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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86-1:정묵(1609.1.7-1610)
작성자장병창 @ 2013.04.27 06:46:45

  예천고을원(86-1) : 정묵(1609.1.7-1610) : 용궁에 전례없는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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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묵(鄭黙, 1553~?)은 1609년(광해군 1) 1월 7일에 홍경소 군수 후임으로 부임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안성 사람, 자는 양일(養一), 본관은 광주, 학생 응방(應房)의 아들이다.

  부모 사후에 유학으로서 1579년(선조 12) 식년 진사시에 3등 39위로 합격, 1591년(선조 24) 별시 문과에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593년(선조 26) 11월 22일에는 가주서로 재임 중이었고, 1597년(선조 30) 4월 20일에는 판관으로 재임 중이었다.

  1600년 2월 20일에는 대동도 찰방을 이임하였고, 그 후 형조 좌랑(1601년 1월 8일), 황해도 도사(1601년 2월 12일), 아산 현감(1604년 1월 24일), 가산 군수(1606년 6월 4일), 충청도 도사(1606년 8월 19일)를 거쳤다. 1609년 1월 7일에는 예천 군수에 제수되었고, 그 후 첨지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정묵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609년(광해군 1) 7월 19일 인시에서 신시까지 용궁 등지에 큰 비가 마치 퍼붓 듯이 내리고 폭풍이 휘몰아쳐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가고 산과 들의 나무들이 모두 뽑히고 전답의 벼는 물에 잠기거나 바람에 쓰러져 마치 서리맞은 풀과 같았다. 이 폭풍의 재변은 예전에 없었던 일로 매우 참혹하였다.

  같은 해 8월 12일에 경상감사 강첨이 임금께 보고하기를, ꡒ장차 용궁 백성들의 일이 매우 걱정됩니다. 빗물이 넘쳐 모래가 쌓인 곳과 수재가 특별히 심했던 곳에는 응급 지원 복구해야 합니다ꡓ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17일 사시에는 예천군에 지진이 있었는데,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우뢰같은 소리가 났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537號 2002.12.06)

 

정묵(鄭黙) : 1609년(광해군 1) 1월 7일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553(명종 8)-?, 안성(安城) 사람, 자는 양일(養一), 본관은 광주(光州), 학생 응방(應房)의 아들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579년(선조 12) 식년 진사시에 3등 39위로 합격, 1591년(선조 24) 별시 문과에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593년(선조 26) 11월 22일에는 가주서(假注書)로 재임 중이었고, 1597년(선조 30) 4월 20일에는 판관(判官)으로 재임 중이었고, 그 후 대동도 찰방(大同道察訪, 1600.2.20 이임), 형조 좌랑(1601.1.8), 황해도 도사(都事, 1601.2.12), 아산 현감(牙山縣監, 1604.1.24 재임 중), 가산 군수(嘉山郡守, 1606.6.4), 충청도 도사(1606.8.19)를 거쳤다. 1609년(광해군 1) 1월 7일 예천 군수에 제수되었고, 벼슬이 첨지에까지 이르렀다.(文科榜目, 宣祖實錄)

 

  정묵 [記事] : 한국문집총간(077_525b) 청음집(淸陰集, 1654)에 실린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예천군수(1609-1610) 정묵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淑夫人草溪鄭氏墓誌銘/ ...淑夫人草溪鄭氏墓誌銘 幷序 故淸州牧使贈左承旨金君有賢配。曰淑夫人 鄭氏。醴泉郡守黙之女。右贊成 ...”이다.(www.minchu.or.kr 2006)

 

  정묵 [記事] : 한국문집총간(097_465b) 백주집(白洲集, 1646)에 실린 이명한(李明漢)의 예천군수(1609-1610) 정묵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淸州牧使贈左承旨金公夫人鄭氏墓誌銘/ ...諱宗榮。以右贊成。年至致仕還鄕。世所稱八溪君者也。考諱黙。中己卯司馬。官至醴泉郡守。?淑夫人星州李氏。星...”이다.(www.minchu.or.kr 2006)

 

