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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175-4 : 심풍지(1779.6.13제수-1780.6.22이임) : 형조 판서에 까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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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曰, 依爲之。出擧條 命善曰, 此東萊府使李養鼎狀啓也。以爲濟州等邑漂民玄世坤等六名, 到館所, 更爲問情, 則同騎一船者, 二十七名內, ?沒者十名, 得生者十七名。而罪人五名之俱入?沒, 誠極怪異, 下陸後十名之不知去處, 尤涉駭惑。反覆嚴?, 終不輸款, 待用刑, 加刑取服次, 仍囚府獄。差倭齎來書契, 姑令退却, 從速搜還之意, 嚴飭任譯, 責諭差倭處, 使之通報島中, 而領來差倭, 接待供給與否, 請令廟堂, 稟旨分付矣。大洋漂船之或溺或否, 自是常有之事, 則罪人五名之同入?沒中, 未必爲駭惑之端。登陸十名之不知去處, 雖涉可怪, 而各自圖生之際, 無暇相尋, 事勢或然, 其所納供, 似無隱情, 而萬死一生, 歸到本國, 滯囚冷獄, 一向盤問, 誠甚可矜。玄世坤等六名, 送還于原籍官, 書契如或違格, 則責諭退却, 固有前例。而今以漂民之不爲搜還, 竝與書契而退却, 以至護送吾民之差倭, 不爲接待, 亦太埋沒。書契則許令順捧, 差倭則依例接待事, 分付東萊府使處,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上曰, 今此漂民, 萬死一生, 僅得還歸, 而卽以無情之事, 年囚冷獄, 亦屬可矜矣。命善曰, 萊伯之若是盤詰, 誠甚無怪, 而至於書契之退却, 太涉過矣。上曰, 如是爭執之際, 恐致生?之端矣。命善曰, 此則誠無爲慮矣。命善曰, 此慶尙監司趙時俊狀啓也。因東萊府使李養鼎謄報, 濟州漂人登陸後, 十名之不知去處, 跡涉駭惑, 書契對馬島, ?探其實, 恐不可已。請令廟堂, 稟旨分付矣。海中?沒者, 雖難推尋, 而至於登陸之十名, 則毋論存沒, 宜無不知去處之理, 更加?探, 隨得送還之意, 書契回答中, 善爲措辭以送事, 分付該曹,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命善曰, 日月救食時, 以素服行禮事, 禮部咨文出來矣。撰出回咨, 順付於今番節行事, 分付槐院,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命善曰, 各道舊還, 今將定數, 然後各邑可以徵捧矣。上曰, 舊還則欲爲停退, 卿等之意, 果何如? 命善曰, 都數不過十萬石, 而以此分排, 則實無難捧之慮。畿內雖或停退, 外此諸道, 如此之年, 不捧舊還, 則舊還將無可捧之時。且以昨年未捧條分排, 則不至甚多矣。上曰, 昨年未捧, 何其數少也? 命善曰, 停退外, 只有此數矣。上曰, 嶺南不當設賑乎? 命善曰, 右沿雖或不登, 似不至設賑之境矣。華鎭曰, 俄聞左承旨所傳, 則右道十餘邑, 當設賑云矣。上曰, 湖西失農, 亦無異畿甸云矣。命善曰, 論其失稔, 差勝於畿邑云矣。?曰, 沿海被災處, 與畿內尤甚邑, 無異云矣。上曰, 舊還當捧與否, 卿等出去, 自備局草記, 則當措辭下敎矣。命善曰, 備堂中, 多有未及還差者, 行副司直趙?, 刑曹判書鄭好仁, 吏曹參判鄭元始, 行副司直蔡弘履, 備局堂上還差, 鄭元始湖南句管堂上差下, 使之察任,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命善曰, 承文提調還差事, 當以草記, 入啓矣。