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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70-19:심용(1769.2.17.제수-1770이임)
작성자장병창 @ 2019.12.07 06:32:09

  예천고을원 170-19 : 심용(1769.2.17제수-1770이임) : 서악사 불탱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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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曰, 左相之言, 大體好矣, 而割給松都, 亦何害之有? 但金川利害, 不可的知, 此爲難處矣。金川守則以爲如何云耶? 鎭宅曰, 郡民欲傾一邑上來, 呈訴備局, 而金川?力止之云矣。上曰, 金川?則必難之矣。松都旣是保釐重地, 而後市罷後, 松民之凋殘可慮。二面割屬利害, 亦難的知, 則目下?弊, 似無如鑄錢之爲善, 俄者領相, 亦以此爲言矣。鑄錢則果可使松人復古, 而松人之願不願, 亦如何? 蓍東曰, 鑄錢則松民願者必多, 而所可慮者, 器具有不逮耳。上曰, 如有器具, 則鑄錢之策, 似爲最優, 但向時新留守之言, 未及詳聞, 是可?也。備郞手本, 則太涉時體, 予實非之。不給二南面, 而只割松西面, 何益之有? 蓍東曰, 臣則丘墓所在之地, 嫌不敢言矣。鎭宅曰, 松西面在松營, 則得之無益, 而松民則大願所在也。蓍東曰, 松西面, 在前嘗割屬松都, 而故判書閔鎭厚爲留守時, 還屬長湍矣。上曰, 何故還屬也? 蓍東曰, 必由於在松都則無益, 而長湍則必欲還得, 故還給之矣。上曰, 若使松都, 得二南面, 則必不還給乎? 蓍東曰, 此則必不還給矣。上曰, 吏判․備郞先退, 蓍東․鎭宅退出。上曰, 下直守令入侍。賤臣承命出, 與楊州牧使洪義榮, 昌原府使李東植偕入進伏。命宣諭。?讀宣諭․別諭訖。上曰, 入侍守令曲拜之際, 有失措, 而司謁在傍, 不爲指導, 當該司謁, 自政院脫帽立庭, 申時後退送, 可也。仍命退, 諸臣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심용 : 壬午年 이후의 舊逋欠을 전혀 받지 못한 醴泉前郡守 沈鏞 등을 종신토록 禁錮에 처하고 統制使도 처벌하라는 傳敎/ 상위서지: 비변사등록 14집/ 날짜: 1770-03-15(음)/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편년류(編年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壬午年 이후의 舊逋欠을 전혀 받지 못한 醴泉前郡守 沈鏞 등을 종신토록 禁錮에 처하고 統制使도 처벌하라는 傳敎 ./ 왕 재위년도 영조 46년/ 월일 庚寅三月十五日/ 今三月十五日夕入診, 坐直承旨入侍時, 傳曰, 舊逋全未捧, 已有定式, 嶺南․湖南皆已稟處, 而今聞統制使啓本, 軍餉何等重也, 而其中, 醴泉前郡守沈鏞全未捧四石, 彦陽前縣監成箕柱全未捧一石, 況皆壬午條, 今已八年, 若有毫分擧職之心, 其雖月?充數, 焉敢以此載於未捧乎, 其或指徵無處者, 已, 不然事之無據, 莫此爲甚, 此不過只載其名, 望其蕩滌之意, 此等慢忽守令, 雖其官監色何用, 一倂終身禁錮, 以懲此輩放肆之弊, 噫堂堂千乘之國, 豈可以四石․一石, 載於奏御文字乎, 其羞朝廷大矣, 特爲蕩滌事分付, 以此觀之, 年年此會錄可知, 萬古豈有一石․四石全未捧之錄於啓本中, 壬午以後八年統制使, 一倂越俸五等, 雖遞自京擧行, 以懲擁聲色合眼坐, 洗兵館之?帥。//

 

  심용 : 傳于洪?曰, 新除授醴泉郡守沈鏞留待/ 상위서지: 승정원일기 영조 45년/ 날짜: 1769-02-17(음)/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편년류(編年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45년 2월 17일 (경오) 원본1289책/탈초본72책 (16/24) 1769년 乾隆(淸/高宗) 34년/ ○ 傳于洪?曰, 新除授醴泉郡守沈鏞留待。//

 

  심용 : 진정한 남자 못 찾고 떠난 명기 한섬/ 2009.03.16/ ... “홍국영은 귀신도 모르게 죽을 것” 그 뒤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가 당대의 풍류남아 심용(沈鏞·1711∼88)과 어울렸다. 경기 파주군 시곡촌(柴谷村)에 있는 심용의 시골집 뒤에 거처를 정해 살았다. 거처가 심로숭이 .../ http://blog.daum.net/windada11/ 마음의 정원(daum 2010)

 

