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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175-10 : 심풍지(1779.6.13제수-1780.6.22이임) : 형조 판서에 까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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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3월 26일(을해) 2번째 기사/ 전라도 관찰사 이재학,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가 역모자 체포 사실을 아뢰다/ 전라도 관찰사 이재학(李在學)이 비밀리에 아뢰기를, 지리산에 사는 네 명의 죄인 이름이 역적의 공술에서 자주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큰 괴수들입니다. 신이 앞서 이미 병사와 수사의 진영과 산 아래의 여러 고을에 비밀 관문(關文)을 보내어 교졸들을 정해 보낼 때에 반드시 각별히 조심하게 하였고, 영암(靈巖)의 김가(金哥)와 광양(光陽)의 오가(吳哥)를 증인으로 끌어넣는 것이 이미 긴급하였으므로 그를 찾는 것이 매우 시급하였습니다. 이미 김가는 여러 방면으로 비밀리에 탐지하였으나, 아직 종적이 없고, 오가는 해당 고을에서 체포하여 하동부(河東府) 선전관(宣傳官)이 머무르는 곳에 보냈으나, 그의 이름자가 서로 틀리기 때문에 다시 탐문하여 체포하게 하였는데, 아직도 진짜 오가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두 고을에서 탐문하고 체포한 정절은 지리산과는 다른 점이 있었으니, 별반 소동을 일으키는 폐단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일제히 완전히 철수할 필요는 없으니, 체포를 중지하는 하나의 문제는 다시 장래 형편을 보아가면서 시기에 맞추어 거행하도록 하소서.하고,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沈?之)가 비밀리에 아뢰기를, 신이 영장(營將) 심녕(沈?)․판관 홍경후(洪景厚)와 회좌(會坐)하여 죄인을 신문하고 공초을 받았는데, 조명호(趙明浩)는 조명호(趙明浩)가 아니고 바로 조명호(趙鳴鎬)였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네가 진흡과 말을 주고받은 일을 진흡이 솔직하게 공초하였으니, 지금에 와서 비록 숨기려고 하더라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다.하니, 공초하기를, 과연 그와 서로 친합니다. 계묘년3975) 7월에 진흡이 와서 말하기를, 「왜선(倭船)이 동래(東萊)에 갔다왔다 한다는데, 세상은 반드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흉악한 말을 듣고서 입 밖에 내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자세하게 고해야 하겠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을사년 3월에 난리가 반드시 일어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을용(乙龍)이라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그것은 용(龍) 자 중에 뱀 사(巳)자, 석 삼(三)자, 달 월(月)자가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파자(破字)하여 을사년 3월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요즘 죄인이 해마다 연이어 나올 뿐만 아니라, 또 길가에 떠도는 거짓말도 많으니,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세상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밖에 다른 말은 주고받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진흡에게 추문(推問)하기를, 네가 조명호(趙鳴鎬)의 집에 가서 흉악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말은 이미 진양호의 공초에서 나왔는데, 조명호도 이미 솔직하게 진술하였으니, 혹 숨기지는 못할 것이다.하니, 공초하기를, 조명호가 공초한 것은 늙고 혼미한 소치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진흡과 조명호를 대질시켰더니, 진흡이 조명호를 향하여 말하기를, 내가 언제 너의 집에 갔는가?라고 하니, 조명호가 말하기를, 재작년 7월에 네가 우리 집에 왔다.라고 하였습니다. 진흡이 말하기를, 4, 5년 내에 원래 너의 집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었다.라고 하니, 조명호가 말하기를, 연전에 《맹자(孟子)》와 《중용(中庸)》을 팔았기 때문에 내가 과연 사두었는데, 재작년 7월에 네가 또 우리 집에 와서 말하기를, 「이 책은 바로 내가 평생에 아끼던 물건이니, 뒤에 한번 빌려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이런데도 네가 감히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고 말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진흡이 말하기를, 재작년 가을에 내가 과연 너의 집에 갔는데, 나는 전연 이를 잊어버렸다.라고 하니, 조명호가 말하기를, 그때에 네가 어찌 세상이 흉흉하니, 현재의 정사가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르게 될 지 알 수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또 어찌 을용(乙龍)이라는 두 글자를 파자하면 을사년 3월이 되는데, 이것을 또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진흡은 묵묵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한참 오래도록 있다가 이어 말하기를, 죽는 것 밖에 다른 방책이 없다. 그는 말을 내가 과연 발설하였으니 처음에는 잊어버렸다가, 너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조명호가 말하기를, 네가 어찌 왜 같으나 왜가 아닌 배가 동래(東萊)에서 나오더라고 말하지 않았던가?