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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61-6:이명곤(1746.5.14제수-동년6.24하직-1747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8.08.15 17:29:32

  예천고을원 161-6 : 이명곤(1746.5.14제수, 동년.6.24하직-1747이임) : 감천 사람 조원승 과거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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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2/ 영조 16(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 115(임신) 1번째 기사/ 김성운송질민선정언유이명곤이구령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성운(金聖運)을 대사간으로, 송질(宋瓆)을 집의로, 민선(?)정언유(鄭彦儒)를 장령으로, 이명곤(李明坤)이구령(李耈齡)을 지평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385235A/ 영인본42687/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3/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613(병오) 1번째 기사/ 민통수홍창한김한철이명곤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민통수(閔通洙)를 승지로, 홍창한(洪昌漢)을 부응교로, 김한철(金漢喆)이명곤(李明坤)을 부수찬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395337B/ 영인본4319/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3/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622(을묘) 1번째 기사/ 동궁에게 동몽선습을 올리게 하고 당습을 하지 말고 동궁 섬길 것을 당부하다/ 임금이 경현당(景賢堂)에 나아가 여러 승지들과 옥당의 관원을 소견(召見)하였는데, 춘추(春秋)의 강독을 마쳤다는 것으로 장차 선온(?)하려고 한 때문이었다. 왕세자(王世子)가 시좌(侍坐)하였는데, 임금이 필선(弼善) 박필간(朴弼?)에게 명하여 동궁에게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올리게 하고, 동궁으로 하여금 그것을 읽도록 하자, 옥음(玉音)이 청량(淸亮)하고 구두(句讀)가 분명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하례하기를, 󰡒종묘와 사직의 복입니다.󰡓하니, 임금이 동궁을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입시한 여러 신하들은 모두 나에게 복종하여 섬기는 이들이다. 그들의 자손들 또한 모두 앞으로 너와 함께 늙어갈 사람들이니, 너는 그 사실을 알도록 하라.󰡓하고, 또 유신 이명곤(李明坤)에게 명하여 어제 경현당명(御製景賢堂銘)을 읽게 하고, 동궁으로 하여금 그것을 듣도록 하였다. 읽기를 마치자, 내시가 음식을 차려왔으므로,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술을 마시도록 하면서 각기 그 주량(酒量)의 얕고 깊음을 물어 간혹 특별히 다른 술잔을 내려 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습(黨習)을 하지 말고 동궁을 잘 섬기도록 경계하고, 이어서 어제시(御製詩)를 내리면서 근신(近臣)으로 하여금 화답하여 지어 올리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395343A/ 영인본4322/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4/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918(경진) 2번째 기사/ 홍경보조영국서명빈박필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경보(洪景輔)를 도승지로, 조영국(趙榮國)을 승지로, 서명빈(徐命彬)을 대사간으로, 박필재(朴弼載)를 집의로, 이제담(李齊聃)을 장령으로, 조명경(趙命敬)을 정언으로, 이명곤(李明坤)을 부교리로, 이종적(李宗迪)을 수찬으로, 권적(?)을 전라 감사로, 이기진(李箕鎭)을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05421B/ 영인본4333/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4/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1023(갑인) 3번째 기사/ 정언 남유용이 올린 상소로 인하여 해남현에 귀양보내다/ 정언(正言) 남유용(南有容)을 해남현(海南縣)에 귀양 보내니, 상소하여 일을 말한 때문이었다.

