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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90:홍서룡(1615-1619)
작성자장병창 @ 2013.05.25 06:30:19

  예천고을원(90) : 홍서룡(1615-1619) : 삼강리 강당이 세워질 때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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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서룡(洪瑞龍)은 1615년(광해군 7) 황중립 군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1619년(광해군 11)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1605년(선조 38) 1월 4일에 사헌부 감찰을 제수받았고, 포천 현감(1605년 7월 3일) 때는 경기암행어사 심집이 암행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ꡒ포천현감 홍서룡은 권세가와 백성에게 부역을 균등히 매겼습니다ꡓ라고 하였다.(1606년 3월 1일)

  또 경기 암행어사 박사제의 보고에 대하여 임금이 전교하기를, ꡒ포천현감 홍서룡은 한 계급씩을 올려주라ꡓ라고 하였다. 1609년(광해군 1) 4월 17일에는 증산 현령을 이임하였고, 1615년에 예천 군수로 부임하였다.

  홍서룡이 예천고을 원으로 있을 무렵인 1615년 8월 2일 예천에 사는 충찬위 이사음이 빚을 받기 위해 부탁하여 문경천을 가두었는데, 문경천이 전옥 참봉에게 역변 사항을 고발하였다.

  1616년 12월 12일에는 의금부 죄인인 이유경을 용궁, 법진을 예천에 귀양을 보내었다. 1617년 11월 14일 역적의 괴수 자양이 공초 중에 이르기를 ꡒ영주의 옥문을 부술 때에 대장 7명이 있었는데, 제2대장 모진금이는 용궁에서 체포되었고, 제3대장인 저는 영주의 관리가 체포하고…ꡓ라고 하였다. 용궁, 예천 등지의 고을에서 체포한 역적들은 다 기록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1616년(광해군 8)에는 청풍자 정윤목이 풍양면 삼강리에 강당을 창건하고 `백세청풍'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540號 2002-12-28 10:45:23)

 

홍서룡(洪瑞龍) : 1615년(광해군 7)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605년(선조 38) 1월 4일에 사헌부 감찰을 제수받고, 포천 현감(抱川縣監, 1605.7.3)일 때는 경기암행어사 심집이 암행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기를, "포천현감 홍서룡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을 균등히 매겼습니다." 라고 하였다(1606.3.1). 또 경기암행어사 박사제(朴思齊)의 서계(書啓)에 대하여 왕이 전교(1608.8.16)하기를, "포천현감 홍서룡은 한 계급씩을 올려주라" 라고 하였다. 1609년(광해군 1) 4월 17일 증산 현령(甑山縣令)을 이임하였고, 1615년에 예천 군수로 부임하였다.(光海君日記 1611.2.10)

 

