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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75-8:심풍지(1779.6.13.제수-1780.6.22.이임)
작성자장병창 @ 2020.05.18 17:04:31

  예천고을원 175-8 : 심풍지(1779.6.13제수-1780.6.22이임) : 형조 판서에 까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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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1783 계묘 / 청 건륭(乾隆) 48년) 2월 13일(갑술) 3번째 기사/ 심풍지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임명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2장 A면/ 【영인본】 45책 351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1783 계묘 / 청 건륭(乾隆) 48년) 4월 1일(신유) 2번째 기사/ 혜빈에게 존호를 더 올리고 신하들에게 시상하다/ 혜빈(惠嬪)에게 존호를 더 올렸다.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 친히 의절에 따라 책인(冊印)을 올리고 나서 자경전에 나아가 의절대로 치사, 전문, 안팎 옷감을 올렸다. 죽책문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건대, 예절은 선조의 은혜를 갚는 것이 귀하므로 큰 명호를 소급해 올리는 것이고 효도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므로 똑같이 보책에 선양합니다. 어찌 경사만 꾸민 것이겠습니까? 정성을 펴려고 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효강 혜빈 저하(孝康惠嬪邸下)께서는 우왕(禹王)의 후비처럼 복을 길렀고 왕실의 아름다움을 계승하였습니다. 부드러운 법도로 금종(琴鍾)이 소양(少陽)의 의표(儀表)와 짝지었고 신중히 하는 마음으로 며느리의 법도에 형황(珩璜)이 잘 어울렸습니다. 소자(小子)가 어렵고 큰 책임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것은 자전께서 보호하고 도와주신 은혜입니다. 세 조정의 아름다운 훈계를 명심하여 대략 7년의 태평을 누리었고, 천승(千乘)3388) 으로 봉양하면서 늘 순수한 일념을 우러러보았습니다. 보령(寶齡)이 50세에 오르자 길이 복받으시길 더욱더 바라고 비록 두 글자의 존호를 올리지만 어떻게 선양하려는 충심에 흡족하겠습니까? 다행히도 새로운 경사가 생겨 종사를 공고히 하니 침묘(寢廟)에 성대한 의식이 더 융성해졌습니다. 하늘에서 오르내리는 영령(英靈)의 도움을 받아 끝없는 여유를 주신 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평소 보답하려는 정성을 미루어 행한 것은 상서가 생긴 근본에 감격해서입니다. 선양의 의의가 크므로 어려서부터 사모하는 것이 새로운 것 같아 슬퍼지고, 골고루 은택이 펴지어 아름다운 규범이 더욱 천양되었으면 합니다. 떳떳한 법도를 상고해 보아도 참으로 들어맞았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의견이 똑같았습니다. 자(慈)는 뭇 착한 일의 으뜸이므로 어머니의 덕이 융성하고, 희(禧)는 온갖 상서가 모이는 것이므로 하늘의 경사가 펼쳐집니다. 이에 삼가 죽책을 받들어서 자희(慈禧)라는 존호를 더 올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드러난 칭호에 빛나게 응하여 순수한 복을 성대하게 맞이할 것으로 여깁니다. 삼책(三冊)의 예를 아울러 거행하니 육궁(六宮)에 뫼뿌리처럼 감수하기를 축원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네 가지 경사가 겹치니 천 년토록 즐거움을 누리실 것입니다.󰡓하였다.【판중추부사 이복원(李福源)이 지었다.】

 

  임금이 대차(大次)에 나아가 돈장(敦匠)의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고 나서 시상(施賞)하였다. 왕대비전 가상 존호 옥책문 제술관 판중추부사 이휘지(李徽之), 서사관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鄭志儉), 옥보 전문(玉寶篆文) 서사관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에게는 각각 숙마(熟馬) 한 필을 면급(面給)하고, 악장문(樂章文) 제술관 평안도 관찰사 이성원(李性源)에게는 반숙마(半熟馬) 한 필을 하사하고, 책보를 마주 든 승지 윤숙(尹塾)․박우원(朴祐源)에게는 품계를 올려 주었다. 