  정묵 [記事] : 한국문집총간총목차 100집 동토집(童土集)에 실린 윤순거(尹舜擧)의 예천군수(1609-1610) 정묵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1 梁長卿曼容輓 91 李參議省身丈輓 91 郭三嘉希震輓 92 鄭醴泉 黙輓 ...”이다.(www.minchu.or.kr 2006)

 

  정묵 [記事] : 한국문집총간(100_092a) 동토집(童土集, 1712)에 실린 윤순거(尹舜擧)의 예천군수(1609-1610) 정묵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童土先生文集續卷之一/ 詩/ 鄭醴泉黙 輓/ 夙齡累著循良績。希壽終傷不盡籌。艱險備嘗多歲月。太平?見少須臾。睦府漫沾新雨露。佳城仍傍舊松楸。風霜宿草苦懷緬。?望無因申一呼。”이다.(www.minchu.or.kr 2006)

 

  정묵 [記事] : 광해군일기 12권/ 광해군 1년( 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1월 7일 경인 6번째 기사/ 박건․오익․윤인․이경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건(朴楗)을 헌납으로, 오익(吳翊)․윤인(尹?)을 정언으로, 이경직(李景稷)을 주서로, 장세철(張世哲)을 충주 목사로,【세철은 일개 음관(蔭官)으로 특별한 재행(才行)도 없이 갑자기 3품에 올랐다. 세철은 이이첨(李爾瞻)의 문객(門客)으로 출세한 자이다.】 정묵(鄭黙)을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이덕형(李德泂)을 응교로, 임연(任?)을 직강으로 삼았다.【임연이 논박을 입자마자 이내 본직에 제수하였으니, 전조가 공론을 무시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영인본】 31 책 38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京兆, 松都, 水原) / 松都舊誌序 / 經歷  / ...金尙憲 戊申來號淸陰 奇協 戊申?  / 閔有慶 己酉來 尹? 庚戌來  / 李? 庚戌來 金德謙 壬子來  / 鄭黙 壬子來 李時楨 乙卯來  / <상권1013-3>/  鄭道 乙卯來 金致遠 乙卯來  / 李用晉 戊午來 鄭世美 庚申來...(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正月  / 十八日 己酉  / 禹俊民拜奏聞使 李渭濱拜水運判官 鄭黙拜刑佐 安鵠拜典籍 高彦伯拜陝川 李海壽拜刑議○尹承勳避嫌啓曰臣本庸●日前筵中辭語拙訥不能導達本意非徒身陷重?將使人臣以言爲戒請遞臣職 答曰退待物論○府啓李廷?事 答曰徐當發落(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三月  / 十七日 丁未  / 殿試出榜取趙守寅 趙中立 尹曙 許摘 李必榮 任守正 魚允謙 柳? 鄭弘翼 申鑑 宋錫慶 元虎智 柳希奮 閔機 梁夢說 金悌男 朴燁 李久澄 梁慶遇等十九人直兒見落向南陽可歎○楊布政 接伴官 閔善出去○丁允祐拜兵知 鄭黙拜工佐 元?拜固城 / <4권0296>/ 張承業拜咸從(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四月  / 十七日 丁丑  / 許宬拜吏議 李?光 金信元拜承旨 鄭黙拜黃判 金?拜平邱(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丁酉萬曆二十五年宣祖三十年 / 五月  / 十五日 乙巳  / 吳摠兵接伴使書目入來摠兵以本月初十日間當到鴨江云矣○李世溫拜平山 金虎秀拜信川 尹瓚拜濟判 李克新拜康津 趙稶拜刑正 鄭黙拜刑佐 李希得拜禮參 李仁雨拜綾城 宋諄拜參知 崔有源拜戶佐 兪大禎拜典籍(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四 / 庚子萬曆二十八年宣祖三十三年 / 正月  / 二十一日 丙寅  / 府啓大同察訪 鄭黙侵虐驛卒請罷依允○ 以下至二月二十一日缺(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五 / 壬寅萬曆三十年上 / 二月  / 二十四日 丁亥  / 雨鄭沆拜南兵使 李?拜懷德 鄭黙拜牙/ <5권0403>/ 山 尹民逸拜刑正 金尙憲拜禮正 李壽俊拜鐘城 金聃齡 申?