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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57-1:김언희(1738.1.24제수-동년2.2하직-1738.8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8.03.27 20:02:48

  예천고을원157-1 : 김언희(1738.1.24제수, 동년.2.2하직-1738.8이임) : 마지막 예천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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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희(金彦熙, 1678?)1738(영조 14)에 김방 현감 후임으로 부임하여 같은 해 이임한 예천 현감이다. 서울 사람, 자는 사준(士俊), 본관은 김해, 이조판서 우항(宇杭)의 아들, 준희의 동생이다.

  유학으로서 1710(숙종 36) 증광 생원시에 395위로 합격하였다. 1727(영조 3) 815일에 장성 부사를 이임하였다. 1738124일에 예천 현감으로 제수되자마자 같은 해 8월에 갑자기 예천 현감(6)이 예천 군수(4)10년 만에 회복되자 물러났다.

  즉, 1738111일에 예천 등의 고을을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승격해 회복하도록 임금이 명하였는데, 옛날 이인좌의 난(1728) 때 역적이 태어난 고을이라 하여 명칭을 낮추었던 것인데, 이제 이미 10년의 시한을 채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군수의 임명은 1738823일에 이루어졌다.

  예천의 행정 이름이 고려 때도 승격된 적이 있었다. , 1203(신종 6) 1월에 경주의 별초군이 난을 일으켜 운문, 울산 등지의 난민과 함께 기양현(예천)에 침입하였다. 이때 집권자 최충헌이 파견한 최광의가 군사를 이끌고 기양현에 와서 흑응산성에서 아지 등 많은 적들을 사로 잡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다.

  최충헌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자, 임금이 최광의를 치하하고, 이듬해 기양현(현령)을 승격하여 보주(지사)라 고치게 하였다. , 기양 현령이 지보주사로 승격된 것이다. 이 보주는 1413년 보천군, 1416년에 예천군으로 되었다가 1728년에 예천현, 1738년에 예천군으로 그 행정 명칭이 바뀌어진 것이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4-05-06 16:01:45)

 

김언희(金彦熙) : 1738(영조 14) 1월 초에 부임, 동년 111일에 이임한 예천 현감이다. 1678(숙종 4)-?, 서울 사람, 자는 사준(士俊), 본관은 김해, 이조판서 우항(宇杭)의 아들, 준희(俊熙)의 동생이다. 유학(幼學)으로서 1710(숙종 36) 증광 생원시에 395위로 합격하였다. 1727(영조 3) 815일에 장성(長城) 부사를 이임하였고, 17381월 초에 예천 군수로 부임하자마자 동년 111일에 예천 현감(醴泉縣監, 6 )이 예천 군수(醴泉郡守, 4)10년만에 회복되어서 물러났다.(司馬榜目, 英祖實錄 1738.7.26)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4124(정축) 원본867/탈초본47(17/25) 1738乾隆(/高宗) 3/ 以尹淳爲左參贊, 李箕鎭爲吏曹參判, 洪尙賓爲兵曹參判, 朴師洙爲藝文提學, 李箕鎭爲同春秋趙明履爲校理, 鄭履儉爲副校理, 南泰良爲弼善, 李亮臣爲西學敎授, 李錫杓爲兼校書校理洪得厚爲司成, 金弘得爲司僕主簿, 崔弘輔爲氷庫別提, 李宗城爲惠民提調, 徐宗伋爲內贍提調金在魯爲謝恩正使, 金始?爲副使, 李亮臣爲書狀官, 宋成明爲大司成, 鄭熙揆爲掌令金彦熙爲醴泉郡守, 李善泰爲左通禮, 鄭錫五爲都承旨, 趙迪命爲左副承旨閔百行爲兼說書, 兪彦國爲說書漢城參軍林聖憲, 宣陵直長洪鏡輔相換, 承文正字單, 南德老行都承旨金有慶今加資憲, 副護軍金始?, 今加嘉善水原府使金泰衍今加通政, 海運君?今加中義, 南陽守煐今加明義兵批啓曰, 宣傳官南正五呈狀內, 幸蒙天恩, 有直赴之命, 所帶職名, 係是南行之?, 入啓遞改云, 依例改差, 何如? 傳曰, (www.history.go.kr 2007)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4127(경진) 원본867/탈초본47(10/19) 1738乾隆(/高宗) 3/ 李宗白, 以戶曹言啓曰, 水運判官, 爲任不輕, 而近年銓曹, 多以守令年限已過之人差送, 運事疎緩, 上年條田稅, 亦有未及盡輸者卽今別營, 放糧?, 新稅漕運, 亦甚萬分緊急, 而判官金彦熙, 移拜醴泉郡守, 其代, 不可不各別擇差, 令該曹, 必以年少剛明之人, 卽爲移差於後日政, 何如? 傳曰, (www.history.go.kr 2007)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422(갑신) 원본868/탈초본47(2/22) 1738乾隆(/高宗) 3/ 下直, 咸平縣監朴弼載, 醴泉郡守金彦熙, 群山僉使李陽重, 龍媒僉使申瑛, 草芝萬戶姜碩建(www.history.go.kr 2007)

