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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122-15 : 윤이도(1677.8.11하직-1678이임) : 정산서원에 사액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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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7일 (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6/2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金錫冑 등이 입시하여 朴守의 身病 문제, 貫革의 尺量, 打鼓의 數 등에 대해서 논의함/ ○ 金錫冑啓曰, 局別將朴守, 以身病不能入來云。 擧業中削去之意, 敢啓。 上曰, 依爲之。 尹以道啓曰, 試所執鼓矣。 上曰, 知道。 又啓曰, 貫革尺量矣。 上曰, 知道。 又啓曰, 擧子呼名矣。 上曰, 知道。 又啓曰, 監的官伏地矣。 上曰, 問之。 啓曰, 問之則曰, 柳葉箭中貫革, 而矢脫而鏃入者, 矢鏃俱退而革片中而破落者, 何以爲之? 貫邊中打鼓之數, 亦何以爲之? 敢稟云矣。 上曰, 前規何如? 金錫冑對曰, 矢脫而鏃入者, 矢退而革片破落者, 例皆載錄, 貫中者三鼓, 邊中者一鼓, 蓋是半折, 而亦是例規矣。 上曰, 然則矢脫而鏃入者, 矢退而革片破落者, 竝載錄, 打鼓之數, 亦依前規爲之,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7일 (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8/2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법도를 어기고 坐中에서 聞敎한 尹以道의 推考를 청하는 金壽恒의 계/ ○ 領議政金壽恒啓曰, 承傳色傳命之時, 兵房承旨尹以道, 不爲離席, 而坐中聞敎, 事體不當如是。 請推考。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7일 (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9/2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擧子의 矢數를 書塡하지 않은 東貫革監的官의 推考를 청하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東貫革監的官, 擧子金燦, 邊一中, 而矢數次第, 不爲書塡, 殊甚不察。 請推考。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7일 (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13/2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金錫冑 등이 입시하여 賞格의 分給 문제, 柳葉箭의 試射 등에 대해 논의함/ ○ 金錫冑啓曰, 賞格各其軍門分給之事, 旣已定奪, 而閑散無屬處及兵曹初試入格軍士, 則自戶曹分給耶? 上曰, 自戶曹分給, 可也。 又啓, 御將申汝哲, 柳葉箭試射事, 旣已命下矣。 綾?君具鎰, 竝爲一體命射, 何如? 上曰, 具鎰, 亦一體射之, 可也。 尹以道啓曰, 呼名官伏地者, 問之則曰, 宣傳官有缺御前執事, 故不得連續入射之意, 敢達云矣。 金錫冑曰, 宣傳官, 雖執事於御前, 其數不少, 使之分半相遞, 則別無斷續之事矣。 上曰, 唯。(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7일 (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17/2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騎? 初試 외에 各廳의 閑散으로 初試에 응하는 인원이 없는 지를 묻는 하교/ ○ 下敎曰, 騎?元初試外, 各廳閑散, 初試類無之耶? 尹以道曰, 各廳閑散, 雖不知幾何, 而兵曹判書, 方以査出來, 出去矣。 又啓曰, 各廳閑散, 兵曹査出, 則片箭二百二十四名, 六兩十三名, 騎?七十四名云矣。(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1/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片箭에 分數로 할 것인지 묻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訓鍊官伏地者, 問之則曰, 片箭當用分數耶? 用矢數耶? 敢稟云矣。 上曰, 用分數。(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5/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數字를 기록하지 않은 해당 監的官의 推考와 다시 써서 들이기를 청하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閑良安義挺, 邊二中, 而所啓中中矢, 不書數字, 當該監的官推考, 使之更書以入, 何如?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6/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監的官에게 打鉦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라고 명함/ ○ 上曰, 西貫革不中之矢, 不爲打鉦, 問于監的官。 尹以道啓曰, 問之則曰, 矢子來, 進見其落地後打鉦, 故自致遲延云。 