  심용 : 풍류객 심용(沈鏞) | 옛(역사) 이야기/ 2008.08.05 18:05/ 까망잉크/ http://blog.daum.net/wonbbie/6236835/ 조선조 후기(영. 정조 때)에 합천(陜川)군수를 지낸 심용(沈鏞)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가였지만, 그는 관직에 미련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풍류남아(風流男兒)’로 유명한데, 그 일화 중 하나를 보겠다. 심용(沈鏞)은 풍류남아(風流男兒)답게 기생집에 자주 출입했다. 하루는 기생과 자고 있는데, 액정서 별감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놈, 네놈이 뉘기에 감히 내 계집을 끼고 자느냐?” 별감이 기녀와 심용이 발가벗고 자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달려들었다. 다급해진 김용은 화로를 들어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그 길로 기녀를 데리고 달아나버렸다. “별감이 너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기왕 이리 되었으니 네가 너를 거두겠다.” 부호인 심용은 그녀를 첩으로 삼아 데리고 살았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서 심용이 산으로 천렵을 가는데 한 걸인이 앞을 가로막고 구걸을 했다. 그런데 누더기 옷을 입은 걸인의 얼굴은 화상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심용이 측은하여 걸인에게 물었다. “얼굴이 어쩌다 그리되었는가?” “젊었을 때 한 기생과 정분이 나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그 기생이 다른 사내와 자고 있었습니다. 그 사내를 패주려고 하는데 그 사내가 갑자기 화로를 뒤집어씌워 얼굴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걸인의 말에 깜짝 놀란 심용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묻자 걸인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심용은 걸인에게 술과 음식을 후하게 대접한 뒤에 첩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첩이 걸인을 왜 집까지 데리고 왔느냐고 물었다. “이 자는 옛날에 너와 정분이 났던 별감이다. 내가 그에게 화로를 뒤집어씌워 이렇게 되었으니 보상하지 않을 수 없구나. 너는 나에게 와서 아들딸 낳고 부유하게 살았다. 이 집과 재산을 줄 테니 이 자를 모시고 살아라.” 심용의 말에 첩은 날벼락을 맞은 듯이 깜짝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울지 마라. 평생 먹고살 만한 재산과 집을 준다고 하지 않느냐.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그러나 어미의 정을 끊으라고 하지는 않겠으니 언제든지 아이들을 만나러 와도 좋다.” 심용은 첩의 애원어린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떠났다. 걸인 된 별감과 기녀의 이야기는 조선 후기 문인인 심노숭(沈盧崇)의 ‘자저실기(自著實記)’에 실려있다./ 이수광의 잡인열전에서/ ***합천(陜川)심용(沈鏞)은 재물은 소홀히 여기고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풍류(風流)를 스스로 즐겼다. 한 때의 가희(歌姬), 금객(琴客), 주도(酒徒), 사붕(詞朋)들이 그 집에 폭주하여 이르는 것이 마치 저자에 사람 모이듯 하였다. 사람들이 날마다 집안에 가득하였고, 장안의 모든 잔치와 놀이는 공에게 청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沈<지명>陜川<인명>鏞 ?財好義 風流自娛 一時之歌姬琴客酒徒詞朋 輻輳幷臻 歸之如市 日〃滿堂 凡長安宴遊 非請於公 則莫可辦也/ ***액정서[掖庭署] :조선시대 내시부에 부설되어 왕명 전달, 궁궐 열쇠 보관, 대궐 정원 관리, 임금이 쓰는 붓 ·벼루 ·먹 등의 조달을 맡은 관청./ ***별감[別監]:조선 시대에, 장원서나 액정서에 속하여 궁중의 각종 행사 및 차비(差備)에 참여하고 임금이나 세자가 행차할 때 호위하는 일을 맡아보던 하인.**기녀의 기둥서방을 많이 했다./ [출처] 장안의 모든 잔치와 놀이는(daum 2010)

 

  심용 [專門資料] : < 문학교육분야 > 심용 ( 沈鏞 )의 풍류와 시조연구/ [학술지논문]/ 1986/ 정명세 | 한국국어교육학회(daum 2010)

 

  심용 [專門資料] : 심용(沈鏞)의 사적과 교유관계/ [학술지논문]/ 2007/ 강혜규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daum 2010)

 

  심용 : 풍류(風流의 꽃, 기녀(妓女)의 정체(正體)/ 2005.11.28/ ...그런 사람 중에 심용(沈鏞)이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심용(沈鏞)은 재산도 있고 풍류를 알아, 한때는 가희(歌姬), 금객(琴客), 주도(酒徒), 사붕(詞朋)이 몰려와서 같이 다녀 문전성시(門前盛市)를 이루었다. 무릇 장안...(daum 2010)

 

  심용 : [平時調] 金壽長의 時調 (2) 父母 살아신제 - 諸葛忠魂 蜀魄되어/ 2009.11.14/ ...하리라 [出典] 海周, 歌謠, 靑六, 源國, 源東, 源一, 源皇, 海樂, 花樂 外 [參考] '三家樂府' 에는 作家가 '沈鏞' 으로 表記됨. (32) 諸葛忠魂 蜀魄되어 그 임금을 못내 그려 피나게 우는 소리 이제도록 슬프도다 平生에 劉皇叔.../ http://cafe.daum.net/jinin22/ 향기로운 세상(daum 2010)

 