 

  그 상소에 대략 이르기를, 󰡒하늘이 성충(聖衷)을 열어서 대훈(大訓)을 내리시니 국시(國是)가 이로 말미암아 조금 정()해졌고 조정의 상황이 이로 말미암아 약간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무궁한 것은 의리(義理)이고 만회(挽回)하기 어려운 것은 세도(世道)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국론(國論)이 조금 정()해졌다고 해서 오히려 그 미진함을 염려하지 마시고, 조정의 상황이 조금 편안해졌다고 해서 갑자기 그 장려(長慮)를 소홀히 하지 마시어, 더욱 명절(名節)을 힘쓰고 더욱 언로(言路)를 넓혀서 영구(永久)할 수 있는 왕업(王業)을 건립하소서.󰡓하고 말하기를, 󰡒조명겸(趙明謙)과 이명곤(李明坤)은 권세 있는 가문(家門)에 친압해 놀며 영도(榮塗)를 힘써 점유하여, 온 세상이 조롱하고 매욕하는데도 전혀 부끄러운 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종성(李宗城)은 불시(不時)에 수명(肅命)하고 창졸(倉卒)히 구대(求對)하여, 거조가 해괴하고 또 후일의 폐단에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재(李縡)는 경술(經術)에 정통(精通)하고 예의(禮儀)에 익숙하여 그 숙덕(宿德)과 아망(雅望)이 사림(士林)의 으뜸이 되고 있으니, 신이 생각하기에는 동궁(東宮)을 위해 박사(博士)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신하보다 나은 이가 없을 것으로 여깁니다. 서장관(書狀官) 권현(權賢)은 단지 하나의 용렬한 무리일 뿐입니다. 명령이 내려지는 날에 듣는 이들이 놀래어 비웃었으니, 마땅히 변통(變通)하여 사사(使事)를 안정되게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임금이 엄중한 하교를 내리어 해남(海南)에 찬배(竄配)시키도록 하고, 이어서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친히 대훈을 지어서 종묘(宗廟)에 고하고 교서(敎書)를 반포하였는데도 오히려, 󰡐국시(國是)가 조금 정해졌다.󰡑고 말한 것은 바로 오로지 김용택(金龍澤)의 무리를 위한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남유용을 정의현(旌義縣)에 귀양 보낼 것을 명하였다. 영의정 김재로(金在魯)가 말하기를, 󰡒남유용이 김용택의 무리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대개 중론(衆論)이 오히려 안정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인데, 도배(島配)시키는 것은 진실로 지나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일 남유용을 엄중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대훈을 장차 물에 내던지게 될 것이다.󰡓하였다. 조현명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만일 극률(極律)을 적용하고자 하신다면 신 등이 간쟁할 수 있지만 극률 이하의 형벌은 어찌 감히 간쟁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김재로는 말하기를, 󰡒남유용은 아비가 늙고 또 병들었으니 정리(情理)가 민망합니다.󰡓하니, 임금의 마음이 조금 풀려서 말하기를, 󰡒수규(首揆)는 남유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공심(公心)이다. 우규(右揆)도 또한 공심이긴 하나 오히려 사재(渣滓)가 있다.󰡓하고, 드디어 정의(旌義)를 고쳐 해남(海南)으로 정했다. 수찬 홍계희(洪啓禧)가 상소하여 남유용을 찬배시키라는 분부를 환수할 것을 청하였으나, 불보(不報)하였다./ 태백산사고본405432B/ 영인본4338/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4/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113(갑자) 1번째 기사/ 부교리 이명곤이 남유용의 상소로 인해 상소하여 스스로 변명하다/ 부교리(副校理) 이명곤(李明坤)이 남유용(南有容)의 상소로 인해 상소하여 스스로 변명하기를, 󰡒어두운 밤에 분주하게 붕비(朋比)를 교결(交結)하고 논의(論議)를 주장(主張)하여 파랑(波浪)을 취허(吹噓)하는 것은 다만 신이 배우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신이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것으로써 죄()를 삼으니, 신은 진실로 마음에 달갑게 여기겠습니다.󰡓하니, 󰡐이미 하유(下諭)하였으니 사직하지 말라.󰡑는 예사 비답을 내렸다. 처음에 이명곤이 이천보(李天輔)에게 아부하여 밤낮으로 왕래하니 이천보가 극력 추만(推挽)하여 오원(吳瑗)이 문형(文衡)이 되었을 때에 당해서 이명곤이 홍문록(弘文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남유용이 이를 보고 비루하게 여겨 드디어 이명곤을 탄핵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명곤이 마음속으로 이천보가 은밀히 남유용을 사주(使嗾)해 자기를 탄핵한 것으로 의심하여 소변(疏辨)하기를 이와같이 하였다. 그의 이른바, 󰡐붕비를 교결하고 논의를 주장했다.