其言誣飾, 從重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 李師命曰, 科場事體重大, 如是錯誤, 只施推考之罰, 似緩矣。 上曰, 誣飾之言, 極奸詐, 拿問。(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8/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當射六兩者 중 各廳에서 自願한 사람을 問啓하라는 하교/ ○ 又下敎曰, 當射六兩者, 各廳必有除初試自願之人, 問啓。 尹以道對曰, 問之則閑良十三人外, 各廳願射者, 五十名云矣。(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9/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監的官이 武擧子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監的官伏地者, 問之則曰, 武擧子所中之矢, 不書名字, 何以爲之? 敢稟云矣。 上曰, 不爲載錄。(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21/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隊가 이루어지지 않아 3인으로 入射하겠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片箭幾盡射, 而欲爲雙隊, 則隊不成?, 一貫革, 三人入射之意, 敢稟。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25/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拾箭官이 擧子의 두 번째 화살을 過限된 것으로 처리했던 일에 대해 물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拾箭官伏地者, 問之, 則西邊擧子, 第二矢, 過限而橫射, 何以爲之? 敢稟。 傳曰, 載錄,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26/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觀武才와 相値되어 19일 都監軍兵의 鍊習을 시행할 수 없다는 金錫冑의 계/ ○ 金錫冑啓曰, 來十九日都監軍兵鍊習之日, 觀武才相値, 不得設行之意, 敢啓。 傳曰, 知道。 又啓曰, 東邊擧子, 借來他人之弓, 强不得開弦云。 退送之意, 敢啓。 上曰, 唯。 武擧子車義仁, 一矢百四十步, 二矢百四十七步, 三矢百五十步, 射之。 上顧而笑之, 下敎曰, 除初試之類, 同入耶? 尹以道對曰, 同入矣。 上曰, 兵判來前。 金錫冑進而伏。 上曰, 車義仁, 壯士也。 內弓房別强弓, 使之試之。 錫冑曰, 義仁雖壯士, 力非絶倫, 射法過人, 能還射缺 鄭英徽者, ?力勝於義仁矣。 上曰, 此兩人, 先試强弓。 申汝哲曰, 今武士彎强弓, 欲知其力之多少, 此非遠射之弓也, 必難於放矢, 使之彎之而已, 不使放矢, 何如? 上曰, 問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27/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車義仁 등 2인에게 强弓을 試射하라고 명함/ ○ 上曰, 車義仁․鄭英徽二人, 爲先試射强弓, 可也。 尹以道對曰, 問二人先射强弓事下敎, 而下敎前, 二人已入試所, 何以爲之? 上曰, 然則從後試之, 可也。 上謂尹以道曰, 强弓發矢開弦與否, 問車義仁․鄭英徽事分付。 卽出別强弓試之, 則車義仁, 不能彎, 鄭英徽, 能彎而弓短, 不可發矢云矣。 上曰, 然則出天字角弓, 試射, 可也。 錫冑曰, 前日試射强弓時, 非但此兩人而已, 亦有能彎者六七人, 竝爲抄入試彎, 何如? 上曰, 允。 尹以道啓曰, 擧子李尙植, 伏地, 願彎强弓云矣。 上曰, 使彎之。 下敎尹以道曰, 强弓呼名者, 稍近前試彎, 可也。 又下敎曰, 强弓試彎人, 當施賞, 彎弓發矢, 滿彎半彎之人, 竝爲載錄事, 分付。(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28/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姜振武가 彎强弓으로 시험보기를 청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伏地擧子姜振武, 請彎强弓云矣。 上曰, 使之置簿於抄成冊中,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0/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强弓試彎人에 대해 속히 招入하라는 하교/ ○ 下敎曰, 强弓試彎人, 速爲招入, 近前試彎。 尹以道對曰, 今方整齊矣。 旣整之後, 當先達矣。 上曰, 盡聚後卽告。 尹以道乃告曰, 强弓彎射人八名待令矣。 呼入之意, 敢啓。 上曰, 出給强弓, 可也。 尹以道又啓曰, 彎强弓人等, 旣盡彎矣。 出送之意, 敢啓。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1/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文臣과 侍衛將士의 可射帿者를 擧案에 抄出하라고 명함/ ○ 上曰, 文臣及侍衛將士可射帿者, 抄出擧案。 尹以道啓曰, 文臣中當爲射帿者, 入文試官者多矣。 何以爲之? 上曰, 非今日必射, 先受擧案,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2/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內禁衛의 4인이 彎强弓으로 시험보기를 청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擧子伏地者, 問之, 則乃內禁衛四人之請彎强弓矣。 