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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102-9 :유철(1641.5.30제수, 동년6.24하직-1643봄이임) : 남산공원에 선정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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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 [記事] : 효종실록 16권/ 효종 7년( 1656 병신 / 청 순치(順治) 13년) 윤5월 6일 계축 2번째 기사/ 헌부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희로에 상관하지 말것 등의 일을 아뢰다/ 헌부가【집의 이항(李抗), 장령 권집(權?)․윤겸(尹?), 지평 서필원(徐必遠).】 상차하기를, ꡒ신들이 삼가 삼대(三代) 이하를 보건대 순수한 정치 체제가 우리 조정과 같은 적이 없었고 깊고 두터운 덕택도 우리 조정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라를 세움에 이목(耳目)을 대간에 맡기고 시비를 공론에 맡겨 관대한 것으로 사기(士氣)를 배양하고 예절과 염치로 신하들을 대우하였습니다. 3백 년 이래 사헌부 신하가 말한 일 때문에 형리에게 내려졌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형리에게 내려졌다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엄한 국문과 중한 형벌이겠습니까. 그 사이에도 어찌 무지 망작하여 스스로 조정의 법을 범한 자가 없었겠습니까마는, 조종(祖宗)께서 형벌의 위엄으로 대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언로(言路)를 막히게 할 수 없고 사절(士節)을 투박해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은혜가 민심에 맺어지고 의리가 사대부에게 권장되어 비록 참벌(斬伐)을 치렀어도 사기가 쇠하지 않았고 혹 변고를 당했어도 신하의 절개는 더욱 드러났으니, 사직(社?)이 훌륭하게 길이 보존된 것도 이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유철의 일도 이른바 무지 망작하여 스스로 조정의 법을 범한 것인데, 유독 관용하여 큰 천지에 함께 살도록 할 수 없습니까. 유철의 정상과 자취는 대신들이 다 말하였고 삼사(三司)가 다 변론하였으니 굳이 다시 번거롭게 떠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을 따져보면 이미 발론한 서론(緖論)을 이어 준례에 따라 책임을 메꾼 데 불과할 뿐이니, 어찌 좋지 못한 마음을 먹고 거짓을 떠들어 실제로 만들어서 하늘의 해가 굽어살피는 아래에서 자기 뜻을 행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당초 성상께서 이미 대옥(大獄)을 결단하여 천심(天心)을 밝게 보이셨으므로 군신 상하간의 지극한 뜻은 틈이 없고 오가는 말은 확연히 씻겨져 뭇사람들이 모두 흡족히 여기고 원근(遠近)이 함께 칭찬하였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훌륭한 조처였습니다. 그런데 유철이 이미 지난 일을 제기하여 망령되이 행동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아마도 죽을 날이 가까워 정신이 먼저 혼미해져 그런 것인 듯합니다. 한편 전하께서 천천히 따져보고 공정한 마음으로 처분할 겨를이 없었던 것도 새로 변고를 치루어 성상의 마음을 진노케 하여서, 세도(世道)의 험악함을 깊이 걱정하고 근거없는 말이 아직까지 떠돌아다님을 의심케 하였기 때문에 지나치게 억측하고 갑작스레 진노하여 조정의 신하를 갑자기 형리에게 내리고 또 고문을 가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른바 등불에 덤벼드는 나방이 무정하게 죽어가는 것과 같으니, 성상께서 어찌 차마 이러실 수 있겠습니까. 우레와 같은 호령 아래에 만물이 크게 놀라고 대소 신하들이 두려워하며 행인도 슬퍼하니, 이것이 어찌 일개 유철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인정상 다 같은 바이니 원통한 정상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우레와 같은 위엄이 다소 걷히고 해가 조금 비추어 사형을 감하라는 명령이 특별히 살리기를 좋아하는 데에서 나왔으니, 보고 듣는 자치고 누군들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엄하게 국문한 나머지 살아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더위를 무릅쓰고 천리 길에 바다를 건너게 된다면 중도에서 죽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닥칠 일입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두루 만물을 감싸주면서 유독 망령되이 행동한 일개 신하에게 그 죽음을 면제해 준 뒤에 살 길을 끊으시려는 것입니까. 