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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102-4 :유철(1641.5.30제수, 동년6.24하직-1643봄이임) : 남산공원에 선정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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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기를, ꡒ차자에 아뢴 일은 모두가 바르고 지극한 말이니, 감히 두렵게 생각하여 시행하지 않겠는가.ꡓ하였다./ 【영인본】 34 책 705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재정-전세(田稅) / *재정-진상(進上) / *인사-관리(管理)/ [註 1428]오교(五郊) : 다섯 근교, 곧 동교(東郊)․남교(南郊)․중교(中郊)․서교(西郊)․북교(北郊). 황제가 입춘(立春)에는 동교에서 청제 구망(靑帝句芒)을, 입하(立夏)에는 남교에서 적제 축융(赤帝祝融)을, 입추(立秋) 전 18일에는 중교에서 황제 후토(黃帝后土)를, 입추에는 서교에서 백제 욕수(白帝辱收)를, 입동(立冬)에는 북교에서 흑제 현명(黑帝玄冥)을 제사한다. 《후한서(後漢書)》 권2(卷二) 명제기(明帝紀). ☞ / [註 1429]병자년 : 1636 인조 14년. ☞ / [註 1430]정축년 : 1637 인조 15. ☞ / [註 1431]맥도(貊道) : 맥의 방도. 맥은 중국 북방에 있던 미개한 나라의 이름. 맥의 방도란 생산의 20분의 1을 세로 거두는 것. 백규(白圭)가 말하기를 ꡒ나는 20분의 1을 받으려 하는데 어떻겠습니까?ꡓ 하니, 맹자가 말하기를 ꡒ그대가 말하는 것은 맥의 방도입니다. 맥에는 오곡이 나지 않고 기장만이 나며 성곽(城郭)․궁실(宮室)과 종묘에 제사하는 예도 없고 제후(諸侯)의 폐백(幣帛)․옹손(饗?)도 없고 백관의 직무도 없으므로 20분의 1을 받아도 넉넉하나, 지금 중국에서 살면서 인륜을 버리고 관원을 없앴다면 어찌 옳겠습니까?ꡓ 하였다. 《맹자(孟子)》 고자하(告子下). ☞(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 1637 정축 / 명 숭정(崇禎) 10년) 12월 2일 병신 4번째 기사/ 윤방․조석윤․정치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방(尹昉)을 영충추부사로, 조석윤(趙錫胤)을 응교로, 정치화(鄭致和)․조수익(趙壽益)을 이조 정랑으로, 이진(李袗)을 지평으로, 유영(柳穎)을 헌납으로, 심대부(沈大孚)를 교리로, 유철(兪㯙)을 부교리로, 목행선(睦行善)을 수찬으로, 윤문거(尹文擧)를 부수찬으로 삼았다./ 【영인본】 34 책 71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월 8일 임신 2번째 기사/ 김수현․전식․유철․강대수․서상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수현(金壽賢)을 이조 참판으로, 전식(全湜)을 대사간으로, 유철(兪㯙)을 수찬으로, 강대수(姜大遂)를 사간으로, 서상리(徐祥履)를 장령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3월 7일 경오 1번째 기사/ 주강을 마친 뒤 이시백과 유철이 병사와 수사에 대해 계하다/ 주강에 《시전》을 강하였다. 강이 끝난 뒤에 특진관 이시백(李時白)이 아뢰기를, ꡒ병사와 수사가 돌려보낸 군사에게서 거두어 들인 베가 아니고서는 먹을 식량이 없습니다. 만약 큰 읍의 수령을 겸하게 하여 그곳에서 나는 읍봉(邑俸)을 먹게 하고 베를 거두는 것을 금지시킨다면 일이 매우 편리하고 좋을 듯합니다.ꡓ하고, 검토관 유철(兪㯙)은 아뢰기를, ꡒ충청도는 병영과 수영이 모두 한 곳에 있습니다. 병영을 해미(海美)로 옮겨 설치한 이유를 신은 실로 모르겠습니다. 조령(鳥嶺)의 형세는 실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는 천험의 요새지입니다. 충주는 조령 아래에 있고 한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곳으로 병영을 옮겨 설치한다면 좋을 듯합니다.ꡓ하고, 시백은 아뢰기를, ꡒ우리 나라의 제도는 병사나 수사의 임기를 2년으로 하고 있는데, 장수의 직임을 어떻게 이 기한 안에 이루도록 책임지울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는 감사와 병사․수사는 오랫동안 직임을 맡겨 성과를 거두도록 책임지우소서. 그리고 치적이 있을 경우 자급은 더해주더라도 자주 체직하는 것은 허락치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비국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겠다.ꡓ하였다./ 【영인본】 35 책 11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관방(關防)(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6월 4일 을미 2번째 기사/ 심동구․유철․권임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동구(沈東龜)를 교리로, 유철(兪㯙)․권임중(權任中)을 정언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22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6월 22일 계축 1번째 기사/ 문정전에서 남한 수성 대장 신경진․구굉․이시백 등을 인견하다/ 상이 문정전(文政殿)에 나아가 남한 수성 대장(南漢守城大將) 신경진․구굉․이시백 등을 인견하였다. 