 

  김언희[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戊申年 軍餉과 환자를 바치지 居末三 守令들의 상황을 보고 하는 備邊司./ 왕 재위년도 영조 5/ 월일 영조 5(1729) 1022/ 비변사의 계사(啓辭)"각 도()의 군향(軍餉)을 바치지 않은 수령(守令)과 변장(邊將) 가운데 최하위[居末]인 자는 잡아다 추문(推問)하고, 2[居二]인 자는 결장(決杖)하며, 3[居三]인 자는 추고(推考)하며, 원환자[元還上]을 바치지 않은 수령과 변장 가운데 최하위인 자는 결장하고, 2등인 자는 추고하는 일을 그전에 임금의 재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신년(戊申年 : 영조 4, 1728 )의 군향과 환자를 바치거나 바치지 못한 계본(啓本)을 가져다 상고하니, 군향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는 함경도 홍원(洪原)의 전 현감(縣監) 민정헌(閔廷櫶)이 최하위를 차지하였으며, 평안도는 시새첨사(恃塞僉使) 정필태(鄭必泰)가 최하위를 차지하고, 양덕현감(陽德縣監) 김수(金石遂)2등을 차지하였으며, 우구리둔차지(牛仇里屯次知) 시새첨사 정필태가 3등을 차지하였고, 충청도는 청주(淸州)의 전 목사(牧使) 조언신(趙彦臣)이 최하위를 차지하였고, 아산현감(牙山縣監) 정세장(鄭世章)2등을 차지하였으며, 목천현감(木川縣監) 윤민교(尹敏敎)3등을 차지하였고, 경기(京畿)는 양주목사(楊洲牧使) 김 협(金 浹)이 최하위를 차지하였고, 경상도 별향미(別餉米)바치지 않은 것으로최하위를 차지한 자는 신문별장(新門別將) 김윤종(金胤宗)이고, 전병선 가미(戰兵船價米)바치지 않은 것으로최하위를 차지한 자는 울산부사(蔚山府使) 김시빈(金始?)이고, 2등은 김해부사(金海府使) 홍덕망(洪德望)이 차지하였으며, 순영별회미(巡營別會米)바치지 않은 것으로최하위를 차지한 자는 칠원현감(漆原縣監) 이문조(李文肇)이고, 황해도는 재령군수(載寧郡守) 최창억(崔昌億)이 최하위를 차지하였고, 배천군수(白川郡守) 이강연(李康淵)2등을 차지하였으며, 연안부사(延安府使) 최상정(崔尙鼎)3등을 차지하였고, 환자[還上]는 함경도는 경흥(慶興) 겸임 경원부사(兼任 慶源府使) 이오(李悟)가 최하위를, 경성판관(鏡城判官) 조세후(趙世?)2등을 차지하였으며, 평안도는 우구리둔차지 시새첨사 정필태(鄭必泰)가 최하위를, 양덕현감(陽德縣監) 김수(金石遂)2등을 차지하였으며, 충청도는 황간현감(黃磵縣監) 김몽로(金夢魯)가 최하위를, 전의현감(全義縣監) 권기언(權基彦)2등을 차지하였으며, 경기는 부평부사(富平府使) 김언희(金彦凞)가 최하위를, 양재찰방(良才察訪) 정동윤(鄭東潤)과 광주부윤(廣州府尹) 김상규(金尙奎)2등을 차지하였고, 황해도는 재령군수 최창억이 최하위를, 배천군수 이병연이 2등을 차지하였으며, 경상도는 현풍현감(玄風縣監) 이우인(李友仁)이 최하위를, 칠원현감 이문조가 2등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해도의 정미년(丁未年 : 영조 3, 1727 ) ()의 군향(軍餉) 및 원환자[元還上]를 바쳤거나 바치지 못한 장문(狀聞) 가운데 최하위와 2등을 차지한 자를 구별하지 않았기에 일이 매우 몽롱(朦朧)하니 다시 상세하게 장문(狀聞)하는 뜻을 분부하셔야 하겠습니다. 정미년 조의 바치거나 바치지 못한 계본(啓本)이 이제야 도착하였는데 군향을 바치지 못한 부분은재령의 전 군수 윤익준(尹翼駿)이 최하위를, 신천(信川) 겸임 문화현감(文化縣監) 윤상형(尹尙衡)2등을, 문화현감 윤상형이 3등을 차지하였으며, 환자[還上]는 재령군수 윤익준이 최하위를, 신천 겸임 문화현감 윤상형이 2등을 차지하였으니 아울러 사목(事目)에 의거 거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미 교체되어 돌아온 자는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고 본인이 사망한 자는 논하지 말도록 하되, 영남(嶺南)의 향미(餉米)는 바로 군향(軍餉)이니 일체(一體)로 잡아다 추문하며, 순영 별회미를 바치지 않아 최하위를 차지한 자는 환자를 바치지 않아 최하위를 차지한 사례에 의거 결장(決杖)하고, 별향미 및 전병선가미(戰兵船價米)는 모두 군향에 관계되니 한결같이 다른 군향의 사례에 의거하여 여러 종류를 한데 모아 숫자를 계산하고 단지 군향으로만 일컫는 것이 마땅한데, 더러는 별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더러는 전병선가미라고도 일컬으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이 뒤로는 원환자를 바치지 않아최하위와 2등을 차지한 자와 군향을 바치지 않아최하위23등을 차지한 자 및 별회미를 바치지 않아최하위를 차지한 자에 대한 이 세 조목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각 고을에서 바쳤거나 바치지 않은 숫자 또한 어지럽게 뒤섞이지 않도록 하는 뜻을 아울러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1112(임술) 원본427/탈초본23(30/32) 1705康熙(/聖祖) 44/ 禪位한다는 명의 환수를 청하는 成均館 儒生 趙鼎彬 등의 상소/ 成均館進士趙鼎彬洪啓迪申晳白時輝李廷?徐宗亮李翊誠?曺錫振李梓年安重仁李養大柳雲瑞李弘栽?李廷弼李挺周李文祥李日三?南一明姜啓傳朴泰協金壽錫成胤光柳熙運??朴尙彧尹志尹東卨徐宗業李敏柳敏廷柳昌寅辛致復李興元任遭朴昌瑞張植魚有龜徐宗集李泰岳尹東奭金百明[金百朋],