가령 유철이 불행하게도 끝내 길에서 죽는다면 감옥에서 죽든 길에서 죽든 간신(諫臣)을 죽였다는 이름은 마찬가지이니, 신들은 삼가 성조(聖朝)를 위하여 이러한 이름이 있게 될까 안타깝습니다. 옛날 상(商)과 주(周)의 여러 신하들이 번갈아 훈고(訓告)하기를 ꡐ성상의 선조께서 행하던 바를 따르소서.ꡑ라고 하지 않으면 ꡐ선왕이 이루어 놓은 법을 따르소서.ꡑ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총명한 체하며 조종(祖宗)의 가법(家法)을 변경시키고서 나라를 편안하게 잘 다스린 자는 없었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선왕이 사대부를 대우하던 도를 법받고 조종이 간신(諫臣)을 중히 여기던 예를 생각하여 곡진히 재량하고 크게 관대한 은혜를 베풀어 3백 년간의 어질고 두터운 가법(家法)이 오늘에 이르러 무너지지 않도록 하소서. 그렇게 된다면 어찌 뭇 신하의 큰 바람이 아니겠으며 나라의 지극한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영특한 기운이 너무 드러나 억측하는 사사로움을 제거하지 못하고 노여움이 쉽게 일어나 너그럽게 용납하는 도량이 넓지 못하니, 이러한 병통을 제거하지 않으면 가는 곳마다 피해가 될 것이고 성상의 마음에서 발하여 성상의 정사에 해가 될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한가한 때 은미(隱微)한 즈음에 어떠한 부분에 힘을 쓰며 어떠한 서책을 완미하십니까? 바탕은 아름다운데 이를 채워 기르지 못하고 병이 깊은데 제거해 내지 못하니, 성인(聖人)의 맑고 밝은 지기(志氣)에도 또한 성품이 편벽되어 극복하기 어려운 곳이 있습니까? 송(宋)나라 선비 여조겸(呂祖謙)은 젊었을 때에 성품이 매우 급하였는데, 어느날 《논어》를 읽다가 ꡐ자신에 대해서는 무겁게 꾸짖고 남에 대해서는 가볍게 꾸짖으라.ꡑ고 한 부분에 이르러서 스스로 생각과 뜻이 관대해져 평생 빠른 말과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없었으니, 어찌 법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전하의 요즈음 언동(言動)은 때로 기(氣)에 부림받는 바가 됨을 면치 못하시니, 아름답고 훌륭하게 조정에 임하는 용모와 넓고 큰 임금의 도는 이와 같은 것이 아닐 듯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사욕을 이기어 잡념을 물리치는 공부를 깊이 더하고 늘 함양(涵養) 공부에 마음을 두며, 성상의 도량을 넓히고 언로를 활짝 열며, 희로(喜怒)는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나는 이에 상관하지 말고 자기의 사견을 버리고 남을 따라 반드시 도(道)에서 구하소서. 그리하여 성덕(聖德)으로 하여금 날로 중정(中正)의 경지에 나아가게 하여 모든 선(善)이 다 모이고 훌륭한 말이 묻혀 있지 않게 된다면 다행스러움을 이루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ꡓ하니, 답하기를, ꡒ진언(進言)한 그대들의 정성은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그 중에 석연치 못한 것이 있어 부득이 말하겠다. 유철의 이 일을 그대들은 참으로 무지 망작한 것으로 여기는가? 내가 비록 그 실상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찌 차마 억지로 부당한 말을 하겠는가. 그대들은 어찌 유철에게는 후하여 그 일을 해명하려 하면서 어찌 나에게는 박하여 악명(惡名)을 억지로 지으려 하는가. 본래의 양심은 반드시 이와 같지 않을 것인데, 사사로움에 가리워져 흐릿하게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내가 허물을 덮고 잘못을 그럴 듯하게 꾸미려는 말이 아니다. 부득이 다 밝혀 말하려는 뜻이니, 그대들도 아마 이해할 것이다.ꡓ하였다./ 【영인본】 36 책 56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6권/ 효종 7년( 1656 병신 / 청 순치(順治) 13년) 윤5월 11일 무오 2번째 기사/ 부수찬 이단상이 상소하여 언로를 통하고 간언을 받아들이길 청하다/ 부수찬 이단상(李端相)이 상소하기를, ꡒ신은 듣건대 나라의 흥망은 언로가 열렸느냐 막혔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니, 옛 사람이 이른바 간하는 신하를 상주느냐 간하는 신하를 죽이느냐에 따라 나라가 좌우된다는 비유가 어찌 명확하고 적절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전하께서 왕위에 오른 지 이미 8년이나 되었는데 안으로는 성색(聲色)의 오락이 없었고 밖으로는 사냥에 빠지는 일을 끊었으며 부지런히 삼가 힘쓰고 한마음으로 선치(善治)를 도모하여 정령이나 조치에 있어 크게 잘못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최근 1, 2년 사이에 마음을 놀라게 하고 눈을 놀라게 하는 잇따른 조처로 위로는 청명(淸明)한 덕을 더럽히고 아래로는 중외(中外)의 바람을 저버려 조야(朝野)의 대소 신하로 하여금 모두 입을 다물고 있으려는 뜻을 품게 하십니까. 