영인본】 31 책 325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친(宗親)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6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7월 13일 정유 6번째 기사/ 지평 김질간이 이선행 등의 죄를 들어 그들의 파직을 청하다/ 지평 김질간이 아뢰기를, ꡒ이선행(李善行)․박해(朴海) 등은 원흉에게 아첨하여 빌붙어서 그의 의향만을 살펴 오직 뜻을 받들기에 부족할까 두려워해왔습니다. 심지어는 권한을 물려주어 섭정시키겠다는 분부를 남몰래 숨겼으며 정직한 선비를 모함하여 해치려고 하였으니, 속이고 모함한 죄가 지극합니다. 보통으로 파직하는 것은 그 흉악함을 징계하기에 부족하니, 속히 관직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쫓아보내도록 명하소서. 상(賞)으로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함부로 시행할 수 없습니다. 지금 호위(扈衛)하는 것은 바로 그 직분인데,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도감 장관(都監將官) 등에게 가자(加資)하고 승진시켜 서용한 것을 속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좌승지 이형욱(李馨郁)은 지난번에 헌부(憲府)가 풍문에 의하여 범죄인을 체포 수감하였을 적에, 일의 체모를 돌아보지 않고 감히 사사로운 인정으로써 대관(臺官)에게 편지를 보내 촉탁하면서, 심지어 임해군(臨海君)을 한 커다란 함정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하였으니, 너무도 어이없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관직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쫓아보내는 것은 지나치며, 가자(加資)한 것은 지나치지 않으니 윤허할 수 없다. 이형욱은 체차하도록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330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11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12월 22일 을해 2번째 기사/ 이정험․심집․한찬남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정험(李廷?)을 사인으로, 심집(沈?)을 장령으로, 한찬남(韓纘男)을 지평으로, 유학증(兪學曾)을 정언으로, 이호신(李好信)을 이조 정랑으로, 남이공(南以恭)을 형조 참의로, 이형욱(李馨郁)을 강원 감사로, 〈 이종일(李宗一)을 길주 목사로〉 삼았다./ 【영인본】 31 책 38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20권/ 광해군 1년( 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9월 25일 계묘 3번째 기사/ 강원도에서 일어난 기이한 자연현상에 대해 강원 감사 이형욱이 치계하다/ 강원 감사 이형욱(李馨郁)이 치계하였다. ꡒ간성군(杆城郡)에서 8월 25일 사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원주목(原州牧)에서는 8월 25일 사시 대낮에 붉은 색으로 베처럼 생긴 것이 길게 흘러 남쪽에서 북쪽으로 갔는데, 천둥 소리가 크게 나다가 잠시 뒤에 그쳤습니다. 강릉부(江陵府)에서는 8월 25일 사시에 해가 환하고 맑았는데, 갑자기 어떤 물건이 하늘에 나타나 작은 소리를 냈습니다. 형체는 큰 호리병과 같은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컸으며, 하늘 한 가운데서부터 북방을 향하면서 마치 땅에 추락할 듯하였습니다. 아래로 떨어질 때 그 형상이 점차 커져 3, 4장(丈) 정도였는데, 그 색은 매우 붉었고, 지나간 곳에는 연이어 흰 기운이 생겼다가 한참 만에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사라진 뒤에는 천둥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했습니다. 춘천부(春川府)에서는 8월 25일 날씨가 청명하고 단지 동남쪽 하늘 사이에 조그만 구름이 잠시 나왔는데, 오시에 화광(火光)이 있었습니다. 모양은 큰 동이와 같았는데, 동남쪽에서 생겨나 북쪽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매우 크고 빠르기는 화살 같았는데 한참 뒤에 불처럼 생긴 것이 점차 소멸되고, 청백(靑白)의 연기가 팽창되듯 생겨나 곡선으로 나부끼며 한참 동안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우레와 북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다가 멈추었습니다.