원두표(元斗杓)는 외방에 있었으므로 중군(中軍) 황즙(黃緝)이 입참하였고 유림(柳琳)도 금화(金化)의 전공(戰功)을 사문(査問)하는 일로 입시하였다. 상이 경진 등에게 이르기를, ꡒ이제 도목 대정(都目大政)을 하는 자리에 경들은 각기 휘하 장사들의 공로의 다소에 대하여 말하라.ꡓ하니, 경진이 아뢰기를, ꡒ공로가 뚜렷이 드러난 자들은 거의 다 제수되었고, 공로가 작은 자들은 매우 많은데 관작은 한도가 있으니 어찌 두루 미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됨을 가리지 않고 한때의 공만으로 수령이나 변장에 제수한다면 군사와 백성들이 피해를 많이 입을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사람을 알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경들에게 묻는 것이니, 생김새나 말재주로 취하지 말라.ꡓ하였다. 여러 대장들이 각기 10인씩 추천하여 주서(注書)가 그 이름을 자세히 적고 또 수령에 적합한 자와 변장에 적합한 자를 나누어 이름 아래에 기록하여 아뢰었다. 대장들이 파하고 나가니 도승지 서경우(徐景雨)가 먼저 들어오고 이조 판서 남이공(南以恭), 참판 김수현(金壽賢), 참의 김반(金槃), 좌랑 이도(李?), 병조 판서 이시백(李時白), 참판 김시국(金蓍國), 참의 한형길(韓亨吉), 참지 이성신(李省身), 정랑 유심(柳?), 좌랑 정호인(鄭好仁)이 따라 들어왔다. 이조 판서와 참판은 북쪽을 상석으로 하여 서쪽으로 향하고, 참의는 동쪽을 상석으로 하여 북쪽으로 향하고, 낭관은 동쪽으로 향하여 판서와 참판의 앞에 부복하였다. 병조 판서와 참판은 북쪽을 상석으로 하여 동쪽으로 향하고, 참의와 참지는 서쪽을 상석으로 하여 북쪽으로 향하고, 낭관은 서쪽으로 향하여 판서와 참판의 앞에 부복하였다. 이방 승지 서경우는 북쪽으로 향하여 이조 참의의 왼쪽에 앉고, 병방 승지 허계(許啓)는 북쪽으로 향하여 참지의 오른쪽에 앉았다. 상이 양전 당상에게 이르기를, ꡒ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인재를 얻는 데 있으니 오늘의 정사는 더욱 조심스럽게 하라. 토산(兎山)․광교(光敎)․검단(檢丹)에서 힘껏 싸운 사람들도 경들이 아는 대로 택하여 주의(注擬)하라.ꡓ하고, 또 이르기를, ꡒ처음 벼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학행(學行)이 있는 자를 의망(擬望)하고 전일 세가(世家)의 자제들만 치우치게 썼던 것처럼 하지 말라. 서북 지방은 인재가 비록 적더라도 어찌 뛰어난 사람이 한둘도 없겠는가. 먼 곳이라 하여 비루하게 여기지 말고 택하여 쓰라. 전의 공로도 잊어서는 안 되니 거의(擧義)한 사람은 일체 택용하라.ꡓ하였다. 승지가 이조의 망단자(望單子)를 올리니, 상이 남이공에게 이르기를, ꡒ수령은 모두 치적이 있는 자들인가?ꡓ하니, 이공이 아뢰기를, ꡒ어찌 다 치적이 있는 자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자들을 버렸을 뿐입니다.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이미 치적이 있는 자가 아니면 차라리 공로가 있는 자를 쓰라. 육진(六鎭)의 수령은 더욱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ꡓ하고, 또 이르기를, ꡒ김자점(金自點)은 비록 중죄를 지었으나 그 공은 잊을 수 없다. 그의 아들 김련(金鍊)이 전에 인천(仁川)을 다스렸는데 자못 치적이 있었으니, 호남의 한 군에 제수하여 아비를 봉양하게 하고 싶다.ꡓ하니, 이공이 금산 군수(錦山郡守)에 제수하도록 청하니, 상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 상이 숭문당(崇文堂)에 들어갔다가 잠시 후 문정전(文政殿)으로 나와 이르기를, ꡒ전에 친정할 때는 이조와 병조의 판서가 망단자를 갖고 탑전(榻前)에 나오면 승지가 내관에게 전하여 내관이 올렸는데, 지금은 판서가 자리를 뜨지 않고 승지가 곧바로 가져다 올렸다. 차후로는 전례대로 하라.ꡓ하고, 또 이르기를, ꡒ친정하는 날 입시하는 주서는 육품(六品)에 천전시키는 것이 옛 규례인데 전조(銓曹)는 모르고 있었는가?ꡓ 하니, 이공이 아뢰기를, ꡒ신은 일찍이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좌중에서 과연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계해년에 친정했을 때도 옛 규례를 몰라 천전시키지 못했는데, 그후에 들으니 천전시키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ꡓ하였다. 오단(吳端)을 충청 감사로,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경의(李景義)를 호조 참의로, 조석윤(趙錫胤)을 응교로, 유철(兪㯙)을 교리로, 윤강(尹絳)을 부교리로, 이행우(李行遇)․심재(沈齋)를 수찬으로, 신익전(申翊全)을 정언으로, 한흥일(韓興一)을 전주 부윤으로, 최유해(崔有海)를 길주 목사로 삼았다. 친정은 매우 성대한 일이다. 