  홍서룡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죽계일기 / 竹溪日記卷之七 / 乙巳萬曆三十三年宣祖三十八年上 / 正月  / 初一日 丙子  /  自昨昏雨終夜至晝○ 以下二日缺  / <035_0629>/ 初四日 己卯  / 許筬拜兵判 申欽拜都承旨 兪大禎拜羅州 李慶千拜富平 申忠一拜博川 辛成己拜高城 李恪拜喬桐 李廷益拜果川 李時益拜沃溝 朴弘老拜禮判 邊應璧拜戶佐 尹?拜刑佐 李逢春拜工佐 朴瑾拜延日 尹暘拜驪州 邊應井拜長? 朴東善拜通禮 李善復拜僕正 尹暻拜直講 金球拜器簿 申橈拜禮正 南? 洪瑞龍拜監察 院啓慶源府使 李士寅出身之後別無名稱而以前縣監陞授僉使今又超遷堂上請改正又啓曰初入仕爲發身之階而近年以來公道不行不問人器之當否惟視請托之高下仕 / <035_0630>/ 路之淆雜職此之由忠臣烈士淸白吏子孫及草野經明行修之人廣加搜訪抄擇置簿以備薦用何如(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한국사료 총서/ 계암일록 상 / 溪巖日錄 三 / 丁巳 / 十月  / 六日  / 邇日每朝大霧, 盡則晴暖去, 六月盜入榮川官藏中, 偸取稅布五六百疋, 郡守 趙?韓發軍尋捕獲於大仁縣, 盜畜三妻, 寶物充滿其家, 眞劇魁也, 先是豊基黃承旨是, 豊山 李?皆被偸患失亡無數, 至是俱在於此盜, 珍寶貨物, 或多尋得, 囚之獄杖訊之, 去晦夜, 其徒百餘騎馬分三路擊鼓鳴鉦, 呼李行首安在, 盜應曰, 汝等來何晩, 遂脫出而去, 郡中震駭, 莫敢誰何, 翌日趙?韓遣軍官追跡之, 至于醴泉, 郡守 洪瑞龍, 挾前憾不時應接, 盜由是失捕, ?韓急?安東, 見監司 尹暄訴之, 暄移閑各邑, 四出尋索, 皆云踰月嶽山入湖西界, 而不能得, 是時以盜變, 道路設?譏察, 行人以風聞及或出於賊口, 掩捕無時, 或有橫罹者矣. ○城主子李德休 子逸, 猝得風病, 慮慮, 此人謙恭可取.(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선조실록 183권/ 선조 38년( 1605 을사 / 명 만력(萬曆) 33년) 1월 4일 기묘 4번째 기사/ 박홍로․허성․성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홍로(朴弘老)를 예조 판서로, 허성(許筬)을 병조 판서로, 성영(成泳)을 지중추부사로, 신흠(申欽)을 승정원 도승지로, 박동선(朴東善)을 통례원 좌통례로, 이선복(李善復)을 사복시 정으로, 신요(申撓)를 예조 정랑으로, 윤경(尹暻)을 성균관 직강으로, 변응벽(邊應璧)을 호조 좌랑으로, 윤인(尹認)을 형조 좌랑으로, 이봉춘(李逢春)을 공조 좌랑으로, 남벌(南?)을 사헌부 감찰로, 홍서룡(洪瑞龍)을 사헌부 감찰로, 민경기(閔慶基)를 홍문관 부수찬으로, 오익(吳翊)을 예문관 대교로, 윤양(尹暘)을 여주 목사(驪州牧使)로, 유대정(兪大禎)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이경천(李慶千)을 부평 부사(富平府使)로, 신성기(辛成己)를 고성 군수(高城郡守)로, 박엽(朴燁)을 평양 서윤(平壤庶尹)으로, 이충일(李忠一)을 박천 군수(博川郡守)로, 이정익(李廷益)을 과천 현감(果川縣監)으로, 이각(李恪)을 교동 현감(喬桐縣監)으로, 박근(朴瑾)을 연일 현감(延日縣監)으로, 정응정(鄭應井)을 장기 현감(長?縣監)으로, 이시익(李時益)을 옥구 현감(沃溝縣監)으로 삼았다./ 【영인본】 25 책 1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선조실록 189권/ 선조 38년( 1605 을사 / 명 만력(萬曆) 33년) 7월 3일 을해 2번째 기사/ 오억령․전유형․임장․오정․현극․이산배․홍서룡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억령(吳億齡)을 사헌부 대사헌으로,【일찍이 좋은 평판을 들었으나 강직한 기절이 없으니, 기강을 진작시키는 것은 절대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유형(全有亨)을 감찰로,【문과 장원이다.】 임장(任章)을 설서(說書)로, 오정(吳靖)을 주서(注書)로, 현극(玄極)을 평안 우후(平安虞候)로, 이산배(李山培)를 사천 현감(泗川縣監)으로, 홍서룡(洪瑞龍)을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삼았다./ 【영인본】 25 책 8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선조 197권, 39년( 1606 병오 / 명 만력(萬曆) 34년) 3월 1일 기사 3번째 기사/ 경기 암행 어사 심집이 암행 결과를 보고하다/ 경기 암행 어사 심집(沈?)이 아뢰었다. ꡒ이천 부사(利川府使) 이광길(李光吉)은 처사가 정미롭고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이에 힘입어 농사에 전력할 수 있습니다. 신이 도내를 두루 다녀보았지만 광길과 같은 자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습니다. 양근군(楊根郡)은 강 상류의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다 토지가 척박하여 사람이 살 길이 없으므로 성인구(成仁耈)가 사랑으로 돌보지 않았다면 개와 닭의 소리를 경내(境內)에서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김포 현령(金浦縣令) 이유청(李幼淸)은 인품이 너그럽고 치민(治民)에 익숙하여 명예에 힘쓰지 않고 매사를 착실히 처리하였으므로 처음에는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으나 점차 실적이 쌓여져 가고 있습니다. 용인 현령(龍仁縣令) 안종길(安宗吉)은, 용인이 경기 지방의 대로변으로 영남과 호남의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 밤낮으로 노심 초사하여 오랜 동안 게을리하지 않고 대소의 공행(公行)을 깍듯이 접대하는가 하면 상사의 호령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받들어 시행하면서 그토록 잔폐하던 고을을 아주 부유한 고을로 바꾸어 놓았으니 그의 주도 면밀한 재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이 관문(官門)을 나서자마자 박해의 원성을 호소한 것은 부평(富平)의 백성이었고, 경내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유망가자 길에 이어진 것은 영평(永平)의 백성이었습니다. 김정목(金廷睦)의 범람한 행위는 한둘이 아니어서 첩을 세 명이나 거느리는가 하면 사객(私客)이 늘 아문에 머물러 있고 술과 고기로 나날을 보내며 침학(侵虐)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부사 황치경(黃致敬)이 쌓아 둔 곡식과 안집시켜 놓은 백성이 곧바로 흩어질 형세였습니다. 이위(李?)의 아둔하고 용렬한 꼴은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술과 떡을 자주 아전에게 요구하는가 하면 매사를 향소(鄕所)에서 결재하다가 신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서는 몸소 장부를 안고 달아났으니, 그러한 거조만 보아도 백성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산 군수(安山郡守) 박순원(朴舜元)과 양지 현감(陽智縣監) 정응성(鄭應星)은 성혼한 자식을 아문에 거느리고 있었는데 응성은 지난달 초승에 분가로 보냈다고 합니다. 수원 부사(水原府使) 이경준(李慶濬)은 치적이 온 도내에서 으뜸이고 장단 부사(長湍府使) 김덕함(金德?)은 청고(淸苦)한 소신을 지켰으므로 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사랑하였습니다.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賦役)을 균등히 매겼고 통진 현감(通津縣監) 유열(柳悅)은 해묵은 폐정(弊政)을 하루아침에 제거하였으니, 이 네 사람은 치적은 매우 좋으나 모두가 부임한 지 아직 오래지 않습니다.

