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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13-5:홍주삼(1662.6.21제수, 동년7,24하직-1663.6.9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5.04.04 08:47:59

  예천고을원 113-5 : 홍주삼(1662.6.21제수, 동년.7.24하직-1663.6.9이임) : 명륜당이 재건될 때의 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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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9권/ 현종 5년( 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7월 19일 무신 8번째 기사/ 이두진․홍주삼을 금부에 하옥하고 각각 고신을 빼앗고 도배시키다/ 이두진(李斗鎭)․홍주삼(洪柱三)을 금부에 하옥하여, 두진은 고신을 빼앗고 주삼은 특명으로 도배하였다. 두진이 충청 병사로 서원 객사(西原客舍)의 담장 밖에 피접(避接)해 있었다. 현감 홍주삼이 공도회 시관(公都會試官)으로 객사에서 선비들을 시험보이는 중 응시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두진이 노하여 가리개를 높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를 곤장치고, 또 응시자들을 몰아내었는데, 응시자들이 도망치며 흩어질 즈음에 구타를 당한 자도 있었다. 이에 선비들이 모욕을 당하였다는 이유로 방을 붙이고 과장을 나가버렸다. 주삼이 감사에게 보고하면서 두진을 몹시 헐뜯자, 두진 또한 주삼을 비방하며 말하기를, ꡐ유생들이 과장을 파한 것은 주삼의 격동에서 나온 것이다.ꡑ라고 하니, 주삼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우상 홍명하가 주삼이 상관을 모욕하였다는 것으로 상에게 아뢰어 체포하여 심문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두진과 주삼을 함께 하옥하였는데 그 원서(原書)에서 서로 다투어 힐난하자, 상이 두 사람을 대면시켜 확인하게 했다. 이에 승지 이경억(李慶億) 등이 ꡐ두진은 품계가 당상이고 주삼은 일찍이 경악(經?)의 시종을 거친 자입니다. 진신(搢紳)을 모욕하고 국가 체면을 손상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ꡑ고 아뢰고 도로 명령을 거둘 것을 청하니 상이 이에 따랐는데 뭇 의논이 모두 옳게 여기었다. 그 후 대사간 이홍연(李弘淵) 등이 ꡐ법률 적용의 가부는 유사(有司)가 할 일입니다. 이미 율문에 비추어 결정해 들였는데, 정배의 명이 뜻밖에 내리니 국가가 법률을 준용하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법이 한번 흔들리면 훗날의 폐단이 무궁할 것입니다.ꡑ라고 아뢰고, 주삼의 정배를 도로 거둘 것을 누차 아뢰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인본】 36 책 425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7년( 1666 병오 / 청 강희(康熙) 5년) 12월 25일 신미 2번째 기사/ 오시수․심재․홍주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시수(吳始壽)를 동부승지로, 심재(沈梓)를 응교로, 홍주삼(洪柱三)을 수찬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3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1월 8일 계미 1번째 기사/ 윤문거․이정영․이경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문거(尹文擧)를 대사헌으로, 이정영(李正英)을 도승지로, 이경억(李慶億)을 이조 참판으로, 윤심(尹深)을 교리로, 이정(李程)을 수찬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집의로, 심유(沈攸)를 장령으로, 조복양(趙復陽)을 행 대사성으로 삼고, 장선징(張善?)을 특별히 제수하여 병조 참판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3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1월 18일 계사 1번째 기사/ 집의 홍주삼 등이 원만리 등에게 내린 파추하라는 명을 환수하기를 청하다/ 집의 홍주삼, 장령 민광소, 지평 이단석이 아뢰었다. ꡒ대간을 처치할 즈음에 사피한 글의 내용 중에 너절한 말은 삭제하고 긴요한 말만 남겨 두는 것은 바로 근래의 규례입니다. 그러므로 대관이 여기에 의거하여 삭제한 것은 본래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해 승지도 이미 간통을 왕복하고 나서 규례에 따라 봉입한 것이니, 어찌 잘못한 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상의 분부가 매우 엄하시어 파직 추고하라는 명까지 내리시니, 본 계사의 내용 가운데 성상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서 이렇듯 격노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의 소소한 일로 인하여 지나친 거조를 하시니 이것이 어찌 성상께 바라는 바이겠습니까. 원만리와 김우형에게 내린 파추하라는 명을 환수하소서.ꡓ/ 【영인본】 36 책 538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1월 19일 갑오 2번째 기사/ 집의 홍주삼 등이 체직을 자청하다/ 집의 홍주삼, 장령 민광소 등이 아뢰기를, ꡒ국가가 대신(臺臣)을 대우하는 것은 체모가 특별합니다. 