대장을 인견하여 공로의 등급을 나누고 정관(政官)을 계칙하여 재기(才器)를 가렸으니, 공로에 보답하는 은전과 인재를 선발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지극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대장이 천거한 것은 공(功)으로 하지 않고 친분으로 하였고 정관이 의망한 것은 재주는 뒤로 하고 사정을 앞세워, 성상께서 인심을 고무시키고 분발시키기 위해 한 일이 끝내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영인본】 35 책 24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7월 4일 을축 1번째 기사/ 김영조․김광혁․박계영․이도장․유철․유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영조(金榮祖)를 대사헌으로, 김광혁(金光爀)을 집의로, 박계영(朴啓榮)을 장령으로, 이도장(李道長)을 지평으로, 유철(兪㯙)을 헌납으로, 유림(柳琳)을 평안 병사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2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8월 3일 계사 3번째 기사/ 김반․최계훈․박수문․유철․정지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반(金槃)을 대사헌으로, 최계훈(崔繼勳)을 헌납으로, 박수문(朴守文)을 지평으로, 유철(兪㯙)을 이조 좌랑으로, 정지호(鄭之虎)를 정언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3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9월 9일 무진 1번째 기사/ 이계․유철․서상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계(李?)를 장령으로, 유철(兪㯙)을 부교리로, 서상리(徐祥履)를 부수찬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3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2월 5일 계사 2번째 기사/ 최혜길․이시매․유철․조수익․임전․이행원․오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최혜길(崔惠吉)을 도승지로, 이시매(李時?)와 유철(兪㯙)을 부교리로, 조수익(趙壽益)을 이조 정랑으로, 임전(林塼)를 수찬으로, 이행원(李行遠)을 경기 감사로, 오단(吳端)을 황해 감사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42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 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12월 22일 경술 2번째 기사/ 지제교를 초선하다/ 지제교(知製敎)를 초선(抄選)하니, 최계훈(崔繼勳)․유철(兪㯙)․유심(柳?)․이도장(李道長)․이지항(李之恒)․김진(金振)․유석(柳碩)․신유(申濡)․이응시(李應蓍)․양만용(梁曼容)․이회(李?)․신익전(申翊全)․이원진(李元鎭) 등 13명이었다./ 【영인본】 35 책 4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8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2월 22일 경술 1번째 기사/ 윤이지․정태화․박계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이지(尹履之)를 도승지로, 정태화를 동부승지로, 박계영(朴啓榮)을 집의로, 박돈복(朴敦復)을 장령으로, 이원진(李元鎭)을 부수찬으로, 유철(柳?)․유심(柳?)․이도장(李道長)․신유(申濡)․이지항(李之恒)․김진(金振)․유석(柳碩)․신익전(申翊全)․양만용(梁曼容)․이원진(李元鎭)․최계훈(崔繼勳)․김홍욱(金弘郁)․이회(李?)․조중려(趙重呂)를 지제교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5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8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4월 18일 을사 1번째 기사/ 김광현․정홍명․민응협․유철․최온․안방준․선우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광현(金光炫)을 대사간으로, 정홍명(鄭弘溟)을 우부승지로, 민응협(閔應協)을 수찬으로, 유철(兪㯙)을 교리로, 최온(崔蘊)을 비안 현감(比安縣監)으로, 안방준(安邦俊)을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로, 선우협(鮮于浹)을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로 삼았다. 최온은 남원(南原) 사람이고, 안방준은 나주(羅州) 사람이고 선우협은 평양 사람이다. 이조 판서 이경석(李景奭)의 천거로 6품직에 발탁해 제수하였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영인본】 35 책 5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8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4월 22일 기유 1번째 기사/ 남이웅․심재․유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이웅을 대사헌으로, 심재(沈?)를 부교리로, 유철(兪㯙)을 헌납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5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8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5월 22일 무인 1번째 기사/ 목성선․유철․성이성․심재․김익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상이 이조에 하교하기를, ꡒ옥당의 서벽(西壁) 중 승지에 합당한 사람을 의망하라.ꡓ하였다. 이에 목성선(睦性善)을 동부승지로, 유철(兪㯙)을 헌납으로, 성이성(成以性)을 교리로, 심재(沈?)