上曰, 可矣。上曰, 道科, 果以何日設行耶? 尙淳曰, 關西, 當以初定日設行, 而北道則旣有三定日, 亦當?期試取矣。命善曰, 鄭判府事, 出疆不遠, 故今將省墓, 欲爲上疏, 而恐煩恩典, 不敢陳懇云矣。上曰, 致慮太過, 必依例爲之, 可也。華鎭曰, 醫官當爲帶去, 而亦有不敢云矣。上曰, 所引亦過矣。上曰, 所引亦過矣。上曰, 畿邑守令, 俱以宰列差遣, 當善爲矣。命善曰, 果然矣。楊牧素有聲績, 曾任尙州, 値戊戌而果善接濟矣。上曰, 然矣。命善曰, 廣州府尹, 固不當以宰臣差遺, 而旣有特敎, 故以此擬薦矣。上曰, 廣尹望初不欲下批, 而仍爲落點, 此人必當善爲矣。命善曰, 然矣。命善曰, 曾因惠堂所啓, 以米色?劣, 有嶺南左後漕倉都差使員, 待秋成拿處之命。又因惠廳草記, 以監色不騎船, 有當該守令待秋成拿來之命。又因司饔院草記, 以進上物種, 護送遲滯, 有三邑守令待秋成指名査報之命矣。今已秋成, 當捧傳旨, 而當初所犯, 不至深重, 此時曠官, 亦甚有弊, 合有參酌分揀之道, 故敢達矣。上曰, 依爲之。出擧條 命善曰, 月前坐罷之金吾堂上, 旣有特敍之命, 而同時勘律之諸都事, 尙在罪中。堂郞雖似有間, 其在一視之政, 宜有參酌之道, 故敢達矣。上曰, 蕩滌, 可也。上曰, 其時堂郞事, 果不善爲矣。命善曰, 譴責之罰, 何可免乎? 上曰, 日前動駕時, 金川安景濂之母, 乃敢擊錚稱?, 世道人心, 實無可言矣。向來海獄諸囚, 固不欲?卽收殺, 而惟輕酌決者, 意亦有在, 論其事則果是何事? 顧其時則亦是何時也? 每用寬典, 置之生路, 故因此而天理不明, 人心未定, 以致渠輩之輒肆跳?, 是豈成說乎? 卿等亦當體認矣。命善曰, 近來?防不嚴, 故一種不逞之徒, 敢生??之心, 有此跳?之擧, 誠極痛?矣。上曰, 此等事, 不可只以?防論之矣。命善曰, 聖敎果然矣。上曰, 昨以銓郞事, 有所下敎, 卿等皆見之乎? 大抵銓郞之自書應敎, 終非美規。雖以吏議言之, 副學則不以已經吏議而不通, 獨於郞官, 則謂之堂下淸顯, 無更通之規云, 而至於自書應敎, 豈非無義之甚乎? 古者銓郞, 或至十餘年之久, 雖今日應敎, 明日承旨, 未爲太驟。而今則不然, ?經一都目, 便陞應敎, 旣陞之後, 一經判事, 則便入於承旨望, 遂作年少新進躁進之捷徑。故昨者下敎, 實出抑躁進之意, 而或以爲如此, 則銓郞便作中物望云, 此則不然, 只去其自書之規而已。判堂與郞廳, 參政之時, 卽可擬望, 豈可與陞品玉堂之東壁通比論乎? 命善曰, 聖敎誠至當矣。上曰, 已經吏議者, 雖通副學, 而大諫․大成, 則無更通之規乎? 命善曰, 大成, 是吏議階梯, 故果不更通, 而大諫則似當更通矣。上曰, 吏參之經筵, 亦如吏議之大成乎? 尙淳曰, 其規不一, 臣以特除爲吏參, 而經筵則更通矣。福源曰, 臣亦以特除爲吏參, 而不通經筵矣。上曰, 文學政事, 各有所長, 但當隨才用之, 必以銓曹爲重, 而無?於他名宦。予則以爲, 不然矣。所謂銓郞於應敎, 則以謬例相傳如此, 至於職事, 則無一遵守, 銓郞之入直直房, 呈省記, 自是古例, 而未嘗一日入直。一差假郞, 雖至半年, 不得替直, 三司積滯, 而全不疏通。自復古之後, 三司陞品者, 其數極少, 停望拔望之人, 一不擧論, 便作無端求枳之人。向予所謂上干天和者, 不爲過矣。命善曰, 臣亦嘗以此爲悶, 而聖敎旣出於抑躁進, 臣實欽仰矣。上曰, 近來文兼望銓郞, 亦備擬以送云, 予亦莫知其故矣。命善曰, 北評事則例或問議於銓郞, 而文兼之擬送, 誠可怪矣。好仁曰, 銓郞有可擬北評事之人, 則問於銓郞, 而只陞品人擬望, 則亦不必問之矣。上曰, 銓郞復古, 予非樂爲, 卿於其時, 何無一言乎? 命善曰, 臣於其時, 待罪銓堂, 不惟無所陳白, 差出銓郞之政, 臣實爲之矣。上曰, 到今有百害無一益, 遲川集, 盛言其弊, 故日前傳敎, 予有提及者矣。福源曰, 今之銓郞, 與古之銓郞有異。昔則後輩尊敬先輩, 先輩顧憚後輩, 蓋後輩之出入銓曹三司者, 有激揚之言論, 故先輩多有顧憚矣。近來則未見其如此矣。