 

  양양부(襄陽府)에서는 8월 25일 미시(未時)에 품관(品官)인 김문위(金文緯)의 집 뜰 가운데 처마 아래의 땅 위에서 갑자기 세숫대야처럼 생긴 둥글고 빛나는 것이 나타나, 처음에는 땅에 내릴듯 하더니 곧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는데, 마치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습니다. 크기는 한 아름 정도이고 길이는 베 반 필(匹) 정도였는데, 동쪽은 백색이고 중앙은 푸르게 빛났으며 서쪽은 적색이었습니다. 쳐다보니, 마치 무지개처럼 둥그렇게 도는데, 모습은 깃발을 만 것 같았습니다. 반쯤 공중에 올라가더니 온통 적색이 되었는데, 위의 머리는 뾰족하고 아래 뿌리쪽은 짜른 듯하였습니다. 곧바로 하늘 한가운데서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더니 흰 구름으로 변하여 선명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이어 하늘에 붙은 것처럼 날아 움직여 하늘에 부딪칠듯 끼어들면서 마치 기운을 토해내는 듯하였는데, 갑자기 또 가운데가 끊어져 두 조각이 되더니, 한 조각은 동남쪽을 향해 1장 정도 가다가 연기처럼 사라졌고, 한 조각은 본래의 곳에 떠 있었는데 형체는 마치 베로 만든 방석과 같았습니다. 조금 뒤에 우레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끝내는 돌이 구르고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그 속에서 나다가 한참만에 그쳤습니다. 〈 이때 하늘은 청명하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습니다.〉 ꡓ/ 【영인본】 31 책 456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20권/ 광해군 1년( 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9월 25일 계묘 4번째 기사/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다/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영인본】 31 책 456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22권/ 광해군 1년( 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11월 24일 신축 4번째 기사/ 영동 아홉 고을의 재변․이사에 대한 강원도 관찰사 이형욱의 치계/ 강원도 관찰사 이형욱(李馨郁)이 영동(嶺東) 아홉 고을의 풍수(風水)의 재변(災變)과 이사(異事)를 치계하였다. 〈 사신은 논한다. 강원도 전 도민이, 재산은 공삼(貢參)하는 폐단으로 털리고 힘은 벌목(伐木)의 역사에 지쳐서, 떠돌아다니며 원망하고 고달파하는 형상은 참혹하여 차마 말할 수 없었으니, 하늘이 경고를 보임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 【영인본】 31 책 470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33권/ 광해군 2년( 1610 경술 / 명 만력(萬曆) 38년) 9월 6일 무신 7번째 기사/ 이형욱․이상의․이필영․박정길․신식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형욱(李馨郁)을 승지로, 이상의(李尙毅)를 대사헌으로, 이필영(李必榮)을 대사간으로, 박정길(朴鼎吉)을 정언으로, 신식(申湜)을 강원 감사로 삼았다./ 【영인본】 31 책 56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85권/ 광해군 6년( 1614 갑인 / 명 만력(萬曆) 42년) 12월 5일 계미 1번째 기사/ 경기전 조성 공로를 논하다/ 경기전(慶基殿) 조성 공로를 논하였다./ ꡒ감사 이경전(李慶全), 〈 도차사원(都差使員)〉 전주 부윤 이선복(李善復), 전 부윤 이형욱(李馨郁), 〈 종시 감동 차사원(終始監董差使員)〉 여산 군수(礪山郡守) 권곤(權?), 익산 군수(益山郡守) 윤조원(尹調元), 함열 현감(咸悅縣監) 이담(李憺)은 각각 자급을 더하고, 〈 감역관(監役官) 최윤길(崔胤吉)은 본전 참봉을 제수하고, 박창선(朴昌善)․홍윤(洪潤)․양성(梁誠)․임팽수(林彭壽)․유여일(柳汝一)․이인록(李?菉)․유지기(柳之紀)․최산율(崔山律)에게는 각각 아마(兒馬) 1필을, 송세창(宋世昌)에게는 궁자(弓子) 1장과 장편전(長片箭) 각 1부를 사급하고, 차지색리(次知色吏) 유수남(柳壽男)에게는 6품 군직을, 최손남(崔孫男) 등 4인에게는 각각 아마 1필을 내리고, 그 나머지 공장(工匠) 등은 미포(米布)를 재량하여 주도록 하라.〉 ꡓ/ 【영인본】 32 책 352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광해군일기 93권/ 광해군 7년( 1615 을묘 / 명 만력(萬曆) 43년) 8월 18일 임진 3번째 기사/ 사은사 김권․부사 이형욱․서장관 유여각을 전송하다/ 〈 진시에〉 왕이 인정전에서 배표(拜表)하고는 〈 뜰에 내려가서 전송하였다.〉 사은사 김권(金權), 부사 이형욱(李馨郁), 서장관 유여각(柳汝恪)이 떠나갔다./ 【영인본】 32 책 408 면/ 【분류】 *왕실(王室)(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원년 9월 6일 (계사) 원본2책/탈초본1책 (6/8)  1623년 天啓(明/熹宗) 3년/ 安璹 등의 罷職을 청하는 司諫院의 계/ ○ 院啓, 永川郡守安璹, 政委下吏, 請罷事。 春川府使李馨郁, 年衰多病, 不能察任, 簿書?役, 一委奸吏之手, 請罷事。 仁城君事。 答曰, 依啓。 仁城事不允。(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8년 1월 10일 (경인) 원본29책/탈초본2책 (3/8)  1630년 崇禎(明/毅宗) 3년/ 先祖 待從臣이었던 李馨郁의 나이가 80세이므로 優老之典을 더하도록 청하는 吏曹의 계/ ○ 吏曹啓曰, 幼學李益培上疏, 大槪, 爲其祖父馨郁, 年滿八十, 有屯祈息之疏, 馨郁, 以先祖待[侍]從之臣, 年至大?, 依近日鄭光績․康復誠等例, 別加優老之典, 以爲宜當, 而自下不敢擅便, 上裁, 何如? 啓。 傳曰, 依他例超資。(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8년 1월 15일 (을미) 원본29책/탈초본2책 (2/6)  1630년 崇禎(明/毅宗) 3년/ 沈東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 沈東龜爲持平, 宋國澤爲注書, 睦大欽爲工曹參議, 李馨郁爲知敦寧, 任?爲靈光郡守, 金元立․鄭百亨爲禮曹正郞, 金世濂爲副修撰, 鄭良弼爲儀賓府正, 朴安孝爲相禮, 任忠幹爲富寧縣監, 元?爲龍川府使, 李之華爲大同察訪。(www.history.go.kr 2007)