 

  生員盧斗望沈益海李錫鳳曺昌億?李煜柳光翼李雲開李珹崔敏恕李天楷金重鎰具適柳春榮趙泰東蔡膺福洪重泰吳瑞暉金翰運林益彬李章運韓敬徵李正華李秉常柳重榮李秉鼎蔡奎章?金龍慶金相岳申軫申輅洪鉉輔李重協兪守一李弘選徐宗賢禹伯圭李誠一尹師敎韓榮世呂鳴震嚴漢重金時彦趙榮祿洪渲張世吉李翊良, 幼學李顯應李顯徵魚有鵬趙命徽朴弼莘朴炫李仁濟李世昌沈澈李世泰李世敎高道泰高道說高道原尹鳳九尹鳳五高道弘李秉文李秉一柳慶佑申致遠李鉉佐李鉉弼尹曙尹百和金泰珍鄭順一李箕年成震齡宋逢源柳大徽柳讓柳謙柳諶?沈尙喆?林柱國閔鼎錫金益敏權始萬權亨萬權彙萬申思奭申思說申思迪申思顯申思聖申思定李泰陽李鎭?金晶麗兪懋臣任述任達韓鳴震金道洽趙奎彬洪義人金彦熙白尙瑜李震昌朴思聖張震龍全聖后[全聖?]權舜元尹弼殷尹元甲朴尙華崔震龍金挺華鄭重泰李昌錫崔泰?李泰休盧昌世朴守東金一鑑?李夏榮李碩英李基壽李道顯李道謙李道翼李道善鄭弘壽朴思淹康永運成夢齡金龜老趙始剛鞠命殷朴廷珪文彩大金世輔金是鍵李震陽李宜壽閔應洙李相?李晳李智趙興彬趙觀彬南鶴擧趙彦臣李時聖李時範宋徵華閔承洙申思遠安相徵安相英安允命黃禹夏柳謙明柳復命[柳復明]柳震明柳恒明趙榮時趙榮宗趙榮祖?尹津朴壽漢沈師哲李德海尹鼎柱尹恒輔申揆金碩恒李慶錫?具弘復金壽鏶金致謙尹宗柱金聖集韓禧朴昌齡李德載趙謙彬李匡福李賓興李匡佑李聖興李禎興金岱壽尹泌尹得一黃奎河黃瑞河洪重成韓祺宋相普等上疏, 伏以, 日昨備忘, 出於千萬意慮之外, 聖旨?下於半夜之間, 擧國若在於波蕩之中, 上自大小臣僚, 下至氓隷輿?, 莫不奔趨於闕庭, 聚首愕?, 罔知攸措, 而況我王世子仁孝之誠, 出於天性, 承此非常之敎, 其徊徨煎迫之情, 尤當如何哉? 臣等伏見王世子封章瀝血之辭, 由中之懇, 有可以感動聖心, 而兪音尙?, 天聽愈邈, 殿下縱不恤臣庶?望之?, 獨不念王世子悶迫之心乎? 雖以閭巷間事言之, 主家之人, 病不至於不堪幹事之境, 不至於有妨聽察之日, 而居然以當家之任, 擧以委之於其子, 子何安於心, 爲其僕隷者, 亦何忍無顧戀瞻歎之心乎? 臣等於此, 有不勝抑鬱號泣之至也且臣等, 竊伏見前後聖敎, 以疾病爲慮, 以調養爲辭, 蓋近來玉體之違和, 不過是一時?妄之疾, 擧國臣民, 亦知不日之間, 且有勿藥之喜殿下, 若專以此爲敎, 則臣等, 恐上下臣民之心, 愈往而愈鬱也, 王世子驚遑之衷, 愈久而愈切也且其將理調護, 自有其道, 以聖人愼疾之心, 體古賢養性之訓, 加意本源, 保鍊神思, 則庶幾淸明在躬, 志氣和泰, 酬應事務, 固將沛然, 榮衛之愆, 自非所慮豈可以一時微?, 遽思就閑, 乃爲此莫重莫大之擧, 而不少留難耶? 臣等?居首善之地, 目見國家擧措之非常, 誠不勝驚遑煎迫之?玆敢倡率多士, 齊聲仰???之下, 伏願聖明, ?回令禮官擧行之命, 以安春宮悶切之心, 以副擧國臣民之望, 不勝萬幸批答見上(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321111(을축) 원본433/탈초본23(9/10) 1706康熙(/聖祖) 45/ 金潚 등 및 初揀擇 未參 女子들을 모두 禁婚하고 그 나머지는 許婚하라는 전교/ 傳曰, 郡守金潚女子, 郡守趙泰果女子, 進士申義集女子, 通德郞洪九章女子, 通德郞金彦熙女子, 著作金東弼女子, 及初揀擇未參女子, 竝禁婚, 其餘許婚(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0628(무술) 원본484/탈초본26(7/8) 1714康熙(/聖祖) 53/ 永昭殿奉審한 결과에 따라 비가 개이면 수리할 것을 청하는 禮曹의 계/ 李大成, 以禮曹言啓曰, 臣尙游, 祗謁永昭殿, 與參奉金彦熙眼同, 各處雨漏處奉審, 則一如本殿參奉所報, 所當卽爲修改, 而今此雨漏處, 與殿內有間姑待開霽, 涓吉擧行, 何如? 