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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01-3:허한(1638.8.20제수, 동년9.18하직-1641가을 이인)
작성자장병창 @ 2013.12.09 20:34:54

  예천고을원 101-3 :허한(1638.8.20제수, 동년 9.18하직-1641가을 이임) : 영의정 '허적'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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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한 [記事] : 승정원일기/ 인조 20년 3월 4일 (계유) 원본81책/탈초본4책 (10/14)  1642년 崇禎(明/毅宗) 15년/ 任忠幹 등이 사은함/ ○ 謝恩, 全羅右水使任忠幹, 慶尙右水虞候李景顔, 五衛將許僩․李俔, 大司憲李行遠, 翊贊崔濯。(www.history.go.kr 2007)

 

  허한 : 二月/ 상위서지: 계암일록 하(溪巖日錄 下) > 溪巖日錄 七 > 己卯/ 저자: 金?/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溪巖日錄 七/ 己卯/ 二月/ 六日 : 晴, 積雪深, 日出?溜如雨, 向晩全?來自榮川, 俄而末兒回, 見兒輩書, 第三兒昨夜出?患河魚, 伯仲小留看護, 待其加調發還, 而次兒偕來, 伯兒向龍宮爲料, 先遣末兒, 及於明日行祭, 聞來慮慮, 大雪如許, 初不入?屋可也./ 七日 : 鷄一鳴, 力疾起坐, 末兒奉神主出祠堂, 與?甥行事, 先?忌日, 病未與祭, 痛恨尤深, 是日陰或晴, 向晩次兒與其弟來, 稍慰意也, 其伯則向龍宮矣, 而實來, 仍與語, 聞成公三問之後, 前參奉某名, ?在胡亂, 漂寄大丘, 妻?臧穫, 盡爲所虜, 惟與一妹及妹夫?乞, 得百姓女畜居, 蔡先吉欲作奴妻, 領健奴親?奪之, 相角之際, 脫頸而死, 其妹告于官, 檢尸二次, 明若觀火, 而李道長請囑方伯及守令, 竟以自縊爲辭, 寃痛撤天, 無不憤激, 天下有此等事耶, 夕鄭雲峰 鳴周之子來濯淸, 盖鄭子將於旬後, 娶豊基守 羅緯素之女, 來此理行也, 雲峰則由安東, 明日至云. ○明日高祖陰城府君忌, 末兒?宿岑舍./ 二十八日 : 晴, 民間饑饉方甚, 官令催稅, 稅從何出. ○安東判官 洪有炯上京, 赴謁聖科也, 謁聖定開月初七日. ○咸鏡之北有野人部落, 强於自守, 號曰熊島, 奴胡素不能伏, 胡差來入京, 令本國興兵往擊之, 惟令是從, 以兩西及咸鏡軍應其役, 此國哀哉. ○任孝達等論議藉藉, 以妓生銀介請, 得中者四五人, 而醴泉賦題, 趙啓遠 尙州白日?試士之題也, 金秋任之子, 曾已製焉, 監試醴泉人?者十六, 而唯四人外 , 賂書吏弄術得中, 盖出榜前將空券, 以已考入等之製謄書, 而錄其等匿元券, 而代以謄券, 賂布二三同, 爲醴泉守 許?所獲, ?囚其吏孝達之孱暗, 亦可知矣, 安東人亦以私得之者九人, 以詩?焉者, 率皆無形, 入於調戱中, 此則試官不文之故也, 且以額法之書, 取拙作之多, 至於四人, 尤可笑, 義城東堂義人中者, 至於六人, 此亦可駭.//

 

  허한 : 247. 五月/ 상위서지: 계암일록 하(溪巖日錄 下) > 溪巖日錄 七 > 己卯/ 저자: 金?/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溪巖日錄 七/ 己卯/ 五月/ 三日 : 陰, 岑山拜掃, 績 載 業三君, 與耀亨伯仲 光述三昆弟, ? 光碩行事齋?, 曾王父拜掃, 亦是日也, 昏黑全?來. ○左道監試榜, 以掌令 成以性言削焉, 醴泉之試, 明燈執草, 至於翌日食時, 亦有出?者, 此榜削固宜焉, 但成前此屢爲言官, 含?隨波, 而此一事始塞責, 亦可笑./ 十八日 : 晴, 午後柳時元過. ○地主近日以雨澤適中, 民心和樂, 大穀田地, 已爲去草等語, 報監司, 忍以此等說, 形諸文狀, 媚于上司, 欺天欺人, 可謂無所不至矣, 黃有章止之而不聽, 別監 申?呈狀乞遞, 猶賢於有章矣, 因官便見李兄書, 許醴泉 ?書, 喩李兄云, 虜汗酋於四月十四日還瀋, 十六日絞殺鄭雷卿 姜允先, 而自要土 馬沮死後, 彼中沮廢百事, 東宮回還之期, 不敢開口發言, 且北荒態島之役, 鮮兵圍住放砲, 其衆不戰自降, 島中只有百餘人, 或云男女僅六七人, 聞來可笑, 此必聞期, 先自走避耶, ?此國, 爲彼虜奴使, 爲是伐, 而鄭雷卿之死, 尤慘痛不忍言, 爲官奴鄭明守?指, 如是而爲國乎, 夕伯仲兩兒?宿岑舍.//