上曰, 兵曹抄啓之後, 不當續續爲之, 退去,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7/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화살에 맞은 李養中이 治療를 청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文擧子李養中, 肩甲, 中六兩矢, 伏地請藥治療云矣。 閔鼎重曰, 儒生, 不爲謹避之故, 中矢無怪, 而拾箭官, 不爲卽報, 當爲罰矣。 上曰, 拾箭官, 從重推考, 中矢儒生, 賜藥物治療, 可也。 金錫冑曰, 擧子中矢, 不爲造達, 拾箭官之罰, 豈止推考? 拿問, 可也。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8/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呼名官이 金尙振이 呼名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呼名官伏地者, 問之則曰, 金尙振, 呼名當次, 而不爲入來云矣。 其曲折, 詳問後啓計料矣。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40/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未射擧子와 訓鍊都監의 將官을 連射하겠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內官射?後, 昨日未射擧子及訓鍊都監將官, 連射之意, 敢啓。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41/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都監將官의 呼名 소리가 들리지 않은 이유를 물음/ ○ 上曰, 內官之後, 都監將官連射之意已啓, 而何無呼名之聲耶? 尹以道對曰, 其中有閑良出身, 而閑良抄出, 故少遲矣。(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42/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柳以昌 등 3인이 呼入되지 않았다고 보고하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擧子伏地者, 問之, 則別蓄武士柳以昌․李時積․李承起三人, 而其言曰, 除初試者盡射, 而臣等, 以初試之人, 不爲呼入, 故敢達云矣。 金錫冑曰, 必有文書之錯誤矣。 上曰, 文書相考。 尹以道對曰, 慕華館二所試冊相考, 則閑良李承起․柳以昌․李時積三人, 果爲初試入格, 而榜目, 以出身書塡, 故不爲抄出先射矣。 上曰, 當該試官, 從重推考, 三人爲先入射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44/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柳以昌 등 2인이 이름이 없어 載錄하지 못했다고 보고하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擧子伏地者, 問之, 則柳以昌․李承起等二人, 各中一矢, 而試官流記。 初無其名, 恐不載錄, 故伏地云矣。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45/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騎?의 初試 인원을 盡書하여 들였는지 물으라는 하교/ ○ 下敎曰, 騎?初試之類, 盡書以入乎? 問之。 尹以道對曰, 盡書以進矣。(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51/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柳葉箭의 貫革을 尺量했다는 尹以道의 계/ ○尹以道啓曰, 柳葉箭貫革尺量矣。 上曰, 昨已尺之, 勿爲更量,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8일 (을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54/61)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殿試一中한 四人의 比較를 청하는 尹以道의 게/ ○ 尹以道啓曰, 殿試一中, 四人也。 比較, 何如? 上曰, 四人比較,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9일 (병신) 원본290책/탈초본15책 (4/4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兵批의 관원 현황/ ○ 兵批, 判書金錫冑侍衛進, 參判吳斗寅侍衛進, 參議李東老進, 參知宋光淵侍衛進, 左副承旨尹以道進。(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9일 (병신) 원본290책/탈초본15책 (8/4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오늘 政事에 病勢가 중한 兵房承旨를 代房하겠다는 李師命의 계/ ○ 李師命啓曰, 今日政, 吏․兵房承旨, 當進去, 而兵房承旨尹以道, 素患胸腹痛, 今方有病勢, 使之豫爲出去調理, 御前出納, 則以代房爲之之意, 敢啓。