신은 참으로 한번 다 진달하고 대궐 뜰에서 통곡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김홍욱(金弘郁)은 금령(禁令)이 이미 시행된 뒤에 상소하였으니 비록 스스로 국법을 범했다고 하겠으나, 그 본뜻을 따져보면 다만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하려는 데서 나온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역적을 처벌하는 법률로 다스리고 수일 내에 고문하여 죽게 하였으니, 성상께서 어찌 차마 이런 일을 하십니까. 더구나 그 자손과 일가에게 또한 무슨 죄가 있어서 금고(禁錮)의 법을 시행하기까지 하십니까. 지난해 채유후(蔡裕後)와 남노성(南老星)의 일은 비록 제 스스로 지은 데서 나온 것이지만 그 직책이 양사(兩司)의 장관인데, 꾸짖어 물러나게 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고 벼슬을 주지 말라 명하여 1년이 지나도록 버려두고 있습니다. 또 홍우원(洪宇遠)의 상소로 말하면 누군들 망언(妄言)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전하께서 비록 구언에 응한 것이라는 이유로 죄를 주지는 않았으나 이로 인해 금고(禁錮)되어 마침내 밝은 세상의 버려진 물건이 되었으니, 성조(聖朝)에서 대신(臺臣)을 대우하고 언로를 열어놓는 도가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또 유철을 엄히 형벌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니, 어찌 성상의 지나친 거동이 점차 한층 더해져 끝내 간관(諫官)을 형문하는 데까지 이르러 3백 년동안 없었던 일을 일으킬 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성상께서 당시 막 옥사를 판결하여 그 뜻이 석연치 않은 상태였으므로 문득 그에게 실제로 사심(邪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으니, 성상께서 유철을 의심한 것은 바로 그 시기가 마침 그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망타진의 계책을 세웠다는 것으로 죄안을 단정하고 그와 함께 모의한 자를 끝까지 심문하라는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말하면 어찌 너무 지나치게 억측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인(聖人)은 형법에 대해서 반드시 그 실정을 따져 죄를 결정하였으니, 전하께서 유철에 대하여 만약 이미 지난 일을 제기했다는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벌만을 간략히 주셨다면 그 소리를 들은 자치고 누군들 성상의 진정시키려는 훌륭한 뜻을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도리어 고문을 가하고 외딴 섬으로 귀양을 보내도록 하셨으니, 이것이 어찌 성세(聖世)에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간관(諫官)이 말을 하다 죄를 얻는 일이 해마다 있으니, 내년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 비록 지나친 거동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목숨을 버리고 사지(死地)에 나아가 전하의 조정에서 입을 열려고 하겠습니까.ꡓ하니, 상이 답하기를, ꡒ진언(進言)한 그대의 정성을 아름답게 여기니,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ꡓ하였다./ 【영인본】 36 책 57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6권/ 효종 7년( 1656 병신 / 청 순치(順治) 13년) 윤5월 16일 계해 2번째 기사/ 역모에 관해 말을 잘못하여 죄를 받은 유철을 평해군으로 이배하다/ 유철(兪㯙)을 평해군(平海郡)으로 이배(移配)하였다. 당시 유철이 미처 배소(配所)에 도착하지 않았었는데, 대신들이 그의 행동이 죄가 되지 않음을 극구 말하니, 이에 이배하라고 명한 것이다./ 【영인본】 36 책 58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6권/ 효종 7년( 1656 병신 / 청 순치(順治) 13년) 윤5월 23일 경오 1번째 기사/ 좌의정 심지원이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경솔히 하지 말기를 청하다/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좌의정 심지원(沈之源)이 아뢰기를, ꡒ오랜 가뭄 끝에 마침내 많은 비가 쏟아졌으니, 이제부터 풍년을 기약할 만합니다. 