 

  이형욱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8년 10월 21일 (병인) 원본31책/탈초본2책 (9/21)  1630년 崇禎(明/毅宗) 3년/ 李馨郁이 죽는 바람에 停朝市로 召對를 할 수 없다는 姜弘重의 계/ ○ 姜弘重啓曰, 召對爲之事, 命下矣。 知敦寧李馨郁卒逝, 停朝市, 故召對不得爲之之意, 敢啓。 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이형욱(李馨郁) : 사간원이 궁궐 담장을 물려 쌓는 일이 부당함을 아뢰다/ 서명: 선조실록 (선조 36년)/조선왕조실실록 태백산본/ 날짜: 1603-07-13(음)/ 분류: 고전국역서 > 역사 > 사서류(史書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 164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7월 13일(정묘) 1번째 기사/ 사간원이 궁궐 담장을 물려 쌓는 일이 부당함을 아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지금 계시는 대내(大內)가 여염 사이에 끼어 있어서 민가와 가깝고 안이 좁으니 궁장(宮墻)을 물려 쌓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므로 구구한 작은 폐단은 따질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난 후에 겨우 모인 백성들이 집을 짓고 사는 곳을 하루아침에 철거하여 살 곳이 없어진 무지한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가 들끓고 있으니 정상이 매우 가엾습니다. 더구나 행궁(行宮)은 실로 오래 계실 곳이 아니고, 백성을 수고롭히고 공역을 허비하는 것도 오늘날의 급한 일이 아니니, 궁장을 물려 쌓으라는 명을 거두소서. 대신이 향리에 물러나 살면 수령은 마음을 다해 공경히 대우하여 조정이 원로(元老)를 우대하는 법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치사(致仕)한 정탁(鄭琢)이 예천(醴泉) 땅에 살고 있는데, 군수 이형욱(李馨郁)이 접대할 때에 체면을 많이 잃어서 소문이 몹시 해괴하니, 파직시키소서.”하니, 답하기를, “궁장을 물려 쌓는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4책 501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건설(建設)//