傳曰, (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01111(기유) 원본486/탈초본26(18/18) 1714康熙(/聖祖) 53/ 趙泰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吏批, 以趙泰壽爲安城郡守, 趙尙絅爲持平, 朴弼文爲牙山縣監, 西平都正橈爲司饔提調, 金彦熙爲內贍奉事, 李德?爲工曹正郞, 尹聖瑀爲司饔僉正, 李益命爲禁府都事, 閔啓洙爲瑞興縣監, 朴弼英爲監察, 宋徵殷爲工曹參議, 田時望爲律學敎授, 朴聖輅爲文學, 李秉常爲文學(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1912(갑진) 원본490/탈초본26(9/17) 1715康熙(/聖祖) 54/ 金彦熙申翊夏拿來한 뒤 들어옴/ 禁府都事金彦熙, 前兵使申翊夏拿來後, 入來(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5724(을미) 원본517/탈초본28(11/13) 1719康熙(/聖祖) 58/ 尹東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吏批, 以尹東卨爲濟用副奉事, 任適爲義禁都事, 趙昌世爲北部主簿, 金彦熙爲內侍敎官, 崔宗周爲長城府使, 柳復明爲京畿都事, 鄭震卨爲刑曹正郞, 朴聖輯爲司?主簿, 朴師漢爲氷庫別提, 閔應洙爲軍資主簿, 成順錫爲瓦署別提, 李尙說爲右通禮, 鄭纘先爲輔德, 韓德全爲雲峯察訪, 李夏演爲保安察訪, 梁聖時爲兼學正單, 黃有牧爲氷庫別提, 申侃爲兼引議[兼引儀], 宋宗錫爲禮賓主簿, 金守楫爲內資主簿, 李義濟爲司畜別提, 趙由恒爲監察, 南漢紀爲刑曹佐郞, 尹弼周爲竹山府使, 金宇樞爲典籍, 朴必興爲典籍, 尹植爲兵曹正郞, ?爲禮曹正郞, 趙彦臣爲司成, 丁道復爲左承旨, 李箕翊爲右承旨, 洪啓迪爲大司成, 鄭纘先爲副校理, 金演爲刑曹參判, 閔應洙爲刑曹佐郞, ?爲兵曹佐郞, 趙榮世爲兵曹正郞, 李顯慶爲繕工監役, 洪禹載爲軍器主簿, 宋成明爲兼中學校授[兼中學敎授], 趙觀彬爲兼中學敎授, 李尙徇爲軍器僉正, 吳志哲爲義盈主簿, 李麟徵爲工曹參判, 金彦熙爲廣興主簿, 尹錫來爲輔德, 陳翼漢爲禮曹佐郞, ?爲軍資正, 李天蓍爲引議[引儀], 愼爾定爲司圃別提, 兪泰章爲直講, 權詹爲修撰, 趙尙健爲兼南學敎授, 金致謙爲內侍敎官, 權詹爲童蒙敎官, 李夏坤爲童蒙敎官, 李義鎭爲繕工假監役, 朴昌世爲孝陵參奉, 韓宅揆爲英陵參奉, 趙尙遂爲宣陵參奉, 趙重昌爲禧陵參奉, 李輝千爲靖陵參奉, 徐宗業爲永禧殿參奉, 具景勳爲宣陵參奉, 金翼亮爲長寧殿參奉, 金守文爲敬陵參奉, 李世?爲王子師傅, 洪受謙爲軍資主簿, 安翼齡爲引議[引儀], 洪構爲禮曹佐郞, 金南甲爲典籍, 南鶴淸爲假引議[假引儀], 朴樞爲槐山郡守, 金雲澤爲司僕正, 任敬爲康陵參奉(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5118(병자) 원본519/탈초본28(15/20) 1719康熙(/聖祖) 58/ 李宖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吏批, 承旨李宖, 右參贊閔鎭厚, 刑曹參議李正臣, 京畿監司李光佐, 春川府使趙爾重, 文化縣令金養謙, 石城縣監成必復, 郭山郡守李天翊, 直講鄭運亨, 掌苑別提金祖澤, 內資主簿李英輔, 司僕主簿金彦熙, 大司憲鄭澔落點(www.history.go.kr 2008)