라고 하니, 진흡이 말하기를, 그 말도 내가 또한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진흡에게 묻기를, 이른바 을룡(乙龍)이라고 이름을 가진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고, 성자(姓字)는 무엇이라고 하며, 사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감히 숨기지 말라.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근거없이 떠돌아 다니는 말을 동네 사람 이진방(李鎭邦)에게서 들은데 불과하며, 그는 이제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이진방은 반드시 을룡의 거주지와 성명을 말하였을 것이니, 일일이 바른대로 공초하라.라고 하니, 공초하기를, 이진방이 말하기를, 을룡의 성은 바로 이가이고, 전라도 해변에 거주하여 산다고 하였으며, 그밖에는 정말로 들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을룡은 이미 사람 이름인데, 어찌하여 을사년 3월이 된다고 하였는가?하니, 공초하기를, 조명호가 을룡이라는 말뜻을 물었기 때문에 을룡을 가지고 바로 3월을 가리키는 뜻이라는 것을 파(破)자로써 언급하였는데, 조명호가 듣고 이것을 흉악한 말이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러한 여러 죄수들의 매우 음흉한 정상이 차차 드러나고 있는데, 심지어 역적 진흡에 대해서는 이미 을룡이라는 흉한 말을 제창하고, 또 망칙한 문자(文字)를 만들었으니, 이 두 가지 죄만으로도 이미 만 번 죽어도 합당할 터인데, 이제 조명호의 공초에서 죄악이 더욱 여지없이 이리저리 드러났고, 또 흉악한 말의 근원을 이미 죽은 이진방에게 넘겨 씌움으로써 끝까지 핵문(?問)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지극히 통분할 일입니다. 이른바 두 글자의 이름을 가진 역적은 호남 지방의 해변에 거주하여 산다고 하였기 때문에 신이 한편으로 전라 감영에 비밀 공문[秘關]을 뛰워서 면밀히 탐문하게 하였으며, 조명호는 이미 흉악한 말을 듣고서도 즉시 고발하지 않았으니, 또한 해당하는 형률을 빨리 적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6장 A면/ 【영인본】 45책 517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註 3975]계묘년 : 1783 정조 7년. ☞(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3월 26일(을해) 3번째 기사/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에게 체포를 중지할 것을 유시하다/ 홍충도 관찰사 심풍지(沈豊之)에게 비밀리에 유시하기를, 계하(啓下)하여 조사하게 한 사건은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요한데, 어찌 공초에 따라 곧바로 체포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조명호(趙鳴鎬)로 말하면, 80살 노인인데, 어찌 본 사건을 알겠는가? 더구나 소란스러운 말을 얻어 들은 것은 원래 처벌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다면 도내의 대소 인사(人士)들 가운데 소란스러운 말을 얻어 들은 사람들을 경은 다 체포하려고 하는가? 어찌 임금의 덕화를 선포하는 신하로서 이와 같이 성급하게 일을 처리할 수가 있는가? 경은 이미 처분하였지만 조명호를 즉각 석방하여 보내고 이른바 김곤(金坤)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잡아다가 추문하되, 만일 의심되는 단서가 없으면, 역시 곧 석방하여 보내되, 이 뒤로는 다시 발포(發捕)하지 말도록 하라. 이른바 을룡(乙龍)이라는 것은 너무나 허망한 말이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모임이 올해 3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또 어찌 사람의 이름자에다 돌리겠는가? 전라 감사에게 비밀 공문을 보내었는데, 바로 체포하였는가? 이 한 가지 문제가 전도되면 더욱 일이 커질 것이니, 즉시 체포를 중지하라는 뜻을 이 회답하는 유시와 함께 전라도 감사에게 베껴서 보내도록 하라.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7장 A면/ 【영인본】 45책 517면/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4월 24일(계묘) 2번째 기사/ 심풍지를 이조 참판으로 삼다/ 이조 참판 이경양(李敬養)을 교체하고, 서유방(徐有防)으로 대신하였다가 곧 또 심풍지(沈豊之)로 대신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72장 A면/ 【영인본】 45책 52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5월 27일(을해) 2번째 기사/ 심풍지․서정수․신대승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서정수(徐鼎修)를 이조 참의로, 신대승(申大升)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9장 A면/ 【영인본】 45책 529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6월 13일(경인) 1번째 기사/ 심풍지 조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조준(趙?)