 

  이형욱(李馨郁)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선조(宣祖) 27년, 과거시험연도 : 1594 갑오, 시험명 : 별시(別試), 등위 : 병과2(丙科2)/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이형욱(李馨郁), 자 : 덕무(德懋), 호 : 난고(蘭皐), 본관(本貫) : 전주(全州)/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585(을유) 진사시, 전력(前歷) : 사과(司果), 관직(官職)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가족사항] 부(父) : 이홍(李洪), 조부(祖父) : 익흥령 이희조(益興令 李熙措), 증조부(曾祖父) : 은산부정 이권(恩山副正 李權), 외조부(外祖父) : 권습(權習), 처부(妻父) : 한사룡(韓士龍)(daum 2010)

 

  이형욱 : 네이트 한국학/ ...) 1567 정묘 안동(安東) - 권(權)/ 丙科 2위 이광윤(李光胤) 1564 갑자 경주(慶州) - 이(李)/ 丙科 2위 이형욱(李馨郁) 1551 신해 전주(全州) - 이(李)/ 丙科 3위 박승업(朴承業) 1568 무진 고령(高靈) - 박(朴)/ 丙科 3위 홍식(洪湜) .../ http://koreandb.nate.com(daum 2010)

 

  이형욱 : 김관(金灌)/ ...(生父) 민응회(閔應恢), 조부(祖父) 민영(閔영), 증조부(曾祖父) 민세주(閔世舟), 외조부(外祖父) 이형욱(李馨郁), 형(兄) 민희(閔熙), 제(弟) 민암(閔암),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33(계유) 진사시 특별시(特別試.../ http://www.shinjongwoo.co.kr(daum 2010)

 

  이형욱 : 팔공산회맹록(八公山會盟錄)-명단/ 2009.09.02/ ...(成麟厚), 신득록(申得祿), 이대임(李大臨), 박지우(朴知遇), 박지술(朴知述), 정운붕(鄭雲鵬), 이형욱(李馨郁), 이두망(李斗望), 윤덕겸(尹德謙), 유대기(兪大祺), 김신원(金信元), 우치속(禹致續), 조탁(曺倬), 정희소(鄭希韶.../ http://cafe.daum.net/803love/ 팔공산지킴이(daum 2010)

 

  이형욱 : 강원 관찰사 문중별 명단2/ 2007.10.18/ ...22(1567) 1522~1587 강원도 관찰사 334 李齊閔(이제민) 203代 선조14(1581) 1528~1608 강원도 관찰사 335 李馨郁(이형욱) 244代 광해01(1609) 1551~1630 강원 감사 336 李敏求(이민구) 273代 인조13(1635) 1589~1670 강원 감사.../ http://cafe.daum.net/jds7947/ 野松論志堂(daum 2010)

 

  이형욱 : 옛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2006.10.03/ ...<공 삼 제 도: 나라님(임금)에게 바치는 영초> * 광해군일기 원년(1609. 11. 24.) 강원도 관찰사 이형욱(李馨郁)이 영동(嶺東 9관(官)의 풍수(風水)의 재변과(災變)과 이사(異事)를 치계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강원도 전 도민이.../ http://cafe.daum.net/simmanitown/ 심마니 마을[산삼.장뇌삼.약초.상황버섯](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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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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