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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53-30:조태언(1731.4.28제수-동년5.17하직-1734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8.01.06 06:38:09

  예천고을원 153-30 : 조태언(1731.4.28제수, 동년.5.17하직-1734이임) : 이인좌의 난 잔당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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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에 약원(藥院)의 여러 신하들이 중도에 지나치다고 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돌아보건대, 지금 당습에 젖은 신하들을 모두 죽일 수가 없다. 이제 내가 다시 임어(臨御)한 임금과 같은데 여러 신하들은 오히려 혼돈(混沌)한 가운데 있으니, 어찌 혀를 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태언(趙泰彦)은 응견(鷹犬) 같은 무리로서 오히려 당습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감히 󰡐하필󰡑이란 두 글자를 말하니, 내가 일찍이 지나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조태언의 목을 가져오는 것을 웃으면서 보고자 한다.󰡓하였다. 제조(提調) 윤양래(尹陽來)가 말하기를, 󰡒처치한 말로 인하여 대각(臺閣)을 극형에 처한다면, 이보다 더한 자에게는 장차 만 갈래로 참()하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언보다 더한 자는 바로 금수(禽獸)이니, 왕자(王者)의 태아검(太阿劍)을 어찌 금수에게 쓰겠는가? 만약 대신(臺臣)이라 해서 참하지 못한다면 돈화문(敦化門)에서 팽형(烹刑)8746) 에 처해야 한다. 빨리 와서(瓦署)에 명해 큰 가마솥을 만들어 대기하도록 하라.󰡓하므로, 여러 승지 및 삼사의 여러 신하들이 다투어 청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언이 범한 바가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목을 베고자 하였는데, 이목(耳目)의 관원이기에 우선 그 머리만은 붙여두려고 팽형에 처하라고 고쳐 명령한 것이다. ()나라 경제(景帝)가 조의신(朝衣臣)을 동시(東市)에서 참하였는데8747) , 한나라가 비록 관인(寬仁)으로 나라를 세웠으나 법도가 이와 같이 엄중했으므로 비록 왕망(王莽)의 난8748) 을 만났어도 마침내 중흥(中興)한 것이다. 지금은 문()이 승()한 폐단이 당역(黨逆)을 하여 장차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렀다.󰡓하였다./

 

  【태백산사고본344510A/ 영인본42563/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행형(行刑) / *역사-고사(故事)/ [8746]팽형(烹刑) : 탐관(貪官)을 처벌하는 극형을 의미함. 전국 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이 처음에 모든 지방 정치를 경대부(卿大夫)에게 위임하였는데, 여러 경대부 중 아 대부(阿大夫)가 정치를 가장 잘 한다는 예찬의 소리가 날로 들리기에, 사람을 보내어 아() 땅을 살펴보았더니, 실제로는 정치를 가장 못하고 왕의 좌우에 뇌물을 써서 여론을 조작한 것이었음. 그리하여 당장 아 대부를 불러다 가마솥에 삶았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 [8747]()나라 경제(景帝)가 조의신(朝衣臣)을 동시(東市)에서 참하였는데 : ()나라 효경제(孝景帝) 때 조착(?)이 제후왕(諸侯王)에 대한 삭지 정책(削地政策)을 추진하자 오()나라가 모반하였는데, 이에 원앙(?)이 모반은 조착의 삭지 정책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조착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효경제가 󰡒한 사람을 아끼다가 천하를 그르칠 수는 없다.󰡓 하고, 조착을 결박지어 수레에 싣고 거리로 나가 조복(朝服)을 입은 채 동시(東市)에서 참살(斬殺)한 일을 말함. / [8748]왕망(王莽)의 난 : 왕망은 전한(前漢) 때 효원 황후(孝元皇后)의 조카로, 성제(成帝), 애제(哀帝), 평제(平帝) 때에 정권(政權)을 잡고 자기 딸로 평제의 황후를 삼아 조정을 호령하다가 평제를 시해(弑害)한 뒤 왕위를 찬탈하여 신()이라 국호를 고쳤으나 법령(法令)이 번잡하고 가혹하여 민생이 궤란하므로 광무(光武)가 기병(起兵)하여 토벌하니 패하여 피살됨. (www.history.go.kr 2008)

 