 

  양주(楊州) 사람들은 윤의립(尹義立)을 사모하여 구리를 모아 거사비(去思碑)를 세우려 하였고, 죽주(竹州) 사람들은 이유홍(李惟弘)을 추모하기 위하여 방금 비석을 세워 덕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체직된 수령이므로 추론(追論)할 것은 없으나 민간에게 사랑과 은혜를 끼친 일은 묻어버릴 수 없기 때문에 상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ꡓ/ 【영인본】 25 책 167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16일 경오 1번째 기사/ 경기 암행 어사 박사제의 서계에 대하여 전교하다/ 경기 암행 어사 박사제(朴思齊)의 서계에 대하여 전교하였다. ꡒ양성 현감(陽城縣監) 이의전(李義傳),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 경기 수사 김거병(金去病) 등은 우선 한 계급씩을 올려 주고, 가평 군수(加平郡守) 이집중(李執中), 김포 현령(金浦縣領) 유호(柳浩), 연천 현감(漣川縣監) 윤백순(尹百順) 등은 우선 파출할 것이며, 그 나머지 수령의 상벌 및 민간들의 병폐에 대한 일은 해조에 내려보내어 회계하도록 하라.ꡓ/ 【영인본】 31 책 340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17일 신미 6번째 기사/ 정언 한찬남이 산릉 도감의 제조와 도청을 속히 파할 것 등을 아뢰다/ 정언 한찬남이 연이어 아뢰기를, ꡒ산릉 도감의 제조와 도청을 모두 속히 파직하소서. 선왕 때부터 모든 수령․변장이 아무리 성적(聲績)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칠사(七事)의 수행과 군정(軍政)의 실적이 두세 번 드러난 뒤에 가서 비로소 논상을 허락하고, 그 나머지 사소한 공로에 대해서는 으레 승서(陞?)․표리(表裏) 등의 적당한 상전을 베풀고 말았던 것은, 상전에 있어서 신중을 기한 뜻이 지극하다 할 만합니다. 근래에 명기(名器)가 점차 가벼워지면서 요행의 문이 활짝 열리어, 고산리 첨사(高山里僉使) 임의(任義), 경기 수사 김거병(金去病),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弘瑞龍), 양성 현감(陽城縣監) 이의전(李義傳)이 어사의 진계(陳啓)로 인하여 상가(賞加)의 명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이렇다 할 만한 성적이 못 되고 보통 직분 내의 일에 불과한데도 특별히 자궁(資窮)을 이유로 금관자․옥관자의 반열에 승서하였으니, 작상(爵賞)이 너무 난잡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도의 어사가 필시 차례로 올라와서 진계를 할 터인데, 만약 이러한 선례를 따라 품제(品題)를 하여 일일이 논상을 한다면, 공 있는 자를 포상하고 덕 있는 자를 임명하는 법전이 어찌 아무에게나 함부로 벼슬을 준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말세의 인심이 하도 교사하여 공을 바라고 상을 노리는 무리들이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이미 폐습을 이루고 있는 데이겠습니까. 임의는 본시 미천한 사람으로서 부당하게 당상에 오른 것만도 이미 분수에 넘친 벼슬인데, 그럼에도 또 제집 종을 사주하여 함부로 거짓 상언(上言)을 하여 교묘히 기회를 맞추었고, 김거병은 북도의 변장을 회피하고 갑자기 경기의 중진(重鎭)으로 전환하였다가, 바야흐로 물의가 일자 군졸을 사주하여 정장(呈狀)을 허위로 꾸며서 사명(使命)을 기만하였으므로,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의전․홍서룡 등에게 내려진 상가의 승전을 거행하지 마시고, 임의․김거병 등은 모두 파직하고 개정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산릉 도감 당상과 도청은 이미 추고를 하였으므로 파직을 할 필요가 없고, 수령 이하에게 내려진 상가는 곧 치적을 포장하는 것인데, 논개(論改)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341 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18일 임신 