拜監察(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五 / 壬寅萬曆三十年上 / 閏二月  / 十八日 辛亥  / 余參本寺請臺○韓泂拜長水 丁至拜茂朱 李輔拜居昌 韓彦?拜濟用正 姜?拜持平 崔光弼拜禮佐 辛景行拜司藝 文勵拜掌令 李自海拜保寧 鄭黙拜昌原判官 李汝賀拜奉簿○體察使狀啓茂朱縣監 成準 長水縣監 蔡?居官不職負戴撤屋者居多民不聊生闔境??請罷(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五 / 壬寅萬曆三十年上 / 四月  / 二十二日 癸丑  / 柳根拜禮判 李?光拜吏議 權泰一拜吏佐 趙玹拜稷山 鄭燮拜寧越 具義剛拜副校理 洪湜拜副修撰 洪喜拜長興主簿 趙挺拜同春秋 金宇?拜左副賓客安景濂拜畜坐 裵大維拜稷 缺 ○備忘記曰鐘城前府使 鄭曄差出之後托故徘徊偃然不赴人臣委質之義掃地無餘其習不可長仍任鐘城○李瑩拜驪州 金權拜延安 李逢春拜茂朱 金善餘拜瓮津 洪翼俊拜雲山 金宇?拜副學 李珙拜刑正 睦長欽拜吏佐 宋光啓拜奉常奉事 許昕拜奉常正 安大進拜司僕正 柳濯拜戶正 金順命拜軍器正 成/ <5권0432>/ 夢吉拜禮佐 金浩拜安山 文德敎拜刑佐 權昐拜文學 鄭黙拜工正 權處中拜工佐 金?拜冬至使 金時獻拜副使 裵應?拜管押使 李光庭拜奏請使 權憘拜副使○備忘記曰冊封中宮卽當奏請而此則有司不爲啓稟殊似顚倒先正國母然後倫紀立矣豈有無母之國乎吏批啓曰伏承 聖敎臣等不勝惶恐未安之至 中宮冊封之後奏請 誥命所當卽行之禮而只緣大禮未行故啓稟之事尙且遲緩有司之不察大矣令禮官更議定奪先後施行何如○鄭昌衍拜奏請使 李用諄拜副使 柳悅拜監役○院啓安山郡守 姜秀崑身有/ <5권0433>/ 重病久廢坐衙吏議爲奸民受其害請罷又啓曰春分後爲守令者不得?眷乃是法典所載而經亂以來禁防火毁率多?眷無所忌憚妨農害民莫此爲甚自今請一切禁斷○護軍 鄭仁弘上疏辭職 答曰卿不可辭歸之意予諭之非一卿何一向固執不少回耶無乃予有不可爲者耶今聞渡江之語良用瞿然故山烟月雖頻入夢待予許退浩然而歸亦何晩耶今乃經爲出城恐於事體未穩予聞猛虎高步山林狐狸爲之屛跡一直士之在朝其效豈淺淺哉何必卯進酉退區區於供職卿宜力疾斯速還來○余見柳根 許昕 李尙毅(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八 / 雨午萬曆三十四年宣祖三十九年上 / 三月  / 二十一日 己丑  / 奇孝福拜忠淸水使 任義拜高山 安旭拜監察 鄭曄拜星州 姜克裕拜義城 黃汝一拜金城 李顯英拜銀溪 兪昔曾拜兵正 安克悌拜工參 李繼先拜原州 鄭黙拜饔簿 宗簿正 金權尙 衣正 安昶相換○府啓新進文官自便成習假注書 金時言當此詔使出來之時乃敢稱病出去而政院亦不?檢惟以請出其代爲急請金時言罷職色承旨推考(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八 / 雨午萬曆三十四年宣祖三十九年上 / 六月  / 初四日 辛丑  / 李尙毅拜副學 韓孝純拜判義禁 趙安邦拜/ <035_0782>/ 三水 尹孝先拜正言 宋光啓拜刑正 吳靖拜司書 黃敬中拜兵佐 申?拜黃州 鄭黙拜嘉山 吳汝?拜禮佐 李尙信拜大成 田浹拜訓僉 權縉拜全羅京試官 趙希輔拜忠淸京試官 尹?拜慶尙京試官○府啓聖廟東?後壁有人夜書一時朝紳及人所不知之名遍滿於四間之廣居泮儒生爭相聚看傳播藉藉此卽匿名書也固不足言而但 聖廟至近之地有此?汚欲去其跡者擅自??洗濯以致舟?剝落請掌務官及其日上直官竝罷守僕亦爲囚禁治罪何如近來人心妖妄日益好怪或稱社長或稱居士/ <035_0783>/ 者周流四方?惑一世京則漢城府外則各道監司嚴立事目一切痛禁何如○尹暻 李思孝來見(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九 / 丙午下 / 八月  / 十九日 乙卯  / 柳時健拜大靜 洪昌義拜繕奉 李彦擇拜東/ <035_0814>/ 簿 洪命元拜高山 鄭黙拜忠都 鄭寅拜江都 金存敬拜黃都 任慶元拜北簿○權用中來見 以下三日缺(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九 / 丁未萬曆三十五年宣祖四十年上 / 閏六月  / 二十二日 癸未  / 趙英俊拜敦參 崔弘載拜直講 文偉拜繕簿 李慶?拜相禮 韓希祿拜往奉 許恒拜 廟奉 金洛瑞  / <035_0916>/ 拜濟奉 鄭恢遠拜禁都 鄭應淳拜苑坐 鄭黙 李孝信 李沖拜典籍 金義男 申繪拜蒙敎 韓會一拜四山監役 黃運稷拜北參 李洪鍾拜黃山 李?