그런데 안숙이 인책하고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자, 처치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체직을 허락해버렸으니 실로 너그러이 포용하는 도량에 흠이 됩니다. 신들이 조회 때를 기다려 속히 환수하기를 청하고자 하였는데 간통을 주고 받는 사이에 정관(政官)이 이미 대임자를 차출하였습니다. 신들이 일처리를 더디게 하여 시간이 지나 미치지 못해 성조의 지나친 거조로 하여금 즉시 회수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신들은 잘못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부에서 한창 승지를 파추하라는 명을 환수하도록 청하는 계문을 올리고 있는데, 전하께서 특명으로 그 대임자를 차출하게 하셨으니, 대관이 논의를 한창 펴고 있는 날에 이런 전에 없던 지나친 분부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는 신들이 외람되이 대각에 있어 있으나마나 하기 때문입니다. 체직하소서.ꡓ하고,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영인본】 36 책 539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1월 30일 을사 2번째 기사/ 도승지 오정위 등이 청대하여 양사 여러 관원을 찬축시킨 일을 환수할 것을 청하다/ 도승지 오정위, 우승지 이원정, 우부승지 심세정, 응교 심재, 교리 오두인․윤심, 부교리 홍만용, 수찬 이정․홍주삼, 대사헌 박장원, 정언 이단석 등이 뵙기를 청하니, 상이 양심합(養心閤)에서 인견하였다. 상이 성난 목소리로 묻기를, ꡒ무슨 일로 보자고 하였는가?ꡓ하니, 박장원이 아뢰기를, ꡒ여러 신하를 찬축하라는 명이 뜻밖에 나왔으므로 소회를 진달하고자 해서입니다.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정적(情跡)이 불안하다고 하면서 여러 날 동안 인혐하고 들어가 있다가 지금에야 나온단 말인가.ꡓ하니, 대답하기를, ꡒ신이 과연 편치 못한 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사은 숙배하지 못했습니다만 이번에 성상의 기거(起居)를 살피는 반열에 참여하게 되어서 애써 나왔습니다. 이미 나왔으니 본직이 헌관인 이상 군부의 지나친 거조를 목격하고 감히 뵙기를 청하지 않겠습니까.ꡓ하자, 상이 이르기를, ꡒ경은 어찌 감히 이렇게 당돌한가. 체차시키라.ꡓ하니, 박장원이 종종 걸음으로 나갔다. 이단석이 나아가 아뢰기를, ꡒ국가가 불행하여 벌이 성상께 미치니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합계하는 것은 실로 공공(公共)한 의논인데, 성상의 노여움이 갑자기 진동하여 양사의 여러 관원을 일시에 찬축하시니 듣기에 놀랍고도 의혹됩니다. 언로(言路)에 관계되는 바가 크니 모두에게 내린 명을 환수하소서.ꡓ하였는데, 상이 답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ꡒ승지 김우석 등이 갑자기 하문을 받고 비록 잘못 대답하긴 했습니다마는, 가까이 모시는 신하를 갑자기 잡아다가 국문하라고 명하신 것은 사체를 손상시킨 것이 적지 않습니다. 환수하소서.ꡓ하였는데, 상이 또 답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ꡒ이익은 승지로 있으면서 왕명의 출납을 맡고 있으니, 군부의 지나친 거조를 보면 일에 따라 복역하는 것이 직책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성상께서 특명으로 파직하고 추고하시니 거조가 타당치 않은 듯합니다. 환수하소서.ꡓ하였는데, 상이 또 답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ꡒ박장원은 소회를 진달하고자 한 것인데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체차하라고 명하시니, 결코 대간을 우대하는 뜻이 아닙니다. 환수하소서.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이단석이 사사로움을 따라 변명하여 구원하려 하니 몹시 놀랍다. 체차하라.ꡓ하니, 단석이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심재가 나아가 아뢰기를, ꡒ병자년 이후 30년 동안 군주에게 치욕이 되지 않았던 날이 없어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벌써 익숙해져 부끄럽고 욕되는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벌금을 내는 일은 실로 병자년 이후 처음 보는 일이니,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 시골에 이르기까지 누군들 팔을 걷어붙이고 분개해 하지 않겠습니까. 공의가 격렬하여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의견들이 같으니, 대신(臺臣)들의 의견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초 조사받았을 때 일을 비록 전적으로 대신(大臣)에게 책임지울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일이 이미 불행하게 되었으니 그 책임을 누가 져야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합계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렇게 확대되어 가다가는 먼 곳에까지 알려져서 후일의 걱정을 불러오게 될까 싶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불행이라고 한다면 진실로 가할 것이니, 나도 이것을 염려하였다. 대신에 대해 체차로 논의하는 것은 옛날에 그런 예가 없었는데, 지금의 일로 보면 비록 대신이라고 하더라도 도태시키는 일이 있게 되었다.ꡓ하였다.