․김익희(金益熙)를 이조 좌랑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6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7월 9일 갑자 1번째 기사/ 공무를 소홀히 한 장령 조중려와 사신 전송에 불참한 김수현․성이성․이상형․유철․박수문․조한영 등을 체차하다/ 장령 홍무적(洪茂績)이 아뢰기를, ꡒ장령 조중려(趙重呂)는 본부(本府)가 좌기(坐起)하던 날,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담배를 피워 동료를 태만히 대하는 태도가 있었으며, 또 다시(茶時)에 남의 정장(呈狀)을 받아 법과 규례를 어겼는데, 이는 신이 동료에게 가볍게 보인 소치입니다. 또 신이 교외에서 칙사를 전송할 즈음에 길 왼쪽으로 나아가려 했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 저도 모르게 벌렁 넘어졌으니, 신을 파직하소서.ꡓ하니, 장령 조중려(趙重呂)가 인피하면서 변명하였다. 대사간 김수현, 사간 성이성(成以性), 집의 이상형(李尙馨), 헌납 유철(兪㯙), 정언 박수문(朴守文), 지평 조한영(曺漢英) 등이 모두 칙사를 배송할 때 반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피하였다. 옥당이 그들을 모두 체차하도록 청하니, 상이 따랐다./ 【영인본】 35 책 64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7월 13일 무진 1번째 기사/ 정광경․정태화․김광혁․유철․이회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광경(鄭廣敬)을 대사헌으로, 정태화(鄭太和)를 우부승지로, 김광혁(金光爀)을 집의로, 유철을 부교리로, 이회(李?)를 정언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6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9월 24일 무인 3번째 기사/ 이현영․정치화․정광경․성이성․박안제․유철․성초객․이극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현영(李顯英)을 대사헌으로, 정광경(鄭廣敬)을 대사간으로, 정치화(鄭致和)를 집의로, 성이성(成以性)을 사간으로, 박안제(朴安悌)를 장령으로, 유철(兪㯙)을 헌납으로, 성초객(成楚客)을 정언으로, 이극인(李克仁)을 지평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7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39권/ 인조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11월 13일 병인 1번째 기사/ 이경여․이경의․유철․유영․김세렴․정치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조 참판 이경여(李敬輿)를 형조 판서로, 이조 참의 이경의(李景義)를 이조 참판으로, 유철을 이조 정랑으로, 유영을 헌납으로, 김세렴을 우부승지로, 정치화(鄭致和)를 사간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7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윤1월 11일 계사 2번째 기사/ 남이웅․이현영․윤이지․정치화․유철․이회․김시번․이행원․이천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이웅(南以雄)․이현영(李顯英)을 좌․우의 빈객(賓客)으로, 윤이지(尹履之)를 도승지로, 정치화(鄭致和)를 사간으로, 유철(兪㯙)을 응교로, 이회(李?)를 지평으로, 김시번(金始蕃)을 수찬으로, 이행원(李行源)을 설서로, 이천기(李天基)를 겸설서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79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2월 7일 무오 3번째 기사/ 박로․유철․조계원․조복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노를 좌승지로, 유철을 사간으로, 조계원(趙啓遠)을 부수찬으로, 조복양(趙復陽)을 검열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8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3월 6일 정해 1번째 기사/ 김신국․안헌징․유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신국을 세자 이사(世子貳師)로, 안헌징(安獻徵)을 장령으로, 유철을 응교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8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3월 19일 경자 2번째 기사/ 유철․김경․윤득열․이상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철을 사간으로, 김경(金坰)을 장령으로, 윤득열(尹得說)을 지평으로, 이상형(李尙馨)을 교리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8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4월 13일 갑자 1번째 기사/ 조경․유철․유경즙․정태제․정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경을 사간으로, 유철을 응교로, 유경즙(柳景緝)을 장령으로, 정태제(鄭泰齊)․정유(鄭攸)를 지평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86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6월 3일 계축 1번째 기사/ 최명길을 완성 부원군으로 삼고, 유철을 