󰡑는 등의 말은 대개 이천보를 지적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405434B/ 영인본4339/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4/ 영조 17(1741 신유 / 청 건륭(乾隆) 6) 1123(갑신) 1번째 기사/ 이덕수이정보정준일신처수안식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덕수(李德壽)를 대사헌으로, 이정보(李鼎輔)를 대사간으로, 정준일(鄭俊一)을 집의로, 신처수(申處洙)를 사간으로, 안식(?)을 지평으로, 윤득경(尹得敬)을 부교리로, 조명교(曺命敎)와 이명곤(李明坤)을 수찬으로, 이종성(李宗城)을 호조 참판으로, 김약로(金若魯)를 예조 참판으로, 조상명(趙尙明)을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05437B/ 영인본4341/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5/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321(경진) 1번째 기사/ 조윤성이명곤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윤성(曹允成)을 승지로, 이명곤(李明坤)을 겸 필선으로, 윤득화(尹得和)를 병조 참판으로, 이창유(李昌儒)를 정언으로, 윤심형(尹心衡)을 부응교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518B/ 영인본4352/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5/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328(정해) 3번째 기사/ 홍중효이명곤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중효(洪重孝)를 정언으로, 이명곤(李明坤)을 교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520B/ 영인본4353/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5/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423(임자) 2번째 기사/ 윤휘정김상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휘정(尹彙貞)을 승지로, 김상익(金尙翼)을 대사간으로, 이명곤(李明坤)을 장령으로, 박춘보(朴春普)를 헌납으로, 이회원(李會元)을 지평으로, 유우기(兪宇基)를 교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525B/ 영인본4356/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76(계해) 1번째 기사/ 김한철정석오남태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한철(金漢喆)을 헌납(獻納)으로, 정석오(鄭錫五)를 우참찬(右參贊)으로, 남태제(南泰齊)를 교리(校理), 낙창군(洛昌君) (?)을 동지 겸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서명구(徐命九)를 부사(副使), 이명곤(李明坤)을 서장관(書狀官)으로, 김윤(金潤)을 전라 수사(全羅水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62A/ 영인본4362/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92(무오) 1번째 기사/ 정경이 적어 정우량과 김약로를 승품시키다/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이 정경(正卿)이 몹시 적다 하여 재신(宰臣) 정우량(鄭羽良)과 김약로(金若魯)를 발탁할 것을 청하였다. 영의정 김재로(金在魯)가 말하기를, 󰡒김약로의 경우 신()처럼 불초(不肖)한 자가 어찌 감히 내거(內擧)의 뜻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경(亞卿)의 숙망(宿望)으로는 이종성(李宗城)만한 이가 없는데, 지난번에 이미 천망(薦望)하였지만 아직 윤허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신은 바야흐로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종성은 참으로 총재(?)의 재목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번선(藩宣)에 있으니, 우선 정사(政事)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하고, 드디어 정우량과 김약로를 승품(陞品)시키라고 명하였다. 