上曰, 予所謂成效者, 政謂此也。而此則無可望矣。?曰, 古者銓郞權重, 故以陞遷謂之避權, 不以自書爲嫌。聖敎中抑躁進三字, 誠至當。顧今新進, 一通淸顯, 無不歷揚, 必須一番大更張然後, 此弊可矯矣。命善曰, 雖以玉堂言之, 未錄之前, 豈有厭避之人, 而一參錄之後, 自初牌而已違傲矣。上曰, 古之銓郞, 豈若近來銓郞之以一都目爲準限乎? 福源曰, 徐鼎修․李時秀, 皆經三都目矣。上曰, 其時皆因事未陞, 承旨當知之矣。時秀曰, 臣與徐鼎修, 皆於庚子五月除拜銓郞, 當都目則同參。庚子十二月都目時, 臣奉命嶺南而歸, 因引嫌不參都政, 徐鼎修, 文山萬戶補外, 臣則延曙察訪補外。辛丑六月都目時, 則臣因事被罪矣。上曰, 果皆因事未陞矣。如兪彦鎬․沈豊之, 皆經一都目, 卽陞應敎矣。大抵銓郞, 古則或至五六人之多, 近來則每以兩人爲例, 有若互對者然, 凡事毋令偏重而已可矣。互對豈不可怪乎? 至於都目之時, 殆若注書尙瑞院官員之例, 誠極無義矣。命善曰, 今則銓郞, 只有徐龍輔一人, 更爲通擬, 然後可以次次陞付矣。上曰, 近來通淸, 銓郞獨自主張, 甚或只書通淸之末副望, 空其首望, 使判堂書之云矣。命植曰, 雖通淸望, 不得爲自書, 以當通之人, 言於判書, 而判書呼之矣。上曰, 如此而若捧現告, 則輒以判書當之, 豈可成說乎? 性源曰, 應敎旣有通擬之命, 兩司亞長, 亦當有一番經稟定式矣。上曰, 兩司亞長, 亦當通擬乎? 命善曰, 雖非銓郞․應敎已行之人, 元無亞長更通之規, 況銓郞陞品者, 又與他有別, 兩司亞長則應敎後, 自當循例擬望, 何必定式乎? 上曰, 似然矣。上曰, 日前動駕時, 兵判善爲馳馬, 可知筋力之尙好矣。命植曰, 伊日馳馬, 急於陣前馳進而然也。見今賤疾彌苦, 精神大減, 虛?是職, 實爲惶悶矣。上曰, 擧動時捕將, 以亞將中兼察, 曾無是例, 亦當有一番定式矣。命植曰, 其時留陣無將臣曾經者, 只有李漢昌一人, 故不得已以此單擧, 仰請矣。上曰, 將臣則果有單擧草記之例, 而亞將則曾無是例, 諸將臣之意, 何如? 柱國曰, 時無實職之亞將兼察捕將, 曾未見之矣。命善曰, 揆以事體, 似甚如何矣? 上曰, 李漢昌, 曾通將望, 故先於金相玉乎? 敬懋曰, 然矣。華鎭曰, 今朔乃是時御所及慶熙宮奉審當月, 而寒節已屆, 有難修改, 待明春擧行, 何如? 上曰, 依此爲之, 可也。命植曰, 前日次對時, 以梗?事, 有詳考年條後仰奏之敎。蓋永肅門梗?, 自丁酉八月加設, 故書樓次知出給, 則每更受置南所, 不爲直納於書房色云矣。上曰, 此後, 置之書房色, 可也。尙淳曰, ?祭獻官, 有指一稟處之敎, 故問議大臣, 敢此仰奏矣。上曰, 外邑祈雨祭, 何以爲之乎? 尙淳曰, 五禮儀, 外邑則只有山川祭․祈雨祭, 無別錄者矣。上曰各以其邑守令, 差定獻官乎? 尙淳曰, 只社稷祭, 以其邑守令差出矣。命善曰, 其在重其祀之道, 監司事當親往矣。上曰, 監司爲獻官者, 是何道也? 尙淳曰, 慶尙․全羅․洪忠․平安道, 則監司皆爲獻官, 而其外四道, 皆以守令差出獻官矣。上曰, 祭禮固當指一擧行, 而道各不同, 誠如何矣? 華鎭曰, 臣曾在嶺營時, 進往慶州, 設行?祭, 而監司如或有故, 則以中央邑差出獻官, 以爲設行矣。?曰, 各道皆以監司爲獻官, 則亦恐爲弊矣。上曰, 然則各道, 皆以中央邑地方官, 使之擧行好矣。尙淳曰, 以各道?祭獻官草記, 有指一釐正, 後日次對, 稟處之命矣。臣取考五禮儀, 則州縣社稷祭獻官, 本邑守令, 小註有曰, 山川?