 

  윤심이 아뢰기를, ꡒ합계하여 논핵한 것은 실로 충성심이 북받쳐 그런 것으로, 임금을 높이고 의리를 밝히자는 것입니다. 비록 임금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를 억제할 수 있겠습니까.ꡓ하고, 오두인이 아뢰기를, ꡒ분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을 보면 공공의 논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사관으로 하여금 지금 한 말들을 기록하지 말게 하라.ꡓ하니, 주서(注書) 안후태(安後泰)가 붓을 놓고 기록하지 않았다. 검열(檢閱) 조사석(趙師錫)이 아뢰기를, ꡒ한림과 주서는 차이가 있으므로 비록 기록하지 말라는 분부를 받았으나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ꡓ하고, 그대로 일을 기록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선조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을 경우 한림과 주서로 하여금 기록하지 못하게 하였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내 명을 어기는가.ꡓ하고, 이어 그의 직책을 파하라고 명하였다. 대교(待敎) 홍만종에게 이르기를, ꡒ하번(下番)의 임무를 그대가 대신 살피도록 하라.ꡓ하였다. 조사석이 물러가고 이원정이 나아가 아뢰기를, ꡒ합계할 때 논의가 너무 격렬하여 국사가 어떻게 되어갈지는 고려하지 않아 대신(大臣)의 자리가 한꺼번에 비게 하였으니 매우 타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언관에게 죄를 주기까지 하신 것은 아무래도 알맞지 못한 듯합니다.ꡓ하고, 오정위가 아뢰기를, ꡒ합계의 논의가 잘못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직책이 대관(臺官)이며 언로에도 관계가 있으므로 갑작스레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되며 성상이 전후로 내린 분부도 화평한 감이 부족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점점 확대되고 서로 격렬해져 일이 수습될 기약이 없지 않을까 염려됩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오늘 하는 말들을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신하들은 모두 다 물러가라.ꡓ하였다.