을 동지 경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10장 A면/ 【영인본】 45책 530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6월 22일(기해) 3번째 기사/ 심풍지․황승원․서유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황승원(黃昇源)을 이조 참의로, 서유성(徐有成)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12장 B면/ 【영인본】 45책 531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7월 24일(신미) 1번째 기사/ 심풍지․홍검․서유린․정민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홍검(洪檢)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서유린(徐有隣)을 동지 경연사로, 정민시(鄭民始)를 세자 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0장 B면/ 【영인본】 45책 535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8월 1일(무인) 1번째 기사/ 황승원 심풍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대(輪對)하였다. 황승원(黃昇源)을 이조 참의로, 심풍지(沈豊之)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2장 B면/ 【영인본】 45책 536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8월 14일(신묘) 2번째 기사/ 심풍지를 이조 참판으로 삼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4장 B면/ 【영인본】 45책 537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9월 3일(기유) 2번째 기사/ 조시준․심풍지․조정진․정민시․신대승․이병모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시준(趙時俊)을 이조 판서로,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조정진(趙鼎鎭)을 이조 참의로, 정민시(鄭民始)를 병조 판서로, 신대승(申大升)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이병모(李秉模)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6장 B면/ 【영인본】 45책 538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9월 6일(임자) 2번째 기사/ 심풍지 권이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권이강(權以綱)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7장 B면/ 【영인본】 45책 538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10월 14일(경인) 4번째 기사/ 홍양호․조성진․심풍지․서정수․박우원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양호(洪良浩)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조성진(趙城鎭) 사간원 대사간으로,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서정수(徐鼎修)를 이조 참의로, 박우원(朴祐源)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31장 A면/ 【영인본】 45책 540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12월 20일(을미) 1번째 기사/ 심풍지․서유성․이한풍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서유성(徐有成)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한풍(李漢豊)을 함경 남도 병마 절도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2장 A면/ 【영인본】 45책 546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12월 27일(임인) 2번째 기사/ 심풍지․김이주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승렬(尹承烈)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김재인(金載人)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가 조금 뒤에 심풍지(沈豊之)와 김이주(金?柱)로 대신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3장 A면/ 【영인본】 45책 546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 을사 / 청 건륭(乾隆) 50년) 12월 28일(계묘) 1번째 기사/ 서유경․이문원․심풍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서유경(徐有慶)과 이문원(李文源)을 동지 경연사로,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3장 A면/ 【영인본】 45책 546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10일(을묘) 2번째 기사/ 심풍지․김광묵․이재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이주(金?柱)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가 얼마 안되어 체차하고 심풍지(沈豊之)로 대임시켰다. 김광묵(金光黙)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재간(李在簡)을 동지 경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2장 B면/ 【영인본】 45책 547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13일(무오) 2번째 기사/ 이명식․김상집․조시준․윤시동․심풍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명식(李命植)을 지경연사로, 김상집(金尙集)을 동지 경연사로, 조시준(趙時俊)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윤시동(尹蓍東)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심풍지(沈豊之)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2장 B면/ 【영인본】 45책 547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21일(병인) 2번째 기사/ 심풍지․김이소․조시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김이소(金履素)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조시준(趙時俊)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5장 B면/ 【영인본】 45책 549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22일(정묘) 6번째 기사/ 심풍지가 기강을 세울 것과 연경 사신 등에 대해 아뢰다/ 대사간 심풍지가 아뢰기를, 근래에 기강이 문란해지고 법이 해이져서 여염의 미천한 졸개들도 분수에 넘게 사대부의 옷을 착용하고 저자의 아이들은 재상의 성명을 함부로 부릅니다. 