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9일 (병신) 원본290책/탈초본15책 (22/4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하교에 따라 射帿 인원을 모았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依下敎, 射帿之員, 已聚矣。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9일 (병신) 원본290책/탈초본15책 (35/4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내일의 殿坐를 寅正 3刻에 거행하라고 함/ ○ 上曰, 明日畢射給賞矣。 日勢午後則頗熱, 明日殿坐時, 以寅正三刻, 分付, 可也。 尹以道啓曰, 寅正三刻, 日勢未明, 難於試射, 依十七日寅正四刻, 何如? 上曰, 然則以寅正四刻, 分付, 可也。(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19일 (병신) 원본290책/탈초본15책 (42/4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江都의 試取之規를 取考하여 南漢山城의 試才事目을 다시 付標하여 들이겠다는 兵曹의 계/ ○ 尹以道, 以兵曹言啓曰, 今四月十七日春塘臺觀武才時, 守禦使呂聖齊所啓, 山城武士輩, 聞有試才之命, 莫不聳動, 而第啓下規矩, 與江都有異, 武士等, 以此爲?然矣。 其中騎?, 有所不便者, 山城自是守堞之地, 鍊習騎?, 實非緊者, 而城內旣無馳馬之場, 且無可合騎射之馬, 渠輩之爲悶, 其勢誠然。 若依江都例爲之, 則其在慰悅之道, 似合便宜, 而武士情願如此, 故敢此仰稟。 上曰, 然則分付兵曹, 以江都試取之規, 改啓下可也事, 命下矣。 取考上年江都別遣御使試才規矩, 則六兩三矢百步, 片箭三矢百三十步, 一巡一中, 柳葉箭五矢百二十步, 一巡二分, 鳥銃三柄, 一巡二分, 落點矣。 今此南漢試才事目, 依此改付標以入之意, 敢啓。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3/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吏批와 兵批의 관원 현황/ ○ 吏批, 判書李?進, 參判南二星進, 參議宋奎濂進, 都承旨李師命進。 兵批, 兼判書金錫冑進, 參判吳斗寅進, 參議李東老進, 參知未差, 左副承旨尹以道進。(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4/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春塘臺에 親臨함/ ○ 卯時, 上臨春塘臺觀武才。 上曰, 承旨來前。 尹以道進伏。 上曰, 御營大將申汝哲, 再昨騎?, 雖不得中, 騎馬馳騁, 無異年少之人, 熟馬一匹面給。 副護軍邢浹, 以八十之人, 御前出入, 少無衰老之態, 且能中片箭一矢, 極爲嘉焉, 特爲加資事, 分付。(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6/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片箭을 尺量하겠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片箭尺量矣。 上曰, 昨已尺之, 勿爲更量。(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7/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片箭初試의 各廳單子 외에 더 없는 지를 물음/ ○ 上曰, 片箭初試, 各廳單子書入之外, 更無耶? 尹以道對曰, 入奉[奉入]單子外, 更無云耳。(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9/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申汝哲에게 熟馬 1匹을 面給하라는 傳旨에 誤字가 있으니 고쳐서 들이라고 함/ ○ 上曰, 傳旨中申汝哲熟馬一匹面給之面字, 誤以陽字書之, 改書以入。 尹以道對曰, 注書誤聽上敎, 以致如此, 請注書推考。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10/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呼名하였는데 趙錫圭가 나오지 않았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呼名官伏地者, 問之則曰, 武兼趙錫圭, 無故呼不云矣。 上曰, 御前無故呼不, 決棍十度, 承旨監杖, 可也。 金錫冑曰, 趙錫圭, 前武兼也, 爲初試, 似無無故呼不之理, 送人捉致後, 擧行下敎之意, 敢啓。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11/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趙錫圭에게 棍 10度로 결단하는 것을 監杖한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呼不人趙錫圭, 決棍十度, 監杖矣。 上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13/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申汝哲 등이 試場에 不察의 실수가 있어 單子를 다시 付標하여 還入하겠다고 아룀/ ○ 武試官申汝哲․具鎰․尹?等進曰, 試場之事, 有不察之失, 故敢達。 擧子申翊戴, 柳葉箭三中, 而參試官則以一中載之, 臣等所記都廳冊則以三中置簿, 單子書入之時, 例以參試官所記歸重, 故單子中以一中書入, 以致啓下, 而其爲三中, 明白無疑矣。 單子還入, 改付標之意, 敢達。 仍陳惶恐之意矣。 上曰, 許多文書, 不察無怪, 其單子改付標以入, 可也。 