祭․?祭?祭同, 臣意則一從儀文, 設祭於蟲災熾發, 列邑中居中邑獻官, 以本邑守令, 擧行三獻將事, 而若以爲民祈穰之意, 道臣或欲躬行, 則勿拘常格事, 行會各道, 以爲定式施行之地,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尙淳曰, 忠州幼學朴?上言, 據其先祖靖難功臣雲城府院君從愚, 以不?之祀, 至十一代孫重明, 無後身死。當立重明之後, 以繼宗統, 而實無昭穆可合立後者, 宗中僉議, 以雲城府院君十二世孫炯第一子載行, 用兄亡弟及之例, 移定奉祀事, 議大臣後稟處事, 已爲覆啓, 蒙允矣。議于大臣, 則以爲, 勳臣不?之祀, 果無可繼之人, 則移定奉祀, 或有已例, 而莫重變禮, 不可以其矣上言, 遽爾許施。更令忠勳府, 考其世派後, 行關本道, 知委該邑, 詳査其絶嗣及無昭穆可繼的實與否, 於其矣宗中及門長等處, 消詳狀聞後, 稟處爲宜云。以此意分付該府, 使之卽爲擧行,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上曰, 俄以都摠管呈辭者, 誰也? 命善曰, 刑判矣。上曰, 許遞無妨矣。仍命書傳敎曰, 都摠管鄭好仁許遞。性源曰, 向者平山兼官, 以白川郡守金安黙, 現告削職矣。追聞海營營吏, 私通備局者, 則金川郡守成雲柱, 以伊時兼官, 至於引義呈遞云。令道臣, 更爲指名現告, 恐合宜矣。上曰, 其時使問于前府使柳孝源, 使之指名現告, 更爲詳問于柳孝源, 以草記爲之, 可也。柳孝源當初若果誤告, 則當不免誤告之罪矣。命善曰, 聖敎宜矣。上曰, 御將功名壯矣。以時任承旨, 除拜將任者, 古亦罕有矣。命善曰, 果然矣。柱國曰, 訓局中旬木八十同, 以御營廳貸用事, 曾有下敎。而臣營遺在木, 合爲六百餘同, 其中新木之可用者, 不過百餘同, 來頭支用, 雖以百同, 亦有難繼之慮, 今若移送八十同, 則餘者無幾, 故敢此仰達矣。上曰, 何以則爲好也? 命善曰, 御營若難全當, 則與禁營, 分半移送, 似好矣。敬懋曰, 臣營木遺在, 亦極少, 勢難移劃矣。華鎭曰, 若以錢移送戶曹, 則臣當以八十同移送矣。上曰, 自本道以錢上送, 則亦似無妨矣。有隣曰, 向日發關時, 以罔夜上送之意, 已爲申飭, 匪久當上來矣。柱國曰, 自臣營實難獨當, 與戶曹折半區劃, 則或可擔當矣。上曰, 卿營所用, 雖曰凋殘, 旣有下敎, 盡數擔當, 可也。上曰, 禁御兩營中旬, 何當設行乎? 柱國曰, 有下敎然後, 可以擧行矣。命善曰, 待明年爲之, 無妨矣。上曰, 兵曹亦當與禁御兩營, 同時設行乎? 命善曰, 然矣。上曰, 戶曹所儲木, 可當一番觀武才乎? 華鎭曰, 布木猶可進排, 而錢則極苟艱矣。上曰, 兼料米, 亦可分排乎? 華鎭曰, 若過千石, 則實無變通之道矣。命善曰, 抄見數十年試取, 則鄭汝稷在訓將時, 取九百人, 而此爲最多等。今番則以勿過二百之數, 言及訓將矣。上曰, 一人兼料爲幾斗乎? 命善曰, 三斗矣。上曰, 取九百時, 爲幾石乎? 命善曰, 幾至二千餘石矣。上曰, 己亥年則何以最少乎? 命善曰, 嚴禁弄奸, 故自致數少矣。上曰, 試射五分, 則兼司僕, 六分則給馬帖乎? 柱國曰, 然矣。華鎭曰, 今則馬帖, 皆以木疋代給矣。上曰, 此是洪奉朝賀變通之事矣。命善曰, 然矣。上曰, 親臨試射, 亦有是例矣。命善曰, 然矣。上曰, 所謂十八技, 皆如科場之文, 若一失勢, 則不得入格矣。命善曰, 然矣。上曰, 禁御兩營技藝, 與訓局有異矣。柱國曰, 然矣。上曰, 摠戎使何間當造朝乎? 命善曰, 聞今身病, 誠難强云矣。上曰, 保還等事, 誰果照管矣。命善曰, 文簿往來, 則猶能檢察云矣。上曰, 大司憲獨爲登筵乎? 命善曰, 諫院無一人進參者, 誠可怪矣。上曰, 旣非合啓時, 而不爲推移入侍, 至於竝請牌招, 實爲怪訝矣。