  조태언[記事] : 영조실록 45/ 영조 13(1737 정사 / 청 건륭(乾隆) 2) 813(기사) 3번째 기사/ 영상 이광좌가 조태언을 정형하지 말자 하니, 조태언을 흑산도로 찬축하다/ 영의정 이광좌가 차자를 올려 청하기를, 󰡒조태언을 정형(正刑)8749) 하라는 명을 환수하여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성화(聖化)를 받들도록 하고, 또 국가에서 대각을 대우하는 아름다운 뜻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하니, 비답하기를, 󰡒! 어제 새벽 이후 만일 당심(黨心)을 둔 자가 있다면 이는 바로 역신(逆臣)이니, 조태언을 정형(正刑)하라는 명을 어찌 그만두어야 하겠는가? 다만 대신과 여러 신하들이 모두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조태언의 머리만은 보존하게 한 것인데, 이제 처음 정사에서 또 조태언을 살려 둔다면 임금이 있고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라 위왕(威王)이 아 대부(阿大夫)를 팽형(烹刑)에 처한 고사(故事)가 이미 있는데, 날마다 당습을 일삼고 소민(小民)을 돌보지 않으니, 그 죄는 제나라의 아 대부보다 심하다. 실로 장차 문()에 임하여 백관을 모아 큰 거리에서 팽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당인(黨人)의 고기를 보게 해야 마땅한데, 경이 또 차자를 올렸다. 피곤한 가운데 이처럼 광구(匡救)하니 어찌 감동하고 깨달아 경의 병중(病中)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겠는가?󰡓하고, 조태언의 사죄(死罪)를 용서하여 흑산도(黑山島)로 찬축(竄逐)해 위리 안치하고, 그를 대직(臺職)에 의망(擬望)한 정관(政官)은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344510A/ 영인본42563/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8749]정형(正刑) : 사형. (www.history.go.kr 2008)

 

  조태언[記事] : 영조실록 45/ 영조 13(1737 정사 / 청 건륭(乾隆) 2) 814(경오) 2번째 기사/ 이광좌가 이춘제의 이조 참판 개차를 청하고, 세자 보필을 부탁받다/ 영의정 이광좌와 우의정 송인명이 입시하였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전하께서 사기(辭氣)를 너무 허비하시니 손상됨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오직 원하건대, 공어(供御)를 절제에 맞게 하시고 심신을 온전히 수양하소서.󰡓하였다. 임금이 송인명에게 말하기를, 󰡒오늘 경을 대하니, 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근래의 일은 나도 그것이 지나친 줄을 알고 있는데 모름지기 원보(元輔)8750) 에게 내린 글을 보면 내 괴로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에 원보가 관()을 벗은 것을 보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태언󰡐하필(何必)󰡑이란 두 글자는 호리(狐狸)에 불과하다.

 

