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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24:심숙(1680.2.4제수-동년.2.6사은-동년.2.18하직-1680.7.7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6.01.30 06:36:02

  예천고을원 124 : 심숙(1680.2.4제수-동년.2.6사은-동년.2.18하직-1680.7.7이임) : 진사로서 부임한 예천고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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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숙(沈潚)은 1680년(숙종 6)에 부임, 동년 7월 7일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1639(인조 17)-?, 서울 사람, 자는 숙옥(肅玉), 본관은 풍산, 전주부윤 겸 전주진관 병마절제사 제(齊)의 맏아들, 조ㆍ현(玹, 1649生, 字玄玉, 進士)의 형, 종한(宗漢)ㆍ우한(佑漢)ㆍ필한(弼漢)ㆍ익한(翊漢)의 아버지, 유혁연(柳赫然)의 사위로 이정(李楨)과 이남(李枏)의 집과 잇다라 혼인을 맺었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60년(현종 1) 식년 진사시에 2등 7위로 합격하였다. 1680년(숙종 6) 7월 7일 예천 군수를 이임하였다. 맏아들 종한(1661生, 字宗之)은 1683년(숙종 9) 증광 생원시에 3등 36위로 합격, 동년 증광 진사시에 3등 39위로 합격하였다.(顯宗實錄 1670.3.11, 司馬榜目)

 

  1680년(숙종 6) 7월 7일에 사헌부에서 예천군수 심숙의 파직을 건의하기를 “예천군수 심숙은 유혁연의 사위로 이정과 이남의 집과 잇달아 혼인을 맺었으며, 역적 허견과 정의가 두터운 것은 다른 사람의 평범하게 지내는 비교가 아닙니다. 청컨대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심숙(肅宗 009卷 6年(1680) 7月 7日(甲午) 002 / 司憲府에서 醴泉郡守 沈숙 等의 罷職을 建議하다) [實錄] : 날짜 : 1680년 07월 07일(음력)/ 사헌부에서 의주 부윤 안여석과 예천 군수 심숙의 파직을 건의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ꡒ의주 부윤(義州府尹) 안여석(安如石)은 오시수(吳始壽)의 가까운 친척입니다. 승지(承旨)로 있다가 나아가 만윤(灣尹)이 된 것은, 뜻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오시수의 일을 장차 조사를 행할 거조가 있다면, 안여석을 그대로 연경(燕京)에 통하는 큰 길에 둘 수 없으니, 청컨대 파직하소서. 예천 군수(醴泉郡守) 심숙(沈?)은 유혁연(柳赫然)의 사위로 이정(李楨)과 이남(李?)의 집과 잇달아 혼인을 맺었으며, 역적 허견(許堅)과 정의가 두터운 것은 다른 사람의 평범하게 지내는 비교가 아닙니다. 청컨대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ꡓ하니, 따르지 않고, 다만 심숙의 일만 그대로 따랐다./【원전】 38집 463면/【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 정보제공기관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제공기관 : 국사편찬위원회(www.knowledge.go.kr 2006)

 

  심숙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4일 (갑자) 원본275책/탈초본14책 (10/10)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沈숙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 吏批, 以沈숙爲醴泉郡守, 李元祿同義禁, 權尙任爲?基郡守, 洪萬朝爲兵曹佐郞, 辛必馨爲監察, 金是鉉爲承文校檢, 睦昌明爲吏曹參議, 全益祉爲東部主簿, 具仁熙爲典籍, 李最晩爲繕工副正, 申命伯爲歸厚別提, 洪璡爲工曹正郞, 李煦爲長湍府使, 金麟至爲連原察訪, 申?爲咸鏡都事, 朴純爲刑曹參議, 李華鎭爲司諫, 李元祿爲知義禁, 權珪爲兵曹佐郞, 李麟徵爲正言, 閔就道爲大司諫, 朴琳爲橫城縣監, 權脩爲水原府使。 政軸(www.history.go.kr 2007)

 

  심숙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6일 (병인) 원본275책/탈초본14책 (5/13)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李元祿 등이 謝恩함/ ○ 謝恩, 同義禁李元祿, 刑曹參議朴强, 咸鏡都事申?, 東部主簿金益祉, 齊陵參奉李廷益, 部將李萬枝, ?基郡守權尙任, 工曹正郞洪璡, 醴泉郡守沈숙, 校檢金是鉉, 社稷參奉鄭祖甲, 繕工副正李最晩, 橫城縣監朴琳, 兵曹佐郞洪萬朝, 司贍奉事李明鎭。(www.history.go.kr 2007)

 

  심숙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2월 18일 (무인) 원본275책/탈초본14책 (3/13)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洪震碩 등이 하직함/ ○ 下直, 甲山府使洪震碩, 醴泉郡守沈숙。(www.history.go.kr 2007)

 

  심숙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6년 7월 7일 (갑오) 원본277책/탈초본14책 (11/16)  1680년 康熙(淸/聖祖) 19년/ 安如石의 罷職不敍 등을 청하는 司憲府의 계/ ○ 府前啓, 還收李師命修撰除授之命事。 新啓, 義州府尹安如石, 乃是始壽之至親也。 以承宣出爲灣尹, 之意必有在, 而始壽之事, 將有行査之擧, 則如石決不可仍置之於通燕孔路。 請義州府尹安如石, 罷職不敍。 醴泉郡守沈숙, 以赫然之壻, 連姻於楨․?之家, 與逆堅, 情誼之親?, 非他泛然之比, 而?鄙可駭之事, 亦且不一而足。 請醴泉郡守沈?, 罷職不敍。 答院曰, 不允。 答府曰, 不允。 末端事, 依啓。(www.history.go.kr 2007)

 

  심숙 [記事] : 숙종실록 9권/ 숙종 6년( 1680 경신 / 청 강희(康熙) 19년) 7월 7일 갑오 2번째 기사/ 사헌부에서 의주 부윤 안여석과 예천 군수 심숙의 파직을 건의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ꡒ의주 부윤(義州府尹) 안여석(安如石)은 오시수(吳始壽)의 가까운 친척입니다. 승지(承旨)로 있다가 나아가 만윤(灣尹)이 된 것은, 뜻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오시수의 일을 장차 조사를 행할 거조가 있다면, 안여석을 그대로 연경(燕京)에 통하는 큰 길에 둘 수 없으니, 청컨대 파직하소서. 예천 군수(醴泉郡守) 심숙(沈?)은 유혁연(柳赫然)의 사위로 이정(李楨)과 이남(李?)의 집과 잇달아 혼인을 맺었으며, 역적 허견(許堅)과 정의가 두터운 것은 다른 사람의 평범하게 지내는 비교가 아닙니다. 청컨대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ꡓ 하니, 따르지 않고, 다만 심숙의 일만 그대로 따랐다./ 【영인본】 38 책 463 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www.history.go.kr 2007)

 

  심숙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1월 11일 (정미) 원본268책/탈초본14책 (2/16)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丁昌燾 등이 사은함/ ○ 謝恩, 戶曹參議丁昌燾, 白翎僉使盧瑀, 奉常主簿韓識, 監察柳壽芳, 南部參奉李尙明, 刑曹正郞沈潚, 宣傳官金始慶․李亨蕃, 禮曹佐郞曺孝昌, 三水郡守元德徽, 兵曹佐郞安圭, 內資直長權惟, 軍資主簿白良弼, 慶基殿參奉申命儒, 碧沙察訪宋孺悌, 禧陵參奉李蘊。(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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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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