어찌 그 다행스러움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특별히 여러 신하를 불러 측은히 여기는 교서를 내려 세 아이를 방환(放還)하도록 하였으니, 위로는 조정 신하로부터 아래로는 민간에 이르기까지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이튿날 단비가 쏟아졌습니다. 천인(天人)이 감응하는 이치는 오늘에 더욱 확신하게 되었으니, 성상의 한 마디 말 한 가지 행동을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뭇 사람들이 이로 인해 또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전하께서 이미 훌륭한 일을 행하여 인심을 기쁘게 하고 하늘의 뜻을 돌려놓았으니, 실로 이 마음을 확충하여 끝내 중단함이 없다면 요순(堯舜)에 어찌 미치기 어렵겠습니까. 이에 신은 다음과 같이 진달하고자 합니다. 임금은 수많은 백성의 위에 거하여 이들의 법이 되니,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경솔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경솔히 하면 정령(政令)에 나오는 것이 대부분 중도(中道)를 잃게 됩니다. 성인께서 말씀하기를 ꡐ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 말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하지 말라.ꡑ 하였으니,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하는 것은 이치상으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반드시 모두 적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실정을 벗어나는 의심을 하게 되니, 어찌 마땅히 깊이 경계할 바가 아니겠습니까.ꡓ하였다. 지원의 말은 유철의 일을 지적한 것인데, 상이 답하지 않았다./ 【영인본】 36 책 58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7권/ 효종 7년( 1656 병신 / 청 순치(順治) 13년) 7월 22일 무진 2번째 기사/ 전 대사간 유철을 석방하도록 명하다/ 전 대사간 유철(兪㯙)을 석방하도록 명하였다. 연신(筵臣)이 글뜻을 인하여 언로의 열리고 막힘에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음을 강력히 진달하니, 상이 승지에게 일렀다. ꡒ국가에서 소중히 여겨야 할 바는 언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지금 연신(筵臣)이 진달한 바를 들으니 자상할 뿐만이 아니다. 경연을 열고 강론하는 데 있어서는 체득하여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철에게 이미 시행한 벌은 그의 죄를 징계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을 용납하는 데 있는 것으로, 그래야만 언로를 크게 열 수 있다. 해부로 하여금 석방하게 하라.ꡓ/ 【영인본】 36 책 61 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정론-간쟁(諫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657 정유 / 청 순치(順治) 14년) 5월 6일 무신 2번째 기사/ 김육 등의 차자에 거론된 폐단들에 대한 방책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영의정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ꡒ김육(金堉)과 이경여의 차본(箚本)을 모두 비국에 내리셨으나, 여느 관원의 상소문과 비할 바가 아니므로 탑전에서 의논하여 정하고자 합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차자에서 진술한 말은 모두 긴요하고 절실하니 변통할 만하다. 이조 판서의 차본도 가지고 왔는가?ꡓ하자, 태화가 이를 가지고 조목별로 진달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영장을 혁파하기는 어렵다만 시월부터 정월까지 넉 달간 훈련하는 것은 과연 폐단이 있으니 절목을 조금 고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각사의 노비가 낳은 자 중에 다섯 명이 공물을 바칠 경우 그 부모 중 한 사람의 요역을 감해 주고 여섯 명이 공물을 바칠 경우 그 부모의 요역을 모두 감면해 주게 하고 나머지 다른 일은 묘당에서 서서히 의논하여 처리하라.