  내가 의루(?)8751) 도 밟지 않고 피하는 마음으로서 사람을 삶아 죽이려는 것을 어찌 즐거워하겠는가? 그 구습(舊習)을 통분히 여겨 장차 나라의 법을 바루려고 하였는데, 원보(元輔)의 광구함이 체면치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하였다. 임금이 이광좌에게 말하기를, 󰡒경은 좌의정에게 혐의가 없는가?󰡓하니,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이 젊었을 때 좌의정의 아버지를 논척(論斥)했는데, 후에 그것이 지나쳤음을 후회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때를 당해 성상께서 만약 화협(和協)에 힘쓰신다면 어찌 사사로운 일을 돌보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좋은 기회이다.󰡓하였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지금 총재(?)8752) 의 인재로는 조현명(趙顯命)보다 나은 자가 없는데, 바야흐로 대계(臺啓)에 들어 있기 때문에 감히 앙청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제 이춘제(李春?)를 이조 참판으로 특제(特除)했는데, 이춘제는 비록 선량하기는 하나 별로 재능이 없으니 개차해야 마땅합니다.󰡓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이 배상(拜相)한 처음 연석(筵席)이어서 사사로운 말을 할 때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진달하기를 청합니다. ()의 사마광(司馬光)이 천하의 중망(重望)을 지고서 거듭 복상(卜相)되어 조정에 나오던 날에 위사(衛士)의 정액(定額)을 더하여 주었는데, 이는 신에게 견줄 바가 아닙니다. 그 당시 범진(范鎭)은 상신에 제배되었으나 나오지 않았고 표문(表文)에 이르기를, 󰡐78세에 다시 오는 것 이 어찌 예()에 맞는다고 하겠습니까?󰡑 하였으니, 천하가 모두 그 말을 칭송하였습니다. 사마광은 바라볼 수 없으나 배우고자 한 것은 범진입니다. 신은 아이 적부터 현부(賢父)를 섬겨서 아는 것은 충효(忠孝)였으나 중간에 여러 차례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들어 스스로 폐고(廢錮)되기를 결의하였는데, 마침 큰 난리가 생길 때를 즈음하여 나라 안이 물끓듯 하였습니다. 신은 중한 은례(恩禮)에 이끌려 글을 진달하고 나와 응하였는데, 얼마 후 과연 역란(逆亂)이 일어났으나 하늘의 신령스러움에 힘입어 다행히 즉시 진정되었습니다. 장차 돌아가기를 고하려고 하는 즈음에 이양신(李亮臣)의 상소가 먼저 나왔고, 그후 잇달아 일어난 자는 그 숫자를 알 수가 없으니, 신이 어찌 다시 벼슬을 할 마음을 두겠습니까? 더군다나 󰡐피차가 함께 암흑 세계(暗黑世界)로 들어왔다.󰡑라는 전교를 받았는데, 대신으로서 이런 이름을 씻지 못하고서 어찌 세상에 서겠습니까? 그후 제 자신이 비록 치사(致仕)하였으나 성상의 하교가 아주 간절하셨는데, 󰡐동궁(東宮)이 탄생하지 않아 암실(暗室)에 있는 것과 같은데 어찌 차마 버리고 가는가?󰡑라는 하교이었기 때문에 신은 다른 것은 돌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3,4년 동안을 머뭇거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종사(宗社)를 돌보아서 원량(元良)이 탄생하였는데, 신하가 무상(無狀)하여 지나친 거조가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에는 이미 반한(反汗)8753) 하셨지만, 신이 어찌 이를 반련(攀緣)삼아 무릅쓰고 있으면서 처음의 마음을 저버리겠습니까?󰡓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경에게 바라는 바는 오직 원보(元輔)의 자리에 있으면서 세도(世道)를 진정시키는 것이다. 반야(半夜)의 하교는 거의 고명(顧命)8754) 과 같았으니, 내 자신이 노고(勞苦)를 떠맡고 자손에게 편안함을 남겨 주려 한 것이며, 세자(世子)와의 상견례(相見禮)는 경을 머물러 두어 행하고자 한다. 지금은 비록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덟 개인 자라 하더라도 결코 경을 침해하지 못할 것이니, 경은 비단 나만 보필할 것이 아니라 원량(元良)을 보좌함을 중히 여겨야 한다. 내가 밥을 먹으면서 경에게 대접할 터이니, 경이 원량을 위해 떠나지 않고자 하거든 이 밥을 먹으라. 원량의 기질(氣質)이 특이하니, 내가 부탁할 데가 있게 되었다.󰡓하니,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 역시 뛰어나게 영리한 모습을 보고 매양 목을 늘이고 태평 시대 보기를 축원하는 정성이 간절하였는데, 성상의 하교가 이와 같으니, 감히 생사(生死)로써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정력이 미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하였다. 임금이 수라상(水刺床)을 밀어 이광좌에게 주니, 이광좌가 신료(臣僚)들과 나누어 먹기를 청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이 먼저 먹고 다음에 우상(右相)에게 주고, 또 그 나머지를 싸서 좌상(左相)에게 전해 주라. 경들이 이 밥을 먹으면 어찌 차마 잊겠는가? 그릇을 가지고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어 오늘 음식을 하사하고 그릇을 나눈 일을 알아서 대대로 내 자손을 보필하게 하도록 하라.󰡓하니, 이광좌가 말하기를, 󰡒전하께서 처음 차마 듣지 못할 전교를 내리셨는데 또 동궁(東宮)을 보도(輔導)하라고 신을 만류하시니, 신이 비록 변변치 못하나 삼가 마땅히 심력(心力)을 다하겠으니, 원하건대, 전하께서도 분발하여 스스로 힘쓰도록 하소서.󰡓하였다./ 태백산사고본344510B/ 영인본42563/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식생활(食生活) / *역사-고사(故事)/ [8750]원보(元輔) : 영의정(領議政). / [8751]의루(?) : 개미와 땅강아지. / [8752]총재(?) : 이조 판서. / [8753]반한(反汗) : 내렸던 명령을 환수함. / [8754]고명(顧命) : 임금이 유언으로 나랏일에 대한 뒷일을 부탁함. (www.history.go.kr 2008)

 