큰 대궐에서 하례 드릴 때에 반열이 차서가 없고 경연에서 말할 때에 남의 말을 취하여 말하는 것이 서로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적인 조회에 해학하는 풍조가 이루어졌고 문관과 무관의 사이에 체통이 문란해지고 있습니다. 묘당에 신칙하여 독려하여 바로잡도록 하소서.하고, 또 청하기를, 연경에 가는 사신은 사행의 일 이외에 그쪽 인사들을 방문하여 필담(筆談)을 나누거나 서찰(書札)을 주고 받는 것을 금지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7장 B면/ 【영인본】 45책 550면/ 【분류】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외교(外交)(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25일(경오) 1번째 기사/ 심풍지․조정진․채홍리․송영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조정진(趙鼎鎭)을 참의로, 채홍리(蔡弘履)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송영(宋鍈)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1장 A면/ 【영인본】 45책 552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1월 27일(임신) 2번째 기사/ 이병모․심풍지․김광묵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신대승(申大升)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는데, 이윽고 병으로 체차하고 이병모(李秉模)로 대임시켰다. 심풍지(沈豊之)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김광묵(金光黙)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1장 A면/ 【영인본】 45책 552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2월 9일(계미) 5번째 기사/ 이숭호․이겸환․심풍지․이명식․이한오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숭호(李崇祜)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고 조성진(趙城鎭)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가 곧바로 이겸환(李謙煥)으로 대임시켰다. 심풍지(沈豊之)를 동지 경연사로, 이명식(李命植)을 판의금부사로, 이한오(李漢五)를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B면/ 【영인본】 45책 552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4월 1일(갑술) 2번째 기사/ 심풍지를 이조 참판으로 삼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3장 A면/ 【영인본】 45책 563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4월 15일(무자) 1번째 기사/ 심풍지․정상순․김노진․박천형․이집두․유언호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삼고, 김화진(金華鎭)을 판의금부사로 삼았다가 뒤이어 정상순(鄭尙淳)으로 대임시켰다. 김노진(金魯鎭)을 형조 판서로, 박천형(朴天衡)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고, 신대승(申大升)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가 뒤이어 이집두(李集斗)로 대임시켰다. 유언호(兪彦鎬)를 동지 경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6장 B면/ 【영인본】 45책 56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5월 4일(병오) 2번째 기사/ 심풍지 윤시동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윤시동(尹蓍東)을 예조 판서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41장 A면/ 【영인본】 45책 567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8)
심풍지 [記事] : 정조실록 22권/ 정조 10년(1786 병오 / 청 건륭(乾隆) 51년) 8월 11일(신해) 2번째 기사/ 심풍지․김우진․홍양호․유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심풍지(沈豊之)를 이조 참판으로 삼고, 이시수(李時秀)를 이조 참의로 삼았다가 곧바로 김우진(金宇鎭)으로 대임시켰다. 홍양호(洪良浩)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고, 이이상(李?祥)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가 곧바로 유의(柳誼)로 대임시켰다./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19장 A면/ 【영인본】 45책 58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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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