ꡓ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ꡒ이경여는 탑전에서 심리하기를 청하였으며, 홍명하(洪命夏)의 차자에도 감옥에 억울한 기운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도 장죄(贓罪)를 범한 자는 비록 심리하는 날 거론할 수 없지만 살리기를 좋아하는 천지의 인애로써 특별히 죽음만은 면해 준다면 역시 화기를 불러 오는데 일조가 될 것입니다.ꡓ하자, 명하가 아뢰기를, ꡒ신의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도 그러합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내가 경의 말이 불가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법(贓法)이 매우 엄하므로 섣불리 용서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 없던 재난을 당하였으므로 진실로 비상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고 또 이들이 범한 죄는 그 행적이 의심스러우나 만일 장률로써 모두를 처단한다면 관대한 정치가 아닌 것 같으니, 금부로 하여금 특별히 사형을 감하여 이정현(李廷顯)․이급(李?)․심총(沈?)․송명규(宋明奎) 등을 먼 곳에 정배케 하라.ꡓ하고, 또 이르기를, ꡒ말한 것으로 인하여 죄를 받은 자는 누구인가?ꡓ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ꡒ심대부(沈大孚)․유계(兪棨)․조빈(趙贇)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실정은 가벼운데 죄가 무거운 자는 누구인가?ꡓ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ꡒ유철(兪㯙)입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나에 대한 일을 말하다가 견책을 받은 자는 오직 홍우원(洪宇遠) 한 사람뿐인가? 해조는 전례에 따라 임용해야 할 것이다.ꡓ하였다. 명하가 아뢰기를, ꡒ이경여의 차자 중에 ꡐ적체된 문관이 무려 수백 명에 이른다.ꡑ고 한 말이 있었는데, 모두가 신이 직임을 다하지 못한 소치입니다.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노성한 사람이 한직에 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인가?ꡓ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ꡒ아마 민응형(閔應亨)을 가리킨 것일 것입니다.ꡓ하였다./ 【영인본】 36 책 9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호구-호구(戶口) / *신분-천인(賤人) / *재정-공물(貢物)(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19권/ 효종 8년( 1657 정유 / 청 순치(順治) 14년) 10월 26일 을미 1번째 기사/ 이성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성항(李性恒)을 헌납으로, 윤집(尹鏶)을 대사간으로 삼았다. 이에 앞서 대사간 유철(兪㯙)이 옥에 갇혀 엄한 형벌을 받았다. 상의 노여움이 한창 심하여 조정의 신하들이 감히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윤집이 사간으로서 유독 아뢰어 간쟁을 하였다. 사람들이 이 때문에 그를 훌륭하게 여겼다./ 【영인본】 36 책 12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21권/ 효종 10년( 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3일 계해 2번째 기사/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고 시사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는데, 원임 대신(原任大臣)도 입시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재이의 발생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근일과 같은 경우는 있지 않았는데, 영남의 불상에서 땀이 난 변괴는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옛 역사에도 이런 변괴에 대한 기록이 있는가?ꡓ하니 영돈녕부사 이경석(李景奭)이 아뢰기를, ꡒ신은 노쇠하여 잘 기억할 수 없습니다만 고사에 없는 것입니다. 연전에 신이 마침 청주의 안심사(安心寺)에 갔었는데, 승려가 불상에서 땀이 흐른다고 하기에 신이 가서 보니, 칠을 한 불상의 양 어깨에 과연 축축한 습기가 있었습니다. 승려가 ꡐ이는 변란이 발생할 조짐이다.