  조태언[記事] : 영조실록 45/ 영조 13(1737 정사 / 청 건륭(乾隆) 2) 817(계유) 2번째 기사/ 좌상이 입대하지 않자 궁금해하다. 군신이 한 전당에서 문답하자 하다/ 임금이 삼상(三相)의 입시를 명하였는데, 오직 영의정 이광좌(李光佐)와 우의정 송인명(宋寅明)만 입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상(左相)을 면유(勉諭)하면서 예의상 너무 각박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 물러가 생각해 보도록 하였는데, 오늘 오지 않았으니 아픈 것은 아닌가? 여러 신하들이 혹 밖에 있다가 돌아가니, 그 역시 괴이하다. 경들이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나는 비록 다시 수라상(水刺床)을 물리치지는 않겠으나 합문을 반드시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가린다.󰡑라는 문제는 다른 날을 기다리라는 전교가 한두 번뿐만이 아니었는데, 전혀 못 들은 척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하니, 송인명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일은 실로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에 관계되니, 오직 원하건대, 사리(事理)를 깊이 살피고 조용히 박절하지 않도록 하여 대동(大同)의 지역(地域)이 되도록 하소서.󰡓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언(趙泰彦)은 호서배(狐鼠輩)이다. 내가 원보(元輔)의 정성에 감동하여 특별히 죽음을 용서하였지만, 만일 또 조태언같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중률(重律)로 다스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朝鮮)은 장차 어떤 나라가 되겠으며 나는 어떤 임금이 되겠는가?󰡓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이후에는 반드시 감히 충역의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하고,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하에게 죄가 있으면 조용히 죄를 줄 뿐이니, 어찌 성색(聲色)을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의정이 반은 승낙하고 물러갔는데, 이는 나를 속일 자가 아니고, 또 사진(仕進)하지 않고자 하는 자도 아니다. 지난번 김성탁(金聖鐸)의 일에 대해 법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없었으니, 그 마음이 진실로 공평했다. 세 정승이 만약 조화할 수만 있다면, 어찌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병조 판서를 잡아들인 일은 전에 없던 바로서 아마도 예()로써 부리는 도리에 어긋난 듯싶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명색이 대장이라고 하여 붙잡아 들이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낭청(郞廳)을 대신 곤장 친 것은 대개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내가 윤급(尹汲)한익모(韓翼謨)에게도 형장(刑杖)을 쳐 신문하지는 않았으나, 윤급은 당파(黨派)의 착념(着念)이 심하다. 만약 편당을 일삼는 자가 있다면 경들은 모름지기 잡아 바치도록 하라.󰡓하였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어려우나, 신들이 마땅히 사적으로 서로 책려(責勵)해 당을 일삼으려는 마음을 막겠습니다.󰡓하고,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일제(李日?)가 말하기를, 󰡒신이 요즈음 연속 좌우에서 모셨는데, 삼가 장전(帳殿)에 계시던 날 저녁에 보건대, 마치 청천 벽력(靑天霹靂) 아래에서 만물이 꺾이고 상하는 듯했는데, 다시 어선을 드시던 밤에는 마치 봄비가 흡족히 내려 우뢰가 은은히 들리고 구름이 일어나는 듯했으며, 오늘은 상서로운 바람과 경사스런 구름이 감돌아 따뜻한 봄날처럼 화기가 가득했으니, 신이 바야흐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아직도 불평하신 기색이 없지 않으시니, 신이 그윽이 걱정합니다. 최상(最上)은 덕교(德敎), 그 다음은 정형(政刑)이며, 성색(聲色)은 말단입니다. 더군다나 위노(威怒)를 겸하면 중도(中道)를 벗어나지 않음이 적습니다. 심지어 󰡐조정에 가득한 신하가 모두 역적이니 그 무리들을 모두 참()하라.󰡑는 하교는 실로 왕언(王言)에 어긋납니다. 신은 본래 성상의 뜻이 반드시 모두가 진정 역적이어서 모조리 참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시상(時象)을 잊게 하고자 하신 줄을 압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노복(奴僕)과는 달라서 위협하여 힘으로 제압해서는 안됩니다. 옛날 송()나라 건도(乾道)8756) 연간에 조서(詔書)에 대신을 종처럼 꾸짖고 여러 신하들을 돼지처럼 여기는 뜻이 있었으니, 주자(朱子)가 그 말을 듣고서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습니다. 이번의 엄교(嚴敎)를 옛날 사람이 들었다면 반드시 저자에서 매를 맞은 것같이 벼슬을 버리고 떠난 자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분명하게 뉘우치는 뜻을 유시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뢴 바가 옳다. 신하는 예()로써 부려야 하고, 임금은 충()으로써 섬겨야 한다고 성인(聖人)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자 하면서 어찌 호령으로 여러 아랫사람을 부리겠는가?󰡓하고, 쓰라고 명하여 말하기를, 󰡒! 지난 일을 내가 어찌 즐거이 그랬겠는가? 밤중에 써서 보여 대략 내 뜻을 유시(諭示)하였는데, 죽어서 선왕을 뵐 면목이 없고 마음속이 아프며, 아랫사람에게 임할 면목이 없으니, 도리어 백성을 잊은 듯하다. ()을 벗고 피가 어린 정성을 억지로 뿌리치기 어려워서 죽을 들어 조금 마시고 다시 억조 창생(億兆蒼生)에게 임하게 되니, 세 번 내린 유시(諭示)를 뒤좇아 생각건대 마음이 오히려 부끄럽다. ! 여러 신하들이 만약 마음을 씻어버리지 않는다면 왕법(王法)으로 용서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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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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