 

  홍만종이 나아가 아뢰기를, ꡒ사관의 직책은 바로 붓을 잡는 것이므로 비록 기록하지 말라는 하교는 있었으나, 신과 조사석은 똑같이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만 파직의 벌을 모면하였으니, 감히 그대로 있지 못하겠습니다. 죄를 균등하게 받도록 해 주소서.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나간 다음 소를 올린다면 혹 모르거니와 어찌 감히 탑전에서 버젓이 죄주기를 청한단 말인가. 몹시 외람스럽다. 중하게 추고하라.ꡓ하니, 신하들이 드디어 모두 물러갔다./ 【영인본】 36 책 541 면/ 【분류】 *역사-편사(編史) / *인사-임면(任免) / *외교-야(野) / *왕실-국왕(國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2월 1일 병오 3번째 기사/ 응교 심재 등이 상차하여 명령을 거둘 것을 청하다/ 응교 심재, 교리 윤심․오두인, 부교리 홍만용, 수찬 이정․홍주삼 등이 상차하기를, ꡒ이번에 양사가, 전에 없던 수치를 처음 보고 군주가 모욕을 당하는 통탄스러움에 격분한 나머지 점점 확대되어 이 지경에 이른 것인데, 깊이 죄줄 것이 있겠습니까. 승지의 경우도 갑자기 하문을 받고 당황하여 대답을 잘못하기는 하였으나 그 본정을 따져보면 전혀 다른 뜻은 없었고 형제의 혐의가 있어서 전지를 받들지 못하였는데 어찌 이것이 임금의 명을 거스린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박장원․이단석이 특명으로 파척된 경우는 노여움을 남에게까지 옮긴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성명을 거두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ꡓ하였는데, 상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인본】 36 책 541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2월 6일 신해 3번째 기사/ 판서가 정사를 열어, 이준구․박정․박장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판서가 정사를 열어, 이준구(李俊耈)․박정(朴?)을 승지로, 박장원(朴長遠)을 대사헌으로, 강백년(姜栢年)을 대사간으로, 이동명(李東溟)을 헌납으로, 소두산(蘇斗山)을 장령으로, 이단석(李端錫)․신후재(申厚載)를 정언으로, 홍주삼(洪柱三)을 교리로, 윤강(尹絳)을 예조 판서로, 이경억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42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2월 22일 정묘 1번째 기사/ 이흥발․이단석․홍만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흥발(李興?)을 장령으로, 이단석(李端錫)을 지평으로, 홍만형(洪萬衡)을 정언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집의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4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3월 6일 경진 3번째 기사/ 윤비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이민구를 군함에 붙여 서용하다/ 윤비경(尹飛卿)을 승지로, 이단하(李端夏)를 이조 정랑으로, 여성제(呂聖齊)를 응교로, 홍주삼(洪柱三)을 수찬으로, 윤선거(尹宣擧)를 집의로 삼고, 이민구(李敏求)를 군함(軍銜)에 붙였다. 민구는 병자년 강도(江都)의 죄 때문에 오랫동안 폐기되어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별세초(別歲抄)로 인하여 서용하라는 명을 받은 것이다./ 【영인본】 36 책 547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3월 19일 계사 1번째 기사/ 정치화를 우상으로 삼고 홍주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주삼(洪柱三)을 사간으로, 이유상(李有相)을 헌납으로, 이규진(李奎鎭)․여경(呂儆)을 지평으로 삼았다. 정치화(鄭致和)를 우상으로 삼았는데,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이다./ 【영인본】 36 책 549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3월 27일 신축 3번째 기사/ 대사간 강백년 등이 전조 낭관의 외직 보임을 거두기를 청하다/ 대사간 강백년(姜栢年), 사간 홍주삼(洪柱三), 헌납 이동로(李東老) 등이 아뢰기를, ꡒ이번 승선(承宣)의 의망은 나름대로 정사의 체모를 따른 것이었으니 그 사이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조의 낭관 두 사람을 서북 지역의 마관(馬官)으로 보임하셨으니, 화평한 도리에 어긋납니다. 성명을 도로 거두소서.ꡓ하니, 상이 따르지 않았다./ 【영인본】 36 책 550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4월 1일 을사 2번째 기사/ 장선징․이정․홍주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장선징(張善?)