命善曰, 誠過矣。以大司諫申應顯, 司諫李重馥, 正言金寅燮․許?問啓。命書傳敎曰, 無故懸病人, 竝推考。命次對諸臣先退。命書傳敎曰, 行幸時, 兩捕將皆隨駕, 則以留陣大將中, 曾經捕將人, 回?間兼察之意, 自兵曹草記。留陣大將, 如是文宰, 或中軍則又於時原任將臣中, 在京人草記兼察, 自是不易之例。而今番擧動時, 捕將兼察, 以諸亞將中拈出一人草記, 雖出於不得已之擧, 事未前有。俄筵大臣之不請問備, 似因忘遺之致, 後弊所在, 宜示薄警。兵曹判書李命植, 推考。命退, 承史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6년 11월 6일 (기해) 원본1520책/탈초본82책 (18/46) 1782년 乾隆(淸/高宗) 47년/ ○ 有政。吏批, 判書金華鎭進, 參判李在協進, 參議沈念祖進, 左副承旨金宇鎭進。以吳載純爲大司憲, 洪秉纘爲大司諫, 崔光璧爲掌令, 李顯靖爲持平, 尹得孚爲正言, 趙尙鎭爲副提學, 姜?正爲修撰, 鄭一祥爲工曹判書, 趙時俊爲刑曹參判, 洪檢爲工曹參判, 沈豊之爲敦寧都正, 李敬懋爲知義禁, 姜世晃爲同義禁, 金聖甲爲兵曹佐郞, 韓大裕爲戶曹佐郞, 李錫源爲奉常僉正, 金復淳爲監察, 李秉模爲慶尙監司, 趙榮儉爲慶興府使, 朴宗厚爲順興府使, 李集星爲鎭安縣監, 姜文德爲重林察訪, 徐有防爲奎章閣直提學。學錄單張志黙, 綾城尉單具敏和, 養賢奉事單文光瑞。以徐有成爲副應敎, 元厚鎭爲驪州牧使, 沈樂洙爲江東縣監, 沈?爲永川郡守, 尹在醇爲殷山縣監。(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6년 12월 18일 (경진) 원본1523책/탈초본82책 (12/25) 1782년 乾隆(淸/高宗) 47년/ ○ 沈豊之, 以吏曹言啓曰, 本曹參判, 今當差出, 而前望中無故之人, 只有二人, 以二望擬入之意, 敢啓。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7년 1월 3일 (을미) 원본1524책/탈초본82책 (11/17) 1783년 乾隆(淸/高宗) 48년/ ○ 傳于沈豊之曰, 諸承旨入侍。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7년 2월 10일 (신미) 원본1526책/탈초본82책 (13/49) 1783년 乾隆(淸/高宗) 48년/ ○ 承旨前望單子入之。李在學․沈豊之落點。(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9년 5월 9일 (정사) 원본1582책/탈초본85책 (12/31) 1785년 乾隆(淸/高宗) 50년/ ○ 沈豊之啓曰, 今日齋宿承旨當爲備員, 未差之代, 政官牌招開政差出, 待下批仍卽牌招, 以爲淸齋之地,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승정원일기/ 정조 11년 7월 29일 (갑오) 원본1630책/탈초본86책 (30/31) 1787년 乾隆(淸/高宗) 52년/ ○ 丁未七月二十九日未時, 上御重熙堂。都承旨與修改後來待諸臣入侍時, 行都承旨沈豊之, 記事官金孝建․李相璜․金祖淳, 禮曹判書徐有隣, 錦城尉朴明源, 以次進伏訖。上曰, 自朝雨來, 不害於役事乎? 明源曰, 臣等承命, 更爲奉審, 且率去解事人, 十分商量, 而別無大段修補之處, 故以手按摩而已矣。有隣曰, 陵官輩以爲, 或有莎草傷損處, 則間間播種似好, 而不敢自下任意爲之云, 何以爲之乎? 上曰, 播種處大段乎? 有隣曰, 今則無所損, 日後或有所損, 則欲播種云矣。上曰, 雖播種, 何可輕易爲之乎? 