尹以道曰, 參試官則難免不察之失, 從重推考, 何如?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0일 (정유) 원본290책/탈초본15책 (18/4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成胤童 등이 片箭을 쏘기를 청했다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伏地者, 問之則曰, 五衛將成胤童․李萬徹, 請射片箭云矣。 上曰, 令射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2일 (기해) 원본290책/탈초본15책 (3/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崔逸이 標信없이 漢城府의 坐起에 나아간다는 都摠府의 계/ ○ 尹以道, 以都摠府言啓曰, 副摠管崔逸, 除標信, 漢城府坐起進去之意, 敢啓。 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3일 (경자) 원본290책/탈초본15책 (2/8)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崔逸이 標信없이 漢城府의 坐起에 나아간다는 都摠府의 계/ ○ 尹以道, 以都摠府言啓曰, 副摠管崔逸, 除標信, 漢城府坐起進去之意, 敢啓。 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5일 (임인) 원본290책/탈초본15책 (7/14)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吏批에 나아갈 承旨에 대해 묻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當日爲政事命下, 而諸承旨, 皆以申後出去, 廳中只有臣以道及同副承旨趙世煥。 兵批則臣以該房, 當爲進去, 而吏批則何承旨進去乎? 敢稟。 傳曰, 吏兵批兼進。(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5일 (임인) 원본290책/탈초본15책 (8/14)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吏批와 兵批의 관원 현황/ ○ 吏批, 判書李?病, 參判南二星病, 參議宋奎濂進, 左副承旨尹以道進。 兵批, 兼判書金錫冑受由, 參判吳斗寅病, 參議李東老進, 參知李玄錫未肅拜, 尹以道兼進。(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5일 (임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3/14)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宣政殿에 李翊相 등이 입시하여 璿源譜略의 釐正에 대해 논의함/ ○ 午時, 上御宣政殿。 晝講入侍, 同知事李翊相, 特進官崔逸, 參贊官尹以道, 侍讀官李世白, 說經李?命, 假注書李萬齡, 記事官朴泰維․申啓華。 上自祈父, 止白駒, 讀前受音一遍訖。 李世白, 進講, 自黃島, 止我行其野, 音釋註解各一遍訖。 上受而讀之訖。 世白, 釋黃鳥第一章曰, 此二?字異義, 一則木名, 一則善也。 又釋大旨曰, 民生不得其所之詩也。 上曰, 唯。 講畢。 李翊相進曰, 璿源譜略, 旣已釐正。 其舊件則似當收合洗草, 而內入之件, 其數甚多, 楨․枏家頒賜件, 亦爲內入於籍沒時云, 此亦出給, 使之一倂洗草, 何如? 上曰, 楨․枏家頒賜件, 旣已燒火, 其他內入舊件, 則當爲出給矣。 翊相曰, 每於式年, 璿源譜錄單子, 收捧修正之後, 則仍令藏置, 例也。 而今則旣以多有差誤之處, 有此釐正之擧, 不可以舊捧單子爲準, 此亦洗草, 以爲本廳公用, 而今此釐正時所捧單子, 只爲藏置, 以爲後考之地, 何如?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5일 (임인) 원본290책/탈초본15책 (14/14)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讀書堂에 합당한 사람을 大提學으로 하여금 抄啓하게 하고, 別軍職은 兵曹에서 抄擇하는 일을 재촉하라는 전교/ ○ 上, 下敎于尹以道曰, 讀書堂可合人, 令大提學抄啓, 別軍職, 令兵曹抄擇事, 更爲催促, 可也。 諸臣遂以次退出。 以上燼餘(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6일 (계묘) 원본290책/탈초본15책 (5/7)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擊錚을 한 申? 등의 囚禁治罪를 청하는 兵曹의 계/ ○ 尹以道, 以兵曹言啓曰, 當日前都事申?稱名人, 自金虎門入來, 差備門外擊錚, 極爲駭愕。 令攸司囚禁治罪, 同門守門將申五章, 常時不能禁雜人, 以致?入, 亦難免其責, 推考,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7일 (갑진) 원본290책/탈초본15책 (6/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大臣과 備局堂上을 引見하겠다는 전교/ ○ 傳于尹以道曰, 大臣․備局堂上引見。(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7일 (갑진) 원본290책/탈초본15책 (7/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金錫冑에게 加由의 명을 내렸으나 軍制變通을 榻前에서 定奪해야 하므로 牌招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계/ ○ 尹以道, 以備邊司言啓曰, 兵判金錫冑三度呈辭, 旣有加由之命, 本兵事務煩劇, 如此曠日引入, 而軍制變通之事, 今日當爲定奪於榻前, 主兵之人, 不可不同參, 卽爲牌招察任,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8일 (을사) 원본290책/탈초본15책 (3/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吏批政廳에 어느承旨를 보낼지 묻는 朴純의 계/ ○ 朴純啓曰, 今日當爲開政, 而都承旨旣遞, 右承旨以病陳疏, 廳中有臣純及左副承旨尹以道, 右副承旨魚震翼, 同副承旨趙世煥。 