경모궁 추상 존호 죽책문 제술관 대제학 황경원(黃景源), 옥인전문(玉印篆文) 서사관 의정부 좌참찬 윤동섬(尹東暹)에게는 모두 품계를 올려 주고, 죽책문 서사관 개성부 유수 서유방(徐有防)에게는 숙마 한 필을 면급(面給)하고, 악장문 제술관 의정부 우참찬 정민시(鄭民始)에게는 반숙마 한 필을 하사하고, 책인을 마주 든 승지 윤숙․박우원, 신주 출납 대축(神主出納大祝) 규장각 직각 정동준(鄭東浚), 독책관(讀冊官) 부사과 엄사만(嚴思晩), 홍문관 부교리 이정규(李鼎揆), 통례원 좌통례 이중복(李重馥), 우통례 유영진(柳榮鎭)에게는 모두 품계를 올려 주었다. 진치사관(進致詞官)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조제로(趙濟魯)는 6품으로 올려 주고, 친히 제사지낼 때의 아헌관(亞獻官)인 판중추부사 서명선(徐命善), 종헌관(終獻官)인 의정부 좌의정 홍낙성(洪樂性)은 아들, 사위, 아우, 조카들 중에서 관직을 제수하였다. 진폐 찬작관(進幣瓚爵官) 이조 판서 유언호(兪彦鎬), 전폐 찬작관(奠幣瓚爵官) 이조 참의 김희(金憙), 천조관(薦俎官) 호조 판서 서유린(徐有隣), 예의사(禮儀使) 예조 판서 서호수(徐浩修), 당상 집례(堂上執禮) 행 부사직 이시수(李時秀)에게는 각각 숙마 한 필을 하사하고, 대축(大祝) 부사과 김재찬(金載瓚)에게는 품계를 올려 주었다. 혜경궁 가상 존호 죽책문 제술관 판중추부사 이복원(李福源), 서사관 의정부 좌의정 홍낙성(洪樂性), 옥인 전문(玉印篆文) 서사관 판중추부사 정홍순(鄭弘淳)에게는 각각 숙마 한 필을 면급(面給)하고, 악장문 제술관 호조 판서 서유린에게는 반숙마 한 필을 하사하고, 책인을 마주 든 승지 심풍지(沈豊之)․엄사만(嚴思晩)에게는 품계를 올려 주고, 도감 도제조 행 판중추부사 서명선(徐命善)에게는 안구마(鞍具馬) 한 필을 면급(面給)하고, 제조인 호조 판서 서유린, 예조 판서 정일상(鄭一祥), 인릉군(仁陵君) 이재협(李在協), 공조 판서 이갑(李?)에게는 각각 숙마 한 필을 하사하고, 행 부사직 서유경(徐有慶), 행 지중추부사 김화진(金華鎭), 의정부 우참찬 정민시에게는 각각 반숙마 한 필을 하사하고, 도청 부사과 윤동만(尹東晩)․이철모(李喆模)에게는 모두 품계를 올려 주고, 낭청 집사들에게는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41장 A면/ 【영인본】 45책 361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 / *어문학(語文學)/ [註 3388]천승(千乘) : 소국(小國)을 이름. ☞(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1783 계묘 / 청 건륭(乾隆) 48년) 6월 3일(계해) 2번째 기사/ 심풍지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다/ 심풍지(沈豊之)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59장 A면/ 【영인본】 45책 370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1783 계묘 / 청 건륭(乾隆) 48년) 6월 20일(경진) 1번째 기사/ 김이소․정지검․박우원․심풍지를 비변사 제조로 삼다/ 차대하였다. 김이소(金履素)․정지검(鄭志儉)․박우원(朴祐源)․심풍지(沈豊之)를 비변사 제조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65장 A면/ 【영인본】 45책 373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6권/ 정조 7년(1783 계묘 / 청 건륭(乾隆) 48년) 9월 1일(기축) 2번째 기사/ 윤사국․박우원․강세황․심풍지․조정진․유언집․김이소․이명식․정민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사국(尹師國)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박우원(朴祐源)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강세황(姜世晃)을 한성부 판윤으로,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조정진(趙鼎鎭)을 이조 참의로, 유언집(兪彦鏶)을 형조 참의로, 김이소(金履素)를 동지 경연사로, 이명식(李命植)․정민시(鄭民始)를 지경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34장 B면/ 【영인본】 45책 39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1월 10일(병신) 3번째 기사/ 김노진․심풍지 등을 대사간으로 삼다/ 김노진(金魯鎭)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심풍지(沈豊之)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4장 A면/ 【영인본】 45책 420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1월 16일(임인) 2번째 기사/ 심풍지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다/ 심풍지(沈豊之)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7장 B면/ 【영인본】 45책 422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1월 