有隣曰, 諸陵丁字閣滲漏處, 待秋夕節修改乎? 上曰, 隨其大小, ?卽修改好矣。上曰, 雨水連仍, 於農事無大段有害否? 明源曰, 今則秋事幾乎成實, 雖雨無加傷矣。上曰, 長興民人漂流處, 聞甚矜惻矣。有隣曰, 伏見夜下傳敎, 實爲均惠之道矣。命退, 諸臣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4월 9일(경술) 3번째 기사/ 박천형 등이 개강하기를 청하는 차자를 올리자 가납하다/ 교리 박천형(朴天衡) 등이【부교리 김이정(金履正)․수찬 심풍지(沈豊之)․심유진(沈有鎭)이다.】 차자를 올리기를, 상중에는 진실로 상사(喪事)에 관한 일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과 또한 인산(因山)을 복정(卜定)하지 못했으므로 인하여 성상께서 마음이 초조하고 황급하여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개강(開講)하기를 청하는 것은 그 시기가 아닐 듯합니다마는, 다만 삼가 생각건대 임금의 한 몸은 종사가 의탁하는 바이고, 신과 사람이 매어 있는 바입니다. 하루 동안에도 온갖 기무(機務)를 응접하시느라 지극히 번거로울 것입니다마는, 진실로 학문을 강구한 공력이 아니면 개발하여 이익이 되게 할 수 없는 법이니, 집희(緝熙)97) 의 공부를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예기(禮記)》에 수록되어 있는 장사를 지내기 전에는 상례(喪禮)를 읽는다.라는 글을 보더라도 효자는 일찍이 상사 때문에 학문을 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진강(進講)하는 날을 증가할 것을 주부자(朱夫子)가 주청한 것이었고, 간간이 경연에 나아가신 것은 우리 성조(聖祖)께서 행하신 바이었으며, 우리 대행 대왕께서도 갑진년98) 에 택휼(宅恤)하실 적에 특별히 차자에 진달한 말을 윤허하셨던 것이니, 이는 어찌 오늘날에 인용해야 할 고사가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예를 갖추어 경연을 열 수 없습니다마는, 조금 산릉(山陵)을 복길(卜吉)하기를 기다렸다가 제전(祭奠)의 여가에 때때로 인접(引接)해 주시며 경적(經籍)을 토론하게 된다면, 근본을 바로잡고 정치를 해 가는 방도에 있어서 어찌 도움이 적겠습니까?하니, 비답을 내려 가납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8장 B면/ 【영인본】 44책 569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註 97]집희(緝熙) : 빛이 밝은 모양. ☞ / [註 98]갑진년 : 1724 영조 즉위년. ☞(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4월 15일(병진) 2번째 기사/ 정후겸의 생부와 형제에 대한 엄한 처벌을 심풍지가 상소하자 비답을 내리다/ 부교리 심풍지(沈豊之)가 상소하기를, 정후겸(鄭厚謙)의 생부와 형제들이 버젓이 도성에 살고 있어 거의 평범한 사람들과 같습니다. 법과 기강으로 논하건대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안겸제(安兼濟)가 적신(賊臣)에게 몸을 의탁한 것에 있어서도 계룡(鷄龍)한 조항이 곧 그의 단안(斷案)입니다. 