ꡑ 했습니다만 그 뒤 별로 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ꡐ이는 산의 남기(嵐氣)에 의해 축축해진 것이므로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ꡑ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강물이 끊긴 변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그렇다.ꡓ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 ꡒ이징(李?)․이숙(李潚)을 복작(復爵)시킨 뒤에 그들이 장복(章服)을 갖추고 궐내를 출입하니 내가 매우 기쁘다. 소현(昭顯)의 자녀들은 몸소 범한 죄가 없는데도 그 어미의 일 때문에 선적(璿籍)에 기록되지 못하여 거의 서인이나 천인과 같은 상태이다. 선조(先朝)께서 형의 아들을 나의 아들처럼 여기라는 하교가 있었으므로 나는 징․숙과 함께 일체로 은혜를 베풀고 싶어서 이에 대신들과 상의하려는 것이다.ꡓ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ꡒ일이 선조 때와는 다른 점이 있으니 때에 따라 처치하는 것이 무슨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 상의 분부가 지당하여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소현의 신상에는 특별한 과오가 없는데도 그의 자녀들이 어미의 일 때문에 아직도 선적에 소속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실로 딱하고도 측은한 일입니다.ꡓ하고 영의정 정태화(鄭太和)는 아뢰기를, ꡒ선조께서 선적에 소속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통렬히 끊는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뒤 징․숙을 삭적(削籍)시킬 적에 신이 삭적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으로 이미 헌의했었으니, 지금은 다시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그 어미에게는 죄가 있지만 그 자녀들은 나의 골육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늘 측은하게 여겨 왔었다.ꡓ하니, 연양 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 좌의정 심지원(沈之源)이 같은 말로 대답하기를, ꡒ성상의 분부가 간곡하니 받들어 따르는 것 외에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습니다.ꡓ하고 우의정 원두표(元斗杓)는 아뢰기를, ꡒ선조께서 변에 대해 조처하신 데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라는 하교가 있기는 하였습니다만, 신의 의견에는 선왕께서 결정하신 것을 지금 고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집니다.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여러 재신(宰臣)들도 각기 생각을 말하여 보라.ꡓ하니 행 대사헌 홍명하(洪命夏)가 아뢰기를, ꡒ징․숙은 그 어미의 흉역(凶逆)이 견줄 데가 없었고 더구나 그 하나는 또한 흉적의 공초에 거론되었는데도 이미 방면하여 서울로 돌아와 있고 또 그 벼슬을 회복시켰으니, 이는 실로 성덕(聖德)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바깥의 의논은 지나쳤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징․숙도 이미 은혜를 받았으니 소현의 아들을 어찌 달리할 수 있겠습니까. 말 한 마디가 재이를 해소시킨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인 것입니다.ꡓ하고 이조 판서 송시열(宋時烈)은 아뢰기를, ꡒ지난번 연석(筵席)에서 이 일 때문에 하교가 있으셨으므로 신은 이미 들었습니다. 지난번 소현의 사위가 와서 신을 만났는데 곧 하나의 사인(士人)의 모습이어서 신이 매우 괴이하게 여겨 이미 진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부가 이러하니 천리와 인정에 매우 합당한 처사이니, 누구인들 감동하여 받들어 따르지 않겠습니까.ꡓ하고 대사간 유계(兪棨)는 아뢰기를, ꡒ전하의 말씀이 곡진하니 천고에 드문 것입니다. 받들어 따를 밖에 다시 다른 의논이 없습니다.ꡓ하고 응교 이경휘(李慶徽)는 아뢰기를, ꡒ분부가 지당하십니다. 어찌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ꡓ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ꡒ여러 사람들이 의견이 모두 같으니 내가 매우 기쁘고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내가 소현과 함께 북쪽으로 청나라에 가 이역 땅에서 같이 고생하였으니, 우애의 정이 의당 어떠하겠는가. 