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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92:심윤(1621-1622)
작성자장병창 @ 2013.06.08 06:34:07

  예천고을원(92) : 심윤(1621-1622) : '서궁시옥' 무렵의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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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윤(沈윤)은 1621년(광해군 13)에 김호 군수 후임으로 부임하여 1622년(광해군 14)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심윤이 예천고을 원을 할 무렵인 1621년에 개포면 경진리 사람 이재 조우인(1561~1625)이 경성 판관으로 있으면서 과거시험관이 되어 상경하여 고궁의 황폐함을 보고 옛날 그 궁궐에 있던 것을 생각하여 시를 지은 것이 빌미가 되어 투옥되었는데, 이를 `서궁시옥'이라 한다. 이때 용문면 상금곡리 사람 박수서(1567~1627) 등도 함께 투옥되었다.

 

  조우인의 자는 여익, 호는 이재, 승지 계형의 증손, 몽신의 아들, 하연 이중량의 사위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합격, 참봉을 지낸 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경성 판관이 되었다가 제술관(과거 시험관)으로 상경하여 `서궁시옥'으로 투옥되었다.

 

  인조반정(1623)으로 풀려나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어 승지에 올랐다. 글씨는 진체와 초서에 뛰어났고 음악도 잘 하였다. 작품으로 가사 「매호별곡」, 「자도사」가 있고 저서로 「이재선생문집」이 있다.

 

  또한 정철의 「관동별곡」의 속편으로 「속관동별곡」이라는 가사도 지었는데, 정철이 닿지 못한 곳에 언급하고, 정철이 언급한 곳과는 중복을 피하였다.

 

  늙어서는 상주시 사벌면 매호마을에서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였고, 무덤은 개포면 우감리 우감산에 있고, 다인의 봉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조우인의 가사집인 「이재영언」속에 「출새곡」 「자도사」 「속관동별곡」 「매호별곡」 등 4편의 가사가 실려 있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547號, 2003-02-21 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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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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