만일에 정후겸의 혈당을 논한다면 이담(李潭)이 곧 괴수로서 전조(銓曹)의 권병(權柄)을 오로지 하여 오직 파당을 세우기만 일삼았고 온 세상을 누르고 억제하여 문득 선도(先導)가 되었었는데, 유하(?下)에 편안히 누워 있다가 죽었으니 백성들의 마음이 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소탕하여 제거하는 이 때를 당하여 어찌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것 때문에 그대로 두고 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정석달(鄭錫達)과 정일겸(鄭日謙)에게는 시급히 귀양 보내는 법을 내리고, 서울에 있는 그의 아우는 향리(鄕里)로 물리치고, 삭출한 죄인 안겸제는 시급히 왕부(王府)로 하여금 준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알아내고 통쾌하게 당률(當律)을 시행하게 하고, 고 판서 이담에게는 시급히 추탈(追奪)하는 율을 시행하소서.하니, 비답하기를, 정석달 부자는 모두를 향리로 내쫓게 하겠고, 안겸제는 이 뒤에 마땅히 준엄하게 국문하는 도리가 있을 것이다. 이담은 과연 죄가 있기는 하다마는 이미 역적은 아니었으니, 죽은 뒤의 일률(一律)을 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겠는가? 다시 대신들에게 물어 처결하겠다.하였다. 부사직(副司直) 이계(李?)가 또한 상소하여 이담의 일을 논하니, 하교하기를, 남강로(南絳老)의 상소에 있어서는 단지 나만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선대왕께서도 특별히 신설(伸雪)하도록 하는 하교를 내리셨었으니, 죽은 사람이 알게 되면 거의 유감이 없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이계가 논한 이담의 일 내용에 1, 2 대목의 말은 선대왕께서 금년 봄에 처분이 계신 뒤에는 감히 다시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을 가려서 하지 아니하여 이담을 죄주게 하려다가 자신이 선조(先朝)의 죄인이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계의 상소 가운데 먹으로 말소하였다.[黑抹]라는 곳의 어구는, 그때 조진(朝診)을 할 적에 나도 모시고 앉았었지만 이미 나와 비슷하게 하교하신 것이 없었다. 이계가 이미 입시했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디서 들었기에 장주(章奏)에 올리게 된 것인가? 말이 더없이 무거운 곳을 범하였고, 직책도 대각(臺閣)이 아닌 사람으로서 앞서 수차(袖箚)를 올린 일과는 크게 서로 동떨어지는 짓을 했으니, 행 부사과(行副司果) 이계를 삭직하라.하고, 대신들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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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