拜器簿 尹瑜拜 昌陵參奉 李夢虎拜戶佐 李俔拜說書 李復生拜火坐 金應鼎拜 敬陵參奉 奇誠獻拜厚坐○金德謙來見○ 以下四日缺(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한국사료 총서/ 묵재일기 하 / 9冊 / 嘉靖四十一年 壬戌 / 正月 小 壬寅  / 十一日丙申  / 晴, ○宿堂護孫, 孫服四物湯加入者半服, 藥水多故半分令服之, 午習文. ○不服藥物, 復覺左耳後一道疼氣沖上, 身困不平, 右手無力, 朝下見, 共食, 行碁. ○李輔卿來見去. ○鄭黙來問疾病, 鵬之孫云. ○李士碩來問, 李子雲病極苦矣. ○朴應麟來問妻病. ○吳子强來話, 謝書卷事, 昏乃去. ○柳察訪顥書問, 送生靑魚, 答謝. ○高郞金來現, 付鷹送之. ○牧使遺?. ○李敏楗來見. ○知禮人來傳挽一軸, 金繼暉所送, 十八日父柩發引, 往連山云云.(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45권/ 선조 26년( 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윤11월 22일 임인 10번째 기사/ 장운익이 유 총병에게 보낸 예물에 대해 보고하다/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ꡒ유 총병(劉總兵)에게 보내는 말을 가주서(假注書) 정묵(鄭黙)을 시켜 바쳤더니, 총병이 말하기를 ꡐ전에도 후한 예물을 받았는데 또 말을 보내 주시니 매우 감사하나 내가 평생에 싫어하는 것이 화색옥환(花色玉環)의 몸집이 작은 말이니, 과연 나를 사랑하시거든 청흑색 총마(?馬) 2필을 함께 보내주시면 한 필을 택하겠다.ꡑ 하고 그 말은 돌려보냈으므로, 끌어 왔다고 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내일 아침에 다시 어승(御乘)의 유총(楡?)과 자류(紫?)를 오늘 보냈던 화마(花馬)와 함께 바치며 ꡐ이 화마는 형체가 이러하기는 하나 잘 달리고 잘 걷는다. 국왕이 대인을 위하는 정성에는 극진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이제 다시 청마(靑馬)와 유마(?馬)를 바치니, 대인은 국왕의 정성을 살펴서 이 세 말을 모두 받으라. 국왕이 준마(駿馬)를 얻으면 뒷날에 당연히 휘하(麾下)에 바칠 것이다.ꡑ라고 말을 만들어서 내일 아침에 주서(注書)를 보내어 세 말을 거느리고 가서 총병에게 바치게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22 책 163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87권/ 선조 30년( 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4월 20일 경진 2번째 기사/ 헌납 김신국 등이 각 지방의 탐관오리를 체차시킬 것을 청하다/ 헌납 김신국(金藎國)이【대사간 신식(申湜), 사간 한준겸(韓浚謙).】 아뢰기를, ꡒ해주(海州)는 곧 영문(營門)이 있는 곳으로 옛부터 다스리기 어렵다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근래 관찰사가 가족을 이끌고 성 안에 머물러 있는가 하면 장사(將士)들이 떼를 지어서 모여 있습니다. 따라서 온갖 방법으로 침탈하기 때문에 공억(供億)의 번거로움을 견딜 수가 없고 또 관고(官庫)의 탕갈도 근래에 와서 더욱 심하여져 앞으로 지탱해 나갈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판관(判官) 이현(李賢)은 이웃 고을의 하찮은 사람으로서 항오(行伍)에서 발신하여 갑자기 그 직에 거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천시하고 업신여기니 결코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 체차하고 명망도 있고 위엄도 있는 문관으로 십분 가려서 보내소서. 상을 당한 사람을 기복(起復)시키는 것은 그 일이 참으로 중대하므로 장령(將領)의 직임에 있고 또 그의 거류(去留)에 중대한 관계가 있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함부로 시행하여서는 안 됩니다. 경주 판관(慶州判官) 도여국(都與國)과 청하 현감(淸河縣監) 도신국(都藎國)은 어미의 상을 당하여 그 직임을 버리고 갔는데 시신이 식기도 전에 서둘러 기복을 청하여 잉임(仍任)시켰으니 윤기(倫紀)에 손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관원으로서 상에 임하느라 그 폐해 또한 적지 않습니다. 