불행하게도 불량한 사람이 있어 궁액(宮掖)에서 변을 일으켰던 탓으로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현은 아는 바가 아니니, 그의 자녀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두운 황천에 있으면서 어찌 한탄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ꡓ하고, 이어 오열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슬픔을 스스로 금치 못했는데, 신하들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 환관들까지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경석이 아뢰기를, ꡒ근래 정령을 내림에 있어 오직 재이를 없애는 것을 급선무로 삼고 있고 성상께서는 매양 자신의 잘못을 들으려 하시니, 이것이 하늘의 경계를 능동적으로 삼가는 진실한 덕인 것입니다. 지난번 김홍욱(金弘郁)이 망령되어 천헌(天憲)에 저촉되어 스스로 형륙을 받았는데 복관시키라는 명은 참으로 성덕에 관계된 일입니다. 홍욱을 이미 신설(伸雪)시켰는데 유철(兪㯙)은 간신(諫臣)으로서 형을 받았습니다. 성상께서는 일이 대군(大君)과 연루되었다고 여겨 그 말을 통렬히 끊기 위한 것이었겠습니다만, 이는 도리어 성덕에 누가 되는 조처였습니다. 한없이 큰 천지에 대해서도 유감을 품는 바가 있는 것인데 이미 형을 받고 나서 또 찬축(竄逐)까지 당하였으니, 의당 탕척(蕩滌)시키는 은전을 내려야 합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경의 말이 이러하니 거두어 서용하도록 하겠다.ꡓ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ꡒ눈과 서리는 바로 원기(?氣)가 결집되어서 이루어진 것인데, 지금 수감되어 있는 사람과 귀양간 자가 매우 많으니, 그 가운데 정리(情理)로 보아 용서할 만한 사람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리고 옛날에는 형상(刑賞)을 시행함에 있어 모두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을 처단하는 것이 혹 만물이 한창 자라나는 계절에 있기도 했는데, 이는 봄에는 살리고 가을에는 죽인다는 의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사가 삼척(三尺)의 법을 잘 준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경의 말이 옳다.ꡓ하였다. 대사간 유계(兪棨)가 아뢰기를, ꡒ형조 판서 허적은 재상의 반열에 있는 중신(重臣)으로서 일을 아룀에 있어 삼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미 단서를 발단시켜 놓고 곧 다시 숨기고 있으니, 정신이 혼몽하여 잊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감히 말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을 끝까지 철저히 힐문하는 것이 사체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신하는 숨기는 것이 없어야 된다는 도리로 보면 어찌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버려두고 죄주지 않을 수 없으니, 허적은 먼저 파직시키고 나서 추문하소서.ꡓ하니, 상이 따랐다. 경휘가 아뢰기를, ꡒ허적이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면 그 죄가 참으로 큽니다. 또한 어찌 감히 혼몽하여 기억할 수 없는 일을 전하께 상달했겠습니까. 간원은 단지 파직시키고 나서 추문할 것으로 논계했습니다만, 법의 적용이 너무 가볍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파직시키고 나서 추문하는 율(律)이 무거운 것이 아닌가.ꡓ하였다./ 【영인본】 36 책 181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가족-가족(家族)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유철 [記事] : 효종실록 21권/ 효종 10년( 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4일 갑자 4번째 기사/ 정언 이익이 유지에 응하여 상소하여 시사에 대해 아뢰다/ 정언 이익(李翊)이 유지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ꡒ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려 온 지가 이제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재, 한재, 목요(木妖), 석요(石妖), 일식(日蝕), 