7번째 기사/ 정언 한찬남이 산릉 도감의 제조와 도청을 파할 것 등을 아뢰다/ 정언 한찬남이 연계하여 산릉 도감의 제조와 도청을 파직하고 이의전(李義傳)․홍서룡(洪瑞龍) 등에 대한 상가(賞加)의 승전을 거행하지 말며, 임의(任義)․김거병(金去病) 등은 모두 파개(罷改)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ꡒ산릉 도감의 제조와 도청은 이미 추고를 하였으므로 파직할 필요가 없고, 이의전은 치민을 잘 하였으므로 포장을 넉넉히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임의와 김거병은 국사에 힘을 썼고 몸가짐도 청근(淸謹)한데, 한 등급의 가자가 무어 아깝겠는가. 그럼에도 포장으로 인하여 도리어 파개를 청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맥이 풀리게 하는구나. 번거로운 논의를 말라.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343 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19일 계유 5번째 기사/ 정언 한찬남이 이의전 등에 대한 상가를 거행하지 말 것 등을 아뢰다/ 정언 한찬남이 연계하기를, ꡒ이의전․홍서룡 등에 대한 상가(賞加)를 거행하지 마소서. 평강 현감(平康縣監) 안복선(安復善)은 형편상 혼자만이 면할 수 없습니다. 개정할 것을 명하소서. 임의․김거병 등은 파직, 개정할 것을 속히 명하소서.ꡓ하고, 장령 윤길이 아뢰기를, ꡒ신들이 삼가 보건대, 어사의 서계로 인하여 경기 수사 김거병, 포천 현감 홍서룡, 양성 현감 이의전, 평강 현감 안복선을, 다같이 치적이 좋다는 이유로 특별히 가자를 명하셨습니다만, 수령들의 치적이 좋다고 하는 것은 기어코 다 진실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반드시 그 관직에 오랜 기간 재직하면서 종시 태만하지 않아서 남들의 이의가 없은 뒤에야 바야흐로 권려하는 뜻으로 가자를 시행하는 법입니다. 혹시라도 지나치게 시행할 것 같으면 명기(名器)가 존중되지 않아서 도리어 맥이 풀리는 사람이 많게 됩니다. 현감은 바로 막 출륙(出六)한 낮은 관직인데, 지금 만약 치적이 좋다는 장계 하나로 인하여 허다한 품계를 뛰어넘어 곧장 당상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실로 근고 이래 아직 없었던 일입니다. 김거병은 북관(北關)을 회피하고 경기의 보직을 받으려 했기 때문에 물의가 있는데도 사명(使命)을 속이고서 도리어 은상(恩賞)을 차지하였고, 고산리 첨사(高山里僉使) 임의는 비록 성을 쌓은 노고는 있다고 치더라도, 이는 곧 그의 직분 내의 일이므로 상가를 받을 만한 공은 절대로 못 되는데도 종을 사주하여 상언을 하도록 하여 은명을 간청하였으니, 너무도 교사한 짓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벌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지, 상을 줄 수는 없습니다. 홍서룡․이의전․안복선 등에 대한 가자의 승전을 거행하지 마시고, 김거병․임의 등도 함께 파직, 개정을 명하소서.ꡓ하니, 양사에게 답하기를, ꡒ탐욕스런 탐관오리들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러한 때에 이의전 등은 치민을 잘하여서 치적이 아주 뛰어났다. 내가 처음 집정하면서 이들에게 특별히 상전을 내리는 것이 무어 나쁘겠는가. 임의는 오랫동안 변방에 있으면서 국사에 힘을 다하였고, 김거병은 청렴하고 근신한 신조를 지키며 군졸을 잘 보살폈으니, 이같은 사람에게는 은총을 베풀어 사기를 높여 주는 것이 옳다. 번거로운 논의를 말라.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343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光海君日記 7卷/ 光海君 卽位年( 1608 戊申 / 명 만력(萬曆) 36年) 8月 19日 癸酉 6번째 기사/ 장령 윤길이 이의전 등에 대한 상가를 거행하지 말 것 등을 아뢰다/ ○司憲府啓曰: ꡒ臣等伏見因御史書啓, 京畿水使金去病、抱川縣監洪瑞龍、陽城縣監李義傳、平康縣監安復善, 俱以善治之故, 特命加資, 守令之號稱善治者, 未必皆眞實。 故必久於其職, 終始不怠, 人無異議, 然後方施勸勵之資。 若或濫施, 則名器不重, 反多解體之人矣。 