주현(州縣)의 소관(小官)이 무슨 경중이 있다고 이처럼 구차스런 일을 하여 국가의 체모를 무너뜨리십니까? 더구나 서경법(署經法)이 법령에 드러나 있어서 방면(方面)의 신하로서는 감히 마음대로 청할 바가 아닌 데이겠습니까? 경상 감사 이용순(李用淳)을 추고하고 도여국 등을 기복하게 한 명을 환수하소서. 중국군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가 이미 반 달이 지났는데도 연로의 전보(轉報)가 전혀 없기 때문에 행지와 동정을 조정에서 까마득히 모르고 있어 조처에 관한 모든 일이 또한 이로 인하여 지연되니,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접반관(接伴官)과 평안 감사를 함께 추고하소서. 각도에 이미 파발(擺撥)의 규정을 설정하였는데도 서북 두 도는 두서가 없어서 위급한 보고를 제때에 잘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특별히 의논하여 거행토록 신칙하소서. 중국군의 발마(撥馬)에 따른 폐단은 각도 백성들의 크나큰 고통입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백성들의 고혈(膏血)이 여기에서 은연중 녹아나는데도 조정에서 살피지 않고서 경성의 발마까지 경기 백성에게 함께 책임지우니, 사리로 헤아려 볼 때 너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덥거나 비가 내리기만 해도 원망하는 것이 백성들인데 어찌 저 태양은 언제 없어질까 하는 탄식3755) 이 없겠습니까? 지난번 비변사가 경기 감사의 장계에 따라 병조에게 입마(立馬)를 구처하여 경기 백성의 폐해를 일분이나마 덜어주라고 하였으나, 병조가 이런 내용을 몸받지 않고서 다방면으로 억지로 변통하여 경기 고을에 분양하였던 비루먹은 말을 경기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서 전대로 입마토록 하였기 때문에 경기 백성의 입마의 고통은 전이나 다름이 없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자도 있으니,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병조의 색낭청(色郞廳)은 추고하고 경성의 발마는 당초 비변사에 계하한 공사(公事)대로 시행하여 경기 백성에게 폐해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또 개성 유수(開城留守) 성수익(成壽益)은 나이가 많아 이처럼 대군이 지경을 지날 적에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체차시키소서. 황주(黃州)는 해서(海西) 지방의 직로(直路)로 본래 번극한 곳으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지금은 병사(兵使)가 목사(牧使)의 호칭을 겸하고 있어 온 고을의 크고 작은 사무가 모두 판관에게로 몰려들고 있고, 또 갓 설치한 병영(兵營)이라 규모가 확정되지 않아서 장사를 지대(支待)하는 즈음에 폐단이 날로 불어나고 있으니, 결코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자리가 아닙니다. 비변사가 이심(李?)의 체직을 청한 뜻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새 판관 정묵(鄭黙)은 인재라고 일컫지만 전임 판관보다 썩 특이한 점이 없는데도 상례대로 의차(擬差)하였으므로 물정(物情)이 매우 미편하게 여깁니다. 체차시키고 십분 가려서 보내소서. 수원(水原)은 경기의 큰 고을로 양호(兩湖)의 요충지이자 서울의 보장지(保障地)이고 또 산성을 지키는 일과 군병을 조련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사(府使) 유영건(柳永健)은 나이 많은 음관(蔭官)으로 외람되이 중임의 자리에 있으면서 직무를 전혀 살피지 않기 때문에 온갖 일이 폐이(廢弛)되었는데 아전들이 이를 인연하여 간계를 부려서 백성의 원망이 자자합니다. 