 

  허한 : 七月/ 상위서지: 계암일록 하(溪巖日錄 下) > 溪巖日錄 七 > 己卯/ 저자: 金?/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溪巖日錄 七/ 己卯/ 七月/ 六日 : 大霧而晴, 隣近守令, 醴泉守 許?稍勝, 其中羅萬甲公然受安東人贈遺米十石, 此時一二石亦足矣, 至於十石乎, 羅也謫居英陽, 以其舊守, 折簡於別監 南振紀,/ <하 523>/ 鄕中賻物/ 勸其扶助, 雖然羅實豪侈也, 與此邑守爲刎頸, 而其爲人, 不足觀也已.//

 

  허한(許僩) : 헌부가 장령 정시망과 이조 좌랑 이도의 파직과 추고를 청하다/ 서명: 인조실록 (인조 16년)/조선왕조실실록 태백산본/ 날짜: 1638-09-28(음)/ 분류: 고전국역서 > 역사 > 사서류(史書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9월 28일(정해) 2번째 기사/ 헌부가 장령 정시망과 이조 좌랑 이도의 파직과 추고를 청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장령 정시망(鄭時望)은 일찍이 출신(出身)할 때 폐조 때의 가자(加資)를 제출하려고 꾀하였고, 북청 판관(北靑判官)이 되어서는 장죄(贓罪)를 범하여 형벌까지 받았습니다. 겨우 수년이 지나 갑자기 풍헌(風憲)의 직책을 제수하니, 하인과 천한 무리들도 더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체차를 명하소서. 낭관(郞官)이 멋대로 하는 폐단이 이미 고질이 되었으므로 성상께서 기필코 고치려고 하는데, 사(私)를 따르고 공(公)을 멸하는 것이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정시망은 일개 탐관오리인데 갑자기 장령의 직책을 제수하였고, 금교 찰방(金郊察訪) 민광훈(閔光勳)은 바로 그의 매부인데 상피(相避)를 따지지 않고 규정 외로 체직을 청하였으며, 허한(許한)은 바로 그의 외삼촌인데 예천(醴泉)의 임기가 다된 것을 미리 알고 상피에 구애될까 염려하여 정순(呈旬)1484) 으로 체직을 꾀하여 그 사욕을 이루었습니다. 잠시 들어왔다가 금방 나간 정상을 숨기기 어려운데, 당상관은 태만스레 가부를 논하지 않고 낭관이 하는 대로 놓아두었으니, 이조 좌랑 이도(李?)를 파직시키고 당상관을 아울러 추고하라 명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5책 36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註 1484]정순(呈旬) : 각 관청의 낭관이 사임할 때 열흘에 한 번씩 세 번을 계속하여 소속 상관에게 사임 원서를 내던 일. ☞//

 

  허한 : 시도유형문화재 201호/향오공 허한 부자 영정(香塢公 許한 父子 影幀)| 중원문화유산/ 맑은 바람 | 2005.05.05 10:32/ //cafe.daum.net/cjjtmdh/E95d/373/ 허한  영정 : 규모나 화격면에서 조선시대 초상화의 격조를 고루 갖춘 작품이다. 세부 표현에 이르기까지 허술하지 않는 깔끔한 품격의 이 작품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나 현재 보관 장소가 협소하여 무리하게 걸려 있어 보관상태가 다소 불량하다.// 허적 영정 : 허적(許積)의 영정은 의자에 앉아 옆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호랑이를 밟고 있는 모습이다. 영정의 크기는 아버지인 허한의 영정은 길이 147㎝, 폭 63㎝이고, 허적의 영정은 길이 162㎝, 폭 83.5㎝(표구상태 236×97㎝)이다. 허적의 영정은 아버지인 허한의 영정 좌측에 봉안되어 있으나 다소 퇴락하였다. 허적의 묘소는 소태면 오량리에 자리하고 있다./ 허한(許한, 1574∼1642)은 자가 의보(毅甫), 호는 향오(香塢)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한천(寒泉) 잠(潛)의 셋째 아들이다. 예천군수, 이천부사를 지냈고,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허적(許積, 1610∼1680)은 조선 숙종 때의 인물로 자는 여차(汝車), 호는 묵제(默齊)·휴옹(休翁)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부사(府使) 허한의 아들로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서 태어났다. 평안감사를 거쳐 현종 8년(1667)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숙종 4년(1678) 재정고갈(財政枯渴)을 막기 위하여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사용케 하였다. 식견이 넓고 총명했으며, 남인(南人)으로서 서인(西人)인 송시열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daum 2010)

 

  허한 : 허적(許積:1610~1680)-아들 때문에 패망한 강직한 정승/ 2009.09.10/ 현종12년(1671) 5월 영의정에 오른 허적은, 본관이 양천, 부사 허한(許한)의 아들로 오늘날의 충북 중원 엄정면 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조 15년(1637)년 28세로 문과에 올라 검열·부수찬 등을 지내고 의주부윤으로 나가, 평안도 관내의.../ //blog.naver.com/hdnews9001/ 하동 (河東) 알리미(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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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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