兵批政廳, 尹以道, 以該房當爲進去, 而吏批政廳, 則何承旨進去乎? 敢稟。 傳曰, 左承旨進去。(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8일 (을사) 원본290책/탈초본15책 (7/9)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兵批의 관원 현황/ ○ 兵批, 兼判書金錫冑病, 參判吳斗寅病, 參議李東老進, 左副承旨尹以道進, 參知李玄錫未肅拜。(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29일 (병오) 원본290책/탈초본15책 (3/3)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宣政殿에 南龍翼 등이 입시하여 朴淳의 奉祀孫에게 祭田을 지급하고 司勇遞兒에 붙여 녹봉을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 ○ 巳時, 上御宣政殿。 晝講, 特進官南龍翼, 知事鄭載嵩, 參贊官尹以道, 侍講官沈濡, 檢討官李彦綱, 記事官兪得一․朴泰維․申啓華入侍。 上讀前受詩經節南山十章音一遍訖。 濡, 進講自正月繁霜, 止胡爲??, 大文音釋, 倂讀註音一遍訖。 上受而讀之, 正文音釋, 倂讀章下大旨註音一遍。 濡, 逐章解其文義曰, 此詩, 略如節南山之義。 南山之詩, 刺王之用尹氏以致亂也, 正月之章, 見其繁霜爲災而憂傷之也。 第二章父母生我之語, 如疾痛呼父母之義也, 無所歸咎, 而傷己之適丁此時, 是猶我生之後, 逢此百罹之言也。 濡曰, 古者伍子胥, 以楚人, 掘平王塚而鞭其尸, 申包胥, 以人衆勝天, 天定勝人等語言之, 蓋出於靡人弗勝之言也。 至五章, 濡曰, 禽鳥之類, 或以羽毛, 辨其雌雄, 而烏則難辨, 以喩時人之其[俱]曰予聖, 莫知其是非也。 李彦綱曰, 曾在太宗朝, 判承樞事朴淳, 以問安使, 承命入往咸興, 死於王事, 太宗大王, 嘉其爲國亡身之忠, 錄功旌閭, 且有優賜祭田, 錄用子孫之命, 而壬辰之亂, 奉祀子孫, 喪亡殆盡, 且其祭田, 亦皆折入於公家, 無復餘存者矣。 其後內外子孫, 相議立後, 具由上言, 請受曾賜祭田, 以爲香火之地, 該曹覆啓, 判付內, 有祭田十結, 特爲劃給之敎, 而該曹?以無空閑田土, 成命旣下之後, ?今無奉行之事, 事甚未安。 且兵曹判書金錫冑, 曾以奉祀孫, 別設司勇一遞兒, 依舊例付祿之意, 陳達蒙允, 而以未入番之故, 時未奉行。 凡舊功臣子孫, 必入忠義番, 然後乃許受祿者, 例也, 而此則在他功臣子孫有異, 似當不拘此例。 今若分付該曹, 祭田十結, 依判付速爲劃給, 其奉祀孫, 亦爲付祿, 則似合於聖世崇獎節義之道矣。 上曰, 分付該曹, 祭田速爲劃給, 奉祀子孫, 亦付司勇遞兒給祿, 可也。 出擧行條件 諸臣罷出。 以上燼餘(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4월 30일 (정미) 원본290책/탈초본15책 (3/10)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내일의 常參과 經筵에 대해 取稟하는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明日常參․經筵, 取稟。 傳曰, 停。(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5월 3일 (경술) 원본290책/탈초본15책 (9/12)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各陵의 端午祭官이 부족하여 전례에 따라 刑官도 差送할 것을 청하는 吏曹의 계/ ○ 尹以道, 以吏曹言啓曰, 今此端午, 各陵祭官, 當爲塡差, 而無故可差之人乏少, 依前例勿論刑官, 竝爲差送之意, 敢啓。 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5월 3일 (경술) 원본290책/탈초본15책 (12/12)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李珥와 成渾의 문묘종사에 대한 尹以道의 계/ ○ 尹以道啓曰, 文成公李珥, 文簡公成渾陞配聖廟一行缺素昧儷文, 累度催促, 無意製進, 殊甚四字缺此敎書, 事面重大, 大提學李敏敍, 藝文館三字缺製進, 似合事宜, 敢稟。 傳曰, 依啓。 使之?卽製進。 燼餘(www.history.go.kr 2007)
윤이도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8년 5월 5일 (임자) 원본290책/탈초본15책 (4/23) 1682년 康熙(淸/聖祖) 21년/ 尹以道 등이 병으로 나오지 못하니 변통이 필요하다는 李翊相의 계/ ○ 李翊相啓曰, 同副承旨朴世采, 在外未及上來, 右承旨尹以道, 脚下有毒?, 不得運步, 陳疏到院。 右副承旨趙世煥, 身病猝劇, 累日不爲仕進, 出納之際, 不成貌樣。 右承旨尹以道, 右副承旨趙世煥, 合有變通之道, 敢此仰稟。 傳曰, 竝改差。 缺(www.history.go.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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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