 

  김언희[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629(병오) 원본521/탈초본28(17/19) 1720康熙(/聖祖) 59/ 沈元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以沈元俊爲尙瑞直長, 閔鎭紘爲典牲奉事, 李秉泰爲平市奉事, ?鼎爲南部主簿, 張遠冑爲西部主簿, 尹慶哲爲司畜別提, 高重明爲內資主簿, 金昌發爲造紙別提, 洪禹傳爲獻納, 朴弼周爲持平, 金龍慶爲說書, 黃梓爲兼說書, 李善行爲司書, 金相玉爲應敎, 李仁復爲修撰, 李明彦爲兵曹正郞, 孟淑夏爲典簿, 蔡膺福爲禮曹佐郞, 南世珍爲司成, 韓斗一朴敏古爲典籍, 李遇新爲?川府使, 益陽君檀呂川君增密川君?, 今加中義, 陽平都正檣, 今加明義, 密陽正梡, 今加明善, 已上賞加, 兪宇基爲尙瑞副直長, 孫德壽崔恒齡爲兼引儀, 朴昌潤爲安城郡守, 李世馨爲鳳山郡守, 吳重建爲禮賓別提, 宋成明爲兼中學敎授, 兼弼善李晩成爲知經筵, 權尙游爲知春秋, ?春爲谷山府使, 文壽元爲渭原郡守, 南漢紀爲永平縣令, 金彦熙爲衿川縣監, 尹慶哲崔嶢爲監察, 金天敍爲典籍, 兼春秋單徐宗厦, 成均博士單權大規, 校書博士單申維翰, 養賢直長單韓澍陽平君檣(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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