이처럼 위급한 즈음을 당하여서는 결코 이러한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됩니다. 파직시키고 그 대임은 재간이 문무를 겸비한 사람으로 십분 가려서 보내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아뢴 대로 하라. 도여국 등의 일은 비변사에 물어서 의논하여 조처하라.ꡓ/ 【영인본】 23 책 203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법제(法制) / *재정-창고(倉庫)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육운(陸運) / *인물(人物) / *과학-지학(地學) /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 / *군사-통신(通信) / *구휼(救恤) / *윤리(倫理)/ [註 3755]저 태양은 언제 없어질까 하는 탄식 : 백성이 군상(君上)을 몹시 원망하는 것을 이르는 말. 상(商)나라 걸(桀)의 정사가 하도 포학하여 백성들이 걸이 자처한 태양을 가리키며 ꡒ저 해는 언제 없어질까?ꡓ 하고 탄식하였다는 데서 온 말임. 《서경(書經)》 상서(商書), 탕서(湯誓). ☞(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122권/ 선조 33년( 1600 경자 / 명 만력(萬曆) 28년) 2월 20일 갑오 1번째 기사/ 지평 윤홍이 경상 감사 한준겸과 대동 찰방 정묵 등의 파직을 청하다/ 지평 윤홍(尹宖)이 와서 아뢰기를, ꡒ남이신을 파직시키소서. 경상 감사 한준겸(韓浚謙)은 외람되이 아권(衙眷)을 데리고 가서 두 곳에 나누어 주거(住居)하게 하여 영(營)이라 호칭하고 온갖 지공(支供)을 각 고을로 하여금 판출해 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장빙(藏氷)에 동원되는 1정(丁)의 댓가를 포목(布木)으로 환산해서 받는 등 그가 자행하는 탐학한 짓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설(裵楔)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나라를 저버린 역적으로서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분노하며 미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가 방형(邦刑)을 받을 적에는 여정(輿情)이 모두 통쾌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한준겸은 단지 인아(姻?)라는 것 때문에 사대부의 장산(葬山)을 빼앗고 또 호상(護喪)하는 군관(軍官)을 보내어 적의 뼈를 완전히 묻도록 하였습니다. 또 유형(柳珩)이 조익(趙翼)을 장살(杖殺)하였을 적에도 사심을 써서 비호하여 비종(臂腫)으로 사망하였다고 천청(天廳)을 속였으니 무겁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잡아다 추국하여 그의 죄를 바루소서. 이뒤로 양계(兩界) 이외에 새로 감영(監營)을 설치하는 것과 법외(法外)에 가권(家眷)을 데리고 가는 것은 하서하여 일체 금하도록 하고, 만일 법을 무시하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적발하는 대로 통렬히 다스리소서. 판교(判校) 이형(李瑩)은 명망이 본디 가벼워 사람에게 천시당하는 데다가 술을 너무 즐겨 병이 생겼고 나이 또한 노쇠하였으니 괴원(槐院)의 장관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체차하소서. 대동 찰방(大同察訪) 정묵(鄭黙)은 본디 탐오하고 비루한 사람으로 본직을 제수받자 오로지 화뢰(貨賂)만을 일삼았는데 심지어 입마(立馬)에 있어서도 그 진퇴(進退)가 공평하지를 못하여 기필코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에 조공(朝貢)하는 역로(驛路)가 날로 잔폐하게 만들고 있으니 파직시키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남이신은 파직할 필요가 없다. 