김재로가 능행(陵行) 때 종신(宗臣)이 반열(班列)에서 지레 돌아간 것은 조정의 체통에 관계되는 문제라 하여 종부시(宗簿寺)로 하여금 규찰(糾察)하게 할 것을 청하고, 서장관(書狀官) 이명곤(李明坤)은 양친이 모두 연로하여 멀리 보내서는 안된다 하여 체임(遞任)시킬 것을 청하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415613B/ 영인본4367/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108(계사) 1번째 기사/ 송익보서명신이명곤김광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송익보(宋翼輔)를 대사간(大司諫)으로, 서명신(徐命臣)을 사간(司諫)으로, 이명곤(李明坤)을 헌납(獻納)으로, 김광국(金光國)이창유(李昌儒)를 지평(持平)으로, 어석윤(魚錫胤)을 정언(正言)으로, 이천보(李天輔)를 교리(校理), 김상신(金相紳)을 보덕(輔德)으로, 김선행(金善行)을 설서(說書)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621A/ 영인본4371/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1120(을해) 1번째 기사/ 이정보이명곤조재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정보(李鼎輔)를 승지(承旨), 이명곤(李明坤)을 사간(司諫)으로, 조재민(趙載敏)임박(任璞)을 정언(正言)으로, 권우(權祐)를 장령(掌令)으로, 남태제(南泰齊)를 부응교(副應敎)로 이제원(李濟遠)을 헌납(獻納)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629A/ 영인본4375/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1210(을미) 3번째 기사/ 남태제권해조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남태제(南泰濟)를 사간(司諫)으로, 권해(權骸)를 장령(掌令)으로, 조경(趙擎)을 지평(持平)으로, 한덕증(韓德增)을 헌납(獻納)으로, 이명곤(李明坤)을 교리(校理), 홍창한(洪昌漢)을 검상(檢詳)으로, 김종태(金宗泰)를 집의(執義)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631B/ 영인본4376/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6/ 영조 18(1742 임술 / 청 건륭(乾隆) 7) 1227(임자) 1번째 기사/ 도목정을 행하여 권적이천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도목정(都目政)을 행하였으니, 이조 판서(吏曹判書) 민응수(閔應洙), 참판(參判) 원경하(元景夏),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시형(金始炯)이 나아가 참여해 이틀 만에 끝냈다. 권적(?)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이천보(李天輔)를 응교(應敎), 서명신(徐命臣)을 교리(校理), 조명건(趙明健)을 정언(正言)으로, 황경원(黃景源)을 지평(持平)으로, 한억증(韓億增)을 부수찬(副修撰)으로, 서종옥(徐宗玉)을 판윤(判尹)으로, 김광세(金光世)를 집의(執義), 이우(李玗)를 통제사(統制使)로 삼았다. 또 승지(承旨) 조윤성(曹允成)을 발탁하여 경기 수사(京畿水使)로 삼고,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삼았다. 조윤성은 이조 참의(吏曹參議) 조명교(曺命敎)의 아들이니, 권무(權武)로서 등과(登科)하여 바야흐로 근밀(近密)에서 모시고 있다가 박문수와 연석(筵席)에서 시끄럽게 싸운 일 때문에 오랫동안 쫓겨나 있었는데, 임금이 다시 쓰고자 하여 마침내 이 직임에 제배(除拜)했던 것이다. 보덕(輔德) 이명곤(李明坤)을 특별히 발탁해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15634A/ 영인본4378/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7/ 영조 19(1743 계해 / 청 건륭(乾隆) 8) 111(병인) 2번째 기사/ 이명곤이 서연에서 빈객은 번갈아가며 입대할 것을 청하다/ 승지 이명곤(李明坤)이 말하기를, 󰡒신이 서연(書筵)에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이 입참(入參)하는 것을 보았더니, 동궁(東宮)이 존경하고 꺼리는 뜻이 있었습니다. 사부는 비록 자주 입참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빈객은 번갈아가며 입대(入對)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빈객이 없을 경우 서연을 열 수 없다는 뜻을 따라 신칙함이 좋겠습니다.󰡓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태백산사고본42574A/ 영인본4380/ 분류*왕실-경연(經筵)(www.history.go.kr 2008)

 

  이명곤[記事] : 영조실록 57/ 영조 19(1743 계해 / 청 건륭(乾隆) 8) 325(기묘) 1번째 기사/ 이명곤김광세윤득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명곤(李明坤)김광세(金光世)를 승지로, 윤득징(尹得徵)을 사간으로, 이연덕(李延德)을 헌납으로, 이중조(李重祚)김상복(金相福)을 지평으로, 민백행(閔百行)이태중(李台重)을 교리로, 김시찬(金時粲)을 수찬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425726B/ 영인본4391/ 분류*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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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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