월식(月蝕)과 시기(時氣)가 절서(節序)를 어기는 변고가 없는 해가 없었고, 따라서 전하께서 자신을 자책하는 하교와 구언하는 유지가 전후 잇따랐습니다만, 아무 재이(災異)를 인하여 하나의 가언(嘉言)을 받아들이고 아무의 말을 인하여 하나의 폐정(弊政)을 개혁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면서 진취되는 것이 없으니, 신은 전하께서 수성(修省)한다는 것이 법문에 따라 형식만 갖추는 데에 불과할 뿐 볼 만한 실효가 없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우선 전하께서 이미 행한 것을 가지고 반복하여 추론해 보면서 성실[誠]이라는 한 글자에 대해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매사에 성실히 하면 곧 편하고 실하게 되는 반면 성실히 하지 않으면 거짓이 되고 작위가 되니, 성실이야말로 안팎을 합치시키고 동정을 한결같게 하는 방법이 된다고 했습니다.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깊숙한 궁궐에서 한가히 있을 때나 아무도 보지 않아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소에서 엄숙하고 정제(整齊)된 자세로 상제(上帝)를 대하는 듯한 정성이 과연 신하들을 인접(引接)하고 경의(經義)를 강론할 때와 같으십니까. 이는 신이 엿보아 알 수 없는 것입니다만, 밖으로 드러나는 사령(辭令)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삼가 함양하는 방도에 아직도 충실하지 못한 점이 있고 계속하여 밝혀 나가는 공부에 아직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왕년에 유철(兪㯙)이 유도삼(柳道三)의 파출을 청했던 것은 예에 따라 책임만 메꾸는 데에 불과했던 것인데, 엄한 형신을 하여 귀양보내기까지 하였으니, 이는 혹 전하의 의도가 넘겨짚은 것이 너무 심했던 데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까. 노여움을 잊고서 사리의 시비를 살폈다면 반드시 이런 실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상시 공부하는 것이 소략했다는 것을 여기에서 증험할 수 있습니다. 일이 지난 뒤에는 전하께서도 반드시 후회하셨을 것인데, 한 해가 지나도록 폐치시킨 채 아직도 거두어 서용하는 거조가 없으니, 어찌 탕척(蕩滌)시키는 은전에 손상됨이 없겠습니까. 태복시(太僕寺)가 업무를 태만히 하여 폐기한 것 등은 하급 관리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으로 돌려도 될 것인데, 대신을 노예처럼 꾸짖으셨습니다. 전하의 생각에는 필시 ꡐ그는 본디 이런 사람이니 어떻게 감히 욕스럽게 여기겠는가.ꡑ 하시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대저 염치의 도리야말로 세상을 면려시키는 도구입니다. 서관(庶官)의 반열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대우해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대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위에 있는 사람의 뜻이 다그쳐 부리는 데에 있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은 구차스럽게 용납되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이는 실로 전하께서 그렇게 만든 것이니, 신은 삼가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신은 이 일에 대해서 추론(推論)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전하께서 기질을 변화시키는 공부를 보건대 득실(得失)의 빈도가 잦아서 앞에서 잘못한 것을 뒤에 고치지 않고 아침에는 그렇게 행한 것을 뉘우쳤다가도 저녁에는 다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뒷날 또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보장하겠습니까. 진실로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인하여 저것을 알고 옛것을 미루어 새것을 앎으로써 장래의 경계로 삼으소서. 근일 옥당에 내린 비답은 화평스러움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기왕의 일에 견주어 보면 그래도 실수가 적기 때문에 여기에서 감히 자세하게 진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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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