23일(기유) 2번째 기사/ 부제학 심풍지가 국정의 일을 상소하니 비답하다/ 부제학 심풍지(沈豊之)가 상소하기를, 󰡒나라의 도리로는 바르고 어진 사람을 가려서 저사(儲嗣)를 보좌하는 일보다 앞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 덕성(德性)을 훈도(薰陶)하는 방도로 말하면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마는, 다만 보양관(輔養官)이 진견(進見)하는 것은 때가 있고 보모․유모 등은 때없이 친근하니, 언어가 혹 비속하거든 엄히 금단하고 기용(器用)이 혹 완호(玩好)에 가깝거든 빨리 물리치도록 명하여 몽양(蒙養)하는 공을 다하게 하시고 널리 문학․경술(經術)이 있는 선비를 가려서 서연(書筵)이 열릴 때를 기다리게 하소서. 나라의 정치는 아닌게 아니라 분려(奮勵)하면 일어나고 인순(因循)하면 무너지는데, 근래 분려하는 뜻이 점점 처음만 못하고 고식(姑息)하는 뜻이 따라서 때맞추어 일어나니, 과거(科擧)의 폐단을 크게 고치려 하여도 조치가 정해지지 않고 어염세(魚鹽稅)를 팔도에 하문하여도 확정될 기약이 없습니다. 경연(經筵)은 덕을 성취하는 근본인데 열고 멈추는 것이 무상하니, 이것이 어찌 성심(聖心)을 계옥(啓沃)할 만하겠습니까? 《명의록(明義錄)》은 우리 동방의 《춘추(春秋)》인데 난본(亂本)을 제거하지 않고 흉도(兇徒)를 징계하지 못하므로 혹 법을 굽혀 요행히 피하기도 하고 흠을 지니고서 무릅써 차지하기도 하며, 겉으로는 제거하고 쇄신한 듯하나 도리어 엿보는 한탄을 시작하게 하고 속으로는 혹 머뭇거려서 자신을 더럽힐세라 급급히 떠나는 뜻이 아주 없으니, 의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인지(人志)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원하건대, 쾌히 결단하여 빨리 삼사(三司)의 청을 윤허하소서. 언로(言路)는 나라의 혈맥인데, 근일 입을 다무는 것이 풍속이 되어, 조금만 남을 논하는 말에 미치면 변괴로 보고 혹 분부에 응하는 글이 있으면 양식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난 봄 유신(儒臣)이 상소하여 말한 것은 충역(忠逆)에 관한 의리인데 비지(批旨)를 내리지 않고 원소(原疏)를 궁중에 머물려 두셨으니, 이런데도 누가 전하를 위하여 진언(進言)하려 하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재물을 생산하는 것보다 앞세울 것이 없습니다. 즉위하신 처음부터 복어(服御)는 화식(華飾)을 취하지 않고 절수(折受)는 모두 탁지(度支)3593) 로 돌리며 표지(標紙)는 해조(該曹)에 내리지 않고 공헌(供獻)은 번번이 경외(京外)에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국계(國計)는 해마다 없어지고 경비(經費)는 날로 줄어드는데, 진신(搢紳)은 검약을 생각하지 않고 필서(匹庶)는 점점 사치를 숭상하여 가며 수령(守令)은 오직 침탈을 일삼고 감사(監司)는 욕심을 채울 줄만 아니, 이런데도 민생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재용(財用)이 어찌 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절(名節)은 세상을 이끌고 풍속을 세우는 도구인데, 근래 권간(權奸)이 해독을 끼쳐 오랜 버릇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진신은 좋은 벼슬이 있는 것만 알고 장보(章甫)3594) 는 급제하는 것만 이롭게 여겨서 행의(行義)나 학식은 쓸데없는 것으로 보고 구차하게 녹위(菉位)에 용납되려는 것이 문득 풍속이 되었으니, 세도(世道)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참으로 또한 마음 아픕니다. 원하건대, 명예를 숭상하고 절조를 장려하여 풍동(風動)하는 아름다움으로 삼으소서.󰡓하니, 비답하기를, 󰡒벼슬이 논사(論思)의 장(長)에 있어 이 바로잡는 말을 아뢰었으니, 자신에 반성하여 깊이 살피겠다. 이 밖의 여러 가지도 격언(格言)이 아닌 것이 없으니, 또한 유의하여 조치하겠다.󰡓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10장 A면/ 【영인본】 45책 423면/ 【분류】 *정론(政論)/ [註 3593]탁지(度支) : 호조(戶曹). ☞ / [註 3594]장보(章甫) : 유생(儒生). ☞(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3월 2일(정해) 2번째 기사/ 심풍지․조정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조정진(趙鼎鎭)을 이조 참의로 삼았는데, 조정진은 곧 파면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3장 B면/ 【영인본】 45책 430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3월 11일(병신) 3번째 기사/ 이갑․이재협․심풍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정홍순․성담수․이해․김시습․남효온․박의장․원호․권적 등에게 시호를 내리다/ 이갑(李?)