사간으로 삼다/ 최명길(崔鳴吉)을 완성 부원군(完城府院君)으로, 유철을 사간으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9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1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8월 27일 병자 3번째 기사/ 이행우․이시해․유경즙․박장원․조중려․유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행우(李行遇)를 사간으로, 이시해(李時楷)를 집의로, 유경즙(柳景緝)을 헌납으로, 박장원(朴長遠)을 정언으로, 조중려(趙重呂)를 부교리로, 유철을 응교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9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1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9월 3일 신사 1번째 기사/ 암행 어사를 파견하다/ 암행 어사 남노성(南老星)․유석(柳碩)․유철(兪㯙)․정지화(鄭知和)․김진(金振)․엄정구(嚴鼎耈) 등을 여러 도에 나누어 보냈다./ 【영인본】 35 책 97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1권/ 인조 18년( 1640 경진 / 명 숭정(崇禎) 13년) 9월 21일 기해 1번째 기사/ 김영조․최혜길․유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영조(金榮祖)를 대사헌으로, 최혜길(崔惠吉)을 대사간으로, 응교 유철을 동부승지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98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2권/ 인조 19년( 1641 신사 / 명 숭정(崇禎) 14년) 3월 15일 경인 1번째 기사/ 유철을 우부승지로 박서를 집의로 삼다/ 유철을 우부승지로, 박서를 집의로 삼았다./ 【영인본】 35 책 11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인조실록 45권/ 인조 22년( 1644 갑신 / 명 숭정(崇禎) 17년) 5월 5일 임진 1번째 기사/ 윤순지․이행우․조석윤 등이 정사를 걱정하여 연명하여 아뢰다/ 도승지 윤순지(尹順之), 좌승지 윤강(尹絳), 우승지 유철(兪㯙), 좌부승지 이행우(李行遇), 동부승지 조석윤(趙錫胤) 등이 연명하여 아뢰기를, ꡒ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여서, 위와 아래가 서로 간격이 없는 것이니, 재앙과 상서와 길하고 흉함의 조짐이 사람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재앙을 소멸하여 복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는 다만 임금의 은미한 한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 성왕들이 재앙을 만나 두려워하여 몸을 움츠려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였고, 감히 성실치 못한 겉치레만으로 재변에 대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재앙은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천문(天文)1796) 이 경계를 보이고, 지도(地道)가 재이를 알리며, 요사스런 사람과 괴이한 물건 등의 이상한 것들이 비록 거듭거듭 나타나도, 이것은 옛사람이 이른바 임금의 몸에 즉시 손상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에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으레 거기에 익숙해져 보통으로 여기고 경계하며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질(疫疾)이 해마다 온 나라에 두루 퍼짐으로써 백성들이 많이 사망하여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어 버렸습니다. 지금 또 기근이 거듭되던 끝에 큰 가뭄이 들어서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되고 씨앗도 뿌리지 못합니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백성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우환이 눈앞에 닥쳐왔으니, 백성도 없고 나라도 없게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입니다. 절박한 재해가 이보다 심한 적이 없었는데도 오히려 편안히 세월이나 보내면서 삼가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감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성상께서 무슨 허물이 있기에 하늘의 마음이 불편하여 이처럼 극심하게 재해를 거듭 내린단 말입니까. 옛사람이 이르기를 ꡐ나를 보호해 주는 하늘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도가 있지만, 나를 버린 하늘에 대해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ꡑ 하였습니다. 