한준겸의 일은, 그 중에서도 배설에 대한 일이 너무도 해괴하고 경악스럽다. 배설은 임금을 저버리고 도주한 역적이다. 준겸이 만일 자기 임금의 아들을 무시하고 자기 임금의 역적을 장사지냈다면 인신(人臣)의 대의가 모조리 없어진 것이다. 이는 인심을 지닌 자의 소위가 아니다. 준겸이 어찌 이렇게까지 했겠는가. 풍문이 와전되었을 수도 없지 않으니 다시 상세히 살핀 후 추후에 다시 논하라. 더구나 지금은 춘신(春?)의 때로서 아침 저녁이 우려되는 시기인데 이런 때에 방백(方伯)을 교체시키는 것은 역시 곤란한 일이다. 윤허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서하여 시행하게 하라. 그러나 중외를 규찰하는 책임은 오로지 헌부에 있고 외람된 거짓을 금하는 것도 헌부의 책임인 것이다. 이처럼 결딴난 때를 당하여 사람들의 목숨이 실처럼 겨우 끊기지 않고 있으니 사치한 습관과 외람된 의복도 통렬히 금해야 할 것이다.ꡓ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천하의 악(惡)은 같은 것이다. 배설이 임금을 버리고 도주하였으니 그 죄가 천지에 사무쳤는데도 준겸이 감히 호상하여 장사를 지냈다. 그러니 부도(不道)의 주벌을 어찌 면할 수가 있겠는가./ 【영인본】 24 책 39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군사(軍事) / *역사-사학(史學)(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133권/ 선조 34년( 1601 신축 / 명 만력(萬曆) 29년) 1월 8일 정미 5번째 기사/ 이성록․이심․신설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사가【도목(都目).】 있었다. 이성록(李成祿)을 시강원 필선으로, 이심(李?)을 홍문관 부교리로, 신설(申渫)을 의정부 사인으로, 이흡(李洽)을 시강원 문학으로, 김정목(金廷睦)을 성균관 사예로, 오윤겸(吳允謙)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유석증(兪昔曾)을 병조 좌랑으로, 임학령(任鶴齡)을 호조 좌랑으로, 정묵(鄭黙)을 형조 좌랑으로, 안극인(安克仁)을 남평 현감(南平縣監)으로 삼았다./ 【영인본】 24 책 17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134권/ 선조 34년( 1601 신축 / 명 만력(萬曆) 29년) 2월 12일 신사 3번째 기사/ 유근․성영․조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근(柳根)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성영(成泳)을 예조 참판으로, 조익(趙翊)을 시강원 필선으로, 이성록(李成祿)을 사헌부 장령으로, 이지강(李之綱)을 호조 정랑으로, 윤수민(尹壽民)을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배응경(裴應?)을 대구 부사(大丘府使)로, 정묵(鄭黙)을 황해 도사(黃海都事), 유황(柳璜)을 고령 첨사(高嶺僉使)로 삼았다./ 【영인본】 24 책 19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170권/ 선조 37년( 1604 갑진 / 명 만력(萬曆) 32년) 1월 24일 을해 3번째 기사/ 충청 감사 유근이 아산에서 기형 강아지가 태어났음을 보고하다/ 충청 감사 유근(柳根)이 장계하기를, ꡒ아산 현감(牙山縣監) 정묵(鄭黙)의 첩정(牒呈)에 ꡐ수원(水原)에 사는 사노(私奴) 세복(世福)이 본현(本縣)을 지날 즈음에 데리고 다니던 암캐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앞다리가 둘이고 뒷다리가 넷이며 뒷구멍이 둘이었다.ꡑ라고 하기에 가져와서 살펴보았더니, 앞다리가 둘이고 뒷다리가 넷인데 다리 하나는 허리 위에 붙었고 뒷구멍도 둘이니 변괴가 비상하다 하겠습니다.