縣監乃?出六品之微官, 今若以一遭善政之啓, 超越許多品級, 直?堂上, 則實近古以來所未有之擧也。 金去病謀避北關, 圖授畿鎭, 方有物議, 而欺誣使命, 反占恩賞。 高山里僉使任義, 雖有築城之勞, 是乃渠職分內常事, 絶無可賞之功, 而嗾奴上言, 以干恩命, 極爲詐濫。 如此等人, 宜罰而不可賞。 請洪瑞龍、李義傳、安復善, 加資承傳, 勿爲擧行, 金去病、任義, 竝命罷職改正。ꡓ 答兩司曰: ꡒ當此汚吏肆欲, 赤子倒懸之日, 李義傳等, 善於臨民, 治績茂著。 予於初服, 特施嘉乃之典, 有何所傷? 任義, 長年塞上, 力於國事, 金去病, 淸謹自持, 撫恤軍卒, 如此之人, 寵擢聳動, 可矣。 勿爲煩論。ꡓ/ 【영인본】 31 책 343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20일 갑술 11번째 기사/ 정언 한찬남이 이의전 등에 대한 상가를 거행하지 말 것 등을 아뢰다/ 정언 한찬남이 연계하기를, ꡒ이의전․홍서룡․안복선 등에 대한 상가(賞加)의 승전을 거행하지 마소서. 임의․김거병 등을 속히 파직 또는 개차하도록 명하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이의전 등은 현감으로서 당상에 오른 것이 분수에 넘친 듯하다고 하니, 우선 따르겠으나, 임의․김거병 등은 권선(勸善)의 은전을 가지고서 도리어 파직시킬 것을 청하니, 어찌 미안한 일이 아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344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7권/ 광해군 즉위년( 1608 무신 / 명 만력(萬曆) 36년) 8월 20일 갑술 12번째 기사/ 이의전․홍서룡․안복선을 모두 승서하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ꡒ이의전․홍서룡․안복선을 모두 승서(陞?)하라.ꡓ/ 【영인본】 31 책 345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광해군일기 15권/ 광해군 1년( 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4월 17일 무진 4번째 기사/ 사간원이 조사의 행차 때 역참에 안 나온 증산 현령 홍서룡 등의 나국을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ꡒ조사(詔使)의 행차가 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성상께서 왕인(王人)을 공대하는 뜻이 지성에서 나와 백관을 신칙하며 항상 한 가지 일이라도 미진할까 염려하는데, 지금 증산 현령(甑山縣令) 홍서룡(洪瑞龍), 함종 현령(咸從縣令) 임경원(任慶遠)은 모두 병을 핑계로 역참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감사는 조정의 조처만을 청하였고 해조의 회계는 본도로 하여금 추고하게 하여 마치 대단치 않은 죄과처럼 하였으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평안 감사 이시발(李時發)과 예조의 담당 낭청을 추고하소서. 홍서룡과 임경원도 함께 나국을 명하고 그 대임을 속히 차출하여 내일 안에 내려보내소서.ꡓ하니, 답하기를, ꡒ이 때 서도의 수령을 잡아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우선 조사가 돌아가기를 기다림이 좋겠다. 〈 추고하라.〉 ꡓ하였다./ 【영인본】 31 책 416 면/ 【분류】 *외교-명(明)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원년 8월 9일 (정묘) 원본2책/탈초본1책 (6/7)  1623년 天啓(明/熹宗) 3년/ 點兵 때 병을 이유로 오지 않는 金? 등을 罷黜하였다는 都元帥의 서목/ ○ 都元帥書目, 點兵時稱兵不來, 白川縣監金?, 信川郡守洪瑞龍, 松禾縣監申喜孫罷黜事。(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4년 6월 17일 (무자) 원본13책/탈초본1책 (23/35)  1626년 天啓(明/熹宗) 6년/ 5寸叔의 訃音으로 百官 呈文에 참석하지 못하여 遞職을 청하는 洪命耈의 계/ ○ 持平洪命耈啓曰, 詔使回還間, 例爲除服制式暇, 而臣於十五日百官呈文之時, 聞同姓五寸叔金山郡守洪瑞龍訃音, 私情切於會哭, 未得進參, 方在應推之中, 請遞斥臣職。 答曰, 勿辭。(www.history.go.kr 2007)