지금 하늘이 우리 전하께 경고한 것은 잘 타일러 명령하는 따위가 아니니, 또한 전하를 매우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바로 전하께서 허물을 들어 자신을 책망하여 하늘의 노여움을 돌려 기쁨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께서 하늘의 노여움에 응하는 방도가 오히려 겉치레와 사소한 절차에만 구구하게 힘쓰고 자신을 반성하여 책망하는 데는 미진함을 면치 못했습니다. 실제로 기도하는 제사를 두루 거행하여도 정성이 신명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죄인 장부를 깨끗이 정리해도 조화의 기운이 감응되지 않음이 당연합니다. 매서운 바람과 뜨거운 햇볕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한여름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기후가 매우 처참하나, 하늘의 마음은 멀기만 해서 감동하여 마음을 돌릴 날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공적인지 사적인지, 경건한지 게으른지 자신을 반성하여 살펴서, 만일 한 가지 생각과 한 가지 일이라도 하늘을 어겨 재앙을 부른 것이 있다면, 통렬하게 책하고 개과 천선하기를 어찌 또한 마음으로 맹세하여 마치 탕(湯)임금이 여섯 가지 일1797) 로 자신을 책망해서 당장에 하늘의 감응을 불러왔던 것과 같이 하지 않으십니까. 혹 전하께서 깊은 밤 한가한 시간에 시험삼아 한 번이라도 마음을 맑게 하고 반성하신다면,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뉘우쳐 깨닫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임금을 바르게 하고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말을 어찌 입다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이와 같이 운수가 매우 좋지 않은 때를 만나 대단히 경계하고 격동하고 진작하는 것이 있지 않으면, 쇠퇴한 정사를 일으키고 고난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기가 날로 꺾이고 행동거지가 날로 쇠퇴해지며, 안일한 습관은 점차 고질화되고 사사로이 총애하는 문이 크게 열립니다. 전하가 계신 궁전은 막히고 멀어서 전하께 말을 올릴 수 있는 길이 두절되며, 재물은 사치의 풍조에 의해 고갈되고 백성은 가렴주구에 의해 곤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위아래가 모두 눈앞의 안일만을 도모하여 서로 다투어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형세가 어찌할 수 없는 이런 때를 당해서 할 수 있는 일조차 또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러고도 어찌 하늘이 돌보아서 이변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시험삼아 요즘에 있었던 한두 가지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능원 대군(綾原大君)의 집을 짓는 일은 대단히 남의 이목을 경악케 하고 인심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왕실의 가까운 친척은 왕실과 더불어 기쁨과 걱정을 같이하는 것인데, 그 굉장하고 사치스러운 집을 하필 이 시기에 지으면서, 더구나 관(官)을 임명하여 감독을 시키고 국력을 수고롭혀 소비하여, 재변이 이토록 참혹한 때에 별로 긴급하지도 않은 일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전하가 우애하시는 방도로도 의당 이런 일을 우선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지만, 대군의 겸손한 마음에 있어서도 어떻게 마음 편히 받아들여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론이 매우 불평스럽고 답답하게 여기고 헌부의 논계도 날로 격해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논계를 하고 한편에서는 그대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목재와 돌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ꡐ이엉차ꡑ 소리가 끊이지 않아, 마치 공론과 다투는 듯하고 하늘의 재변과 겨루는 듯한 인상을 느끼게 됩니다. 전하께서 우애하시는 일이 다만 위아래 사람의 허물만 더해지고 천심과 인심을 잃게 될까 염려되어 삼가 매우 애석히 여깁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선뜻 깨달으시어 당장 그 일을 중지시켜서 아래로 뭇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위로 하늘의 꾸중에 보답하지 않으십니까. 황익(黃瀷)이 고변한 공은 그 경사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니, 그에게 부귀로 보답함을 진실로 아낄 것이 아니지만, 조정의 소중한 관직은 절대로 가벼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臺臣)들이 논계하여 고집하는 것은 곧 공정한 국론인데도, 전하께서 끝까지 굳게 거절하시어 조정이 혼잡하게 하시니, 식견 있는 사람들이 속으로 탄식합니다. 왜 전하께서는 이처럼 사사로운 생각에 얽매여 남의 말을 들은 체하지도 않으신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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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