을 도승지로, 이정(李程)을 동부승지로, 정지화(鄭知和)를 대사헌으로, 여성제(呂聖齊)를 사간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수찬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5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4월 3일 정미 1번째 기사/ 박장원․이숙달․홍주삼․윤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장원(朴長遠)을 대사헌으로, 이숙달(李叔達)을 장령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지평으로, 윤진(尹搢)을 정언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5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3권/ 현종 8년( 1667 정미 / 청 강희(康熙) 6년) 5월 27일 경오 1번째 기사/ 김만기․박세견․홍주삼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만기(金萬基)를 승지로, 박세견(朴世堅)을 사간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지평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555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8권/ 현종 11년( 1670 경술 / 청 강희(康熙) 9년) 3월 3일 경신 2번째 기사/ 이만영․이익․김석주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만영(李晩榮)을 대사간으로, 이익(李翊)을 이조 참의로, 김석주(金錫冑)를 이조 좌랑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응교로, 이혜(李?)를 부교리로, 신정(申晸)을 수찬으로, 정유악(鄭維岳)을 설서로, 정화제(鄭華齊)를 헌납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정유악은 정뇌경(鄭雷卿)의 아들이다. 정뇌경은 필선으로 소현 세자(昭顯世子)를 모시고 심양(瀋陽)에 들어갔는데, 정명수(鄭命壽)를 죽이려고 꾀하다가【정명수가 우리 나라 일을 주관하면서 여러 가지로 침해하고 욕보였으므로 사람들이 결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노(朴?)에게 누설되어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비통하게 여긴다. 정뇌경이 죽으려 할 적에 한 구절의 대구(對句)를 지어 부채에 써서 아들 정유악에게 전해주게 하였는데, 대체로 아들이 행세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었다. 정유악이 장성하여 모친의 뜻이라 핑계하고 과거를 폐하지 않더니, 급기야 벼슬길에 올라서는 출세하기에 급급하여 경솔하고 천박한 짓을 반복하므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겼다./ 【영인본】 36 책 662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8권/ 현종 11년( 1670 경술 / 청 강희(康熙) 9년) 4월 10일 병신 3번째 기사/ 충주․금산에서 전사한 장졸들에게 제사지내다/ 응교 홍주삼(洪柱三)을 충주(忠州)에, 교리 이훤(李?)을 금산(錦山)에 보내 전사한 장졸들에게 제사지냈다./ 【영인본】 36 책 666 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군사-전쟁(戰爭)(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8권/ 현종 11년( 1670 경술 / 청 강희(康熙) 9년) 5월 13일 무진 2번째 기사/ 응교 홍주삼이 유지에 응해 시사에 대해 아뢰다/ 응교 홍주삼(洪柱三) 등이 유지에 응하여 차자를 올려, 경연을 오래 폐지한 것과 금원(禁苑)에 자주 나가시는 잘못을 힘껏 진달하고, 또 아뢰기를, ꡒ내수사의 죄인으로 정배된 자들은 사면을 받지 못하였고, 수군의 신역은 가장 고통스러운데도 변통할 일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몇 가지의 일들은 재난을 부르기에 충분할 것들이니, 이를 변통시켜 재난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ꡓ하니, 상이 답하기를, ꡒ한재의 참혹함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백성의 일을 언급하면 그 아픔이 내몸에 있는 듯하다. 지금 차자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지없이 가상히 여겼다. 경계시킨 말은 내 마땅히 마음에 새기겠다. 의논하여 처리할 일도 여쭈어서 처리하게 하라.ꡓ하였다./ 【영인본】 36 책 667 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정론-간쟁(諫諍) / *왕실-경연(經筵) /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역(軍役)(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9권/ 현종 12년( 1671 신해 / 청 강희(康熙) 10년) 6월 5일 갑신 2번째 기사/ 가례 때의 여러 집사 등을 상주다/ 가례(嘉禮) 때의 여러 집사(執事)와 도감(都監)의 도제조(都提調) 이하에 대해 상을 논하라고 명하였다. 