ꡓ하였는데, 예조에 계하하였다./ 【영인본】 24 책 562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200권/ 선조 39년( 1606 병오 / 명 만력(萬曆) 34년) 6월 4일 신축 4번째 기사/ 이상의․이상신․황경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상의(李尙毅)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이상신(李尙信)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황경중(黃敬中)을 병조 좌랑으로, 오정(吳靖)을 시강원 사서로, 송광계(宋光啓)를 형조 좌랑으로, 정광성(鄭廣成)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오여발(吳汝撥)을 예조 좌랑으로, 윤효선(尹孝先)을 사간원 정언으로, 신보(申?)를 황주 목사(黃州牧使)로, 조안방(趙安邦)을 삼수 군수(三水郡守)로, 정묵(鄭黙)을 가산 군수(嘉山郡守)로 삼았다./ 【영인본】 25 책 20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202권/ 선조 39년( 1606 병오 / 명 만력(萬曆) 34년) 8월 19일 을묘 3번째 기사/ 정묵․김존경․유시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묵(鄭黙)을 충청 도사로,【사람됨이 용렬하다.】 정인(鄭寅)을 강원 도사로,【사람됨이 용렬하고 몸가짐이 더러웠다.】 김존경(金存敬)을 황해 도사로,【사람됨이 잗달았다.】 유시건(柳時健)을 대정 현감(大靜縣監)으로, 홍명원(洪命元)을 고산 찰방(高山察訪)으로 삼았다./ 【영인본】 25 책 25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정묵 [記事] : 선조실록 214권/ 선조 40년( 1607 정미 / 명 만력(萬曆) 35년) 7월 8일 무술 2번째 기사/ 평안도 관찰사 박동량이 도내의 홍수․우박․황충 등에 관해 치계하다/ 평안도 관찰사 박동량(朴東亮)이 치계하기를, ꡒ의주 부윤(義州府尹) 한덕원(韓德遠), 용천 군수 고희, 곽산 군수(郭山郡守) 송강(宋康), 선천 군수(宣川郡守) 이심(李?)의 첩정(牒呈)에 ꡐ지난 10월 17일 유시(酉時)에서 10일 해시(亥時)까지 물을 쏟아붓듯이 조금도 쉬지 않고 큰비가 내려 홍수가 범람하였기 때문에 하천변에 살던 인가가 모두 표류되고 인물(人物)이 빠져 죽기도 하였다. 같은 달 20일에는 비와 우박이 함께 내렸는데 아이들 주먹만 하여 지나간 곳마다 곡식이 손상되었다. 사태(沙汰)로 파묻히기도 하고 침수되기도 하여 근고(近古)에 없는 수재이다.ꡑ 하였고, 평양 서윤(平壤庶尹) 이홍주(李弘?), 가산 군수(嘉山郡守) 정묵(鄭黙), 선천 군수 이심, 용천 군수 고희, 의주 부윤 한덕원, 곽산 군수 송강의 첩정에 ꡐ각면(各面)의 전답에는 황충이 가득 번졌는데, 처음에는 한두 잠 잔 누에 같더니 날로 점점 치성하여 지금은 곡식이 손상되고 심한 곳은 빈 대만 남아서 전혀 추수를 할 가망이 없으니 백성의 일이 몹시 걱정된다.ꡑ 하였습니다.ꡓ하였는데, 예조에 계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관서(關西) 1도(道)는 경계가 중국과 접해 있으니, 우리 나라가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西路)가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보존되지 못하였더라면 중국의 도움을 못받았을 것이다. 금년의 흉작은 팔도가 매한가지이나 서로가 더욱 심하니 변경(邊警)이라도 있게 되면 국가는 무엇을 믿겠는가./ 【영인본】 25 책 352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농업-농작(農作) / *역사-사학(史學)(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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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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