 

  홍서룡 : 양주-홍서룡(洪瑞龍)묘갈| 묘지관련금석문/ 한풀 | 2003.10.22 17:23/ http://cafe.daum.net/myojy/G4WN/107/ 홍서룡(洪瑞龍)/ [원 문] : 有明朝鮮國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 經筵贊官行通訓大夫金山郡守洪公墓碣/ 公諱瑞龍字汝見南陽人遠祖諱悅佐麗祖位太師代襲冠冕入我 朝猶盛曾祖諱係貞藝文館/ 待敎祖諱春卿黃海監/ 司考諱天民都承旨曰恩津宋氏淸風郡守世勁之女公生于嘉靖庚申卒于天啓丙寅享年六/ 十七自金山任所返葬/ 于先塋之內辛坐乙向之原乃是年八月也公賦淸明英華發外對人言語輒傾倒開懷抱無表/ 之行公之繼興陽/ 柳氏議政公卽其出也公承顔養志友于兼至五十餘年如一日平居守靜不喜交遊故舊之致位/ 貴顯者有時來過而公/ 未嘗一跡其門恥隨流俗俯仰承其恬於勢利如此初以季父益城君勳蔭拜司甕院奉遷濟/ 用監奉事坐事罷拜/ 司甕院奉事平市署直長陞軍器寺主簿轉司憲府監察出宰抱川縣治爲一道最 御史 啓褒/ 特陞一資移授甑山縣/ 令歷典醴泉沔川信川金山四郡制事通敏決如流剛明所臨吏不敢奸簡以從政淸以律己/ 歸之日家無宿至/ 稱貸於人洛中有破屋數間亦不復修葺曰此猶足以終吾年處之常晏如蘖之操至老不變盖/ 其天性然也胤子僉正/ 公錄原從功推 恩有是 贈配鷄林鄭氏黃山察訪擢之女生長法家動遵女則奉祭以誠事姑/ 盡禮睦宗族御僕咸/ 得其宜閨門之內肅然嚴整先公二年而卒葬在公之墓左男曰命顯司宰監僉正側室男曰命立/ 女適李時楊僉正生五/ 男二女長曰處亮司諫次處任處敏處誼處徵女長適掌令金泰基次適佐郞郭齊華處亮有四男/ 三女長曰九成進士次/ 九九齡九淵女長適趙默餘幼處任有一男四女女長適李東老次適金萬紀餘未歸處敏有二/ 男三女女長適崔錫三/ 餘幼金泰基有一男四女女長適趙宗著次適安圭餘未行男幼郭齊華有二男九成有一男一女/ 九有二男幼內外/ 諸孫三十餘人噫先人在世之日欲表公之墓道具石而工未就今不肖孫奄遭終天之痛推惟先/ 志有不能自己敢以疇/ 昔之所瞻仰於家庭者泣血次庶乎其爲後日之攷信也/ 孫處亮撰/ 崇禎癸巳八月 日立/

 