을 병조 판서로, 윤사국(尹師國)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가 곧바로 체임하고 이재협(李在?)으로 대신하게 하였으며, 심풍지(沈豊之)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우의정 정홍순(鄭弘淳)에게 정민(靖敏)이란 시호(諡號)를, 이조 판서에 추증(追贈)된 성담수(成聃壽)에게는 정숙(靖肅)을, 이조 판서에 추증된 이해(李瀣)에게는 정민(貞愍)을, 이조 판서에 추증된 김시습(金時習)에게는 청간(淸簡)을, 이조 판서에 추증된 남효온(南孝溫)에게는 문정(文貞)을, 호조 판서에 추증된 박의장(朴毅長)에게는 무의(武毅)을, 직제학 원호(元昊)에게는 정간(貞簡)을, 지중추부사 권적(權?)에게는 효정(孝貞)이란 시호를 내렸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5장 A면/ 【영인본】 45책 431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3월 30일(을묘) 2번째 기사/ 심풍지․조정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조정진(趙鼎鎭)을 이조 참의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36장 B면/ 【영인본】 45책 436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윤3월 6일(신유) 1번째 기사/ 사간 이복희와 이조 참판 심풍지가 서로 상소하여 논쟁하다/ 사간 이복휘(李福徽)가 상소하기를, 󰡒이조 참판의 상소가 대단한 기세로 도리어 욕하면서, 다른 사람을 협잡(挾雜)하는 죄과로 몰아붙이면서 공공(共公)의 논의라고 자처(自處)하였는데, 신이 비록 피열(疲劣)하기는 하지만, 또한 공공의 한 가지 논의가 있습니다. 역적 홍계능(洪啓能)을 아비 같이 섬긴 서형수(徐瀅修)와 역적 송덕상(宋德相)을 스승처럼 섬긴 맹지대(孟至大) 역시 그 가운데 들어 있었는데, 이것도 공공의 논의였겠습니까? 황해 병사(黃海兵使) 오재희(吳載熙)는 일찍이 변방의 고을에 있으면서 풍질(風疾)이 크게 발생하여 심지어 칼을 빼어 비장(裨將)을 쫓아버린 일이 있었으며, 다시 곤임(?任)에 임명되어서는 전적으로 군사 업무를 폐기하고 괴상한 일을 많이 일으켰다고 합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즉시 파직시키고 체임하게 하는 것이 가하다고 여깁니다.󰡓하였는데, 따르지 않았다. 이복휘(李福徽)가 처음 상소한 뒤에, 이조 참판 심풍지(沈豊之)가 상소하기를, 󰡒권점(圈點)을 한 뒤에 탄핵과 논박을 하는 경우는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지체가 낮고 한미하다는 것으로 배척한 것은 일찍이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은 모두 대성(臺省)의 반열에 올라 간혹 초계(抄啓)하는데 있기도 하고 간혹 사망(士望)을 부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익진(李翼晉)은 선파(璿派)의 후손으로 문장(文章)과 재화(才華)가 뛰어나며, 권유(權裕)는 고가(故家)의 망족(望族)으로 학문과 식견이 갖추어 흡족하고, 홍낙항(洪樂恒)은 여러 차례 서연에 시강(侍講)하였으며, 김근(金根)에 대한 비난은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이현묵(李顯黙)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행동 거지가 대관(臺官)의 체모를 크게 무너뜨렸다고 하나, 그의 지벌(地閥)과 문예(文藝)를 따져 보면 이것으로 인해서 영원토록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저 대신(臺臣)은 그 당시 아간(亞諫)으로서, 몇 달 동안 대각(臺閣)에 있으면서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다가, 지금 다시 사간이 된 뒤에야 비로소 과거의 일을 제기(提起)하는 말을 하면서, 대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한심스럽게 여겼으니, 참으로 역시 이상합니다.󰡓하였었는데, 이에 이복휘가 또 상소하여 그것을 분변하였던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37장 B면/ 【영인본】 45책 437면/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5월 22일(병자) 3번째 기사/ 심풍지․서유대․이경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서유대(徐有大)를 금위 대장으로, 이경무(李敬懋)를 어영 대장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50장 B면/ 【영인본】 45책 443면/ 【분류】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6월 6일(기축) 1번째 기사/ 도승지 심풍지를 보내 판중추부사 서명선에게 유시하다/ 도승지 심풍지(沈豊之)를 보내 판중추부사 서명선에게 유시하기를, 󰡒대신과 제재(諸宰)가 모두 이미 와서 모여 경이 조정에 나오기를 기다려서 인접하고자 하는데, 경의 지처로 어찌 번연히 생각을 돌리지 않는가? 