정사(正使) 청평위(靑平尉) 심익현(沈益顯)과 부사(副使) 판서 김수항(金壽恒)과 도제조 우의정 홍중보(洪重普)에게는 각각 안구마(鞍具馬)를 내리고, 제조 김수항․권대운(權大運)․조형(趙珩)에게는 각각 숙마(熟馬) 한 필을 내리고, 도청(都廳) 사인(舍人) 이단하(李端夏)․정(正) 홍주삼(洪柱三)과 전교관(傳敎官) 우승지 김우형(金宇亨), 보덕(輔德) 김만균(金萬均), 필선(弼善) 이익상(李翊相)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고, 그 나머지 여러 집사에게는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 【영인본】 36 책 698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19권/ 현종 12년( 1671 신해 / 청 강희(康熙) 10년) 7월 7일 병진 1번째 기사/ 이은상․홍주삼․이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은상(李殷相)을 도승지로, 홍주삼(洪柱三)을 동부승지로, 이섬(李暹)을 장령으로 삼았다./ 【영인본】 36 책 70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4월 1일 병자 1번째 기사/ 조수익․조이병․조위봉․홍주삼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수익(趙壽益)을 예조 참판으로, 조이병(趙爾炳)을 정언으로, 조위봉(趙威鳳)을 부수찬으로, 홍주삼(洪柱三)을 승지로 삼았다./ 【영인본】 37 책 13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4월 20일 을미 1번째 기사/ 홍주삼을 허적에게 보내 유시하다/ 상이 승지 홍주삼(洪柱三)을 영의정 허적에게 보내 유시하였다. ꡒ아, 국사가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러 이미 믿을 만한 형세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세도(世道)가 크게 변하고 공도(公道)가 날로 사라짐에 따라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위해 힘쓰는 자는 없고, 당파를 두호하고 자기들과 다른 자를 배척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자만 있어, 경으로 하여금 그 지위에 편안히 있지 못하게 하니, 내 매우 통탄스럽다. 경을 내쫓고자 한다면 트집잡을 말이 없을까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대신이 교외(郊外)로 나가 있는 것은 실로 이보다 큰일이 없으니 경은 사체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 속히 돌아와 조용히 일처리를 하는 것이 불가하지 않으니, 모름지기 내 뜻을 체득하여 빨리 들어오도록 하라.ꡓ/ 【영인본】 37 책 14 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4월 21일 병신 1번째 기사/ 홍주삼을 다시 보내 허적에게 전유하다/ 홍주삼이 돌아와 아뢰니, 상이 주삼으로 하여금 다시 속히 들어오라는 뜻을 전유하게 하였다./ 【영인본】 37 책 15 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실록 20권/ 현종 13년( 1672 임자 / 청 강희(康熙) 11년) 4월 22일 정유 1번째 기사/ 승지 이언년 등이 허적을 전유한 글에 대해 아뢰니 답하다/ 승지 이연년(李延年)․홍주삼․원만리(元萬里)가 아뢰기를, ꡒ영의정 허적에게 전유한 글 가운데 ꡐ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한다.ꡑ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비록 대신을 위안하기 위한 뜻에서 하신 말씀입니다만, 유신(儒臣)983) 을 예우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는 듯하기에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나를 견제하기 위해 감히 ꡐ자기와 다른 자를 배척한다.ꡑ고 한 말을 가지고 다투니, 매우 놀랍다.ꡓ하였다. 정원이 상의 엄한 비답을 받았다는 이유로 대죄하니, 상이 대죄하지 말라고 하였다./ 【영인본】 37 책 15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註 983]유신(儒臣) : 송준길. ☞(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개수실록 2권/ 현종 즉위년( 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11월 13일 경오 1번째 기사/ 윤강․정만화․정계주․정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강을 대사헌으로, 정만화(鄭萬和)를 집의로, 정계주(鄭繼冑)․정박(鄭樸)을 장령으로, 홍주삼(洪柱三)․민주면(閔周冕)을 지평으로, 이시매(李時?)를 공조 참판으로, 홍명하(洪命夏)를 예조 판서로, 이시술(李時術)을 응교로 삼았다./ 【영인본】 37 책 13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개수실록 2권/ 현종 즉위년( 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11월 24일 신사 1번째 기사/ 정치화․홍중보․이익․홍주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치화(鄭致和)를 지경연으로, 홍중보(洪重普)를 형조 참판 동지경연으로, 이익(李翊)을 교리로, 홍주삼(洪柱三)을 부수찬으로, 민광소(閔光?)를 지평으로, 이응시(李應蓍)를 우윤으로, 허적(許積)을 동지경연으로 삼았다./ 【영인본】 37 책 13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홍주삼 [記事] : 현종개수실록 2권/ 현종 1년( 1660 경자 / 청 순치(順治) 17년) 2월 24일 기유 1번째 기사/ 허목․이단상․심유행․홍주삼․박이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허목(許穆)을 장령으로, 이단상(李端相)을 부응교로, 심유행(沈儒行)을 교리로, 홍주삼(洪柱三)을 수찬으로, 박이명(朴而?)를 전라 병사(全羅兵使)로 삼았다./ 【영인본】 37 책 142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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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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