  [번역문] : 유명 조선국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행 통훈대부 금산 군수(金山郡守) 홍공(洪公) 묘갈/ 공의 이름은 서룡(瑞龍)이며 자는 여견(汝見)으로 남양(南陽) 사람이다. 먼 조상의 이름은 열(悅)로서 고려왕조를 도와 지위가 태사(太師)에 이르렀으며 대대로 이어 벼슬하였다. 아조(我朝 : 조선)에 들어와 더욱 흥성하였다.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은 계정(係貞)으로 예문관 대교를 지냈고, 할아버지의 이름은 춘경(春卿)으로 황해 감사(黃海監司)를 지냈다. 아버지의 이름은 천민(天民)으로 도승지를 지냈다. 어머니는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청풍 군수(淸風郡守) 세경(世勁)의 딸이다./ 공은 가정(嘉靖) 경신년(1560, 명종 15)에 태어나 천계(天啓) 병인년(1626, 인조 4)에 졸하였으니 향년 67세였다. 금산(金山)의 임소로부터 선영(先塋) 내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한 언덕 자리로 옮겨 장사지냈으니, 이해 8월이었다. 공은 청명(淸明)함과 영위(英偉)를 천성으로 타고 태어나 이를 드러내었으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언어는 자주 회포를 푸는데 기울였지만 자기를 현요(炫耀 : 뽐내며 자랑함)하게 표현하는 행동은 없었다./ 공의 두 번째 부인은 흥양 유씨(興陽柳氏)로 의정공(議政公)이 곧 그녀에게서 태어났다. 공은 어버이를 뵈면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아울러 지극히 하기를 50여 년간으로 한결같았다. 평상시에 거처할 때에는 고요함을 지키고 교유를 좋아하지 않았고, 옛친구의 지위가 귀현(貴顯)해졌다고 해도 지나다니면서 공은 일찍이 한번도 그 대문을 밟아본 일이 없었으며, 세속을 따라 부앙(俯仰 : 머리를 숙임과 쳐듦)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으니 이로 인해 세리(勢利)에 편안해 한 것이 이와 같았다. / 처음에는 막내 아버지 익성군(益城君)의 훈음(勳蔭 : 음서를 말함)으로 사옹원 참봉에 배하여졌다가 제용감 봉사로 옮겼으며 좌사(坐事 : 어떠한 사건에 휘말려 죄를 지음)로 파직되었다가 사옹원 봉사·평시서 직장(平市署直長)에 서용되었다. 군기시 주부에 올랐으며, 사헌부 감찰로 옮긴 뒤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나아갔는데 치적이 한 도에 있어서 최고였으므로 어사(御史)가 포장(褒奬)하기를 계청(啓請)하여 특별히 한 자급(資級)을 올렸다. 이후 옮겨 증산 현령(甑山縣令)으로 옮겨 제수하였고, 예천(醴泉)·면천(沔川)·신천(信川)·금산(金山) 4군을 이어서 다스렸는데 일을 처리함이 사리에 통하고 민첩하였으며 재판을 판결하는 것은 물흐르는 것과 같았고 일에 임함에는 강명(剛明 : 엄하고 명백함)하니 아전과 서리들이 감히 함부로 범하지 못하였다. 정사를 돌봄에는 간단히 하였으며, 자기를 다스림에는 청렴함으로써 하였다. 체임되어 돌아간 뒤에도 집에는 잘 곳이 없었으며 재물은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것이라 칭하였다. 낙중(洛中)에는 쓰러져가는 가옥 수칸이 있었으나 또한 다시 고쳐 수리하지 않았는데 말하기를 “이것은 족한 것으로써 마친다는 것이니 내가 매년 항상 거처하는 곳이다” 하였다. 평안함이 빙얼지조(蘖之操)와 같아 늙어서도 변하지 않았으니 대개 그의 천성이 그러하기 때문이었다. / 맏아들은 첨정공(僉正公)으로 원종 공신(原從功臣)에 기록되어 추은(推恩)으로 추증된 것이다. 부인은 계림 정씨(鷄林鄭氏)로 황산 찰방(黃山察訪) 탁(擢)의 딸이다. 예법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생장하여 아녀자가 지켜야할 내칙(內則)을 삼가 따랐으며, 제사를 받드는데에 있어서는 정성으로 하였다. 시어머니를 모심에는 예(禮)를 다하였고 종족들간에는 화목하였으며, 비복(婢僕)을 다스림에는 모두 그 마땅함을 얻었으니, 규문(閨門 : 규중)이 숙연하면서도 잘 정리가 되었다. 공보다 2년 앞서 졸하였으며 장지(葬地)는 공의 묘소 좌측에 있다. /

 

  아들 명현(命顯)은 사재감 첨정이며, 측실(側室)의 아들로는 명립(命立)이 있으며 딸은 이시양(李時楊)에게 시집갔는데 첨정(僉正)을 지내고 있다. 명현은 5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처량(處亮)으로 사간(司諫)이고, 다음으로 처임(處任)·처민(處敏)·처의(處誼)·처징(處徵)이 있다. 장녀는 장령 김태기(金泰基)에게 시집갔으며, 차녀는 좌랑 곽제화(郭齊華)에게 시집갔다. 처량(處亮)에게는 4남 3녀가 있는데 장남은 구성(九成)으로 진사이고 다음으로는 구서(九)·구령(九齡)·구연(九淵)이 있으며, 장녀는 조묵(趙默)에게 시집갔고 나머지는 어리다. 처임(處任)에게는 1남 4녀가 있는데, 장녀는 이동로(李東老)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김만기(金萬紀)에게 시집갔으며 나머지는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처민(處敏)은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녀는 최석삼(崔錫三)에게 갔고 나머지는 어리다. 김태기(金泰基)에게는 1남 4녀가 있으니, 장녀는 조종저(趙宗著)에게 시집갔고 둘째는 안규(安圭)에게 시집갔으며 나머지는 아직 가지 않았고 아들은 어리다. 곽제화(郭齊華)에게는 아들 둘이 있고, 구성(九成)에게는 1남 1녀가, 구서(九)에게는 2남이 있는데 모두 어리다. 이렇게 내외의 여러 손주들이 30여 인이 된다. / 아아! 선인(先人)께서 살아계실 때 공의 묘도(墓道)를 표(表)하고 비석을 갖추어서 새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는데 지금 불초 손자가 문득 어버이를 잃는 고통을 만나 선지(先志)를 생각하니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어 감히 옛날의 일을 경계로 삼아 삼가 우러러 사모하면서 가정에 있는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차례로 서()하였다. 이것으로 후일의 믿을 수 있는 증거로 삼노라. / 손자 처량(處亮)이 글을 짓다. / 숭정(崇禎) 계사년1) 8월 일 세우다.(daum 2010)