급박하여 길게 말을 하지 못하니, 경은 모름지기 즉시 들어오라.󰡓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54장 B면/ 【영인본】 45책 445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8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7월 2일(을묘) 4번째 기사/ 심풍지를 이조 참판으로, 김우진을 이조 참의로 삼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김우진(金宇鎭)을 이조 참의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1장 B면/ 【영인본】 45책 453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8권/ 정조 8년(1784 갑진 / 청 건륭(乾隆) 49년) 7월 24일(정축) 2번째 기사/ 황승원․김이안․심풍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승원(黃昇源)을 이조 참의로 삼고, 김이안(金履安)을 승지로 삼고, 심풍지(沈豊之)를 홍충도 관찰사(洪忠道觀察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10장 A면/ 【영인본】 45책 45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3월 24일(계유) 1번째 기사/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가 역모 관련자에 대해 비밀히 상언하다/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沈豊之)가 비밀리 아뢰기를, 󰡒신이 영장(營將) 심영(沈?)․판관 홍경후(洪景厚)를 데리고 회좌(會坐)하여 죄인 진양로(陳養老)에게 추문(推問)하기를, 󰡐 이른바 김가는 이미 그 성을 들었으니, 어찌 그 이름을 듣지 못할리가 있겠는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김곤(金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 김곤은 과연 힘이 세고 술수를 잘 안다고 하던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조금 힘은 세지만 술수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 김곤이 어느 달 어느 날에 하려고 하였던 일은 과연 어떤 행동이라고 하던가?󰡑하니, 공초하기를, 󰡐 3월 15일 서천(舒川)에서 군사를 일으켜 서울을 침범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 이 말은 네가 누구에게서 들었는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진흡(陳?)에게서 들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 네가 진흡과 대질시키더라도 진흡이 만일 변명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대질시킨다면 반드시 말이 꿀릴리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 너의 아비 진동철(陳東喆)과 너의 형 진양호(陳養浩)가 모두 말하기를, 󰡐 진흡이 말하였다는 서천의 김가는 3월에 난리를 일으킨다는 말을 애초에 듣지 못하였다󰡐 라고 하는데, 너만 혼자 어디서 들었는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아버지와 형이 정말로 같이 들었는데 어찌 모를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죄인 진흡에게 추문(推問)하기를, 󰡐 을사년 3월에 서천의 김가 성을 가진 사람이 거사한다는 말을 진동철 3부자에게 언급하였기 때문에 진양로가 전후하여 공초한 말은 모두 너에게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천의 김가 성을 가진 사람이 주장한 말을 어찌 과연 어디에서 들었는가? 그리고 김가의 명자(名字)는 과연 무엇이라고 하던가?󰡑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 작년의 소란스러운 풍설도 또한 떠돌아다니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70살이 넘었는데, 어찌 진동철 따위와 더불어 이런 근거없는 말을 주고 받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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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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