  심용 : 밀양기생 운심(4)/ 2009.12.12/ ...머물렀는데 이 때 검무를 보고 이 작품을 썼다. 두 명의 기생이 추는 검무였다. 정조 때의 호남아 심용(沈鏞)이 평양감사가 되어 대동강에서 향연을 베풀 때도 여러 척의 배에서 모두 검무를 추었다고 한다. 검무의 비약적인 .../ http://cafe.daum.net/mil67friend/ 내 고향 밀양(daum 2010)

 

  심용 : 한국의 妓女(4) - 기생(妓生)의 생활단면(生活斷綿)/ 2009.11.20/ ...티임이 되어서 불려 다녔는데, 그들을 데리고 다니던 일종의 스폰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 심용(沈鏞)이란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심용(沈鏞)은 재산도 있고 풍류를 알아, 한때는 가희(歌姬), 금객(.../ http://cafe.daum.net/songbhusa2/ 허니의 세계(daum 2010)

 

  심용 : 청송 심씨 문집, 유고에 대한 자료 (청송 심씨 세고선과 청송 심씨 가승집)/ 2009.01.07/ ...與隣城諸遊縣樓. 沈景錫;李彛甫宅會飮. 沈樂賢;病中感吟. 沈英錫;送 朴尙書赴燕. 沈星鎭;訪白蓮寺 外 1수. 沈鏞;二水臺借唐人韻贈金聖遊. 沈公猷;泛舟三湖 . 沈定鎭;朝發北靑. 沈公藝;遊北營. 沈公著;江都留府次內史潭韻. 沈銖.../ http://cafe.daum.net/chungsongshim.el/ 청송심씨문중(daum 2010)

 

  심용 : 심용(沈鏞)의 사적과 교유관계/ 학술지 논문/학회지 자료 연구분야별 검색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 제 목 : 심용(沈鏞)의 사적과 교유관계 저자 강혜규 학회명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저널명 관악어문연구 권 호 32 권 0 호 시작페이지.../ http://www.inetbook.co.kr(daum 2010)

 

  심용 : 춤꾼 운심 2/ ...지역에 머물렀는데 이 때 검무를 보고 이 작품을 썼다. 두 명의 기생이 추는 검무였다. 정조 때의 호남아 심용(沈鏞)이 평양감사가 되어 대동강에서 향연을 베풀 때도 여러 척의 배에서 모두 검무를 추었다고 한다. 검무의 비약적인.../ http://blog.naver.com(daum 2010)

 

  심용 : < 朝 鮮 夜 話 >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계섬 이야기 별이 쏟아질 듯이 밝은 밤이었다. 악공의 음률에 맞춰 춤을 추는 검무가 현란했다 합천군수 심용(沈鏞 )은 넋을 잃은 듯이 기녀의 춤사위를 보고. 양반들이나 조선통신사 일행도 기녀의 빼어난 자태에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http://blog.naver.com(daum 2010)

 

  심용 : 조선의 프로페셔널/ e-Book/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12.05/ 책본문 : ...유득공이 거기서 본 것도 기생 둘이 추는 쌍검대무였다. 또 정조 때의 호남아 심용(沈鏞)9)이, 평양감사가 대동강에서 향연을 베푸는 자리에 나아갔을 때 여러 척의 배에서 모두 .../ 198페이지(daum 2010)

 

  심용 : 추재기이/ e-Book/ 조수삼 지음 |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8.05.22/ 책본문 : ...국영이 쫓겨나자 계섬도 기적妓籍에서 벗어나, 산속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심용沈鏞(1711~1788)이 풍류를 즐겨 계섬의 노래 듣기를 좋아했으므로, 계섬이 그를 따라 노닌 지도.../ 120페이지(daum 2010)

 

  심용 : 부사산 비파호를 날 듯이 건너/ e-Book/ 성대중 지음 | 홍학희 옮김 | 소명(박성모) | 2006.06.22/ 책본문 : ...보았다. 매우 기이하게 생각되어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합천(陜川)의 심용(沈鏞)이라고 하였다. 그때 역참의 관리로 와있었다. 일찍부터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33페이지(daum 2010)

 

  심용 : 약인열전/ e-Book/ 허경진 지음 | 한길사 | 2006.07.27/ 책본문 : ...국영이 쫓겨나자 계섬도 기적妓籍에서 벗어나, 산속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심용沈鏞(1711~88)이 풍류를 즐겨 계섬의 노래 듣기를 좋아했으므로, 계섬이 따라 노닌 지 또한 오래되었다.../ 201페이지(daum 2010)

 

  심용 : 진정한 남자 못 찾고 떠난 명기 한섬/ 미디어다음/ 2009.03.13 (금) 오후 6:12/ ..."홍국영은 귀신도 모르게 죽을 것" 그 뒤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가 당대의 풍류남아 심용(沈鏞·1711∼88)과 어울렸다. 경기 파주군 시곡촌(柴谷村)에 있는 심용의 시골집 뒤에 거처를 정해 살았다. 거처가 심로숭이 사는 미륵산과 5리밖에.../ 한겨레21 > 매거진(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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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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