 

  홍서룡 : 동사록(東사錄) 1/ ...발행(發行)하여 안부역(安富驛)을 지나 조령(鳥嶺)을 넘어 용추(龍湫)에서 점심을 먹었다. 금산 군수 홍서룡(洪瑞龍)ㆍ문경 현감 조홍서(趙弘瑞)가 지대차 나왔다. 김천(金泉) 찰방(察訪) 신관일(申寬一)ㆍ안기(安奇) 찰방(察訪) 김시추.../ http://blog.naver.com(daum 2010)

 

  홍서룡 : 뉴스의 LEADER가 되겠습니다./ ...청고(淸苦)한 소신을 지켰으므로 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사랑하였습니다.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賦役)을 균등히 매겼고 통진 현감(通津縣監) 유열(柳悅)은 해묵은 폐정(弊政.../ http://www.k1.co.kr(daum 2010)

 

  홍서룡 : (주)포천신문사/ 홍서룡(洪瑞龍) (선조38년) 세도가와 소시민을 구분하여 부역을 균등하게 부과한 현감이다. 그래서 광해7년 다시 포천 현감으로 부임 선정을 편다./ http://ipcs21.com(daum 2010)

 

  홍서룡 : 10세 류 열(柳 悅)/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이에 힘입어 농사에 전력할 수 있습니다. -中略-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賦役)을 균등히 매겼고 통진 현감(通津縣監) 류열(柳悅)은 해묵은 폐정(弊政)을.../ http://yonginryu.pe.kr(daum 2010)

 

  홍서룡 [專門資料] : 點兵 때 병을 이유로 오지 않는 金? 등을 罷黜하였다는 都元帥의 서목/ 발행일 2007-03-18/ 자료소개 金?|洪瑞龍|申喜孫(daum 2010)

 

  홍서룡 [專門資料] : 5寸叔의 訃音으로 百官 呈文에 참석하지 못하여 遞職을 청하는 洪命耉의 계/ 발행일 2007-03-18/ 자료소개洪命耉|洪瑞龍(daum 2010)

 

  홍서룡 [專門資料] : 16일(갑자)/ 2007.01/ ...|박성미(朴成美)|신근(申謹)|신환(申煥)|신욱(申煜)|강홍근(姜弘謹)|홍서룡(洪瑞龍)|강준(姜遵)|최무(崔茂), 양범(良範)|영천(榮川)|대탄(大灘)|문경현(聞慶縣), 감사(監司)|김산(金山) 군수(郡守) |개령(開寧).../ 강홍중(姜弘重) | 한국고전번역원 |(daum 2010)

 

  홍서룡 [專門資料] : 28일(경술)/ 홍서룡(洪瑞龍)|조홍서(趙弘瑞)|신관일(申寬一)|김시추(金是樞)|이경후(李慶厚)|이호신(李好信)|이응명(李應明)|신이우(申易于)|신석무(申錫茂)|신석필(申錫弼)|이돈선(李惇善)|채경종(蔡慶宗)|강이생(姜已生),.../ 강홍중(姜弘重)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홍서룡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용인>-제1화/ 2008.03.11 (화) 오전 10:56/  ...포천 현감(抱川縣監) 홍서룡(洪瑞龍)은 세가(勢家)와 소민(小民)에게 부역(賦役)을 균등히 매겼고 통진 현감(通津縣監) 유열(柳悅)은 해묵은 폐정(弊政)을 하루아침에 제거하였으니, 이 네 사람은 치적은 매우 좋으나 모두가 부임한 지 아직.../ 뉴스리더 > 사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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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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